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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성씨. 관직 사마 중 일부가 씨를 사마로 하면서 유래됐다. 공손씨, 사공씨와 비슷한 경우다. 참고로 고대 중국은 원래 성과 씨가 달랐다. 성은 혈연으로 정해지는 개념이고 씨는 지연으로 정해지는 개념이다. 즉 고대 중국의 씨는 한국의 본관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태공망 강상(姜尙)을 여상(呂尙)[1]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2] 그러던 것이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성과 씨의 개념이 희미해져 결국에는 성과 씨의 개념이 성씨로 합쳐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익히 아는 성명의 조합이 탄생하게 되었다.2. 연혁
2.1. 중국
중국 삼국시대의 조위 후반기부터 사마진(서진, 동진) 시절에는 사마씨가 국성이었기 때문에 서진 시대까지는 전성기를 누려 번성했지만 서진 멸망으로 한 차례 큰 피해를 입었고 오호십육국시대 동진이 멸망하면서 송무제 유우에게 대거 멸족당했다. 화북 지역에 남아있던 계통은 북제에도 황후 사마영희을 배출했으며 동진에 있던 계열은 남북조시대 북위로 귀순하여 북제-수-당까지 명문 문벌귀족 가문으로 자리잡았다.[3] 대표적인 인물이 사마덕감, 사마광, 사마몽구.이것도 오래가지는 못하고, 그냥 희귀성씨가 되었다. 명나라 때는 사마광의 후예인 사마순이 사신으로 조선에 방문하기도 했다. 이후 복성이 불편했는지 여러 사마씨가 사씨나 마씨, 그밖의 다른 성으로 개성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대에는 중국, 중화민국 등 중국의 100대 성씨에도 못들 정도고 양쪽을 다 합해도 10만 명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21년 중국 공안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사마씨는 2.3만명이 존재하며 허난성에 30.28%가 거주하고 있다.
관련된 유물로는 사마방잔비, 발굴된 사마금룡묘가 있다.
2.2. 한국
한국에서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전라도 나주목 거평에 이 사마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3. 실존 인물
- 진(사마씨)의 역대 황제. - 서진/계보
- 사마간
- 사마감
- 사마경
- 사마광
- 사마광덕
- 사마구
- 사마근
- 사마기
- 사마담
- 사마덕문
- 사마덕종
- 사마랑
- 사마량
- 사마륜
- 사마릉
- 사마망
- 사마모
- 사마몽구[4]
- 사마문
- 사마민
- 사마방
- 사마부
- 사마비
- 사마사
- 사마상
- 사마소
- 사마순(司馬恂)
- 사마순(司馬順)
- 사마순(명나라)
- 사마악
- 사마안
- 사마앙[5]
- 사마업
- 사마연
- 사마연조
- 사마염
- 사마영희
- 사마예(司馬乂)
- 사마예(司馬睿)
- 사마옹
- 사마요
- 사마월
- 사마위
- 사마욱
- 사마윤
- 사마융
- 사마의
- 사마정국
- 사마제
- 사마조
- 사마주
- 사마준
- 사마지
- 사마진
- 사마착
- 사마천
- 사마최
- 사마충
- 사마치
- 사마표[6]
- 사마하
- 사마혁
- 사마휘
- 사마휼
- 사마흔
- 사마흠
- 폴 치머만 - 네덜란드 출신의 홍콩 정치인으로, 현재 중국으로 귀화했다. 치머만을 음차하여 지은 사마문(司馬文)이 현재 법적인 본명.
4. 가상 인물
- 사마무기 - 권왕무적
- 사마의 - 외모지상주의
- 사마준 - 유희왕 듀얼몬스터즈[7]
- 사마중환 - 천뢰무한
- 사마진 - 썬더 일레븐
- 사마모 - 삼국지평화
- 사마현 - 의원, 다시 살다
칩사마탁사마사마와 도박과 꼬꼬의 관계
[1] 성이 강이고 씨가 여다.[2] 현재시대는 씨의 개념이 사라지고 '성+이름'으로 부르지만, 춘추전국시대 당시 남성의 경우는 보편적으로 '씨+이름'으로, 여성의 경우는 '성+이름'으로 불렸다. 그래서 당대 기준으로 하면 태공망의 경우는 강상이 아니라 여상, 진시황의 경우는 영정이 아니라 조정으로 주로 불렸다.[3] 물론 진짜로 사마씨 전체가 멸족되었다기보다는, 고려 멸망 후 많은 왕씨들이 성을 고친 것처럼 대다수의 사마씨가 살아남기 위해 성을 바꾼 것에 의해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주로 성을 둘로 쪼갠 사(司)씨나 마(馬)씨, 또는 그 자형을 변형한 동(同)씨, 풍(馮)씨 등으로 성을 바꾸었다. 이 네 성씨는 사마씨와는 별도로 존재하는 성씨로, 성을 바꾼 사마씨도 기존 이 네 씨족에 숨어들어간 것이다.[4] 남송 시기 원나라의 군대와 싸우다 전사했다. 사마광의 후손.[5] 하내 사마씨의 시조.[6] 속한서의 작가이자 후한서 지의 작가.[7] 번안명. 사마귀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