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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6:40:17

소목

1. 2.
2.1. 작은 눈2.2. 바둑 용어
3. 동물 분류
3.1. 우제목(소목)
4.

1.

한약재의 한 종류. 경폐(經閉)·통경(痛經), 산후 어조(瘀阻), 흉복 자통, 외상 종통(腫痛), 파상풍에 효능이 있으며 임신부는 사용을 삼가야 한다. 붉은 염료를 내는 데도 쓴다. 소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

2.

2.1. 작은 눈

2.2. 바둑 용어

파일:우하귀소목.jpg
좌표로 따져서 (3,4)에 해당하는 8군데의 점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화점이 발견되기 이전인 17~18세기 일본의 바둑으로부터 화점이 발견된 현대바둑에 이르기까지 에 두는 첫 착점으로서 가장 자주 두어지는 점이기도 하다. 보통 바둑에서 3선은 실리선, 4선은 세력선이라 불리는데, 소목은 3선의 점으로 보통 취급하고, 화점보다 안정적으로 집을 만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소목에 착수한 후에 건너편 외목에 날일자로 굳힐 경우 매우 튼튼한 집이 구축된다.[1]

4선이 발견되기 이전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소목이 주로 두어지는 것은, 안정적이면서도 변으로의 벌림이 적합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외목이 변으로의 진출이 용이하다고 하지만 귀에서 너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소목에 비해) 안정적이지 않다.

소목에서 시작되는 정석은 간명한 경우도 많지만, 작은 눈사태, 큰 눈사태 정석 등의 대사백변에 필적하는 변화가 많으므로 초심자의 경우 소목보다는 좀더 간명한 화점을 선택하는 편이고, 어린 아이에게 처음 가르칠 경우에도 역시 화점을 먼저 두게 하는 편이다.[2]

3. 동물 분류

3.1. 우제목(소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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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사에서 사당을 짓거나 사당 안에서 조상을 모시는 순서.

고대 중국주나라에서 비롯했다고 추정하는 제도이다. 종묘 등을 만들 적에 본래는 이 제도를 따른다. 소목에 따르면 먼저 제1세를 가운데에 모신다. 그리고 1세의 후손들을 1세의 위패 앞에 좌우 두 줄로 마주보며 도열하듯이 배치한다. 짝수째 세대는 제사를 받는 제1세의 위패가 바라보는 방향 기준으로 왼쪽에 모시는데 이것을 소(昭), 홀수째 세대는 소의 맞은편, 1세 위패의 오른쪽에 모시는데 이것을 목(穆)이라 부르고 둘을 합쳐서 소목이라고 부른다. 세대가 지나면 가운데 제1세는 불천지위(不遷之位)라 하여 고정하고 나머지 소목을 옮기는데 가장 대수가 먼 2세의 신주는 은제(殷祭)를 지낸 뒤 땅에 묻고 나머지는 한 칸씩 밀려난다.

천자는 소목을 각각 셋씩 둬서 모두 묘(廟: 사당) 일곱 채를 짓고[3], 제후는 소목을 각각 둘씩 둬서 묘 다섯 채, 대부는 소목을 각각 하나씩 둬서 묘 석 채를 짓는다. 사(士)는 소목을 두지 못 하고 오로지 묘 하나만 지을 수 있고, 서민은 묘를 짓지 못하고 그저 자기 집의 침실에서 부모만 제사 지낼 수 있다.[4] 후경 항목에서 누군가가 건의한 칠묘(七廟)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왕릉을 조성할 때에도 이 원칙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청나라옹정제가 기존의 청동릉 대신 청서릉을 짓고 안장되면서 이후 자신의 매장지를 고민하던 건륭제가 이 원칙을 적용해서 자신은 청동릉에 아들인 가경제청서릉에 묻혔지만 도광제가 이 조장제도를 비틀어서 유명무실해졌다.

이러한 소목의 질서를 소목지서昭穆之序라고 부르는데 특히 이것은 양자를 들이는 법칙을 뜻하는 말로 변했다. 쉽게 말해 양자가 조카 항렬종족이 아니면 대를 이은 걸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다. 반대로 조카 항렬종족이면 촌수가 아무리 멀어도 대를 이은 걸로 인정한다. 일본에서는 소목상당[ruby(昭,ruby=しょう)][ruby(穆,ruby=ぼく)][ruby(相,ruby=そう)][ruby(當,ruby=とう)]이라고 부른다. 소목지서에 맞게 들인 양자는 족보계자系子·繼子라고 적힌다.[5] 소목지서에 안 맞게 들인 양자[6]명령자螟蛉子 또는 의자義子 또는 의아義兒라고 따로 지칭하는데, 설령 양부의 성을 쓰더라도 모성이라 하여 사칭으로 인정한다. 일본도 본래는 율령제를 제정하면서 718년에 반포한 양로령養老令에는 소목지서를 규정하였다.
무릇 아들이 없는 놈은 사등 이상 친척으로[7] 소목에 맞는 놈을 입양함을 허락하며[8]본적지(의 그위)를 거쳐 (친부모의 호적에서) 떼고 (양부모의 호적에) 붙인다.(凡 無子者 聽養 四等以上親 於昭穆合者 卽 經本屬除附.)
『양로령養老令』, 「호령戶令」, <청양조聽養條>
일본에서 서양자며 외손이나 생질 등 부계가 아닌 양자를 들이고 이걸 대를 이은 걸로 인정함은 오히려 율령제로 대표되는 일본의 제도가 문란해진 결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종묘는 조선이 제후국을 표방했고 나중에 천자국을 표방했기에 5묘 또는 7묘로 지어야 하지만, 불천지위를 남발해서 묘(廟)를 증축하여 길게 늘렸다. 또한 신주를 모시는 순서도 소목법이 아니라 서쪽에 조상을, 동쪽에 후손을 순서대로 일렬로 놓는 서상법(西上法)을 사용했다. 즉 서쪽으로 갈수록 더 옛날 조상이다. 서쪽에 조상의 신주를 배치한 까닭은 해가 서쪽으로 지기에 죽은 조상을 대할 때에는 서쪽을 상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1] 이 때문에 소목을 기준으로 해서 굳힘과 걸침의 크기는 같다고 보지 않는 견해도 있다.[2] 사실 화점을 먼저 두게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접바둑도 포함되어 있다. 접바둑에서는 화점을 먼저 두게 되어 있으므로....[3] 그러니까 사당에서 시조와 6대조까지 제사 지낼 수 있다는 뜻이다.[4] 그러니까 일본에서 사당을 따로 안 짓고 집에 부모 신주를 모시는 것이 원래 서민이 제사 지내는 예에 가깝다.[5] 繼子라고도 쓰는데 국어사전에서는 제 자식이 아닌 배우자의 자식이라는 완전히 다른 뜻도 실렸다.[6] 여기에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뿐만 아니라 사위, 외손자, 생질 등도 포함된다.[7] 여기서 4등은 의제령儀制令의 오등조五等條에 따르면 종질從姪이니 4등 이상의 친척이란 종질이나 친조카란 것으로 일본에서 소목지서에 맞다 할지라도 길카리는 안 된다는 거다.[8] 들을 청에는 들어준다는 뜻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