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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08:43:00

호(성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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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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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扈 (뒤따를 호)3. 胡 (턱밑 살 호)4. 鎬 (땅이름 호)
4.1. 扈씨4.2. 胡씨
5. 가상인물

1. 개요

한국에 존재하는 성씨이며 흔치 않은 성씨임에도 불구하고 2가지나 있다.

2. 扈 (뒤따를 호)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후삼국시대 공산 전투에서 순절한 8장 중의 하나인 호의(扈義)이다.[1] 크게는 신평 호(扈)씨,[2] 전주 호(扈)씨가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2015년 기준 4,340명이다. 전체인구 대비로 보면 그렇게 많지 않은 성씨이다.

중국의 호(扈)씨는 하나라와 선비족 두가지 종류라고 한다.

신평 호씨는 고려 태조 때 태사를 지낸 시조 호의의 외아들인 호철의 17대손 호종국이 신평군에 봉해져 관향으로 하였다. 호철의 둘째 동생 호은열이 보안 호씨, 셋째 동생 호흥인이 나주 호씨로 분파했다.

역사적으로는 1591년(선조 24) 별시 무과에 병과 74위로 급제한 교생(校生) 호기충(扈期忠, 1555 ~ ?)이 있었다. 호기충의 급제 사실을 알려주는 『신묘별시문무과방목(辛卯別試文武科榜目)』에 그의 본관은 기재되어 있지 않고, 다만 자가 가훈(可勳), 거주지는 경기도 교동현(喬桐縣), 아버지의 이름이 호인수(扈仁壽)인 것으로 기재돼 있다. 또한 1637년(인조 15) 수문장(守門將)으로서 별시 무과에 병과 232위로 급제한 호명복(扈命福, 1606 ~ ?)과 같은 시험에 겸사복(兼司僕)으로 응시해 병과 1184위로 급제한 호계인(扈繼仁, 1602 ~ ?) 등 두 사람은 모두 본관이 가평(加平), 당시 거주지는 한성부였다. 호명복의 아버지는 보인(保人) 호쇠(扈金)였고, 호계인의 아버지는 학생(學生) 호대충(扈大忠)이었으며, 호계인의 위로는 호경룡(扈景龍), 호경확(扈景鑊) 등 형 2명이 있었다.

1725년(영조 1) 한량(閑良)으로 증광 무과에 병과 246위로 급제한 호대현(扈大賢, 1669 ~ ?)의 본관은 봉산(鳳山)이었고, 당시 거주지는 한성부였다. 호대현의 자는 춘보(春輔), 아버지는 학생(學生) 호소길(扈小吉)이었다.

호한성(扈漢成)은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총기 및 '대선생신원기(大先生伸寃旗)' 등을 압수당했다.

3. 胡 (턱밑 살 호)

호(胡)씨는 한국, 중국, 베트남에 있는 성씨이다. 중국은 '후', 베트남에서는 '호'씨로 발음한다. 전 중국 주석 후진타오가 호씨이다.[3]

가평 호씨(加平胡氏)와 파릉 호씨(巴陵胡氏)의 시조는 명나라 한림학사 "호극기"(胡克己)이다. 그는 중국 복건성 건녕(建寧)사람으로 인조 22년에 조선에 사신으로 왔다가 명나라가 쇠하고 조선에 귀화하였다. 6세손 "호세익"의 1남 "호숙"의 후손은 중국 파릉, 2남 호징과 3남 호준의 후손은 가평을 본관으로 하였다. 인구수는 2015년 기준 1,494명이다.

4. 鎬 (땅이름 호)

호(鎬)씨는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985년에는 1가구 3명, 2000년에는 55가구 20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5명으로 조사되었다8명으로 조사된 초 희귀성씨다. 천(白川)이 본관으로 5명이다.

배천 호씨(白川扈氏)의 배천은 황해도 남동부에 위치한 연백군(延白郡)의 옛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 때 도랍현(刀臘縣) 또는 치악성(雉嶽城)이라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는 구택현(雊澤縣)으로 개편하여 해고군(海皐郡)이 관할하였다. 고려 초에 배주(白州)로 바뀌어 개흥부·충익현·부흥군 등으로 불리우다가, 의종 때 개흥부지사로 승격되었다. 1369년(공민왕 18) 다시 배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 배천군으로 개칭되었다. 1915년 연안군(延安郡)과 병합하여 연백군이 되었고 1953년 이후 황해도 연백군이 되었다.


4.1. 扈씨

4.2. 胡씨

5. 가상인물



[1] 호원보(扈元甫)라고 하기도 한다. 참고로 원보는 자나 아호가 아니라 향직의 품계명이다.[2] 신평은 현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3]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胡志明)은 가명이다. 본명은 응우옌신꿍(Nguyễn Sinh Cung, 阮生恭, 완생공)이다.[4] 특히 민사소송법 상 대부분의 소수설은 호문혁 발이다. 소수설이라 해서 과소평가 해선 안되는게, 소수설도 그 나름의 논리와 근거, 법리가 탄탄해야 학계에서 인정받는다.[5] 성씨 때문에 법대생이나 민소법 수험생들 사이에서 드립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는데, 성씨와 교수 직함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김남국 의원의 말실수와 엮여서 유탄을 맞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