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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결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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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질이 가볍고 사안이 명백한 사건을 대상으로 경찰이 판사에게 간단하게 요청해서 처리하는 재판에 대한 내용은 즉결심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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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전시 상황에서3. 6.25 전쟁
3.1. 대한민국 군대에서 전시의 즉결처분은 가능한가?3.2. 대한민국 경찰에서 즉결처분은 가능한가?
4. 비전시 상황에서5. 나무위키에서6. 매체7. 관련 문서

1. 개요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제재를 가하는 것을 지칭한다. 죽이거나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 경우는[1] 즉결처형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즉결처분은 사법절차를 무시한 제재 그 자체를 이르는 것일 뿐이며 대상자의 유무죄 혹은 법 위반 여부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 사법절차는 장식 따위로도 여기지 않고 실행자의 자의적 판단으로 이루어져서 그 희생자는 대다수 사소한 이유로 혹은 무고하게 죽음을 당한다. 후술한 사례를 보면 정당한 사법절차 근처에 다가가기만 했어도 훈방, 좀 심하더라도 즉결심판을 거쳐 구류 혹은 벌금/과태료 정도로 끝났을 일에 죽음을 안겨주기도 했으며 때문에 오늘날 즉결처분은 반문명적 야만적 행위로 비난받는다. 군/준군사조직/기타 무장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민간인/포로를 대상으로 하는 학살도 즉결처분 개념에 포함될 수 있다.

죄질이 가볍고 사실관계가 명백한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즉결심판과는 전혀 다른 뜻이다. 즉결심판은 간소하지만 엄연히 판사가 주재하는 사법절차이며 얼마든지 정식재판으로 불복할 수 있다.

징병제 국가인 한국에서는 전시에 즉결처분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상식이 알려져 있다. 병역의무를 치룬 많은 예비역들조차 전시에는 상급자가 하급자를 즉결처분할 수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하술.

중요한 내용이므로 여기에도 적는다. 만약 즉결처분을 하게 될 경우 군법으로 처벌받는다. 전시든 평시든 군법상 즉결처분은 그냥 살인이며 살인죄로 처벌받는 엄연한 중범죄다. 더군다나 이러한 행위를 시도한 상관을 살해하면 상관 살해로 처벌하지 않고 무조건 정당방어로 인정해 준다. 이건 어느 나라 군대에서도 공통적인 사항이다.

2. 전시 상황에서

파일:external/dimg.tagstory.com/1457.jpg
테트 공세 중 촬영된 사이공식 처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베트콩 즉결처형 사진[2]
크게 적군 포로를 처형하는 경우와 잘못을 저지른 아군을 처형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앞의 경우는 포로 학살 문서 참조.

후자의 경우 고대부터 전시 규율 유지를 위해 행해졌다. 로마 이후 현대까지 전쟁터의 지휘관은 물러서는 병사를 즉결처형할 권한이 주어졌다. 특히 냉병기 시대라면 전우들이 명령을 무시하고 도망치면 병사들이 동요하고 전열이 무너지며 후퇴 때보다 더 많은 사상자들을 내기 때문이다.[3] 그 밖에도 규율 유지를 위해 병사들을 처형하는 일이 많이 행해졌는데 일례로 오왕 합려가 손무의 용병술을 시험하고자 궁녀 180명을 내주며 훈련시키도록 하자 손무는 합려가 가장 아끼는 궁녀 둘을 대장으로 세워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궁녀들은 훈련에 따르지 않고 장난처럼 여겼다. 그러자 손무는 군령을 세우기 위해 궁녀 둘을 처형하도록 하였고, 합려가 용서해 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손무는 군령은 왕명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며 사형을 집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다음가는 궁녀를 뽑아 대장으로 삼고 훈련을 시키자 모든 궁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전열보병 시대도 이것이 많이 이용된 시기 중 하나다. 좌우의 전우가 죽어나가도 병사가 전열을 이탈하지 않는 것이 전열보병 운용의 전제이자 핵심이었기 때문에 지휘관의 허가 없는 전열 이탈은 매우 중죄로 다스려졌다.[4] 이런 일을 전담하는 부대를 독전대라고 하며 20세기 6.25 전쟁 때까지 남아 있었다.

물론 즉결처분이라고 해서 무조건 죽이는 건 아니고 상급 지휘관의 허가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 하급 지휘관이 선처리 후보고 식으로도 이용되었다.

3. 6.25 전쟁

6.25 전쟁에서 국군 장교들의 권력남용과 즉결처분이 악명높았다. 일단 개전 초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항명, 사기 저하로 인한 무질서한 도주와 프래깅 등을 막기 위해 1950년 7월 26일에 분대장급 이상에게 즉결처분권을 부여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일선에서 암암리에 행해졌다.

하지만 상당수의 국군 장교들이 장교로서의 특권의식과 생명경시 사상이 유달리 심해[5] 사소한 다툼이나 치정 문제까지 즉결처분을 시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백인엽의 경우 행군중인 통신병이 자기 지프 앞을 가로막았다는 이유만으로 통신병을 직접 사살하고 헌병중대장에게 확인사살을 명령해 곁에 있던 부하들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 또 자기 차 운전병이 실수로 차 시동을 꺼트린 것만으로도, 심지어 훈련 중에 자세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쏴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김종원 역시 중과부적으로 밀려나거나 자신의 말에 토를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구타와 즉결처분을 일삼았다[6].

하지만 이들의 부하들도 사람인지라 이게 부당하거나 그동안 쌓인 울분이 강할수록 이렇게 죽을 바에야 같이 죽자는 식으로 권총을 빼들고 저항했고 그 다음으로 현장 인원이 사소한 이유로 계속 죽어나가 작전에 차질이 생기는 등 폐해가 커지자 육군본부에서는 직접 육훈 제179호를 내려 무분별한 즉결처분을 막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는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고 결국 육본훈령 제191호를 하달하여 즉결처분권을 1951년 7월 10일부로 폐지하였다. 그러나 이로부터 20일도 채 되지도 않은 7월 24일 육군본부는 군기확립이라는 목적으로 즉결처분권을 부활시켰는데 이로 인해 즉결처분권은 휴전이 된 직후에야 사라졌다.

파일:rggoloh.png
육본훈령 제194호

육군본부대구 단기 4284년 7월24일 1200


훈령

즉결처분취소에 관한 건(추가)
육본훈령 제191호(단기 4284년[7] 7월 6일 1200부) 「즉결처분권 취소에 관한 건」에 추가하여
좌기사항을 단기4284년 8월 1일 영시부로 취소한다.


다만 기존 즉결처분권은 분대장에게도 즉결처분권을 부여한 반면 재부활환 즉결처분권은 중대장급 이상 지휘관에게만 주어졌으며 처형을 할 시 반드시 상급자 이상의 허가 시에만 이행되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마구 쏴죽이는 경우는 줄어들었다고 민족의 증언에서 말하지만 실제로는 마구 쏴죽이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특히 금성전투 때 9사단 특무부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부활한 즉결처분권의 남용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는데 이를테면 부대 내에서 발생한 명령 불복종자 혹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병사[8]를 소대장의 지시 하에 즉결처분했으며 7월 27일 휴전되기 10분 전에도 장교에 의한 즉결처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9]

한편, 재부활 이전 즉결처분권에 의하여 희생당한 일선 병사들의 규모도 알 수 없는데 우선 항명이나 적전 도주자 등을 간부나 헌병을 위시로 한 독전대가 즉결처형한 뒤 전사 및 실종 등으로 보고해 망자와 소속 부대의 명예를 지키려 하거나 아니면 아예 군적을 박탈해 애당초 군인이 아닌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아군 부대 간 갈등으로 유격대가 통째로 즉결처분[10]된 사건도 있다. 독수리 유격대 사건 참고.

6.25 전쟁 초기 즉결 처분 사례집. #1#2

3.1. 대한민국 군대에서 전시의 즉결처분은 가능한가?

만약 즉결처분을 하게 될 경우 군법으로 처벌받는다.[11] 더군다나 이러한 행위를 시도한 상관을 살해했을 경우 상관살해로 처벌하지 않고 무조건 정당방어로 인정해주며 이건 어느 나라 군대에서도 공통적인 사항이다.
전투중이라도 죄에 대한 처벌은 군사재판을 거쳐야만 한다.

상술했듯이 6.25 전쟁 당시 수도가 함락되고 오산까지 밀리면서 이승만대통령 지시로 즉결처분이 있었으나, 대전이 함락될때에는 이에 의한 폐해와 부작용이 극심하였고 51년 육본훈령 제191호를 하달하여 즉결처분권을 금지하였고 1951년 7월 10일부로 폐지 이후 20일도 못 지나고 현재 휴전선 인근 방어선에서 군기 확립을 목적으로 부활했지만 부활한 즉결처분권은 중대장급 이상 지휘관의 허가 없이는 처형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언에 책임을 가져야 할 무식한 군 간부[12] 상당수가 병사들에게 전시에는 맘대로 즉결처분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예비역들조차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사회에 나가서 "전시에는 즉결처분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 간부들이 틈만 나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군기를 확립하라는 무언의 협박이기는 하나 실제로 전시가 될 경우 지휘권에 불복하는 행위는 즉결처분은 불가능해도 재판을 통해 총살로 사형될 사유는 되기에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볼 수 있지만 모든 처분은 헌법에 따라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거쳐야 한다. 본인이 직접 불법 처형하느냐, 군사경찰대에 인계해서 재판 후 처형시키냐의 차이일 뿐이다. 물론 본인이 직접 처형하면 살인죄로 처벌받는다. 또 적전도주죄나 전시항명죄 등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전시라고 해서 전투중인 전선이 아니라 바로 뒤 지원부대, 후방 주둔지에서의 사소한 지시불이행으로도 처형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적전도주나 항명같은 죄목의 경우는 일개 병보다는 지휘관이 해당될 여지가 많다. 병 혼자서는 도주할 곳도 없고 항명해 봐야 혼자 전선에 남겨져 사살되거나, 군사경찰에게 체포되거나, 포로로 잡힐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허위사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부 예비역들의 의식도 문제인 게, 장교가 자의적 판단으로 병사를 처형하는 행위는 제대로 된 사법체계가 작용하지 않는 테러 집단이나 군벌 또는 민도가 낮은 후진국 등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며 이는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또한 자신의 생명이 장교의 기분에 따라 죽고 사는 파리목숨으로 취급당하는 건데도 이를 용맹한 사나이들의 불문율쯤으로 착각하고 "한국군은 그렇게 살벌하고 무서운 집단이며 내가 그런 곳에서 청춘을 바쳤다."는 비뚤어진 자긍심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도 한다. 어떤 예비역들은 군법으로는 금지됐지만 부대예규상으로는 전시에 즉결처분이 가능하다는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하는데 그건 사회에 빗대면 학교 교칙이나 회사 사칙이 헌법보다 위에 있어 교사나 회사 간부들이 학생들이나 사원들을 죽여 버릴 수 있다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장교가 아군 부하 병사를 죽여서 권위와 군기를 세우겠다는 생각 자체가 사극에서나 나올 전근대적인 망상이다. 사극이나 실제 전근대 시기인 삼국시대나 고려, 조선 시대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급 병졸에 대해 즉결처형이 벌어졌던 것은 신분은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라는 사상에 지배받던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보니 당하는 쪽도 가하는 쪽도 당연하게 여겨서 부작용이 없었던 것뿐이다. 그나마도 당대의 이런 처분 역시 단순무식한 살해가 아니라 엄연히 '군율'로 그 규칙과 근거 등이 정해진 형태였다. 쉽게 말해서 '감히 내 말을 안들어? 죽어라.'는 식이 아니라 '너는 부하로서 마땅히 ~~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으므로/~를 하면 안 되는데 하였으므로 사형에 처한다'는 식이었다. 무작정 즉결처분을 남용하는 장수는 당시에도 잔혹하고 무능한 장수로 손가락질 받았으며 정도가 심하면 부하를 함부로 죽인 죄로 처벌도 받았다. 엄격한 군법으로 유명한 이순신도 실제 사형에 처한 자들은 적전 도주 및 탈영, 군수물자 횡령, 군무 이탈 및 회피 알선 등 현대에도 중형을 면하기 힘든 중범죄자들이었다. 고전 병법에서도 부하의 처벌은 엄격하되 공정해야 하고 '인화(人和)'라고 하여 부하와 상관이 서로를 신뢰하게 만들 의무가 지휘관에게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전근대에도 이러했는데 당연히 자아와 인권의식이 향상된 현대에는 더더욱 상황이 다르다. 당장 목전에 닥친 전투에서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미지수. 장교가 동료 병사를 쏴죽이며 내 총에 죽기 싫으면 돌격하라고 윽박지른다고 장교의 총알이 무서워서 돌격하느니 그냥 장교를 쏴죽여 버리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 수도 있고 그 순간만은 장교의 명령에 따른다고 쳐도 다음 전투 때 또 따라 줄 거란 보장이 없다. 또한 즉결처분을 시행한 그 이후부터 그 장교는 더 이상 아군이 아니라 내 동료를 죽였고 앞으로도 날 죽일지도 모르는 적군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장교는 장교대로 병사들의 프래깅을 두려워하며 지휘해야 하는데 아군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경계하는 분위기에서 임무 수행을 잘 할 리가 없다. 병사는 장교보다 머리수가 더 많다. 즉결처분을 할 장교보다 그 장교를 프래깅할 수도 있는 병사들이 더 많다는 소리다. 위에도 나오듯이 전근대에도 함부로 부하를 처형하는 지휘관은 오히려 그 권위를 잃고 무능한 지휘관으로 찍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전쟁이 벌어졌다고 갑자기 군법에 없는 내용이 튀어나와서 적용되는 게 아니다. 즉결처분을 장교들만 알고 있거나 군대 갔다 온 사람들만 아는 불문율, 심지어 군법에는 있으나 평시에는 기밀로 취급되고 전쟁이 벌어지면 기밀이 해제되어 적용된다고 꿋꿋이 믿기도 하는데 이 정도면 거의 미신이다.
정말 한국군이 즉결처분이 가능한 군대였다면 한국군은 그냥 장교의 처형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싸우는 군벌 수준 오합지졸의 집단이라는 헛소리밖에 안 되며 결과적으로는 한국군의 수준과 명예를 북한군 이하로 실추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역사적으로도 즉결처분권 따위 없던 시절에도 잘만 싸웠다.

3.2. 대한민국 경찰에서 즉결처분은 가능한가?

2015년 박 모 경위가 박 모 상경을 권총으로 살해한 구파발 검문소 총기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으나 이 경우는 항명하는 부하를 처형하기 위한 상황이 아니라 안전개념이 매우 미비한 어느 상관이 총을 가지고 마음이 안 든다는 이유로 부하를 겁박하다가 일어난 살인사건이다. 법원에서는 해당사건이 정말로 죽이려는 고의성을 가지고 저질렀다긴 보기 어려우며 총기류 관리가 매우 허술한 경찰의 실태로 인해 한 경찰의 위험한 장난으로 일어난 과실치사로 보고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하였다.

4. 비전시 상황에서

소말리아 등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치안이 나쁜 국가에서 종종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처형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기사 공권력이 제대로 기능을 못 해서 치안이 국가 전체에 다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사적인 형벌을 통해서 처벌을 가하는 것으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군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찰 같은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단체들이라면 자행하는 경우가 많다. 상술하였듯 대한민국 경찰에서도 일어난 일이고 위의 베트콩의 사례도 경찰이 실행한 일이다. 충격적이게도 남미, 특히 브라질에서는 80년대까지만 해도 경찰이 범인이나 용의자를 검거와 동시에 즉결처분하는 경우가 있었다. 실제로 리얼리티 비디오(원제 Banned from Television)[13]란 다큐멘터리를 보면 브라질 경찰이 자동차에서 용의자를 끌어내[14] 기자의 카메라가 안 보이는 곳으로 끌고 가 머리를 쏴서 바로 즉결처분하는 장면이 나온다.[15] 그야말로 미란다 원칙이고 체포고 법원 판결이고 절차는 싹 무시한 살인이다. 심지어 중국 경찰도 절대 이런 짓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16]

5. 나무위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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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는 규정 위반 행위를 한 이용자를 발견했을 때, 별도의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상태여도 위반 규정의 제재 수위에 따라 즉각적인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를 나무위키에서는 '즉결처분'이라 부른다.

이 경우 관리자는 일반 사용자의 신고와 마찬가지로 신고 게시판에 차단 대상자의 규정 위반 내용을 작성하되, 즉결처분했음을 알 수 있도록 '즉결처분'이라는 용어를 제목 앞에 붙여서 글을 남기는 것이 권장된다. 주로 '[즉결처분\] 편집권 남용'이나 'A 차단.'과 같은 제목과 피차단자의 규정 위반점, 관련 규정, 제재 유형 등을 안내하여 제재를 당한 당사자가 어떠한 부분이 문제가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실 이건 법 제도와 비교했을 때 즉결처분보다는 인지수사에 가까운 제도다.

6. 매체

창작물 속 공권력의 부패나 무자비함을 나타낼 때 즉결처분 묘사가 나오곤 한다. 독전대가 나오는 영화에선 늘 적전도주병들을 쏴 죽인다.

7. 관련 문서



[1] 예를 들어 죽어가게 내버려 두거나 속옷 차림으로 적전 추방 등.[2] 남베트남 수도경찰청장 응우옌 응옥 로안 장군이 한 베트콩을 즉결처분하는 광경이다. 즉결처분 당한 베트콩은 응우옌 반 렘이라는 자이며 암살과 보복을 담당하는 베트콩 소대의 지휘자로 당시 베트남 장교들을 비롯해 부인과 어린 아이까지 살해한 자였고 자기가 학살한 부녀자들 시체 바로 옆에서 체포당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실제로는 신원도, 혐의도 확인된 바 없다. 이 사진으로 인해 응우옌 응옥 로안은 남베트남 멸망 후 전쟁에서 입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호주로 이송되었을 때 의료진들이 그의 치료를 거부한 데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도 의회에서 그를 전쟁 범죄자로 규정하고 추방을 지속적으로 논의할 정도로 악랄한 살인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살았다. 훗날 반 렘은 죽을 만한 인물이었음이 밝혀졌고 미 의회는 추가 조사 끝에 그에게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에디 애덤스 역시 오히려 이 사진을 찍은 것을 후회하면서 응옥 로안과 그 가족에게 사과하고 친한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3] 후퇴와 패주/공황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엄연히 전술이고 심지어 제대로 구사하려면 굉장한 수준의 통솔력과 훈련이 필요하지만 공황은 아니다.[4] 전쟁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대단히 혼잡하고 쌍방이 흥분된 상황인데 전근대에는 그런 상황을 고작 북과 나팔 그리고 깃발만으로 통제해야 했다. 그만큼 대열이 한번 무너지면 병력 숫자 따위는 쓸모가 없어졌다. 대표적인 전투가 백만의 군사를 겨우 8만으로 이긴 비수대전.[5] 당시 장교였던 세대는 막장으로 치닫던 일제강점기 말기에 교육받고 자랐다.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6] 이 자는 일본군 출신으로 파푸아뉴기니 전선에서 식량이 부족하자 인육을 먹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녀 주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7] 1951년.[8] 특무대 기록에서는 명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명령을 계속 불이행하고 횡설수설한다는 내용을 살펴봤을 때 아마 PTSD 환자인 것으로 보인다.[9] 다만 이는 병사가 수류탄으로 자해하여 사실상 죽기 일보직전인 상황인지라 고통을 줄여주고자 즉결처분을 한 것에 가깝다.[10] 간부들은 총살, 대원들은 속옷 차림으로 적전추방.[11] 50~60년 사이에 폭행까지 오가는 극심한 하극상으로 상관이 참지 못하고 총을 빼들고 도주하는 병사를 겨누고 조준사격하여 사망케 한 사건이 있었는데 하극상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정상참작되어 상관이 이등병 강등 후 불명예 전역 처분으로 끝났다. 하극상이란 사유가 없었더라면 중벌이 내려졌을 상황이다.[12] 다만 장교들조차도 잘못된 정보가 진짜인줄 아는 사람도 없진 않은 듯한 게 단순한 위관급 장교가 아니라 장성 중에도 이게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13] 참고로 부산도 화염병 관련 사건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14] 이미 용의자는 무장해제는 물론이고 바닥에 엎드려 포기한 상태였다.[15] 브라질 군사정권 시절을 다룬 시티 오브 갓 끝부분에 이 장면이 나온다.[16] 한번은 어린아이를 던지고 노인에게 폭행을 가하면서 난동을 부리던 남성이 출동한 경찰에게까지 몽둥이를 들고 심한 위협을 가하자 보다 못한 경찰이 그를 제압한 후에 즉결처분한 사건이 있었는데 중국 언론에서 굳이 죽일 필요까지 있었냐는 논조로 비판했고 즉결처분으로 사망한 사람의 가족과 인터뷰하기도 하는 등 즉결처분을 무조건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는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경찰도 체포할 때 웬만하면 곤봉이나 테이저건과 같은 비살상 무기로 체포하려고 하며 총기는 비살상 무기만으로는 제압이 불가능하거나 경찰이 목숨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에서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