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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23:13:17

감라

사기(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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甘羅
생몰년도 미상

1. 소개2. 생애3. 기타

1. 소개

전국시대 말기 진(秦)나라재상급 고위관료.
진무왕 시절의 승상이었던 감무의 손자이며 외교에서 큰공을 세워 진왕에게 인정받아 무려 12세의 나이에 재상급 직위인 상경(上卿)에 올랐다.[1] 한마디로 희대의 신동이자 엄친아.

중국사에서 나이들어 성공한 사람의 대표가 강태공이라면, 어린 나이로 성공한 사람의 대표가 바로 감라이다.

2. 생애

진나라의 왕 영정(嬴政)[2]은 즉위 이후 꾸준히 조나라를 멸망시키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자 진나라 중신 채택연나라와 연합해서 조나라를 치는 계획을 올렸고, 양국은 서로 인질을 교환하기로 했다. 결국 연나라는 태자 단(丹)을 인질로 보내고, 대신에 진나라의 중신 혹은 장군 한 명을 연나라 대신으로 삼기로 했다.[3]

그런데 연나라에 인질로 보내지기로 한 진나라 장군 장당(張唐)이 이를 거부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말이 좋아서 연나라의 대신이지, 상호간 인질이나 다름없는 자리인데다가, 장당은 전에 조나라를 침공하기 전에 여러 차례 전쟁에 참가한 바가 있는데, 연나라에 부임하려면 조나라를 꼭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4]

이 문제로 진나라 상방 여불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마침 여불위 휘하 식객으로 있던 감라가 이를 보고서 이유를 물었다. 전후 사정을 들은 감라는 장당을 설득하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여불위는 성공하면 진나라의 재상급 고위관료인 상경(上卿)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5]

여하간에 감라는 장당을 찾아가 쌩뚱맞게 조상(弔喪)을 하러왔다며 질문을 던지더니, 한바탕 이야기를 풀어대는데
"당신과 옛날 사람인 백기 둘 중에 누가 강합니까?"
"제가 백기와 비교한다면 상대가 안됩니다."
"여불위와 옛날 사람인 범수 둘 중에 누가 강합니까?"
"여불위가 많이 무섭고 강합니다."
"그런데 백기가 범수를 무시하다가 죽었습니다. 공은 대체 뭘 믿고 여불위를 무시합니까?"
 
그제서야 장당은 놓았던 정신줄을 바로 잡고, 감라가 조언한대로 여불위에게 사죄하고 연나라로 떠나기로 했다.

한편 감라는 여불위에게 장당을 설득했음을 알리고 자신을 조나라에 사신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진나라에서 연나라로 가려면 조나라를 지나야했기 때문에, 장당이 연나라로 가면 조나라가 장당을 잡아 죽일 것 같아서, 애초에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여불위는 이런 감라를 기특하게 여겨서 진왕 정에게 소개했고, 진왕도 역시 감라의 재주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렇게 진왕의 사신이 되어 조나라로 간 감라는 조왕을 만나 또 한바탕 대화를 하게 되는데
"진나라와 연나라가 서로 인질을 교환하기로 한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손잡으면 가운데 낀 조나라가 피해를 보는 것을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연나라가 뭐가 좋아 손을 잡겠습니까? 다 땅을 차지하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조나라 5개의 성을 진나라에 주시면 우리 진나라가 연나라와 동맹을 안할겁니다. 그 다음 대왕께서 연나라를 공격해서 땅을 차지하면 더 이익이 아니겠습니까?"[6]
 
이 말을 들은 조왕은 5개의 성을 진나라에게 바치고 그 직후 진나라가 연나라의 연합을 파기하자, 조왕이 연나라를 공격했으며 연나라는 크게 패배를 하고 30여 성을 빼앗는다. 연나라 땅을 차지하여 조나라 땅을 크게 넓힌 조왕은 좋아하며 그 후 추가로 11개의 성을 진나라에 바친다. 새로운 땅을 받은 진왕은 연나라와 이미 연합이 파기됨을 알리고 인질 교환을 하지 않았으며, 연나라에 가지 않게 된 장당은 감라에게 감사했다.[7]

이렇게 외교만으로 총 16개의 성을 취한 큰 공을 세운 감라는 진왕에게 인정받고 앞서 여불위에게 약속받은 재상급인 상경(上卿) 지위를 12세라는 어린나이에 오르는 동시에 수많은 식읍도 수여받았다.

감라는 이후 재능을 꽃피우지도 못한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그가 죽자, 하늘이 그의 재능을 시기해서 일찍 데려가버렸다고 사람들이 슬퍼했으며, 이에 대해서 매우 어린나이에 상경이라는 높은 직위에 오르게 되어 다른 벼슬아치들의 질투로 인해 감라가 암살을 당했지 않았나는 의혹을 제기하는 말도 있었다.

3. 기타

사마천은 자신의 사기에 "감라는 나이가 매우 어리지만 기묘한 계책을 생각해내어 후세에 이름이 일컬어지게 되었다. 그가 행한 계책은 성실한 군자의 행동이 아니지만 전형적인 그 시대에 맞는 책사였다."라고 평했다.

감라가 요절하지 않고, 더 오래 살아서 진왕 영정(後 진시황)을 보좌했으면, 진나라가 조금 더 오래 남았으리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감라는 분명히 당시 진나라 상방이자 권신인 여불위의 식객, 즉 여불위의 사람이었다. 도리어 오래 살았으면, 그 똑똑한 머리로 여불위의 권력을 어떻게든 더 유지시켜서 진나라의 왕권을 위협할 인물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사가 한 짓을 생각해 볼 때에, 감라는 더 어렸으니 제 명이었으면 이사보다 오래 살았을 것이므로 오히려 진나라의 입장으로서는 그가 나았을 것이다. 여불위는 왕좌 자체에는 욕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니 왕권과는 무관했을 것이며[8] 감라는 진나라의 기득권 출신이라 진나라에 아무 애착도 없는 초나라 출신 이사보다는 진나라의 안위에 더 신경을 썼을 것이고, 부소, 몽염과의 조율도 더 잘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진나라로 하여금 연나라와 조나라의 국력을 약해지게 하면서 동시에 천하 통일의 기반을 만들어준 인물로, 짧고 굵게 간 인물 중에 한 명으로 당당히 언급될만한데 특이하게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인지도가 거의 없으니, 창작물에서 언급도 거의 없거니와, 심지어 별의 별 인물을 다 재조명하는 만화 킹덤에서도 언급이 없다.

대진부에서는 전직 진 승상 감무의 손자로 나온다. 이후 여불위의 문객으로 출사하는데 이사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중에서는 역사대로 조나라의 성을 말빨로 받아오는 행보를 보이는데, 본 작에서는 시황제가 연 태자 희단과 절친한 친구라는 설정이라 결과적으로는 연나라와 동맹을 맺으려고 생각하고 있던 영정의 의중을 거스른 것은 물론이고 통수에 분노한 연 태자 단은 진왕 정과 절교를 선언하는 등 영정을 완전히 쌍놈으로 만들어버린 셈이 됐다. 그래서 여기서는 영정에게 진왕검으로 찔려 죽는 것으로 나온다.(...) 어린 나이에 유능하지만 다소 재수없는 모습을 보이는데, 여불위도 죽은 감라를 보고 오만방자했다고 말한다.

수호전》에서는 가짜 점쟁이로 분장한 오용의 호객을 위한 노래에도 성공한 위인으로 가사에 등장한다.

[1] 당시 진나라의 상방이자 권신이던 여불위의 식객으로 있다가 자기 능력을 입증해 재상급 자리에 오른다.[2] 후일 진시황으로 불리운다.[3] 현대의 국가 개념으론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사실 전국시대엔 국적 불문하고 유능한 인물이 타국의 재상을 맡는 일이 다반사였다. 유명한 맹상군 역시 진나라의 재상 자리에 잠시 오른 적이 있다.[4] 대충 돌아가는 상황만 봐도 연나라와 진나라가 인질을 교환하는 속내가 조나라를 협공하는 데 있다는 걸 조나라가 몰랐을리도 없고 장당으로서는 그야말로 목이 날아갈 상황이었으니 쉽게 수락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5] 당시 진나라 재상 역할은 상방인 여불위였으니 실질적인 국가의 재상은 아니고, 공경(公卿) 가운데 가장 높은 직위였던 상경(上卿) 자리를 약속한 것이었다.[6] 감라가 했던 말을 좀 더 설명하자면 "자신의 조국 진나라가 장당을 연나라의 재상으로 보내는 건 조나라의 상당 땅을 얻기 위해서니까, 아예 그 땅을 먼저 진왕한테 진상하시고 우호를 맺으십시오. 그런 다음에 진나라와 연합하여 연나라를 들이치면 진나라한테 바친 땅의 몇 배나 되는 새 영토를 얻을 수 있으니 그 쪽이 더 이득입니다." 물론 단기적으로 맞는 말이긴 한데 최강국 진나라한테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이 정도로 근시안적인 6국이 진나라에게 모조리 망한 것도 무리는 아닐 터.[7] 이런 전쟁은 모두가 이득을 보고 좋게 끝날리가 없었다. 연나라는 진나라에게 뒷통수맞아서 조나라에게 피해를 많이 당했다. 연나라의 태자 단은 이때에 이미 진나라에 인질로 와 있었다. 이후 온갖 고생 끝에 간신히 연나라로 귀환한 태자 단이 이를 갈던 끝에 진시황에게 보낸 복수의 선물이 바로 형가였다.[8] 여불위 제거는 진시황이 자신의 권력을 확보하려고 한 짓이지 여불위에게 큰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