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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래 전 밤섬으로 불리게 된 까닭은 마포구의 와우산에서 보이는 형상이 깐밤을 닮았기 때문으로, 조선시대에는 한성부의 율도(栗島)로 명명됐다. 서울 도심과 가깝기도 하고 표고도 꽤 있는 데다가 땅 자체도 넓어서 사람이 많이 살았던 섬이었으나, 현재는 무인도로서 자연보호구역이다. 그렇지만, 현재도 지적도를 보면 과거 밤섬에 있었던 마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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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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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개발 전의 밤섬 사진(컬러 복원). 배편이 제때마다 드나드는 번화한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1960년대 중반까지 약 1,000명 가량이 살았고, 폭파 직전에는 62가구 443명의 주민이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 5월 6일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시성식을 통해 성인품에 오른 성녀 김효임 골롬바-김효주 아녜스 자매도 밤섬 출신이었다.
오히려 지금의 여의도는 서부지역에 동산과 벌판이 있는 걸 빼면 그저 모래톱이었을 뿐이었는데, 현대에 들어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두 섬의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한편 폭파 당시 이주한 실향민들은 섬 근처의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했으며, 여느 실향민이 그렇듯 지금도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종종 고향을 그리워하며 이곳을 찾기도 한다고 한다.
이때 부군당이란 마을 사당도 창전동으로 옮겼다. 밤섬 사람들이 믿던 무속신앙의 대상인 부군신, 삼불제석, 군웅신을 모신 사당으로 대대로 굿을 해 왔는데 이 사당을 옮겨서 계속 이어간 것이다. 이 굿을 '밤섬부군당도당굿'이라고 부르는데 2005년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했다. 이주 당시 밤섬 실향민들은 밤섬 폭파를 추진한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에게 원한이 커서, 김현옥이 말년에 기도폐색으로 사망하자 '부군당을 부쉈으니 신의 벌을 받은 것'이라며 조롱했다.
2.1. 폭파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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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폭파되는 밤섬을 기록한 사진(컬러 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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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파 이전의 밤섬 일대 지도 한강의 수위에 따라 지형이 매우 유동적인 범람원이었다. |
이 과정에서 밤섬의 존재가 문제시되었다. 건설부의 한강 너비 1,300 m 확장안을 시행하려면 밤섬을 폭파하여 없앨 수밖에 없었던 것. 당시 서울시 당국은 이주민 문제라면 골머리를 앓을 지경이었는데 밤섬에는 아예 조선 시대부터 집성촌이 있었다. 그래서 밤섬은 폭파하고, 샛강은 매립하지 않고 살려 홍수 조절기능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당초 계획보다 좀 줄어든 현재의 여의도 면적인 87만 평의 택지가 조성된 것이다.
또한 밤섬 폭파는 바닥난 서울시 재정상태에서 여의도 윤중제의 자재를 조달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이기도 했다. 바위섬이었던 밤섬은 폭파하는 즉시 석재로 사용할 수 있었고[3] 여의도와는 부교로 연결되어 있었다. 밤섬의 바위들은 석재로 여의도 윤중제에 쌓였고 토사 역시 매립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후 인부들이 3교대로 투입되어 110일만에 방죽 공사가 완료되었다.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완료된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어쩌면 밤섬을 없애버리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북한강과 남한강 수계에 수위조절이 가능한 댐이 여럿 있어서[4], 밤섬의 존재여부가 수류에 영향을 덜 주기 때문이다. 다만 이 때의 밤섬은 한강의 유량에 따라 여의도와 이어지는 거대한 백사장이었으므로 하상계수가 높은 한국의 특성상 대부분은 개발하지 못하고 고수부지로 사용했을 것이다.
2.2. 회복과 람사르 습지 지정
폭파 후 밤섬의 암반층에 지속적으로 퇴적물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밤섬은 모래섬으로 탈바꿈하였다. 처음에는 한강 수위가 낮을 때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모래톱이었지만, 점점 섬이 커지더니 불과 수십 년 만에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였고 이제는 폭파 전보다도 더 큰 섬이 되었다. 밤섬은 지금도 계속하여 더 커지고 있다.# 1966년 처음 측량했을 때 4만여 제곱미터였던 게 2024년 현재는 무려 10배로 불어난 40만여 제곱미터에 달한다.| |
| 폭파 직전(1966년, 위)의 밤섬과 오늘날(2012년, 아래)의 밤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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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대교 밤섬 생태 체험관의 모습 |
밤섬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생태를 보전하고자 밤섬을 지나는 서강대교는 야간에 조명을 제한한다. 아울러 이 인근을 지나는 배들은 제한속도가 8노트로 제한된다. 원래 관리용 출입로 정도는 있었으나 취객이나 노숙자들이 관리용 출입로로 밤섬에 무허가 접근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출입로 자체를 철거해버렸기 때문에 걸어서는 접근할 방법 자체가 없어졌다. 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특별허가를 받고 들어갈 때에도 배를 타고 들어간다.
매년 서울시에서 한강을 청소할 때 이 밤섬도 청소한다. 단순히 쓰레기 수거하는 수준이 아니라 배에서 한강물을 뿌려서 나무 물청소까지 한다. 나무에 새들의 배설물이 너무 많이 쌓이면 배설물의 독성으로 나무가 고사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씻어내는 것이다. #
2023년 5월 16일 MBC 보도에 따르면, 최근 수달 등이 머무르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후 육지화의 진행으로 기존 버드나무에서 참나무 등으로 식생변화가 예상된다고 한다. 다만 아직 한강의 유속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라고. 향후 가시박과 쓰레기 등의 생태교란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3. 매체에서
- 밤섬에 사람이 표류한다는 내용으로 김씨 표류기라는 영화가 제작된 적 있다. 다만 실제로는 보호습지 특성상 사람들이 꾸준히 관리를 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영화에서도 최대한 숨어있다가 공익 요원 구교환이 방문하여 주인공을 쫓아냈다. 그리고 영화 초반처럼 신고를 받으면, 무시하지 않고 일단 출동할 것이기에 더더욱.
- 과거 밤섬 이주시에 벌어졌던 개발독재시대의 내용을 담은 단편만화가 발표되기도 했다. 월간 보물섬에 1985년 9월호, 제 39호에 게재되었던 금영훈 화백의 <꽃섬>이라는 단편 만화이다.나와 약혼녀가 같이 약혼녀의 오빠를 만나러 간다. 동물원에서 사육사로 일하던 그녀의 오빠는 반갑게 맞이하면서 잠깐 시간을 내서 쉬면서 나와 이야기하는데, 문득 고향 이야기를 하자 무척 슬픈 얼굴을 한다. 지금은 사라진 어느 작은 섬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다는 것. 그가 말하길 그 섬은 밤이 많아 보통 밤섬이라고 불렀지만 이 섬에 사는 우리들은 꽃이 아름답다고 하여 꽃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 남매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뱃사공인 아버지에게 자랐다면서 옛날 이야기를 한다. 섬을 사랑하고 아끼던 아버지. 하루는 섬에 오던 철새(백로)들을 총으로 쏘던 외부인 사냥꾼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이걸 보고 분노하여 노로 죽도록 두들겨 패줬다.[5] 그리고 죽은 백로는 정성스럽게 섬 바닷가에 묻어주었다.그렇게 아름다운 섬이지만 갑자기 이 섬이 조류에 나쁘다느니 뭐니 억지 핑계로 닥치고 폭발시킨다는 정부의 지시가 내려졌다.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맞설 힘이 없어 하나둘 떠나야 했다. 우리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남으려 했으나 개발공사 관계자가 죽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라고 압력을 가해 결국 아버지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떠나는 날 철새들을 억지로 떠나게 하며 "다시는 오지 마라! 이 섬은 사라질 거야! 나도 떠나야 하니까...!"라고 절규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떠나지 못했다. 스스로 섬 절벽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이런 옛날 이야기를 서글프게 착잡한 얼굴로 말해주던 오빠는 일해야 한다며 그 자리를 말없이 떠나고 나도 말없이 착잡하게 있어야 했다.<꽃섬>
- 모바일 게임 도시를 품다의 2부 스토리 중에서도 밤섬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나온다.
- 웹툰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에서는 세포들의 둥지로 나온다.
- 밤섬해적단이라는, 해당 섬에서 이름을 따온 밴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