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40:42

배수(삼국지)

위서(魏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d9d9fe"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181818,#e5e5e5
1권 「무제기(武帝紀)」 2권 「문제기(文帝紀)」
조조 ,조등 왕준, 조비
3권 「명제기(明帝紀)」 4권 「삼소제기(三少帝紀)」
조예 ,학소 진랑 맹타, 조방 ,장특, · 조모 · 조환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열전(列傳) ]
{{{#181818,#e5e5e5
5권 「후비전(后妃傳)」
무선황후 · 문소황후 · 문덕황후 · 명도황후 · 명원황후
6권 「동이원유전(董二袁劉傳)」 7권 「여포장홍전(呂布臧洪傳)」 8권 「이공손도사장전(二公孫陶四張傳)」
동탁 ,이각 곽사 마등 한수,
원소 ,저수 전풍 원담 원희 원상, · 원술
유표 ,유종 부손 괴월 한숭 채모,
여포 ,장막 진궁 진등, · 장홍 공손찬 ,유우, · 도겸 · 장양
공손도 ,공손연,
장연 · 장수 · 장로
9권 「제하후조전(諸夏侯曹傳)」 10권 「순욱순유가후전(荀彧荀攸賈詡傳)」
하후돈 ,하후무 한호 사환, · 하후연 ,하후패, · 조인 ,조순, · 조홍 · 조휴 ,조조(肇),
조진 ,조상 이승 환범 하안, · 하후상 ,하후현 이풍 허윤,
순욱 ,순의 예형, · 순유 · 가후
11권 「원장양국전왕병관전(袁張凉國田王邴管傳)」 12권 「최모서하형포사마전(崔毛徐何邢鮑司馬傳)」 13권 「종요화흠왕랑전(鍾繇華歆王朗傳)」
원환 · 장범 ,장승, · 양무 · 국연
전주 · 왕수 · 병원 · 관녕 ,왕렬 장천 호소,
최염 ,공융 허유 누규, · 모개 · 서혁
하기 · 형옹 · 포훈 · 사마지
종요 ,종육, · 화흠 · 왕랑 ,왕숙,
14권 「정곽동류장류전(程郭董劉蔣劉傳)」 15권 「유사마량장온가전(劉司馬梁張溫賈傳)」 16권 「임소두정창전(任蘇杜鄭倉傳)」
정욱 ,정효, · 곽가 · 동소
유엽 ,유도, · 장제 · 유방 ,손자,
유복 ,유정, · 사마랑 · 양습 ,왕사,
장기 ,유초 장집, · 온회 ,맹건, · 가규 ,가충,
임준 · 소칙 · 두기(畿) ,두서 악상,
정혼 ,정태, · 창자 ,안비 영호소,
17권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 18권 「이이장문여허전이방염전(二李藏文呂許典二龐閻傳)」
장료 · 악진 · 우금 · 장합 · 서황 ,주령, 이전 · 이통 · 장패 ,손관, · 문빙 · 여건 ,왕상,
허저 · 전위 · 방덕 ·방육 ,조아, · 염온
19권 「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20권 「무문세왕공전(武文世王公傳)」
조창 · 조식 ,양수 정의 정이, · 조웅 조앙 · 조삭 · 조충 ·조거 · 조우 ·조림(林) · 조곤 · 조현 ·조간 ·조표 ·조정 ·조림(霖)
21권 「왕위이유부전(王衛二劉傳)」 22권 「환이진서위노전(桓二陳徐衛盧傳)」 23권 「화상양두조배전(和常楊杜趙裴傳)」
왕찬 ,진림 완우 유정, · 위기 · 유이 · 유소 · 부하 환계 · 진군 ,진태, · 진교 · 서선 · 위진 · 노육 화흡 · 상림 ,시묘, · 양준 ·두습 · 조엄 · 배잠 ,배수,
24권 「한최고손왕전(韓崔高孫王傳)」 25권 「신비양부고당륭전(辛毗楊阜高堂隆傳)」 26권 「만전견곽전(滿田牽郭傳)」
한기 · 최림 · 고유 · 손례 · 왕관 신비 ,신헌영, · 양부 ,왕이, · 고당륭 ,잔잠, 만총 · 전예 · 견초 · 곽회
27권 「서호이왕전(徐胡二王傳)」 28권 「왕관구제갈등종전(王毌丘諸葛鄧鍾傳)」
서막 · 호질 ,호위, · 왕창 · 왕기 왕릉 ,선고 영호우, · 관구검 ,문흠, · 제갈탄 ,당자, · 등애 ,주태, · 종회 ,장창포 왕필,
29권 「방기전(方技傳)」
화타 · 두기(夔) ,마균, · 주건평 · 주선 · 관로
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오환 · 선비 ,가비능, · 부여 ·고구려 · · 읍루 · 예맥 · 동옥저 · 마한 · 진한 · 변한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bgcolor=#fff> 관련 틀:
촉서
오서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08b><tablebgcolor=#00008b>
※ 흠정 24사 관련 틀 둘러보기
||
}}}}}}}}}}}} ||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진서 「진건등전(陳騫等傳)」
진건 배수
裴秀
224년 ~ 271년 4월 3일
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 매체

[clearfix]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관료이며 는 계언(季彦)으로 사례 하동군 문희현 사람. 배잠의 아들이자 배무의 손자이며, 배외의 아버지. 배휘의 조카이자 배해의 숙부, 곽회의 동생 곽배의 사위. 곽배의 다른 가충후처곽괴이니 가남풍에게는 이모부가 되기도 한다. 유림장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 생애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풍채와 지조가 있었는데, 8세 때 문장을 지었다. 10여세 때는 숙부 배휘를 찾아온 사람 중에는 나갈 때 배수를 찾으면서 그를 칭찬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천한 이라 배잠의 처인 선씨가 예로 대우하지 않고 언제나 배수의 어머니를 시켜 손님에게 음식을 내주도록 했는데, 보는 자들이 모두 일어났다. 배수의 어머니가 미천하기가 이와 같지만 어린 자식이 현명해 경의를 표해준다고 하자 선씨가 이를 알고 음식을 내주도록 하는 일을 중지했으며, 당시에 사람들은 배수를 후진의 영수로 배수가 있다고 했다.

진서》에 따르면 관구검이 일찍이 배수를 대장군 조상에게 추천하여 말하길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자라서는 자연에 따르고 깊이 생각하며 본성의 진솔함을 지키니 성정이 도의 깊은 곳에 들어갔습니다. 널리 배우고 기억하여 알지 못하는 글이 없습니다. 효도와 우의는 향당에 현저하고 높은 명성은 원근에서 들립니다. 진실로 응당 모략을 보좌하고 정무에 협조하여 대부를 도와 교화를 광대하게 해야 합니다. 자기, 감라의 무리가 아니고 안연, 염유, 자유, 자하의 훌륭함을 더불어 갖추고 있습니다." 하니 조상이 마침내 징벽하여 연속으로 삼고 아버지의 작위인 청양정후를 잇도록 하고는 황문시랑으로 옮겼다. 《정사 삼국지》 <배잠전>과 주석인 《문장서록》에 따르면 244년에 아버지 배잠이 죽자 후사를 계승하고 나이 25세에 황문시랑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로보아 244년에 21세의 나이로 관직에 나선것으로 보인다.

고평릉 사변으로 인해 조상의 옛 관리였다는 이유로 면직되었다가 정위정, 안동장군, 위장군사마를 지냈다.

조모 대에 산기상시가 되어 조모와 왕침, 사마망, 종회 등과 함께 동어전에서 토론회를 가져 이 토론회에서 조모가 유림장인이라고 했으며, 궁중 안에서 관직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마망보다 빨리 소집에 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257년, 제갈탄반란을 일으키자 종회와 함께 사마소를 따라 종군했으며, 노양향후에 봉해졌다가 264년상서복야로 임명되고 사마소의 명을 받아 관제를 논하면서 5등급의 관위 제도를 입안하자 이 공으로 제천후에 봉해지고 지방 60리와 1400호가 주어지면서 고원현의 제천의 터를 배수의 후국으로 했다. 사마소가 후계자에 대해 물어보자 사마염이 되어야 한다고 했으며, 사마염이 대장군이 되자 상서령, 우광록대부를 지내고 관청의 개설이 허가되었다.

급사중이 되었다가 사마염이 진나라 황제에 오르자 좌광록대부에 임명되고 거록군공에 임명되어 삼천 호의 식읍을 받았으며, 후에 사공에 임명되었다.

태시 연간(265년 ~ 274년)가충 등과 함께 조정에서 명망이 있으니 양호는 항상 겸양한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의 지위를 그들보다 높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271년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 배준은 요절했다고 한다.

작위는 거록공으로 시호는 원공(元公).

3. 기타

직책이 사공이면서 저명한 지리학자로서 우공지역도를 작성했는데, 그가 작성한 제도 육체론은 후에 제도의 규범이 되었다. 이는 우공의 산천지명이 오랜 시간 동안 전해져 내려와 많이 바뀐 것으로 인하여 후세에 말하는 사람들이 혹 견강부회하여 점차 어두워지므로 이에 옛 문헌을 선별하여 의심나는 것은 비우고 옛날에 이름이 있었으나 지금 없는 부류는 모두 사사건건 해설을 달은 것으로 총 18편이었다.

그 서문에 이르길 다음과 같다.
도서의 제작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자고로부터 형상을 만들고 제도를 드리운 것은 그 쓸모에 힘입은 것이다. 3대에 그에 관한 관직을 두고 국사가 그 업무를 장관하였다. 한나라함양을 공략하는데 이르러 승상 소하진나라의 도적을 전부 거두어 들였다. 지금 비서에는 이미 옛날의 지도가 없고 또한 소하가 얻은 것도 없으며 오직 한씨의 《여지》와《괄지》의 여러 도서들만이 있다. 각자가 비율을 통일하지도 않고 방위를 고증하지도 않았으며 명산대천도 두루 갖추고 있지 못하다. 비록 조솔한 형태가 있지만 전부 정밀하지 못하여 근거로 삼을 수 없다. 혹은 머나먼 지방의 황당무계한 말들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니 뜻에 있어 취할만한 게 없다.

대진이 용흥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우주를 깨끗하게 하는데 있어 용촉(庸蜀)으로부터 시작하였으니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험난하였다. 문황제는 마침내 유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 지방의 지도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지방이 이미 평정되고 군대가 걸쳐간 곳은 지역이 멀건 가깝건, 산천이 통과하기 어렵든 쉽든, 도로가 굽었든 곧든, 오차가 나는 것이 없었다. 지금 위로 《우공》의 산해, 천류, 평원, 늪지, 소택지 등과 옛날의 9주에서부터 지금의 16주에 이르기까지 군국현읍, 강역, 고을에서부터 옛날의 제후국들 사이에 있었던 회맹의 오래된 이름, 수륙의 도로 까지를 고찰하여 지도 18편을 만든다.

지도를 제작하는 체계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제도 육체론) 첫 번째가 분율로 동서남북의 비율을 바로잡는 것이다. 두 번째가 준망으로 피차간의 방위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가 도리인데 말미암은 바의 거리를 확정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고하이고 다섯 번째는 방사이고 여섯 번째는 우직인데 이 세 가지는 각자 땅의 특징으로 인해 적당한 방법으로 제작하는데 평탄하고 험난함의 다른 정도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도상이 있어도 분율이 없다면 원근의 차이를 살필 수 없고 분율이 있어도 준망이 없다면 비록 한 방위를 얻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다른 방위를 잃게 되며 준망이 있어도 도리가 없다면 산해절역의 지방에서 사용할 때 서로 통할 수가 없다. 도리가 있다하더라도 고하, 방사, 우직의 비교가 없다면 경로의 거리가 반드시 원근의 실상과 부합하지 못하여 준망의 올바름을 잃을 것이므로 여섯 가지를 섞어서 고증한 것이다. 그러나 원근의 실질은 분율에서 정해지고 피차간의 실질은 도리에서 정해지며 도수(度數)의 실질은 고하, 방사, 우직의 계산으로부터 정해진다. 그러므로 비록 준산 거해의 격절이나 절역 수방의 머나멈, 올라가고 내려감에 있어 빙빙 두르는 길들도 모두 얻어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준망의 법도가 이미 올바르게 된다면 곧 곡직, 원근이 그 형상을 숨길 수가 없다.

4. 대중 매체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717.jpg
삼국지 13, 14

삼국지 4삼국지 5에서 등장하고 난 후 그 뒤로 쭉 출연이 없었다가 삼국지 8에서 오랜만에 복귀했는데 철저하게 지력, 정치 특화 문관이다. 삼국지 12편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삼국지 5에서는 왜인지 평균 60대의 만능형 엔터테인먼트 능력치였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9/9/72/79의 그런데로 쓸만한 문관. 공성계 병법 숙련도가 400이며 상병을 제외한 모든 공성계 병법을 익히고 있다. 그 외에는 혼란, 매도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매 순으로 10/11/77/83/53에 특기는 상업, 지리, 명사. 총 3개. 지리학자인 점을 반영한 듯한 지리 특기는 전장에 내보낼 일이 없는지라 잉여 특기지만 정치 83을 살릴 수 있는 상업, 그리고 명사 특기는 직접 플레이 시도 유용하다.

삼국지 11에서는 모든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너프되어 통무지정매 순으로 8/9/70/79/37이며 총합이 203 밖에 되지 않는다.

삼국지 13에서의 일러스트는 오른손을 올리면서 사마소에게 조언하고 있으며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8/9/70/79이며 특기는 상업 1, 교섭 2. 전수특기는 교섭이고 전법은 기방강화. 생몰년도가 223~271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8, 무력 9, 지력 70, 정치 80, 매력 42로 전작과 달리 정치력이 1 상승했다. 개성은 발명, 지리, 문화, 주의는 예교, 정책은 지세연구 Lv 4, 진형은 정란, 충차, 전법 역시 정란, 충차, 친애무장은 가충, 사마망, 사마염, 왕침, 종회, 혐오무장은 마균이다. 전작에 비해 출생년도가 224년으로 변경되었으며 이번작부터 자신의 아버지인 배잠이 추가되었다.

4.2. 삼국전투기

직접적으로 등장은 하지 않으나, 전투외편 8-1에서 서진의 건국 후 정충의 휘하 아래에서 국가의 내정을 이끄는 인물들을 나열할 때 관제를 맡았다고 언급된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66
, 2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66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