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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06:44:56

사마지(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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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제 사마염의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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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부군 이전[추존][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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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는 추존황제를 포함해서 자황색()으로 굵게 쓰고 팔왕은 빨갛게 쓴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종실은 갈색으로 쓴다.
※ 출계(出系)는 취소선을 치고 계자(系子)는 밑줄을 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추존] [2]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3] 친부는 의양성왕[4] 친부는 안평헌왕[5] 숙부(실제로는 종숙) 창무정후에게 출계(出系)[추존] [추존] [8] 친부는 진문제[9] 종숙(실제로는 숙부) 요동도혜왕에게 출계[10] 종숙(실제로는 숙부) 광한상왕에게 출계[추존] [12] 적장자나 두 살에 요절하여 혜제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13] 친부는 회남충장왕[14] 여기까지 서진[15] 친부는 오효왕[16]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17] 숙부 성양애왕에게 출계[18] 친부는 사마유(동래왕)[19]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20] 적장자였던 비릉도왕처럼 한 살에 요절했으나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한다.[21]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22] 백부 진세종에게 출계.[23] 친부는 진무제[24] 친부는 제헌왕[25] 백부 성도왕에게 출계[26] 친부는 제헌왕[27] 숙부 연왕 경에게 출계[28]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를 넣는 시각도 있다.[29] 여기부터 동진[30] 친부는 진문제[31] 윤통(閏統)[32] 숙부 사마익에게 출계[33] 숙부 사마형에게 출계[34] 백부 사마랑에게 출계[35] 숙부 하비헌왕에게 출계[36] 숙부 안평왕에게 출계[37] 친부는 남궁현왕[38] 진안이 장사만 황제의 예로 올리고 시호는 왕으로 하였다.[39] 종조부 사마민에게 출계했다지만 이러면 소목에 어긋나 항렬이 꼬임[40] 종실에서 팔왕의 난에 아니 가담하고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41] 친부는 단수현후. 다만 종조부에게 출계하면 항렬이 꼬여서 친부가 법적으로 종형이 되는데 이 문제는 어찌 된 건지 몰?루[추존] [43] 아니 추존되었으나 칠묘에 동격배향(同格配享).
}}}}}}}}}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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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司馬祗
(271 ~ 273)

서진의 황족이며 자는 경도(敬度). 사례 하내군 온현 출신으로 사마염의 아들이다. 시평애왕 사마유와 출생연도가 같아 함께 6남이다.

2. 생애

태시 9년(273년) 5월, 일찍이 4남 성양회왕 사마경이 매우 어린 나이에 요절하고 그 뒤를 이은 5남 사마헌도 금방 요절해 대가 끊겨 성양왕이 된 황자는 두 명이나 죽은 상황이었다. 이에 무제 사마염은 3월에 당시 3살이던 사마지를 동해왕에 봉하여 사마헌의 뒤를 계속 잇게 했으나 사마지도 3달 만인 그 해 6월에 사망했다. 시호는 충(沖).

사마지는 궤(匱)재인의 소생인데 궤씨는 희귀 성으로 보이는데, 궤씨가 아니라 귀(貴)씨라는 말도 있고, 원화성찬에는 풍속통에 따르면 귀씨는 육종의 후예로 한나라의 여강태수 귀천이 있으며, 무제의 재인인 상산 귀씨 소생의 사마월이 있다고 하지만, 사마월의 어머니는 양준의 손녀이기 때문에 이는 오류로 사마월이 아니라 사마지가 맞다.

이전 두 사람과 달리 성양국이 아니라 동해국에 임명한 것에 대한 상세한 이유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