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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동지석묘군


🪨한반도 선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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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펼치기 · 접기 ]

[1] 문서에 나오듯 산 이름이 우상화 지명이라서 통일 후 개명 가능성이 높다.[2] 사적 지정, 학설을 뒤집은 유적[3] 남한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 유적이며 한강 이남에도 구석기 문화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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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사월동지석묘_전경.jpg

1. 개요2. 내용3. 기타4. 외부 링크5.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9호

1. 개요

대구광역시 수성구 사월동 464에 위치한 지석묘군이다. 1992년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됐다.

2. 내용

사월역 1번 출구로 나와 하천을 건너 시지보성아파트의 회전교차로 돌아서 신매우방타운 정문 방면으로 가면 (달구벌대로651길)정문 맞은편에 울타리가 쳐져 있고 넓적한 바위 4개가 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월동지석묘군으로 전형적인 청동기 시대의 남방식 고인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지역 노인들은 '칠성바위'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 이름에 따르면 본래 일곱 개의 고인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세 개는 소실된 상태이다. 또한 사월동의 옛 명칭인 사돌(四乭)이 가리키는 네 개의 돌을 이것에 비정할 수 있다면 사월동(옛지명 경산군 고산면 사월동) 자체의 어원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본래 일승섬유공장이라는 사업장 근처에 방치되었다가 1992년 9월 8일에 시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996년 해당 위치에 시지2차사월보성타운이 건축되면서 아파트 단지 내 유휴부지로 관리되고 있다. 2010년대 중반에 지역 주민의 관람을 위해 울타리가 유리벽으로 바뀌고 안내판이 부착되었다.

남방식 고인돌은 고인돌 하면 딱 떠오르는 다리 받침이 짧거나 없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바위로 착각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곳 주민들도 이게 고인돌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있어서 단지 내 공원인 줄 아는 경우도 있는 듯.

3. 기타

tvN의 교양 프로그램 알쓸신잡 시즌 3 12화에서 고인돌에 대해 다루던 중 언급된 적이 있다. 당시 경산군 고산면(현재의 수성구 일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유시민이 논 한가운데에 큰 돌들이 많이 놓여 있었다고 회상하는데, 이 때 화면 오른쪽 아래에 참고용으로 이 고인돌의 사진이 등장한다.

4. 외부 링크

5.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9호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대구시 수성구 사월동에 있는 이 고인돌은 바둑판식으로 4기가 무리지어 있다. 덮개돌의 길이는 1.7∼2.37m, 너비는 1.1∼1.6m이며 받침돌 높이는 0.7m∼1.27m 정도이다.

무리지어 있는 고인돌을 마을에서는 ‘칠성바위’라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는 모두 7기의 고인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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