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魏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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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08b><tablebgcolor=#00008b> ||
}}}}}}}}}}}} ||劉馥
? ~ 2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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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원영(元穎)으로 예주 패국 상현(현 안후이성 화이베이시의 일부) 사람.2. 정사 삼국지
전쟁을 피해 양주에 있다가 건안 원년(196년) 원술의 장군인 척기와 진익을 설득해 조조에게 항복하게 하고 이 일에 감명 받은 조조는 그를 속관으로 임명한다.200년에 손책이 임명한 이술이 엄상을 공격해 죽였을 때 여강의 매성, 뇌서, 진란이 수만 명과 함께 들고 일어나 그 일대가 완전히 초토화된다. 여기서 조조는 원소와 싸우느라 그 쪽에 군대를 보낼 여력이 없어 유복이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보고 유복을 양주자사로 임명한다.
그런데 여력이 없다는 조조의 말대로 진짜로 돈, 식량, 부하 없이 혼자서 말 타고 빈 성으로 들어가 관소를 세운다. 말빨만으로 매성, 뇌서, 진란을 설득해 그들이 스스로 공물을 보냈으며, 유복이 은혜와 교화를 계속하여 실천하자 백성들은 그의 정책을 좋아해 산 넘고 물 건너서 귀순하는 자가 헤아릴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러자 유복은 유생들을 모집해 학교를 세우거나 둔전을 넓히면서 여러 제방을 추가로 건축하고 원래 있던 것들은 수리해 사용하자 농사가 잘 되고 관리와 백성들은 재물을 축척할 수 있었다. 또한 성벽과 보루를 높게 쌓으면서 나무와 돌을 쌓거나 풀 수천만 더미를 엮어 물고기 기름 수천 석을 저장해 전쟁 시의 방비 용품으로 삼았다.
유복이 들어간 그 빈 성이 합비성이며, 후에 손권의 10만 대군이 공격해 왔을 때 비가 내려 성벽이 부서지려고 하자 거적으로 성벽을 덮어 붕괴를 막았으며, 밤에는 물고기 기름을 태워 적군을 감시해 손권이 물러나니 그 곳의 사람들은 유복을 추모해 동안우가 진양을 지켰더라도 유복을 뛰어넘지 못했을 거라며 온갖 칭송을 남겼다. 전설의 행정공무원 즉, 현재도 중국의 대도시인 허페이시(합비)를 조정 차원의 지원ㆍ조력이 별로 없이 혼자서 설립한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정치로 이름을 남겼으며, 이와 비슷한 일을 한 사람으로 두기가 있다.
그의 아들 유정(劉靖)이 뒤를 이어 여강태수가 되는데 그도 뛰어난 정치로 이름을 남겼다. 항목 참조.
3. 삼국지연의
초반에 등장하지 않다가 적벽대전 전야 술취한 조조가 창을 들고 단가행을 읖을 때 처음 등장한다. 이 때 유복이 단가행의 '달은 밝고 별 드문데, 까막까치는 앉을 가지가 없다' 구절이 불길하다고 하자 화가 난 조조가 창으로 찔러(!?) 죽인다. 다음 날 술에서 깨어 난 조조는 이를 후회하면서 유복을 삼공의 예로 장사지낸다.참고로 이 장면은 나관중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어이없는 것들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해 나관중이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알기는 힘들어도 추측해보자면 삼국시대 당시 민간인에게 제일 와닿도록 '인의에 입각한 통치'를 한 손권의 세력이 서주 대학살 등 민간에게 가혹한 통치를 행한 조조의 뒤를 잇는 세력들에게 막힌 요인으로도 꼽히는 합비 공방전[1] 당시 합비성 요새화에 기여했던데 대해 소설의 주 수요층인 민중의 심정을 반영한 각색일 수는 있다. 더욱이 조조의 서주지배권은 이 인물이 합비를 요새화하며 조조가 당시 행했던 대학살에도 불구하고 공고해졌다. 조조가 화북 내 주요 세력으로 성장하는 전투들에서의 주요 등장 인물들은 역사 내에서 본인 위치에서 처한 상황 내 최선을 다한 인물들이어도 묘하게 연의 내에서 취급이 좋지 않다. 포신[2], 순우경[3] 등이 대표적이고 유복의 경우 상기 인물들처럼 특별한 불명예까지는 얻지 않았지만 주군의 주사로 인한 사망은 어이없는 사망으로 손꼽힌다.
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0, 11 |
삼국지 12, 13, 14 |
삼국지 10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정치력은 80대 중후반, 매력 80대 초중반에 둔전이나 농업 관련 특기를 항상 갖고 나오는 A-급 문관이다. 후방에 배치하여 열심히 내정을 돌리자. 아쉽게도 합비 이벤트는 존재하지 않는데 합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시리즈가 많아서... 그 외에 연의에서 조조에게 허무하게 죽었기에 비자연사를 줄 수도 있었으나 코에이에서도 이 에피소드가 너무 황당하다고 생각했는지 후기 시리즈에서는 208년 자연사로 되어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매 순으로 54/50/73/87/84이며 특기 6개는(농업, 기술, 보수, 치안, 고무, 지리) 내정쪽에 집중되어 있고 통솔이 낮기 때문에 전투에서 쓸 일은 거의 없겠지만 농업, 기술 특기만으로도 훌륭한 내정 요원이라 쓰임새는 충분하다. 통솔력, 무력이 낮기 때문에 효용은 떨어지지만, 혼자서 합비를 재건한 것을 반영해서 깨알같이 보수와 치안 특기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1에서는 특기로 둔전이 있다. 초급이나 상급 난이도에서는 군량이 넘쳐나서 쓸모없는 특기이지만 특급에서는 군량과 돈이 드럽게 안 모여서 군사들 먹일 군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특기다. 특히 유복은 조조군 초반기 시나리오부터 등장해서 이벤트가 거의 없는 이번작 특성상 동탁의 40만 대군을 사실상 혼자서 막아야 하는 조조군한테 굉장히 도움이 되는 인재. 근데 정치력 80대인 내정가를 항구나 관문에 쳐박고 있기 좀 아깝다.
삼국지 12부터는 합비를 재건할 때 지휘하는 모습을 재현한 일러스트가 생겼는데 자세히 보면 오른손으로 위를 가리키고 있다.
삼국지 13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64/49/74/87이며 중신특성은 농업중시, 특기는 농업 5, 문화 5, 설파 5, 교섭 6으로 전수특기는 교섭보다 1 낮은 농업이다.
전법은 후방지원인데 이게 본작 사기 효과 중 하나인 부상병 회복이 달려 있는데다가 사기 회복도 해 주고 지휘 포인트도 4밖에 잡아먹지 않아 의외의 고성능 전법이다. 싸우다 한 번 씩 써 주면 봄에 새순나듯 병사들이 죽죽 차오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순욱의 왕좌의 완벽한 하위호환이긴 하지만, 순욱 같은 모사가 지천에 널려 있는 것도 아니고 왕좌는 순욱만 가지고 있는 전법이라 크게 의미는 없는 수준.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4, 무력 49, 지력 73, 정치 87, 매력 84로 전작과 달리 지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둔전, 진흥, 교화, 위무, 개수, 주의는 왕도, 정책은 지역진흥 Lv 4, 진형은 안행, 방원, 투석, 전법은 견제, 고무, 치료,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이번작부터 아들 유정이 추가되었다.
4.2. 삼국전투기
천재 유교수의 생활의 유교수로 나온다. 단행본에만 실린 유복전은 꽤 평이 좋은 편이지만 3페이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 단행본을 사기는 어렵다.[4]관도 전투 (9)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며 선행 등장. 다만 유복의 합비 번성기는 위에 나왔듯 단행본으로 빠졌기 때문에 본편에서는 가끔씩 얼굴만 비추는 정도로 등장한다.
여남 전투 편에서는 조조의 명령을 받아 죽은 엄상 대신 새 양주자사로 임명받아 양주로 내려가게 된다. 문제는 손권의 움직임도 심상찮은데다 양주의 치안도 불안한 상태인데, 조조군의 모든 여력이 원소 방면에 집중돼서 유복은 빈손으로 양주에 향해야 했다고 언급되기도 했다.[5] 어쨌든 이후 유복은 당시까지만 해도 빈 성이었던 합비에 자리를 잡고, 쓸데없는 싸움이 일어나면 결국 주민만 피해를 본다는 판단 아래 뇌박과 이술 무리의 싸움을 막기로 결정하여 뇌박을 띄워 줘서 뇌박과 이술의 싸움을 멈추게 했다. 다만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후 여몽이 이술을 죽이고 이술이 엄상을 죽이고 차지했던 구강군 일대까지 죄다 세력권에 넣어서 졸지에 손가 세력 안에 고립된 꼴이 됐다(...)
강릉 전투 편에서는 합비를 맨손으로 일궈낸 인물이며 동시에 합비의 정신적 지주가 유복이라고 언급된다. 그런 유복이 208년경에 죽자 손권이 본격적으로 합비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고 언급된다. 죽기 전에 장제에게 유언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 내용은 160키로를 던져달라는 것. 장제는
4.3. 삼국지톡
여기에서도 등장한다.
4.4. 창천항로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적벽대전 도중이다. 밀린 업무를 처리하던 조조가 지방의 관리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며, 눈여겨 볼 유능한 인재로 꼽았다. 곧이어 정욱이 유복은 병으로 사망했다고 알려 주자, 유복이 죽은 것도 화타의 탓[6]이라며 분노한다.이후 합비를 방문한 조조가 유복의 후임자인 온회와 장제의 회상, 증언을 들으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직접적인 외모 묘사가 나온다.[7] 조조는 합비의 성벽을 따라 걸으며 유복이 해온 일들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합비의 성장은 자신의 상상마저 초월했다고 평하며, 하늘을 향해 유복에게 경의를 표한다. 결코 공이 적다고 할 수 없는 정욱마저 무에서 태어난 합비를 보고 자신은 대체 무엇을 이루었냐며 자괴감에 빠졌을 정도.[8]
4.5. 84부작 삼국지
유복 대신 사욱(師勖)이라는 가상인물이 등장해서 유복 대신 죽는다. 정확히는 유복이 등장하지 않고 삼국지 연의에서 유복의 역할을 사욱이 맡아 죽음을 당한다. 사욱은 악사로써 조조가 자신의 시를 평가해 달라고 하자 호평일색을 했다. 그러나 조조가 혹평도 해달라고 하며 절대 화가 없을 거라고 하자 가사가 전체적으로 불길하다고 했다. 이에 조조가 사욱을 죽여버린다. 이것이 뒷날에 약간 영향을 끼치는데, 정욱이 화공에 대한 방비를 주청하자 조조가 지금은 겨울이니 화공을 가하면 자기 배가 탈 거라며 조언을 듣지 않는다. 이에 정욱이 다시 권하려 했지만 순유가 정욱을 말리며 하는 말이 "어젯밤 사욱의 일을 잊었소?"[1] 엄밀히 오나라 지도층을 구성한 호족들 입장에서도 합비 공방전 당시 손권의 외정을 '열심히 지원은 했지만 가시적 성과가 안 나오는 상황'으로 보고 있었다. 이에 여몽을 필두로 '우리의 실력으로는 합비를 공략해도 서주와 청주 방면을 점령할 지도 미지수인데다가, 설령 절호의 기회가 올지라도 서주와 청주는 수군의 이점을 활용하기도 어려워서 점령 후 지키기도 어렵다. 따라서 형주로의 세력확장을 통해 유비의 세력과 격차가 벌어지는걸 면해보자'는 주장이 계속 힘을 얻었다. 그리고 오나라 호족들 내에서도 지상전 수행능력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된 결과가 번성 공방전 당시 조조와 연합해 관우를 뒷치기하는 수순으로 연결되었다.[2] 대표적인 조조의 거병 초기 공신이지만 반동탁 연합군 거병 당시 군공을 쓸모없이 탐하다가 일족을 잃고 화웅의 기세만 올려주며 관우를 띄우기 위한 주변 장치로 전락했다.[3] 관도대전 당시 원소의 오판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이길 전투상황도 조성했으며 주군인 원소의 주력이 조조의 본진을 치는 상황에서 조조의 주력을 맞이하여 식량 소각만을 위해 찾아온 적들을 상대로 식량을 지켜가며 싸워야하는 불리한 전술적 상황에서도 아슬아슬하게 패배할만큼 선전했는데도 전장에서 술파티나 하는 장수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졸장으로 각색되었다.[4] 스포일러 단행본의 유복전에서는 유복이 전화박스 하나로 시작해서 인덕을 기반으로 담담하게 합비를 번성시키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대사는 한 줄도 없이, 도시가 소리 없이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깨알같이 뇌박과 진란이 등장해서 뇌물을 바치는 건 덤[5] 유복 본인은 오히려 가벼워서 좋다고 괜찮아하는 모습을 보였다.[6] 이 장면 직전에 조조는 '화타가 자신의 초빙에 응하지 않았기에 수많은 병사들이 역병으로 개죽음을 당했다'고 잠꼬대를 하며 화를 냈다.[7] 이 때 이빨이 하나 빠졌으며 사람이 꽤나 좋아보이는 인상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났는데, 복장이 꽤나 낡았다. 온회의 입을 통해 밝혀진 검소한 생활 습관 탓인지, 합비의 발전을 위해 막노동을 해서인지는 불명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합비에서 이만한 성과를 창조해냈으니 둘 다일 가능성이 높다.[8] 다만 본 작품에서 유복은 정욱이 성을 지킬 때 자신의 식사량이 많아 보이도록 밥그릇 안에 넣었던 돌을 소중히 간직하며 관료로서의 의지를 세웠던 것으로 묘사되며, 정욱은 그 돌이 온회에게 다시 이어지는 것을 보며 '비록 자신(정욱)이 이룬 일은 작더라도, 그 의지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는 정욱이 작중에서 '충족을 알고' 은퇴를 결심한 계기로써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