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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22:00:58

합비 전투(215년)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위-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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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attle of Hefei.jpg

1. 개요

215년에 조조군손권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 손권이 합비를 공격한 것은 이것이 두번째이다.

유비와 합의를 맺고 육구로 돌아온 손권은 무려 10만 대군을 동원해 곧바로 합비로 군사를 움직인다. 조조와 조조의 주전력이 한중에 있는 틈에 빈집털이 결판을 내려는 의도였지만 결과는 결국 조조군의 동남방면 사령관 장료에게 제대로 털리고 패퇴한다. 장료무공으로 유명한 합비 공방전이 바로 이 전투이다.

2. 삼국의 정세

이 당시 적벽대전에서 승리한 손권과 유비는 힘을 합쳐 형주를 정복하기 시작한다. 조인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결국 형주 남쪽의 4군과 강릉을 빼앗긴 것이 당시의 상황. 자세한 것은 형주 공방전을 참조.

211년 조조는 종요에게 명을 내려 한중장로를 공략하라 말한다. 이에 마초는 불안감을 느끼고 관중의 군벌들을 규합, 거병하여 조조에게 대항한다.

불안하기로는 익주의 유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송이 유비를 불러 견제할 계획을 말하자 장송을 사신으로 보내고, 유비는 이에 촉으로 들어와 211년부터 212년까지는 장로를 공격하는 시늉만 하면서 민심을 얻기 위해 인심을 후하게 베풀었다. (삼국지 선주전)

마초의 봉기를 물리친 조조는 212년[1] 위공(魏公)의 자리에 올라 자신의 권위를 천하에 드러내게 된다. 이 해, 장송의 내통 혐의가 드러나 처형당하자 유비는 본격적으로 유장과 전쟁을 벌인다. 213년 방통이 전사하자 제갈량, 조운, 장비가 추가로 파견되었고 다음 해인 214년 갈 곳을 잃은 마초까지 유비에게 합류하여 위용을 갖추고 성도를 공격하자 유장은 마침내 항복한다. 유비가 서천을 점령한 것이다.

213년 조조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인지 다시 한번 군사를 이끌고 유수를 공격해 손권과 대치하는데, 손권은 편지를 보내 조조에게 돌아갈 것을 권하고 조조는 "아들을 낳으려면 응당 손중모 같아야지 유경승의 아들들은 개돼지와 같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게 된다.

그러면서 장강 북쪽 해안의 군과 현을 손권에게 탈취당하게 될 것을 걱정하여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내지로 이주하도록 명령했다. 백성들은 서로 놀랐으며 여강 구강 기춘 광릉의 10여만 호가 모두 장강을 건너 동쪽으로 이주했다. (오주전)

이후 합비 남쪽으론 오직 환성만이 있을 뿐이었다. 주광이 지키고 있는 환성을 손쉽게 점령한 손권은 그해인 214년 유비가 서천을 평정했다는 소식을 듣자 빌려준 땅을 돌려받기 위해 제갈근을 파견하였다.

하지만 제갈근과 대면한 유비는 "나는 지금 양주를 취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양주를 평정한 후에 곧바로 형주를 다 상여하겠습니다."(자치통감)라고 말하므로 인해 손권은 여몽을 보내 장사, 영릉, 계양을 빼앗자 유비는 몸소 5만 대군을 이끌고 공안으로 내려가고, 관우를 익양으로 파견하여 손오동맹에 긴장감이 드높아지며 익양대치가 발생한다.

그런데 215년, 조조가 마침내 장로의 항복을 받고 한중을 손에 넣게 된다. 위협을 느낀 유비와 손권은 결국 상수를 기점으로 형주를 분할한다. 여기서 조조는 사마의유엽이 이대로 유비가 있는 을 정벌해야 한다고 간곡히 제안했음에도 말을 듣지 않고 하후연장합에게 한중을 맡기고 자신은 남은 사람들을 이끌고 철수했다.

익양대치에서 형주 문제를 일단 해결한 손권은 10만의 대군을 일으켜 눈엣가시인 합비를 공격한다. 바야흐로 제2차 합비 공성전이 발발한 것이다.

3. 선제 기습

당시 합비를 지키고 있는 인물은 장료, 악진, 이전 그리고 조조로부터 교서를 받아 온 합비 호군 설제 등과 7000명에 불과한 병사. 이렇게 손권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장료는 설제가 가져온 교서를 뜯어본다. 그 교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손권이 도착하면 장 장군, 이 장군은 나가서 싸우고 악 장군은 성을 지키고 호군은 그들과 싸우지 마라.[2]
이를 본 장수진들은 군사가 10배나 차이나는 적군을 상대로 사령관인 장료와 그 직속인 이전에게 나가 싸우라고 지시한 교서에 당황하였으며 장료는 이 교서를 '원군을 기다리지 말고, 적이 정비하기 전에 기세를 미리 꺾어놓으면 수비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나가 싸우라는 지시일 것이다.' 라고 해석하며 명령을 수행하려 했지만 이전은 숙부 이건을 죽인 게 여포군이란 것 때문에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이때까지도 사이가 최악인 편이었고 악진도 장료를 영 마땅찮게 봤기 때문에[3] 사령관인 장료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교서와 장료의 지시에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이런 반응을 보자 장료가 분노하며
성패의 기회는 이 한 판의 전투에 달렸소. 여러분들이 만약 의심한다면 나 장료 혼자서 군대를 거느리고 결판을 낼 것이오!

라고 이들을 비판하자 장료의 말을 듣고 뉘우친 이전이 사적 감정을 미뤘다.
이것은 국가의 큰일이니, 그대의 계획이 어떠한지 돌아볼 뿐이고, 내가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고 공적인 대의를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청컨대 그대를 따라서 나갈 것이다.

이전은 장료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했고, 장료는 800명의 정예 결사대를 모집하고 소를 잡아서 쇠고기를 결사대와 나눠먹는 잔치를 벌인 다음[4]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긴 화극을 쥐고는 앞장서서 적진으로 돌격, 수십 명의 장졸과 두 명의 장수를 죽이고는 큰 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손권군의 대장기 아래 즉 군주손권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다. 손권과 부하들은 크게 놀라 어쩔 줄을 모르며 당황하다가 근처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 빤스런으로 도망쳤다. 장료는 손권을 도발했지만 손권은 감히 나서지 못했고, 뒤늦게 그의 군사가 별로 없는 걸 보고 포위섬멸을 지시했으나 장료는 가볍게 포위망을 돌파하고 성으로 귀환했다.

심지어 장료는 성으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낙오된 병사들이 "장군은 우리를 버리시는 겁니까!"라는 애원을 듣고 적진에 뛰어들어 그 병사들도 싸그리 구출해서 돌아왔다.. 새벽에 시작해 정오까지 이어진 싸움으로 고작 장수 두 명과 천 명도 안 되는 병사들에게 10만 오군은 그대로 깨지고 사기가 곤두박질 쳤으며 감히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더욱 가관인 건 이게 그나마 여러모로 보정 받은 대하소설 삼국지연의도 아니고 정사 장료전에 있는 '사실'이라는 점. 아무리 위군 결사대가 정예병만 뽑아서 싸웠다는걸 고려하더라도 이는 각지에서 많은 육상 전투를 경험한 합비의 위군 대비 수전과 공성전만 경험한 오군의 수준 차이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지휘관인 장료는 북방 유목민족과 국경을 맞대는 병주 출신이라 기병을 이용한 기동전에 능숙했을 것이나, 오군은 당연히 그렇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해도 고작 800여명만으로 수십배의 숫적 열세를 타파한 건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전과가 맞다.

4. 소요진 전투

손권군은 장료의 농락으로 기세가 꺾여 10만의 대군세로도 합비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10일 만에 풍토병까지 돌자 회군을 명하는데 손권은 무슨 생각인지 최후미 즉 회군병력 중 제일 마지막에 병사 천 명과 장수 몇 명과 함께 끝까지 남은 상황이었다.[5] 손권군의 퇴각을 눈치챈 장료는 더욱 가관으로 한 번 더 공격을 강행한다.

장료 측의 기습에 여몽 등이 죽음을 각오하고 적을 막고 장흠, 진무, 서성, 송겸 또한 적과 싸우며 특히 능통은 자신의 친위대와 함께 손권을 호위하여 싸운다. 손권 또한 직접 활을 쏘며 적에게 대항했다.[6] 군주까지도 친히 직접 싸울 정도로 전세를 휘몰아친 것이다. 손권은 능통과 그의 3백여 시종의 힘으로 포위를 벗어나고 능통은 손권이 포위를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자신의 시종들과 함께 장료군에 돌격한다.

그렇지만 서성과 송겸이 견디지 못해 퇴각하는 등 모랄빵으로 군사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후방에 있던 반장이 마침 도착하여 도망가던 송겸과 서성의 병사 두 명을 죽여 군사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해 앞의 적과 싸우게 하고 감녕은 적에게 화살을 쏘며 군악대한테 어째서 북을 치고 피리를 불지 않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어떻게든 군사들의 정신줄을 챙기려고 든다.

이런 장수들의 희생으로 손권은 나루터에 있는 다리 위로 올라왔으나 다리의 남쪽 부분이 이미 무너져서 3미터 정도나 나무판이 없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곡리가 말 뒤에 있다가 손권에게 안장을 꼭 잡고 고삐를 늦춰 잡게 한 다음, 채찍으로 말이 뛰는 것을 도와 드디어 진교를 건너뛰게 했다. 그때 하제가 3천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나루터 남쪽에서 손권을 맞이하여 손권은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진무는 전사했고 서성은 상처를 입고 창을 잃은 것을 하제가 되찾아온다. 특히 능통은 수십 명을 죽였지만 수많은 상처를 입은 데다가 자신이 친근하게 대우하던 3백 시종전멸하고 그 자신만이 남쪽의 나루터에 도망쳐와 다리가 끊긴 것을 보고 갑옷 입은 상태로 자맥질하여 손권이 있는 배에 겨우 도착했을 뿐이었다.

5. 패인

215년 합비전투에 관하여, 손권은 이끌고 온 10만 군이 모두 합류한 뒤 공성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감녕전에서는 역병이 퍼진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장료와 800명의 돌격 사건 이후 손권은 10일간 합비를 공격했는데도 점령하지 못했는데 정황상 공격하기 전부터 이미 역병이 퍼지고 있었고 따라서 환성전투처럼 급하게 공격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병에도 불구하고 합비까지 진군한 것은 아무래도 조조가 원정으로 한중까지 나아가 있었기 때문에 역병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합비를 뚫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병력이 집결하기 전의 선제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손권군은 미리 기세를 꺾어두라는 교지를 남긴 조조와 이를 압도적인 역량으로 실행해낸 장료에게 초장부터 꺾이고 들어갔다. 선공이라도 당하지 않았으면 높은 사기를 유지해 역병이 가라앉기를 기다렸을 터이지만, 이미 장료에 대한 두려움이 퍼진 상황에서 역병이 진정되질 않으니 떨어진 사기를 올릴 여지가 없어 더 이상 공성전을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원정에서 세병제라는 약점을 가져 병력의 집중이 힘든 구조적 문제와 역병이라는 재해가 겹쳤던 상황이라 온전히 손권의 무능으로 매도할 수는 없지만, 결국 실질적인 공성은 치르지도 못한 데다 두 번의 기습적인 공격에 영 맥을 못추었던 것은 사실이다.

후퇴를 결정한 시점에서 손권 측의 전략상의 패배는 사실상 확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는 것. 후방에 손권이 몇몇 장수와 소수의 병사를 이끌고 남아있는 상황에서 장료가 공격을 가해 손권이 패주하는 모양새가 되며 합비 공방전의 패배 여파는 더 커졌다. 다만, 손권을 옹호하자면 '료래료래' 당시에도 손권군의 포진상 손권 스스로가 성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후퇴할 때에도 역병 때문에 물러나게 되자 군이 모두 물러날 때까지 소요진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본다면 손권이 앞장서는 리더십을 가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 사건은 사람들이 오의 전투력을 낮잡아보는 원인이 되지만, 동흥 전투에서는 제갈각이 승리를 거두었고, 그 기세를 탄 합비원정 때 제갈각은 회전을 벌이고 싶어했으나 위에서는 이를 역으로 이용하여 지연전을 펼친 점을 봐도 전투 능력이 위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전투력적인 측면에서 오나라가 현격히 부족했다면, 위나라가 굳이 합비신성을 신축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 215년 합비 전투는 장료의 활약과 오군에 유행했던 역병 두 가지 요소가 겹쳐 오군은 위군에 압도당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6. 후일담

능통은 자신이 아끼던 시종들이 모두 죽은 것을 알자 펑펑 울기 시작한다. 이에 손권은 직접 소매를 당겨 눈물을 닦아주며
공적, 죽은 자는 이미 죽었고, 실로 경은 살아 주었는데, 어찌 사람 없음을 걱정하오?
라며 그를 위로한다.[7] 그리고 그날 배안에서 잔치를 벌이니 하제가 그걸 보고 눈물을 흘리며 죽을 때까지 훈계로 삼으라고 말한다. 손권은 그의 눈물 또한 직접 닦아주지만 그 다음에 하제는 다시 반란군토벌 명령을 받는다.[8] 그리고 손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힘껏 싸운 장흠은 탕구장군 유수독으로 승진시키고 아군의 탈주를 막아 앞의 적과 싸우게 한 공으로 반장을 편장군에 제수한다. 또 손권은 전사한 진무의 장례를 직접 임해 진무의 애첩을 순장하도록 한다. 또 건강실록에 따르면 손권은 자신의 손가락을 피가 나올 때까지 씹어 일생의 교훈으로 삼고 능통을 침실에 들어오도록 허락해주었다고 한다.[9]

위나라에서는 이런 큰 승리를 기뻐하는데 장료가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지 항복한 오나라 장군에게 묻는다.
아까 보니깐 자줏빛 수염을 가진 장군이 있었어. 상체는 길고 하체는 짧고,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던데, 그게 누구요?
그 말에 오나라 장수가 손권이라고 대답하니 장료와 악진은 서로를 쳐다보고 두 말할 것도 없이 서로 말을 타고 추격을 하지만 결국 이때까지 얻은 곳에 만족하고 잃어버린 기회를 한탄할 뿐이었다.

당시 조조도 이 승리를 매우 크게 여겨 장료를 정동장군(征東將軍)에 임명하고, 216년 조조는 손권을 공격하러 가는 길에(유수구 전투) 합비에 들러 장료가 싸운 곳을 순행하며 오랫동안 감탄의 탄식을 하였다고 한다.

7. 결과

2차 합비 공방전의 패배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면서 강남 병사들의 강북에서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줬는데 합비의 방어도는 둘째치고 손권이 친히 이끄는 10만의 군대가 고작 7,000명이 막는 성 하나도 떨구지 못하고 역으로 1,000명도 안 되는 군세에 정면돌파 당하고 손권이 죽기 직전까지 몰리기까지 했다.

한편, 삼국시대오나라에서는 떼를 쓰면서 말을 안 듣고 울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장료가 온다!" (遼來遼來)라고 말하면 무서워하면서 눈물을 그쳤다라는 말도 있다. 한마디로, 어린 아이들을 겁주는 망태기 할아버지 같은 용례로 쓰인 셈인데 적벽대전이나 합비 공방전에서 실제로 존재감이 매우 큰 활약을 보여줬던 것을 잘 생각해보면 시대상으로 봤을 때 강동 아이들을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만화 창천항로에서도 이런 일화를 다루는 장면이 있다.#

합비 공방전에서 이어진 216년 유수구 전투에서는 감녕이 100인 결사대를 이끌고 야습을 하여 위군 진영을 헤집고 무사히 돌아온 일이 있었다. 오나라의 자존심을 세워준 일화로 이에 손권은
맹덕에겐 장료가 있지만, 에겐 감흥패(興覇)가 있으니, 족히 서로 상대해볼 만하다!!
며 감격했다 하니 오나라에 퍼진 장료의 위상을 알 수 있겠다.

참고로 이 전투로 인해 오가 북벌을 했어도 오군 바로 위인 합비 하나를 뚫지 못 해서 북벌이 한풀 꺾이며 수비 태세로 전환했고 대신 손권은 자기 땅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형주를 유비에게 되찾고자 관우가 번성을 치러 간 사이 형주를 점거했다. 그리고 분노한 유비에 의해 이릉 전투가 발발하면서 촉과 오는 국력을 크게 낭비하게 됐고 안 그래도 화북의 경제력을 온전히 이용하던 위보다 기본적으로 국력이 딸렸음에도 이 전투를 계기로 촉과 오는 위에 대항할 국력이 남지 않았고 결국 촉과 오는 차례대로 멸망하게 된다.[10]

8. 창작물

8.1. 창천항로

파일:attachment/4-newhdol.jpg
장료가 온다!!(遼來來)

합비 전투를 유명하게 한 계기가 된 만화. 료래래(遼來來) 또한 이 만화를 통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위의 2차 합비 전투에 나온 만화도 창천항로의 한 장면이다. 작중의 장료무쌍을 보면서 괜시리 쪽수 믿었다가 제대로 개털린 오나라 병사들의 장료에 대한 공포를 간접체험 할수 있다.[11] 여담으로 위 장면의 경우, 이마가 좀 튀어나온 양반이 손권.

8.2. 삼국지 영걸전

아군이 참전하지는 않으나 4장에서 선택지에 따라 발생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제갈량의 진언에 따라 손권이 합비를 공격하도록 요청하거나, 요청하지 않을 수 있는데, 전자를 선택했다면 손권군이 장료군이 완성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견제했다고 이벤트로 언급되고, 후자를 선택했다면 손권이 금 2,000을 주고 이후 완성 전투를 치르기 전에 장료의 지원군을 격퇴해야 한다. 이때 손권은 어부지리를 노리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스토리에 별 영향은 없다.

8.3. 삼국지 조조전

장료, 이전, 악진이 강제출진하며 조조는 출진 불가능. 삼국지연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전개로 가며, 태사자가 부하를 잠입시켜 내부의 혼란을 유도하지만 장료가 이를 눈치챈다. 그리고 선택지가 뜨는데 서문을 열 경우 태사자와 주위 부대가 혼란에 빠지고 남문을 열 경우 손권 주위 부대가 혼란에 빠진다. 연의대로 서문을 열면 더 많은 병력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지만 남문을 열면 손권, 정보, 노숙, 장굉 4명의 적 무장을 혼란에 빠드릴 수 있어서 까다로운 적 무장을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손권을 격퇴시키면 노숙과 장굉도 같이 퇴각한다.[12] 서문을 열었을 경우, 태사자를 죽이지만 않으면 남쪽의 부대가 구원하러 오지 않지만 남문을 열었다면 태사자가 구원하러 오기 전에 빠르게 전멸시키고 미리 유리한 진형을 짜야 한다.

2차 합비의 무위는 이후 연의에서 처럼 유수구 전투의 전초인 소요진 전투로 표현된다.

실제로 연의처럼 장료, 이전, 악진이 한때 의견이 갈렸다거나 또는 장료, 이전이 기습하여 오군을 격퇴하는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다.

8.4.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1에서는 오나라 무쌍 모드의 4번째 전투이자 오와 위의 최종결전이다. 프리 모드로 진행시에는 위군으로도 진행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등장하는 장료호로관 메뚜기, 장판파 킬러조와 더불어 3대 강화 무장 중 하나로 때려잡기 매우 어려운 장수로 꼽힌다. 대신 장료를 잡으면 공격력 +10짜리 검을 주므로 도전해봄직하다.

진삼국무쌍 2에서는 1차 합비 전투를 인용한건지 장료의 함정에 의한 태사자 사망이 주요 이벤트. 오군 시점에서는 이벤트 발동을 저지하기 위해 장료를 격파한 후 하후돈을 잡아내는 것, 위군 시점에서는 이벤트를 발생시켜 태사자를 제거하고 나서 남쪽의 감녕을 제압하는 것이 승부수이다.

진삼국무쌍 3에서는 3편 특징상 모든 세력이 멸망할 때까지 죽지 않기 때문에 총대장이 손권이 아닌 손견이다. 덕분에 소사교 서전트 점프 이벤트도 손견이 가져갔다. 오군 시점에서는 소사교 붕괴 이벤트와 함께 출현하는 이전을 격파하고 난 후에, 강화 상태로 등장하는 장료를 막아내야 한다. 위군 시점에서는 손견을 두 번 격파해야 한다. 1차 격파하면 일시 퇴각했다가 본진에서 재등장한다.

여담으로 양군의 아군에게 유리한 이벤트들을 세어보면 조조군 측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소사교 붕괴 이벤트를 보고, 오군 사기 저하 이후에 장료가 뭘 하기는커녕 아무것도 없다.[13] 감녕이나 육손이 원군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플레이어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군 군단들은 그냥 막 썰린다. 아군들의 사기 저하나 고전 등의 정보 이력밖에 안 날아온다.[14] 반면에 오군은 강화 상태 장료만 때려잡는 데 성공한다면 아군 부대들이 적군을 알아서 청소하고 있다.

무쌍모드 한정의 얘기지만 오군 시나리오 5장(혹은 6장)의 번성 쟁탈전을 클리어하면 소사교 붕괴 후에도 손견이 도망가지 않고 도리어 복병을 불러내서 반격까지 한다. 초반부터 유리하게 진행해서 장료만 신속하게 몰아내면 전투 끝까지 매우 쉽게 클리어가 가능하다.
다만 추가로 조휴의 원군 또한 주의해야한다. 오군도 육손이 원군으로 오지만 뒤이어 조휴의 원군이 나타나 석정의 원한을 갚겠다며[15] 육손의 뒤를 치는데, 상당한 규모의 대군인데다 조휴 본인도 강화되어 있어서 육손군은 병력도 적어 도저히 견디질 못하고 몇분만 놔둬도 순식간에 궤멸 당해버리고 만다. 추가로 견희 원군이 오군의 본진 옆에 도래해 기습을 가하지만 이미 장료와 조휴를 막아낸 상태라면 사기가 크게 올라있는 아군들이 알아서 청소해줄테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진삼국무쌍 4에서는 위군은 동쪽과 남쪽의 중립거점 점거 후 12시 방향에서 등장하는 감녕 격파, 오군은 조창, 우금 등의 원군 부대와 다섯 번 등장하는 장료 막아내기가 핵심이다. 오군 시점에서의 장료와 위군 시점에서의 감녕은 모두 사기가 최고인 상태로 출현해서 바로 아군 총대장인 손권 또는 조조를 향해 돌진하므로, 신속하게 잡아내지 못하면 총대장 패주로 패배하게 된다. (게다가 강화 상태라서 까다롭다.) 그야말로 "위에는 장문원, 오에는 감흥패". 오나라 플레이시 이 스테이지에서 유니크 무기를 얻는 무장은 능통인데 장료을 4번 격파하는 것이 조건이다, 문제는 장료가 손권한테 돌진을 하는데 능통이 장료를 잡는 도중에 손권이 대신 장료를 격파하기 때문에 십중팔구 유니크 무기를 얻는데 실패한다. 그것도 능통이 직접 격파해야 하는데 물론 이부분만 넘기고 2번, 3번은 오나라군과 멀리 있기 때문에 쉽지만 4번은 감녕이 있기 때문에 좀 쉽지가 않다.

위군 모드에서 장료로 플레이시 장료로 적장 셋 혹은 적병 250씩 격파할 때마다 적군 사기하강 이벤트가 일어나며, 적장 아홉 또는 적병 750을 격파할 시 오군이 겁에 질려 공황상태에 빠지고 손권이 놀라는 이벤트가 있다. 이것이 장료의 유니크 무기를 얻기위한 조건이기도 하며, 얻는 방법은 10분이내 조인이 오기전에 이 이벤트을 발동시키는 것.

진삼국무쌍 5의 합비 전투는 그냥 장료가 킹왕짱 최강이다. 장료가 CPU일 경우 일시적으로 전장을 이탈했다가 7분 가량 지나면 돌연 나타나 여몽 부대[16]에 기습을 가하는데[17] 오군 전체 사기가 곤두박질 치는데다 강화된 장료가 적군을 분쇄하고 있다. 만렙 플레이어가 전서 쓰고 들쑤시고 다니는 것만큼 적을 죄다 발라버리고 있다(!!!). 초반에는 다소 많이 밀리는 위군 측에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구세주, 신님. 오군 측에는 극악 난이도라는 선물을 안겨준다.

정사가 아닌 손견 무쌍 모드에 들어간 번외편 합비 전투도 존재한다. 손견 무쌍모드라 이번엔 오군이 많이 불리한 상태로 시작해서 동서쪽의 합비거점 둘을 차지해야 한다. 조조, 하후돈, 조비 등 고유 무장들이 추가로 나오고 장료 또한 원군으로 등장해서[18] 오군을 힘들게 만든다.

진삼국무쌍 6에서도 등장하며, 위나라 시나리오에서는 전후편 모두 장료로 플레이하게 되고, 오나라 시나리오에서는 전편은 감녕, 후편은 능통으로 플레이하게 된다. 위나라 시나리오는 그야말로 장료의 삼국무쌍. 합비성 위에서 밀려오는 오군을 보고 있다가 걱정하는 이전과 악진을 다독이며 간지나게 뛰어내려 적을 향해 돌진하는 장료의 포스가 압권이다. 장료의 성능이 워낙 좋고[19], 오군이 숫자만 많지 별거 없기 때문에 마음껏 쓸고 다닐 수 있다.

반면 오나라 시나리오에서는 감녕의 100인 결사대가 모티브인 전편은 그럭저럭 할 만 하지만, 후편은 능통이고 감녕이고 다 장료한테 쳐발리고 손권의 굴욕의 다리뛰기가 등장하는 시나리오이니만큼 굉장히 어렵다. 감녕과 손권 둘 중 하나만 당해도 게임오버가 되는 상황인데, 일단 감녕과 손권이 가까이 붙어다니질 않는데다가 위군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도망가기에도 벅차고 아군은 완전히 멘탈이 붕괴되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다. 거기다가 장료는 잡아도 두 번 부활하고 세 번째로 등장할 때는 공방 업그레이드까지 되어 있다. 장료를 세 번째로 잡아야 감녕까지 무사히 도망치면서 클리어. 시리즈 사상 가장 높은 난이도의 합비 전투라 할 만 하다.

진삼국무쌍 7에서는 위나라 시나리오에서는 이전과 악진이 공식적인 무장으로 등장하면서 위나라빠 입장에서는 감동적이다.[20] 시작할 경우 장료가 조조의 명에 따라 직접 맞서 싸워야한다고 하자 이전은 반박하며 무시, 그러자 장료 혼자서 나가 싸우며 이를 걱정한 이전과 악진이 직접 나서게 된다. 장료로 플레이하던, 이전/악진으로 플레이하던 장료가 서쪽 요새에서 오군 복병에 의해 고전할 때 원군으로 합류.[21] 이후 퇴로까지 끊고 신나게 들쑤시면서 개박살내는데 과거까지 장료 한명과 나머지 클론들로 진행하던 시리즈에서 어엿한 정식무장이 된 세명으로 오군을 들쑤시는걸 즐기면 감회가 새로울 정도.

오나라빠 입장에서는 사실모드면 여전히 공격하다가 장료의 난동으로 소사교 끊기고 가후의 본진 습격으로 퇴각하다가 장료 기습받고 태사자 전사해 후퇴하는 상황이지만 IF모드를 진행하여 노숙과 주유가 살아있는 상태로 돌입하면 노숙이 탈출로인 소사교를 지켜내고 주유의 지시대로 합비 공략 및 손견과 손책의 증원으로 장료를 격파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끝나는 다른 세력의 IF와는 달리 손권 특유의 상대방 깔아뭉개기가 여실히 나와 전작에 이어 장료 팬들의 불편한 심기를 자아낸다. 뜻은 달라도 서로를 인정하는 유비, 조조나 상대를 그냥 깔끔하게 끝내는 사마의, 사마사나 진삼국무쌍7에서 전작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마소와는 달리 손권은 상대방을 농락하고 비하하는 면모가 많아 게임에서도 여지없이 안티를 불러오는 경향이 짙다.[22]

진삼국무쌍 8에서도 등장한다. 하지만 위나라 스토리에 경우 전작만큼의 임팩트는 없다. 여기에 참전한 장료, 이전, 악진은 합비 전투에서 개인 스토리가 끝난다. 오나라에 경우 6편처럼 결국 못 이긴다. 특이하게도 시즌패스 2에 포함된 DLC IF 스토리 중 하나인 서서의 스토리에서는 형주를 온전히 손에 넣은 유비가 손권과 함께 건업에서 합비로 진군해 이겨버린다.

8.5. 삼국전투기

역대 삼국지 2차 창작물중 합비 전투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그려내고 많은 공을 들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총 5차례의 합비 전투가 그려진다. 애초에 삼국전투기 자체가 최훈이 밝히듯 '장료가 주인공인 삼국지'인데 그 장료가 맹활약하는 전투니까 소홀히 그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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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료 무쌍

합비2 전투라는 제목으로 나오고 2차 합비 전투에서는 삼국전투기 연재 역사상 가장 다이내믹하게 그려냈다.[23]

손권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조조의 교령을 확인하는 장료, 이전, 악진은 교령을 따르는 입장과 따르지 않는 입장으로 갈리는데, 장료가 단독으로 교령을 따르기로 결정하면서 손권에게 야습을 가한다.

손권군에게 야습을 가하면서 단번에 대장기 근처까지 돌입하고 손권을 지키려고 막아서는 진무의 창을 못쓰게 만들고, 진무의 복부에 언월도를 박아넣는다. 이에 진무가 목숨을 걸고 언월도를 붙잡고서 서성과 하제에게 장료를 잡으리고 외치자 장료는 진무를 가로로 두동강내며 죽이고, 자신을 공격해오는 서성과 하제의 공격을 튕겨낸다.

이후 이전과 악진이 교령에 따르기로 하며 악진이 성을 지키는 동안 이전이 퇴로를 열어 장료가 무사히 빠져나오게 돕는다.

이에 손권은 퇴군을 결정하지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후방으로 퇴군하기로 결정하는데, 이를 놓치지 않고 장료와 악진, 이전은 손권의 후미를 찌른다.

장료를 저지하기 위해 여몽은 서성과 반장을 보내 장료를 저지하게 하고, 하제에게 방어선을 만들라고 지시하지만 장료는 서성을 한 칼에 베어 중상을 입혀 낙마하게 만들고 방어선을 붕괴시키고 여몽의 필사적인 저항을 뚫어 손권을 추격한다.

장료가 오는 것을 파악한 능통손권장흠이 지키는 소요진을 대피시킨 뒤 방어선을 꾸려 수하들과 함께 장료와 맞서지만 자신은 장료에게 중상을 입고, 장료에 의해 수하들은 전멸한다.[24] 장료의 공격은 장흠의 필사적인 저항과 여몽이 장료의 후발대를 저지, 그리고 감녕의 측면 공격을 당하고 나서야 중지된다.

8.6.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1 파워업키트의 결전제패 모드에서 난이도 3짜리 캠페인으로 등장한다. 장료, 이전, 악진의 3부대로 손권의 대규모 군세와 맞서야 하는데, 전장이 수비측에게 불리하기로 악명 높은 수춘이라 이벤트를 활용하지 않으면 클리어하기 힘들다. 우선 장료로 능통의 부대를 먼저 퇴각시키면 (일기토를 거는 게 쉽다.) 감녕 부대도 뒤따라 퇴각하며, 최대한 공성병기 접근을 억제하며 장료 부대로 적군을 계속 궤멸시키면[25] 연쇄적으로 료래래 이벤트가 떠서 숨통이 트인다. 다음에는 클리어 조건대로 손권 부대만 격파하면 끝. 사실 수공으로 적을 수장 시키는게 가장 편한데, 일단 시작했을 때 악진의 부대를 제방쪽으로 보내고 최대한 빨리 능통의 부대를 없에는데 주목한다. 그동안 장패의 부대는 진을 수리하게 둔다. 능통의 부대를 쓰러뜨리면 장료와 이전은 손권을 집중 공격하고, 장패도 적이 수춘에 붙는다 싶으면 합류시킨다. 그 때쯤 되면 제방이 터져서 무장들은 올킬이 되는데, 내정 지역쪽의 주이가 남긴 하지만 어차피 그쯤 되면 손권이 걸레짝이 되므로 큰 의미는 없다. 클리어하면 장료가 동료들과 팀워크로 얻은 승리를 서로 치하하며, 손권이 감녕의 위로를 받고 정신승리와 더불어 퇴각한다.

삼국지 13 영걸전 모드의 요래합비는 장료가 주인공으로 손권을 합비에서 격파하는 내용을 다뤘다. 기본 도시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수춘 밑에 거점으로 합비가 등장한다. 오나라 입장에서 여강건업을 통해 수춘을 공격하려면 반드시 합비를 지나야 한다.[26] 그래서 시나리오 모드에서도 오나라나 강동의 국가가 수춘을 먹기 위해 합비에다가 대규모 병력을 꼴아박는것을 볼 수 있다!! 위나라와 같은 중원과 하북을 모두 차지한 세력이라면 굳이 장료라는 먼치킨이 없어도 합비로 압도적인 물량을 보내 강동에서 오는 북진을 저지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PK에선 여기다가 요새지를 지어 실제 공성전이 가능해져서 진정한 합비 공방전을 실행할 수 있다.

8.7. 삼국지조조전 Online

손권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오자 장료는 조조가 준 편지를 읽어보고 나가서 싸우라는 조조의 뜻을 파악하고 손권의 후군이 도착하기 전에 나가서 손권을 직접 치기로 한다.

손권은 노숙과 함께 군사가 모두 모이면 합비를 공격하기로 하지만, 장료가 서문에서 나와 직접 결사대를 이끌고 공격하면서 장료는 서성, 여령기는 태사향을 공격해 퇴각하도록 만들며 나아간다. 더 나아가서 이전이 동습을 공격해 퇴각시키며, 장료는 손권의 근처까지 도달한다. 정보가 손권을 지키기 위해 막아섰다가 장료에게 죽었고, 능통, 감녕은 손권이 위험에 빠진 걸 알아차리고 구하러 가려고 한다. 결국 장료의 공격을 받은 손권은 혼란에 빠져 장료를 두려워하면서 퇴각한다.

합비에서 패한 손권이 소요진에서 대기하다가 역병이 퍼져 혼란하자 장료가 손권을 쫓아내기 위해 샛길을 통해 손권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자 여몽, 능통, 감녕, 동습 등이 장료가 온 것을 알고 막으려 한다. 장료는 손권이 있는 본진을 공격하면서 직접 진무를 죽이고 능통을 퇴각하게 하며, 손권은 장료가 오자 크게 당황하면서 퇴각한다.


[1] 혹은 213년[2] 호삼성은 이것에 대해 "장료와 이전은 용감하고 날카로워서 그들로 하여금 싸우게 하였고 악진이 진중하여 그에게 지키도록 하였으며 설제는 문리이므로 전투를 하지 말게 한 것이다."라고 해석했다.[3] 악진과 장료는 접점이 거의 없다시피했는데 이런 감정의 골이 있는 것에 대해서 처음부터 조조군에 있던 자신(악진)(악진은 반동탁연합 당시 군문에 들어온 고참이었다.)보다도 항장 출신임에도 자신 이상의 지위에 앉은 장료에 대한 시기로 보는 의견이 있다.[4] 고대 농경사회에서 소는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에 소를 도축하는건 평상시에는 금기시되어있었다. 소를 잡아서 쇠고기를 나눠준다는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는 의미이다.[5] 자신이 가장 뒤에서 병사들을 지키며 싸우겠다고 주장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전에 장료에게 당한 굴욕 탓에 한 번이라도 장료에게 엿을 먹이려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6] 이때 장료가 손권을 눈여겨보지만, 적 장수 중 무예가 뛰어난 한 명으로 생각했다. 상세한 것은 후일담 참조.[7] 이후 능통은 정사에서의 활약이 없다. 정사 능통전에는 237년에 49세로 죽었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 20년 전이자, 합비 전투 이후 2년 뒤인 217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에 대한 자세한 것은 능통 항목 참고.[8] 하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 전문은 하제 참고.[9] 이것으로 사신을 능통의 침실에 넣었다로도 해석 가능하다.[10] 물론 촉 멸망 이후로도 위에서 진으로 왕조 교체가 이루어지고 사마염까지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흐르지만 촉이 없는 오는 위를 이길 수 없었음이 자명했으므로 합비 전투가 위진남북조 시대의 구도를 정하는데 영향을 주었음은 틀림이 없다. 또한 화북 지역은 고대 및 중세 중국의 중심지로 강남 지방이 발전한건 중세 말기다.남북조 시대에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수가 대운하를 지으면서 당대에 이르러 화북과 강남이 경제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균전제의 붕괴로 양세법이 시행되면서 강남 지방의 세수가 핵심이 됐고, 즉 많이 쳐줘야 당대에 이르러 강남 지방이 화북과 같은 수준이 됐단 것이다.[11] 오죽하면 위의 장면에서 오나라 병사들이 돌파당하며 생긴 피의 길이 1년이 지난 후에 조조와 장료가 무용담 주고받을 때에 그대로 남아있을 정도.[12] 여기서 장굉을 격파할 경우 장굉은 사망 처리 된다. 그리고 장굉을 직접 격파해야 손자병법서를 획득할 수 있으며, 손권의 퇴각에 노숙과 장굉이 같이 퇴각하는 이벤트로는 획득이 불가능하다. 조조전에서 손자병법서의 성능은 그다지 좋지 않으나 보물도감 완성을 목표로 한다면 중요한 팁이다.[13] 손견을 유인하는데 료라이씨(CPU)가 한다는 대사가 '큭, 과연 강동의 호랑이...일단 후퇴하자!'[14] 심지어 이게 초급 난이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15] 석정을 클리어하지 않을시엔 오군이 설치도록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멘트를 친다.[16] 이 전투에서 여몽은 오군의 최고 주력이다.[17] 장료가 기습하기 전에 여몽을 없앴다면 손권을 기습한다![18] 정사 이벤트의 기습 영상 및 이벤트가 따로 없을 뿐이지, 아군과 장료가 접촉하면 "장료다! 장료가 왔다!"라며 오군 전체 사기 저하가 뜨는 건 마찬가지다.[19] 6편의 장료는 진삼국무쌍 시리즈에 나온 모든 장료를 통틀어 사기캐이며, 6편의 모든 캐릭터를 다 따져도 강캐다.[20] 이때 장료를 도우러 오는 이전이 숙부 이건의 일을 언급하는데 장료와 이전의 사이가 나쁜 자세한 원인을 밝히는 장면은 삼국지 관련 작품을 거의 통틀어도 이 장면 말고는 거의 없다. 끽 해야 이문열 삼국지 정도.[21] 방치하면 고전 메시지가 몇번 뜨지만 적벽대전에서 위군으로 소속된 서서처럼 20분이상 방치해도, 체력 게이지가 바닥나도 안죽는다.[22] 애초에 손권 자체가 말년 노망으로 안티가 많은 것이 특징인 반면 진삼국무쌍에서는 유난히 조조 vs 유비의 양극성 구조가 짙기 때문에 더더욱 어중간해진 오나라 세력이 까이는 경우가 많다. 손권은 특히 그 중 첨병에서 까이는 빈도가 높은 것일 뿐.[23] 특히 2차 합비 전투에서는 작가 청설모의 도움도 받아 삼국전투기의 9컷 분량을 사용하면서 능통과 능통의 수하들을 박살내는 연출을 해주었으며 이 정도의 작화력은 한중 전투에서 조운이 황충을 구해낼때 다시 한번 나타난다. 둘 다 기록에 나왔던 무쌍 장면.[24] 위의 9컷 분량 작화가 바로 이 장면이다.[25] 세 무장이 서로 친애무장 사이라 의외로 버티기 쉽지만 이 특성 때문에 원호공격으로 막타를 뺏기면 좀 난감해지는 면도 있다.[26] 덧붙여 요충지의 중요성이 극대화된 13pk에서 합비의 요충 레벨은 5로 최고 수치. 즉, 여기에 방책이나 병량고 박은 뒤 병력 주둔시키는 걸로도 여강의 북상에 빅엿을 먹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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