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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4 21:16:37

사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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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부군 이전[추존][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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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는 추존황제를 포함해서 자황색()으로 굵게 쓰고 팔왕은 빨갛게 쓴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종실은 갈색으로 쓴다.
※ 출계(出系)는 취소선을 치고 계자(系子)는 밑줄을 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추존] [2]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3] 친부는 의양성왕[4] 친부는 안평헌왕[5] 숙부(실제로는 종숙) 창무정후에게 출계(出系)[추존] [추존] [8] 친부는 진문제[9] 종숙(실제로는 숙부) 요동도혜왕에게 출계[10] 종숙(실제로는 숙부) 광한상왕에게 출계[추존] [12] 적장자나 두 살에 요절하여 혜제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13] 친부는 회남충장왕[14] 여기까지 서진[15] 친부는 오효왕[16]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17] 숙부 성양애왕에게 출계[18] 친부는 사마유(동래왕)[19]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20] 적장자였던 비릉도왕처럼 한 살에 요절했으나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한다.[21]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22] 백부 진세종에게 출계.[23] 친부는 진무제[24] 친부는 제헌왕[25] 백부 성도왕에게 출계[26] 친부는 제헌왕[27] 숙부 연왕 경에게 출계[28]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를 넣는 시각도 있다.[29] 여기부터 동진[30] 친부는 진문제[31] 윤통(閏統)[32] 숙부 사마익에게 출계[33] 숙부 사마형에게 출계[34] 백부 사마랑에게 출계[35] 숙부 하비헌왕에게 출계[36] 숙부 안평왕에게 출계[37] 친부는 남궁현왕[38] 진안이 장사만 황제의 예로 올리고 시호는 왕으로 하였다.[39] 종조부 사마민에게 출계했다지만 이러면 소목에 어긋나 항렬이 꼬임[40] 종실에서 팔왕의 난에 아니 가담하고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41] 친부는 단수현후. 다만 종조부에게 출계하면 항렬이 꼬여서 친부가 법적으로 종형이 되는데 이 문제는 어찌 된 건지 몰?루[추존] [43] 아니 추존되었으나 칠묘에 동격배향(同格配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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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朗
(171년 ~ 217년)
1. 개요2. 생애3. 미디어 믹스

1. 개요

삼국시대의 인물이자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으로 자는 백달(伯達). 경조윤 사마방장남이자 사마의, 사마부의 맏형으로 사마팔달의 한 사람.

인품이 좋기로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

2. 생애

아홉 살 때, 그의 부친의 자(字)를 묻는 자가 있었는데 사마랑이 다른 사람의 부친을 모멸하는 자는 자신의 부친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여 빈객이 사과했다.

12살 때 경서 시험을 치러 동자랑이 되었는데, 키나 덩치가 어찌나 크고 체격이 좋았는지 사람들이 12살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 심문을 했을 정도였다. 사마랑은 아버지와 어머니 집안 자체가 원래 신체가 크다고 변명했다고 한다. 시험을 감독하는 사람은 그를 남다르게 여겼다. 실제로 사마랑의 조부 사마준도 덩치가 컸다고 한다.

반동탁연합군이 일어나자 서둘러 다른 곳으로 피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옛날에 기주자사였던 이소(李邵)는 야왕(野王)에서 살고 있었는데, 험한 산 가까이에 있었으므로 온현(溫縣)으로 이주하려 했다. 사마랑은 온현과 야왕현은 순망치한의 관계니 그냥 잠시동안 피하는 것이고 게다가 당신은 그 지방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인데 먼저 적이 오기도 전에 달아나면 민심이 동요되어 나쁜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소는 사마랑의 충고를 듣지 않고 피신했는데 산에 접해서 사는 백성들은 과연 소란을 일으켰고, 내지로 이주하고, 어떤 사람은 도적이 되어 약탈을 서슴지 않았다.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를 하자 아버지 사마방은 치류어사였기 때문에 같이 장안으로 옮겨야 했으나, 사마랑이 동탁이 망할 것이라고 예측해 아버지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 어떤 사람은 사마랑이 도망가려 한다고 밀고를 하였으므로, 사마랑을 잡아 동탁에게 보냈다. 그런데 동탁은 사마랑을 보고 나의 죽은 아들과 같은 또래이고, 체격도 거의 비슷하다면서 좋게 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사마랑은 결국 뇌물을 바치고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고향인 하내에 와서는 반동탁연합군이 동탁군에 막히면 이곳에 머물게 될 것이니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모두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조자라는 사람을 빼고는 모두 이 말을 듣지 않았고, 사마랑의 일행이 여양으로 옮긴 뒤에 과연 형양과 하내에 군사들이 머물며 약탈해 백성의 반 이상이 죽었다.

192년에 사마랑은 조조의 부름으로 사공연속, 성고의 령이 되었고, 병 때문에 관직에서 떠났다가 당양의 장이 되었다. 그의 다스림이 관대하고 은혜로워 채찍과 곤장이 없어도 백성들이 말을 참 잘 들었다고 하며, 심지어 배를 만들 때 나중에 이주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마랑을 돕지 못할까 걱정해 몰래 가서 배 만드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원성현령으로 승진을 했다가 중앙으로 들어와 승상주부가 되었고, 정전제의 부활을 요청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전 항목에도 있지만 부차적으로 설명하자면 정전이란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때 시행되었던 법으로 우물정 모양으로 아홉 구간으로 나눈 다음 가운데를 공전으로 두고 주변 8곳은 백성들이 가져가고 공전은 여덟 명이 다같이 경작하여 세금으로 바치는 것을 말한다.

비록 사마랑의 건의는 시행되지 않았지만, 주와 군이 병사를 통솔하는 것은 사마랑이 원래 갖고 있던 뜻이었다. 사마랑은 연주자사로 승진하여 정치와 교화를 널리 시행하해 백성들은 그를 칭찬했다. 사마랑은 비록 군대에서 직무를 맡고 있었지만, 항상 비루한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었으며, 그의 검소함은 아랫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인물 평가와 고전을 좋아했다. 고향 사람 이적 등은 명성과 영예를 대단히 얻었는데, 사마랑은 항상 그들을 폄하하였다. 후에 이구 등은 패하였고, 당시 사람들은 그의 식견에 탄복했다. 종요와 왕찬이 지은 논문에서 성인이 아니고서는 천하를 태평하게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사마랑은 이윤과 안 씨의 무리는 비록 성인은 아니었지만, 그들로 하여금 수대에 걸쳐 서로 이어지게 했다면 태평스러움이 도래하게 했을 것이라고 했다.

217년에 하후돈, 장패 등과 함께 오나라를 정벌하러 갔는데 역병이 돌자 사마랑은 직접 돌아다니며 의약품을 나눠주었다. 그러나 역병이 옮아 죽었으며 죽을 때 베 옷과 비단 두건으로 계절에 맞는 상복을 입길 원했다고 한다. 사마랑은 외아들 사마유가 요절해서 사마부의 장남 사마망이 양자가 되어 대를 이었다.

최염은 일찍부터 사마랑의 동생 사마의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는데 사마랑은 최염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3. 미디어 믹스

3.1.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Sima_Lang_%28ROTK11%29.png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334.jpg
삼국지 12, 13, 14

어진 정치로 백성들에게 사랑받았던 점을 높이 사서 정치력, 매력이 높은 무장으로 나온다. 보통 둘다 80대 초중반. 단, 지력은 70을 못 넘는 경우도 좀 된다. 삼국지 10에서는 69, 삼국지 11에서는 71. 삼국지 3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3에서는 정치만 높은 군사. 근데 연의조차도 사마랑이 사마의의 형이라고 언급이 되어 있는데도 사마의보다 나이가 적고, 제갈량의 북벌까지 생존하는 고증오류를 자랑한다. 참고로 삼국지 3에서는 군주 이외에 일반 장수의 혈연 관계는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1] 사마의의 형이 아니라 그냥 남으로 나온다.[2] 반대로 혈연으로만 치면 생판 남에다가 성씨마저 다른 손책&주유는 혈연 관계로 나와 자동 등용이 된다(...).

삼국지 5에서도 정치력만 89로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2번 시나리오인 낙양 불타오르다에서 조조군의 인사담당관 혹은 외교담당관으로 유용하다. 2만 병력을 보유할 수 없다는 것 외에는 유표의 두 아들인 유기유종의 완벽한 상위호환이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력 17/무력 28/지력 69/정치력 78에 병법은 조영 뿐이니 내정이나 시키자.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20/무력 24/지력 69/정치력 83/매력 85에 명사 특기가 있고 내정 쪽 3개 특기(농업, 상업, 기술)를 모두 가지고 있다. 지력이 69라 기술은 크게 도움이 되는 특기가 아니지만, 농업, 상업 셔틀로는 매우 준수하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농업, 상업, 기술, 고무, 혼란, 명사. 총 6개다.

삼국지 11에서의 일러스트는 턱수염을 짧게 기른 모습이다.

삼국지 12의 일러스트는 병사들에게 의약품을 나눠 주고 있다. 그리고 전작에서 짧았던 턱수염이 다시 길게 길은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마치 산타 클로스가 선물을 나눠주는 듯한 이미지로 느껴진다. 전법은 전군원사.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20/21/72/82. 특기는 문화 7, 언변 5. 전수특기는 문화로 전법은 화공계다. 우수한 전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요하면 전장에 데리고 나가도 상관없다. 특이하게도 문관임에도 불구하고 노장 음성이 들린다. 이는 서주자사 도겸과 영릉태수 유도도 마찬가지. 아마도 수염을 길게 기른 이미지 때문인 듯 하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20, 무력 21, 지력 71, 정치 82, 매력 83이며 개성은 해독, 진흥, 여망, 주의는 예교, 정책은 본초학 Lv 4, 진형은 방원, 정란, 전법은 격려, 치료, 진정, 친애무장은 가규, 왕릉, 최염, 혐오무장은 없고 PK에서는 자비 개성이 추가되었다. 해독 개성도 있어서 독늪 지역에 있는 지역을 점령할 때 마음놓고 다닐수가 있으나 기동력이 느린 방원진에 사마랑이 있는 지역이 중원이기 때문에 남만지역에 갈 필요가 없어서 그냥 내정관으로 활용하게 된다.

3.2. 삼국전투기

조모 사망 직후 사마씨 형제들을 다루면서 잠깐 등장. 의약품을 나눠주다 병사했다는 것 때문인지 사망신에서는 이름을 太來司 馬朗(만화 컷상으로는 줄바꿈)이라 표기하고 있다. 동생 사마부와 함께 전투외편 7-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전투외편 7편에서 잠깐 등장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어서인지 동생 사마부와는 달리 흑발 청년으로 그려졌다. 매로 다스리면 그게 동물이지 사람이겠냐고 말하기도 했고,[3] 전염병에 걸린 병사들에게 직접 의약품을 건네고 다니다 병이 전염되는 바람에 죽었다고 언급됐다.

3.3. 삼국지톡

반동탁연합_8. 반격의 신호탄 에피소드에서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동탁원소가 대치 중인 장면이 생중계 되던 인터넷 뉴스 댓글란에 '동탁님 뜻 알겠으니까 살인 그만. 세번은 생각하고 행동하시길'이라는 내용의 댓글을 다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당시 동생 사마의는 아직 10세로 오늘날로 따져도 초등학생 나이에 불과한 어린아이였던지라 이미 18세의 나이로 조정에 출사했을 나이였던 그가 사마씨 가문의 대표자로 선택된 것으로 보이며, 댓글 내용 역시 정사에서 보여준 사마씨 가문의 인격자다운 모습을 반영한 모습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1] 가장 좋은 예가 이 사람의 동생 사마의가 박살낸 동연이다.[2] 다만 형제가 아니라 혈연으로 인해 자동 등용이 되는 경우가 많은 부자의 경우 어느 정도 고증이 된 편이다. 관우와 아들 3명(관평, 관흥, 관색), 장비와 아들 장포, 조운과 아들 2명(조통, 조광) 등.[3] 작가는 이에 사고방식이 1800년 전의 사람이 아니라고 코멘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