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선사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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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적 제267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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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지 | |
면적 | 98,354㎡ | |
지정연도 | 1979년 7월 26일 | |
제작시기 | 신석기 시대 | |
위치 |
1. 개요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2동에 남아있는 신석기시대 유적지.1979년 사적 제267호로 지정됐다.
2. 상세
역사 교과서에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선사유적지 중 하나로,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다량의 토사가 유실되어 유물들이 드러나면서 우연히 발견됐다.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 간석기인 갈돌, 움집 터 등이 출토됐으며 청동기 시대 유물과 백제 위례성 시절의 독무덤 등도 발견됐다.
10월 즈음 되면 어느 토요일에 선사문화축제를 열기도 하는데 이 때쯤 되면 선사유적지는 물론 암사역사거리와 규모가 커지면 천호역사거리까지 통행을 막고 주변 암사시장과 함께 여러가지 행사, 가장행렬을 한다.[1]
과거에는 '암사동 선사유적지'라고 흔히 불렀으나 현재 정식 명칭은 선사를 빼고 그냥 '유적'이다. 신석기 시대 유적이 대부분이긴 하나, 이후 연구가 진행되며 신석기 시대뿐만 아니라 이후 역사시대의 유적이나 유물도 나오기 때문. 특히 풍납토성 등 백제 시대 위례성과의 연관성도 있어서 선사유적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해진 탓이 크다. 천호·암사 등 강동구 일대는 예로부터 강에서 가까우면서도 비교적 고지대라 물이 잘 빠져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현재까지도 근 3천 년 넘게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는 없지만 과거(몇십 년 전)에는 이 곳에서 타조를 사육하기도 했다.
3.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서울 암사동 유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서울 암사동 유적
- 고고학사전: 암사동 유적
- 한국 미의 재발견 - 선사 유물과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암사동 선사주거지
-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암사동 선사주거지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암사동 선사주거지
- 대한민국 구석구석: 서울 암사동 유적
- 두산백과: 서울 암사동 유적
4. 사적 제267호
아차산성을 마주하는 한강변에 있는 신석기시대 유적이다.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방사선탄소측정에 따르면 B·C 4,000∼3,000년기에 걸친 유적이다. 20여 기의 집터와 딸린시설, 돌무지시설이 드러났다. 집터는 바닥을 둥글거나 모서리를 죽인 네모꼴로 팠으며 크기는 길이 5∼6m, 깊이 70∼100㎝ 정도이다. 집터 가운데에 돌을 두른 화덕자리도 보이며, 입구는 주로 남쪽을 향한다. 기둥구멍은 보통 4개이며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 토기가 많이 나왔으며 돌도끼, 그물추, 불에 탄 도토리 등이 출토되었다.
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유적이며,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중 최대의 마을단위 유적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당시 생활모습을 살필 수 있는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 신석기인의 문화를 추측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암사동선사주거지 → 서울 암사동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방사선탄소측정에 따르면 B·C 4,000∼3,000년기에 걸친 유적이다. 20여 기의 집터와 딸린시설, 돌무지시설이 드러났다. 집터는 바닥을 둥글거나 모서리를 죽인 네모꼴로 팠으며 크기는 길이 5∼6m, 깊이 70∼100㎝ 정도이다. 집터 가운데에 돌을 두른 화덕자리도 보이며, 입구는 주로 남쪽을 향한다. 기둥구멍은 보통 4개이며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 토기가 많이 나왔으며 돌도끼, 그물추, 불에 탄 도토리 등이 출토되었다.
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유적이며,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중 최대의 마을단위 유적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당시 생활모습을 살필 수 있는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 신석기인의 문화를 추측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암사동선사주거지 → 서울 암사동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