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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5 00:07:59

모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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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33067><colcolor=#ece5b6>
전연 초대 황제
태조 문명제 | 太祖 文明帝
파일:모용황.webp
모용황 동상
출생 297년
서진 창려군 극성현
(現 랴오닝성 진저우시 이현)
사망
(음력)
348년 9월 (향년 51세)
전연 용성
(現 랴오닝성 차오양시)
능묘 용평릉(龍平陵)
재위기간 요동공 세자
321년 ~ 333년 6월 4일
제5대 군주
333년 6월 4일 ~ 337년 10월
초대 국왕
337년 10월 ~ 34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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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33067><colcolor=#ece5b6> 성씨 모용(慕容)
황(皝)
부모 부황 고조
모후 부인 단씨
형제자매 10남 1녀 중 3남
배우자 문명황후, 문소황후, 공손씨, 고씨
자녀 19남 1녀
신장 191cm
아명 만년(萬年)
원진(元眞)
작호 좌현왕(左賢王)
망평후(望平侯)
→ 조선공(朝鮮公) → 연왕(燕王)
묘호 태조(太祖)
시호 문명왕(文明王)
→ 문명황제(文明皇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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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기타
3.1. 한국에서의 인지도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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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5호 16국시대 초기 선비 모용부의 제5대 대인이자, 전연(前燕)의 창업군주였다.

휘는 황(皝), 자는 원진(元眞)으로 묘호는 태조, 시호는 문명제(文明帝)였다. 선비 모용부를 크게 일으킨 제4대 대인 모용외의 3남으로, 굳세고 지략이 있었으며 경학을 좋아했다.

2. 생애

모용황은 297년에 모용외의 3남으로 태어났는데, 키가 7척 8촌[1]으로 매우 큰 것을 넘어서 그냥 거인이었다. 321년에 세자로 책봉되고 333년에 모용외가 사망하면서 모용부의 제5대 대인이 되었다. 그러나 배다른 형인 모용한과 동생 모용인, 모용소와 대립하여 모용부는 내분을 겪게 되었다.(3형제의 난, 333. 윤10~336. 1) 모용인은 모용소와 반란을 꾸몄으나 발각되어 모용소가 살해당하자 평곽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켜 요동 일대를 장악했다.

이복형 모용한은 단부로 망명했다가 단부의 군대를 이용해 동생 모용황을 공격했다. 한때 모용황은 멸망 직전까지 몰렸으나 모용한이 모용부가 멸망할 것을 두려워하여 철군하면서 살아남았다.

336년, 모용황은 동생 모용인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다시 모용부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337년, 모용황은 강남의 한족 왕조인 동진에 대한 종속적인 관계를 단절하고, 연왕을 자칭하며 연나라(전연)를 건국했다. 당시 모용황은 단부와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갈족후조와 동맹을 맺고 338년 단부를 협공했다. 모용황이 혼란에 빠진 단부를 약탈하고 튀자, 후조의 석호는 분노하여 단부를 멸망시킨 후 전연과 전쟁을 시작했다.

후조의 침입으로 한때 수도인 극성이 포위되기도 했으나 모용황은 농성끝에 후조군을 격파하고 역관광하여 영토를 일부 확장했으며, 이후 후조의 유주를 계속 공격하여 약탈전을 벌였다.

340년에 후조가 다시 대군을 이끌고 전연을 위협했으나 모용황은 후조의 전선을 우회하여 유주의 계를 습격, 대승했다.

342년에 용성으로 천도했으며, 고구려 침공을 감행해 수도 국내성을 함락시키는 등 동정에서 대승을 거두고 배후의 위협을 제거한 뒤, 후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재차 부여를 침공하여 현왕을 사로잡는 등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344년에는 선비 우문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한편 모용황은 한족의 유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한화정책을 취했으며, 농경을 장려하여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데 주력하다가 348년, 수렵 도중에 낙마 사고로 인해 머리를 크게 다쳐 결국 붕어했다.

아들인 열조 경소제 모용준의 치세때 '태조 문명제'로 추존되었다.

3. 기타

남북조시대 후기 북제에서 편찬된 북위의 역사서인 《위서》에서는 모용황의 이름이 북위의 추존 황제인 공종 경목제 탁발황의 휘와 비슷했기 때문에 이를 피휘하여 '모용원진'으로 기록했다.
모용황은 선비 탁발부가 세운 대나라의 국왕 탁발십익건의 장인이었다. 모용황은 딸 모용씨를 정략결혼으로 시집보내 대국의 왕비가 되게 했는데 탁발십익건과 딸의 친손자가 북위의 태조 도무제 탁발규였다. 어찌보면 탁발규는 나중에 자기의 친할머니의 친남동생이었던, 후연의 초대 황제 모용수(세조 성무제)와 싸운 것이 된다.

3.1. 한국에서의 인지도

한국 고대사에서 아버지 모용외에 이어 부여를 사실상 작살내고, 덤으로 고구려의 제16대 고국원왕 고사유까지 관광태워버린 인물로 인지도가 있다. 대중적으로는 드라마 <근초고왕>에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겨난 편이다. 배역은 송용태.[2]

4. 둘러보기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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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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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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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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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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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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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광 · 여찬 · 여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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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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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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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91cm가 나온다.[2] 공교롭게 <대조영>에서도 모용황처럼 고구려를 침공한 인물인 당태종 이세민을 연기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에서는 고국양왕, <태조 왕건>에서는 고구려의 후신을 내세운 고려의 개국공신 홍유, <태종 이방원>에서는 고려의 마지막 수호신 최영, <정도전>에서는 이성계를 도와 고려를 멸망시킨 배극렴을 연기하면서 고구려와 묘한 인연이 있는 배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