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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22:03:56

유요

오서(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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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繇
(157년 ~ 1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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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정치가로 는 《삼국지》 오서 <유요전>과 《후한서》 <허소전>에 따르면 정례(正禮). 정체(正體)라고도 하는데 비슷해서 혼동하거나 혼용하는 듯.

황족 가문으로 전한 한고조 유방의 장남 제왕 유비(劉肥)의 자손이자 청주 동래군 모평현 사람. 태위 유총의 조카, 연주자사 유대의 동생, 유기의 아버지.

2. 생애

유요가 19세일 때 종부인 유위가 도적에게 붙잡혀 인질이 되었는데, 유요가 도적들에게서 유위를 구해 명성을 얻었다. 이후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고 낭중이 되었으며, 하읍현의 장으로 임명됐으나 군수의 청탁을 받자 관직을 버렸다.

그러나 청주에서 불러들여 제남군위로 삼았는데, 제남상이 중상시의 아들로 탐욕스러워 뇌물로 자기 배를 채우기에 상주해 파면시켰다. 일찍이 형 유대를 무재[1]로 천거한 도구흥에게 무재로 천거되었다가 사공연으로 초빙되고 시어사를 제수받았지만 취임하지 않았다.
그가 회포에서 난을 피하고 있을 때 조정으로부터 양주자사로 임명한다는 조서가 내려왔는데, 원술이 이미 전임 양주자사 진온이 죽은 후 스스로 양주자사를 임명하고 양주의 치소가 있는 수춘 등 회남 일대를 점거했기에 이를 두려워해서 유요는 감히 부임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요가 남쪽으로 장강을 건너려고 하자 오경손분이 그를 영접해 유요를 곡아에 두었으며, 원술은 칭제를 기도해 여강태수 육강을 공격하는 등 양주의 여러 군현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유요는 번능장영을 파견해 원술에게 대항토록 하고 오경과 손분이 원술로부터 관직을 받은 것을 힐책해 쫓아냈으며, 원술은 양주자사를 새로 임명하고 손분과 오경에게 병사를 주어 번능, 우미, 장영을 공격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면서 유요가 원술로부터 항거한 것으로 인해 조정은 양주목, 진문장군을 더했고 수만의 병졸을 주었다.[2]
194년손책손분오경을 도우러 와 장강을 건너 장영과 번능 등을 격파했으며, 195년에는 우저를 빼앗기자 유요에게 의지하면서 말릉성을 지키고 있던 착융설례도 손책에게 격파당했다가 설례, 번능, 우미가 반격해 우저를 되찾았다가 도로 빼앗겼다. 착융이 성을 견고히 지키자 손책은 방향을 돌려 유요를 공격하자 유요는 단도로 달아났다가 예장을 지키고자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팽택에 머물렀다.

처음 손책의 군사와 맞닥뜨리자 마침 태사자가 유요와 동향 사람인 연고로 곡아로 내려와서 유요에게 왔는데, 태사자를 장군감으로 권하는 말이 있었지만 유요는 허소의 비웃음을 사지 않고자 태사자를 임용하지 않았다. 당초 유요는 회계로 달아나려 했으나, 허소가 손책이 회계를 공격할 것이므로 반대하고 예장으로 가면 조조, 유표와 연락하면서 지킬 수 있다고 권해 예장으로 경로를 바꿨다.

당시 예장에서는 유표가 임명한 태수 제갈현[3]과 조정이 임명한 태수 주호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유요는 주호를 후원하여 착융을 파견해 제갈현을 치게 했다. 허소는 착융은 명분을 돌아볼 사람이 아니라서 주호는 사람을 믿으니 마땅히 사람을 보내 대비해야 한다고 했는데, 과연 착융은 주호를 죽이고 예장을 점거하자 유요는 그를 쳐서 한 번은 졌지만 마침내 착융을 무찔렀다.

이후 병이 들어 4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으며, 손책은 병사한 유요의 시신을 거두고 그의 식솔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태사자 외에도 복양일[4]·등탐[5]·시의 등의 중원 선비들이 유요에게 의탁했었고, 유요가 망하면서 손책을 섬겨 이후 오나라의 중신이 됐다.
유대와 유요 형제는 한나라 제효왕(齊孝王)의 작은 아들 모평후의 가계에 속한다. 아버지는 유방(劉方)이고 백부 유총은 태위였다. 자식으로는 유기, 유삭, 유상이 있다. 이중 큰 아들 유기는 손권을 섬겨 수려한 용모로 총애를 받아 나중에 광록훈의 직위에까지 올랐으며, 손권의 아들 손패는 아내로 유기의 딸을 맞이했다.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유요(삼국지 시리즈)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2. 진삼국무쌍 시리즈

클론 무장으로 손책에게 태사자를 헌납하는 셔틀 역할. 그래도 총대장은 맡고 있다.

3.3. 토탈 워: 삼국

배신당한 천하 DLC와 함께 유니크 무장이 되었으며 그랜드 캠페인에서 유요 세력의 리더로 출현한다. 고유배경은 사람좋은 현령(전문성 +15, 결의 +10, 책략 +5, 회복력 +1, 식량 생산 +20%(세력 전체 / 상국, 지도자, 후계자일 때) 건업 지역을 점거한 상태에서 등장. 직위가 공이 되면 월 공국, 삼대 세력으로 살아남으면 월나라로 국명이 변경된다. 194년으로 플레이 시 휘하에 유니크 무장으로 태사자를 가지고 있다.

3.4. 삼국전투기

프로레슬러 빅 보스 맨으로 등장한다. 진궁이 조조를 대신할 군주를 찾을 때 후보로 등장한 것으로 처음 등장했고,[6] 본격적인 등장은 곡아 전투 편부터다. 초반부 손책의 주적이었던 관계로 의외로 비중은 나쁘지 않은 편.

곡아 전투 (1)편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본디 양주목으로 수춘에 관소를 세웠어야 하나, 전임 양주목 진온을 죽이고 수춘을 차지한 원술이 껄끄러워 수춘을 포기하고 대신 단양태수 오경을 역양으로 몰아내버리고 단양군 곡아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묘사된다.

곡아 전투 (3)편에서는 타이틀 컷을 장식했다. 더불어 지역 토박이들의 반란 때문에 패퇴하고 도망쳐 와서 변명을 늘어놓는 장영에게 레슬링 기술을 먹여 주기도 한다.

곡아 전투 (4)편에서는 신정산 봉오리 꼭대기에 서 있는 손책을 발견하지만 함정이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하여 굳이 치지는 않는다.[7]

곡아 전투 (6)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유요군과 손책군의 전면전이 시작된다. 유요는 신정산의 고지를 선점하여 지리적인 이점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책군에 지역 토박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서 지리적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으로 나온다. 거기에 그 상황에서 번능과 우미가 패퇴, 곡아를 빼앗기자 양면공격을 당할 것을 우려하여 착융과 설례가 있는 말릉으로 퇴각하지만 퇴각전 와중 손책이 총 공격 명령을 내려서 그대로 15000명 가량의 군대가 공중분해, 태사자와도 흩어져 유요 본인과 일부 측근만 간신히 말릉에 도착한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곡아 전투 (7)편에서는 손책군에게 연이어 크게 당하게 되고[8] 착융을 제외한 부장들이 죄다 죽은데다 말릉까지 잃어서 결국 착융과 예장으로 도망치게 된다. 이후 유요를 얕잡아보고 배신한 부하 착융을 직접 제압하는 데는 성공하나, 모든 것을 잃은 유요는 마음의 병을 얻고 얼마 안 가 사망한 것으로 묘사된다.

3.5. 일기당천

양주학원 수장으로, 1기에서 등장한다.

3.6. 와이파이 삼국지

손권의 강동 평정에서 등장한다. 성우는 박주광. 오리지널 설정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9] 태사자를 말리는 것으로 등장하지만, 태사자 항복 이전 곡아가 포위되고 함락된 시점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1] 원래는 수재지만 후한 광무제의 이름을 피휘해서 무재라고 불렀다.[2] 아직까지는 한나라 조정의 권위나 여력은 남아있던터라 조정에서 정식으로 임명받고 나름 원술을 상대로 군공도 있는 유요를 따르는 무리들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유요와 비슷하게 조정에서 임명됐으나 지방 군벌들의 발호로 부임지에 가지 못한 한나라 신하들이 유요의 권위에 기대 지방의 군벌들을 토벌하는데 힘을 보탰다. 주호설례 등이다.[3] 제갈량의 숙부다.[4] 복양흥의 부친이다.[5] 등윤의 큰아버지다.[6] 이 때 진궁은 유요를 발전이 없는 주먹구구형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7] 손책은 이를 보고 상대를 과하게 의식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실행을 미룬다며 유요는 자신들을 결코 이길 수 없음을 확신했다.[8] 이 때 깨알같이 유요의 주변 배경이 관광버스 비슷하게 되거나(1컷) 이번엔 어디로 가는 거냐고 당황하는 유요 옆에 안드로메다행이라 말하는 메텔(...)이 있거나 하는 장면이 나온다.(8컷) 두 장면 모두 손책군에게 심하게 관광당한 것을 비유한 장면.[9] 담당 성우 박주광이 부산광역시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