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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2 00:16:36

도요다 요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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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에겐 가나자와 No. 19
도요다 요헤이
[ruby(豊田 陽平, ruby=とよだ ようへい)] | Yohei Toyoda
<colbgcolor=#d70c1f> K리그 등록명 토요다
출생 1985년 4월 11일 ([age(1985-04-11)]세)
일본 파일:koma1.png 이시카와현 코마츠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 체중 79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소속 유스 FC 코마츠
세이료고등학교(2001~2003)
선수 나고야 그램퍼스 (2004~2008)
몬테디오 야마가타 (2007~2008 / 임대)
교토 상가 (2009~2011)
사간 도스 (2010~2011 / 임대)
사간 도스 (2012~2021)
울산 현대 (2018 / 임대)
도치기 SC (2021)
츠에겐 가나자와 (2022~)
국가대표 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8경기 1골 (일본 / 2013~2015)

1. 개요2. 클럽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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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축구선수. 과거 울산 현대에서 임대로 선수생활을 한 경력이 있다.

2. 클럽

2.1. K리그 이전

지역팀 FC 코마츠에서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고, 2004년 나고야 그램퍼스에 프로 입단을 하였다. 데뷔 2년차인 2005년 7월 13일 가시마 앤틀러스를 상대로 리그 데뷔골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리그 20경기에서 4골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2006년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이자 2007년 몬테디오 야마가타로 임대 이적하였다.

2007년 7월 1일 리저브 리그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의 경기에서 소장을 다치는 큰 부상을 입어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였다.

2.2. 사간 도스 1기

야마가타에서의 임대가 종료된 후인 2009년 교토 상가 FC로 이적하였으나 리그 21경기 1골의 부진을 겪으며 이듬해 사간 도스로 임대 이적하였다.

입단한지 얼마 안됐을 때는 게으른 천성과 체력 훈련에 소홀하며 윤정환 감독의 많은 질타를 받았었지만 “동료가 쓰러지면 형제가 쓰러진거나 다름없다"는 윤정환의 한 마디 생각의 전환점이 되었고, 이후 사간도스 소속으로 J2리그에서 2시즌 간 36골을 몰아치는 활약을 펼쳐 사간도스를 1부리그 승격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후 감바 오사카, 시미즈 에스펄스 등에서 이적 제안을 받았으나 도스로의 완전 이적을 결정하였다. 2012 시즌 J1리그으로 승격한 사간 도스에서 리그 33경기에서 19골을 기록하면서 리그 득점 2위에 랭크되는 좋은 활약을 펼쳐 시즌 종료 후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상하이 선화로부터 거액의 제안을 받기도 하였다.

2013 시즌엔 리그에서 20골, 2014 시즌엔 리그에서 15골을 기록하며 J리그 역사상 4번째로 3시즌 연속 J1에서 15골 이상을 기록한 일본인 선수가 되었다. 이후에도 2016년까지 두자리 골을 기록하며 사간도스의 큰 기둥으로써의 명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2017시즌 팀의 주장으로 취임한 시즌에는 이바르보와 조동건, 타가와 쿄스케에게 밀리며 결국 사간도스로 이적한 이후 처음으로 한시즌 두 자리골이하의 성적을 냈다.

2.2.1. 울산 현대 (임대)

파일:mug_obj_152116555367753582.jpg

2018년 1월 4일에 울산 현대로 1년 임대 이적하면서 처음 해외 무대에 진출하였으며, 등번호는 55번을 부여받았다.[1]선수 소개 멘트는 저돌적인 움직임, 울산의 신형전차

5월 포항 스틸러스와의 라이벌 매치인 동해안 더비에서 역전 결승골로 첫 필드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K리그 적응에 실패하면서 이렇다 할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고,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열심히 뛰긴 했지만 필요할때 결정을 지어주지 못했고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상하이 상강과의 경기에서 빈 골대에 후지산 대폭발슛을 쏴버리는 등 부진한 활약으로 인해 결국 주니오에게 주전 자리를 넘겨주었고, 반년간 9경기 2골에 그쳤다.

이후 인터뷰에서 한국에서의 생활이 맞지 않았다고 밝혔는데[2] 적응하려고 열심히 노력해서 한국어, 더 나아가 사투리까지 공부하는 등 분투했지만 잘 맞지 않았다고 한다. 녹아드려고 열심히 노력하니까 한 번은 코치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인 적도 있다고 하였는데 물론 본인도 그것이 장난인 것은 알았고 다른 코치가 달래주기도 했지만 어쨌건 꽤나 충격으로 다가오고 내가 열심히 하니까 오히려 얕보인다고 느껴지는 등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외에도 빠른 윙을 달려서 크로스를 올리는 것에 집중하는 전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던가[3], 이런 식이라면 발전이 없다던가[4], 젊은 한국 선수들의 식생활은 엉망이고, 연습도 뭐가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고 꽤 느슨한 느낌이었으며, 라커룸도 더럽게 쓰는 것에 일본인으로서는 아연했다고 한다.[5] 이런 여러 가지 부분에 부적응했기 때문에 빨리 떠나고 싶었는데 처음 경험했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도 탈락해 버려서 결정적으로 마음이 떠났다고 한다. J리그 하위팀 선수가 ACL 우승팀을 걱정하는 희한한 상황

한국 선수들은 그런 대신 대체로 실전에 강하다고도 하였는데 그 얘기를 빌드업 삼아서, 본인도 너무 축구적인 것에 얽매여 있다가 오히려 잘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런 흐름은 도요다 본인이 반시즌만에 아무 것도 못하고 돌아왔다는 얘기가 있으며 자기자신조차도 결과를 못 내고 금방 돌아왔다는 것이 신경쓰인다고 말하면서 한 얘기긴 하다. 또한 일본인의 배려나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하는 등, 결론적으로 그냥 일본 대단해로 끝난다.# 이 인터뷰 때문에 울산 팬덤 내 이미지도 그리 좋지 않은 편. 같은 일본 출신임에도 4년 동안 울산에서 실력과 인성, 팀워크 등 모든 면에서 팬들의 찬사를 받으면서 준 레전드로 통하는 마스다 치카시와 비교되며 더 까였다.

2.3. 사간 도스 2기

원 소속팀인 사간 도스의 요청으로 K리그 진출 반년만에 결국 J리그로 복귀하였다. 하지만 사간 도스에서도 같은 포지션의 페르난도 토레스카나자키 무가 버티고 있었기에 단 5경기를 출장하여 무득점이라는 치욕적인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2019시즌 5라운드 감바 오사카전에서 페널티킥 찬스를 얻어내 본인이 직접 차넣어 2년만에 J리그 복귀골을 기록하였다. 이후에 계속해서 주전 경쟁에서 밀리게 되었고 결국 2021년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다른 구단을 찾기에 일렀다.

2.4. 도치기 SC

그렇게 2021년 7월 5일 J2리그도치기 SC로 완전이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반시즌 동안 16경기에 나와 3골을 넣는등 분투하여 팀의 잔류의 힘을 보탰다.

2.5. 츠에겐 가나자와

2022년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같은 J2리그소속 츠에겐 가나자와로 이적을 하였다.

3. 국가대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축구 부문에 일본 U-23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하였다. 대회에서 조별 라운드 3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팀의 유일한 득점을 기록하였다.

2013년 7월 25일 대한민국에서 열린 2013 EAFF 동아시안컵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2014년 11월 14일 열린 온두라스와의 경기에선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에 차출되어 팔레스타인UAE에서의 출장을 끝으로 단 한번도 국가대표에 부름을 받지 못하였다.

[1] 사간 도스에서 달았던 11번은 황일수가 달고 있었다. 55는 일본어로 고고라고 읽기 때문에 빨리 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2] 물이 맞지 않았다는 것은 문화에 적응 못했다는 일종의 관용구이며, 물갈이 같은 얘기가 아니다.[3] 당시 오르샤, 김인성, 황일수 등 애초부터 측면 자원들을 스프린터들로 중무장한 울산에 입단한 이상 본인도 이를 따라갈 스피드를 갖춰서 연계플레이를 하든지, 아니면 주니오 못지않게 골 결정력이라도 좋았어야 했으나 이도 저도 아니었다. 이런 주장은 본인 스스로가 울산 공격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이 못 되는 것을 에둘러 전술 탓으로 돌리는 핑계에 불과하다.[4] 아이러니하게도 도요다가 그렇게 지적한 김도훈 감독의 축구는 4번의 K리그·FA컵 준우승을 거쳐 2020년 ACL 무패 우승을 이뤄낸다.[5] 공교롭게도 도요다와 비슷한 시기 울산을 떠나 크로아티아에서 승승장구 중인 오르샤는 "리그의 높은 수준과 좋은 시설에 감탄했다"며 한국 시절을 긍정적으로 회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