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云生
1. 개요
중국의 제독. 6대 해군사령원을 지냈다.항목을 만든 사람이 병음을 잘 몰라 영어처럼 읽었는데 표기법에 따르면 스윈성이다.
2. 생애
1940년 랴오닝에서 태어났다. 1958년에 공군제1항공예비학교에 들어갔고 1962년 7월에 공군제7항공학교를 거쳐 1962년 8월에 해군 항공대에 부임했다. 당시 중국의 역량이 별도의 해군항공학교[1]를 돌릴 여력이 없어서 공군에서 교육했던 것으로 추정되니 정확한 정보를 아는 위키러의 수정바람.[2] 1964년에는 중대장[3], 1966년 부대대장, 1969년에는 부단장, 1976년에는 북해함대 항공병부사령원으로 쾌속 승진했다. 당시 중국군은 계급이 없어 직책으로 인사가 결정되었다. 1979년에는 해군지휘학원과 국방대학에서 고급 지휘관 교육을 받았고 1981년에 해군항공사단 사단장을 지냈다. 1983년에는 북해함대 항공병사령원으로 영전했다.1990년에는 해군 항공사령부의 부사령원이 되었고 1992년에는 해군 부사령원이 되었다. 1996년에는 해군 중장 계급으로 장롄중에 이어 해군사령원에 올랐고 2000년에 해군상장으로 진급했다. 2003년 4월 16일에 중국의 해군 밍급 잠수함인 장성61호(长城61号)가 발해만 근처에서 디젤엔진 고장으로 침몰하여 70명이 사망한 것으로 인해 사임하였다.[4] 이 사고로 인한 반성인지 후임자는 잠수함 출신인 장딩파가 보임되었다.
[1] 21세기 들어서는 해군 항공대 장교만을 키우는 사관학교를 따로 두고 있다.[2] 중국 공군은 전통적으로 중국 해군의 항공력이 커질 수록 신경질적으로 반응해왔다. 항공모함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많이 표출했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제독들의 반란 참고 바람.[3] 한국으로 치면 편대장[4] 70명 중에 13명은 본래 승조원이 아니라 해군사관학교에서 온 후보생과 학생들이었다. 잠수함장이었던 청후밍(程福明) 대교도 사망하였다. 중국은 함장에 타군의 commodore에 상당하는 대교를 앉히는 경우도 있다. 해외로 치면 준장을 함장에 앉히는 격. 랴오닝급도 함장과 정치위원이 준장에 상당하는 해군대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