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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09:06:17

반장(삼국지)


오서(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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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십이호신
정보 황개 한당 장흠 주태 진무
동습 감녕 능통 서성 반장 정봉

파일:반장.jpg
최종직위 우장군(右將軍)
성씨(潘)
(璋)
문규(文珪)
생몰기간 (? ~ 234)
고향 연주 동군(東郡) 발간현(發干縣)


[clearfix]

1. 개요

고대 중국 후한 말과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이며 자는 문규(文珪)로 연주 동군(東郡) 발간현(發干縣) 출신[1][2], 반평의 아버지.

2. 정사 삼국지

손권이 양선현의 장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나가 손권을 따랐다. 손권은 그를 기이하게 여겨 아꼈고, 그에게 병사를 모집하도록 하여 백여 명을 얻게 되자 부장으로 삼았다. 산월의 적을 토벌하여 공로를 세웠으므로 별부사마에 임명됐다. 이후에 오군의 큰 저자에서 침입자를 죽이자, 이로부터 도적은 단절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이름이 났으며 예장군 서안현의 장으로 승진했다. 유표가 형주에 있을 때, 백성들은 여러 차례 그들의 침략을 당했다. 반장이 일을 맡은 이후부터 침략자들은 경내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웃하고 있는 현인 건창에서 강도들의 폭도가 일어나자, 전임되어 건창을 다스리게 되었고, 무맹교위를 더했다. 그는 사악한 자를 토벌하여 다스려 1개월 만에 전부 평정시켰다. 그리고 흩어져 떠도는 병사들을 소집하여 8백 명을 얻었으며, 그들을 데리고 건업으로 돌아왔다.

2차 합비 공방전에서 장료가 급습했을 때, 장수들은 무방비 상태였고, 진무는 분투하다 죽었으며, 송겸이나 서성은 모두 후퇴하였다. 반장은 후방에 있었지만, 곧바로 급히 달려가서 말을 비껴 송겸과 서성의 병사들 중 달아나는 2명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병사들은 모두 돌아와서 싸웠다. 손권은 이 점을 특히 칭찬하여 그에게 편장군을 제수했다. 그래서 백 명의 교관을 통솔하여 반주에 주둔했다.

손권이 관우를 정벌할 때, 반장은 관우가 달아나는 길을 주연과 차단시켰다. 그는 임저에 도착하여 협석에 주둔했다. 반장의 부하 사마 마충이 관우와 관우의 아들 관평과 도독 조루 등을 붙잡았다. 손권은 의도군의 무현과 자귀현 두 현을 나누어 고릉군으로 만들고, 반장을 그곳의 태수로 임명했으며, 진위장군으로 삼았고, 율양후로 봉했다. 감녕이 죽자, 또 감녕의 군대를 주어 합치도록 했다. 유비가 이릉으로 출병했을 때는, 반장과 육손이 힘을 합쳐 대항했으며, 반장의 부하가 유비의 호군 풍습 등의 목을 베었고, 죽거나 부상당한 자는 매우 많았다. 반장은 평북장군, 양양태수로 임명됐다.

조비의 1차 남정 당시 위나라 장수 하후상 등이 남군을 포위하고, 선봉 부대 3만 명을 나누어 부교를 만들고 백리주를 건너왔다. 제갈근양찬이 함께 병사를 모아 구원하러 달려갔지만, 그 사태에 대처할 바를 몰랐고, 위나라 병사들은 날마다 끊임없이 건너고 있었다. 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나라의 기세는 방금 흥성하기 시작했고, 강물은 또 얕으므로 그들과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병사들을 인솔하여 위로부터 상류로 50리 되는 곳까지 가서 갈대를 수백만 개 베어 커다란 떼를 만들어 물의 흐름을 따라 불을 놓아 부교를 전소시키려 했다. 떼 만드는 작업이 막 끝나 강물이 가득 찬 것을 보고 띄우려고 할 때에 하후상이 이것을 알고 병사를 인솔하여 물러났다. 반장은 말에 올라 육구까지 내려가서 막았다. 227년 석양 전투에서는 퇴각할때 후미를 맡았는데 힘에 부쳐 주연의 도움을 받는다. 손권은 제위에 오른 후, 반장을 우장군에 제수했다.

반장은 사람됨이 난폭하고 사나웠으며, 금령은 매우 숙연했다. 성정은 호탕하고 술을 좋아하였다. 그는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외상술을 즐겼는데, 빚쟁이가 대문까지 쫓아오면 항상 이후에 부귀해지면 다시 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공업 세우기를 좋아하였으며, 통솔하는 군대는 수천 명에 불과했지만 이르는 곳마다 언제나 만 명이나 되는 것 같았다. 정벌이 멈추었을 때는, 즉시 군대 시장을 세웠으며, 다른 군에 없는 것은 모두 반장의 시장에서 충족시켰다. 그러나 그의 성격은 사치스러웠고, 이런 경향은 만년에 더욱 심해져 의복이나 물건은 그의 신분을 넘는 것을 사용했다. 관리들 가운데 부유한 자가 있으면 그를 죽이고 재물을 빼앗을 때도 있었다. 법령을 받들지 않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감시하는 자가 이 일을 들어 상주했지만, 손권은 그의 공을 아껴 항상 용서하고 죄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큰 일을 맡겼다간 그르칠 성격이라는건 손권도 부정을 못해서 우장군에서 더 이상 승진하지 못했다.

이후 234년에 병사했다. 아들 반평은 아버지의 성품만 물려받고 능력은 물려받지 못 해(...) 회계군으로 쫓겨났다. 반장의 처는 건업에서 살고 있었는데, 반장이 공을 세운 덕에 전택을 하사받고, 전객(佃客) 50가의 부역를 면제받았다.

관우를 죽인 인물들 중 한 명이라서 촉빠들의 엄청난 공분을 사고 있는 인물이긴 한데, 그것을 논외로 하더라도 관리들이 돈이 많다 죽이고, 그 돈을 갈취한 인물인지라 굳이 관우와 연관짓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로 인간 쓰레기다. 또한 전쟁을 안 할 때마다 장사를 했고, 관리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았다는 점으로 보면 돈을 굉장히 심하게 밝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3. 삼국지연의

관우를 생포해서[3] 관우의 죽음에 일조했고, 이후 손권에게 그 공로로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하사받았다. 이후 이릉대전 초기에 황충일기토를 떴다가 패하고 길을 잃어 어느 민가집[4]에서 잠시 쉬고 가려고 들어갔다가 본의 아니게 그 곳에 먼저 와 있던 관흥과 마주쳐 버렸고, 당연히 몹시 분기탱천한 관흥이 반장을 뒤쫓자 반장은 도망쳤으나,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관우의 원혼을 봐 버려서 당황해서 더 이상은 도망도 못 가고 있던 상황에서 관흥에게 뒤에서 칼에 맞아 죽어버리는 굴욕[5]을 당한다.[6] 삼국지연의/피해자 문서 참고. 이로써 관흥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음은 물론 청룡도도 되찾는데 성공한다.

4. 미디어 믹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반장(삼국지)/기타 창작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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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산둥성 랴오청시 관현 혹은 선현[2] 랴오청시산둥성의 서쪽 경계인데, 중국어 위키로 검색 결과 딱 떨어지지는 않고 둘 중 하나 정도로 비정되는 정도인데, 두 현 모두 그 중에서도 서쪽이라서 산둥-허베이-허난 3성의 삼합점이 가까이 있다.(...) 성경계를 넘어 허베이성(한단시) 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다밍현(후대 송-원-명-청 시대의 대명부)이 나온다. 어쨌든 딱 랴오청이나 산둥 출신이라고 무 자르듯이 말하기는 약간 곤란하다.[3] 정확히는 반장의 부하인 마충이 관우를 포획했다.[4] 그 집에는 관우의 초상화가 있었는데, 반장보다 먼저 그 집에 머무르게 되었던 관흥이 아버지를 알아봤고, 그 집의 주인은 관우를 흠모하여 영정을 모시고 있다고 밝혔다.[5] 거기다가 시신은 그 민가의 주인이 그냥 불태워 흔적을 없애 버린다(…).[6] 뚱딴지 만화 삼국지에서는 조금 다르게 나오는데, 반장이 길을 잃어서 그 집에 잠시 머무르려 하는 것까지는 같으나, 여기에서는 그 집에서 쉬고 있던 관흥이 반장이라는 말을 듣고 몹시 분노하여 방에서 나와서 그 자리에서 반장을 단칼에 죽여버리는 것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