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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지명/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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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三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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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60년양주지도.png

1. 개요2. 소속 양주자사부
2.1. 회남군(淮南郡)
2.1.1. 부릉국(阜陵國)
2.2. 여강군(廬江郡)
3. 소속 양주목
3.1. 단양군(丹揚郡)3.2. 신도군(新都郡)3.3. 고장군(古鄣郡)
3.3.1. 임천군(臨川郡)
3.4. 오군(吳郡)
3.4.1. 동안군(東安郡)3.4.2. 비릉전농교위부(毗陵典農校尉部)3.4.3. 오흥군(吳興郡)
3.5. 회계군(會稽郡)
3.5.1. 동양군(東陽郡)
3.6. 임해군(臨海郡)3.7. 건안군(建安郡)3.8. 예장군(豫章郡)3.9. 여릉군(廬陵郡)
3.9.1. 여릉남부도위부(廬陵南部都尉部)3.9.2. 안성군(安成郡)
3.10. 파양군(鄱陽郡)3.11. 임천군(臨川郡)3.12. 여강군(廬江郡)3.13. 기춘군(蘄春郡)
4. 같이보기

1. 개요

기원전 107년에 처음 자사를 설치할 때, 이 방면을 맡는 자사의 감찰 구역이 원래 회수 이남의 동부 해안 지방을 가리키던 지방 이름인 양주(揚州)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양주자사부가 되었다. 후한 말 192년 무렵에 원술이 구강군을 점거하여 구강군 수춘현을 거점으로 삼아 멋대로 양주자사를 임명했고, 193년에 정식으로 양주자사로 임명된 유요는 구강군으로 부임할 수 없었기에 오군 곡아현에 치소를 두었다. 원술 휘하의 손책은 유요를 쫓아내고자 장강 이남의 강동 지방으로 보내졌는데, 197년에 원술이 칭제하자 손책은 이를 빌미로 원술에게서 완전히 독립하였다. 유요는 198년에 패망하여 손책이 강동 지방 전역을 장악하게 되었고, 원술은 199년에 패망하였다. 이에 조조엄상을 양주자사로 임명해 보냈으나, 손책의 수하인 여강태수 이술에게 피살당했다. 엄상의 후임인 유복은 200년에 구강군 합비현을 치소로 삼고, 합비 주변의 구강군 지역을 장악했는데, 이로써 양주가 조조와 손권에게 분할되었다.

한편 손책이 죽고 손권이 그 뒤를 잇자, 손권을 얕잡아 본 이술은 대놓고 반기를 들었다가 결국 손권에게 제거되고 그 사병들은 오군으로 옮겨졌는데, 이로 인해 여강군은 사실상 무주지 상태가 되면서 원래 이술을 따르던 매성·뇌서·진란 등 군소 군벌이 할거하는 상황이 된다. 적벽대전 이후에 여강군이 한동안 조조와 손권의 각축장이 되면서 여강군에 할거하던 군소 군벌들도 정리되었으며, 214년에 손권이 환현을 점령하면서 여강군이 분할되었다. 222년 5월에 손권이 차지하고 있는 양주 지역이 관념상 형주에 소속되었으나, 같은 해 10월에 조비가 손권의 형주목 지위를 부정하며 그 조치를 취소했고, 비슷한 시기에 손권 또한 여범을 양주목으로 임명하였으므로, 사실상 별 의미가 없는 조치였다. 오나라가 멸망하면서 다시 양주가 통일되었다.

현대 한자 독음으로 양주(揚州)와 양주(涼州)가 동일하여 혼동의 우려가 있으나, 보통 전자는 강동과 회남으로 부르고 후자 쪽은 서량으로 부르기 때문에 실제로 혼동되는 일은 적다. 강동은 당대에도 쓰였던 지방 이름이었지만, 서량의 경우에는 당대에 쓰였던 명칭이 아님을 유의해야 할 필요는 있다.

2. 소속 양주자사부

214년에 손권이 여강군 일부를 점령했으며, 223년에 기춘군이 손권에게 점령당하면서, 양주 지역에서 위나라의 영역은 구강군 전역과 여강군 일부 지역만 남게 되었다. 250년대에는 이 일대에서 위나라의 국정을 장악한 사마씨 정권에 반발한 수춘삼반이 일어났다. 그 중 255년의 관구검·문흠의 난과 257~258년의 제갈탄의 난은 반란군이 오나라에 투항하는 전개가 있었으나, 반란이 모두 실패하면서 양주 일부는 계속 위나라의 영역으로 남았다.

2.1. 회남군(淮南郡)

원래 진(秦)나라가 설치한 구강군(九江郡)이었다. 73년에 부릉왕이 책봉되면서 부릉국이 분할되었으나, 206년에 부릉국이 폐지되어 구강군에 합병되었다. 197년에 원술이 칭제하면서 구강태수를 회남윤(淮南尹)으로 격상시켰으나, 199년에 원술이 패망하여 다시 구강태수가 임명되었다. 위나라 때 회남공이 책봉되면서 회남국(淮南國)으로 개편되었고, 회남국이 다시 군으로 환원되면서 회남군이 되었다.
지명 [진]구강군→[197]회남윤→[199]구강군→[221]회남국→[223]회남군→[232]초국(楚國)→[249]회남군
소속 진(秦)→[한]양주자사부→[서진]양주
치소 [진]수춘현→[후한]음릉현→[192?]수춘현→[230]합비현(합비신성)→[280]수춘현
부릉국: 부릉현
분합 [148]부릉국→[206]구강군에 합병: 부릉현·전초현·준주현·역양국 및 서주자사부 광릉군 당읍현
전입 [280]하비군 동성현
설치 [280]음릉현(재설치)·당도현(재설치)·종리현(재설치)·부릉현(재설치)·전초현(재설치)·준주현(재설치)·역양현(재설치)·오강현, [서진]임회군 당읍현(재설치)
폐지 [213]부릉현·전초현·준주현·역양국·당읍현, [삼국]음릉현·당도현·종리국
출신 수춘현: 장흠
성덕현: 유엽
하채현: 주태
평아현: 장제
현 미상: 장간
봉작 조옹(曹邕): 회남공(221~)→왕(222~223)
조표: 초왕(23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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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군: 수춘현, 곡양현, 첨현, 역양현, 우루현, 안풍현, 서현, 음릉현, 동성현, 종리현, 건양현, 육현, 거소현 이외 미상
전한 구강군(15현 150,052호 780,525구): 수춘읍, 준주현, 성덕현, 탁고현, 음릉현, 역양현, 당도국, 종리현, 합비현, 동성현, 박향국, 곡양국, 건양현, 전초현, 부릉현
구강군연평군(延平郡), 성덕현→평아현(平阿縣), 음릉현→음륙현(陰陸縣), 역양현→명의현(明義縣), 당도국→산취현(山聚縣), 종리현→잠부현(蠶富縣), 동성현→무성현(武城縣), 박향국→양륙현(揚陸縣), 곡양국→연평정현(延平亭縣), 부릉현→부륙현(阜陸縣)
후한 구강군(14성 89,436호 432,426구)[2]: 음릉현, 수춘현, 준주현, 성덕현, 서곡양현, 합비국, 역양국, 당도현, 전초현, 종리국, 부릉현, 하채현, 평아현, 의성현
부릉국(阜陵國): 부릉현, 전초현, 역양현, 준주현, 당읍현
서진 회남군(16현 33,400호): 수춘현, 성덕현, 하채현, 의성현, 서곡양현, 평아현, 역양현, 전초현, 부릉현, 종리현, 합비현, 준주현, 음릉현, 당도현, 동성현, 오강현 }}}}}}}}}

2.1.1. 부릉국(阜陵國)

73년에 부릉왕이 책봉되면서 설치되었으나, 76년에 부릉왕이 열후로 강등되면서 폐지되었고, 87년에 다시 부릉왕으로 복귀되었다가 91년에 단절되었으며, 93년에 부릉왕이 책봉되었다가 145년에 단절되었고, 147년에 다시 부릉왕이 책봉되어, 재설치와 폐지를 반복했다. 부릉왕의 식읍은 5현이었는데, 부릉현과 전초현 이외에 소속된 3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속한서』 군국지에는 부릉국이 누락되어 있으며, 광릉군 소속현으로 11곳을 제시하고 있으나 여기에서 해릉현이 누락되어 있다. 아마도 광릉군 당읍현에 부릉국 소속되었는데, 군국지의 저자가 광릉군에 당읍현을 기재하면서 해릉현을 누락시키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2개 현은 부릉현 인근에 있는 역양현과 준주현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206년에 부릉왕 유사(劉赦)의 후사가 없어 단절되면서 부릉국이 폐지되고 구강군으로 합병되었다.

유수구 전투 이후인 213년 무렵에 조조손권과의 대치가 장기화할 거라 여기고 회수(淮水) 이남과 장강 이북 사이에 있는 지역의 주민들을 회수 이북으로 이주시키려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장강을 건너가 손권에게 망명해 버렸기에 회수 이남 지역에 무인지대가 형성되었다. 이때의 영향으로 원래 부릉국 소속으로 추정되는 5개 현이 사실상 폐지되었다. 손권이 250년에 부릉현·전초현·당읍현 등을 점령하였으나, 이미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기에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2.2. 여강군(廬江郡)

원래 여강군은 진나라 때부터 강남에 위치했던 군이었는데, 이때의 여강군은 실제로는 예장군의 연혁과 이어진다. 기원전 121년에 이름만 같고 옛 여강군과는 다른 군이 구강군을 분할해 강북 지역에 신설되었다. 193년에 원술은 여강태수 육강에게 군량을 빌리고자 했었는데, 이것이 거부당하자 손책에게 여강태수 자리를 약속하며 육강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195년에 육강이 멸망했으나, 원술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유훈을 여강태수로 임명해 보냈고, 이 일로 손책은 원술에게서 독립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후일 손책이 강동지역에서 독립하자, 손책은 이술을 여강태수로 삼아 유훈을 공격했고, 원술 세력이 멸망하면서 여강군은 이술의 수중에 들어갔다. 손권이 이술을 제거한 뒤에는 군소 군벌이 할거하는 무주지 상태가 되었으나, 적벽대전 이후에 조조와 손권이 유수구에서 대치하면서 여강군은 사실상 두 세력에 양분되었다. 조조는 거소현 이북을 장악했고, 환현 이남은 손권의 차지가 되었다.
지명 [-121]여강군→[85]육안국(六安國)→[88]여강군→[222]여강국→[223]여강군
소속 [한]양주자사부→[서진]양주
치소 [-121]서현→[213?]환현→[214]육안현→[280]서현
분합 [214]여강군(손권)→[280]여강군 재통합: 환현·임호국·양안현·심양현·송자현
[220]예주 안풍군: 안풍현(安風縣)·우루현·요현·안풍현(安豐縣)
설치 [168?]송자현, [280]서현(재설치)·거소현(재설치)
폐지 [삼국]서현·거소현
출신 서현: 주유
송자현: 진무
안풍현(安豐縣): 정봉(丁奉)·정봉(丁封) 형제
봉작 조휘(曹徽): 여강왕(2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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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여강군(12현 124,383호 457,333구): 서현, 거소현, 용서현, 임호현, 우루현, 양안현, 종양현, 심양현, 첨현, 환현, 호릉읍, 송자국
서현→곤향현(昆鄕縣), 양안현→여강정현(廬江亭縣), 송자국→송선현(誦善縣)
후한 여강군(14성 101,392호 424,683구): 서현, 우루국, 심양현, 첨현, 임호국, 용서국, 양안현, 환현, 거소국, 육안현, 요국, 안풍현, 양천국, 안풍국
서진 여강군(10현 4,200호): 양천현, 서현, 잠현[3], 환현, 심양현, 거소현, 임호현, 양안현, 용서현, 육안현[4] }}}}}}}}}

3. 소속 양주목

의외의 사실일지도 모르나, 손책이나 손권은 한 번도 양주목이나 양주자사를 자처한 적이 없었다. 손권이 양주목을 처음 임명한 것도 조비를 격퇴할 무렵에 단양태수 여범에게 양주목을 겸하게 한 것이 시초였다. 비록 손씨 일가는 양주자사 등을 자처하지 않았으나, 강동 지방의 태수들을 임명하고 새로운 군·현도 설치했다.

손책이 차지한 양주 남부 지방은 당대에도 강동이라고 불렀는데, 장강 이남에 해당함에도 이를 강남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강동이라고 하는 이유는, 양주의 서부를 이루는 예장군이 장강의 지류인 감강(贛江)의 유역지대에 해당하고, 이 감강이 장강과 합류하여 흐르는 노선을 기준으로 보면 강동이 되기 때문이다.[6] 손씨 일가가 강동을 차지할 무렵만 하더라도 강동 지방은 면적만 넓고 그리 발달하지 못한 오지에 가까운 지역이었으나, 후한 말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기에, 오나라가 중국 역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의는 상당히 높게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이 시기에 많은 군·현이 설치된 것으로도 그 역할이 충분히 증명된다. 이후 남북조시대오대십국시대를 거치면서 강동 지방은 중국 경제를 좌우하는 중심지로 성장했다.

3.1. 단양군(丹揚郡)

정식 이름은 '丹揚郡'인데, '丹楊郡'이나 '丹陽郡' 등도 혼용되어 쓰였다. 원래 진(秦)나라가 회계군을 분할해 설치한 장군(鄣郡)이었는데, 당시 장군에는 어떤 현들이 소속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장군의 치소도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전한 때인 기원전 121년에 이름을 단양군으로 고쳤다. 200~215년 사이에 군을 분할해 임천군을 설치했으나, 229년에 폐지하여 단양군에 합병했다. 208년에 군을 분할해 신도군을 설치했다. 258년에 군을 분할해 고장군을 설치했으나, 264년에 폐지하여 단양군에 합병했다.
지명 [진]장군→[-121]단양군
소속 진(秦)→[한]양주자사부→[서진]양주
치소 [-121]완릉현→[212]건업현 단양군성→[254]완릉현→[258]건업현 단양군성→[264]완릉현→[280]말릉현
임천군: 경현?
분합 [200?]임천군→[229]단양군에 합병: 경현·능양현·석성현·안오현·시안현
[208]신도군: 흡현·이현
[258]고장군→[264]단양군에 합병→[281]선성군(宣城郡): 완릉현·고장현·어잠현·춘곡현·선성현·안길현·원향현·영국현·회안현·임성현·광덕현·경현·능양현·석성현·안오현
전입 [228]동안군 어잠현
설치 [147]선성현, [185]안길현(고장현 분할)·원향현(고장현 분할), [196]안오현, [208]영국현·회안현, [222]영평현, [243]임성현, [삼국]우호독농교위·구양현·광덕현·시안현, [서진]임강현(말릉현 분할)·건업현(말릉현 분할)
전출 [226]어잠현→동안군, [266]고장현·어잠현·안길현·원향현→오흥군
폐지 [삼국]시안현, [서진]구양현
출신 단양현: 도겸
구용현: 하희
율양현: 장제
고장현: 주치,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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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소속 현 미상
전한 단양군(17현 107,541호 405,171구): 완릉현, 어참현, 강승현, 춘곡현, 말릉현, 고장현, 구용현, 경현, 단양현, 석성현, 호숙현, 능양현, 무호현, 유현, 율양현, 흡현, 선성현
완릉현→무완현(無宛縣), 강승현→상무현(相武縣), 말릉현→선정현(宣亭縣), 고장현→후망현(候望縣), 유현→삭로현(愬虜縣)
후한 단양군(16성 136,518호 630,545구): 완릉현, 율양현, 단양현, 고장현, 어잠현, 경현, 흡현, 유현, 능양현, 무호현, 말릉현, 호숙국, 구용현, 강승현, 춘곡현, 석성현
서진 단양군(11현 51,500호): 건업현, 강녕현, 단양현, 우호현, 무호현, 영세현, 율양현, 강승현, 구용현, 호숙현, 말릉현 }}}}}}}}}

3.2. 신도군(新都郡)

208년에 단양군을 분할해 설치한 군으로, 이때 하제가 신도태수가 되었다. 오나라가 멸망한 뒤에 신안군(新安郡)으로 개명되었다.
지명 [208]신도군→[280]신안군
소속 [208]양주자사부→[서진]양주
치소 시신현
전입 [208]단양군 흡현·이현
설치 [208]시신현(흡현 분할)·신정현·여양현(흡현 분할)·휴양현(흡현 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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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신안군(6현 5,000호): 시신현, 수안현, 유현, 흡현, 해녕현, 여양현 }}}}}}}}}

3.3. 고장군(古鄣郡)

200~215년 사이에 임천군(臨川郡)을 설치하였으나, 229년에 폐지하여 단양군으로 환원했다. 258년에 단양군을 분할해 고장군을 설치했는데, 임천군이 운영되었을 때 소속되었던 현들이 포함되었다. 264년에 고장군이 폐지되어 다시 단양군에 환원되었다. 서진 때인 281년에 다시 선성군(宣城郡)으로 분할되었다.
지명 [200?]임천군, [258]고장군, [281]선성군
소속 [200?]양주→[229]단양군에 합병, [258]양주→[264]단양군에 합병, [281]양주
치소 [200?]경현?, [258]완릉현
전입 [200]단양군 경현·능양현·석성현·안오현·시안현
[258]단양군 완릉현·고장현·어잠현·춘곡현·선성현·안길현·원향현·영국현·회안현·임성현·광덕현·경현·능양현·석성현·안오현
[281]단양군 완릉현·춘곡현·선성현·영국현·회안현·임성현·광덕현·경현·능양현·석성현·안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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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선성군(11현 23,500호): 완릉현, 선성현, 능양현, 안오현, 임성현, 석성현, 경현, 춘곡현, 광덕현, 영국현, 회안현 }}}}}}}}}

3.3.1. 임천군(臨川郡)

단양군 경현·능양현·석성현·안오현을 분할해 임천군을 설치했었는데, 그 시점이 명확하지 않다. 주연이 19세 때 현장을 시작으로 유수구 전투 시점 이전까지 임천태수로 승진했다는 점을 보아, 200~215년 사이의 일로 분석될 뿐이다. 229년에 폐지하여 단양군으로 환원하였다. 임천군에 소속되었던 현들은 258~264년 동안 고장군에 소속되기도 했다.

3.4. 오군(吳郡)

후한 때인 129년에 회계군을 분할해 설치했다. 226년에 군을 분할해 동안군을 설치하였으나, 228년에 폐지하여 오군에 합병했다. 오나라 때 비릉현에 전농교위를 두어 몇 개의 현을 관할하게 했는데, 서진이 281년에 비릉군(毗陵郡)으로 분할했다. 266년에 군을 분할해 오흥군을 설치했다.
소속 [후한]양주자사부→[서진]양주
치소 오현
동안군: 부춘현 동안군성
비릉전농교위: 비릉현→[281]단도현
오흥군: 오정현
분합 [226]동안군→[228]오군에 합병: 부춘현·전당현·건덕현·동려현·신창현·임수현·신성현 및 단양군 어잠현
[삼국]서부도위→[234?]비릉전농교위→[280]폐지→[281]비릉군: 비릉현·단도현·곡아현·무석현
[266]오흥군: 오정현·임수현·여항현·양선현·영안현 및 단양군 고장현·어잠현·안길현·원향현
설치 [194]영안현, [195]영현, [201]해창둔전도위, [211?]임수현, [225]건덕현·동로현·신창현·신성현, [삼국]사염도위, [280?]비릉군 무석현(재설치)·연릉현(운양현 분할)·무진현·기양현 및 오흥군 동천현·장성현
폐지 [222]영현, [228?]신성현, [서진]오흥군 양선현, [삼국]무석현
출신 오현: 오의 4성(四姓) 일족, 무열황후·오경 남매
부춘현: 손견 등 손씨 황족, 서곤·서부인
전당현: 전종 등 전씨 호족
단도현: 화핵
운양현: 위소
무석현: 고대
오정현: 오찬, 서상
여항현: 능조·능통·능열·능봉 3대
양선현: 주방·주처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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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오군(13성 164,164호 700,782구): 오현, 해염현, 오정현, 여항현, 비릉현, 단도현, 곡아현, 유권현, 전당현, 부춘현, 양선읍, 무석국, 누현
서진 오군(11현 25,000호): 오현, 가흥현, 해염현, 염관현, 전당현, 부춘현[9], 동로현, 건덕현, 수창현, 해우현, 누현
오흥군(10현 24,000호): 오정현, 임안현, 여항현, 무강현, 동천현, 어잠현, 고장현, 안길현, 원향현, 장성현
비릉군(7현 12,000호): 단도현, 곡아현, 무진현, 연릉현, 비릉현, 기양현, 무석현 }}}}}}}}}

3.4.1. 동안군(東安郡)

226년에 오군 부춘현·전당현·건덕현·동려현·신창현·임수현·신성현과 단양군 어잠현을 분할해 동안군을 설치하였으나 228년에 폐지하여 원래대로 환원하였다. 참고로 이때 동안군에 소속되었던 어잠현은 260년에는 고장군에 소속되었다.

3.4.2. 비릉전농교위부(毗陵典農校尉部)

원래 오군 서부도위(西部都尉)가 관할하던 지역이었으나, 둔전제를 실시하면서 서부도위를 비릉전농교위로 전환했다. 서부도위와 비릉전농교위부의 설치 시점은 정확하지 않고, 비릉전농교위부가 적오(赤烏) 연간인 238~251년 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분석될 뿐인데, 단도현과 곡아현이 같은 해인 234년에 개명된 점으로 볼 때 이 해에 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오나라 멸망 이후 운영하지 않다가 281년에 비릉군(毗陵郡)으로 분할했다.

3.4.3. 오흥군(吳興郡)

266년에 오군 오정현·임수현·여항현·양선현·영안현과 단양군 고장현·어잠현·안길현·원향현을 분할해 오흥군을 설치했다. 참고로 임수현은 226년에는 동안군에 소속되었으며, 단양군에서 분할되었던 현들은 260년에는 고장군에 소속된 현들이다.

3.5. 회계군(會稽郡)

원래 진(秦)나라가 설치한 군으로, 전한 때 영포가 죽은 이후 한동안 오국(吳國)의 영역이 되었으나, 오초7국의 난 이후 다시 중앙 직할의 회계군이 되었다. 전한 초기까지 회계군은 최악의 벽지 취급을 받았기에 악명높은 유배지였다. 일남군이 설치되면서 그보다는 덜한(...) 유배지가 되었으나, 여전히 중원에서 추방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편이다. 후한 말부터는 상당한 발전을 이루어 수많은 현이 설치되고, 최종적으로는 여러 군으로 분할되는 만큼 성장했다.
소속 진(秦)→[한]양주자사부→[서진]양주
치소 [진]오현→[후한]산음현
동양군: 장산현
분합 [삼국]동부도위→[257]임해군: 장안현·영녕현·송양현·남시평현·임해현·나양현
[196?]남부도위→[260]건안군: 건안현·후관현·오흥현·건평현
[삼국]서부도위→[266]동양군: 장산현·오상현·태말현·신안현·오녕현·풍안현·정양현·평창현·영강현
전입 [228]동안군 태말현·신안현
설치 [191]시녕현(상우현 분할), [192]장산현(오상현 분할), [193]오녕현(제기현 분할)·신안현(태말현 분할), [195]풍안현(제기현 분할), [196]건안현·후관현·한흥현, [203]송양현, [205]건평현, [218]정양현·수창현(태말현 분할), [245]영강현(오상현 분할)·무의현, [삼국]남시평현(장안현 분할)·임해현(장안현·영녕현 분할)·나양현, [서진]무의현(재설치)
전출 [226]태말현·신안현→동안군
폐지 [삼국]무의현
출신 산음현: 감택, 하제, 종리목
상우현: 주준, 오범
여요현: 우번, 동습
구장현: 반숙
장산현: 유찬
오상현: 낙통
봉작 손량(孫亮): 회계왕(258~260)
손수: 회계군공(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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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군: 오현, 오정현, 연릉현, 해염현, 말릉현, 부춘현, 단도현, 전당현, 여항현, 유권현, 산음현, 제기현, 오상현, 태말현, 구장현, 여요현, 상우현, 강승현, 단양현, 누현, 양선현, 곡아현, 은현, 이현, 흡현, 비장현, 절강현(浙江縣·연혁 미상) 이외 미상
전한 회계군(26현 223,038호 1,032,604구): 오현, 곡아현, 오상현, 비릉현, 여기현, 양선현, 제기현, 무석현, 산음현, 단도현, 여요현, 누현, 상우현, 해염현, 섬현, 유권현, 대말현, 오정현, 구장현, 여항현, 은현, 전당현, 무현, 부춘현, 야현, 회포현
오현→태덕현(泰德縣), 곡아현→풍미현(風美縣), 오상현→오효현(烏孝縣), 비릉현→비전현(毗壇縣), 여기현→여연현(餘衍縣), 제기현→소로현(疏虜縣), 누현→누치현(婁治縣), 상우현→회계현(會稽縣), 해염현→전무현(展武縣), 섬현→진충현(盡忠縣), 대말현→말치현(末治縣), 여항현→진목현(進睦縣), 은현→근현(謹縣), 전당현→천정현(泉亭縣), 무현→해치현(海治縣), 부춘현→주세현(誅歲縣)
후한 회계군(14성 123,090호 481,196구): 산음현, 무현, 오상현, 제기현, 여기현, 태말현, 상우현, 섬현, 여요현, 구장현, 은현, 장안현, 영녕현, 동부후국[10]
서진 회계군(10현 30,000호): 산음현, 상우현, 여요현, 구장현, 은현, 무현, 시녕현, 섬현, 영흥현, 제기현
동양군(9현 12,000호): 장산현, 영강현, 오상현, 오녕현, 태말현, 신안현, 풍안현, 정양현, 수창현 }}}}}}}}}

3.5.1. 동양군(東陽郡)

정확히 언제부터 회계군에 서부도위(西部都尉)가 설치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후한 말로 추정된다. 266년에 서부도위부를 승격시켜 동양군을 설치했다.

3.6. 임해군(臨海郡)

정확히 언제부터 회계군에 동부도위(東部都尉)가 설치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후한 말로 추정된다. 257년에 회계동부도위부를 승격시켜 임해군을 설치했다.
지명 [삼국]회계동부도위부→[257]임해군
소속 [삼국]양주 회계군→[257]양주→[서진]양주
치소 장안현
전입 [257]장안현·영녕현·송양현·남시평현·임해현·나양현
설치 [257]나강현, [269]횡서선둔, [서진]영해현
전출 [282]나강현→진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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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임해군(8현 18,000호): 장안현, 임해현, 시풍현, 영녕현, 영해현, 송양현, 안고현, 횡양현 }}}}}}}}}

3.7. 건안군(建安郡)

원래 민월(閩越)의 영역이었다. 진(秦)나라가 민중군(閩中郡)을 설치하여 이곳을 영역화하려 했으나, 유지되지 못하고 멸망했다. 전한 때인 기원전 135년에 한무제가 다시 옛 민중군 동야현을 설치하고 회계군에 소속시켰다. 광무제는 이를 폐지하고 회계군의 동부후관(東部候官)이 이 지역의 치안을 맡게 했다. 손권이 이 일대를 개척하여 196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현이 설치되었는데, 이와 비슷한 시점에 회계군 남부도위(南部都尉)를 설치했다. 260년에 회계남부도위부를 승격시켜 건안군을 설치했다. 오나라 멸망 이후인 282년에 서진이 군을 분할해 진안군(晉安郡)이 설치했다.
지명 [진]민중군, [196?]회계동부도위부→[260]건안군
소속 민월→진(秦)→민월→한(漢), [196?]양주 회계군→[260]양주→[서진]강주(江州)
치소 건안현
진안군: [서진]후관현
분합 [282]강주 진안군: 후관현 및 임해군 나강현
전입 [260]건안현·후관현·오흥현·건평현 및 예장군 건평현
설치 [260]장락현, [269]전선교위·온마선둔, [서진]동평현 및 진안군 완평현·동안현·신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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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군: 동야현 이외 미상
서진 건안현(7현 4,300호): 건안현, 오흥현, 동평현, 건양현, 장락현, 소무현, 연평현
진안군(8현 4,300호): 원풍현, 신라현, 완평현, 동안현, 후관현, 나강현, 진안현, 온마현 }}}}}}}}}

3.8. 예장군(豫章郡)

'豫樟郡'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원래 진(秦)나라의 여강군(廬江郡)이었는데, 전한 초기에 회남왕의 영지를 구성하는 과정 중에 예장군이 분할되었다. 기원전 121년에 여강군을 반으로 분할해 서부는 예장군에 소속시키고 동쪽은 장군에 소속시키면서, 구강군의 강북 지역을 분할해 새로 군을 설치했는데 이를 여강군으로 명명했다.(...) 이에 따라 여강군이 원래 이름을 따온 여수(廬水)는 장군의 후신인 단양군에 있고, 여강군의 원래 영역은 대부분 예장군에 소속되었으며, 정작 여강군은 이전의 여강군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 후한 말인 191년에 여릉군이 분할되었고, 208년에 군을 분할해 팽택군(彭澤郡)을 설치하였으나 210년에 파양군으로 고쳤으며, 257년에 군을 분할해 임천군을 설치했다.
지명 [진]여강군→[전한]예장군
소속 진(秦)→[한]양주자사부→[서진]강주(江州)
치소 [진]파양현→[전한]남창현
분합 [191]여릉군: 여릉현·석양현·평도현·우도현·감현·남야현
[208]팽택군→[210]파양군: 팽택현·파양현·역릉현·여한현·교양현·낙안현·갈양현·상요현
[257]임천군: 남성현·임여현
전입 [210]팽택군 팽택현, [서진]파양군 종릉현
설치 [185]한평현·상채현·영수현·신오현·낙안현, [196?]예장현, [199]갈양현·상요현, [205]건평현, [225]양락현, [삼국]의풍현·부성현, [280?]풍성현
전출 [260]건평현→건안군, [221]시상현→형주 무창군, [267]의춘현→안성군
폐지 [서진]부성현
출신 신감현: 섭우
봉작 손만: 예장왕(26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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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군: 파양현, 신감현, 교양현, 여릉현, 안평현, 남창현, 여한현, 남야현 이외 미상
전한 예장군(18현 67,462호 351,965구): 남창현, 여릉현, 팽택현, 파양현, 역릉현, 여한현, 시상현, 애현, 감현, 신감현, 남성현, 건성현, 의춘현, 해혼현, 우도현, 교양현, 남야현, 안평국
예장군구강군(九江郡), 남창현→의선현(宜善縣), 여릉현(廬陵縣)→환정현(桓亭縣), 파양현→향정현(鄕亭縣), 역릉현→포정현(蒲亭縣), 여한현→치간현(治干縣), 시상현→구강정현(九江亭縣), 애현→치한현(治翰縣), 신감현→우정현(偶亭縣), 건성현→다취현(多聚縣), 의춘현→수효현(修曉縣), 해혼현→의생현(宜生縣), 교양현→예장현(豫章縣), 안평국→안녕현(安寧縣)
후한 예장군(21성 406,496호 1,668,906구): 남창현, 건성현, 신감현, 의춘현, 여릉현, 감현, 우도현, 남야현, 남성현, 파양현, 역릉현, 여한현, 교양현, 팽택현, 시상현, 애현, 해혼국, 평도국, 석양현, 임여현, 건창현
서진 예장군(16현 35,000호): 남창현, 해혼현, 신감현, 건성현, 망채현, 영수현, 건창현, 오평현, 예녕현[11], 팽택현, 애현, 강락현, 풍성현, 신오현, 의풍현, 종릉현 }}}}}}}}}

3.9. 여릉군(廬陵郡)

후한 말인 191년에 동지라는 인물이 예장군의 일부를 장악하여 여릉태수를 자칭했는데, 손책이 199년 무렵에 손보를 여릉태수로 임명하여 동지와 싸우게 했고, 동지가 멸망한 뒤에도 여릉군은 계속 유지되었다. 236년에 남부도위(南部都尉)를 설치하였고, 267년에 군을 분할해 안성군을 설치했다. 서진 때 여릉남부도위부를 승격시켜 남강군(南康郡)을 설치했다.
소속 [191]양주자사부→[서진]강주(江州)
치소 [191]고창현→[서진]석양현
남부도위: 우도현
안성군: 평도현
분합 [236]남부도위→[282]강주 남강군: 우도현·공현·남야현·양양현·평양현·양도현
[267]형주 안성군: 평도현·영신현 및 예장군 의춘현 및 형주 장사군 안성현
전입 [191]예장군 여릉현·석양현·평도현·우도현·감현·남야현, [서진]남강군 남야현
설치 [191]서창현(여릉현 분할)·양성현·남안현, [194]흥평현, [199]수흥현, [200?]파구현, [215?]영신현, [236?]양양현·평양현, [252]동창현, [253]길양현, [267]안성군 신유현·평향현, [삼국]양도현, [280?]안성군 광흥현
폐지 [서진]양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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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여릉군(10현 12,200호): 서창현, 고창현, 석양현, 파구현, 남야현, 동창현, 수흥현, 길양현, 흥평현, 양풍현
남강군(5현 1,400호): 감현, 우도현, 평고현, 남강현, 양양현
안성군(7현 3,000호): 평도현, 의양현[12], 신유현, 영신현, 안부현, 평향현, 광흥현 }}}}}}}}}

3.9.1. 여릉남부도위부(廬陵南部都尉部)

236년에 여릉남부도위를 설치했다. 오나라 멸망 이후인 282년에 여릉남부도위부를 승격시켜 남강군(南康郡)을 설치하고 강주(江州)에 소속시켰다.

3.9.2. 안성군(安成郡)

267년에 여릉군 평도현·영신현과 예장군 의춘현 및 형주 장사군 안성현을 분할해 안성군을 설치했다.

3.10. 파양군(鄱陽郡)

208년 적벽대전 직후에 여범이 팽택태수 겸 비장군으로 임명되었는데, 여범이 언제까지 팽택태수로 재임했는지 알 수 없으나, 209년 말에 손권이 거기장군을 자칭하고 그 무렵에 여범도 평남장군으로 승진하여 시상현에 주둔했기에, 221년에 단양태수로 전보될 때까지 팽택태수를 맡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210년에 파양군이 설치되었는데, 파양군에 소속된 현들과 팽택현의 위치를 살펴보면, 팽택군(彭澤郡)은 파양군의 전신으로 팽택현에 치소를 두는 군이었으나, 210년에 팽택현을 다시 예장군에 환원하면서 파양현에 새로운 치소가 마련되고, 파양군으로 개명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 보즐이 파양태수로 임명되었다.
지명 [208]팽택군→[210]파양군
소속 [208]양주자사부→[서진]강주(江州)
치소 [208]팽택현→[210]파양현→[서진]광진현
전입 [208]예장군 팽택현·파양현·역릉현·여한현·교양현·낙안현·갈양현(여한현 분할)·상요현
설치 [210]광창현, [삼국]종릉현, [280?]진흥현(여한현 분할)
전출 [210]팽택현→예장군, [서진]종릉현→예장군
폐지 [서진]상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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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파양군(8현 6,100호): 광진현, 파양현, 낙평현[13], 여한현, 교양현, 역릉현, 갈양현, 진흥현 }}}}}}}}}

3.11. 임천군(臨川郡)

예장군에 동부도위(東部都尉)가 언제 설치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손권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257년에 예장동부도위부(豫章東部都尉部)를 승격시켜 임천군을 설치했다. 참고로 주연이 태수를 맡았던 임천군은 단양군을 분할해 만들었던 것이며, 이 임천군은 주연 사후에 예장군을 분할해 설치한 것이므로, 이름이 한자까지 똑같은 서로 다른 군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명 [삼국]예장동부도위부→[257]임천군
소속 [삼국]양주 예장군→[257]임천군→[서진]강주(江州)
치소 [257]남성현→[서진]임여현
전입 [257]예장군 남성현·임여현
설치 [257?]동흥현·남풍현·의황현·영성현·안포현·신건현·서평현·서성현, [서진]신남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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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임천군(10현 8,500호): 임여현, 서풍현, 남성현, 동흥현, 남풍현, 영성현[14], 의황현, 안포현, 서녕현, 신건현 }}}}}}}}}

3.12. 여강군(廬江郡)

214년에 손권이 여강태수 주광을 사로잡고 환현을 점령하여, 환현 이남의 임호국·양안현·심양현·송자현이 손권의 영역이 되었다.
소속 [214]양주→[280]여강군 재통합
치소 환현
전입 [214]여강군 환현·임호국·양안현·심양현·송자현, [280]기춘군 심양현
설치 [280]임호현(재설치)·양안현(재설치)
전출 [221]심양현→형주 무창군, [280]송자현→예주 안풍군
폐지 [243]임호현·양안현

3.13. 기춘군(蘄春郡)

208년에 손권이 강하군의 동부를 점령했을 때, 손권에게 점령되지 않았던 동북부 지역 2현인 기춘국·주현이 조조에게 투항하면서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양주자사부에 소속되었다. 213년 무렵에 조조가 회수(淮水) 이남과 장강 이북 사이에 있는 지역의 주민들을 회수 이북으로 이주시키려고 했을 때 기춘군 주민들도 손권에게 투항해 장강을 건너 이주했다고 하나, 기춘군은 원래 이주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인지 폐지되지 않고 계속 유지되었고, 221년 무렵에 손권을 배반하여 위나라로 투항한 진종을 기춘태수로 임명하기도 했다. 223년에 손권이 진종을 습격하여 체포했는데, 이때부터 손권의 영역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오나라 멸망 이후 서진은 기춘군을 폐지하여 예주 익양군에 합병했다.
소속 [208]양주자사부→[280]예주 익양군에 합병
치소 기춘현
전입 [229]무창군 심양현·안풍현
전출 [280]심양현→여강군 및 안풍현→형주 무창군

4. 같이보기

파일:실제 지도 후한 13주.png

[1] 192년 무렵 원술이 구강군을 점거하고 구강군 수춘현을 거점으로 삼았기에, 구강군에 부임할 수 없었던 양주자사 유요가 치소를 곡아현으로 삼았다. 이후 유복이 양주자사로 부임하면서 합비현에 치소를 마련했고, 합비 공방전이 장기간 안정화되면서 240년에 초국 수춘현으로 양주자사의 치소를 이전했다. 서진이 삼국을 통일한 뒤에 단양군 건업현을 양주자사의 치소로 정했다.[2] 『속한서』 군국지에는 부릉국이 누락되어 있고, 역양현은 후국(侯國)이라 하였는데, 언제 누가 책봉되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구강군 부릉현·전초현·역양현·준주현과 광릉군 당읍현이 부릉국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3] 『진서』 지리지에는 잠천현(灊天縣)으로 오기(誤記)되었다.[4] 『진서』 지리지에는 전한 이전 이름인 '육현'으로 표기되었다.[5] 유방이 동네 건달 시절 큰형 집에 같은 건달 친구들을 데리고 갔을 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형수가 일부러 솥을 긁는 소리를 내며 국을 퍼와 유방 일행을 쫓아낸 적이 있었다. 유방이 나중에 황제가 되자, 이 일에 앙심을 품고 큰형의 아들인 유신(劉信)을 제후로 삼지 않았는데, 유방의 아버지가 이를 책망하자 마지못해 유신을 제후로 책봉하여, 서현을 식읍으로 수여했다. 보통 이러면 유신을 서후(舒侯)로 호칭해야 하지만, 유방이 뒤끝(...)을 부려 유신을 '갱갈후(羹頡侯)'로 명명했다. '羹'은 국을 뜻하고 '頡'은 마찰하는 소리를 뜻하므로, '국 긁는 소리'란 의미로, 형수에게 그때의 일을 잊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이다.인성 흔히 '頡'을 '힐'로 읽어서 갱힐후라고 읽거나 '戞'과 음이 같다는 주석에 따라 '알'로 읽어서 갱알후라고 하는데, 현대 한자음으로 '긁는 소리'를 뜻할 때는 '갈'로 읽는다.[6] 중국에서 '강남'은 명나라 때의 남직례(南直隷) 지역인 안후이성장쑤성의 별명이었으며, 현대에는 주로 양쯔강 삼각주 일대를 가리킨다.[7] 손책은 동지를 공격하고자 199년 무렵에 여릉태수를 임명했고, 동지가 멸망한 뒤에도 그대로 운영했다.[8] 비장현이 아니라 장현(鄣縣)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9] 『진서』 지리지에는 부양현(富陽縣)으로 오기되었다.[10] 동부후국(東部侯國)은 동부후관(東部候官)의 오기이다. 후한 때에는 야현을 폐지하여 태수 직할의 동부후관을 두었다.[11] 『진서』 지리지에는 예장현(豫章縣)으로 오기되었다.[12] 『진서』 지리지에는 개명 이전 이름인 의춘현(宜春縣)으로 표기되었다.[13] 『진서』 지리지에는 개명 이전 이름인 낙안현(樂安縣)으로 표기되었다.[14] 『진서』 지리지에는 영성현(永城縣)이 永成縣으로 오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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