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商)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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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16350> 상(商) 3대 왕 태종 | 대갑 太宗 | 大甲 | ||
묘호 | 태종(太宗) | |
왕호 | 태갑(太甲) / 대갑(大甲) | |
성 | 자(子) | |
휘 | 지(至) | |
아버지 | 태정(太丁) / 대정(大丁) 이질(以跌) | |
아내 | 비무(妣戊)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1571년(?) |
재위 기간 | 음력 | 갑골문:기원전 ???년 ~ 기원전 ???년 사기:기원전 1582년 ~ 기원전 157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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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상나라의 3대 국왕. 묘호는 태종(太宗), 왕호는 태갑(太甲). 성은 자(子), 휘는 지(至).태정(太丁)의 아들, 외병(外丙)의 형.2. 생애
《사기》에 따르면 아버지 태정이 할아버지 탕왕의 왕위를 계승해야 했지만, 즉위하기 전에 죽어 숙부 외병(外丙, 승)이 즉위했다. 하지만 3년만에 외병이 죽었기에 외병의 동생인 중임(中壬, 용)이 즉위했으나 그 역시 4년만에 죽어 탕왕때의 공신이자 재상 이윤(伊尹)이 태정의 아들 태갑을 왕으로 옹립하여 정국을 안정시켰다.허나 태갑은 왕이 된 후 3년이 지나도 왕도를 깨닫지 못하고 포악해졌으며, 이전 탕왕의 법도를 지키지 않고 덕을 어지럽히자 재상 이윤은 태갑을 폐위하여 동궁(桐宮)으로 내쫓고 3년 동안 섭정의 자격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이에 태갑이 3년 동안 동궁에 머무르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자 이윤이 다시 태갑을 맞이했다고 나오며 태갑이 나라를 덕으로 다스리자 제후들이 모두 상나라에 복종하고 백성들도 평안해졌다고 한다. 이윤은 이를 기뻐하며 그에게 '태갑훈(太甲訓)'을 지어 칭송하고 '태종'(太宗)이란 묘호를 올렸다고 한다.
《죽서기년》의 기록은 좀 다르다. 태갑 원년에 이윤이 태갑을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며, 7년 뒤 동궁에서 몰래 빠져나온 태갑이 찬탈자 이윤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1]
《갑골문》에서는 아버지 태정이 탕왕의 왕위를 계승하였고, 태갑도 왕위를 승계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기》에서의 전대 왕인 중임은 갑골문엔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