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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상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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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侯尙/夏侯尚
? ~ 225년


1. 개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수이며 는 백인(伯仁)으로 시호는 도후(悼侯). 예주 패국 초현 사람.

하후연의 조카로, 하후유의 사촌형. 아내는 덕양향주 조씨[1], 아들로 하후현, 딸로 하후휘[2], 손자로 하후후, 조카로 하후봉(夏侯奉)[3], 종손(從孫)으로 하후본(夏侯本)이 있다.

2. 정사 삼국지

어릴 때는 조비의 절친이었고 200년조조기주를 평정할 때 군사마로 종군해 오관중랑장 조비의 문학이 되었다. 216년에 조조가 위왕이 되자 황문시랑이 되고 오환이 반란을 일으키자 조창의 참군으로 수행해 적을 토벌하고 돌아온다.

220년에 조조가 죽자 평릉정후, 산기상시, 중령군이 되고 조비가 즉위하자 평릉향후, 정남장군, 형주자사, 가절 도독남방제군사가 된다.

문제(조비)에게 상용을 기습할 것을 건의해 서황과 함께 출진하여 맹달, 신의의 도움으로 유봉을 몰아내고 상용을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3군 9현을 평정하고 그 공으로 정남대장군이 되었다.

이릉대전에서 촉이 패하자 장강 북쪽에서 제군을 감독하며 위나라의 형주쪽을 견제하던 촉한의 진북장군 황권은 유비 본대와 연락이 끊어져 길이 막혔고 결국 위에 항복하는데 <문제기> 주석 《위서》에 따르면 이때 위나라 형주자사에게 항복했다고 한다. 당시 위나라 형주자사는 하후상이었으므로 황권은 그에게 항복했을 것이다.

222년, 조비의 1차 남정조진, 장합, 서황, 문빙과 함께 강릉을 공격해 강릉성을 구원하러 온 제갈근의 군대를 기름 실은 배로 화공을 펼쳐 무찌르지만 주연의 분전으로 인해 시간이 끌고 오히려 전염병이 돌 정도가 되자 삼각주를 거쳐 부교를 만들어 남북으로 왕래하려 하였고, 강릉성을 함락시킬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때 동소가 갑자기 상소를 올려 삼각주로부터 물러나게 하자 모두 욕하면서 퇴각하고 반장이 부교를 전소시킬 작정으로 떼를 만들어 띄우려고 하고 있었으므로 하후상 등의 군대는 삼각주를 빠져나왔다. 열흘 후 동소의 상소대로 물이 불어나 삼각지에 들어간 군대는 물에 잠기고 고립될 뻔하였다. 강릉현령 요태가 위나라와 내통하려 했으나 들통나 주연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제갈근이 부교를 띄워 공격해 오니, 하후상 등은 이길 수 없게 되었으므로 퇴각했다. 퇴각하기는 했지만 공이 있어 식읍 600호를 늘려 이전과 합쳐 모두 1,900호가 되었다.

문제는 하후상에게 조서를 내려, 아랫사람에게 형벌과 은혜를 베풀어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게 했다. 하후상은 이것을 장제에게 보였고, 장제는 문제에게 간언하여 이 조서를 물려오게 하였다.

그 후 형주으로 승진해 형주목으로 있으면서 상용쪽으로 길을 뚫어 서쪽으로 7백여 리를 행군하자, 산민(山民-산에 사는 백성) 만이(蠻夷)가 다수 복종하였고 5, 6년간 투항한 자가 수천호에 이르렀다.

224년에 창릉향후로 봉해졌다. 상술했듯 위문제 조비와는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고 결혼도 조씨 일가의 덕양향주 조씨와 결혼했는데, 나중에 본처 덕양향주보다 첩을 더 사랑하게 되어 덕양향주가 하후상의 총애를 잃자 조비가 그 첩을 살해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에 충격받은 하후상은 죽은 첩을 보고싶어 첩의 무덤을 파헤쳐서 시신을 꺼내서 끌어안고 울 정도로 폐인이 되어 상사병이 드는데 이걸 들은 조비는 "두습이 괜히 하후상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 아니었구만"이라고 말은 했지만 총애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는지 225년에 병이 악화되자 직접 찾아가서 손을 잡고 울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그는 이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첩의 뒤를 따라 1년만인 225년에 사망한다.

243년조방에 의해 조조의 묘 앞에서 제사지냈다. 나름대로 하후연, 조진, 조휴와 함께 조조의 20명 배향공신에 지정.[4]

결과적으로 조비의 치졸한 짓으로 꼽히며, 하후상이 죽은 건 위가 멸망하는 나비효과로 작용했다. 조비는 동생들을 철저히 실권에서 배척하면서[5][6] 황통과는 거리가 먼 방계 친족들에게는 군권과 실권을 나눠주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외척과 환관 대신 왕권을 강화했는데[7] 조예 시절에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황가를 지탱하던 조진과 조휴가 죽어버리면서 조씨나 하후씨 중 군권을 부릴 인재가 없어지자 군권이 사마의에게로 몰아졌는데, 이는 고평릉 사변을 거쳐 조위의 멸망과 서진의 건국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후반기 조씨, 하후씨 일가 중 하후상이 유능한 모습들을 보여줬기에 하후상이 살아있었다면 조휴와 조진이 죽더라도 군권이 사마의에게 가는 상황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조비 때문에 어처구니 없게 죽게 되었으니 조비가 위의 멸망 단초를 제공했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조위 황가 거물 2세대는 제 명에 간 인물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8]

3. 삼국지연의

한중 공방전에서 하후연의 부장으로 등장해 한호와 함께 출진한다. 늙은 황충엄안을 얕보고 장합의 충고를 무시한 채 싸우지만 첫 번째 싸움에서 대패하고 두 번째 싸움에서 형 하후덕과 한호는 각각 엄안과 황충에게 끔살을 당했으며 본인도 사로잡히는 처지가 되어버린다.

다행히 하후연이 앞서 진식을 포로로 잡아놔서 하후상의 포로 교환을 제안하고 이를 받아들임에 따라 포로 교환이 성사된다. 하후연이 진식을 무사히 보내준 반면 황충은 하후상이 위군 진지로 향하자마자 등짝에 화살을 맞춰 보냈다. 촉에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삼국지연의에서 이런 서술이 이상하다 생각할 수 있으나, 애초에 양 포로가 중간에서 만나서 서로 자기 진영으로 뛰고 일반 궁병들이 상대방에게 화살을 쏘는 살벌한 분위기로 서술되었다. 물론 하후연은 본인은 딱히 활을 쏘지 않았지만 황충은 하후상이 위나라 진영 거의 다갔을때 직접 활을 쏜 것이다.[9]

이후 조비에게 투항한 맹달이 양양에 왔을 때 잠시 등장한다. 하후상은 당시 상용을 뺏기 위해 서황과 양양에 주둔하고 있었다고 언급된다. 그 뒤로는 존재가 증발하며 잊혀지는데, 연의에서 조비의 사망을 간략하게 다룬데다가 조비의 여러 실책이나 졸렬한 모습을 생략하다보니 조비보다 먼저 사망한 하후상도 자연스럽게 잊혀져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하후상이 정사에서는 어떻게 됐나 알아본 사람들 중에는 하후상의 비참한 최후를 알고 충격받으며 조비의 인간성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삼국지연의 한정으로 하후상에게 하후덕이라는 가공의 형이 있다. 하후덕은 연의에서 황충과 노익장 콤비로 한중 공방전 때 활약한 엄안의 손에 당한다.

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삼국지3하후상.png
삼국지 3
파일:Xiahou_Shang_3_(1MROTK).png
100만인의 삼국지
파일:external/vignette1.wikia.nocookie.net/Xiahou_Shang_%28ROTK11%29.png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113.jpg
삼국지 12, 13
파일:하후상.jpg
삼국지 14

삼국지 1부터 개근하여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데 하후상 자신은 전반적으로 70대 능력의 그저 그런 장수으로 묘사된다. 위나라 2세대에서 여러 전투에 참가하였고, 꽤나 공을 세운 인물 중 한 명임에도 아쉬운 부분. 대신 바닥인 능력치는 또 없어서 능력치 총합만 보면 그럭저럭 높다. 평균 능력치가 70정도를 유지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 아들 하후현삼국지 3에서 정치력 93부터 시작해서 어떤 삼국지 시리즈라 해도 딴 능력이 그저 그런데 정치력만은 항상 90을 넘는 발군의 모사로 등장한다. 특히 하후현이 나오는 후반 시나리오에는 인재들의 씨가 마르는 수준으로 좋은 장수들이 별로 안 나오는데 하후현만 정치력 90대 중반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나온다. 심지어 삼국지 11에서는 특기로 명성을 가지고 나오면서 위군의 내정에 꼭 필요한 인재로 나온다. 이런 면 때문에 하후상은 은근히 문흠과 같은 취급으로 여겨진다. 정사로 비교하면 둘의 공적은 비교가 불가능 하지만....

그런데 이상하게 나이가 잘 안 맞는다. 조비는 187년생이고 하후상은 그의 또래였는데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181년생으로 조비보다 6살 많게 나온다.[10]

조비와는 어릴 적에 절친이었다는 점을 반영해서인지 친애/혐오 무장 시스템이 있는 시리즈에서는 서로가 친애 무장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사이가 나빴다던 순운[11]과는 서로 혐오무장으로 설정됐다. 그런데 하후상을 폐인으로 만들어 죽게 만든 장본인이 조비라서 친애와 혐오에 모두 포함되도 이상하지 않은데 하후상의 이런 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삼국지 2에서는 고유 얼굴이 뭔가 이상하다. 눈동자가 없고 얼굴이 길다.

삼국지 3에서는 육전지휘 68/수전지휘 25/무력 70/지력 60/ 정치력 54/매력 67에 야망 10, 운 8, 냉정 8, 용맹 9라 하후덕과는 달리 조금 분발하면 장군이 될 수 있다. 장군이 되는 데 추가로 필요한 육전지휘 및 수전지휘는 15에 불과하니 전장에서 조금만 굴려주면 장군도 가능하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5/무력 71/지력 77/정치력 62이며 병법으로는 분전, 돌파, 제사, 기사, 정란, 덫을 가지고 있다. 네 개의 공격계 병법을 다 가지고 있지만 어째 죄다 1단계인 분전, 돌파, 제사, 기사뿐이라 효용성이 좀 떨어진다. 능력치도 그렇고 좀 아쉬운 장수.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8/무력 68/지력 79/정치력 66/매력 59로 총합 350을 마크. 특기는 보수, 화시, 일제, 진정, 기습, 반목, 저지, 기합, 제독. 총 9개다. 활약하는 시대를 감안하면 능력치가 조금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9/무력 72/지력 74/정치력 65/매력 61로 총합 351로 전작의 능력치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지력이 하락하고 무력이 상승했다. 특기가 없기 때문에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효용성이 떨어진다. 여담으로 79에 불과한 통솔력은 특기가 없는 장수들 중에서는 단독 1위다. 바꿔 생각해 통솔력이 80을 넘어가는 장수들은 모두 특기가 있다.

삼국지 12에서의 일러스트는 깃발을 오른손으로 들면서 소리치고 있는데 아마도 오환 토벌이나 상용 공격, 조비의 남정 당시 제갈근을 상대로 화공을 써서 격파하던 때 중 하나를 묘사한 것 같다. 능력치는 통솔력 79/무력 72/지력 75/정치력 65. 병과는 궁병, 전법은 대타격이지만 무력이 낮아 사용하기 힘들다.

삼국지 13 본편에서 하후상은 뭔가 좀 처절하다. 능력치는 삼국지 12 때와 같아 큰 문제가 없는데 보유 특기가 꼴랑 순찰 1 이거 하나다. 병과 적성은 창병, 기병 B/궁병 A. 전수특기는 역시 순찰. 보유전법은 채배 3에 아군궁병의 공격 40과 사정을 올려주는 궁병공격진. 어디에도 쓸 수가 없는 특기수.
꼴랑 하나 있는 순찰 특기를 살려 민심을 올리려 해 봐도 나오는 도적에게 헉헉대는 무력이라 한계가 있다. 하후연, 조비, 조홍, 조휴 등과 같이 궁병이 주력인 장수들과 묶어서 써주자. 자리잡고 조홍의 제사채배와 동시에 써주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삼국지 14에서는 100만인의 삼국지 일러스트의 망토가 청색에 금색 갑옷의 모습으로 변경되었으며 능력치는 통솔 79, 무력 71, 지력 75, 정치 65, 매력 61로 전작과 달리 무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화공, 교련, 위무, 소침, PK에서는 자비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할거, 정책은 화계연구 Lv 4, 진형은 안행, 학익, 충차, 전법은 화시, 견제, 업화, 충자, 구축, 친애무장은 맹달, 조비, 환계, 혐오무장은 순운이다.

4.2.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와구관전투2에서 장합 휘하로 처음 등장, 이후 정군산, 양평관전투 등에 출전한다. 능력치 자체는 무력 70대의 평범한 발석차 클래스이지만, 게임 후반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템빨 갖춘 적군 네임드 발석차라 아군 기병계에게는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최후엔 4장 형주탈환 남사의 전투 분기때 서황의 부장으로 나와 북쪽 성채를 지키고 있으며 장포에게 일기토로 썰리는 이벤트가 있다. 대결시 처음엔 '장비아들이라고 쫄줄 아냐'며 도발하다가 '우욱... 역시 장비아들...'이라며 죽는다. 남사 대신 신야로 가면 이후 아예 볼 수 없다.

4.3.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파일:전략하후상.png

연의대로 한중공방전에 참여한 전투마다 번번이 패한 장합을 겁쟁이로 매도한다. 그러다가 자기도 황충에게 패해서 사로잡히게 되는데, 위군도 촉군의 진식을 포로로 잡아서 황충과 하후연이 포로교환을 하기로 합의한다. 교환 당일 하후상과 진식은 양군의 합의가 시작되자마자 죽기살기로 아군에게 도망가고 위군과 촉군은 서로 상대방의 포로를 향해 화살을 날려대는데, 진식은 운좋게 화살을 다 피한 반면 하후상은 아군 진영에 도착하기 직전에 황충이 활을 쏴서 등 한복판에 맞추고 만다. 이때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는데 이를 본 하후연이 분노해서 부대를 이끌고 촉군에게 돌격한 이후로 한동안 등장이 없기 때문에 영락없이 죽은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삼국지를 이 만화로만 본 사람들의 경우 실제 역사와는 달리 하후상이 여기서 죽었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도 이후에 하후상의 등장이 있긴 있는데 서황이 관우를 토벌할 것을 명령받아 번성으로 향할 때 그 부장으로 가서 관평을 상대하지만, 본인이 직접 등장하는 건 한컷 정도고 나머지는 '하후상 군이 관평 군을 무너뜨렸다'정도로 언급되는게 전부다. 이후 조비 시대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4.4. 삼국전투기

로미오X줄리엣로미오 칸드레 반 드 몬태규로 패러디되었다. 본인이 처음으로 등장한 유수구 전투 (4)편의 타이틀 컷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나온 한줄평이 삼국지 최고의 로맨티스트.

유수구 전투 편에서 첫 등장. 조조가 유수오를 공략하기 위해 군을 일으켰을 때 휘하 장수진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하후돈을 위시한 조조군이 소호를 가로질러 수전으로 손권군을 급습할 때 참전하기도 했다.

한중 전투 편에서는 유비의 한중 공격 소식을 들은 조조가 직접 지휘하겠다고 나서려 하자 완성의 후음과 위개의 반란 사실과 오환의 무신저가 남침을 준비 중인 것 같다는 정보를 전달했다. 하후상은 오환을 막기 위해 휴전 중인 합비에서 병력을 빼는 방법밖에 없다고 제안했으나 조창이 직접 출격하기로 정하면서 합비에서 병사를 빼지는 않게 되었다. 완의 후음과 오환의 무신저가 전부 제압되자 조조에게 이제 바로 한중으로 움직일 수 있겠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이릉 전투 편에서는 서황과 함께 맹달의 상용 공략을 지원했다고 언급됐다.

삼로 전투 편에서는 조진 등과 더불어 강릉 방면으로 공세에 나섰다.[12] 위에도 언급되었듯 이미 오래 전부터 상용 일대를 평정하는 등 꾸준히 남벌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령관은 조진이었지만 주력은 하후상이었다고 언급된다.

조진과 장합이 도착하자 강릉성 공략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강릉은 쉽게 얻을 수 없지만 이전 유비와의 전쟁으로 오에서도 병사 차출이 많았고 또 질병도 돌아 가용 전력이 얼마 되지 않으니 그 점이 공략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이에 조진이 정공으로 밀어붙어야 되겠다고 하자 꼼수가 통하지 않을 성이라고 말하며 그 말에 동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억지로 무리해서 강릉성을 빼앗기보다는 포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진과 장합이 강릉성을 포위 공성하는 동안 하후상이 주변 일대를 싹쓸이하고 고립된 강릉성이 알아서 무너지게끔 하는 것이 하후상의 구상이었던 것.

장합이 오의 손성을 손쉽게 박살내면서 포위에 성공하자 포위를 풀기 위해 제갈근이 나서고, 제갈근은 장강 가운데의 무인도로 들어가 재정비를 하려고 했는데 그걸 하후상이 기습하면서 제갈근군을 농락하여 지원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강릉 포위 후 도통 공성에 진도가 나가지 않자 조진이 총력전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하후상은 처음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반대했다. 그 대신 차라리 자기 쪽에서 스피드를 올리겠다며 장합을 자신 쪽으로 편성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렇게 하후상과 장합은 강릉 주변의 장강 북방면을 싸그리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장강 남방면이었다. 하후상은 오의 지원군이 북으로 넘어오는 족족 쳐내고 지원군이 정리되면 도하하여 남방면을 정리할 생각이었지만 정작 장강 남변의 오군은 지원을 올 생각조차 안 하고 있어서 시간이 끌린 것. 이에 차라리 하후상은 선공을 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지만 함선이란 함선은 죄 무창 쪽에 있어서 도하할 함선이 없었다. 그렇다고 유선으로 짜잘짜잘 갔다가는 표적이 될 뿐일 테니 결국 하후상은 부교를 띄우기로 결정하지만 이 선택은 하후상 커리어의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고 언급되었다.[13]

공성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고 날씨가 더워지자 하후상 또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도하를 서두르려 했다. 부교를 완성시키는 데 성공하고 도하를 진행하던 중 딱 기습하기 좋은 시점임에도 적의 움직임이 없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그 뒤 상류에서 억새풀을 잔뜩 실은 뗏목 수십 척을 발견했다는 첩보를 받은 뒤 그런 뗏목에 불을 붙여 흘려보낸다면 부교가 순식간에 전소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도하를 포기하고 전 병력에게 다시 서둘러 강을 건너 돌아가라고 명했다. 물론 그대로 병력을 꼬라박았으면 진짜로 화공에 잿더미가 됐을 테니 퇴각 판단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결국 돌파구를 찾지 못한 위군은 주연의 예측대로 6개월 이후를 버티지 못하고 강릉에서 물러나야 했다.

석양 전투 편에서는 조비 에피소드에 곁다리로 끼어서 같이 사망처리됐다. 애첩을 매우 사랑하여 적실을 멀리하였는데 이에 조비가 하후상의 애첩을 죽여버리는 바람에 정신이 나가버려 애첩의 묘를 파는 지경에 이르렀고 얼마 안 가 사망했다고 묘사됐다.

4.5. 불편한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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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상은 조비와 절친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조조가 조진과 조휴를 조비와 같이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조비는 조진이나 조휴에 비해 10년 가까이 나이차가 났기 때문에 친구라고 하기에는 뭐했다. 그래서 하후상과 조비가 절친이 되었다.

하후상에게는 상당한 미인에 인간성까지 자애로운 첩이 하나 있었다. 이 처자는 하후상이 상용 서쪽을 개척할 때 포획했던 원주민의 딸이였다. 이 때문에 하후상의 본처 덕양향주 조씨가 이 여자를 시기 질투했고 조비는 해결책이라고 내놓은게 이 처자를 살해한 것이였다. 자신의 애첩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인해 하후상은 미쳐서 날뛰었고 결국 애첩이 죽은 그 다음해에 미쳐서 죽었다.


[1] 조진의 누이다.[2] 딸 하후휘가 사마의의 아들 사마사와 결혼하면서 하후상은 사마의의 사돈이 된다.[3] 조카라는 것을 보아 하후상에게 형이나 아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4] 하후돈조인, 정욱의 경우 233년 이미 배향되었다.[5] 동생들의 실력들이 좋았던 것도 있고 조조가 말년에 후계자 선정 때 고민을 한 것, 형제끼리의 싸움으로 세력 자체가 멸망해버린 원소 등을 보면 이렇게 안하기가 힘들다.[6] 특히 가장 큰 위험요소였던 맏동생 조창은 조비에 의해 암살당했다는게 정설이다.[7] 조조가 외척환관에 학을 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조조는 탁류 출신의 인물이면서도 영천호족, 하내호족 등으로 대표되는 청류파 호족들의 지지에 힘입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외척이나 환관을 기용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8] 조진은 비만으로 인한 건강 문제로 40대에 단명, 조휴는 석정 전투의 패배로 인한 정신병으로 단명, 하후상은 상술했듯 첩의 피살로 인한 마음의 병으로 단명.[9] 하후상이 죽거나 큰 상처를 입지 않은 점에서 볼 수 있듯이 황충의 이 행동은 치사하게 포로를 공격하는 행위로 묘사되었기보다는, 적군에 대한 경고와 그의 절륜한 활솜씨에 대한 묘사에 가까울 것이다. 마치 조로가 적을 제압하고 경고의 의미로 몸에 작게 Z자를 만들듯이. 어차피 이 일화는 픽션이며, 방금 위나라 군대를 박살낸 황충이 마치 '난 언제든 네놈들을 죽일 수 있다'란 식으로 자신의 무용을 뽐내는 장면에 가깝다.[10] 하지만 200년에 종군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성년임은 분명한데 조비 또래 나이라면 너무 나이가 어리다. 최소 관례를 치른 16살이라 가정하면 실제로는 조비보다 한두살 더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 삼국지 6에서는 그나마 조비와 비슷한 나이로 나오는데, 오히려 1살 적은 188년생으로 나온다.[11] 삼국지 3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가 삼국지 13PK에서 복귀했다.[12] 이 와중에 완전히 비만 체형이 된 조진을 보고 안쓰러워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개그컷도 1컷 연출했다.[13] 하후상 본인은 강릉 공방전에서의 이 실책을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치명적인 오점으로 회상하는데 뒤에서 조비가 "네 치명적인 오점은 그게 아니잖아!"라고 태클을 걸고 있다. 조비가 지적한 치명적인 오점은 아마 첩이 죽었을 때의 행적인 듯하다.조비놈이 지적할 오점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