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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어: Vietnamese Americans베트남어: Người Mỹ gốc Việt
베트남 혈통의 미국인을 가리킨다. 숫자는 2017년 기준으로 210만 4217명이다. 1980년에 26만 1729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많이 늘었다. 아시아계가 많은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베트남과 기후가 비슷한 남부 텍사스, 루이지애나, 아칸소 등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필라델피아도 2019년 현재 와서 필리 차이나타운은 실제로 태반은 차이나가 아니라 베트남타운이기도 하다. 사실 베트남 전쟁 시기에 미국으로 이주한 베트남계 미국인 중에는 화교(중국계)인 사람이 많았다.[1]
40% 가량이 불교이고 프랑스의 영향으로 30% 가량은 가톨릭 신자이다. 도 계통의 종교를 베이스로 하여 세계의 주요 종교들을 짬뽕한 베트남의 신흥종교 까오다이교 신자도 10% 내외쯤 된다. 남베트남계 미국인들에 비해 소수인 통일 베트남계 미국인들은 베트남 공산당이 추구하는 국가 무신론의 영향을 받아 무신론자인 경우도 존재한다.
2. 배경
베트남은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까닭에 미국과 접점이 없었다. 호찌민 등 베트남 지식인들 상당수가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고 유라시아인 등의 혼혈도 프랑스인과 베트남인의 혼혈이었다.그러던 것이 베트남 전쟁을 겪으면서 남베트남이 미국과 연합 전선을 구축했고 전쟁에서 패망과 함께 공산화되면서 베트남인들이 미국으로 가거나 후에 보트피플로 넘어가게 되면서 베트남계 미국인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은 1970년대까지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보트피플과 정치적 망명 등으로 급증했다. 이들은 미국정부에서 영주권을 부여받았지만 과거 베트남 공화국을 그리워하고 나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일부 베트남계 미국인들은 미국 시민권 취득을 거부하고 있다.[2] 나라가 없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무국적자로 분류되지만 영주권이 있기 때문에 미국내 거주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권이 없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미국을 벗어나 타국 여행은 할 수 없다. 단 자신의 조국인 베트남에 가려는 경우 예외적으로 영주권으로 출국이 되고 베트남 이민국에서도 특별히 베트남계 미국인에 한해 미국 영주권으로 예외적인 입국을 허용해준다. 그 외에도 라이따이한처럼 미국 군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25,000명이 미국으로 가기도 했으며 이들을 Amerisian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배우 매기 큐였다.
아시아계 미국인들 중에서도 전쟁난민으로 어렵고 힘든 처지가 많았기 때문에 베트남 마피아의 악명이 높다. 상대적으로 고학력자가 많이 이민한 한국계 미국인이나[3] 미국에 정착한 지 오래 된 일본계 미국인과 공직, 학력 등 상승 욕구가 강한 중국계 미국인 등과 달리 20년 내전, 내전 이후 공산 정권을 피해서 아무 밑천 없이 맨몸으로 달랑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이탈리아계 미국인과 비슷하다.
정치적으로는 네오콘 성향의 반공주의자들이 많은 편이라 타 아시아계에 비해 보수적이다. 베트남계에서도 세대별로 성향이 갈려서 1990년대 이전에 미국에 온 사람들은 공화당 지지율이 높고, 1990년대 미국-베트남 수교 이후로 온 사람들은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하다. 이후에 냉전이 종식되고 이주 해 온 통일베트남계 이민자들[4]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전반적으로 반공적인 색채가 옅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다른 아시아계 커뮤니티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다. 실제 선거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2008년 대선에서는 베트남계 미국인의 67%가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에게 투표했고, 2012년 대선에서도 베트남계 미국인의 54%가 공화당의 밋 롬니 후보에게 투표해서 아시아인 전체(76%→77%)나 한국계(64%→78%) 등이 버락 오바마를 주로 지지한 것과 대비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역시 공산당을 극도로 증오하는 쿠바계 미국인과 베네수엘라계 미국인들이 있다. 이들도 쿠바 혁명 이후 숙청을 피해 다수가 플로리다주에 정착했는데, 플로리다에 히스패닉 인구가 상당함에도 공화당 지지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반공 성향의 쿠바계 이민자들 때문이다.
다만 16년 대선에서는 힐러리 지지율이 48%를 찍었고 트럼프는 고작 20% 밖에 받지 못했다. 그리고 무응답은 29%를 기록했다.https://www.google.com/amp/s/fivethirtyeight.com/features/vietnamese-americans-are-no-longer-a-lock-for-the-republican-party/amp/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면서 민주당내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커짐에 따라 공화당 지지율이 다시 오르는 현상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은 베트남 공산당 일당 독재를 반대하여 망명한 경우도 있다.
남베트남의 국기를 들고 행진하는 베트남계 미국인들이다.
이 역사적 배경 때문에 남베트남계 이민자들은 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에 대한 증오가 엄청나고 북베트남계 이민자들과 충돌도 자주 일어난다. 예를 들어 베트남 요리 식당에 금성홍기가 걸려있으면 바로 쳐들어가서 금성홍기를 떼어내라고 난리치고, 말을 안 들으면 강제로 금성홍기를 떼어낸 뒤 황저삼선기를 걸어놓는 식이다. 그리고 그 황저삼선기가 걸려있으면 바로 북베트남계 이민자들이 다시 황저삼선기를 내리고 금성홍기를 걸어놓고 무한반복.[5] 그래도 베트남에 남아있는 가족친지들에게 송금을 하거나 투자를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남베트남계 이민자라고 해도 베트남 경제에 의외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 경제가 성장기조를 타기 시작하자, 상당수 베트남계 미국인들이 베트남으로 가서 기업을 차리기도 했고, 일부는 베트남 국영기업 임원진이 되기까지 했으며, 베트남 부동산 시장의 큰 손 중 하나가 베트남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베트남 본토인들에게 조국을 싫어하면서 정작 부동산 장난질로 거액을 긁어모은다면서 시기와 질시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사정은 쿠바계 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1999년에 한 젊은 베트남인이 미국의 베트남계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리틀 사이공에 있는 그의 비디오 가게에 호찌민의 사진을 걸었다가 남베트남계 이민자들의 거의 테러에 가까운 분노가 섞인 항의를 받았을 정도.###[6] 한국 지상파 뉴스에서도 해외토픽 부분에 당시 상황이 나왔는데, 중장년의 베트남계 이민자가 격렬하게 항의하면서 경찰이 출동하면서 말리자 "호찌민의 사진을 철거하지 않으면 나는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라고 절규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가끔 베트남계 간의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질 경우 거의 대부분 남베트남계 vs 북베트남계의 싸움이 많다. 물론 가끔씩 베트남 공산당은 싫어하면서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을 이겼다며 자부심을 가지는 부류의 사람도 없지는 않다.
이렇듯 베트남계 이민자 사회 내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보트 피플로서 망명해 온 구세대 이민자들과 1990년대에 서방과 베트남의 관계가 정상화된 이후 유학이나 사업 등의 이유로 정상적으로 이민을 온 전후 세대 이민자들 사이의 갈등이 크다. 1990년대 이후 많은 수의 통일 베트남 출신 베트남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 원래 이민자들의 도시이며 베트남계 이민자 공동체도 큰 뉴욕에 정착하였으나, 이런 저런 문제로 이전부터 뉴욕에 정착해 있던 기존 이민자 사회의 텃세 때문에 위치적으로 가까운 필라델피아로 내려가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걸쳐 필라델피아에는 상당한 규모의 베트남계 공동체가 생기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통일 베트남 내부에서 남부와 북부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지역감정이 심한 것과도 비슷한 양상이다.
김씨처럼 미국인 중에 Nguyen이란 성이 많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다만 발음은 '윈([wiːn])'이나 '웬' 등으로 영어화되어 불리는 경우가 대부분. 이밖에 주로 트랜(Tran), 호(Ho) 등의 성씨를 갖고 있다.
2012년 퓨 리서치 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종교적으로는 불교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아서, 전체의 43% 이상이 불교 신자다. 그리고 베트남 공산화 후 추방당한 가톨릭 및 개신교 신자들도 많이 정착하여 36%를 차지한다. 미국에서의 에볼라 유행 당시 감염되었다가 완치되어 화제가 된 간호사 니나 팸이 베트남계 가톨릭 교도다.
이들에 대한 자조적인 심정을 읊은 노래로 25years가 있다. 몬더그린 때문에 웃긴 노래로 들릴 수 있지만 알고 보면 매우 진지한 가사로 그들의 애환을 제대로 표현한 곡이다.
3. 유명한 베트남계 미국인
- 데이비드 트란(데이비드 쩐): 미국의 식품회사 후이 퐁 푸드의 대표. 중국계 화교 혈통의 보트피플 출신이며, 스리라차 소스의 개발자로 유명하다.
- 매기 큐: 미국의 배우.
- 키호이콴: 미국의 배우.
- 라이스검: 미국의 유명 유투버. 구독자 1,000만대의 인기 유투버다.
- 뚜언 아인: 아시안 프린스의 모델이 된 가수.
- 뚜이 창(Thuy Trang)[7] : 여배우. 마이티 모핀 파워레인저에서 트리니 콴(옐로 레인저) 역할로 유명하다. 2001년 교통사고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망.
- 더스틴 응우옌
- 댓 응우옌: 본명은 응우옌떤닷(Nguyễn Tấn Đạt). 한때 NFL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주전 라인배커. 부모는 태어나기전 사이공 함락때 베트남을 탈출했고 이후 미국으로 왔으며 댓은 미국 아칸소주 베트남 전쟁 난민캠프에서 태어났다. 텍사스 A&M 대학시절 올 아메리칸 수상도 했었고 2017년 NCAA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현재 모교에서 코치생활중.
- 리 응웬: 본명은 응우옌테아인(Nguyễn Thế Anh). 메이저리그 사커 인터 마이애미 CF 소속 축구선수.[8] 미국 국가대표 경력도 있다. 2010년대 베트남 호앙 아인 잘라이 FC에서 뛰었다.
- 반 다크홈: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반(Van)을 베트남 성인 반(文)으로 추정하는 이들이 있다. 하노이 태생으로 북베트남 출신이다.
- 데이비드 다오: 유나이티드 항공 3411편 강제 하기 사건의 피해자이자 의사.
- 홍 차우: 여배우. 부모님이 보트피플로 인해 태국에 있는 난민캠프에서 태어났다. 대표작은 다운사이징, 더 웨일.
- 앤디 딘: 전 프로게이머, 경영인. 친형인 단 딘과 함께 TSM을 운영하고 있다.
- 켈리 마리 트랜: 여배우. 대표작은 로즈 티코역을 연기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 커루치 쩐: 미국의 모델. 흑인과의 혼혈. 크리스 브라운의 연인으로 유명하며 리아나와의 설전으로도 유명하다.
- 프리실라 찬: 마크 저커버그의 부인. 정확히 얘기하면 베트남 화교의 후예다.
- 쩐 호 : 켄 정의 부인.
- 쿵 리
- 크리스틴 하: 마스터 셰프 최초의 시각 장애인 출연자이자 우승자. 베트남식 이름도 있는데 하 후옌 트란. 한편 그녀의 남편은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한다.
- 라나 콘도어: 배우,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등 출연.
- 잰시 윈: 미국의 성우
- 키드 트렁크스: XXXTENTACION이 설립한 크루 Members Only에 소속된 래퍼.
- 로닌 a.k.a 뚜 람: 그린베레, 델타 포스 특수부대 복무경력이 있던 군인. 퇴역후 전술강사 등으로 활동.
- 케시: 미국의 가수.
- 코이 다오: 미국의 성우.
- 토미 팸 : 베트남계 미국인 아버지, 흑인 어머니를 둔 혼혈이다.
- 몬티 옴: 미국의 애니메이터, RWBY의 아버지.
- Justmaiko: 미국의 틱톡커.
- 타이가: 미국의 래퍼. 어머니가 베트남계 미국인이다. 카일리 제너의 전 남자친구로 유명하다.
[1] 당장 그 유명한 스리라차 소스의 개발자도 중국계 베트남인 보트피플이었다.[2] 일본의 조선적과 비슷한 사례다. 그러나 조선적은 대부분 노인이고 중년층이나 그 이후 세대는 대한민국이나 일본 시민권자들이다.[3] 인도계 미국인들과 한국계 미국인들은 의사 출신 이민자들이 많은 걸로 유명하고, 본인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땡빚을 내서라도 자식을 의사로 키우는 경우가 많다.[4] 통일 이후에 이주한 이들 중에서도 구 남베트남 지역 출신 이민자들은 반공주의자가 많은 편이다. 반면 구 북베트남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은 베트남 공산당에 호의적이며 미국 민주당을 지지한다.[5] 전세계의 베트남 요리 식당들 중 북베트남계 사장이 운영하는 곳은 금성홍기를 걸어놓으며 남베트남계 사장이 운영하는 곳은 황저삼선기를 걸어놓는다. 대체로 동구권은 전자가 많고 서구권은 후자가 많다. 다만 대한민국처럼 서구권과 친밀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북베트남계가 많은 특이 케이스도 있는데, 해당 국가들은 남베트남 멸망 이후 남베트남 유민들이 자국에 정착하지 않고 그냥 거쳐가기만 하거나 아예 남베트남 유민들이 아예 오지 않은 경우다. 사실 한국에도 보트피플이 오기는 했지만 이들을 대부분 제3국으로 보냈고, 이 때문에 한국에 주거하는 베트남인들은 거의 대부분 냉전이 끝나고 돈을 벌러 온 사람들이라서 북베트남계 vs 남베트남계간의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6] 이 유튜브 영상을 보면 수많은 베트남계 미국인들이 남베트남 깃발을 들고 시위를 하며 호치민 사진을 발로 밟고 찢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 입장에서는 사실상 원수나 다름없는 듯하다.[7] '떠이 짱'이라고도 알려져 있지만 베트남어로 발음하면 뚜이 창에 가깝다.[8] 부모는 사이공 함락 몇달전 더이상 남베트남에는 미래가 없다고 예측해서 미국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