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魏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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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禮 손례 | |
시호 | 경후(景侯) |
작위 | 관내후(關內侯) → 대리정후(大利亭侯) |
최종직위 | 사공(司空) |
성씨 | 손(孫) |
휘 | 례(禮) |
자 | 덕달(德達) |
생몰기간 | ?년 ~ 250년 11월 |
고향 | 유주(幽州) 탁군(涿郡) 용성현(容城縣) |
사공 재임기간 | 249년 12월 18일 ~ 250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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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조위의 인물이자 유주 탁군 용성현[1] 출신으로 자는 덕달(德達). 삼국지연의에서는 사마의의 막료로서 제갈량의 북벌을 여러 차례 막아내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배송지의 주석 하나 없을 정도로 비중은 적은 편이다. 정사에서는 청렴함으로 대장군 조상의 눈밖에 나 외직을 전전하다 사마의의 눈에 들어 승진 가도를 달린다. 247년 고평릉 사변으로 사마씨의 세상이 되자 결국 2년 후 삼공의 반열인 사공에 오른다.2. 정사 삼국지
2.1. 초기 생애
전란 중에 어머니와 헤어져 서로를 잃어버려서 어머니를 애타게 찾고 있을 때, 같은 군 출신인 마태(馬台)가 어머니를 찾아주자 자신의 전 재산을 주어 보답했다고 한다. 조조가 유주를 평정하자 사군공모연에 임명되는데, 이때 어머니를 찾아준 마태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게 되고 손례는 마태를 돕기 위해 탈옥을 시도하나 그는 도망칠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 온회에게 스스로 출두한다.사건의 앞뒤를 들은 온회는 이 사실을 조조에게 알리고 조조 또한 이 얘기에 감동해 두 사람을 모두 사형보다 한 단계 아래의 형으로 감형해주었다.
손례는 하간군의 승이 되었고, 점점 승진해서 영양도위가 되었다. 노산의 도적들이 귀찮게 굴자 손례는 노상으로 임명되어 그들을 토벌하고 그 공으로 산양, 평원, 평창, 낭야태수가 된다.
2.2. 조예 휘하
228년에 조휴가 석정에서 주방의 거짓항복에 속아 넘어갔을 때 손례는 깊게 들어가지 않을 것을 건의하나 조휴가 이를 듣지 않아 대패했다. 하지만 손례는 양평태수가 되었고 중앙으로 들어가 상서가 되었다.조예가 새로운 궁을 짓는 힘든 노역으로 백성들을 힘들게 하자 상소문을 올려 지나친 노역을 막았으며, 이혜라는 자가 한 달만 더 굴리면 완공시킬 수 있다면서 무리를 시키자 상소를 올리지 않고 바로 조서를 발동시켜 이 일로 오히려 조예에게 칭찬을 받는다.
조예가 사냥을 할 때 호랑이가 조예를 덮치려고 하자 칼을 뽑아들고 덤벼들려고 했으나 조예가 말려서 그만두었다. 239년에 조예가 죽을 때가 오자 조상에게 대장군 직을 주고 그를 보좌할 역할로 손례를 대장군장사 산기상시로 임명했는데, 손례는 청렴한 인물이라 조상의 눈 밖에 나서 양주자사 겸 복파장군이 되어 전선으로 내쫓긴다.
2.3. 조방 휘하
241년에 전종이 공격할 때 군사들 대부분이 휴가를 간 상태였는데, 그 상황에서도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결국 전종을 물리치고 왕릉의 도움으로 확실하게 끝냈으며, 이 공으로 황제가 비단 700필을 내리나 이것은 모두 죽은 군사들의 집에게 주었다.그러고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소부가 되었고 다시 밖으로 나가 형주자사, 기주목이 되었는데, 여기서 사마의가 청하군과 평원군의 경계를 해결해 달라고 하자 지도에 의거해서 판단해 평원군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조상이 편드는 지역은 청하군이라 5년 동안의 금고형에 처해지게 되었으며, 1년 후에 항의하는 사람이 많자 그 형은 취소되고 성문교위로 임명된다.
흉노와 선비가 말썽을 부리자 병주자사, 진무장군, 사지절흉노중랑장으로 임명되어 북방문제를 처리하러 갔으며, 조상이 사마의의 쿠데타로 처형되자 사례교위로 승진되었고 사공으로 승진하면서 대리정후로 봉해진다. 그 후 250년 11월에 죽는다.
3. 삼국지연의
문관으로도 활약한 정사와는 달리 조예를 덮친 호랑이를 때려죽여 신임을 얻었다고 나와 무관쪽으로먼 언급이 된다. 2차 북벌에서 제갈량의 촉군이 군량 부족에 시달린다는 것을 듣고 조진에게 직접 군량미로 촉군을 유인하여 화공으로 촉군을 공격하는 계책을 제안하지만 제갈량이 이를 역이용하여 손례의 위군을 유인장소에 몰아넣고 포위섬멸한다. 가까스로 살아남고 이후로도 제갈량의 북벌 때마다 종종 등장한다.4. 평가
손례는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으며 성격이 과격했다. - 위서 왕관전
손례는 성글고 밝고 격하며 강인하여 결단에 능하고, 노육은 청렴하여 사리에 밝고 끊임없이 연마하니, 모두 삼공의 재능을 가진 인물이다. - 위서 최염전
5. 미디어 믹스
5.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삼국지3손례.png |
삼국지 3 |
100만인의 삼국지 |
삼국지 12, 13, 14 |
삼국지 2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연의에서의 평을 따라 무관형으로 나왔다. 초기의 시리즈에선 '호랑이를 베어죽였다'라는 기술이 무색하게 무력 60대의 3류 무장으로 등장한다. 삼국지연의의 피해자가 아니라 코에이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시리즈가 지나면서 무력은 물론 정치력과 지력도 재평가를 받았다. 무력은 대체로 80대를 기록하고 정치력도 문관쪽 고관을 맡은 것을 반영해 70대 정도 찍어서 문무겸비로 쓸 수 있다. 다만 연의에서 제갈량에게 어설픈 화공을 시도하려다 된통 당한 것 때문인지 지력은 60대로 나온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82/지력 53/정치력 72로 지력이 좀 낮긴 하지만 만능형에 가까운 무장이다. 병법으로는 분투, 돌파, 기사, 충차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6/무력 81/지력 62/정치력 75/매력 74의 만능형. 특기는 기술, 치안, 돌격, 일제, 저지, 기합, 삼단, 나선으로 총 8개인데 조조군만 아니었으면 평가가 더 나았을 것이다.
삼국지 11에서는 통솔력 78/무력 81/지력 62/정치력 73/매력 74로 특기는 맹장.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유우군의 본진인 계에서 탐색으로 등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무장 하나 없는 유우군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등용하는데 성공을 해서 공손찬과 원소를 막는 데 활용하게 된다.
삼국지 12에서의 일러스트는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잡고 있으며 능력치는 통솔력 78/무력 81/지력 67/정치력 73으로 지력이 꽤 올랐다.
비록 지력이 올랐다고 해도 통솔력/무력 등 전투 부분에서 더 강조되는 무장인데, 전법이 이상하게 화계다. 화계는 지력 차이의 피해을 입히는 전체 공격인데, 손례의 지력은 67이기 때문에 너무 애매하다. 그것도 무력이 80대인데.... 아마도 제갈량에게 화계를 간파당한 것에서 따온 듯하지만, 차라리 무력 72 주제에 대타격을 가진 무장과 서로 전법을 바꾸는 게 휠씬 좋다는 평이 많다. 그러나 그 녀석은 초반에 등장하고 수명도 매우 길어서[2] 능력치를 상향시킬 여유가 있으니 지못미 손례....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문화 1, 순찰 3, 신속 3, 일기 5로 전수특기는 일기. 이번작에서도 전법은 그대로 화공계다.
다만 13의 화계는 지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정도가 아니라 은근히 쓸만한 무장이다. AI로 위임시켜놓고 있으면 십중팔구 손례가 어디 한구석의 태수가 되어 병력을 끌고 나와서 침공해오는 적을 화공계로 잘 구워주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반대로 소속이 우리편이 아닐 때에는 서황이나 장합만큼은 아니지만 계속 하북 병력을 끌고 나오기 때문에 짜증나는 1인 중 하나다.
삼국지 14에서는 통솔력 77/무력 81/지력 65/정치력 74/매력 73으로 전작과 달리 정치력이 1 상승한 대신 통솔력이 1, 지력이 2 하락했다. 불굴, 맹자, 위무, PK에서는 금강이라는 개성을 달고 나와서 유우, 후기 위나라 플레이에서 소중한 인재로 활용된다. 주의는 패도, 정책은 묵수연구 Lv 4, 진형은 어린, 봉시, 투석, 전법은 분전, 철벽, 견제, 친애무장은 조예, 혐오무장은 노육이다.
5.2.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양주자사로 근무한 전력 때문인지 단골 적장으로 등장한다. 클래스는 호랑이를 잡았다는 연의의 기록을 가져온 맹수대라 되게 짜증나는 편. 대사나 이벤트가 없어서 존재감은 없다. 양평관에선 마초나 마대에게 일기토로 발린다.5.3.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연의의 모습대로 호랑이를 단번에 잡은 맹장으로 나온다. 진창전에서 제갈량은 투항병을 통해 손례의 계책를 간파하며 '화공은 내 전문인데 감히 나에게 도전을 하다니...쯧쯧'이라고 조롱당한다.
5.4. 삼국전투기
가토 나루미로 패러디 되었다. 오장원 전투 (4)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며 이름이 밝혀졌다. 소개컷에서는 용맹하기는 홀로 호랑이를 잡을 정도지만 싸움은 오히려 머리를 써서 하고 성격도 쿨하다고 서술되어 있다. 뒷부분엔 깨알같이 문관으로 최고위까지 오른다고 쓰여 있기도 하다.이름은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오장원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합비신성의 수비를 맡고 있었으나 기존 합비의 병력의 절반밖에 없어서 힘겹게 방어하는 모습이 묘사됐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끝까지 합비신성을 빼앗기지 않고 버티는 데는 성공했다.
전투외편 2편에서는 조예가 죽기 직전 대장군이 될 조상을 보좌하게끔 손례를 대장군장사로 임명해 놨었고, 실제로 하안, 정밀 등이 조상의 뒤에서 전횡을 부리려 하자 이걸 막아 보려고 했지만
작피 전투 편에서는 작피에서 전종을 상대하던 왕릉에게 지원을 왔다. 많은 병사들이 휴가중이었던데다가 합비 쪽 유지군도 남겨둬야 했기에 손례는 자신이 거느린 소수의 위병을 직접 인솔하여 참전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본성이 호랑이와 맞설 정도의 인물이라 진황을 사살하는 등의 공을 세우며 분투하였고 왕릉과 함께 오군을 작피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전투외편 4편에서는 조상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받는 장면으로 1컷 등장했고[4], 고평릉 사변 시행 직전 사마소가 장제와 손례에게 사전에 연락해 두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신성 전투 (1)편에서는 사공 왕릉이 태위로 승진하며 손례가 후임 사공이 되었지만, 그 다음 화인 신성 전투 (2)편에서 바로 사망처리 됐다.
5.5. 신삼국
주로 곽회와 세트로 행동하며, 곽회가 침착한 타입이라면 손례는 저돌적인 타입이다. 사마의가 제갈량과 양의에게 모욕을 받자 크게 분노하여 모든 장수들과 함께 나가 싸우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사마의가 연달아 안 된다고 하자 항명을 무릅쓰고 전쟁터로 나가 싸우려 했다. 그러나 사마의가 죽고 싶으냐는 말에 죽어도 이 치욕을 절대 못 참는다고 말했는데, "나가서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 다만, 네가 전사하면 조정에 항명죄를 물어 전공을 없애고 가족들을 변방으로 보내 두번 다시는 못 돌아오게 할 것이야!"란 사마의의 말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만다. 이후 사마의가 군중에서 떠날 때 다른 장수들과 함께 쫓아와서 가지 말라고 간청했고, 사마의가 떠나자 한스러운 듯한 반응을 보였다. 마지막 화에서 사마의가 고평릉 사변을 일으킬 때 그의 명령을 듣는 모습으로 나온다.5.6. 대군사 사마의
개념 무장으로 등장 한다. 석정 전투에서 처음 등장하며 침착하고 참군으로서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처음부터 사마의에게 우호적인 장군이었다. 장합, 곽회, 악침, 장호와 같은 장군들은 새로운 사령관인 사마의를 깔보거나 무시하지만 손례는 처음부터 좋은 이해자였다. 물론 장합을 제외한 다른 장군들은 결국 사마의를 따르게 되며 손례는 곽회와 함께 친사마의파 장군이자 서촉방면방어듀오를 형성한다.매 전투마다 사마의에게 조언을 구하고 사마의 혹은 그 아들들이 군형벌을 받으면 늘 앞장서서 구원을 요청한다.
사마의가 조상에게 옹량의 병권을 빼앗기게되자 낙양으로 오게되고 조상이 갑주를 입고 조회를 나오자 예가 없다며 꾸짖기도 했다. 정밀은 조상에게 손례와 같은 유능한 장군을 기용해야한다고 간언했지만 너무 사마의 사람이라고 손절하며 손례를 흉노족이 있는 병주 변방으로 보낸다.
병주로 떠나기 전 오늘내일하는 사마의를 찾아가서 조상이 개판치고있는 조정을 어떻게 해야하지 않냐고 따지지만 노망연기를 하는 사마의는 계속 헛소리를 한다. 그렇게 존경하던 지휘관이 노망이 난걸 보고 통곡을 하며 병주로 떠난다.
이 드라마에서 손례는 실제 사서 기록대로 사마의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데
본래 명공(明公)은 이윤과 여상을 좇아 따르면서 위나라 왕실을 보좌하고, 위로는 명제의 위탁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만세에 전해지는 공훈을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현재 사직이 위급하고 천하가 어수선한 것이 저 손례가 즐겁지 못한 까닭입니다.
이 대사 하나 때문에 정사에서는 철저한 문관이지만 드라마에서 제갈량의 북벌을 막는 장군으로 묘사해 사마의와의 관계를 엮은게 아닌가 싶다.
이후 등장하지 않아 사실상 퇴장 처리가 되었다.
[1] 위나라가 건국된후, 탁군에 신설된 현이다.[2] 손례의 몰년은 250년, 전예의 몰년은 251년이다. 먼저 등장하는 전예가 더 오래 산다.[3] 명목 상으로는 사마의가 태부로 승진하고 공석이 된 태위직을 만총이 차지해서 원래 만총이 담당하던 양주 방면이 비게 되었으니 그 공석을 메우게끔 한 거라고 묘사된다.[4] 나중에 형이 취소됐다는 부분은 언급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