▲ 2010년 계약 당시 | |
소속팀 | <colbgcolor=#ffffff,#191919>FC 바르셀로나 (라리가) |
등번호 | 7 |
기록 | |
77경기 33득점 10도움 | |
26경기 8득점 3도움 | |
11경기 6득점 2도움 | |
3경기 1득점 | |
1경기 | |
1경기 | |
합산 성적 | |
119경기 48득점 15도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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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비드 비야의 FC 바르셀로나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2. 이적
그리고 2010년 5월 19일, 현지 시간으로 1시 30분 경 바르셀로나로 이적이 완료되었다. 40m 유로(대략 34m 파운드)에 합의. 그리고 입단식까지 거치면서 완벽하게 바르셀로나행이 결정되었다.3. 2010-11 시즌
10-11 시즌에서는 첫 경기에서 데뷔 골을 터뜨렸지만 이후 활약이 지지부진하다. 먹튀니 오발탄이니 해도, 즐라탄이 떠난 이후로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팀들은 대놓고 밀집 수비를 펼치고 있고, 스피드와 공간 침투를 활용하는 비야는 역습 전략의 발렌시아에서와는 달리 바르셀로나에서는 그 강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월드컵 이후에 골 결정력도 떨어졌다.
하지만 세비야전 이후로 헤타페전에서 연속 골을 성공시키며 슬슬 부활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국대에서 여러 번 뛰어 봤던 다른 선수들보다도, 처음 호흡을 맞추는 메시와 찰떡 궁합을 보이고 있다. 이후에는 좀 주춤했고 알메리아전에서 바르사가 8:0으로 이길 때도 무득점이라 다시 주춤하나 했더니, 엘 클라시코에서 메시의 킬패스 2번을 모두 성공시키며 2골을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라이벌 에스파뇰전에서도 메시와 차비의 어시스트를 골로 연결하며 드디어 인간 중에서 득점 순위 1위로 올라섰다.
2010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우승을 이끈 공로가 인정되어 생에 처음으로 FIFA FIFPro 월드 XI에 뽑혔으며 FIFA 발롱도르도 8위에 랭크되었다.
여담으로 바르사로 이적한 후 비야의 거품이 빠졌다든지, 이게 비야의 현실이라든지 등 여러 까들의 비판이 많은데 절대 비야가 못하는 게 아니다. 팀에서 메시가 너무 잘해서 그럴 뿐, 실제로 비야는 바르사로 이적한 후 출전 시간 대비 득점력이 더 늘었다. 또한, 바르샤의 부족했던 공격적인 부분을 완벽히 메꿨던 시즌이었다.
하지만 이후 매번 피치치를 앗아간 특유의 후반기 슬럼프(체력 부족으로 인한)가 찾아오는 바람에 10경기 연속으로 골을 넣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엘 클라시코 4연전 기간이라 꾸레들에게 폭풍 까임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10-11 시즌: 52경기(선발 48경기) 23골 6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라리가 | 34 | 32 | 2 | 18 | 5 |
챔피언스 리그 | 12 | 12 | 0 | 4 | 1 |
코파 델 레이 | 5 | 4 | 1 | 1 | 0 |
수페르코파 | 1 | 0 | 1 | 0 | 0 |
합계 | 52 | 48 | 4 | 23 | 6 |
4. 2011-12 시즌
정규시즌에 들어서는 새로 영입되었던 알렉시스 산체스와 페드로 로드리게스등과 주전 경쟁을 펼치면서 이들보다는 그래도 우선으로 기용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2011년 12월 15일, 알 사드와의 FIFA 클럽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선발로 나왔으나 정강이뼈 골절로 시즌 아웃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고, 이로 인하여 유로 2012에도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이것은 향후 바르셀로나에게 큰 문제점으로 작용했는데, 놀랍게도 메시가 공격 포인트 100개를 찍는 와중에도 중요한 경기마다 골 결정력 부족을 보이며 자멸했다는 것이다. 파브레가스와 알렉시스 산체스를 메시와 공격진으로 내세워 폴스 나인 전술을 사용했으나 큰 효과를 보이지 못했으며[1], 이는 첼시 1차전(원정)-엘 클라시코(홈)-첼시 2차(홈)전에서 바르셀로나로 하여금 찬스를 잡지 못하는 화근으로 작용했다. 그뿐이랴? 10-11 시즌 비야-메시-페드로 중 페드로 역시 부상으로 폼이 확연하게 떨어져 시즌 내내 테요나 쿠엔카 등의 선수들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MVP 라인 비야-메시-페드로 쓰리톱의 경우 득점력 면에서 메시에게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메시, 파브레가스, 산체스의 공격진과 비슷하지만, 페드로와 비야는 둘 다 결정지어야 할 상황에서 확실하게 결정을 지어버릴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2] 이 차이점은 향후 바르셀로나의 중요한 경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비야가 비록 리오넬 메시 만큼의 득점력을 자랑하는 선수는 아니더라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과 큰 경기에서 득점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는데,[3] 바르셀로나는 비야가 있을 때에는 그 점을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에 결국 비야가 시즌 아웃을 당하자 골을 결정지을 수 있는 선수가 메시밖에 없다는 점이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작용했다.
다행히도 스페인은 제로톱 전술과 네그레도-토레스 등의 선수들을 활용하여 이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이후 극단적인 공격적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는 바르셀로나로서는 앞으로 강팀과의 경기나 중요한 경기에서 내세울 공격수가 절실하다는 것이 증명됐다.
2011-12 시즌: 24경기(선발 17경기) 9골 1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라리가 | 15 | 8 | 7 | 5 | 0 |
챔피언스 리그 | 4 | 4 | 0 | 3 | 1 |
코파 델 레이 | 1 | 1 | 0 | 0 | 0 |
클럽 월드컵 | 1 | 1 | 0 | 0 | 0 |
슈퍼컵 | 1 | 1 | 0 | 0 | 0 |
수페르코파 | 2 | 2 | 0 | 1 | 0 |
합계 | 24 | 17 | 7 | 9 | 1 |
5. 2012-13 시즌
2012-13 시즌: 43경기(선발 26경기) 16골 8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라리가 | 28 | 17 | 11 | 10 | 5 |
챔피언스 리그 | 10 | 5 | 5 | 1 | 1 |
코파 델 레이 | 5 | 4 | 1 | 5 | 2 |
합계 | 43 | 26 | 17 | 16 | 8 |
5.1. 이적 사가
토트넘, 아스날과 강력하게 연결된 듯했으나 뜬금없게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5]이적료는 최대 5.1m 유로(약 75억)이고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3/14 시즌 2.1m 지급, 14/15 시즌 2m 지급, 15/16 시즌까지 AT에 비야가 남을 경우 잔여 1m 지급. 추후 이적 시 바르사에 이적료의 50% 지급이다. 나이와 바르셀로나에서의 폼 때문인지 낮은 수준으로 책정된 듯하다.
6. 총평
바르사 시절 비야는 왼쪽에서 측면 공격수로 뛰었다. 클래식한 크로스형 윙어보다는 주로 골 게터에 가까운, 오히려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비야가 본래 스트라이커 출신이기도 하지만 왼쪽의 공격 전개는 이니에스타의 소관이었기 때문에 공격 전개에서 이니에스타를 돕거나 혹은 공백을 메워주는 보조적인 역할이었고 주 역할은 그렇게 전개된 공격을 마무리하는 것에 가깝다. 이는 폴스 나인인 메시가 공격을 전개할 때도 마찬가지다.이런 골게터형 플레이 때문에 득점력이 늘었지만 반대로 득점을 못하게 될 경우 비판을 들었다. 팬들에게 폭풍 까임을 당했다는 대목이 바로 이 때문이다. 바르사에서 비야는 개인이 뭔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동료들이 만들어낸 걸 마침표 찍어주는 해결사 역할이다. 언제나 그렇듯 골 못 넣으면 공격수 욕 먹는 축구계의 현실 때문에 욕을 많이 먹는 것. 거기다 비야는 당시 펩의 전술 성향상 윙 포워드들의 전술적인 움직임을 많이 제한했기 때문에 팬들에게 눈도장 찍을 만한 현란한 플레이를 보여주기 힘든 것이 컸다.
더하여 핵심인 메시가 골 어시 다 해먹는 미친놈이던 시절 아무래도 주 공격은 메시가 했기 때문에 더더욱 보여주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이니에스타로 시작되는 왼쪽 공격 루트는 오른쪽 공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의 공격 기회는 메시에게 돌아가기 때문. 다니 알베스 - 사비 에르난데스 - 페드로 로드리게스와 함께 뛰는 메시와 달리 비야는 왼쪽 공격 전개를 이니에스타와 둘이서 해야 한다는 차이도 있다. 훗날의 네이마르처럼 크랙으로서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 지언정 팀의 전술에 맞게 최선을 다해준 선수.
[1] 이전에는 파브레가스나 산체스가 전문 공격수가 아니라는 잘못된 서술이 있었으나, 파브레가스는 본업이 미드필더이므로 맞는 이야기지만 산체스는 전문 공격수라고 보아야 한다. 그 당시엔 중앙 공격수 역할을 주로 맡는 선수가 아니었어서 그렇지.[2] 산체스의 경우에는 양발잡이인 비야나 페드로에 비해서 왼발을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는 제약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밀집수비를 수시로 뚫어내어야 하는 바르셀로나의 제약된 상황에서 효과적인 공격을 하기에는 아쉬운 측면이 있었다. MVP 라인이 가장 잘 가동되던 10-11 시즌에 비야와 페드로는 기회가 생기면 오른발 왼발 가리지 않고 득점을 해낼 수 있었지만, 산체스는 왼발을 사용하지 못하기에 오른쪽 윙어로 나서면 슈팅 각도가 매우 제약된다. 반면에 왼쪽 윙어 자리에서 잘했나 하면 또 그건 아니었고 이러한 약점은 라리가에 비해서 신체적인 압박은 강하더라도 조직적인 압박은 느슨하여 공간이 어느 정도 나오는 EPL에서 산체스가 리그를 씹어먹는 활약을 하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3]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고 10-11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등등 엄청 많다. 그 중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비야가 팀 득점 8골 중 5골이나 책임져 스페인의 비야에 대한 의존도가 엄청났다.[4] 라 리가 27경기 출장이지만 16경기 선발, 11경기 교체였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0경기 중 5경기 선발, 5경기 교체 출장.[5] 사실 생각해 보면 가장 유력했어야 할 팀이 AT 마드리드였다. 33살의 비야로서는 피지컬을 중시하는 EPL 축구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AT 마드리드는 그 전 시즌 3위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거기다가 라다멜 팔카오도 떠난 아틀레티코는 공격수 보강이 시급했던 데다, 공격수뿐만이 아니라 양쪽 윙도 소화할 수 있는 비야는 나이와 주급 같은 문제를 제외하면 가장 이상적인 대상이었을 것이다(물론 비야의 폼 하락이 걸리긴 했을 테다.). 또한 선수 본인도 영국으로 가기보다는 스페인에 남는 것을 선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