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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20:53:06

쿠바계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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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이민4. 정치적 성향5. 유명인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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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cubans11.jpg파일:cubans111.jpg
파일:cubans11111.jpg
피델 카스트로가 사망하자 축제를 벌이는 쿠바계 미국인들

쿠바 출신의 미국인을 가리킨다. 2019년 기준으로 인구는 238만 1565명.

2. 역사

쿠바미국은 매우 가까운 거리로 플로리다 키 웨스트에서 쿠바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이며 최단 거리는 부산- 큐슈간 직선거리보다도 짧다. 그런 만큼 쿠바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미국 이민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쿠바계 미국인 공동체가 증가한 계기는 바로 쿠바 혁명인데 이로 인해 쿠바는 순식간에 반미, 친소 국가가 되었으며 돈 많은 부르주아나 지주들은 공산 정권이 두려워 가까운 나라인 미국으로 많이 도피하였다. 미국의 경제제재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드러난 체제 모순으로 경제적, 정치적인 망명인들도 꾸준히 가까운 땅인 미국으로 유입되어 왔다.

이런 배경 탓에 이들은 쿠바의 공산 정권에 매우 적대적이며 쿠바 체제 반대 활동에 적극적이다. CIA가 쿠바계 망명자들을 중심으로 병력을 조직하여 쿠바를 공격한 피그만 침공이 잘 알려져 있으며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쿠바 공격을 포기한 후에도 망명자 그룹은 독자적으로 쿠바에 침투하여 체제 전복 등 반정부 활동을 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했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쿠바와 미국과의 관계가 풀리는 듯하다가도 매번 꼬이는 단초를 많이 제공했다. 경비행기를 몰고 날아가서 쿠바 영공에서 격추되거나 심지어 쿠바의 관광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 호텔을 폭파하거나 하기도 했다. 이런 극단적인 활동 이외에도 혁명 초기에 망명한 이민자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국 시민권을 얻고 쿠바에 강경책을 유지하도록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부분도 무시 못한다.

이러던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쿠바의 경제위기 당시 빈곤 탈출을 목적으로 망명한 이민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고 나서였다. 당시 소련 붕괴의 여파로 인해 쿠바의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주로 젊은 계층이 보트로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대규모로 탈출하기 시작했는데 쿠바계 망명자 그룹에서는 이때의 경제난을 빌미로 쿠바에 대한 재제강화를 압박해서 쿠바의 경제위기를 가중시킨 뒤 시민혁명 발생으로 쿠바 정부를 뒤엎으려고 했지만 피델 카스트로는 예상과 다르게[1] 원하는 사람은 떠나도 좋다고 말하면서 알아서 탈출하게끔 내버려 둔 덕분에[2] 밀려드는 보트피플에 골머리를 앓던 미국 정부는 쿠바에 남아 있는 미국 땅 관타나모 만에 난민캠프를 세우고 마이애미에 애써 도착한 난민들을 다시 쿠바로 데리고 와서 일시적으로 수용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이때 미국으로 건너간 쿠바인들이 정착하면서 쿠바계 이민자 그룹의 강경한 분위기는 많이 희석되고 있다. 특히 이민자들의 가족들에로의 달러 송금이 쿠바 경제에 많이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며 쿠바가 어느 정도 개혁개방 정책을 진행하면서 단순 송금뿐만 아니라 쿠바에서 자영업을 했을 때 종잣돈으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쿠바의 물가가 싸다 보니[3] 미국에서 몇 년씩 일하면서 돈 벌다가 쿠바로 돌아와서 미국에서 번 돈을 종잣돈 삼아 부유층으로 잘사는 경우도 종종 있는 모양이기도 하다.

3. 이민

이민 관련 문제에서 쿠바계들은 히스패닉이지만 쿠바 공산화 이후 미국 정부의 공산정권 견제를 위한 특례를 받아 왔는데 당장 쿠바 공산화 이후 기득권을 뺏긴 지주층이 갈 곳은 가까운 미국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공산화 이후에도 어떻게든 난민들은 미국에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어 졌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Wet feet, dry feet"으로 덜 적극적으로 바뀌었지만 미국 땅만 밣으면 망명할 수 있는 것은 같았다.

문제는 미국-쿠바 국교가 회복되기 전에는 범죄자들도 같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추방할 수도 없었다. 이 때문에 잠시나마 쿠바 감옥이 비었다는 소문이 있다.

고국 방문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쿠바계들은 미국정부의 쿠바 방문 금지에도 예외를 적용받았고 쿠바 정부도 이들을 박대하지 않았다.

쿠바계가 받는 특례는 다른 히스패닉과의 갈등의 씨앗이 되었는데 이러한 혜택은 2014년 양국간 국교 정상화 이후 사라졌다. 국교 정상화는 쿠바인의 미국 이민을 더 활성화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 정치적 성향

대한민국으로 비유하자면 실향민북한이탈주민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미국에서 약 2백만명 가량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며 대부분은 쿠바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플로리다 주에 분포한다. 미국 인구 조사에서 이들도 히스패닉으로 분류되고 가톨릭 신자가 다수이며 거의 대다수가 백인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쿠바계 이민자 본인들도 미국 사회의 주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히스패닉은 민주당 지지층이 많은데 쿠바계 히스패닉들은 반대로 공화당 지지층이 많다. 이들 중에서는 쿠바의 공산화로 쫓겨난 지주층과 정치 망명인이 많았으니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4] 다만 그런 앙금이 덜한 젊은 세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사실 젊은층은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하는 경우가 적고 그냥 쿠바의 이중화폐 정책 때문에 체감되는 봉급 수준이 낮다 보니 미국으로 돈을 거하게 벌려고 온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이 미국으로 온 배경 자체는 타 히스패닉이랑 큰 차이가 없는데 단지 쿠바계라는 이유로 이민에 혜택을 받은 것뿐이다. 계급적 정체성도 다소 차이가 있다. 1960년대에 쿠바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주로 백인 부유층이라면 1980년대 이후로 빠져나가는 사람은 흑인과 메소티소가 다소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쿠바계 출신이라도 갈등이 일어날 때가 있다.[5] 이런 이유로 인해 최근에는 공화당 쏠림 현상이 그리 크지 않아 민주 : 공화 45대 55 수준의 투표율을 보여준다. 이민 문제에서도 이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쉽게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히스패닉들한테는 나 몰라라 하는 입장. 사실 나몰라라라는 말도 어폐가 있다. 쿠바계만 보수 성향이 강하냐면 그것도 아닌데 합법적으로 미국에 귀화한 히스패닉들은 히스패닉 불법 체류자들에게 체류 허가를 내주는 민주당 정권에 대해 역차별로 인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합법적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한 이민자들이 불법 체류자들을 지지하고 옹호해주는 건 본인의 자유 의지와 정치 신념에 따른 선택일 뿐이지 의무는 아니다.

파일:cubans1111.jpg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에도 반대했을 정도로 현 쿠바 정권에 매우 비판적이다. 특히 피델 카스트로가 사망한 날에 많은 쿠바계들이 위의 사진처럼 해맑게 웃으며 기뻐하고 파티를 벌였을 정도다. 물론 이와는 별도로 쿠바의 주요 수입원은 미국 망명 쿠바계들이며 국교 정상화 이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었다. 전술한 보수 성향은 조지 W. 부시가 플로리다의 쿠바계에서 70% 이상의 득표[6]를 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세대별 성향차가 극명하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65세 이상 쿠바계가 80% 이상 공화당에 몰표하는 반면 중년층 이하는 미국 평균과 비슷한 성향이다. 2008년에는 존 매케인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나오지만 2012년에는 반대로 버락 오바마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2016년에는 쿠바 국교 정상화가 노년 보수층을 자극해 표심이 도널드 트럼프에 쏠렸고 2020년에는 대 쿠바 강경책 및 공화당의 쿠바계 미국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표심 공략을 타고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더 강해졌으나 이에 대한 반발인지 젊은 층 일부에서는 조 바이든에 대한 지지도 나타났다. 문화, 예술계는 민주당 지지세가 더 강하다.

5. 유명인

6. 관련 문서



[1] 사실 1980년에 비슷한 수법으로 피델에게 불만을 가진 쿠바인들의 망명을 방조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범죄자들이나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들을 같이 떠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쿠바 감옥이 사람이 없어 텅텅 비었고 미국에서 한동안 골치를 앓았다나 뭐라나 하는 후문이 전해진다.[2] 그 덕택에 피델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대거 쿠바를 빠져나가는 바람에 쿠바 망명자 그룹이 병쪘다는 후문도 있다.[3] 단, 수입공산품은 미국과 큰 차이는 없다.[4] 실향민 1세대나 북한이탈주민이 강한 반공주의 성향을 드러내는 것과 비슷하다.[5] 적성국가에서 탈출한 반동층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당장 대한민국에서도 탈북민들이 받는 대우를 생각하면... 물론 대한민국은 헌법에 명시된 영토, 즉 한반도 전체에서 한국인의 자녀로 태어난 주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아예 다른 나라인 미국과 쿠바와는 사정이 다르긴 하다.[6] 다만 이는 조지 부시가 친 히스패닉 성향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7] 원래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엄청난 자신감을 보인다는 것이다. 오디션 팁들을 보면 그 소속사 소속 가수의 노래를 부르면 비교되니까 가급적이면 절대 부르지 말라는 팁까지 있을 정도인데....[8] 쿠바계 미국인 중 일부는 자신을 히스패닉으로 분류하는 것을 반대하고 스페인계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9] 미국의 쿠바 흑인 출신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일반적인 미국 흑인들과 엮이는 걸 불쾌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영미권 문화에 동화된 일반적인 미국 흑인들과 달리 스페인어권 문화에 동화되어서 태생부터가 미국 흑인인 경우와는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편 쿠바에도 미국 흑인 출신 이민자의 후손들이 일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