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01:31:36

후직

파일:주 금문.png
주 국왕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서백 西白
초대 국군

후직
2대 국군

부줄
3대 국군

4대 국군

공류
5대 국군

경절
6대 국군

황복
7대 국군

차불
8대 국군

훼유
9대 국군

공비
10대 국군

고어
11대 국군

아어
12대 국군

주공
13대 국군

태왕
14대 국군

왕계
15대 국군

문왕
서주 西周
초대 왕

무왕
2대 왕

성왕
3대 왕

강왕
4대 왕

소왕
5대 왕

목왕
6대 왕

공왕
7대 왕

의왕
8대 왕

효왕
9대 왕

이왕
10대 왕

여왕
공화기

정공 · 소 목공간왕
11대 왕

선왕
12대 왕

유왕
비정통

휴왕
동주 東周
13대 왕

평왕
14대 왕

환왕
15대 왕

장왕
16대 왕

희왕
17대 왕

혜왕
비정통

폐왕
18대 왕

양왕
비정통

후폐왕
19대 왕

경왕頃王
20대 왕

광왕
21대 왕

정왕
22대 왕

간왕
23대 왕

영왕
24대 왕

경왕景王
25대 왕

도왕
비정통

서왕
26대 왕

경왕敬王
27대 왕

원왕
28대 왕

정정왕
29대 왕

애왕
30대 왕

사왕
31대 왕

고왕
32대 왕

위열왕
33대 왕

안왕
34대 왕

열왕
35대 왕

현왕
36대 왕

신정왕
37대 왕

난왕
분열 (西)
분열 (東)
국군

환공
국군

위공
국군

혜공
국군

무공
국군

혜공
국군

무공
국군

소문공
국군

동주공
국군

문공
주읍 周邑
초대 국군

문공
2대 국군

평공
ㆍㆍㆍ
?대 국군

정공
ㆍㆍㆍ
?대 국군

환공
?대 국군

희공
?대 국군

희기보
?대 국군

희열
?대 국군

희초
삼황오제 · · ·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진(秦) ·
삼국시대 · 사마진 · 오호십육국 · 남북조 · ·
오대 · 십국 · · 서하 · · · · ·
중화민국 국가원수 · 중화민국 총통 · 중화인민공화국
}}}}}}}}}}}}}}}

주 초대 국군
후직 | 厚稷
파일:후직.jpg
봉지 <colbgcolor=#FFFFFF,#191919>태(邰)[A]
직책 후직(后稷)
(姬)
(棄)
부왕 제곡(?)(帝嚳)
모후 강원(姜原)
생몰 기간 음력 미상

1. 개요2. 상세

[clearfix]

1. 개요

중국 신화의 등장인물. 주나라의 왕성인 희성 부족의 시조.

2. 상세

사기》에 의하면 제곡 고신씨의 정비인[2] 강원이란 여인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해서 낳았다고 한다. 강원은 후직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버릴까도 고민했으나[3], 신화가 흔히 그렇듯 하늘의 기적으로 여러 연이 닿아 후직은 무럭무럭 성장했다고 한다.

이후 요순시대부터[4] 왕조까지 벼슬살이하며[5], 나중에는 태(邰)[A]에 봉해져 농업을 지도하는 직책(后稷)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덕분에 후대 중국에서는 염제 신농씨[7] 함께 농경의 신으로 여겨졌다. 조선에서도 농사의 신으로 모셨다.

참고로 후직의 아들 부줄은 이후 왕조가 어지럽자 '농사' 직위 대신 희성 주족 집단을 데리고 주 땅인 주원, 관중 분지를 떠나 북방 융적 야만인들이 사는 곳으로 이주하여 생계를 꾸리며 11대까지[8] 나름 잘 살다[9][10], 고공단보 대에 이르러 다시 주원으로 돌아와 상나라 속국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A]섬서성 무장현 일대로 비정.[2] 이는 산해경 등에서 창작된 내용으로 보기도 한다. 당장 주족의 창시 전설이 전해져오는 시경 『대아-생민』편에도 이런 설을 신뢰하지 않았는지 관련 내용이 없다. 즉, 미혼 상태에서 후직을 낳은 것.[3] 이후 강원의 행동이 시경엔 나타나지 않아 버리고 갔는지 아니면 다시 거뒀는지 알 수 없지만, 사기엔 다시 거둬 길렀다고 나와있다. 처음엔 아이를 버리려 했기 때문에 '기()'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후직의 동생 태새가 숙균을 낳았다는 얘기도 일단은 전해지는걸 보면 강원이 다른 자식도 낳았을 가능성이 있다.[4] 사기에 따르면 희성과 (기에서) 후직이란 명칭 역시 순임금한테 받았다고 한다.[5] 다만 후직과 초기 주족이 진짜 요순, 하 왕조와 연관이 있는지 아니면 후대의 미화인지는 확실히 검증할 방법이 없기에(고고학적으론 주의 주거 위치가 하나라 세력권 밖으로 추정된다), 역사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보고 있진 않다.[A] [7] 이 신농씨를 후직의 조카 숙균 혹은 아우 태새가 후대에 신격화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후직은 황제. 믿거나 말거나[8] 사실 하나라 초기부터 따지면 11대의 집권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문제가 있어, 실제론 후직이 하말상초 어느 무렵쯤 인물 아니냐는 추정도 있다. 이 설을 따르면, 부줄도 하가 아닌 상이 세력권을 넓혀 서쪽 지방을 침범하자 이에 위협을 느끼고 관중의 평야 지대 대신 북방 산악 지대로 숨었다고 볼 수도 있다.[9] 후직의 동생 태새의 아들 숙균 무리(강성 주족)는 계속 주원에 머물며 농업을 계승했으나, 상나라 무정 시기 정벌 당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10] 혹은 애초에 주족은 유목민 세력이었다 관중에 오면서 정주 세력이 된건데, 이후 조상 올려치기를 하는 과정에서 후직 신화가 창조되었을 가능성도 아예 없진 않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