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틀:국기| ]][[틀:국기| ]]대일본제국의 중앙성청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1f2023><tablebgcolor=#fff,#1f2023> | 대동아성 [ruby(大東亜省, ruby=だいとうあしょう)] Ministry of Greater East Asia |
<colbgcolor=#000><colcolor=#fff> 설립 | <colbgcolor=#fff,#1f2023>1942년 11월 1일 |
폐지 | 1945년 8월 26일 |
전신 | 척무성, 흥아원, 대만사무국, 외무성 동아국, 남양국 |
후신 | 외무성 |
소재지 | 도쿄도 치요다구 카스미가세키 1정목 1-1[1] (東京都千代田区霞が関一丁目1番一号) |
내부부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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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제국의 위임 통치령 및 점령 지역의 통치를 소관한 관청.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존재했다.2. 연혁
설치 구상은 1942년 초부터 부상했으며, 기존의 동아공영권에 남방의 여러 지역을 더한 이른바 대동아공영권 내의 행정기구를 일원화할 목적으로 입안되었다. 이는 행정 간소화 실시안이 각의에서 결정됨에 따라 급물살을 타며 9월에 이 같은 내용이 정리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내각과 각 부처 등의 관료 감축과 그에 따른 조정, 개편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행정 개편 중 9월 15일, 대동아성 설치안과 외무성 행정 간소화 실시안 등이 일괄 결정되었다. 이 설치안은 일본 상공회의소 등으로부터 광역 경제권의 담당 부처 설치가 요청되어 기획원을 중심으로 이미 검토되고 있던 방안 중 하나였다.그러나 이 설치안에 대해 외무성은 외교 일원화의 관점에서 맹렬히 반발하며 급기야 1942년 9월 1일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가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잡음에도 같은 날 도조 내각에 의한 대동아성 설치 요강이 각의를 거쳐 같은 해 11월 1일에 척무성, 흥아원, 대만사무국, 외무성 동아국, 남양국을 폐지하고 이를 일원화하여 설립되었다. 대동아성에는 총무국, 만주사무국, 지나사무국 및 남방사무국 4국이 설치되었다. 초대 대동아대신인 아오키 가즈오를 제외한 후임 대신들은 모두 외무대신을 겸했다.
패전 후인 1945년 8월 26일 폐지되었으며 이에 따라 외무성 내에 관리국이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