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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23:34:28

전주 김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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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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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 金氏 (完山 金氏)
전주 김씨 (완산 김씨)
<colbgcolor=#000> 관향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시조 김봉모(金鳳毛), 김태서(金台瑞)
중시조 김경(金敬), 김달혼(金達渾)
집성촌 충청북도 괴산군
경상북도 의성군

평안남도 평양시[1], 평원군, 영원군
평안북도 희천군, 벽동군, 자성군, 강계군, 후창군
함경남도 문천군, 함주군, 정평군, 영흥군, 고원군, 안변군, 이원군, 신흥군
함경북도 경성군, 명천군, 무산군, 경흥군
인구 56,989명(2015년)
1. 개요2. 유래3. 집성촌4. 인구5. 항렬6. 유명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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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2. 유래

시조 시랑 김봉모(金鳳毛)는 경주 김씨 중시조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조에서 동북면지병마사·추밀원부사·중서문하시랑평장사·태자태부를 지냈다. 사후 정평공(靖平公) 시호가 내려졌다. 경주 김씨에서 분적하였다.

일설에 따르면 김봉모의 아들 김태서(金台瑞)가 시조라고 한다.[2] 그러나 김태서(金台瑞) 이전에 부친 김봉모(金鳳毛)가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졌으니 김태서 이전에도 전주에 연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87년 간행된 《김씨 분관록》 및 《증보문헌비고》·《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도 시조를 시랑(侍郞) 김봉모(金鳳毛)로 한다.

아들 김태서는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해 한림학사부터 추밀원 부사 · 상장군 등을 지냈고 문하시랑평장사와 보문각대제학을 역임하였다. 1254년 경주시몽골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자 가족을 데리고 전주로 갔고 후에 전주군(全州君)에 추봉되었다. 후손들이 관향을 전주(全州)로 삼았다.

김태서(金台瑞)의 장남 김약선최우의 사위이자 심복으로 훗날 그의 딸이 원종의 1비 정순왕후가 된다. 살아 생전 태자비였으나 사후 1262년 정순왕후로 추존되었으며 그녀의 아들이 1274년 드디어 왕위에 오르니 바로 충렬왕으로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정순왕후는 태후로 추존되니 시호를 순경태후라 하였다. 김태서의 삼남은 대몽항쟁 당시 맹활약한 무인 김경손이다.

김태서의 묘는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의 모악산에 있다. 육관 손석우라는 사람이 김일성사망하기 1년 전 '터'라는 책에서 김태서의 묘에 대해서 "이 묘는 천문을 열고, 지축을 깨는 절대권력의 묘자리"라며 김일성의 사망 시기를 예언한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3. 집성촌

상당수가 이북 지방이며 조선시대평안도함경도로 대거 이주했다. 집성촌 모두가 평안도함경도에 몰려 있고 그나마 있는 곳도 경상북도 의성군, 충청북도 괴산군을 제외하면 없다. 집성촌이 위치했다고 알려진 지역 중 문천이라고 하여 북한에서 강원도로 관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지만 북한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조선 왕조부터 8.15 광복 직후까지 함경도 지역이었다. 게다가 남북분단 이후 북한의 집성촌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이 어렵다.

현대에는 집성촌이라기보다는 강원특별자치도[3]서울특별시 출신이 많아진 듯하다.

4. 인구

2015년 조사에서 56,989명으로 조사되었고 서울에선 15,094명, 부산 3,376명, 대구 1,545명, 인천 4,171명, 광주 348명, 대전 1,543명, 울산 822명, 세종 191명, 경기 18,664명, 강원 3,408명, 충북 1,471명, 충남 1,538명, 전북 748명, 전남 421명, 경북 1,660명, 경남 1,685명, 제주 304명이다.

확실히 강원특별자치도에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5년 당시 강원도의 인구가 156만, 서울의 인구가 1022만명으로 거의 5배였는데 비율로는 서울(0.16%)보다 강원(인구의 0.22%)에서 더 많다.

여담으로 2000년 인구총조사 땐 57,979명이였으나 2015년 조사에선 56,989명으로 1000명 정도 줄었다.

5. 항렬

12세(火)찬(燦), 충(忠), 성(性)
13세(土)재(在), 원(遠), 두(斗)
14세(金)석(錫), 종(鍾), 진(鎭)
15세(水)태(泰), 철(澈), 형(瀅)
16세(木)병(秉), 병(柄), 동(東)
17세(火)환(煥), 희(熙), 연(然)
18세(土)균(均), 효(孝), 시(時)
19세(金)호(鎬), 용(鎔), 현(鉉)
20세(水)한(漢), 윤(潤), 영(泳)
21세(木)낙(樂), 근(根), 모(模)
22세(火)겸(謙), 형(炯), 현(炫)
23세(土)은(垠), 요(堯), 규(圭)
24세(金)연(鍊), 예(銳), 경(鏡)
25세(水)홍(鴻), 연(淵), 식(湜)
26세(木)주(柱), 춘(椿), 상(相)
27세(火)엽(燁), 항(恒), 창(昌)
28세(土)진(珍), 기(基), 재(載)
29세(金)록(錄), 일(鎰), 전(銓)
30세(水)홍(洪), 원(源), 제(濟)
31세(木)화(和), 동(棟), 계(桂)
32세(火)지(志), 경(炅), 병(炳)
33세(土)준(埈), 곤(坤), 기(起)
34세(金)수(銹), 건(鍵), 용(鏞)
35세(水)호(浩), 준(浚), 환(渙)
36세(木)수(秀), 근(槿), 정(楨)
37세(火)훈(勳), 욱(旭), 명(明)
38세(土)치(致), 민(珉), 육(堉)
39세(金)선(鐥), 균(鈞), 철(鐵)
40세(水)치(治), 광(洸), 길(洁)
본래 통일된 항렬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위 표는 2004년 편찬된 『전주김씨대동보』에 실린 항렬자이다. 항렬자가 제정되고서 많은 시일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대동항렬자를 실제로 쓰는 사례는 수년에서 수십 년 정도가 지나야 나타날 것으로 보이지만 요즘엔 항렬자를 안 쓰는 추세라 과연 통일된 항렬자가 등장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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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명 인물

6.1. 백두혈통

북한김일성-김정일-김정은과 그 가족들인 백두혈통이 전주 김씨다. 1915년에 편찬된 전주 김씨 대동보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되어서 8대조 떄부터 김일성 일가가 살았던 평안남도 대동군 일대가 누락되어 현재는 전주 김씨 족보상 김일성 일가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전주 김씨 가문에서 김일성 일가가 나온 것이 가문의 불명예라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삭제하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김일성은 자신의 회고록에 "우리 가문은 17세기 8대조인 김계상 할아버지 대에 살 길을 찾아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북으로 들어왔다. 만경대에 뿌리를 내린 것은 증조할아버지 김응우 대부터였다."고 서술한 바 있으며 2000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김대중 대통령과 환담하면서 본인이 전주 김씨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김일성과 김정일 본인이 인정하기도 했기 때문에 워낙 증거와 증인이 많아서 김일성 일가의 본관이 전주 김씨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들은 자체적인 돌림자를 사용하지만 전주 김씨 가문의 항렬자와는 관련이 없다.

북한은 이남 출신이거나 월북자, 재일교포 출신 등등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연좌제로 차별을 받지만 대한민국은 연좌제가 없기 때문에 전주 김씨인 것은 아무런 불이익도 되지 않는다. 물론 본관을 중시하고 연좌제 의식이 심하던 1950~60년대에는 민간에서 은은하게 안 좋게 보는 인식이 있긴 했다. 6.25 전쟁 당시 김일성이 전주 김씨임을 안 피난민들이 가문의 본관인 전주는 안 폭격하겠지 싶어서 전주로 피난갔다가 전주도 폭격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 북한에서는 도급 행정구역으로 '평양시'를 관할하고 있지만 이런 행정구역은 대한민국의 '평안남도 평양시'의 행정구역의 관할구역과 매우 다르다. 그래서 이름이 같은 북한의 행정구역을 그냥 대입하면 오류가 된다. 강계 같은 경우 더 심하다. 북한에서 행정구역 변동을 일부를 제외하고 2008년 이후 비공개하기 때문에 현재 북한에서 어느 행정구역으로 관할하는지도 불명확하다.[2] 그는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이라고 하지만 김은열은 정사에는 기록이 없고 조선 후기 발견되었다는 묘지석을 바탕으로 그의 존재를 추정할 뿐이며 묘지석 진위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3] 대표적으로 가수이자 방송인희철이 있다. 다만 실향민 세대는 이북 출신이 많고 현 세대로 넘어올수록 강원도나 서울특별시 출신이 많아지는 듯하다.[4] 2000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신이 전주 김씨임을 직접 밝힌 바 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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