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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31 06:38:35

제방


파일:Northwest_at_Jordanelle_Dam_from_Jordanelle_State_Park_Overlook,_Apr_16.jpg

堤防

1. 개요2. 제방의 종류3. 대한민국의 제방4. 붕괴 사고5. 언어별 명칭

1. 개요

치수간척, 농업용수 공급 등의 목적을 위해 ·바다·호수·저수지 가에 둘러 쌓는 시설물. 둑 혹은 방죽이라고도 한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이래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강과 호수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홍수가 날 경우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물이 넘쳐 거주지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게 되었다. 또 가뭄 때에도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물을 모아서 저수지를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많은 양의 흙과 돌을 동원해 튼튼하게 쌓아야 하므로 대규모의 인력과 자원이 동원되었다. 대한민국에 대표적으로 남아있는 고대 저수지로 벽골제가 있다.

2. 제방의 종류

사실 인간이 쌓아야만 제방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평야를 흐르는 강에는 자연제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강이 흐르면서 강변에는 토사가 퇴적되는데, 이것 때문에 강의 양쪽은 자연스럽게 고도가 약간 높아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약간 높은 정도라서 너무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면 쉽게 넘쳐버리기 일쑤였으므로 안정적인 치수를 위해 여기에 둑을 추가로 건설하는 것이다.

어디에 쌓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기도 한다. 의 하구를 막아 건설하면 하굿둑[1], 바다를 막으면 방조제 같은 식으로. 심지어 도 넓은 의미의 둑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댐과 방조제의 경우 수력 발전조력 발전에 각각 공헌하기도 해 제방은 치수 외에 간척과 전력발전의 목적도 수행하고 있다.

각종 제방 및 방파제 시설물들의 효과를 실험한 것.

현대에 들어와 제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제방 자체의 홍수 억제 능력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잘못 지은 제방들이 오히려 홍수를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는 제방을 강에 밀착해서 짓고 그 과정에서 강을 직선화하는데, 강의 유속이 빨라지고 면적이 좁아지면서 홍수시 강의 수위가 더욱 빠르게 오르게 되며, 병목현상으로 상류지역에 더 큰 홍수를 일으키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현대에는 범람원 구역을 추가로 두고 제방을 후방에 건설하여, 강 주변에는 자연적인 둔치나 백사장이 생기게하여 부분적으로나마 강이 좀더 곡류를 흐르면서 흐르게 하는 방식으로 건축방식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유럽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런 전환이 빠르게 일어났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아직도 과거 방식으로 제방을 짓는 곳이 많고 게다가 각 시나 공동체에서 자체적으로 건설하고 있어서, 제방을 못지은 지역은 두배 세배로 홍수 피해를 입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3. 대한민국의 제방

한반도는 여름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기후 특성상 여름에 하천의 수량이 급격히 불어나고 때에 따라서는 주변 범람원으로 물이 넘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하천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강변에 대대적인 제방 축조 사업을 펼쳤다. 특히 해방 이후 산업화와 그로 인한 국토 개발 과정에서 강변 곳곳에 제방 등 치수시설이 많이 건설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특별시 한강에 있는 여의도 여의동로-여의서로, 강 북쪽의 강변북로-강 남쪽의 올림픽대로, 강변 둔치인 한강공원이다. 이 도로와 공원은 그 자리 자체제방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서울을 대표하는 부도심 중 하나가 된 여의도는 원래 여름마다 홍수가 잦았던 섬이었다. 여의도에 기지를 뒀던 대한민국 공군이 매년 여름마다 짐을 싸서 김포국제공항여의도공항을 들락날락했던 것도 홍수에 취약한 여의도의 지형적 사정 때문이었다. 결국 1970년대에 밤섬을 폭파하고 여기서 생긴 돌과 모래로 여의도 둘레에 제방을 쌓아 오늘날의 여의도 형태를 만들었다. 매년 봄에 열리는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의 '윤중'이라는 표현이 일본식 제방을 뜻하는 '와주(わじゅう)'다. 쉽게 말하면 여의도 제방 위에 만들어진 길이라는 뜻이다.

한강변의 제방이 일제 정비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1960년대 서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면 강변도로가 건설되기 전 한강에는 넓은 백사장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강수욕을 즐겼으며 한강의 모양도 매우 구불구불하고 유로도 불규칙했다. 특히 제방 또한 부실했기 때문에 폭우만 쏟아졌다 하면 서울시민들이 적지 않은 홍수 피해를 입었다. 강변에 도로를 짓고 콘크리트 제방을 세운 것은 1980년대의 일인데 1981년 서울에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서울의 상징인 한강을 깨끗하게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진행한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한강 저수로와 주변 범람원에 대한 정비가 이뤄졌고 올림픽대로가 건설되면서 현재 한강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이 사업 때문에 백사장은 거의 사라졌으며 밤섬 등 하중도는 무인도로 남게 되었다. 물론 이 사업 때문에 한강변이 온통 콘크리트로 채워져서 흉측하게 변해버렸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어쨌든 강변의 크고 아름다운 제방이 없다면 압구정, 여의도, 잠실 같은 지역이 홍수 때마다 물바다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1992년 개통된 서울 상암동~경기 파주시 임진각 사이 자유로 역시 원래 목적은 한강의 범람 방지를 위한 제방이다. 현재의 자유로 터에도 일제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제방이 있었으나 1990년 9월 한강 대홍수의 여파로 현재 자유로JC 일대에 있던 제방이 무너지면서 고양군 일대가 엄청난 침수 피해를 입었다. 결국 이 제방을 원래대로 복구하면서 수도권 서북지역의 서울 이동 편의 제공과 향후 남북통일 대비용 도로 조성 차원에서 제방 폭을 수십미터로 늘리고 그 위에 간선도로를 건설하기로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길이 오늘의 자유로다.

황해에 인접한 평야지역의 경우 조수간만의 차가 워낙 커서 바닷물이 종종 강으로 역류해서 염해를 유발했으므로 금강, 영산강, 삽교천, 안성천 같은 곳에 하굿둑방조제를 건설하게 되었고 간척으로 국토 면적을 늘리기 위해 온갖 곳에 크고 작은 제방(방조제)이 건설되었다. 실제로 70년대 이전의 한국 지도를 보면 현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해안선이 구불구불했는데 현재의 모습은 그나마 많이 직선화된 편이다. 경기도는 말할 것도 없으며 충청남도당진시, 서산시, 태안군 연안이 눈에 띄게 직선화되었다. 시화호의 사례에서 보듯 방조제 건설은 환경오염이라는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의 특징 중 하나로 치수를 위해 국토면적에 비해 유난히 큰 댐들이 건설된다던가... 한국의 댐은 다목적댐 위주로 지어져 국가의 사이즈에 비해 댐의 크기가 매우 큰 편이다.

4. 붕괴 사고

제방이 붕괴되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폭우 시에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제방이 터져버리면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리는데,[2] 쓰나미의 경우와 거의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저 강물과 바닷물의 차이만 있을 뿐... 이를 이용해 전쟁에서는 둑을 터뜨리는 수공이 하나의 전략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일본 도치기현이바라키현에서 키누가와 강의 제방이 터져서 2층집이 통째로 떠내려가는 등 동일본 대지진 때의 쓰나미를 방불케 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처럼 무너질 경우 심각한 피해를 초래함은 물론 복구도 곤란한 것이 제방이기 때문에 지을 때 매우 튼튼하게 지어야 한다.

5. 언어별 명칭

【언어별 명칭】
<colbgcolor=#CCC> 한국어 둑, 제방, 방죽
한자어 堤防, 防―[3]
영어 Levee(美), Embankment, Dike, Dyke(해안가에 있는)
중국어 堤坝(dībà)[4]

[1] 이 경우 바닷물이 강물로 역류해서 농지에 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준다. 대표적으로 금강낙동강의 하구둑이 있다.[2] 실제로 1990년 9월 집중호우 당시 경기도 고양시(당시 고양군) 행주대교 근처 한강 제방이 붕괴되어 엄청난 인명 및 재산피해가 났다. 붕괴된 제방을 튼튼하게 복구하면서 그 위에 개설한 도로가 바로 자유로이다.[3] 방(防)은 한자이지만 죽은 한자가 아니다.[4] 댐과 둑을 총칭하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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