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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19:16:03

효무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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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 제9대 황제
효무제 | 孝武帝
출생 362년
동진 양주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즉위 372년 9월 12일
동진 양주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사망 396년 11월 6일 (향년 34세)
동진 양주 단양군 건강현 황궁 창서전
(現 장쑤성 난징시)
능묘 융평릉(隆平陵)
재위기간 동진 제2대 회계왕
365년 ~ 372년 9월 12일
동진의 황태자
372년 9월 12일
동진 제9대 황제
372년 9월 12일 ~ 396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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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80><colcolor=#ece5b6> 본관 하내 사마씨
요(曜)
부모 부황 태종 간문제
모후 효무문태후
형제자매 부황 기준 7남 4녀 중 6남
모후 기준 2남 1녀 중 장남
배우자 효무정황후, 안덕태후
자녀 3남 2녀
창명(昌明)
작호 회계왕(會稽王)
→ 황태자(皇太子) → 황제(皇帝)
묘호 열종(烈宗)
시호 효무황제(孝武皇帝)
연호 영강(寧康, 373년 ~ 375년)
태원(太元, 376년 ~ 396년)
섭정 태후 저산자 (372년 ~ 376년)
}}}}}}}}} ||
1. 개요2. 생애3. 여담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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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나라(晉)의 제13대 황제이자, 동진(東晉)의 제9대 황제.

2. 생애

융화 원년(362년)에 간문제 사마욱이능용의 6남으로 태어났다.[1] 자는 창명(昌明)이다.

처음에 회계왕에 책봉되었다가 함안 2년(372년) 7월 황제에 즉위했다. 즉위할 때는 나이가 어렸기에 태후의 섭정을 받았고, 4년 후인 태원 원년(376년) 정월부터는 몸소 정사를 처리했다. 환온에게 선양 요구를 받아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중신들이 시간을 질질 끌어 기다리던 환온이 사망하여 어찌어찌 잘 해결되었다.

태원 8년(383년)에는 전진(前秦)의 부견이 87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당시 동진의 군사는 겨우 8만이었지만, 전진의 삽질을 이용하여 부견의 군대를 비수대전에서 박살내고 서주, 연주, 청주, 사주, 예주, 양주를 수복했다.

사마요는 황제에 걸맞은 기량과 권위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몹시 사치스럽고 호랑방탕하다는 결점 또한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권력을 온전히 행사할 수도 없었다. 태후 이능용은 섭정이 끝난 후, 막후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사마요의 동생 사마도자[2]는 태후의 총애를 등에 업고 황제의 권위를 무시했다. 반복되는 무례에 사마요는 분노했지만 태후를 거스를 수 없어 처벌은커녕 사마도자를 높여 줄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사마도자의 일당인 왕국보가 사마도자를 승상으로 추대하고자 조정 신료들과 연명하거나, 사마도자 일당의 패악을 고발하는 상소문이 올라오는 등의 사건이 일어다. 하지만 태후의 핍박으로 사마요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에 사마요는 사마도자에게 대항하고자 왕공을 연주자사로, 은중감을 형주자사로 삼고, 왕순을 상서좌복야로 삼아 내외에서 자신을 지원할 세력을 갖추었다. 사마도자 또한 지지 않고 붕당을 조직했다. 태후는 뒤늦게 형제 간의 화해를 주선했지만 화해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뒤였다.

태원 21년(396년) 9월, 후궁들과 주연을 열던 사마요는 총애하던 장귀인에게
"너는 나이로 보아서는 역시 마땅히 폐출되어야 한다. 내 마음은 다시 어린 사람에게 가고 있다"
(汝以年亦當廢矣, 吾意更屬少者.)
라고 말했다. 이는 당연히 술김에 한 농담이었는데, 문제는 장귀인이 이걸 진담으로 알아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날 저녁 장귀인은 술에 취한 사마요의 얼굴에 두꺼운 이불을 잔뜩 올려서 질식시켜 죽여 버렸다. 이렇게 사마요는 재위 25년, 35세의 나이로 허망한 최후를 맞았다. 이 직후 장귀인은 뇌물을 뿌려서 주위사람들의 입을 막고, 효무제가 잠을 자다가 악몽을 꿔 가위에 눌려 급사했다고 둘러댔다. 사마요의 태자 사마덕종은 추움과 더움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폐장애 혹은 지적장애이였고, 정권을 잡은 사마도자 또한 장귀인의 범죄를 들춰낼 의사가 없어 사건은 그대로 묻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마요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구축한 세력은 이후 조정으로 칼을 겨누어 동진의 멸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만 사마요의 죽음에는 많은 의문이 있다. 정말 장귀인이 밤중에 몰래 암살하였다면, 세상에 이 일이 알려질 수 없을 것이다. 역사학자 루시먼은 사마요가 술에 취해 장귀인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은 진범이 퍼뜨린 소문이라고 의심했지만, 그가 궁중 사람들에게 살해당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이기 때문에 사마요의 죽음은 아마도 사마도자와 그의 부자, 그리고 그의 부하인 왕국보 등이 꾸민 음모였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3. 여담

사마요는 총명하고 서예를 좋아했는데, 특히 시 짓기에 관한 의지가 상당히 강했다. 그러나 의지에 비해 실력은 다소 허접했는지 조잡하고 거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찍 죽은 데다가 뒤를 이은 이은 황제들이 무능하여 나라가 결국 망국으로 치달은 것 등 후한영제, 남송도종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래도 어리석은 데다가 사치에만 매달린 영제나 도종과 달리 사마요는 처음에는 유능했지만, 말년에 어이없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일종의 공민왕과라 할만 하다.

결국 사마요는 영제와 도종처럼 사실상 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영제의 아들 소제헌제처럼 그의 아들 안제 사마덕종과 공제 사마덕문은 모두 꼭두각시, 허수아비 황제가 되어 유유에게 휘둘렸고, 마지막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4. 둘러보기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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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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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마욱은 다섯 아들이 웬일인지 모두 요절했다. 이능용은 한족도 아니고 동남아에서 팔려온 여성으로, 까만 피부에 애꾸눈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들을 낳아준다는 점성가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황태후가 되었다. 과연 이능용은 황제의 아들과 딸들을 풍성하게 낳았다.[2] 효무제 사마요의 동복 형제로 간문제 사마욱의 막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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