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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15 23:09:48

김정남(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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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金正男 | Kim Jong Nam
파일:김정남1.jpg
<colbgcolor=#878787> 가명 김철[1]
출생 1971년 5월 10일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 봉화병원
사망 2017년 2월 13일 (향년 45세)
말레이시아 슬랑오르 세팡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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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김씨[2]
가족 할아버지 김일성
할머니 김정숙
아버지 김정일
어머니 성혜림
배우자 신정희
자녀 김한솔, 김금솔, 김솔희, 김이순[3]
이부누나 리옥돌[4]
이복동생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
제수 리설주
조카 김주애
숙부 김만일, 김평일, 김영일
고모 김경희, 김경숙, 김경진, 김백연
고모부 장성택
이모 성혜랑
사촌 김인강, 김은송, 장금송, 이한영, 이남옥

1. 개요2. 생애
2.1. 출생2.2. 유년기2.3. 소년기, 청소년기, 그 이후2.4. 2001년 일본 추방 사태2.5. 후계자 탈락2.6. 후계 탈락 이후2.7. 대한민국 망명 시도?2.8. 박근혜 편지 사태2.9. 사망
3. 가족관계4. 기타5. 대중매체에서6. 외부 링크

1. 개요

북한의 2대 최고지도자였던 김정일의 장남이자 초대 지도자인 김일성의 장손. 현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의 이복형이다.

1990년대~2000년대 초까지 북한의 차기 후계자로 유력시되던 인물이었으나, 여러 사건으로 후계구도에서 내쳐져 이 후에는 해외를 떠돌며 여생을 보냈다. 그러던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마카오행 비행기편 탑승을 위해 체크인을 하던 중 김정은의 지시 아래 조선로동당 해외정보국에 속은 동남아시아 국가 국적자들에게 암살당했다. 김정남 피살 사건 참조.

2. 생애

2.1. 출생

파일:1209044267975825979359_o.jpg
1975년 1월 김정남과 외할머니 김원주의 모습

1971년,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의 장남으로 봉화진료소 소아과병동에 몰래 마련된 전용 병실에서 태어났다. 김정남이 태어나던 날, 김정일은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으며 김정남을 직접 업고 보채면서 애지중지했다. 당시 선전선동부 부부장이었던 김정일은 당내에서 김일성의 아들이란 입지에 힘입어서 잘나가고 있었는데,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선포되진 않은 상태였다. 자신의 불안한 입지를 고려한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자신이 유부녀와 바람을 피워서 아들을 낳았단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김정남을 자신의 관저에 숨겨서 키웠다. 그리고 김정남의 외가 식구들인 이모 성혜랑과 외할머니 김원주, 사촌 리일남(이한영), 리남옥 자매까지 죄다 데리고 살면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 했다.[5] 관리소 부원들이 정보를 유출하면 바로 처형하거나 수용소에 보냈으며, 성혜림의 주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게 됐다. 탈북자인 김금혁의 말에 의하면 방계의 사람이 동기에 있어도 학교에서 대화하는 게 한계였고 그 방계의 사람은 학교가 마치면 고급 승용차가 와서 어디론가 말도 없이 가 버렸다고 하는 수준이었다.
파일:external/pds25.egloos.com/a0098697_55070fb621edd.jpg
1981년의 김정일 일가. 김정일 오른쪽에 앉아 있는 아이가 바로 김정남이다.[6]

문제는 나이 많은 연상녀, 그것도 유명 배우이며 유부녀와 결혼해서 득남까지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김일성에게 알려야 하는지 김정일은 곤혹스러워했고 이 과정에서 김경희가 성혜림에게 애만 두고 떠나라고 요구한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 이후 성혜림의 정신병 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했고 김일성의 인정을 받겠다고 김정남을 안고 김일성에게 달려가려다가 김정일이 쏴죽이겠다고 권총으로 위협해서 못나가게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한편 김정일이 아들까지 낳은 것을 몰랐던 김일성은 김정일을 독촉하여 1974년에 김영숙과 결혼하게 하였고, 김정일은 김영숙과의 사이에서 김설송, 김춘송 자매를 낳았으나 김영숙은 법적으로만 김정일의 정부인이고 성혜림 일가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처지였다. 이날의 모습에 대해서는 성혜랑이 자세하게 증언하고 있는데, 김경희가 김정일을 결혼식에 끌고갔다고 한다. 성혜림은 김정일이 본처가 생겨야 김정남을 뺏기지 않을 것이라 여겨서 결혼에 동의했으나 이후 정신병이 더욱 심해지게 되고 모스크바를 들락이며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김일성이 사고를 쳐서 김현을 낳고 김성애에게 이를 숨기기 위해 김정일에게 김현의 양육을 떠맡겨버리자 아버지가 애 낳았다고 자신을 혼낼 처지가 못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김정일은 1975년 즈음에 김일성에게 사실 이미 아이가 있다고 털어놓았다.[7] 김일성은 깜짝 놀랐으나 맏손자인 김정남을 크게 이뻐했다. 한번은 외국 국가원수와 대화하다가도 김정남이 자신에게 선물로 주기로 한 권총이 오지 않는다고 땡깡을 부리자 국가원수를 돌려보내고 김정남을 달래러 갈 정도였다고 한다.[8]

김정일의 아들 사랑도 대단했다. 밥을 먹을 때는 언제나 식탁 위에 올려놓고 먹일 정도로 이뻐했고 밥 먹다 말고 우유통에 오줌까지 받아줄 정도였다. 김정일은 종종 회의실에 김정남을 데리고 가 "정남아, 네가 커서 이 다음에 큰 소리 칠 자리다. 빠빠 자리에 앉아서 마이크에다 빠빠[9] 이름을 불러봐라"라고 했다고. 김정남은 이에 맞춰 "김정일 동무, 일어서시오"라고 하니 "예, 김정일 일어섰습니다"라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편 성혜림은 김정남의 동생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2차례 더 임신했으나 모두 유산하고 포기하게 된다.

2.2. 유년기

김정일의 아들 사랑은 선물공세로 이어졌다. 5월 10일 김정남 생일에 맞추어 매년 4월 중순쯤에 강상춘의 주도로 선물 구매단이 출발하는데 일본, 홍콩, 싱가포르,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를 돌며 총 100만 달러어치를 매년 사왔다고 한다. 생일 선물에는 옷, 신발, 놀이기구, 게임기,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 금 도금 장난감 권총 등 성인이 보기에도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의 선물을 매년 받았다고 한다. 한편 이 장난감을 보관할 공간도 당연히 필요한데 이 방 규모가 3백 평 쯤 되었다고 한다. 이 방은 매년 생일을 기준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고 한다. 이한영은 선물의 규모가 매해 100만 달러에 달한다고 증언했다가 남한에서 100만 달러가 얼마인지는 아냐고 면박을 받았는데, 강상춘이 과장했는진 몰라도 자신이 그렇게 들은 걸 어쩌겠냐고 반응했다. 김정일은 어린 김정남에게 조선인민군 대원수 제복, 소련군 원수 제복 등을 종류별로 맞춰주었으며 생일마다 계급을 높여주면서 이뻐했는데, 만경대혁명학원 교복을 입고 자신을 만나러 온 이한영을 본 김정남은 처음 보는 교복에 신기해하면서 자신의 군복들을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랏일에 바빴던 김정일은 육아에 관여하지 않고 관리와 교육은 관저 내 부관들에게 맡겨서 온갖 시중을 들게 했는데 어려서부터 안되는 일이 없었던 김정남은 상당히 권위주의적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이 되었다. 한마디로 개차반. 아버지 밑에서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다 하면서 살았기에 성격이 망가지지 않을 리 없다. 이러한 성격의 일환으로 그는 상대방의 나이와 상관 없이 반말을 했다고 한다. 11살 많은 사촌형 이한영에게도 처음 보자마자 '일남이 왔네'라고 했다고. 관저에 살고 있는 부관들에게도 반말을 했고, 부관들은 김정남에게 깍듯이 '대장 동지'라 호칭하며 존대말을 썼으며 리일남도 공적인 자리에선 김정남을 대장동지로 불러야 했다. 이렇기 때문에 북한으로 납치되었던 최은희가 김정일 생일잔치에 초대받아서 김정남을 소개받고는 김정남에게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자, 자기 이름 묻는 사람을 처음 본 김정남이 놀라서 '남의 이름을 다 물어?"라고 중얼거리면서 김정일 뒤에 숨어버렸다고 한다. 최은희 회고록을 보면 김정남이 대단히 부끄러워했다는데 딱히 악의가 있던 건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당시 김정남은 김씨 가문의 장남으로 엄연한 백두혈통이었고 그런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거는, 나아가 이름을 묻는 대담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10] 이에 곧바로 김정일이 김정남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정남아, 어른이 말씀하시면 '예 저는 누구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는거야."라고 타일렀다고 한다.[11]

구주궁궐 안에서 김정남이 누리지 못하는 것은 없었다. 값비싼 각종 선물과 산해진미는 물론이고 남한 예능과 동화도 마음대로 보고 즐길 수 있었다. 김정남은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같은 문학작품도 읽었는데 하루는 그걸 읽더니 윤복이가 불쌍하다면서 잠도 못 이루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가 돈이랑 음식을 보내주고 싶다고 하면서 부관들에게 남조선에 사는 이윤복이가 얼마나 불쌍하게 사는지 아냐고 걸핏하면 말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냐면, 이한영도 성혜림과 김정남이 옆에 없으면 남한 TV나 영화를 볼 권한이 없었다.

그런가하면 개그맨 이주일을 아주 좋아해 김정일에게 이주일을 데려와달라고 떼를 쓴 적이 있다고 한다. 곤란해진 김정일은 관저 책임자에게 적당히 처리하라고 했고 이에 관저 책임자들이 호위사령부 정치국장 권성린에게 부탁해서 북한 전역을 뒤져서 이주일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일주일만에 량강도에서 비슷하게 생긴 한 농민을 찾아 이주일 성대모사를 일주일 훈련시켜 김정남에게 보여줬는데 문제는 김정남이 안 속았다. 20분 정도 가짜 이주일의 공연을 보고 김정남은 '수고했다', '연극 꾸미는데 고생했다'며 조금 실망한 듯. 참고로 이주일의 도플갱어에게는 대충 인삼주 같은 것을 쥐어 주고 비밀 서약을 받은 뒤 돌려보냈다고 한다.

김정남의 제멋대로의 행동은 관저 바깥에서도, 그리고 해외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심심해진 김정남은 이한영을 시켜 호위사령부 정치국장 권성린에게 군부대 시찰을 가겠다고 했고, 이에 권성린이 호위사령부 예하 55사단 시찰을 주선해주었는데 사단장이 호위사령관 전화 받는다고 5분 늦게 나타나자 이한영이 어딜 감히 대장동지를 기다리게 하냐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사단장을 구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가하면 모스크바에 갔을 때 여러 나라 외교관들의 자녀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걸 보고 북한에서 하던 대로 "쟤네들 다 오라고 해봐."라며 명령을 했고, 동행했던 이한영이 여긴 다른 나라라서 함부로 그럴 수 없다고 설명하자 잔뜩 삐친 채로 "그래도 오라면 와야 될 거 아냐"라며 툴툴댔다고 한다. 이후 평양으로 돌아오는 고려항공 비행기 안에서 입을 벌리고 졸고 있던 북한 아저씨 한 명을 김정남이 다짜고짜 머리를 때리면서 "그렇게 추하게 입벌리면서 자면서 공화국 망신은 다 시키는구만?"이라고 시비를 걸었는데, 웬 꼬맹이가 시비 거는 것에 열받은 아저씨가 '누구 아들이냐'고 따지니 어린 김정남은 그 자리에서 '김정일이다!'라고 답했고, 김정남 뒤에 서있는 초대소 부원들을 보고 눈치를 챘는지 기겁해서 그냥 '잘못했습니다'하고 깨갱했다고 한다.

2.3. 소년기, 청소년기, 그 이후

김정남은 어려서 이모 성혜랑의 가정교육을 받았으며 관저에서 혼자 인민학교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친구 한명 없는 기형적인 삶이었고, 어쩌다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생겨도 김정남은 어쩔줄을 몰라했다. 이에 외할머니 김원주는 김정일에게 김정남이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외국에서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아들이 이뻐서 어쩔 줄 모르는 김정일에게 유학을 제안했다가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고 엄마 성혜림의 병문안을 간다는 구실로 처음으로 1978년 모스크바에 데리고 가서 김정일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소련 학교에 무조건 입학시켰다. 하지만 소련의 일반 인민들이 다니는 시설들은 그간 황자처럼 양육된 김정남이 쓰기엔 너무 더럽고 낙후된 것이었다. 이에 김원주는 소련에서의 양육은 안되겠다고 여겨서 김정일에게 김정남을 스위스에 보내자고 조심스럽게 설득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김원주의 이러한 구상은 조직지도부 과장이었던 장성택의 지지를 받았다. 장성택은 외교부 의례국장 리수용을 먼저 선발대로 제네바에 보내서 김정남의 유학을 준비하게 된다.

해가 흘러 1980년 3월이 되어 김정일은 김정남을 제네바로 보내게 된다. 김정일은 제네바로 떠나는 아들을 위해서 엄청나게 성대한 대표단을 꾸려서 동행시켰으며, 매일 제네바로 전화해서 김정남과 전화를 하며 눈물을 흘렸고 김원주가 옆에서 이를 보면서 제정신이 아니라고 혀를 찰 정도였다. 한편 김정남 역시 제네바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리수용에게 김정일에게 전달해달라면서 몰래 메시지를 녹음해서 건네주었는데, 김원주가 이를 들어보니 "빠빠 날 데려가라. 나 여기 싫어. 빨리 나를 데려가라. 빠빠. 나 빠빠 없이 안살래."라고 울부짖는 내용이었다. 얼마나 처절한지 이를 같이 들은 장성택까지 눈물을 흘릴 정도였는데, 김원주와 장성택은 김정일이 이를 들으면 당장 유학을 중단시킬 것이라 여겨 보고하지 않고 김정남을 예정대로 제네바 국제학교에 입학시켰다. 평생 친구를 사겨보지 못한 김정남은 자신을 왕자대접 해주지 않는 외국아이들과 데면데면했고 외국 학생들도 비만에 프랑스어도 못하는 김정남을 무시했는데, 보다 못한 김원주가 다이어트 특훈을 시켜서 김정남을 적응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서 성인이 된 후에도 프랑스어에 유창해졌으며 고미 요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스위스 국제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해서 꽤 잘 한다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김정남의 스위스 1차 유학은 오래가지 못했다. 김정남을 책임진 리수용이 연일 괴뢰들에게 정체가 발각됐다고 겁을 주면서 빨리 철수해야 한다고 성혜랑을 닦달한 것이다. 성혜랑은 자신도 처음 서방에 나온 리수용이 괜히 덤터기를 쓸까봐 겁을 먹고 그런 것으로 추정하는데. 어쨌든 간에 1년 반만에 김정남은 제네바를 떠나 모스크바로 돌아가 모스크바의 프랑스 학교로 전학가게 된다. 모스크바에서 공부 중이던 이한영과도 이때 다시 합류하게 되는데, 이한영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불가리아 여학생과 같이 등교하는 것을 본 김정남이 방학 중에 김정일을 만나서 일남이가 노랑대가리랑 논다고 재잘거리는 바람에 김정일이 외국인과 결혼하면 안된다고 이한영에게 훈계한 일도 있었다. 어쨌든 1982년 여름 방학에 성혜림이 김정남, 이한영 등을 모두 데리고 평양으로 돌아왔다. 김정남도 슬슬 아버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눈치를 챘는지 김정일이 화가 나 있으면 김정남도 돌처럼 굳어서 아버지 눈치를 살폈다고 한다. 한번은 김정일이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늘 대기하고 있어야 할 촬영기사가 덥다고 샤워를 간 상황이라서 격노한 김정일이 으르렁대고 있자 김정남도 겁에 질려서 벌벌 떨었다고 한다. 이때 김정철이 태어났고, 김정철의 탄생에 기분이 좋아진 김정일은 이한영의 제네바 유학을 허락해주었으나 이한영이 탈북해버린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던 중 19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펼치자 놀란 김정일은 소련은 우방이 아닌 달러 거지라고 선포하면서 도덕률 높은 스위스가 더 믿을만하니 스위스로 김정남을 보내라고 지시한다. 이에 김원주가 김정남과 리남옥을 데리고 스위스에 가서 리남옥은 상업학교에 입학시키고 김정남은 국제학교에 편입시켰다. 김정남은 미술에 상당한 소질을 보였으나, 공부엔 마음을 붙히지 못하고 비싼 벤츠를 몰며 면허증도 없이 제네바 시내를 돌아다니곤 했다. 스키를 타기도 하며, 가짜 신분증을 쓰기도 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에이즈 대란이 벌어지자 겁에 질린 김원주는 에이즈에 걸려 죽느니 교육을 못받아도 북한에 가는게 낫다면서 김정남을 데리고 평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게 1989년의 일이다. 김정남은 귀국 당시 제네바 학교 친구들에게 털어놓은 속마음을 들어보면 '평양의 궁전 생활에는 부족한 게 없지만, 창살 없는 감옥이다. 상당히 우울하다'는 속마음을 내비쳤다고.

80년대 말 김정남이 귀국하였을 당시 김정일의 관심은 온통 당시 5살이었던 이복 동생 김정은에게 쏠려 있었다. 1990년이 되자 후지모토 겐지의 눈에 비친 것처럼 김정은이 차기 후계자로서 낙점된 듯. 제네바의 자유로운 생활, 줄어드는 아버지의 관심, '고위층 감옥' 등 갑갑한 마음에 몰래 나와서 술을 퍼먹고 길거리에서 자는 등 기행을 일삼다가 김정일의 눈 밖에 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남옥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이 새 가족(고용희,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김정남이 매우 힘들어했다고 한다.[12] 성혜랑의 증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게 이뻐하던 일은 과거의 일이고, 90년대에는 숨어 지내라는 김정일 말을 듣지 않고 친구들을 특각에 불러 놀다가 김정일에게 들켜서 죽도록 혼나는 등 슬슬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김정남 본인의 경우, 김정일이 고용희의 자식들을 총애한 것을 원인으로 인정했으나 그와 동시에 김정일의 눈에 보기에는 자신이 지나치게 자본주의화되어 돌아와서 경계의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추론했으며 9년이나 유학한 자신과 달리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의 유학이 상대적으로 짧았던 것은 자본주의물이 덜 들게 하려는 목적으로 보았다.

김정남이 몹시 힘들어하자 김정일은 '착한 아이' 김정남이 측은해보였는지 애가 생기면 북한을 떠나 살아도 된다고 했다. 1995년 김한솔이 태어나고 김정남 가족은 베이징으로 나가서 살게 된다.[13] 90년대 후반 조선컴퓨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북한의 정보화 산업을 주도했느니, 대장 칭호를 받았느니 하는 근거없는 정보들이 남한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고미 요지와의 인터뷰에서 김정남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흔히 2001년 몰락설이 유명하지만 여러 증언을 볼 때 1990년대 시점에서 김정남이 찬밥 신세가 된 것은 분명했다. 고려호텔에서 총기난동을 부렸다는 썰이 퍼진 것도 이 시기지만 일단 김정남 본인은 부정했다. 하지만 여러 증언을 볼 때 김정남이 고려호텔에 자주 출입한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이며 김정남도 이 시기에 고려호텔 지하바가 자신의 '무대'였으며 자신이 많은 말썽을 일으켰음을 인정했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게 됐는지 본격적으로 도미니카 여권을 가지고 일본을 드나들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 후반이며, 아카사카의 한국 바들을 자주 출입했는데 상당히 매너가 좋았다고 전해진다. 김정남은 일본에 다섯번 정도 갔다고 회상했다.

한편 이 1995-1996년 사이의 행적에 대해서는 장진성의 증언이 흥미롭다. 장진성에 따르면 김정남이 김정일의 특명을 받고 고난의 행군을 극복을 위해 재벌을 본딴 '광명성 총회사'를 설립해서 북한의 돈주들을 산하 자회사로 편입해서 적극적 개혁개방을 추진하려 했다는 것인데, 김정일은 김정남이 막나간다고 여겨 몇달만에 그의 측근인 리병서를 체포하고 김정남을 경제업무에서 배제시키고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에 임명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90년대 말에 이르러 내부 서열 정리는 완전히 끝난 상태라 마키노 요시히로의 취재에 따르면 1998년에 김정남의 조총련 안내원이 방북했을 때 놀라울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고, 김정남은 "싸움은 이제 끝났다"고 체념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스위스 귀국 후 바로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진학한 김정은의 사례를 본다면, 김정일이 김정남을 진지하게 후계자로 고려했다면 대학교육을 시켰겠지만 스위스에서의 과정도 중단시키고 귀국시키고 그 이후 제대로 된 국내교육 기회도 주지 않고 팽개쳤단 점에서 그의 입지는 취약했음을 알 수 있다.

2.4. 2001년 일본 추방 사태

위 단락에서 볼 수 있듯이 김정남은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활동을 했으며, 탈북자들 중에서도 김정남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김정철, 김정은 형제에 대해서는 후지모토 겐지 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것에 비해서 큰 차이다. 하지만 김정남도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외부엔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검증되지 않은 갖은 루머가 판을 쳤다.

그런 김정남의 존재가 대외적으로 주목받은 계기는 2001년 일본 추방 사태였다. 김정남은 2001년 5월 1일 동행 3명과 함께 중남미에 거주하는 한국인 사업가를 자칭하여 일본 입국을 시도했는데 이 때 불법 입국자로 분류되어 구류되었다. 후에 동행자 3명은 배우자 신정희, 신정희의 사촌 리경희, 아들 김금솔로 밝혀졌다. 그러나 김정남은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못했는데다가 돈이 너무 많아 의심을 사게 됐는데, 지갑 속 100달러와 일만엔짜리 고액지폐 두께만 3c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추방 당시 손목시계는 롤렉스에, 동행했던 리경희는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있었다고. 일화로 구류 당시 일본 출입국 관리소에서 도시락을 시켜다 김정남에게 주었더니, 김정남은 고맙다며 일만엔짜리를 하나 주었는데 이에 거스름돈을 거슬러주니 팁이라고 안 받았다고 한다.

파일:김정남도미니카공화국.jpg
파일:external/dimg.donga.com/6818096.1.jpg

본 나리타 출입국사무소가 이 '한국인 사업가'가 누군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한국인 남성'은 '나는 김정남'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어느 누구도 김정남이라는 이름을 사칭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일단 보통 사람은 아닐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 과정에서 5월 3일부터 일본 언론에 노출되어 일본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으며 당시 서방권으로 망명하였던 이한영의 어머니 성혜랑 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어렸을 때와 똑같다'고 확인해주었다.#

김정남의 출입국 문제가 외교적 다툼으로 커질 것을 염려한 일본 정부는 3일 뒤인 5월 4일, 김정남을 추방했다. 당시 김정남은 비행기까지 쫓아오려는 기자들을 막기 위해 비행기 1등석을 모두 사버리는 기행을 벌이며 베이징으로 가 버렸다. 김정남은 이전에도 위조 여권을 이용해 일본에 수시로 입국해왔는데, 하필이면 이게 걸려서 언론까지 타버린 것이다. 참고로 북한의 상류층들은 위조여권으로 여행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라고 한다. 그 김정은도 브라질 위조 여권을 사용하여 일본을 방문했으며, 김정일도 브라질 위조 여권을 이용해 미국 비자를 신청한 적도 있다. 태영호가 탈북 후 쓴 저서 <3등 서기실의 암호>에서 장성택도 위조여권을 썼다가 잡혀 구류되어 있는 것을 외교관이 꺼내준 일화가 적혀있다.[14]

결국 해당 밀입국의 목적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사실 중동 지역 미사일 판매 대금을 받으려 한 것이었다, CIA 개입[15], 국정원 개입[16] 등 카더라가 많았지만 억울하게도 도쿄 디즈니랜드에 아들을 데리고 놀러 가는 게 목적이었다고 밝혀졌다. 현지 공항에서 김정남의 아내와 리경희는 어두운 표정으로 얼굴을 가리기에 급급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김정남의 아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17] 링크

일본 쪽에서 김정남 일본 추방을 몹시 크게 다루었으며 김정남 이름 석자가 연일 헤드라인에 대서특필되는 상황이었으나 북한 쪽에서는 무응답으로 일관하였다. 참고로 당시 김정일과 스웨덴 총리 사이 정상 회담이 진행 중이었는데 불 같은 김정일 성격상 화를 크게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2.5. 후계자 탈락

2.6. 후계 탈락 이후

2.7. 대한민국 망명 시도?

2.8. 박근혜 편지 사태

2.9. 사망

비록 2001년 일본 추방사건 이후 후계자 경쟁에서는 밀렸지만, 김정일은 장남이었던 김정남을 여전히 자식으로서 아끼고 사랑했다. 그 덕분에 김정남은 적어도 김정일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해외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살 수 있었고, 생활비도 받았으며 북한을 출입국하는데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다. 김정일도 생전 써둔 유언에서 김정남은 나쁜 아이가 아니니 그의 애로를 덜어줄 것이라는 당부를 남길 정도였다.

그러나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이 집권한 뒤 김정남은 북한 정권의 눈엣가시로 전략했고, 이 시기부터 신변에 상당한 부담 및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불안불안한 시간을 보내던 중,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프르 국제공항에서 VX 피습으로 암살당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피살 사건 참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정남 피살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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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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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김정남 피살 사건#s-|]]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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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족관계


===# 가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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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타

5. 대중매체에서

6. 외부 링크


[1]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서 생활했을 때 사용한 가명[2] 34세 혹은 35세손이라는 말이 있다.[3] 3명의 부인에게서 얻은 자녀들이다.[4] 어머니 성혜림이 첫 결혼에서 낳은 딸[5] 이 때문에 성혜림의 아버지 성유경은 딸이 김정일 관저에 끌려간 이후에 죽을 때까지 딸을 보지 못했으며 죽기 전에 혜림이 얼굴 좀 보여달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6] 뒷줄은 왼쪽부터 성혜랑(김정일의 전처이자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의 언니), 성 씨의 자녀 이남옥, 이한영이며, 앞줄에 김정일과 김정남이 자리하고 있다. 출처: 신동아[7] 이 1975년이란 년도는 상당히 흥미로운데, 대외정보조사부 부부장 박병엽은 김정남이 1975년 5월에 태어난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즉 박병엽은 김정남이 김일성에게 인정을 받은 시점과 진짜 생일을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로열 패밀리에 대해서 대단한 지식이 없던 박병엽이 그냥 잘못 알았을 수도 있다.[8] 다만 이한영은 정말 정상회담 중이라면 이것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평양에 망명와 있던 노로돔 시아누크와 사적으로 만나다가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추정했다.[9] 러시아어 표현으로, 김정남을 비롯한 외가 가족들은 김정일을 모두 빠빠라고 불렀다고 한다. 성혜림은 물론이고 이한영, 성혜랑도 통화에서 김정일을 본명으로 부르지 않고 빠빠라고 부른다.[10] 당시 최은희는 김정일이 예술에 대해 견해를 물으면 망설임 없이 솔직한 비평을 해주곤 했는데 김정일 말 한마디에 벌벌 떠는 북한 간부들은 이를 매우 신기하게 여기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재주가 좋냐고 물었다고 한다.[11] 이한영 회고록에 따르면 김정남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만났다고 대단히 놀라며 즐거워했다고 한다.[12] 마지막 계승자, 애나 파이필드, 2019[13] 이남옥 증언[14]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도 '하치야 마유미' 라는 가명으로 발행된 일본 위조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범행 이전부터 위조여권을 사용해 해외를 출/입국했으며 1984년에는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15] 이를 두고 미국이 김정남의 밀입국 정황을 미리 포착하고 CIA를 통해 일본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는 카더라도 있었을 정도다.# 이는 해당 링크에서 한 정보기관 관계자에게 부정되었지만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일본이 김정남을 밀입국자 취급한 게 당시에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증거다.[16] 마키노 요시히로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사실 귀뜸한 것은 국정원이었다고 한다. 이는 김정남을 잘 감시하고 나온 정보를 공유해달라는 국정원의 의사 표시였지만, 내각 조사실에서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항 당국이 그냥 일반 밀입국자 취급을 하는 일본식 관료주의의 병크 폭발로 이 사단이 났다고 한다.[17] 출처: 아버지, 김정일과 나, 김정남 독점 고백 참조(五味洋治)[18] 월간조선 우종창[19] 가명 최순호. 유투브 링크[20] 북한은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변형한 표기법을 쓴다.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 참조[21] 마지막 계승자, 애나 파이필드, 2019[22] 마지막 계승자, 애나 파이필드, 2019[23] 메일 내용에서 '아주 어려운 시기는 지나갔다'는 언급에 장성택 숙청을 맞추지 못했다고 비웃는 반응이 많았는데 메일이 오간 시점 자체만 따지면 사실 용한 편이긴 하다. 이때는 2004년에 장성택의 3차 혁명화 이후 장성택이 2006년에 제1부부장에 임명되어 다시 권부에 복귀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무속이란 것을 너무 믿을 건 없지만 메일이 오간 시기만 본다면 말이 안 되는 내용은 아닌 셈이다.[24] 서영라 혹은 서영란.[25] '황금감옥: 김정일과 함께 한 인생, 수양딸의 이야기(The Golden Cage: Life with Kim Jong Il, A Daughter's story)'[26] 애나 파이필드는 이남옥이 북한과 커넥션을 완전히 끊었다고는 믿지 않는 듯[27] 중국의 병아리 계획에 경계했을 가능성이 높다.[28] 홍콩은 대북제재 일환으로 북한인의 취업비자 발급을 엄금하며 단순 관광객도 입국을 까다롭게 한다. 국제사회에서 제재를 받는 불량국가인 데다 빈곤국이라 불법체류 위험도부터 높기 때문이다. 북한 외에는 또 다른 불량국가들인 이란, 시리아, 미얀마, 쿠바, 수단 공화국, 소말리아, 리비아 등이 취업비자 발급 금지 국가이며 중국 본토인은 홍콩이나 영미권에서 대학을 나와야 취업비자가 발급된다.[29] 김정일의 최측근이었던 강명도가 1994년 탈북 이후에 증언한 내용[30] 한국어판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31] 정확히는 김정일의 정실 김영숙의 딸들을 제외한 서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만난 사이로, 김정일의 적녀들은 당연히 공식적인 김정일의 자식으로서 김일성과 대면하고 살았다.[32] 김정남 본인이 읽고 실제와 비슷하다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