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10:30:55

상하이 선화

파일:중국 슈퍼 리그 로고.svg파일:중국 슈퍼 리그 로고(화이트).svg
2024 시즌 참가 구단
{{{#!wiki style="color: #ffffff;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2px -12px"
{{{#555555,#aaaaaa
파일:난퉁 즈윈 로고.svg
파일:메이저우 하카 로고.svg
파일:베이징 궈안 로고.svg
파일:산둥 타이산 엠블럼.svg
파일:상하이 선화 엠블럼.svg
파일:상하이 하이강 로고.svg
파일:선전 신펑청 엠블럼.svg
파일:우한 싼전 엠블럼.svg
파일:저장 FC 로고.svg
파일:창저우 슝스 로고.svg
파일:창춘 야타이 로고.svg
파일:청두 룽청 로고.svg
파일:칭다오 칭춘다오 로고.svg
파일:칭다오 하이뉴 로고.svg
파일:톈진 진먼후 로고.svg
파일:허난 FC 로고.svg
중국 갑급 리그 ▶
<colbgcolor=#ffffff,#1f202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K리그1파일:일본 국기.svg J1리그파일:중국 국기.svg 슈퍼 리그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프리미어 리그파일:북한 국기.svg 1부류축구련맹전
파일:대만 국기.svg 프리미어 리그파일:몽골 국기.svg 프리미어 리그
파일:마카오 특별행정구기.svg 리가 드 일리트파일:괌 기.svg 괌 사커파일:북마리아나 제도 기.svg 마리아나 사커
전 세계 리그 및 대표팀
}}}}}}}}}}}} ||
파일:상하이 선화 엠블럼.svg
상하이 선화
Shanghai Shenhua
<colbgcolor=#E60111><colcolor=#fff> 정식 명칭 上海申花足球俱乐部
별칭 申花 (상하이의 꽃), 蓝魔 (푸른 악마)
창단 1951년 11월 1일([age(1951-11-01)]주년)
구단 형태 기업 구단
소속 리그 중국 슈퍼 리그
연고지 상하이시
홈구장 훙커우 스타디움 (33,060명)
상하이 스타디움 (2023~ )
라이벌 베이징 궈안, 상하이 하이강
모기업 쥬스그룹(久事集团)
구단주 구지칭(谷际庆)
단장 쑨샤오티안(孙晓天)
감독 레오니트 슬루츠키
주장 우시
역대 한국인 선수 김기희 (2016~2017)
김신욱 (2019~2021)
공식 웹사이트 파일:상하이 선화 엠블럼.svg
우승 기록
중국 슈퍼 리그 (1부)
(3회)
1961, 1962, 1995, 2003[1]
FA컵
(4회)
1998, 2017, 2019, 2023
중국 슈퍼컵
(3회)
1995, 1998, 2001
1. 개요2. 역사
2.1. 초창기 1960~1970년대2.2. 암흑기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2.3. 1980년~1990년대2.4. 지아 A리그2.5. 중국 슈퍼 리그
3. 라이벌4. AFC 챔피언스 리그5. 기타6. 주요 선수

[clearfix]

1. 개요

상하이 선화(上海申花)는 중국 슈퍼 리그에 소속한 프로축구클럽이다. 한국에는 2010년대 초반 첼시의 주전인 드록바와 아넬카를 돈을 뿌려 데려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라이벌팀 상하이 상강과 함께 황사머니 구단의 하나이긴 한데 가성비가 영 신통찮고, 먹튀들에게 자주 호구가 되는 구단이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베이징 궈안, 산둥 루넝 등과 같이 원년부터 참가하고 있는 전통의 강호 포지션의 구단이지만 근래 성적은 신통치 않으며 같은 연고지인 상하이 상강의 무서운 성장에 밀리면서 현재는 위상이 많이 낮아진 상황.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19 시즌 중반 다롄 이팡에서 경질된 최강희 감독을 선임해 2021년까지 지휘봉을 맡겼었다. 2019 중국 FA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어느정도 과거의 영광을 찾아가는 중이다.

2. 역사

2.1. 초창기 1960~1970년대

1951년 1부리그에 참가해 준우승을 거뒀으며 1953년, 1954년 연속 3위를 거두었다. 1955년 6위로 잠깐 떨어지기도 했으나 1956년 다시 준우승을 차지하였고 팀창단 최초로 FA컵 우승을 했다. 1957년 8위를 차지했고 1958년 7위를 기록하면서 잠시 중위권에 머물렀지만 1960년 3위를 기록하고 1961년 팀창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다. 1962년도에도 우승을 하면서 2연속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1963년 11위로 곤두박질 치다가 1964년 준우승을 하면서 다시 부활하나 싶었지만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에 모든 문화, 예술활동이 금지되고 선수, 감독은 숙청당하는 비운에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9년이라는 긴시간이 지난 1973년 리그참여가 허용되고 당해 상하이는 다시 리그에 참여해 준우승을 거두며 좋은 출발을 알린다. 1976년에도 조별리그 2위를 차지하면서 그저 그런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2.2. 암흑기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

그러나 1977년 부터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1부리그에서 12위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더나 1978년 10위를 기록하면서 하위권에 맴돌다가 1979년 9위로 잠시 중위권에 있나 싶더니 1980년 13위로 2부리그 강등을 당하게 된다. 1981년 2부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여 다시 1부리그로 승격되었다.

2.3. 1980년~1990년대

파일:상하이 선화 엠블럼(1993~2001).svg
1993년~2001년 당시의 엠블럼.
1982년 1부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였고 1983년 3위를 기록하고 1984년 4위 1985년 6위를 1986년 5위를 기록하면서 중상위권 클럽으로 자리 매김 한다. 1987년 3위를 차지하였으나 1988년 6위로 잠시 떨어지더니 1989년 다시 3위를 차지한다.

1990년 4위를 기록하고 1991년 18년만에 1부리그 준우승을 기록한다. 그러나 1992년 5위를 기록하고 1993년 7위를 기록하면서 중위권을 뒤쳐지게 된다. 1993년 상하이는 상하이 지역회사 선화 그룹이 팀을 인수, 창단 선언을 하면서 지아 A리그에 참가하게 된다.

2.4. 지아 A리그

1994년 지아 A리그 원년에는 3위를 기록하면서 다시 상위권으로 도약했고 1995년 슈퍼컵 우승을 기록하고 라이벌 베이징 궈안을 승점 4점차로 따돌리고 팀창단 첫 우승을 차지한다. 1996년 다롄 스더에게 승점 7점차로 우승을 내줘 준우승을 기록하고 1997년에도 다롄 스더에게 11점차로 우승을 내줘 2연속 준우승을 차지한다. 1998년에는 다롄을 슈퍼컵에서 복수하면서 우승했으나 다롄 스더가 19승 5무 2패 승점 승점 62점을 기록하고 상하이 선화는 11승 12무 3패 승점 45점을 기록하면서 승점 17점 차로 다롄스더 에게 우승을 내주게 되고 3연속 준우승을 차지하자 선화 팬들은 다롄에게 한지 맺히기 시작했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FA컵을 우승했다는게 유일한 위안거리다. 그러다 1999년에는 5위로 떨어지게 되고 2000년에 다시 우승권으로 다롄 스더와 경쟁하게 되었으나 다롄에게 승점 6점 차이로 우승을 내주게 된다. 2001년에도 다롄에게 5점 차이로 우승을 내주게 준우승만 5번을 기록하게 되 지아A리그 출범이후 최다 준우승팀이 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슈퍼컵에서는 다롄을 상대로 3:1로 복수하면서 슈퍼컵 3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 부터 상하이와 다롄간 경기가 열리면 서포터즈간에 폭력사태는 기본이고, 군대가 주둔할 정도로 치열한 더비매치를 형성하게 된다.

2002년에는 11위로 미끄러지게 돼서 감독을 경질하고 드디어 2003년 8년만에 2번째 우승을 차지했으나 이후 승부조작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

2.5. 중국 슈퍼 리그

파일:상하이 뤼디 선화 엠블럼.svg
상하이 뤼디 선화(2015~2020)로서의 엠블럼.[2]
2002년 SAV그룹과 상해광전그룹이 인수하였고, 이 체제하에서 2004년 중국 슈퍼 리그에 원년멤버로 참가한다. 2004년 슈퍼리그 원년에는 10위를 기록하면서 하위권으로 미끄러지나 했지만 2005년 다시 우승권 경쟁에 들게 되었다. 그러나 다롄 스더 강세 때문에 승점 12점 차로 다롄에게 우승을 내줬다. 2006년 산둥 루넝 22승 3무 3패 승점 69점을 기록하면서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지만 상하이는 14승 10무 4패 승점 52점을 기록하면서 17점 승점 차이(!)로 우승을 내주게 된다. 베이징, 다롄과 더불어 산둥까지도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2007년 신흥재벌 중국계 싱가포르인인 주쥔(朱骏)이 최대 대주주로 들어오면서 소위 황사머니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주쥔은 온라인게임으로 돈을 번 재벌로서 정력적으로 축구단에 투자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 이 사람이 조금 괴짜라서 유명 외국 클럽과의 친선전에 자신이 선수로 출전하겠다는 식의 억지를 부려서 중국에서조차 웃음거리가 된적이 있다. 어쨌든 주쥔은 이런 기행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로 팀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상하이 지역의 다른 팀인 상하이 유나이티드와 선화를 합병시켜 팀 전력을 향상시켰다. 이 당시 A3 챔피언스컵(한국, 중국, 일본 리그 우승팀이 모여 치르는 왕중왕전)에서 당시 K리그 최강팀인 성남 일화를 3-0으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007년 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면서 잠시 주춤하다가 2008년 산둥 루넝, 베이징 궈안과 다시한번 우승경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2점 차이로 산둥 루넝에게 우승을 내줄수 밖에 없었고 상하이 팬들은 산둥 루넝, 다롄 스더 말만 들어도 한이 맺히고 원통할 정도를 뛰어넘어 죽이고 싶을정도로에 감정을 지니게 된다. 2009년 5위를 기록했지만 라이벌 베이징 궈안이 우승하는걸 지켜봐야 했으며 팬들은 베이징 궈안에 우승을 지켜보며 울화통을 터트린다.

2010, 2011년 모두 실망스러운 성적을 내자 주쥔은 팀 성적을 올리기 위해 2011년도에 들어 대규모 투자를 예고했고, 이것이 한국에서 알려지게 된 황사머니의 시초이다. 결국 첼시에서 당시 챔피언스 리그 주전으로 뛰던 니콜라 아넬카디디에 드록바를 빼올 정도로 대형 영입을 연속적으로 이루어냈다. 하지만 주쥔의 이런 무리한 투자는 다른 주주들의 동의를 얻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영진의 내분을 일으켰다. 주쥔 본인은 아넬카-드록바를 영입할 때 본인 재산을 썼으니, 구단 지분이 그만큼 더 올라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기타 주주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서 보드진의 균열이 났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아넬카는 이미 전성기가 지난 상태였고, 드록바는 시즌 11경기에만 출전하는 태업을 하여[3] 2012년에도 9위로 마감하는 저조한 성적을 낸다. 이런 고액용병의 효과에 의문을 품은 주주들의 문제제기로 이 두 특급 용병은 2.5년의 계약을 맺었지만 1년만에 중도 해지의 형식으로 팀을 떠났다.

이렇게 돈을 펑펑 쓰고도 처참한 성적을 얻은 2012년에 그동안 상하이 선화를 괴롭혔던 다롄 스더가 공중 분해된게 유일한 위안거리였지만, 2012년부터 마르첼로 리피를 불러온 광저우 헝다가 신흥강호로 자리잡으면서 상하이 선화는 우승권에서 점점 멀어진다. 2013년에는 8위를 기록하면서 시즌을 마감한다.

결국 축구 경영에 흥미를 잃은 주쥔은 2014년 1월 자신의 지분을 모두 녹지그룹에 매각하고 선화에서 손을 뗐다. 녹지그룹의 인수는 팬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선화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것으로 무마하였다. 녹지그룹은 광저우 헝다의 모그룹인 헝다그룹과 마찬가지로 상하이 지역에서 부동산 개발로 돈을 모은 재벌이었는데, 현지에서 이미지가 별로였는지, 구단 인수시에 팬들이 상당히 반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에는 뎀바 바를 영입해 좋은 활약을 했으나 2016년 리그 경기 도중, 다리뼈가 상대 선수 태클로 제대로 부러져 치료및 재활에 거의 1년이 걸리는 사고를 당하고 만다. 팀으로서도 에이스로 활약하던 거액 영입선수가 이렇게 되었으니 착잡할 듯.

그러다가 2017년부터 카를로스 테베스를 새롭게 영입했다는 보도가 BBC 등 주요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메시, 호날두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 주급 제의를 받으면서 화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테베스는 원래 폼이 죽었는지 태업인지 거의 비실대고 있었고, 상하이 선화는 성적이 급락하여 2017년 9월 약팀 허난 젠예에 2-1로 패하자 거스 포옛 감독은 사임했다.

2017년 잔여 시즌은 우진구이 대행이 지휘하게 되었고, 리그에서는 11위로 마쳐 하위권을 멤돌았지만, 중국 FA컵에서는 라이벌 상하이 상강을 이기고(1-0, 2-3, 어웨이골 룰 적용) 4번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2018년 시즌 우진구이 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고, 리그 7위, 10승 8무 12패의 무난한 잔류로 평탄한 시즌을 보냈다. 중국 FA컵 우승으로 참가한 AFC 챔피언스리그에선 5무 1패라는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광탈했다. 수원 삼성에게 홈에서 2-0으로 진게 가장 뼈아팠다.

2019년 시즌은 명장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를 선임하고 알레상드레 은둠부, 오디온 이갈로 등을 영입하며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했으나 15라운드까지 3승 3무 9패의 참혹한 성적으로 14위에 머무르며 결국 자진사임 형식으로 플로레스 감독을 경질했다. 이후 석연찮게 다롄 이팡에서 물러난 최강희 감독을 선임하고[4] 최강희 감독의 애제자인 김신욱스테판 엘샤라위를 보강해 8승 6무 16패로 강등권 탈출에 성공했고, 13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또한 FA컵 결승전에서 산둥 루넝에 2차전 합 3대1로 승리하면서 우승을 거두는 의외의 소득까지 올렸다. 특히 김신욱이 시즌 중간에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 12경기 9골의 놀라운 활약을 보이며 팀을 하드캐리했다.

2020 시즌들어 최강희 체제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전북 현대에 부임했던 시절처럼 국대급 베테랑 선수들을 중심으로 리빌딩을 시작하기 위해 전북 현대에서 인연이 있던 펑샤오팅을 영입했고, 한때 중국 No.1 골키퍼였던 쩡청을 임대영입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리그 운영이 불가능해 중립지에서 조별리그로 1차 리그를 벌이는 방식으로 시즌이 진행되었고, 상하이 선화는 A조에 속해 조 4위로 상위 토너먼트에 가까스로 진출했다.이후 B조 1위 상하이 상강과의 상하이 더비에서 아쉽게 승부차기로 지면서 5-8위전에 진출, 충칭 리판에게 지고 7-8위전에서 허베이 화샤를 이겨 7위로 시즌을 마쳤다. 특히 주 공격수 김신욱, 스테판 엘샤라위 모두 부상과 부진으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던 시즌임을 감안하면 나름 대단한 성과다. 12월에 진행된 AFC 챔피언스리그 32강에선 초반 2승 1패로 16강 진출의 희망을 높였으나 마지막 3경기에서 1무 2패로 부진하며 조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21 시즌 준비를 위해 외국인 선수를 대부분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몸값 대비 매우 부진했던 스테판 엘샤라위AS 로마에 자유 이적으로 놓아주었고, 에콰도르 공격수 피델 마르티네즈도 영입 3개월만에 리가 MX 팀인 티후아나로 이적했다. 대신 베테랑 미드필더 스테판 음비아와 주장 지오반니 모레노, 한국인 공격수 김신욱을 잔류시켰고 나간 두 선수의 자리는 크로아티아 수비수 마테이 요니치와 카메룬 대표 출신 공격수 크리스티안 바소고그로 메꿨다. 또한 폴란드 대표팀 출신 미드필더 아드리안 미예르제프스키를 영입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경우 스테판 음비아가 팀을 떠날 것이 유력하다.

3. 라이벌


2017년 FA컵 4강에 상하이 팀만 3팀(선화, 상강, 선신)이 올랐고, 4강에서 선화는 선신을 만났고 이겼다. 결승에선 상강을 만나 승리하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4. AFC 챔피언스 리그

5. 기타

6. 주요 선수


[1] 승부조작으로 2013년에 박탈[2] 로고 하단부에 녹지그룹의 로고가 들어가 있다.[3] 출전할 때는 나름 활약을 하여 8골이나 넣었지만, 리그와 FA컵 합해 40여 경기 중에서 1/4만 뛴 셈이다. 훗날 희대의 먹튀를 자랑하는 테베스가 자기관리 부실로 2017년 시즌에 16경기에만 출전해 욕을 먹었는데 드록바도 비슷한 수준의 태업을 한 셈.[4] 박건하 코치, 최성용 코치, 최은성 골키퍼코치, 김현민 코치, 지우반 올리베이라 의무트레이너가 동행한다.[5] 이미 아챔 조별예선 1라운드 상하이 상강의 멜버른 원정부터 상하이 선화 서포터들이 멜버른까지 비행기타고 쫒아가서 홈팀 멜버른 빅토리 서포터에 합류해 걸개를 걸어놓는걸로 어그로를 끌고있었다(...). 모 중국 언론에서는 이들에게 법적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나불대다 다른 축구팬들에게도 까였다. 후에 어느 상하이 상강 서포터의 증언으로는 상하이 선화 서포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저짓거리를 하고 다녔단다(...). 거참 대단한 집념일세[6] 특히 마지막 울산 현대와의 대결에서는 울산이 ACL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기에 대놓고 로테이션을 돌리는 등 누가 봐도 봐준 티가 팍팍 났으나 박정인이상헌에게 사이좋게 한 골씩 얻어맞고 비욘존슨이 멀티골로 쐐기를 박으며 4:1로 탈탈 털렸다.[7] 중국 지아 A리그 출범 당시 다른 팀들은 국영기업이나 공산당 강요에 참여한 기업의 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상하이 선화는 모기업 선화 그룹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서포터들은 최초의 민간기업 참여라는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