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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14:52:54

유(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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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의 성씨2. 한국의 성씨
2.1. 성씨 柳(버들 류, 유)2.2. 성씨 劉(죽일 류, 유)2.3. 성씨 兪(대답할 유)2.4. 성씨 庾(곳집 유)2.5. 목록

1. 중국의 성씨


유(류: 劉)씨는 중국 한족의 가장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이다.

성의 시조는 여러 갈래인데
  1. 삼황오제 시절의 제요 도당씨의 자손 중 기성(祁姓) 유씨가 있다.
  2. 주문왕의 자손
  3. 춘추 시대 진(晉)의 사회가 진(秦)에 망명했다가 다시 진(晉)으로 돌아왔는데, 진(秦)에 남은 후손들이 요의 후손이라며 유씨를 칭했다.
  4. 한고조 유방
  5. 항우의 숙부인 항백과 다른 일족인 항양, 항타가 유방에게 항복한 후, 유방의 성인 유씨를 하사받았다.
  6. 흉노 선우 전조의 왕 유연이 그 사례다.
  7. 북위독고씨가 효문제의 한화 정책에 의해 선비족 성을 버리고 유씨로 바꾸었다. 유비의 유씨가 거의 몇 명 남지 않고 몰락한 이후 이들 유씨가 매우 유력한 인물들로 지내온다.
  8. 오대십국 시대의 후한의 시조인 유지원이 있다.

삼국지에서 유명한 인물은 유굉, 유변, 유협, 유비, 유우, 유표, 유언, 유장 등 하나같이 그 일족들이다.

이들은 모두 전한 6대 효경황제의 후손으로 사남 노공왕의 후손이 유언, 유표, 유장이고 칠남 장사정왕의 후손이 경시제광무제이며 유우는 광무제의 장남인 동해공왕의 후손이고 후한 황제인 유굉, 유변, 유협도 광무제의 후손이다. 또한 경제의 구남 중산정왕의 후손이 유비다. 효경황제가 삼국지 주요 인물들의 중시조인 셈. 경제보다 윗대에서 갈라진 후손으로는 덜 유명하지만 유대유요 형제가 있다.

유씨는 한나라, 촉한, 육조 시대 남조 유송국성이 된다. 즉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의 성씨이자 중국 한족의 상징적인 성씨가 바로 유씨라고 할 수 있다.

현재도 이(李), 왕(王), 장(張), 진(陳)씨와 함께 중화권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 한족의 대표 5대 성씨 중 하나이다. 현대 인물 중에서 유명인으로는 류사오치 前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과 헨리(중국식 이름 劉憲華) 등이 있다.

한국 한자음으로는 劉씨도 柳씨와 마찬가지로 음이 '류'이지만 전통적으로 '류'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 柳씨와는 달리 劉씨는 대부분 '유'로 표기한다.류방이나 류비라 하지 않으니까

2. 한국의 성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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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황목 · 황보 · ·
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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兪, 劉, 庾 등이 있다. 총인구는 965,510명으로 신씨에 이어 12위를 차지하는데[1], 여기서 '류' 자를 쓰는 柳·劉씨 인구수는 제외되었다. 류(柳) 씨를 한때 주민 등록에 '유'라고 썼던 적이 있었으나, 두음 법칙을 강제하지 말라는 柳씨들의 강한 항의로 '류'로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굳이 개명하지 않고 ‘유’씨로 살고 있는 류씨 사람도 여전히 있는 듯하다. 전체 포함하면 인구의 2%나 되어서 흔한 편이고, 손씨, 신씨, 심씨, 안씨, 양씨, 오씨, 윤씨, 이씨 초반과 같이 가나다순 출석 번호 중반부를 담당한다.

로마자 표기는 Yu, Yoo, You 또는 원음인(柳, 劉) Ryu, Ryoo, Ryou, Liu도 쓰이는 등 다양하다.[2]

2.1. 성씨 柳(버들 류, 유)

2015년 기준 478,990명. 전체 21위로 나타났는데, 이들은 모두 '유'씨로 신고한 사람들이며 '류(柳)'로 신고한 사람은 따로 163,703명이 더 나타나 실제로는 642,693명으로 집계하는 것이 옳다. 이렇듯 柳씨 중에서도 예전부터 '유'로 쓰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음을 알 수 있는데, '유'씨로 쓰는 사람이 70% 이상이고, '류'씨로 쓰는 사람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리)씨임(림)씨처럼 ㄹ로 시작하는 한자음을 가진 성씨들이 100%에 가깝게 두음 법칙을 준수하는 것을 생각하면 유(류)씨의 경우가 특이하게 두음 법칙을 거부하는 양상이다. 2018년 기준 약 70% 정도가 유씨로 쓴다. 류현진 등 류씨로 쓰는 사람은 류(성씨)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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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柳(버들 류\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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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성씨 劉(죽일 류, 유)

강릉, 거창, 벡천 등 14개의 본관이 있다. 인구는 2015년 기준 302,511명.

대한민국에서의 유씨 대성(大姓)은 강릉 유씨이며 시조는 유승비(劉承備)인데, 족보의 대시조는 유방. 이 계보엔 유수도 있다고 되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광무제-명제-장제-청하효왕 유경[3]-유경의 28세손 유전이 고려 시대에 귀화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한국 국내 족보 중 중국에서 왔다는 것들이 대부분 후대에 중국의 성씨를 차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족보상 중국계라는 것들이 대부분 허구라고 보고 있다. 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고려 시절 성씨가 존재하는 사람들만 과거 시험을 받을 수 있게 하였으니 이때도 많은 한자 성씨들을 차용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시조 유승비의 증손자인 유창(劉敞)이 1371년(고려 공민왕 20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좨주(成均祭酒) 등을 역임하고, 조선 개국 공신에 책록되어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해졌다.[4]

전라남도 장흥군[5] 장동면 하산리 산60-2번지 연하동 제암산에 강릉 유씨 천방공파[6]의 묘역이 있다.[7]

사실 劉씨도 원음이 '류'지만, 두음 법칙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원음 기준 표기인 '류'로 바꾼 柳씨와 다르게[8] 대다수가 두음 법칙을 적용하여 그냥 '유'로 쓴다.

한자의 훈은 보통은 '묘금도'라고 불리는데, 글자 뜻과는 상관없는 파자(卯묘+金금+刀도=劉)이다. 본래의 훈을 버려두고 파자를 훈으로 새기는 까닭은 글자가 어렵기도 하고, 아마도 이 한자의 대표 훈이 ‘죽이다’이기에 그런 듯하다. 원시 중국 티베트어의 mru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으로 보이며, 같은 한자를 서양의 할버드 같은 도끼(월부) '죽이다'라는 뜻으로 쓰다가 지명, 사람 성씨로 가차하여 쓰면서 점차 '죽이다'는 뜻으로 쓰게 되지 않는 반면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되는 戮(죽일 륙)은 아직도 죽인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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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劉(죽일 류\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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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성씨 兪(대답할 유)

본관은 기계, 창원, 무안 등 총 15개. 인구는 2015년 기준 167,927명.

훈처럼 쓰이는 '인월도'는 글자 뜻과는 상관없는 파자(人인+月월+刀도=兪)이다. 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기이다. 본래는 (입 入 + 월 月 + 천 川 = 兪) 이다(출처: 기계유씨 대종회). 원래의 글자 뜻을 버려두고 파자를 훈으로 새기는 까닭은 '대답할 유', '그러할 유', '점점 유' 등 새기는 훈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점점 유'는 愈로 더 많이 쓰기에 오류 발생의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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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성씨 庾(곳집 유)

시조는 유금필(庾黔弼), 본관은 무송, 평산으로, 족보에 의하면 무송 유씨가 평산 유씨에서 갈라져 나왔다. 인구는 2015년 기준 13,868명으로 유씨 중에서 가장 적다.

기원후 300년 전후에 유순유(庾荀悠)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파견됐는데 한반도의 절경에 반해 정착하면서 평산(평주)의 호족으로 유씨의 시원을 이뤘다. 무송 유씨는 본래 평산 유씨와는 계통이 다른 집안이었는데 후손이 번영하면서 유금필을 자기 가문의 시조로 삼았다 한다. 지금도 유(庾)씨는 99%가 무송 유씨다. 시조 유금필은 유순유의 후손이다.
대전, 충남 출신의 비율이 높다고는 하지만[9] 전북이나 경북, 경남에도 집성촌이 있다.

중국 통계에 따르면 중국 庾씨의 80%가 한족, 20%가 조선족이다.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 유용원, 유민봉, 유수아 등이 있다.

2.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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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위인 신씨는 약 98만 명, 13위인 서씨는 약 75만 명이다.[2] 개명하지 않고 ‘유’를 고수하는 柳·劉씨 사람이나, 그냥 원음이 ‘유’인 유씨 사람들은 외국에 가서 영어로 이름을 밝히면 어떻게 사람 이름이 ‘너’라는 반응과 함께 상대방이 빵 터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상대방이 한국인을 볼 일이 거의 없는 영어 원어민이라면 더욱.[3] 동한 황제 안제의 부친이기도 한데, 유전의 조상은 안제의 형제다.[4] 세종 실록에 실려있다. http://sillok.history.go.kr/id/kda_10312009_006[5] 강릉 유씨 천방공파의 집성촌이다.[6] 천방공은 천방 유호인을 가리키며 경력공파의 분파이다.[7] 예조참의 유용순(7세 1421~1482), 통정대부해웅덕군수 유한필(8세 1440~1501), 입향조 이조좌랑 유계창(9세 1458~1528), 기자전 참봉 유선보(10세 1480~1542), 성균진사 천방 유호인(11세 1502~1584), 통훈대부 군자감정 유덕명(13세 1577~1641), 증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유상한(14세 1607~1668),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유경서(16세 1655~1716), 증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유준(17세 1712~1774)[8] 다만 柳씨도 여전히 70% 이상이 그냥 '유'씨로 쓰고 있는 편이다.[9] 물론 타 지역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무송 유씨 자체가 희귀한 성씨라 인구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당장에 무송 유씨의 대표 인물인 재일 교포 건축가 유동룡만 봐도 본적이 경상남도 거창군으로 대전이나 충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