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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12-07 17:06:12

쿠바

파일:나무위키+유도.png   VfL 볼프스부르크의 축구선수에 대한 내용은 야쿠프 브와슈치코프스키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유도.png   공산혁명 이전의 쿠바의 정치체제에 대한 내용은 쿠바 공화국(1902~1959)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카리브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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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大)앤틸리스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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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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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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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小)앤틸리스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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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티가 바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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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키츠 네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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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들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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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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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니크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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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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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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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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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이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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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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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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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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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다드 토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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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바에스파트타
(베네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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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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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안드레스 이 프로비덴시아
(콜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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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스 섬
(베네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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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공화국
República de Cuba
파일:쿠바 국기.png
국기
파일:쿠바 국장.png
국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Cuba_on_the_globe_%28Americas_centered%29.svg.png
위치
면적 110,860km²
수도 아바나
인구 11,331,308명(2019년 통계)
공용어 스페인어
정치체제 민주집중제, 일당제, 단원제, 공산주의
대통령 미겔 디아스카넬[1]
부통령 살바도르 발데스 메사
총리 공석
GDP 명목 1210억$(2016)
1인당 GDP 명목 10,200$(2016)
HDI 0.769(2014)
통화 페소
시간대 CST (UTC-5)
국제 전화 +53
전원 120V 60Hz
도메인 .cu
민족구성 백인 64.1%, 메스티소 26.6%, 흑인 9.3%
종교분포 가톨릭 85%
국가 바야모 행진곡 (스페인어: La Bayamesa)
표어 ¡Patria o muerte, venceremos!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우리는 승리하리라!)[2]

1. 개요2. 국가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가
3. 언어4. 역사5. 문화
5.1. 영화5.2. 성문화
6. 스포츠
6.1. 야구6.2. 배구6.3. 축구6.4. 그밖에
7. 정치8. 경제9. 사회
9.1. 의료9.2. 교육9.3. 치안
10. 군사11. 여행
11.1. 가는 방법11.2. 돈11.3. 국내 교통11.4. 유명한 것, 주의해야 할 것11.5. 여행에 필요한 기타 정보
12. 관타나모 해군 기지13. 기타14. 대외관계
14.1. 미국과의 관계
14.1.1. 쿠바 혁명 이후14.1.2. 오바마의 국교 정상화 시도14.1.3. 트럼프의 관계 냉각14.1.4. 아바나 괴질 사태 ("아바나 신드롬")
14.2. 러시아와의 관계14.3. 캐나다와의 관계14.4. 스페인과의 관계14.5. 대한민국과의 관계14.6. 기타 국가들과의 관계14.7. 일본과의 관계14.8. 중국과의 관계14.9. 영국과의 관계14.10. 멕시코와의 관계14.11. 바하마와의 관계14.12. 아이티와의 관계14.13.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관계14.14. 자메이카와의 관계
15. 쿠바가 무대로 등장하는 작품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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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kingofwallpapers.com/havana-012.jpg

카리브에 자리잡은 아메리카 대륙 유일의 공산주의 국가. 수도는 라 아바나(La Habana). 줄여서 아바나라고도 한다.[3]

인구는 약 1103만 명(2015년), 국토 면적은 약 11만 1000㎢으로 대한민국보다 조금 더 넓고 북한보다 조금 좁다. 북으로는 미국 플로리다 반도, 서쪽에는 멕시코 본토, 동쪽에는 아이티, 남쪽으로는 자메이카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지도를 펼쳤을 때 플로리다 바로 남쪽에 보이는 동서로 길쭉한 나라가 바로 쿠바이다.

카리브 해 최대의 섬나라로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섬이다. 카리브해 최대의 도서국가로 15세기 후반 그 유명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방문했던 곳이다. 스페인의 식민통치가 시작되기 전에는 타이노인 같은 선주민들이 살고 있었지만, 스페인의 식민통치와 전염병으로 인구가 급감하고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도 대부분 스페인인이나 아프리카 흑인들과 혼혈되면서 현재는 수천 명 수준에 불과하다.

2. 국가 상징

쿠바 국가 상징의 재밌는 점은 공산주의 나라 가운데 공산주의를 생각나게 하는 말(사회주의, 인민 등)이 나라 이름으로 쓰이지 않고, 혁명 이전의 국호와 국기, 국가를 공산정권 수립 이후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국장에는 파스케스까지 있다. 이는 쿠바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주의 혁명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2.1. 국호

국호인 '쿠바'의 유래는 지금도 불명확하다. 콜럼버스 도래 이전의 원주민인 타이노인의 언어에서 오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추정일 뿐이다.

한편, 포르투갈에는 지금도 'Cuba'라는 이름의 동네가 있는데, 콜럼버스가 포르투갈인이라고 주장하는 소수 재야사학자논자[4]들은 쿠바라는 이름이 이 동네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어권에서는 Cuba를 '큐바'라고 읽는다.

2.2. 국기

빨간색 삼각형과 안쪽의 흰 별이 왼쪽에 배치되어 있고 오른쪽으로 파란색과 흰색의 줄이 합쳐서 5개 배치되어 있다.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공산주의의 상징이 하나도 안 들어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라오스와 쿠바 외에는 없다.

세 개의 파란 줄은 스페인으로부터 쿠바가 독립할 때 세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던 것을 상징하고, 흰색 두 줄은 순결을 상징한다. 왼쪽의 붉은 삼각형은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함과 동시에 용기와 붉은 피를 상징하기도 하며, 그 안에 들어 있는 별은 독립을 상징한다.

이 깃발은 1850년에 쿠바의 독립운동가 나르시소 로페스(Narciso López)가 디자인한 것이다. 비록 그의 무장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가 디자인한 국기는 계속해서 쿠바 독립진영의 상징으로 남았고 정식 국기로 지정되었다. 쿠바 혁명 성공 이후에도 국기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전해져내려오고 있다. 오히려 쿠바 공산당 로고에 국기를 박아넣었다.

미국의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의 깃발과도 유사한데, 이는 19세기 말 푸에르토리코 독립운동가들이 쿠바 독립운동가들을 본받아 독립운동을 하면서 깃발도 쿠바 국기에서 본떴기 때문이다. 카탈루냐 독립운동 진영의 에스텔라다(Estelada) 깃발 역시 쿠바 독립운동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카탈루냐 깃발 세녜라(Senyera)의 왼쪽에 독립을 상징하는 푸른 삼각형과 흰 별을 박았다.

2.3. 국가

국가1902년에 채택된 바야모 행진곡이다.

3. 언어

공용어로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쿠바 내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스페인 본토와는 다른 표현들이 쓰이고 있고, 중남미 쪽 스페인어(특히, 카리브 스페인어)와 관련이 깊은 편이다. 소련이 해체되기 이전에는 러시아어도 스페인어와 함께 공용어였다. 소련 해체 이후에 공용어에서 제외됐다가 2019년에 러시아어 프로그램이 다시 개설되는 등 쿠바에서도 러시아어를 배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러시아어 원문)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방문해보면 관광지에서도 영어가 통하지 않으며 심지어 호텔에서도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그나마 통하는 곳은 시가 박물관 정도. 쿠바 가이드북에도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으니 간단한 스페인어 몇 가지는 익혀서 방문하라고 나와 있다. 냉전 때는 공산권 국가들과 관계를 가졌고 이후로는 주로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 국가들과 교류가 잦다. 학교에서도 영어 교육 과정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개혁개방이 되고 혁명 후 단절되었던 미국과의 재수교가 이뤄지면서 교육과정에 영어 과목이 포함되었고, 카사나 택시 등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는 사람들은 영어 회화가 가능한 경우도 점차 느는 추세다.

예전에 쿠바에서는 타이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타이노어도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소멸되었다.

4. 역사

쿠바의 역사
Historia de Cu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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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중세 스페인의 식민지배 미군정 제1공화국 현대
쿠바의
선사시대
스페인 제국 미국 쿠바 공화국 미국 쿠바 공화국
쿠바 혁명
쿠바 공화국
사회주의
쿠바 총독령 누에바에스파냐
쿠바 도독령
쿠바 도독령 쿠바 미군정 제2차 점령
관타나모 만은 쿠바의 미군정(1892~1902년) 종료 이후 미국이 영구조차 중 }}}}}}

5. 문화

5.1. 영화

5.2. 성문화

중남미 국가들이 그렇듯 성이 개방되어 있으며 중고등학생들 간에도 미혼모가 흔하여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기를 낳은게 그다지 흠이 되진 않을 수준이다. 그런 이유도 있고 미녀들이 유명한데다가 쿠바가 빈국이라서 매춘을 하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현지인들 기준에서 크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매춘업이 상당히 발달해있다. 사실 쿠바에서 매춘은 불법이지만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어느 정도 봐주고 있는 면이 있는 것이다. 물론 가끔 가다 큰일이 벌어졌을 때는 단속을 강화하기 때문에 이때 간다거나 처신 잘못하면 추방당할 수 있다. 매춘부 중에는 미성년자도 꽤 있어서 미국이나 유럽 관광객이 멋모르고 이런 미성년 매춘부와 성관계를 했다가 귀국 후 처벌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5] 쿠바의 매춘은 워낙 악명이 자자해서 피델 카스트로가 생전에 기자회견에서 "쿠바의 어린 여성들이 매춘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돌직구 질의를 받는 일마저 있었다. 카스트로는 멋쩍어하면서 "불행하게도 우리의 어린 딸들이 그런 길에 접어들었지만 그녀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다."라는 식으로 답변을 하면서 연소자 매춘 창궐을 암묵적으로 시인했을 정도.

2015년 미 국무부 자료에는 관광객에 대한 범죄 증가가 우려된다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2017년 시점에서도 여전히 MEDIUM 등급이다.[6]

6. 스포츠

6.1. 야구

쿠바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중남미에서 야구가 처음으로 시작한 나라이기도 한데, 1864년, 네메시오 기제토가 미국 유학 도중 야구에 흥미를 느끼고 모국에 전파하기로 결심해서 야구 규칙을 쿠바에 전파했다. 또한 이해 아바나에서 쿠바 최초의 야구 경기가 열렸고 10년후인 1874년 마탄사스주에서 첫 공식 야구 경기가 개최되었다. 1년 후인 1875년에 아바나에 쿠바 최초의 야구팀이 창설되었고 1878년에는 3개의 프로팀이 참가하는 중남미 첫 프로야구리그이자 1876년에 메이저리그가 문을 연 미국에 이어 세계 2번째 프로야구리그가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이 해 야구 붐이 일어 쿠바 내 프로팀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1890년에는 무려 75개에 달했다고. 물론 이 프로리그는 쿠바 혁명 이후로는 실업리그로 전환했다. 그러나 실업리그 답게 선수들의 봉급수준은 많아봐야 월 백 수십달러 수준으로 그리 높지 않기에[7] 주전급 선수의 경우에는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미국 야구계에 진출하려면 쿠바 국적을 포기해야 하므로 쿠바인으로 태어난 이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당연히 미국에 가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를 전전한다면 쿠바에서와의 삶과 크게 다를 것도 없기는 하지만.[8]

현재는 미국 망명을 포기하고 그 대신 쿠바인 국적으로 합법적으로 해외진출이 가능한 일본이나 멕시코로 가는 선수들도 꽤 있다. 이 나라들은 미국과 달리 일단 쿠바와 적대관계는 아니기 때문에 가능. 대표적인 선수로 알프레도 데스파이네리반 모이넬로, 로엘 산토스, 프레데릭 세페다 등이 있다.

여하튼 이런 역사와 인프라 덕에 올림픽, 야구 월드컵등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냈고, 이런 모습들 때문에 아마야구의 본좌[9]로 불린다. 하지만 아마추어 야구 시절과 달리 2010년대 들어서 국제 대회에서 몰락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다. 자세한 것은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한편 이 나라 출신인 투수 유네스키 마야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한 적 있고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적 있다.[10] 최근에는 2018년 LG 트윈스아도니스 가르시아가 활약했지만 부상으로 먹튀짓만 하고 돌아갔다.
2012년부터 쿠바의 10-20대 층에서 야구 인기가 급감하고 축구인기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어 쿠바 야구의 위기라는 기사가 뉴욕타임즈에 보도되었고 월스트리트저널이 3년 후에 거듭 같은 내용을 보도한 걸 보니 야구 인기의 급감세가 상당히 뚜렷해보인다. 몇년 전 국내 야구기자인 박동희 기자, 정구현 기자도 쿠바를 취재하여 현지인들에게도 이런 반응이 많고 야구를 즐기는 아이들보다 축구를 즐기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고 칼럼을 썼을 정도이다. 당시 취재시 인터뷰를 한 쿠바 야구인은 위에 사례대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는 가장 큰 이유가 야구 스타들이 매년 미국으로 망명하다보니 생긴 부작용 때문이며 경제난으로 인해 많은 유지비가 필요한 야구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고 언급했다.

2018년 12월에 쿠바 당국과 메이저리그가 협정을 맺음에 따라 쿠바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합법적으로 진출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쿠바 선수들 입장에서 미국에 가려고 목숨까지 걸면서 배를 타거나 멕시코, 베네수엘라,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같은 제3국에 가서 망명 신청하려고 비행기 탈 돈을 꼬박꼬박 모을 필요가 없어질 것이고, 쿠바 야구협회 입장에서도 거액의 이적료로 운영비나 경기장 보수비용을 충당할 수 있게 되어 이번 협정을 쿠바 야구 부활의 신호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19년 4월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뒤집고 무효를 선언했다. 한동안은 계속 메이저리그를 가려면 망명해야 하는 상황.

그래도 아직은 야구를 많이 즐기긴 한다. 쿠바를 여행한 국내 여행자가 쓴 책을 봐도 실업리그라 경제적 대우가 어렵긴 해도 현지 야구리그를 보러가니 여전히 사람은 많았다고 썼다. 뭐 이런 책자에서도 현지인과 친해지면 야구경기장에 아이들이 없어 미래에 어찌될지 모르겠다는 야구팬들의 걱정이 나오긴 하지만.

한국 돈 천 원 정도면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는 듯하다

6.2. 배구

배구도 남녀 모두 수준급이었으나, 현재는 많이 망가진 상태이다. 특히 여자배구는 90년대는 쿠바를 따라 올 자가 아무도 없을 정도로 세계 최강이었다. 소련(현재의 러시아) 이나 중국, 브라질 등 기타 강국들은 쿠바의 기세에 눌려서 기도 못 폈다. 쿠바 여자배구는 올림픽 3연패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애틀란타, 2000시드니 올림픽)가지고 있다. 또한 FIVB 배구월드컵 4연패(1989, 1991, 1995, 1999)라는 대기록도 가지고 있고, FIVB 세계선수권에서도 3번의 챔피언 타이틀이 있다. 그야말로 90년 쿠바 여자배구는 전성기였었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올림픽 동메달을 기점으로 많이 내려앉아 현재는 여자배구 최약체로 분류된다.[11] 지금은 올림픽 본선에조차 못 오르는 형편이다.

남자배구 또한 여자배구만큼은 아니지만 세계적 강호이다. 쿠바 여자배구가 급격히 세계 배구계 정점에서 추락한 것과는 달리 꾸준히 세계 상위 클래스에 있었고, 최근 2010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올림픽 금메달도 없을 뿐더러 여자배구와는 달리 남자배구계에서는 완전한 강호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2016년 FIVB 월드리그대회에서 쿠바 남자배구 국가대표선수들이 단체로 핀란드에서 성폭행 사건에 연루돼 선수 12명 중 3명이 체포되고, 나중에 5명이 추가로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12] 더군다나 해당 선수들 중에서는 2016-2017시즌 국내팀과 계약한 선수까지 포함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제배구연맹의 중징계가 불가피한 가운데, 어수선한 팀 분위기로 당장의 월드리그 경기 문제가 아니라 한달 여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 참가조차도 박탈될 우려가 있는등 불투명해지면서 쿠바 배구에 한층 더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한국 V-리그에서도 레오나르도 레이바, 오레올 까메호,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 등 쿠바 출신 용병들이 많이 뛰기도 했다.

6.3. 축구

중남미에서 최고의 스포츠 강국이라지만, 대신 중남미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축구가 부진한 편이다. 쿠바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고할 것. 그래도 1938년 3회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루마니아를 3:3, 2:1로 이기고 2차 토너먼트인 8강까지 올라가서 1930년 1회 우루과이 월드컵 대회 4강을 거둔 미국에 이어 북중미 나라로서 2번째 월드컵 1승을 거두고 2차전까지 올라간 팀이다. 비록 8강전에서 우승후보급인 스웨덴에게 0:8로 털렸고 이후로 80년 가까이 월드컵 본선에 못 오르고 있지만.(중미 나라로 다시 1승을 거둔 건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코스타리카가 52년만에 거두게 된다.)

이후 쿠바 축구는 한국에서는 소식이 없다가 2002년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골드컵에서 쿠바와 맞붙어 0:0으로 비기는 통에 당시 히딩크호가 많은 욕을 먹기도 했다. 히딩크호는 미국에게 1-2로 패하며 1무 1패 1득점 2실점으로 쿠바와 동률이 되었으나 골득실차로 1무 1패 0득점 1실점인 쿠바를 겨우 제치고 8강 토너먼트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당시, 조중연 축구기술협회 전무는 약체 쿠바와 무승부도 고민할 사항이라며 언론 인터뷰로 이런 부진이 계속되면 히딩크 유임 여부가 걸릴 수 밖에 없다는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 그나마 8강전에서 4년전 멕시코를 승부차기로 이기고 4강까지 올라서 히딩크 감독은 그대로 유임되었지만. 이럴 정도로 당시에는 쿠바는 야구라면 모를까 축구는 별 볼일 없다라는 인식이 많았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쿠바에서 일을 했을 적에 체 게바라도 쿠바에서 럭비와 축구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어머니에게 하소연할 정도였다고 하며 가끔씩 축구를 하기는 했지만 당시 쿠바 내에서의 축구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만 야구광으로 알려진 피델 카스트로가 체 게바라의 영향 덕택인지 70년대 초부터 축구도 같이 즐겨봤다고 하며 후에 마라도나와 친하게 지내면서 축구에 속성 과외(?)를 받기도 했고 2014년 월드컵때 마라도나를 칭찬하는 김에 메시가 훌륭한 선수라는 찬양글을 남겼다.

6.4. 그밖에

올림픽 스포츠 강국으로,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67개를 땄다.참조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의 스포츠 강국으로 통하며,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어권 국가 중에서는 역대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나라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아시안게임 격인 팬아메리칸 게임에서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메달을 땄다.

쿠바가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무렵이다. 다른 소련이나 동유럽 국가처럼 공산권 특유의 스포츠 육성 정책을 실시한 것이 결실을 본 것이다. 이러니 쿠바 스포츠 자체가 트레이닝법도 나라 경제 수준에 비해 의외로 선진화되어있고 환경도 좋은 편이다. 그리고 아직도 사회주의를 유지하고 있으니 쿠바의 선수들은 전업으로 뛰는 프로선수라도 공식적으로는 전원 아마추어(특히 복싱)라는 점이 국제대회에서 더욱 유리하게 작용한다. 야구나 권투나 다른 나라들은 자국의 리그나 프로 라이센스 관계로 대표팀에 나오는 선수들은 최강의 전력이라고 하기엔 모자라지만, 쿠바만큼은 제약 없이 내보낼 수 있다. 그렇지만 쿠바의 예산상(...) 문제로 선수들에게 봉급을 많이 주지는 못해서, 외국리그에서의 성공으로 돈을 벌기 위해 목숨 걸고 외국으로 튀는 선수들도 많다.[13]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 공식사이트에서 남자부 랭킹을 보면 10체급에서 1위 4명이 쿠바 선수다. 쿠바가 1위 선수가 가장 많다. https://www.aiba.org/rankings-2/

다행히 미국과의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이런 위험을 무릅쓸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다만 경제 제제는 여전히 유효해서 완전히 자유화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인다.#

2013년 9월, 쿠바 정부는 드디어 자국 스포츠 선수의 프로진출을 허용하는 정책을 공표했다.[14] 이로써 쿠바의 우수한 야구·배구선수 자원이 세계 야구리그와 배구리그 곳곳에 전파되어 야구·배구 수준에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쿠바는 미국과는 아직도 껄끄러운 관계라 대다수의 선수들이 미국보다는 아시아권인 한국, 중국, 일본 등지로 많이 진출하길 원하고 있는 듯 하다. 특히 한국프로배구는 사전에 쿠바 배구 선수들을 접촉하여 중국, 일본에 뒤쳐졌었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쿠바 출신 선수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2012-13 시즌에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15], 쿠바 국가대표 출신인 카메호 오레올 드루티(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등이 처음으로 V-리그에 진출했고, 이 중 레오는 대한민국 무대에 적응하면서 V-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군림했다. 2013-14 시즌에는 역시 쿠바 국가대표팀 출신인 마이클 산체스 보줄레프(등록명 산체스,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가 레오와 함께 V-리그에서 뛰고 있으며 2014-15 시즌에는 쿠바 국가대표팀의 간판 센터인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서 뛰고 있다.

또한 2014년에는 일본프로야구요미우리 자이언츠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베이징 올림픽 야구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뛴 프레드릭 세페다와 율리에스키 구리엘과 계약했다고 한다. 일부 팬들은 우리나라는 알아보지 않았냐는 소리를 했지만 사실 위의 배구에서도 봤듯이 몇몇 구단이 조사는 했었다고 한다. 특히 삼성 라이온즈는 직접 사람을 보내기도. 물론 장점만 있다고 할 순 없다. 이 점들은 박동희칼럼을 참조.

육상 높이뛰기의 하비에르 소토마요르는 2m 45cm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열대지방 국가로 동계 스포츠 인프라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동계 올림픽에는 참가조차 한 적이 없다. 쿠바는 동계 올림픽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나라 중에서는 하계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나라이기도 하다.

7. 정치

체 게바라피델 카스트로의 콤비가 군사혁명을 완성시킨 뒤, 민족주의공산주의가 조화된 국가로 갈 했지만, 미국의 등쌀에 소련을 택하는 바람에 그냥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버렸다.

여타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회인 전국인민권력회의 대의원들을 국민들의 투표로 선출하며 전국인민권력회의 대의원들이 행정부인 국가평의회 각료들을 선출한다. 물론 해당 의석은 쿠바 공산당 당원들이 장악하고 있다는건 당연한 사실이고(...)

사실 197-80년대에는 그럭저럭 굴러간 편이기는 했지만 소련이 망한 후에 경제 사정이 어려워졌다. 현재는 90년대 초반에 비하면 어느 정도 괜찮아진 편이지만 이 당시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월급 수준이 낮은 데다가 물자가 상당히 부족하고 제때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편이다.

2011년 4월 19일, 쿠바 공산당 제6차 당대회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공산당 제1서기직도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물려주면서 마침내 모든 공식 직책에서 은퇴, 사인(私人)으로 돌아갔다. 1959년 집권한 이래 무려 52년 만. 그의 집권 기간 동안 미국에선 대통령이 무려 10명이 바뀌었다. 공식 직책에서는 모두 물러났지만, 피델 카스트로의 영향력, 현 쿠바의 1인자가 그의 동생이라는 점을 볼 때 국가 최고 원로로서 가장 권위 있는 조언자의 역할을 할 것으로 추측된다. 형의 자리를 물려받은 라울은 300여 개의 경제개혁안을 통과시켜 쿠바 체제의 일신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 10월 쿠바인의 해외여행 제한 완화를 결정해 의사를 포함한 고급 기술자의 정부허가 없는 국외 여행도 자유화시켰다. 그동안은 이런 고급 기술자는 해외 망명과 두뇌 유출 등을 우려해 여행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

일단 생각보다는 자유가 존재하는 나라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전형인 북한마냥 사상의 자유가 완전히 통제된 막장국가는 아니며, 루마니아를 제외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최소한 우리는 북한처럼 1인 우상숭배는 하지 않는다"면서 비웃을 정도로 북한은 괴이한 존재였다. 일단은 대놓고 기자 앞에서 나라 욕을 해도 안 잡아가는 것도 윗 동네에 비교해 본다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뭐 이미 쿠바에 자본주의 음악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힙합 음악가들도 있고, 쿠바의 펑크 록밴드들의 존재가 확인되어서 서방 국가에 충공깽을 선사한 바 있다. #

물론 국가 그 자체와 공산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실제로 했다간 잡혀갈 각오를 해야 하는 일당제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이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성조기 비키니를 입은 처자를 해안에서 발견할 수도 있고, 서구 문물의 자유로운 수입은 보장되지 않지만 그래도 국영 TV 방송사에서 디스커버리 다큐멘터리나 텔레노벨라, 유럽 애니메이션, 한국 드라마 등 다른 국가의 TV 프로그램들을 많이 수입해서 방영하고 있으며, 외국 음반도 대부분은 불법이기는 하지만 암시장에 나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또한 가정집으로 외부의 영상물이나 게임 등을 복사한 다음에 일정액의 돈을 받고 각 가정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상상이상으로 잘 발달되어있으며 지하 인터넷망을 통해서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 각종 스포츠 경기, 뮤직비디오, 심지어 비디오 게임까지도 다운받아서 복제한다. 이를 빠케테라고 하는데 쿠바법상으로든 쿠바 외의 저작권법상으로든 합법은 아니지만 빠케테 운영자들이 쿠바 체제에 위협적으로 보일 시사-뉴스프로그램이나 영화, 선정적인 포르노물은 중간에서 적절하게 검열하는 노력을 하기에, 당국에서도 특별한 단속은 하지 않는다. 가격도 1시간 인터넷 사용하는 비용과 비슷한 수준으로 싼 편이라 정부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먹고사는 수준의 집안이 아니라면 많이 애용한다. 정보에 대한 통제도 이루어지고 있다지만 어차피 중남미에서 자주 교류하는 국가들도 선거로 정권을 창출하는 나라이고 국영 TV나 국영 매체를 통해서 중남미 국가에서 벌어지는 선거에 대한 보도는 하기에 사실 알건 다 알기는 하다. 외국인 관광객들 가운데서도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통제는 유명무실한 상황, 거의 70~80년대에 남대문 시장에서 수입품 사던 것, 세운상가에서 빨간 거 사던 것을 생각해보면 되는 수준이라 한다.[16]

사회 시스템은 사실 성공적인 국유화 정책 덕분에 의외로 공공재가 어느 정도는 돌아가는 편이다. 일단 시스템상으로는 그렇다. 일단 교육제도는 무상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문화 전반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서인도제도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90년대 경제난의 후유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그 수준은 보장하지 못한다.

정치 시스템은 일당제 인민민주주의(프롤레타리아 독재)이긴 하지만 중국처럼 정치 없는 관료제의 특성이 크다. 그리고 중국보다 관료제의 폐해가 덜하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제 우리도 슬슬 다당제 할 때 되지 않았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제일 잘 되어 있는 것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실시된 지방자치제로서, 당과 사상에 관계 없이 지역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선출하는 선거로 유명하다. 물론 국회의원, 최고지도자(정확히는 혁명평의회 의장) 선거는 결과적으로 100% 공산당이 싹쓸이하고 있다.[17]

르몽드 디플로마티크[18]의 편집인이자 유엔 자문의원인 이냐시오 라모네가 피델 카스트로와의 인터뷰를 출간하며 덧붙인 서문을 읽으면 쿠바의 정치 현실에 대한 대략적인 감이 올 것이다. 물론 걸러 들을 부분은 알아서 걸러 듣자.
계속되는 외부의 침략에 대항해, 카스트로 체제는 국내에서 필사적인 단합을 권장했다. 그래서 일당체제의 원칙을 유지했다. "포위된 성채에서 모든 이견은 배반이다."라고 외친 성인 로욜라 이냐시오(Loyola Ignacio)의 낡은 신조를 자기 방식으로 적용하면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엄한 제재를 가했다. 그래서 국제사면위원회의 연간 보고서는 자유분야(표현의 자유, 의견의 자유, 정치적 자유)에서 쿠바 당국의 행위를 비난하고, "쿠바에는 의견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수십 명이 수감됐다."라고 보고했다.

어떤 이유든간에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오늘날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이 선진국에서 철폐한 사형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어떤 민주주의자도 견해 차이로 구속된 사람들이 있으며, 최고형인 사형제도를 아직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상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사면위원회의 이런 비판적 보고서는 쿠바에서 육체적 고문이나 정치범의 실종, 정치적 암살이나 공권력으로 진압된 시위가 있다고 지적하지는 않았다. 또한 쿠바 체제에 반대한 그 어떤 민중 봉기도 언급하지 않았다. 혁명이 일어난 후 46년이 지났지만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면 '민주적'이라고 여겨지는 인근 국가들-이를테면 콜롬비아의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과테말라, 온두라스,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심지어 멕시코까지도-의 노동조합 지도자들, 반체제인사들, 기자들, 신부들, 시장들, 시민단체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살해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일로 처벌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일상 범죄는 국제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외에도 앞서 언급한 국가들이나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수천만 명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놀라운 사망률, 문맹률, 무주택자, 실직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거지들, 거리의 아이들, 빈민가, 범죄율, 온갖 종류의 범죄... 쿠바에서는 이런 것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쿠바에서는 특정 개인을 공식적으로 숭배하지는 않는다. 비록 피델의 모습은 언론과 방송,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공식적인 초상화나 동상은 없으며 동전도 없다. 피델 카스트로를 기념하는 거리나 건물 혹은 기념탑도 없다. 아직 살아 있는 혁명의 지도자들에게 헌정된 것도 없다.

외부의 압박 속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지만, 주권을 고집하는 이 조그만 섬나라는 인종주의 철폐, 여성해방, 문맹 추방, 유아 사망률의 급격한 감소, 일반적인 문화 수준의 향상 등 인간 차원의 진보에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과를 얻었다. 교육과 건강, 의료와 스포츠 연구 분야에서 쿠바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국가 그룹에 속할 정도이다.

외교 분야에서 쿠바는 가장 능동적이고 활발한 국가 중 하나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카스트로 체제는 중앙아메리카의 나라들(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과 남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의 게릴라들을 지원했다. 또한 쿠바 군대는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큰 규모의 전쟁, 특히 에티오피아와 앙골라 전쟁에 참가했다. 쿠바는 앙골라 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엘리트 사단을 격퇴했다. 이로써 남아프리카 인종차별 체제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쿠바 혁명 이후 미국과 외교 관계를 공식적으로 끊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교류를 위해 아바나와 워싱턴 D.C에 상대의 이익대표부를 두고 있었다. 아바나 주재 미국대표부 청사의 경우 쿠바 정부에서 묘한 꼼수(?)를 썼다고. 청사 건물을 형편없는 것으로 만들어 줬다거나 대표부 직원들의 활동을 방해하는 등의 짓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미국대표부 건물 주위에 미국 CIA에게 암살당한 쿠바 인사들의 사진을 걸어 놨다고.

지난 2013년 2월 24일,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이 아바나에서 열린 제8기 국회(정식명칭은 인민권력국회) 1일차 회의에서 TV로 전국에 중계된 연설을 통해 이번 임기가 끝나는 2018년 2월 24일에 퇴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피델 카스트로와 혁명 동지인 호세 라몬 마차도 평의회 수석부의장, 라미로 발데스 부의장 등이 배석한 자리에서의 은퇴 공약인 만큼 형 피델과 다른 원로들과의 정치적 합의도 이미 끝난 것으로 판단되며, 동시에 차기 지도자로 라울 카스트로 본인보다 거의 30살이나 어린 미겔 디아스카넬 전 교육부장관을 지명했다. 이로써 공전의 3대 세습을 이뤄낸 북한과 달리 쿠바는 카스트로 형제의 60년에 걸친 치세가 끝남과 동시에 권력 이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공언한 셈이다.[19]

이 공약에 대해 일단 외국의 반응은 호의적인 편. 다만 피델 카스트로 의장이 퇴임한 뒤에도 형처럼 어느 정도 '섭정'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며, 라울 카스트로 의장 자신도 "개혁은 계속하겠지만 나는 자본주의 발전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발전을 위해 의장이 된 것."이라고 선을 그은 만큼 카스트로 형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쿠바의 개혁은 체제 유지를 위한 선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단 2014년 12월 17일 미국과 국교를 재개함에 따라 큰 변화는 예고되고 있으며, 과연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대목.

2013년 12월 10일, 고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추모식에서 만난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악수를 나눈 것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물론, 주로 미국에서.

2014년 들어 2014년 크림 위기로 러시아와 유럽-미국의 동서 갈등이 고조되자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4월 28~29일 러시아 외무장관이 쿠바를 방문해 크림 문제와 관련된 협의를 했다는데, 러시아가 쿠바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쿠바는 그 대가로 러시아의 행동을 지지해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7월 1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년 만에 쿠바에 방문해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만나고 양국의 산업, 에너지,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정을 맺고 쿠바가 소련에 진 부채 352억 달러의 90%를 탕감해주었다.# 특히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에 맞서 러시아와 쿠바는 2001년 폐쇄된 아바나의 루르데스 감청기지를 재가동하기로 합의했다.관련기사

2015년 7월 1일, 마침내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다. 그 이후 2016년 3월 11일, EU와 쿠바는 관계정상화를 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12월에 정치적 대화·협력 협정에 서명함에 따라 완전히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2018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데, 새 헌법에 공산주의 문구 삭제, 동성결혼 허용, 임기제 실시 등이 나왔으며, 국민투표를 통해 개정될 예정이다. 국민투표 날짜는 2019년 2월 24일에 치뤄진다. 통과 시에는 2019년 8월 13일에 발효되며, 이 날은 피델 카스트로의 생일이다.

최종 개헌안은 공산당 일당 체재 유지를 하면서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체질로 변화할 예정이며,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 첫 인정, 외국인 투자의 중요성과 인터넷의 역할 인정, 중임(총 10년)만 허용하는 국가평의회 의장(대통령)의 임기 제한 및 연령 제한(60세 이하로 첫 임기 시작), 권력 분산과 정부 운영 감독을 위한 총리직 부활, 전국인민권력회를 모델로 한 지방인민회 폐지 등 지방 정부 개편, 성 정체성에 기반을 둔 차별금지 원칙 명문화, 무죄 추정 원칙 도입, 결혼은 남녀 간 결합 문구 삭제 등이 담겨있다.

최종적으로 투표율 84%, 찬성 90%로 개헌안이 통과되었다.결과, #

2019년 10월 10일부로 새 헌법 발효에 따라 국가평의회 의원이 종전 31명에서 21명으로 줄어들면서 쿠바혁명 당시 사령관이던 라미로 발데스와 기예르모 가르시아 프리아스는 평의회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로써 쿠바혁명 세대들은 막 내리게 된다.

8. 경제

쿠바/경제 참조.

9. 사회

9.1. 의료

1959년 혁명 전 쿠바의 의료 및 체계는 매우 열악했다. 사실상 복지 대책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1959년 쿠바 혁명 후 집권한 쿠바 공산당은 적극적인 개혁 정책을 펼쳐 쿠바의 의료복지를 상당한 수준으로 올려놓기는 했지만, 1990년대 소련 붕괴의 영향으로 쿠바의 경제가 한 동안 어려움에 처하면서 의약품이 부족해지고 인재들도 외국에서 봉사활동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을 선호하는 데다가 쿠바가 2010년대 중반 이래로 저성장에 시달리고 있다보니 예산을 획기적으로 올리기 어려워서 애로사항이 많다. 사실 아래의 나와있는 문제점의 근본적인 원인은 예산과 제재 문제로 제재가 걸려있다보니 최신 의료기구이나 상당수 의약품을 들여놓기 어려운 면이 있는 데다가 의료예산은 쿠바 경제규모에 비하면 많이 배정이 되어있지만 그 돈 가지고 병원시설을 전면적으로 개선하거나 해야 해서 돈이 많이 들다보니까 그런것이다.

쿠바 의료의 수준 자체는 높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인구 대비 많은 의사수와 국가 주도적 보건사업을 통한 보건 교육의 승리로 중남미에서는 가장 평균수명이 높고(79세) 영아사망률은 미국보다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미국내에서도 영아사망률에 대한 논란은 많지만 확실한 것은 다른 중남미 국가들을 압도하는 것은 맞다. 분명히 경제수준을 감안하면 의료시스템 자체가 훌륭해보이지만 사실 정확하게는 보건사업의 승리라고 보는게 맞다. 물론 이건 타 중남미 국가들의 사정이 미국의 시스템보다 형편이 떨어지는데 거기에 소득도 미국인들의 1/10이하인 나라가 수두록해서 의료비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몇십배는 더 심각한것도 생각해봐야한다. 캐나다와 미국을 제외한[20] 멕시코 같은 나라에서도 문제는 있다. 물론 캐나다와 미국도 완전히 제외될 수는 없지만 멕시코에선 부자들이 다니는 병원은 의료수준이 매우 높지만, 돈이 없는 일반인들이 다니는 병원은 예산문제때문에 질이 굉장히 떨어지는데 쿠바는 그나마 의료인력이라도 넘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까 중남미에서는 그나마 쿠바가 가장 나은 축이기라도 한다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를 바탕으로 쿠바의료가 매우 뛰어나고 이상향 같이 받아들여져서는 절대 안된다는 점이다. 쿠바는 주요 병원들 가운데에서도 수술장을 가동시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료 자원 및 시설의 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진다. 애초에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평균수명 및 영아사망률의 차이는 감염병과 개인위생의 개선만으로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음이 수없이 증명된 바 있다. 쿠바는 다른 모든 것이 개발도상국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위생에 대한 관념과 보건교육, 예방사업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저러한 지표들에서 상당한 개선을 보이는 것이다. 중병에 걸리면 다른 중남미 국가들은 돈이라도 많이 주면 기회라도 얻지만 쿠바에서는 그런거 없다.

국내에서는 무상치료만이 부각되고 있으나, 쿠바의 인구대비 의사의 수는 165명당 1명으로 세계 최다를 자랑하며 패밀리 닥터제에 의한 기초 건강 보장(Primary Health Care)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쿠바의 경제에 비한다면 의료체계는 인적자원의 양적인 면에 있어선 선진국 이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엄청난 막장 생활을 계속하는 바람에[21] 버티다 못한 몸이 결국에 말썽을 일으켜서 삼도천에서 한쪽발 담그고 있을 때, 그를 다시 지상세계로 끌어다 올린 것도 쿠바의 의료진이었다.

무상의료라고 해도 엉망으로 진료하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1차의료에 한정된 얘기일 뿐이고 90년대 소련이 붕괴하여 지원자체가 끊어진 이후로 한동안 의약품이 크게 부족하기도 했으며, 계속된 경제난으로 인하여 유능한 의료자원들의 해외로 가서 일하고 있기도 하고, 거기에 더해서 아예 쿠바 국적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전반적인 인프라는 개발도상국 수준이며, 대다수 의약품을 일단 자급자족하고 수출까지 하기도 하지만 상당수 약품의 경우에는 재료의 완전 자급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원재료를 수입해야 하는데 미국의 경제재제 때문에 제3국에서 수입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기 때문에 90년대에 비해 나아지기는 했지만 의약품이 굉장히 부족하다. 특히 의사는 많지만 오래 숙련된 의사는 드물고 병상 부족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패밀리 닥터제와 한의학 체계를 적극 도입한 것도 약품과 병상 부족을 메꾸기 위한 차선책이다. 병아리 의사라도 의사는 의사로 기본적인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을 뿐더러 1차 의료에 집중하여 환자를 돌보지 않으면 2차 의료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집중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가 되었을 때는 가급적 병원에 들르지 않는 것을 한 교민은 추천했다.

실제로도 간단한 질병들만 앓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지만 중한 질병을 스크리닝할려고 하거나 혹은 어느정도 입원해서 치료받아야하는 경우, 쿠바의 의료시스템은 지옥에 가깝다. 대기시간도 길 뿐더러 숙련된 의사들도 적어 제대로 된 처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런 연유로 생각보다 쿠바에도 암거래 의료시장이 형성되어있는데 X-ray 한장을 찍고 빠르게 판독받기 위해서는 무려 한장에 6~7만원을 지불해야한다.[22]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식코에서 쿠바와 비교하여 미국 의료보험체계를 깠으나 사실 쿠바의 의료 체계는 한국에 알려진 만큼 '이상향'만은 결코 아니다.참조. 요약: 귀에 이물질이 들어가서 병원에 갔는데, 처음 간 병원에서는 그냥 집가서 귀에 식용유 부으라는(...) 처방을 해줬고, 두번째 간 병원에선 의사보는데 2시간 넘게 기다렸다. 그것도 외국인이! 쿠바같은 공산주의 국가는 특성상 자국인보다 외국인에게 더 공공서비스를 충실하게 제공하는데, 외국인이 이 정도면 자국인에 대한 의료 서비스 역시 질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통계상에 나오는 수치에 비해서 결코 이상향이라 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상당히 열악한 편이라고 보는게 맞다. 애초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경우, 개인 위생 관념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왔고 제때 제때 위험지역에 가면 예방접종을 맞아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만 알아도 당신은 이미 전세계인중에서 보건지식에 관하여 상위 10%에 해당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쿠바인들은 국가는 국민들의 의료혜택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보다 외국의 돈 많은 손님들을 치료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는거 같다고 냉소하기도 한다. 사실 이는 경제재제를 받는 상황에서 의료의 질까지 충족하기에는 쿠바 정부의 예산이 빠득하기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지만. 말하자면 모두가 평등하게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이 쿠바의 현실이다. "평등"이란 단어에 천착하는 사람이라면 이상향으로 꼽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콩 한 쪽을 100토막 내서 다 같이 나눠 먹는 수준의 무의미한 평등일 뿐이고...[23] 이럼에도 큰 불만이 나오지 않는 것은 주변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는' 낫다는 점이 크다.

더불어 베네수엘라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고 그 대신 의료진이 베네수엘라로 가서 의료봉사를 하기도 한다. 좌익 성향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피델 카스트로가 서로 협력하여 이루어진 성과이다.다만 2015년 유가폭락 이후로는 베네수엘라가 재정적인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에 현재는 브라질 등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쿠바의 주요 외화벌이가 해외에 거주한 의사들의 송금이라고 한다. 2015년 기준 8만5000명의 쿠바 의사 중 2만 5000명이 해외 50개국에서 일하고 있고 한해 100억 달러(11조 5800억 원)을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쿠바와 단교를 주장하는 극우 정치가라 브라질에서 근무하고 있던 의사 대부분을 철수시켰지만[24] 멕시코에서 오브라도르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앞으로 의료수익 창출에는 큰 차질이 없을 전망이다. 참고로 쿠바 의사들 입장에서 국내에서 일하는것보다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가는 것을 훨씬 선호하는데 해외에서 일하면 쿠바에서 버는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기 때문에 꼬박꼬박 저축하기만 한다면 쿠바로 귀국한 뒤에는 나름대로 부유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쿠바에서 의사가 그리 큰 돈을 벌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쿠바 국내에서 일하는 의사들을 말하고, 의사들 가운데서도 부유한 사람은 많은데 이 경우에는 대다수가 해외로 가서 돈 좀 벌다온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의대진학률은 생각 외로 높다고 한다.

단순히 부유하게 먹고사는것에만 만족하지 않을 경우에는 해외로 탈주하는 경우도 꽤나 빈번히 발생하곤 하기때문에 의사들의 해외 여행을 제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 자유화 조치 가운데 하나로 의사들의 해외 여행 규제 조치를 철회하였다. 하지만 3년 만에 의사들이 다시 해외로 대거 이주함에 따라 '해외 여행 허가제'를 부활시켰다.

사실 쿠바의 의료 인력 수출은 의사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국가에서 저렴한 비용에 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꼼수에나 이용될 수 있을 뿐 정상적인 의료 체계를 갖춘 나라에서 통할 수준은 아니다. 또한 쿠바에서 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대단한 성과가 나오지도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의료수준 자체는 괜찮지 않아도 일단 시스템 자체는 잘 갖추어져있기 때문에 의약품과 인프라 부족 문제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지표로 본다면 양호한 수준이며, 미국을 제외한 주변국과 비교해서도 나은 수준이다.

애초에 기초 학문 자체가 약하니 토양이 없는 상태라고 해도 무방할 듯. 대한민국의 경우는 기초 학문은 약하지만 임상 의사들의 수준이 비교적 높은 편이기 때문에 임상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많이 거두고 있다.

수도 아바나에 있는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이 유명한데, 모든 교육 비용이 공짜이다. 대신 학교를 졸업한 후 수년간 의료 봉사를 의무적으로 행해야 한다고. 외국인 또한 다닐 수 있고 미국인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것은 단순히 선의 때문만은 아니고 경제·정치적인 이유도 있다. 제3세계로 의료 봉사를 보내면서 해당 국가로부터 일정 부분의 외화를 받아내거나 혹은 국제 정치적으로 이들 국가로부터 지지를 받아내며 정치적으로도 이득을 취함으로써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는 것. 이를 쿠바의 의료 외교 활동이라고 부르는 사람조차 있다.실제로 이런 의료 서비스를 통해 얻어들이는 소득은 2006년의 경우 총 수출의 30% 가까운 금액으로 쿠바 경제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진 않은 부분이지만,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원정 부터 시작하여 나미비아 독립 전쟁, 로디지아 전쟁에 직접 파병 하는 등 쿠바는 혁명 이후 예전 부터 나름 좌파 국제주의의 원칙에 충실했다. 미국이란 거대한 엉덩이가 눈 앞에 깔려 있다 보니 저런 먼 곳들이라도 친구들을 잘 사귀어 놔야 UN 같은 국제 무대에서 그나마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18년부터 중남미 우파 정권들이 들어섬에 따라 쿠바 의료진들이 철수하고 있다.#

9.2. 교육

한편 쿠바는 인종차별을 뿌리뽑기 위해 오랫동안 공들여서 교육 개혁을 실시해 왔다. 초등 무상교육은 그 이전부터 시행되어왔지만 극심한 빈부격차때문에 빈곤층 아이들이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아 실질문맹률이 상당했고, 특히 농촌지역의 문맹률은 40%대에 달했으며,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부유층이나 일부 공부잘하는 학생들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1950년대 쿠바의 문맹률은 20%대를 기록했기 때문에 교육수준이 타 라틴아메리카 국가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축이라고 볼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교육 자체의 불평등이 매우 심각했던것.

쿠바 혁명 직후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맹퇴치에 공을 많이 들였으며 이후로는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에도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고, 성인문맹을 퇴치하기 위해서도 적지 않은 예산을 부여했다. 이렇게 교육에 대해 신경을 쓴데다가 경제가 어렵던 1990년대에도 교육에 대해서 기본적인 투자는 유지하면서 무상교육 제도는 끝끝내 지켜왔기 때문에, 문맹률은 아메리카 국가 가운데 최저 수준으로 0.2%를 기록하고 있으며 대학진학률도 70%~80%대에 달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교육수준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즉, 교육여건 하나는 타 중남미 국가들에 비해서 독보적으로 좋은것이다.[25] 거기에 베네수엘라로 교사들과 교재를 대거 수출하기까지했고, 볼리비아나 니카라과,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등[26]에 교육인력을 많이 보냈으며, 많은 분야에서 인종차별이 해소되었다. 그러나 뿌리깊은 백인의 흑인 멸시는 여전하여 아직도 사회 일부분에서는 흑인이나 혼혈에 대한 백인의 차별과 경멸이 남아있다.[27] 그래도 미국의 일부 지역이나 유럽-러시아의 백인지상주의자들, 네오 나치- 들에 비하면 양반.

그렇지만 높은 교육수준에도 고학력자들이 취직할만한 질 좋은 일자리가 별로 없고 공장이나 농장에 취직하기에는 보상에 비해서 페이가 짠지라[28]인재들이 서비스업 등 일부 직종으로 몰려들어가는 문제점이 심각하며 미국이나 여타 중남미 국가들로 인재유출도 이루워지고 있다는것이 쿠바의 고민거리이다. 농촌이나 공장에서는 젊은 인력이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고학력자들이 만족할 직장이 부족하고 그나마 취직한다해도 대충대충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졸업만 하면 일단 직장이 배정되기는 하기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한국 등에서 문제되는 청년실업 문제가 없기는 하지만 평균봉급이 풍족한 소비생활을 누리기에는 부족하기때문에 자영업이나 외국인 대상 직종에 종사하거나 할 경우가 아니라면 돈을 거하게 벌려면 별 수 없이 투잡을 뛰어야 한다, 이 때문에 외국인 대상 가게에서 일하거나 연줄이 있다면 아예 가게를 차리는 것을 선호하거나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것을 선호하며 미국으로 가서 목숨걸고 쪽배타고 가기도 한다.

9.3. 치안

2015년 미국 국무부에서 발표한 쿠바의 치안 상황은 MEDIUM 등급(중간). 세계적인 수준으로 치안이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전반적인 치안이 막장을 달리는 중남미 기준으로 친다면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에콰도르, 페루와 더불어서 치안은 그런대로 좋은 국가이고, 정부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도 쿠바의 치안이 좋다는 것 자체는 인정한다. 하지만 살인이나 폭행같은 강력사건은 별로 없어도 소매치기, 절도(주로 물품 빼돌리기)[29]같은 비폭력범죄는 빈번하다고 한다. 그리고 국교 정상화를 통해 미국과 유럽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이에 따른 관광객 대상 강력사건의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쿠바는 주민통제에 주력하는 공산주의 국가 답게 경찰과 군인이 매우 많고, 거리에 깔린 제복, 사복 경찰도 많아서 과연 그 우려대로 강력사건이 증가할지는 미지수이긴 하다. 거리의 순찰 경관은 관광객이 뭘 물어보거나 도움을 청하면 친절하게 안내해주기는 하는데,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사복 경찰은 조심해야 된다. 쿠바도 현 정권에 반발하는 재야정치운동가들이 있는데[30] 이들을 돕는 외국인을 감시하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이 감시대상 근처에서 얼쩡거린다 싶으면 불심검문에 들어간다.

문제는 쿠바 경찰은 대부분 신분증을 잘 안 들고 다닌다는 것이다. 쿠바에서는 범죄자가 간 크게 경찰을 사칭하는 사건이 없고, 신분증을 분실하면 크게 문책받기 때문에 잘 안 갖고 다닌다. 그래서 관광객이 "니가 경찰인지 어케 아냐 신분증도 없는데?" 라며 검문을 거부하면 바로 제복 경찰들을 불러서 연행해간다. 게다가 쿠바 경찰서에 일단 연행되면 외부와 연락도 못하고 유치장에 갇혀서 며칠씩 살 수도 있다.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서인지 이런 외국인들한테는 가혹행위는 하지 않지만, 외부와 연락도 못하므로 갇힌 사람은 미칠 노릇이다. 그러니까 쿠바를 여행하다가 사복 입은 현지인이 " 경찰인데 여권 좀 보여주세요 " 라고 요구하면 일단 얌전하게 보여주는 게 좋다. 다른 국가(심지어 프랑스에서도)에서는 범죄자가 관광객을 대상으로 경찰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검문하는 척 여권과 금품을 훔쳐가는 일이 있지만 공권력이 막강한 쿠바에서는 자기가 경찰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은 분명히 경찰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10. 군사

11. 여행

11.1. 가는 방법

공산주의 국가라 여행금지국가인 줄 알고 있는 사람도 제법 많은데, 미수교국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쿠바에 들어가는 것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대한민국 내에서도 이미 쿠바에 대한 여행제한 조치는 1990년대에 폐지되어, 쿠바를 방문해도 별도의 신고나 허가 절차를 정부에 할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도 쿠바 정부의 허가만 받으면 쿠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 정부 허가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일반 비자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제3국의 쿠바 공관에서 비자를 받으면 된다.

현재는 위와 같은 공관에서 비자 발급같은 복잡한 과정 대신 여행자 카드(Tourist Card, 속칭 이것을 쿠바 비자라고 칭하는 경우도 많다.)를 구입하고 쿠바에서 나오는 항공권, 영어나 스페인어로 번역된 여행자 보험 증명서를 지참하면 입국할 수 있다.

이 여행자 카드는 멕시코 칸쿤 등지에서는 쉽게 구할수 있으나 그 외 국가에서 입국할 경우에서는 판매하는 곳을 찾기가 어려우므로 다소 비싸더라도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가야 하며 쿠바에서 출국할 때 제출해야 하므로 여행 기간 중 잘 보관해 두어야 한다.

미국과의 오랜 마찰 때문에 미국인을 적대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달러를 손에 쥔 관광객이라면 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망명 쿠바인까지도 환영한다! 실제로 쿠바계 미국인이 고향에서 쓰는 돈은 쿠바의 귀중한 수입원 중 하나다. 게다가 대다수 관광지에서 기초적인 영어로 어렵지 않게 소통할 수 있고,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미국인들이 많이 가고 싶어하는 관광지 중 하나다.[31] 2015년 미국 국무부에서 발표한 쿠바의 치안 상황 자료를 봐도 미국인 관광객이라는 이유로 적대적인 상황에 처할 일은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냥 미국인 관광객이기 때문에 소매치기나 좀도둑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라고 할 뿐이다.

현재 쿠바에 정기적으로 취항하고 있는 항공사들 중 주요 항공사로는 쿠바나 항공, 아에로멕시코, 인터제트, 에어 캐나다, 에어 차이나, 콘도르, 아에로플로트, 에어 프랑스, KLM, 아비앙카 항공, 버진 애틀랜틱항공 정도가 있다. 이 중 쿠바로만 여행을 가는 경우라면 보통 에어 캐나다인천 - 토론토/밴쿠버 - 아바나 혹은 에어 차이나인천 - 베이징 - 몬트리올 - 아바나 경유편[32]을 이용하게 되고, 중남미나 기타 지역을 묶어서 여행을 하게 된다면 멕시코 칸쿤에서 아바나행 왕복 비행기표를 사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인터제트나 아에로멕시코를 이용하면 멕시코시티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2017년 7월부터 아에로멕시코인천국제공항에 취항함에 따라 인천 출발 멕시코시티 경유로 아바나를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에로멕시코 인천 출발편 탑승기 칸쿤-아바나 왕복은 시즌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돈으로 비수기시 30만원 내외 성수기시 50만원 내외 수준.

비행기 표 살 때 비자와 비슷한 개념인 투어리스트 카드($25)를 사야 한다. 에어 캐나다 이용시 투어리스트 카드를 쿠바행 기내에서 나누어주어 별도 구매할필요없으며, 출국시에도 의외로 쿠바에서 캐나다로 가는 에어캐나다 이용시 공항세 25CUC가 면제된다.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우선 생각보다 말끔한 공항 시설에 한번 놀라게 되고, 공항에서 아바나 시내로 들어가는 교통수단이 택시밖에 없다는 점에 다시 놀라게 된다. 시내로 들어가는 비용은 흥정하기 나름이지만 대략 25 ~ 30 CUC. 단, 야리코미 플레이의 일종으로 공항에서 3km 정도를 걸어가면 버스를 타고 아바나 시내까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버스를 타면 가격은 0.2MN. 시도해 볼 생각이 있다면 도전해 보길. 단, 버스의 혼잡도는 한국의 출근길 버스는 장난으로 여겨질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므로[33] 짐이 많다면 얌전히 택시 타자.

영국 런던개트윅 공항에서도 다른 나라를 경유하지 않고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으로 한 번에 가는 직항 노선이 있는데, 버진 애틀랜틱항공에서 운항 중이다. 즉 영국인들은 캐나다나 멕시코나 스페인을 거치지 않고 바로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쿠바를 오갈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인이 쿠바를 갈 경우 멕시코는 쿠바보다 더 서쪽이라 아바나와 완전 반대쪽이 되고, 멕시코를 거쳤다가 쿠바를 가면 더 멀리 갔다가 되돌아가는 꼴이 된다.

2015년 12월 28일에는 중국국제항공베이징 - 몬트리올 - 아바나 노선을 취항했다. 인천/김포 환승(인천 선택시는 스톱오버)을 포함하면 티켓값은 300만원이 확 넘어간다. 다만 오래 전에 예약하면 가격은 좀 싸지는 듯.

미국과 정식 수교와 동시에 미국 - 쿠바 간 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2016년 7월 7일. 알래스카 항공, 아메리칸 항공, 델타항공, 프론티어 항공, 제트블루, 사우스웨스트 항공, 스피릿 항공, 유나이티드 항공 취항 허가를 내줬다. 이로써 올 가을부터 취항을 시작하여 한국에서 쿠바로 갈 때 환승하기 편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를 위해 미국에서 환승할 때도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로 가기 위해 미국에서 환승할 때와 마찬가지로 ESTA나 미국 비자(관광용 B비자나 환승용 C비자)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

쿠바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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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오래 되어 버리는 버스를 수입해서 운행하기도 한다(...) 개도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11.2.

법정 통화는 쿠바 페소. 대한민국에서는 취급하지 않으므로 쿠바에 도착해서 환전해야 하는데 쿠바와 미국의 사이가 개판이었던 관계로 미국 달러의 취급이 매우 안 좋다. (수수료를 와장창 떼어 간다. 미국 달러는 10% 커미션을 뗀다.) 고로 한국에서는 미리 캐나다 달러유로, 멕시코 페소로 환전해 가는것을 추천한다. 덧붙여 골때리게도 쿠바가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인 관계로 통화도 내/외국인용의 2종류가 있다. '페소 콘바타블레'라고 하는 태환권 CUC(쎄우쎄 혹은 꾹이라고도 읽는다), '모네다 나씨오날'이라고 하는 쿠바 내국인용 돈인 MN. CUC는 북한의 '외화와바꾼돈표'와 비슷한 개념이라 처음 환전을 하면 전부 이걸로 준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CUC을 MN으로 다시 환전하는데 "원칙적으로" MN은 외국인이 쓸 수 없으므로 CUC→MN은 환전이 가능하지만 MN→CUC는 환전이 거의 안 되었다. 하지만 지금 쿠바에서는 MN을 폐지하고 CUC로 모든 화폐량을 통일하는 작업중이라 예전같이 MN→CUC을 안 바꿔주지는 않는다고. 단, 길에 흔히 볼수 있는 환전소는 안되고 아바나의 Obispo거리의 대형은행에 가서 말을하면 바꿔주니까 참고.

이전에는 CUC을 호텔이나 택시비 공산품 등을 살 때만 사용하고, MN은 농수산품이나 길거리 음식같은 곳에 따로 사용해서 여러모로 헷갈리는 구조였지만, 요즘은 길거리 음식이나 차비도 대부분 CUC으로도 살 수 있기때문에 굳이 MN으로도 바꾸지 않아도 된다. 물론 비자나 마스터카드도 된다. 조건이 미국은행에서 발행하지않은 카드일 것. 그리고 비자는 대부분 통용되나, 마스터 카드는 제한적이다. ATM에서도 사용가능하다. 다만 환율상으론 당연히 CUC이 비싸서 MN으로 받아야할걸 그대로 CUC으로 받는 인간말종도 있으므로 너무 맘놓고 CUC을 뿌리지는 말자.

쿠바에서 환전시 주의점

11.3. 국내 교통

시내 이동시에는 주로 걷거나 택시. 버스도 있기는 하지만 노선도 애매하고 자주 오지도 않는다. 장거리 이동시에는 버스나 기차 중 택일인데, 버스의 경우에는 정시에 운행하는 편이지만, 열차가 좀 빅재미라 쿠바 기차 수준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수준. 오죽하면 론리 플래닛에 이런 말이 있다. "쿠바 열차의 80%는 연착되고, 나머지 20%는 운행이 취소된다. 흠좀무. 3-4시간 연착은 일도 아닌 수준으로 일어나고 272km거리인 아바나-산타클라라간 이동에 7시간 이상이 걸리는 멋지구리한 체험도 할 수 있다. [34] 간접 체험해 보고 싶다면 유투브에 영상이 있으니 참고해보자.영상. 이렇게 된 이유는 석유공급이 원할해지면서 버스운행이 일단은 그런대로 운행 할수있게 된 반면에 철도는 그 동안 시설의 노후화가 심각하게 진행된데다가 시설을 고치거나 할려면 상당한 돈을 투자해야되는데 쿠바정부에서 돈이 없기 때문에 별로 투자를 못했고 덕택에 철도 상태가 90년대 수준에서 조금 나은 수준에서 못 벗어났다는 듯하다. 단, 아바나-관타나모 구간을 왕복하는 especial 등급은 제외. 이 열차는 대략 한국 무궁화호 수준은 된다. 일정이 넉넉하다면 한번 쯤 일반등급 열차를 타보고 대한민국 철도의 우수함을 온몸으로 체감해 보자.

보통 쿠바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택시를 아예 하루동안 돈을 내고 타고 가거나, 쿠바내의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거나(쿠바에서 여행사는 흔히 길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호텔 내에 조그만 데스크에서 일을 한다.), 그래도 쿠바 내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하는 괜찮은 버스인 비아술(VIAZUL) 버스를 타고다닌다. 비아술 버스는 외국인 전용으로 물가에 비싸고, 춥고, 또한 한국 시외버스처럼 도시들을 경유하기 때문에 불편한 사람을 잘 못탈수 있다. 차라리 타 도시로 갈때는 흥정을해서 택시를 타거나, 벤을 타는게 더 이로울수 있다. 아바나 내에서는 택시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탈 것이 존재하는 데, 낮 동안에만 돌아다니는 마차라거나(1회에 20CUC), 2명밖에 타지못하는 자전거택시(Bici Taxi, 5CUC 내외), 합승택시인 콜렉티보택시(10MN 내외)가 있다. 쿠바 택시를 타면 미터기가 있는데도 안키는걸 볼수 있는데 론리 플래닛에 의하면 미터기를 키면 회사와 나누어 갖는데, 안키면 운전사 지갑에 들어간다 라고 적혀 있다. 콜렉티보 택시의 경우, 지나가는 오래된 차 중 택시 표시를 달고 다니는 차를 멈춰세워 행선지를 확인하고 타면 된다.

11.4. 유명한 것, 주의해야 할 것

쿠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산품은 역시 시가이며, 쿠바에서 시가를 구매할 때 유의할 점과 자세한 내용은 시가 문서를 참고할 것. 또한, 시가 외에도 각 시가 브랜드에서 시가를 제작하고 남은 담뱃잎으로 만든 궐련이 있으며 그중에서 쿠바의 플래그십 시가 브랜드인 코이바(Cohiba)의 궐련은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외에 쿠바는 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아바나 클럽'[35], '산티아고 데 쿠바'도 유명하지만[36] 현지인들이 이야기 하는 진짜 쿠바 럼은 레헨다리오(Legendario)다. 왜냐면 아바나 클럽을 비롯한 럼 제조사들은 혁명 이후 대부분 쿠바를 떠났기 때문. 대표적으로 바카디 또한 본래 쿠바에서 시작한 업체이지만 현재는 본사가 미국에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줄 만한 가격 대 성능비 최고의 아이템으로는 3페소 지폐 혹은 동전이 있다. 보통 화폐 단위는 1, 2, 5, 10만 있는데, 쿠바에는 유독 3페소가 있다. 그리고 이 돈의 표지 모델은 체 게바라. 은행이나 환전소에 가서 지폐를 내밀면서 3페소로 환전해달라고 하면 친절하게 해주니까 조금 바꿔다가 지인에게 주면 엄청 신기해한다. 참고로 상인들이 외국인들을 보면 체 게바라 동전을 기념 주화인 척 몇 배의 가격을 불러서 파는데 그냥 바가지 씌우는 거니까 환전소에 가서 당당하게 싸게 얻자.

다만 전술했듯이, 한국과는 정식 수교가 되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다른 나라에 주재하고 있는 대사관이 겸임한다든지 하는 것도 없다.) 어떠한 트러블이 발생하더라도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으며, 외교부의 안전여행 정보에도 쿠바는 내용이 없다. 한인회가 있기는 하지만 타국에 비해서 극히 소규모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기가 곤란할 수도 있다. 위급할 경우에는 KOTRA 직원이 상주하고 있으므로 이쪽 전화번호를 찾아서 연락하는 것이 더 빠를 가능성도 있다.(멕시코와 겸임) 늦은 밤에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던지 하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이건 웬만한 선진국에서도 지역에 따라 늘상 지켜야 할 규칙이다.)은 지키도록 하자. 그래도 치안은 그럭저럭인 편으로 한국인이 많이 가는 일부 국가들과는 달리 강도, 살인, 강간 등의 강력범죄보다는 도둑이나 소매치기, 과도한 헌팅 및 성추행 정도를 주의하는 수준이다.

민간 숙박업(일명 까사)을 고를 때 가장 유의할 점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숙박업소도 많다는 사실이다.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 그래도 눈치껏 잘 피하면 되고 걸리면 마찬가지로 벌금이 엄청난 무허가 숙박업소 주인도 만일을 위하여 투숙객에게 미리 피할 요령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그냥 이런저런 것들 따지지 말고 정식 허가를 받은 숙박업소를 골라도 되지만, 이럴 경우에는 세금을 내야 하기에 좀 비싼 편이다. 쿠바 관련 여행책자나 기행책자를 보면 무허가 업소에서 괜찮게 지낸 경우도 자주 나오는 편이다. 요즘은 어지간하면 정부에서 허가를 다 내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아바나 카피톨리오 근처 호텔이나 뒷편에 가면 까사가 많다. 문 앞에 흰색 바탕에 하늘색 닻 모양이 그려져 있으면 정식 허가된 까사다. 2017년 1월 기준 까사의 하룻방 세는 2~3인실 기준 25~30CUC 정도.

11.5. 여행에 필요한 기타 정보

12. 관타나모 해군 기지

관타나모 만 문서 참고

13. 기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태어난 곳이다. 사람들은 여유가 있고 춤과 음악 등을 즐기며 살아간다고 한다.

건기와 우기가 있는 열대 기후를 보인다.

2016년 3월, 유명한 DIPLO가 속한 Major Lazer가 아바나 말레꼰에서 공연을 했다. 당시 운집 인파는 40만이라고 한다. 쿠바 거리를 돌아다니면 실제로도 저스틴 비버, 미국 힙합 가수들의 노래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이후 롤링스톤즈도 아바나를 찾아 무료 공연을 했는데 이번엔 60만이 모였다고 한다(...).

쿠바 요리는 마늘을 꽤 많이 쓴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 때는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서 가족끼리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다만 길거리 가판대나 대중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소스를 적게 쓰는 경우가 많아 다소 밋밋하거나 단출한 편으로 딱 싼맛에 먹을만한 수준이라는 평이 많은 편. 다만 그와 별개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는 설탕이 듬뿍 들어간다. 사실 쿠바가 90년대에 설탕산업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사탕수수가 꽤 재배되기는 하고 국민들 입맛도 거기에 맞추어져있기에 간식에 설탕이 듬뽁 들어가는게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니기는 하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파는 음식은 소고기가 들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것 이외에는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정찬으로 먹는 음식과 비슷하며 꽤나 휼룡한 음식들을 맛볼수 있다. 물론 가격대는 쿠바 물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꽤나 비싸지만 말이다. 물론 코펠리아[38]같이 가성비가 최강인 음식점도 있다.

그리고 쿠바 정부와 구글은 2016년 12월 12일에 서버 설치를 통해 구글 콘텐츠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합의했고 구글 서비스도 10배나 빨라질 예정이다.#

수영배우 출신 배우 조니 와이즈뮬러는 1958년 쿠바 혁명이 일어나고 있을 때 쿠바에 골프 여행을 갔다가 카스트로의 군사들에게 붙잡힌 적이 있다. 당시 그는 50대였고, 쿠바 혁명군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때 그는 자신의 대표작인 타잔 시리즈에서 타잔의 "아아아아아아아~"하는 그 특유의 고함소리를 내며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자 보너스로 "Me, Tarzan! King of Jungle!"이라는 대사도 쳐주었다고 한다. 그를 알아본 병사들이 '"Es Tarzan! Es Tarzan de la Jungla!"이라고 외치며 그를 환영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를 호텔까지 배웅해 주었다고 한다.[39][40]

북한과 수교중이여서 그런지 한국도 의외로 아는사람이 많으며, 처음 보고 chino? 라고 물어올때도 있지만 중국인없는 차이나타운이 있어서 그런지 처음부터 Coreano? 라고 묻는경우가 더 많다. 또 아바나 내의 대학에선 한국어 강의가 있어 대학내 박물관을 관람하러 들어가게 된다면 한국어 수강하는 쿠바 학생들이 먼저 한국어로 말 걸어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 반가움보단 풀숲사이 보이는 T50탱크에 놀라게 되지만...

14. 대외관계

지금도 대외적으로는 친북을 어느정도 표방하지만 과거에는 친북 성향이 매우 강한 국가였고 현재도 대한민국의 몇 없는 미수교국이다. 대한민국과의 수교를 강력히 거절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일본, 베트남 그리고 싱가포르 등과는 외교 관계가 있다. 심지어 중국국제항공캐나다 몬트리올 경유로 아바나에 들어간다.[41]

그나마 최근 미국과 수교하면서 일본과 미국을 수교한 국가로서 어느정도 견제장치는 존재한다. 북한과는 다르게 수교국도 많기때문에 북한보다는 소통이 된다고 본다.

이 밖에도 쿠바의 현재 미수교국(미승인국 제외)은 대한민국, 이스라엘[42], 팔라우, 미크로네시아 연방, 마셜 제도, 룩셈부르크, 투발루, 나우루, 안도라 뿐이다.

14.1. 미국과의 관계

14.1.1. 쿠바 혁명 이후

거의 파탄이나 다름없었다. 20세기 이후 사실상 미국 종속국이나 다름없던 나라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니 미국으로써는 신경질이 뻗치는 일이었고, 그로 인해 피그만 침공, 쿠바 미사일 위기, 미국의 카스트로 암살 시도 등 수많은 갈등이 있었다.

냉전 붕괴 이후 미국은 쿠바의 공산주의 정권을 끝장내기 위해 경제봉쇄를 실시한다. 경제봉쇄는 쿠바의 경제를 어렵게 했지만 쿠바는 그 와중에도 경제적 파탄은 맞지 않으면서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기조가 조지 W. 부시 행정부까지 이어졌다.

14.1.2. 오바마의 국교 정상화 시도

2014년 12월에 소련 붕괴가 20년이 지나고, 쿠바를 봉쇄하기에는 명분도 약해지고 실리도 없어지자 미국은 1961년 쿠바 공산혁명 이후 53년 만에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실시하였다. 미국이 대 쿠바 봉쇄정책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아메리카 경제권에 편입된 쿠바의 행보가 주목되는 상황이며, 지금은 전 쿠바의 독재자였던 피델 카스트로가 유지했던 쇄국 정책을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가 미국에 대한 실리적이고 유연한 외교 정책을 통하여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같이 협력을 하여 외교적인 이득을 서로 얻었다.

2014년 5월, 쿠바에 대한 봉쇄를 해제하고 교류를 확대, 증진할 것을 촉구하는 정치적 움직임이 미국 내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벌써 50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쿠바 봉쇄가 과연 해제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결국 7달 뒤, 이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게 된다.

12월 7일,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 국가 지도자들이 미국 정부가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를 해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카리브공동체(CARICOM) 15개 회원국은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쿠바에 대한 54년의 금수조치는 '무의미한'(senseless) 것이라고 비판하고 제재를 당장 해제하라고 촉구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윈스턴 두터란 총리는 CARICOM 정상회담을 아바나에서 개최하고 내년 4월 파나마에서 열리는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 쿠바를 초청하기로 한 것은 "쿠바가 서방세계에 완전히 복귀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파나마 정상회의에 초청을 받은 미국 정부는 쿠바 참석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즉 실질적으로 미국-쿠바 관계가 '정상화' 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열흘 뒤에는(...)

2014년 12월 1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식 성명을 통해 쿠바와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한 공식 협상에 돌입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로써 미국과 쿠바가 케네디 대통령 시절 단교한지 무려 53년만에 대사관 개설을 포함하는 국교 재개의 가능성이 가시권에 올라섰다. 일단 미국 정부는 쿠바 당국이 간첩 혐의로 수감해 온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석방한 것을 계기로 관계정상화를 선언했으므로 어느 정도 체면은 세운 셈이며, 물론 실리도 챙긴 것이 된다.[43] 미국 정부는 이날 외교관계 회복에서부터 여행자유 확대, 수출입 품목 확대, 테러지원국 해제 검토 등 다양한 내용의 새로운 대(對)쿠바 정책을 발표했다. 자세한 항목은 여기를 참조.

또 쿠바-미국의 국교 정상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이 큰 역할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대놓고 교황과 가톨릭 교회의 역할에 감사한다고 말했을 정도. 미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교황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냈으며, 올 여름 라울 카스트로 의장에게도 편지를 보내 대화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미국의 발표가 있은 17일이 공교롭게도 교황의 생일이어서 일부러 노린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 영국 일간지《가디언》은 "교황의 생일에 이런 역사적인 발표가 나온 것이 우연인지, 계획된 연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은 매우 신중했던 교황청의 지난 30년 간 외교 역사상 가장 큰 성과"라고 평했다.# 2015년 5월 10일에는 라울 카스트로가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과 회담을 가졌으며, 교황 또한 9월에 쿠바를 방문할 예정이다. 교황과 교황청의 이런 기여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외 관계에 크게 관심을 가진 것도 있지만 쿠바 국민의 대다수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처럼 천주교 성향이 강하다는 것도 작용한다. 쿠바 국민의 최소 70% 이상이 천주교 신자로 등록되어 있다. 물론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천주교를 비롯해 종교에 대한 탄압이 있었지만 1991년 이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풀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쿠바를 방문한 이후 크리스마스를 공식 공휴일로 지정하는 등 쿠바 정부와 천주교의 관계가 크게 개선된 편이다.

하지만 공화당과 미국 내 쿠바 망명자 커뮤니티는 '미국의 적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다' 라며 맹렬히 반발하고 있으며, 공화당 소속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카스트로 정권과의 관계는 쿠바 국민이 자유를 만끽하기 전에는 정상화는 물론이고 재검토조차도 안 된다" 라고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현재 미국 의회는 상하 양원 모두 공화당이 우세하기 때문에, 오바마가 국교 정상화 법안을 의회에 회부해도 공화당의 거부로 실제 국교 정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어떻게든 하긴 했다. #

2015년 4월 11일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의장이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미주기구 정상회의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양국 정상이 회동한 것은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일으키기 3년 전인 1956년 이후 무려 59년 만이자 1961년 양국이 국교를 단절한 이후 54년 만이다. 이 날 회의에서 라울 카스트로 쿠바 평의회 의장이 역대 미국 정부의 쿠바 봉쇄 정책을 매우 격한 어조로 비난하여 일순간 분위기가 얼어붙는듯 했으나 이어진 발언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몰라도) 오바마 대통령은 정직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쿠바 봉쇄 정책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라고 언급하면서 사실상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였으며 오바마 대통령 역시 "역사의 한 장을 넘기자."라고 화답해 국교 정상화가 빨리 추진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몇 가지 민감한 사안이 있지만 서로의 의견을 양보하여 절충할 경우 미국-쿠바 수교는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4월 14일을 기해 쿠바를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하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이 승인하고 미국 의회에 통보하였다. 이것은 말 그대로 통보이며, 의회는 45일간의 검토를 통해 이에 대해 찬반의견을 나타낼 수 있을 뿐 이에 대해서 거부할 권한은 없다. 결국 5월 29일 공식적으로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했다. 이제 남은 것은 수교 밖에 없는 듯. 이에 대해서 의회는 다만 악명높은 쿠바 관타나모 기지 처리에 관해서는 협의 과정이라 야당인 공화당이 반대가 심해서 처리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항목을 참조해보면 알겠지만 말이 미군 기지이지 사실상은 중동 테러범 수용소로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가 거부권으로 의회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공화당이 발목을 잡기에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7월 초 국교 회복 발표 전망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양국 대사관 설치와 대사 임명 등에 대해서도 협의가 거의 끝났다고 한다. 단, 쿠바에 대한 금수 조치 해제는 미국 의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국교 정상화와 함께 단행되기 힘들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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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현지시간)으로 양국이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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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7월 20일(현지시각)으로 워싱턴 D.C와 아바나에 양측의 대사관이 54년만에 재개관하면서 미국-쿠바 양국의 관계 정상화가 마무리되었다. 상대국 주재 이익대표부를 대사관으로 격상시키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쿠바 주재 미국대사관은 업무 자체는 당일부터 실시하되, 정식 개관식 행사는 2015년 8월 14일 존 케리 국무장관이 쿠바에 직접 방문해서 성조기를 공식 게양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참고로 미국 국무장관의 쿠바 방문은 1945년 이후 처음이다.

2015년 2월 코난 오브라이언이 쿠바에서 코난 쇼를 촬영했다. 미국의 연예 프로그램을 쿠바에서 촬영한 것은 쿠바 혁명 이후 최초라고 한다. 이 소식은 CNN 앤더슨 쿠퍼도 짤막하게 보도했다. 마침 코난 오브라이언이 이 쇼에서 CNN과 앤더슨 쿠퍼를 살짝 풍자했는데, 쿠퍼 역시 이를 보도하며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비록 미국이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대쿠바 금수 조치를 해제하지 않았으나 경제와 문화 교류는 급증하였으며, 이에 따라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도 쿠바를 새로운 촬영지 장소로 주목하고 있는데, 아바나가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의 촬영장소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1960년대 이후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처음으로 쿠바에서 영화 촬영을 하게 되었다. 거기에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3월 21일부터 이틀간 쿠바에 방문하게 되면서 캘빈 쿨리지 이후 미국 대통령이 88년 만에 처음으로 쿠바를 공식방문하였으며, 2016년 6월 초에는 아메리칸 항공과 프런티어 항공, 제트블루, 실버 에어웨이스, 사우스웨스트 항공, 선 컨트리 항공이 정식으로 쿠바 취항을 허가받았다.

여담이지만 미국과 쿠바간의 수교로 쿠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는 웃지못할 얘기도 있는데 이는 쿠바에 대한 경제재제 해제안이 완전히 통과되면 자연히 쿠바인들에 대한 특혜 법안도 폐지되고 쿠바인들도 앞으로는 멕시코인 등 타 히스패닉과 비슷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에 일하러 가기가 어려워지는거 아니냐는 우려가 많아서라고 한다. 여하튼 덕택에 쿠바를 빠져나갈려는 쿠바인들이 부쩍 늘어난 덕택에 에콰도르, 콜롬비아,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멕시코, 과테말라 등 타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서 몰려드는 쿠바 밀입국자 덕택에 골치를 썩는 중.

이렇다 보니 한국과 쿠바간의 민간 교류는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이며 2013년을 기점으로 국영텔레비전에서 한국드라마를 편성하여 인기를 끈 이후부터[44] 쿠바 내에서 한류가 퍼지고 있다. # 게다가 한국에 첫 쿠바 유학생이 들어오는 등# 개발도상국 중에서 가장 빠르게 한국과 민간 교류에서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이 유학생은 쿠바와 수교를 추진하는 한국 외교부 협상팀과 쿠바로 돌아간다. 쉽지는 않지만 기대를 해 볼수 있었는데..

14.1.3. 트럼프의 관계 냉각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가 종교의 자유, 정치범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단교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쿠바 관계가 다시 험난해질 것이라고 이야기가 나왔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외교정책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 나오면서 국교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주쿠바 미국대사를 임명한 상태이지만 공화당이 많은 상원의 인준이 필요해 통과가 어려울 전망이다.# 2017년 6월 16일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항공편 등 민간부문에서는 유지하고 국교단절까지 안했지만 일부 금융거래 및 개별여행 제한 등의 일부 조치를 복원했다.# 그리고 라울 카스트로는 트럼프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후퇴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도 어색한 정치적 관계과 별개로 경제적 관계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 정부가 쿠바를 방문하는 자국민에게 개인 소비 목적에 한해 쿠바의 최상급 럼과 시가를 무제한으로 사 올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쿠바 금수조치에 대해서도 이스라엘과 함께 첫 기권을 하였다.# 쿠바에서 미국으로 반세기 만에 첫 수출 품목은 숯으로 이루어졌다.#

2017년 11월 1일 유엔의 쿠바 금수해제 조치 결의안이 유엔총회에서 통과되었으나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8일에 미국 정부는 쿠바 정부 및 군부와 관련된 쿠바 기업들을 제재하였다.#

2019년 2월에 가졌던 개헌 국민투표에 대해서 존 볼턴 국가안보보자관이 "억압과 폭정을 은폐하려는 정권의 또 다른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2019년 4월에 1996년에 지정된 '헬름스 버튼 법'[45]을 부활했다. # 하지만 이 법의 시행에 대해서 쿠바에 많은 돈을 투자한 중국과 러시아, EU와 멕시코의 반발이 큰 상황이고 심지어 구글같은 미국 일부기업들도 같이 소송을 당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반발이 큰 상황이다. 즉, 외교적인 이익과는 관계없이 실행한 법이라는 것.

2019년 4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 정부에 베네수엘라에 있는 쿠바 군인과 민병대를 철수시키지 않으면 최고 수준의 제재와 금수조치를 할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동절을 맞아 2019년 5월 1일에 쿠바에서는 미국을 성토하는 시위가 있었지만, 동시에 베네수엘라 개입도 성토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를 쿠바가 지원하자 6월 4일부터 미국인들의 쿠바 단체여행을 금지하는 제재안을 밝혔다.# 그리고 9월 19일에 국가안보를 이유로 유엔주제 쿠바 대표부 2명을 추방하자 쿠바측은 반발했다.#

2019년 9월 26일 미국 정부는 라울 카스트로 쿠바 총서기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다.# 이에 쿠바 정부는 반발하며 유엔총회에서 미국을 비난했다.#

2019년 10월에 미국 정부는 쿠바에 대한 항공기 대여를 차단했다.# 그리고 12월부터는 아바나 지역을 제외한 쿠바 전지역으로의 미국 항공편 운항을 금지하기로 했다.# 미국 재무부는 11월 26일에 쿠바 국영기업 파나메리카나를 제재 대상으로 추가하고 쿠바 옥죄기를 이어나가자 쿠바측은 반발했다.#

14.1.4. 아바나 괴질 사태 ("아바나 신드롬")


그런데 2017년 쿠바 주재 미국 대사관에 원인불명의 괴질이 발생하였다. 청력을 잃고, 뇌가 손상돼 균형 감각까지 상실하는, 의학적으로 입증된 환자만 21명에 달했다.# 미국에서는 쿠바를 의심하며 대사관의 폐쇄를 고려하고 있고 쿠바에서는 반발하고 있다. 이런 공격을 해서 쿠바가 얻을 것이 딱히 없을 뿐더러, 한창 국교가 정상화되던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이 미스터리다. 심지어 쿠바와 관계가 나쁘지 않은 캐나다 대사관에서도 피해자가 나오면서 더더욱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아바나 주재 캐나다 대사관과 미국 대사관은 직선으로 4km 이상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쿠바가 미국 대사관에 음파 공격을 했다가 캐나다 대사관에 의도치 않은 피해를 줬다고 보기도 힘들다.

일부 신경과학자 등은 음파 공격보다는 집단 히스테리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로 적성국의 수도 한복판에 있는 대사관에 근무한다는 것 자체가 불인감을 주는 환경이기 때문. 미국 국립신경질환뇌졸중연구소(US National Institute of Neurological Disorders and Stroke)의 인간 운동 제어 분야(human motor control section)의 수장인 Mark Hallett 박사 등이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Guardian 다만 뇌 손상 및 복구 센터의 Douglas Smith 박사는 외교관들의 재근무 의지가 높고, 본국 복귀 후에도 증상이 한 달 가량 지속된다는 점을 들어 이 가설을 비판했다.

미국 측은 쿠바에서 음파공격을 했다고 주장을 거듭했지만, 막상 그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FBI의 보고서까지 나왔다. 결국 쿠바측에서 그런 음파공격을 했다는 주장은 사실상 기각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괴질이 발생한것인지 여전한 미스터리로 남아있게 되었다. 또, 쿠바에 다녀온 미국인 20명도 비슷한 증세가 나왔다.#

2월 15일, 미 정부의 의뢰로 작성된 조사 결과가 JAMA에 논문 형식으로 공개되었다. 연구 결과, 기존 미 정부의 주장과는 다르게 백색질 손상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광범위한 두뇌 신경망에 손상을 입었다는 (“sustained injury to widespread brain networks.) 점은 확인되었다.

해당 사태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알아보고 싶은 사람은 이 논문을 참고하고, 2018년 2월 기준의 최신 업데이트를 읽어보고 싶은 사람은 이 기사를 참고하라.

또, 조사에서 대사관 직원들이 속귀 손상을 입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음파공격에 대해서 러시아가 관련되어있는가 하는거 아니냐는 설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쿠바정부 차원에서 反 쿠바 활동을 벌이는 인사도 아니고 잘만하면 쿠바에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할수있는 미국대사관 직원들에게 안 좋게 대해줄 이유가 전무한데, 러시아가 미국과 쿠바간의 관계가 나빠지도록 뒷공작을 해서 쿠바내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아닌가하는 설이다. 다만 이것도 확증되지 않은 썰인지라 섣불리 믿기는 곤란하다.

과학적 분석도 분분한데 2019년 1월 영국과 미국의 연구진들이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심인성 질환 때문'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특정 귀뚜라미 종의 울음소리가 앞서 언급한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에 가까운 집단 발병을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한편 2019년 9월 캐나다 연구진은 환자들의 혈액 분석 결과 모기 살충제의 부작용 때문이라는 발표를 했다. 당시 카리브해 국가들에서는 모기가 매개하는 지카 바이러스뎅기열이 유행하고 있어 쿠바가 캐나다 대사관과 직원 숙소 주변에 정기적으로 살충제를 살포했는데 그 부작용이었다는 것.

14.2.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와는 매우 우호적인 관계이고 소련시절부터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소련은 쿠바에 엄청난 지원을 했고, 쿠바는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많이 들여오기도 했으며, 지금도 러시아제 무기를 소유하고 있다. 90년대에는 러시아도 경제위기로 서로 소원했지만 러시아 경제가 회복된 2000년대 와서는 여러 협력을 단행하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측은 쿠바에 설치된 구소련기지를 다시 활용하는 것을 검토중이다.#

그리고 위의 항목에서 적혀져 있듯이 소련 해체이전에 러시아어가 쿠바에서도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소련 해체이후에 공용어에서 제외되다가 2019년에 러시아어 프로그램이 다시 개설되는 등 쿠바에서도 러시아어를 배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러시아어 원문)

2018년 11월 2일에 쿠바의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러시아를 방문해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하고 양자·국제 문제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14.3. 캐나다와의 관계

미국과는 달리 캐나다와는 여객기로 왕복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관계이다.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자유당이 장기집권하면서 캐나다판 동방정책을 시행했고, 공산화로 인해 미국처럼 국유화 크리티컬을 맞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30일 캐나다 외무부는 쿠바주재 대사관에서 14번째 원인불명의 뇌손상 환자가 발생한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아바나 주재 대사관 직원들을 16명에서 8명으로 줄일 예정이다. #

14.4. 스페인과의 관계

스페인은 미국-스페인 전쟁이전에 쿠바를 식민지배했다. 그리고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토착민인 타이노인들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스페인의 영향으로 쿠바는 스페인어가 공용어이고 천주교도 널리 퍼져 있다. 쿠바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스페인 본토와는 다른 표현이 있고 발음도 차이가 있다. 또한, 쿠바는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의에도 가입되어 있다. 하지만 쿠바와 스페인은 정치체제에서 갈등이 있는 편이다. 2019년 11월 12일에 쿠바의 브루노 로드리게스 외무장관과 스페인의 호세프 보렐 폰넬레스 외무장관이 미겔 디아스카넬 국가 평의회 의장, 아바나 건립 500주년을 기념해서 쿠바를 방문한 스페인의 펠리페 6세 국왕의 입회하에 쿠바와 스페인간의 협력을 확대하는 합의안에 서명했다.#

14.5. 대한민국과의 관계

2019년 현재 시리아와 함께 유이하게 대한민국수교하지 않은 국가이다.[46]

한때 공산주의 혁명 이전까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때 UN의 바티스타 정부가 대한(對韓) 지원에 적극 동참하여 물자원조를 보내주었던 국가로 이 때까지는 한국이 고마워해야 할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59년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일으키게 되면서 한국과의 교류를 단절하고[47] 이후로 극도의 공산국가로 변신하여 국제사회에서 북한, 시리아 등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과 함께 한국의 입장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고 주한미군의 주둔을 문제삼아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국가라는 주장도 펼쳤다. 북한의 외교적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

1988 서울올림픽 때는 IOC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동조에 맞춰 아예 불참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 직후에 냉전 구도가 붕괴되면서 쿠바도 대한민국과 점차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였다. 1992년 양국 체육관련장관 회담이 개최되어 스포츠 교류의 길을 텄다. 1997년 무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쿠바가 불참했지만, 이는 적대적인 관계때문에 불참한 것이 아니라, 쿠바 자체가 동계 대회에 참가할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7년에는 양국간의 협력의정서가 체결되었고, 2001년에 이만섭 국회의장 방문 후 2005년 9월에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KOTRA 무역사무소가 개설되는 등 양국 관계가 점차 변화되어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경제, 문화적인 관계 개선일 뿐, 아직 전격적인 관계 개선은 아니다. 여전히 쿠바와 대한민국의 외교관계 수립은 미정이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관계가 그럴 뿐이지 경제적으로는 한국산 전자제품들이나 중고버스(...)가 상당수 돌아다니고 있을 정도로 교류는 예상 외로 활발하며 쿠바의 무역대상국 10위 안에 한국이 들 정도다.

북한과는 1960년 수교한 이래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으며 평양과 아바나에 양국간 상주공관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특히 남한에 대한 적대심과 반감면에서 맞장구를 칠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1960년에는 사탕수수와 기타 자원을 두고 딜을 한 바가 있고, 피델은 윗동네 태조와 절친이었다. 2011년 김정일이 죽자, 쿠바 정부는 사흘간 애도를 표할 것을 선포하고 정부기관에 조기를 게양했다.

2013년 3월에는 쿠바에서 북한으로 가다 파나마에 기항했던 북한 화물선 청천강호에 MiG-21 전투기와 지대공 레이더 부품이 실려있던 사실이 밝혀져 파나마 당국에 억류되고 외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

2016년 11월 피델 카스트로가 사망하면서 쿠바와 남/북한과의 관계에 변수가 생겼다. 북한과 쿠바의 우호 관계에는 피델 카스트로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두 나라의 관계가 이전보다는 약해질 가능성이 생겼다. 북한도 이를 인지하고 쿠바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카스트로에 대한 애도 기간의 공식 선포, 조기 계양, 김정은과 김영남 명의의 공식 조전, 최룡해가 단장을 맡은 대규모 조문단의 파견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대한민국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 명의로 '서거'란 표현을 사용한 조전을 보냈으며, 조문단 파견도 검토하였으나 이는 불발되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국내 정세가 대혼란 상태에 빠져서 쿠바에 대한 '조문 외교'를 행할 여력이 없었다.

최근 중국파나마와 외교 관계를 정식으로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이 쿠바와의 외교 관계 회복 및 수교에 대해 급물살을 타려는 의도가 있었으나, 북한의 ICBM 발사 등 계속되는 도발 행위가 비대화하면서, 한국-쿠바 외교관계 수립에 난항을 겪는 등 커다란 부작용 역시 나올 수도 있다.

쿠바에도 한국인들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 쿠바인으로 동화된 한인 후손들중에는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유학을 가면서 한국인의 후손임을 잊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2018년 10월 30일에 코트라는 쿠바에서 한국과의 다양한 교류를 하는 '코리아 위크'를 개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크에서는 쿠바, 멕시코에서 각각 활동한 한국의 독립운동가인 임천택, 김익주 선생을 알리는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했다.# 그리고 강남대는 2년 연속으로 국제동표재단이 주관하는 멕시코와 쿠바 한인 후손 초청 직업연수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재외동포재단은 멕시코와 쿠바의 한인 후손들을 초청해서 9월 27일까지 12주간 직업연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14.6. 기타 국가들과의 관계

UN에서 미국의 대쿠바 제재 해제 조치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무려 24년 연속으로 압도적인 찬성속에 통과되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한 다른나라들은 쿠바에 대하여 적대적이지 않다.[48]

상기 언급한 결의안의 2015년 스코어는 191vs2. 물론 반대 2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

#1, #2 참고.

14.7. 일본과의 관계

1920년대부터 맺고 있으며 쿠바 혁명 이후에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엔 쿠바에게 거액의 채무를 면제해 주기로 결정했다.# 2016년 9월 22일.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 총리 최초로 쿠바를 공식적으로 방문하였다. #

14.8. 중국과의 관계

같은 사회주의 체제라는 점과 미국 견제의 일환으로 쿠바와 친선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북한처럼 비슷하게 고수하고 있으나, 대만 같은 경우 쿠바에서 오게 될 경우 쿠바-멕시코/캐나다-일본-대만 순으로 올라가는 여정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이 쿠바로 여행하게 될 경우 미국-쿠바 관계의 악화를 의식하여, 스페인을 거쳐 오거나 미국이나 캐나다를 거치지 않고 바로 멕시코를 거쳐서 온다[49].

14.9. 영국과의 관계

1970년대에 쿠바와 수교하여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서유럽 국가들도 비슷해서 미국-쿠바 관계보다 원만하고 우호적이며, 미국의 대쿠바 제재 해제도 찬성하고 있다. 그리고 서유럽국가들과 쿠바 간에는 (대서양을 건너가야 하는 지리적 한계 때문에) 캐나다-쿠바 만큼 여객기편이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여객기 왕복도 가능하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에 쿠바가 아르헨티나를 군사지원하려고 한 것 때문에 영국과 대결직전까지 간 적이 있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지원을 거절해서 직접충돌은 피했고[50] 2010년대 기준로 양국간 관계는 쿠바-미국 관계나 쿠바-이스라엘 관계보다는 나은 편이다.

14.10. 멕시코와의 관계

멕시코와는 언어, 문화에서 매우 가까운 편이다. 그리고 교류가 많은 편이고 양국을 이어주는 항공노선도 존재해 있다.

14.11. 바하마와의 관계

바하마와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쿠바인 공동체가 바하마에도 존재해 있다.

14.12. 아이티와의 관계

아이티와는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그리고 쿠바는 아이티에 의료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

14.13.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관계

도미니카 공화국과는 외교관계를 맺었지만,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14.14. 자메이카와의 관계

15. 쿠바가 무대로 등장하는 작품들

※ 해당국의 작품은 제외한다.

[1] 쿠바 국가주석(대통령)(Presidente de Cuba)은 서기장에 해당하는 쿠바 공산당 제1서기,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내각총리(장관회의 주석) 등 총 3개의 직책을 겸한다. 하지만 현재 공산당 제1서기 즉 당수직은 국가평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라울 카스트로가 아직 가지고 있다. 2019년 10월 10일,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직이 부활했다.[2] 체 게바라가 편지의 끝에 늘 붙이던 말이었다.[3]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비롯한 로망스어군 언어에선 H가 묵음이어서 그렇다. 영어식 철자는 Havana. B가 아니라 V이다.[4] 학계에서 인정받는 주장은 아니다.[5] 미 국무부 자료에는 처벌 받을 위험이 있다고 명시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처벌 받은 사례가 있는 지는 불명.[6] 그런데 2017년 드널드 트럼프가 미국인의 쿠바여행 규제를 선언하자 발끈한 쿠바 정부도 아바나 이외 지역의 미국 관료는 전부 나가달라고 요청해서 미국인이 여행하기는 뜨악한 상황.[7] 이 사정은 도미니카 등 타 중남미 리그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8] 유네스키 마야는 쿠바에서 이미 에이스로 이름값을 높여놔서인지 메이저리그에서 1승 5패 해놓고 미국 생활의 대부분을 마이너리거로 보내놓고 한화로 80억원 수준의 돈을 받아갔다.[9] 하지만 메이저리거들을 비롯한 프로선수들이 모두 참가하는 WBC에서도 쿠바의 위력은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2006년 초대 대회 준우승을 기점으로 이후 3번의 대회 모두 쿠바는 2라운드를 진출한 야구 강국이다.[10] 쿠바 야구가 점점 타고투저가 강해지면서 투수 유망주가 적다고 한다. 현재는 일반적인 쿠바 리그의 투수 에이스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에 가면 4~5선발 정도 가면 터진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실제로 유네스키 마야는 쿠바 리그의 에이스 투수를 꼽으라면 아롤디스 채프먼 바로 다음으로 꼽혔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는 4선발 정도를 맡아줄 것을 감안했는데 그마저도 못하면서 땜방선발과 패전처리, AAA를 왔다갔다했으니...[11] 그랑프리 최약체 그룹인 3그룹에 포함되고 있다.[12] 피해자가 미성년자라고 한다.[13] 특히 탈냉전 이후인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야구 쪽을 중심으로 선수들의 망명 사례가 늘어나기도 했다.[14] 해외 진출을 전면 불허한다고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하게는 프로 진출만 불허했고 아마추어의 경우에는 소련 해체 이 후 국가대표를 은퇴한 30세 이상의 선수에게 진출을 허용했다.[15] 단, 레오는 청소년대표까지는 했으나 청소년대표 이후 망명을 했다.[16] 이러한 사실을 보면 남한 대중들 입장에서는 놀라기 쉬울 텐데, 그것은 남한 대중들에게 '공산주의 국가'의 스테레오타입이 하필이면 여러 퇴보한/기형적 노동자 국가들 가운데 독보적으로 막장인 북조선이나 (마오쩌둥 시기의) 중국으로 박혀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은 체제 유지만 잘 된다면 개인적인 사생활에 터치하지 않았다. 사실 북조선도 8월 종파 사건과 도서정리 사업을 통해 김일성 1인 독재 체제로 변질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북조선이 이상한 것이다.[17] 전 선거구에서 OX 투표인지, 아니면 무소속 후보의 출마가 가능한지는 추가바람.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100% 공산당이 싹쓸이하고 있는데 이는 공산국가를 표방하는 기형적 노동자 국가 가운데 유일한 것이다. 중국은 8개, 북조선은 2개의 위성정당이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의석을 차지하며 베트남과 라오스는 위성정당 없는 순수 1당제지만 무소속 의원도 엄연히 원내에 존재한다. 전 의석을 공산당에서 싹쓸이하는 사례는 쿠바가 유일하다.[18] 르몽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신문. 국제적으로도 정론지로 명성을 얻고 있다. 디플로마티크는 월간 국제뉴스 잡지로 르몽드가 28개 드언어로 75개국에서 발행하고 있다. 한국판도 발행 중.[19] 애초에 라울 카스트로는 피델,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의 중심 인물 중 하나이기도 했기 때문에, 형제 사이의 권력이양이라 해서 북한의 권력세습과 동일선상에 놓기는 힘들다. 따라서 북한 김씨보다는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정도전 등과 비교해야 맞다.[20] 물론 캐나다나 미국도 문제는 많다. 두 나라 모두 의료의 수준 자체는 높지만 미국은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 캐나다는 무상의료를 무기로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21] 코카인을 하는 등, 제정신이 아니었다.[22] 한국의 의료체계를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나 x-ray만 3만장 넘게 판독해본 경험있는 의사에게 찍고 판독까지 받는 비용이 5천원도 안됨을 생각해보면 쿠바보다 오히려 의료 천국이라 부를만 하다.[23] 실제로 쿠바 본국 정부나 쿠바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외국의 사회주의자들도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흔히 우익의 선전으로 인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사회주의는 어떠한 노선이든 결과의 기계적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다. 충분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완전한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며, 그걸 위하여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24] 물론 일부는 브라질인들과 결혼해서 쿠바로 되돌아가기 뭐한다거나 하는 이유로 브라질에 남는 경우도 있다. 브라질이 쿠바보다는 물가가 비싸다고 하지만 의사로 일할 경우에는 월급이 세니까.[25] 좀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브라질과 멕시코는 공립학교의 질이 떨어지기때문에 기초학력수준이 부실하다고 평가받고있으며, 칠레의 경우에는 교육비가 많이들고, 아르헨티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교사들이 박봉에 시달리다보니 매년 파업이 일상화되어있다. 여타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도 이들나라와 크게 다를바 없다.[26] 물론 콜롬비아로 교육과 의료인력을 대거 내보낸것은 전쟁을 멈춘 반군들에게 마약은 이제 그말 팔라는 의미에서 교육시켜주는것이기는 하다[27] 쿠바 인구 중 절반인 51%가 스페인계 백인이며 이들이 사회중추로 자리잡고 있다. 나머지 흑백혼혈 37%, 흑인 11%로 구성.[28] 사실 쿠바 평균적으로 볼때 봉급수준이 그리 짠것은 아니지만 (사실 의사나 변호사나 육체노동자나 임금수준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관광업쪽에서 일하거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입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별 메리트를 느낄수가 없는것.[29] 여기서 가장 흔한건 물품 빼돌리기나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바가지 씌우기다. 왜냐하면 돈벌기 쉬우면서도 위험부담은 적기 때문이다.[30] 물론 쿠바에서도 야당은 있기는 하고, 무소속 후보들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국정선거에서 후보자들을 철저하게 심사하기 때문에 재야운동가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지라 별 의미는 없고, 쿠바에서 야당이라고 해봐야 정당이라기보다는 시민단체에 가깝다.[31]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을 경우 미국 정부가 정한 특별한 사유에 해당할때만 쿠바에 갈 수 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소지한 한국인처럼 단순여행으로 쉽게 쿠바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캐나다 사람들이 쿠바는 캐나다인들에게만 허락된 파라다이스라고 미국인들을 놀린다[32] 베이징 - 아바나 노선은 직항이 아니라 몬트리올을 경유한다[33]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지붕까지 승객이 가득한 정도로 생각하면..[34] 비아술이나 택시타고는 3시간이다[35] 1년, 3년, 5년, 7년과 그 외. 보통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7년이 2017년 8월기준 16.9CUC이다.[36] 럼의 경우 시가와 달리 어디를 가나 가격이 모두 동일하다. 가끔 럼 박물관 같은 곳에서 0.5CUC정도 쌀 뿐이다.[37] 살짝 팁을 공유하자면 ECSA에서 줄 설 필요 없이 아바나 구시가지 내 플로리다 호텔 로비에서 와이파이 카드 구입가능하다 심지어 줄도 없고 가격도 같았다.[38] 쿠바에서 베스킨라빈스 31급의 아이스크림 전문점으로 통한다.[39] 이 내용은 와이즈뮬러의 아들이 쓴 "나의 아버지 타잔"에 나오는 내용이다.[40] 일설에 따르면 타잔의 이야기가 상당히 반제국주의적인 서사로 읽힌 것도 작용을 했다고 한다.[41] 미수교국이지만 베이징 경유로 쿠바를 방문한다고 해서 불이익은 없다. 이미 1992년 공산권 국가 여행제한 조치가 해제되고 1986년 더 앞서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되어서이다. 물론 미국 비자를 받거나 미국에 입국할 경우 아직은 질문공세에 시달릴 수 있다. 멕시코칸쿤으로 해서 나오면 괜찮다.[42] 여기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친미성향이 강한 국가인 탓에 이스라엘과 수교를 거절하고 있다. 반대로,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반미성향이 강한 쿠바와도 수교를 거절하고있다. 사실 1949년에 수교하고 쿠바 혁명에도 유지되다가 제4차 중동전쟁 이후 1973년에 단교하게 된다.[43] 실제로 미국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쿠바와의 통상 금지로 미국 경제가 입는 손실액은 연간 12억 달러(약 1조 3,140억원)에 달한다. 물론 쿠바도 피해가 커서 매년 6억 8,500만 달러(약 7,500억 원)의 경제적 손해가 발생했다고.[44] 물론 훨씬 이전부터 다른 나라의 텔레노벨라는 잘만 수입되고 있었다.[45] 피델 카스트로 정권에 자산을 빼앗긴 미국인이 이 자산으로 수익을 낸 외국기업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다는 법률이다.[46] 이 두 나라는 친북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47] 간혹 '단교'라고 하는데 정식으로 수교맺은 적이 없어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48] 이 대 쿠바 제재 문제에서는 미국의 혈맹인 영국이나 한국이나 일본같은 동맹국들도 해제를 찬성하고 쿠바를 두둔하고 있다.[49] 상하이, 광저우에서 멕시코시티행 직항노선을 이용할 수 있다. 단 베이징에는 멕시코시티행 직항편이 없다.[50] 애초에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 성향이 철저하게 반공군사독재 성향으로 정치노선으로 보았을때 이웃 칠레의 피노체트와 별 차이가 없었다.[51] 피셔를 관타나모로 들여보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CIA측 파견요원 브릭스는 이 일을 포함한 여러가지 활동 내역들로 포스 에셜론으로의 파견 명령은 영원할 줄 알라는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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