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84년-81년~ 기원전 43년)
1. 개요
고대 로마의 인물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휘하에서 갈리아 전쟁을 치렀던 군단장이자, 카이사르가 총애하던 인물이며 또한 배은망덕의 상징. 자기 신념에 따라 카이사르를 암살했기 때문에 그래도 재평가를 받는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도 그는 그냥 배신자 취급을 받고 있을 뿐이다.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데키우스 브루투스로 잘못 표기한 후 이쪽이 더 유명해지는 사태가 발생, 로마인 이야기에도 같은 오류가 있다.
2. 생애
카이사르 휘하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 총애를 받았다. 갈리아 전쟁기에서 카이사르가 직접 애정을 표현한 2명의 군단장중 하나.[1] 그러나 오히려 그는 카이사르 암살의 중요인물 중 한명으로 참가했다. 이후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제 2 상속인으로 지명되었단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공화정 수호의 명분에 지지기반이 탄탄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와는 달리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부장으로 출세한 인물임에도 카이사르를 배반했기에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순간부터 몰락이 시작된다. 갈리아 키살피나에서 안토니우스에게 공격당하다 옥타비아누스의 도움으로 잠깐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결국 옥타비아누스에게 냉대 당하고 부하들에게도 버림받아 기반을 잃고 마르쿠스 브루투스에게 합류하러 가던 중 안토니우스의 사주를 받은 갈리아 족장에게 붙들려 처형된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암살자들 중 가장 먼저 처형당했다고 전해진다.
본시 카이사르의 신임을 받는 무장에 제 2 상속자로 정해진 만큼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 안했다면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서 카이사르의 후계자들과 경쟁할 수 있었을텐데 순간의 판단착오로 인생을 제대로 망쳤다고 볼 수 있다.
[1] 또 한 사람은 삼두정치의 일각을 이룬 크라수스의 아들 '푸블리우스 크라수스'로, "솔개가 매를 낳았다"는 소릴 들을 정도로 아버지보다 여러모로 낫다고 평가받았으나 파르티아 원정에서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