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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어: Iranian Americans, Persian Americans페르시아어: آمریکایی های ایرانی تبار
이란 혈통의 미국인을 가리킨다. 규모는 작게는 448,722명부터 200만명까지로 본다. 주로 로스앤젤레스에 많이 살고 있다.
2. 설명
이란계의 대부분은 1980년대 이후에 미국에 유입했다. 그들은 이란 혁명을 피해 정착한 사람들이 많았다. 즉 자유주의 성향의 사람들이 많았고, 현 이란에 부정적인 편이다. 이런 점은 남베트남 탈출자의 후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베트남계 미국인이나 혁명을 피해 온 쿠바계 미국인과 비슷하다.[1]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해외에서 태어난 이란계들의 74%가 미국인일 정도로, 이란계들은 미국으로 많이 이동했다. 다만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개선된 시기에는 단순히 생계형 목적으로 이주해온 이란인들도 적지 않았는데, 이들은 이란 혁명을 피해 이주해온 이란인들과 달리 보수적인 무슬림들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이란 혁명을 피해 이주해온 이란인들 중에는 세속주의 성향의 시아파 신자들이 많긴 하지만, 수니파, 수피즘 등 다른 종파 무슬림이거나 아예 무슬림이 아닌 이들(기독교인, 조로아스터교 신자, 페르시아계 유대인, 바하이 신앙 신자, 무신론자 등)도 있다. 물론 이란이 다민족 국가인 만큼 주류 민족인 페르시아인이 아닌 아제르바이잔인과 같은 소수민족도 이주한 경우가 있다.[2]이란 혁명 당시 이란인 5만 이상이 해외에서 공부 중이었고, 상당수는 미국에 체류했다. 이들은 그대로 잔류했고, 탈출한 이란인들은 유럽이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이란계 미국인들과 이란인들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란에서 오는 여행객이나 유학생들을 보면 세속적이고 개방적이며 상당히 자유로운 그냥 미국인인 것을 볼 수 있다. 히잡을 쓴 여성은 거의 드물고, 복장도 화려하고 민소매 옷이나 미니스커트, 배꼽티, 핫팬츠 등 웬만큼 노출된 의상을 입고 스타킹, 하이힐을 신고, 파티에는 술이 끝없이 나온다. 보통 서양인과 거의 다를바가 없다. 저렇게 놀면서 무슬림이라고 주장하고, 현 이란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백미. 그리고 고향을 방문하고 남겨놓은 친척들과 연락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 종교적 성향차이에 상관 없이, 서방이 현 이란 정권에 개입하는 것에는 모두 크게 반대하는 편이다.
전체적인 소득수준이 높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많은 편으로, 인도계 미국인만큼은 아니지만 MENA[3] 출신 이민자 그룹 중에서는 가장 사회적으로 성공한 그룹이다. 2012년의 조사에 따르면 이란계 미국인의 종교구성은 이슬람교 31%, 무신론자/현실주의자/휴머니스트 11%, 불가지론자 8%, 바하이교 7%, 유대교 5%, 개신교 5%, 가톨릭 2%, 조로아스터교 2%, 기타 15%, 무응답 15%로, 이슬람교도의 비율은 2008년의 42%에서 다소 감소했다.
하지만 높은 교육,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서 은근히 인종차별을 받는 편이다. 2008년 설문조사에서 이란계 미국인들은 절반 가량이 차별을 당했다고 대답했다. 특히 공항의 보안 체크와 인종 프로파일링, 고용과 사업상에서 주로 차별을 당한다고 한다.
3. 정치 성향
이란 혁명 이후 집권한 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 신정체제로부터 피하려고 망명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현 이란의 집권세력에 반감이 매우 심한편이다. 현 이란의 이슬람정부를 부정하는 의미로, 국기도 현 이란국기가 아닌 사자와 태양문양이 그려진 혁명 이전 팔라비 왕조 시대의 국기나 또는 사자 문양을 삭제한 변형된 삼색기 국기를 주로 사용하며, 이란의 왕정복고나 세속주의 공화국 수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는 "팔라비 왕조의 왕정복고가 불가능하다면, 이란이 팔라비 구 왕가의 귀국을 허용하여, 현 이란 정부와 팔라비 구 왕가와의 화해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소수이지만 존재한다.[4]주류 망명자들이 팔라비 왕조의 세속주의 정책의 영향이 강하고, 그후 도래인들도 큰 차이는 없다. 이란에서 벌어지는 인권탄압과 비이슬람 박해에도 큰 목소리를 낸다.
다만 "이란에 대한 서방의 적극적인 내정 간섭이나 군사 무력 개입은 안 된다"며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이란의 민족주의자였던 모하메드 모사데크 총리가 CIA와 영국 SIS가 사주한 쿠데타로 축출된 이후 이란 국민들에게 분노를 키워 이란 혁명 불씨를 제공한 걸 잘 알고 있기 때문. 특히 이라크 전쟁과 이라크 내전, 리비아 내전, 시리아 내전 등 아랍 혁명 이후 더더욱 무력 개입은 안 된다며 결사반대하는 편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이란 정책에 깊은 우려를 표현했다. 2017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의해서 이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입국 금지되자, 이란계들이 들고 일어나 이구동성으로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가 이란 핵협정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탈퇴를 선언하면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는 이란의 정치상황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데, 하산 로하니가 당선된 이후로는 보수강경파가 지리멸렬해지면서 이란 의회 선거와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선거에서 모처럼 말이 통하는 인물들이 다수를 점하게 되었고, 그래서 언론통제가 완화되는 등 이란 사회의 개혁이 어느 정도는 이루어지고 있었다.[5] 하지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협상을 탈퇴하면서, 보수파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이란계 미국인들의 불만인 것. 실제로 하타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언론통제 완화 및 부분적 자유화 등 개혁조치가 진행되었는데, 조지 W 부시가 이란을 상대로 악의 축 발언을 한 뒤로는 이러한 개혁움직임이 뒤집어지기 시작해서 2004년 총선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선 이후로 완전히 격변해 버려서 문화부문과 언론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어 하산 로하니 당선 이전까지 이란 내에서 보수강경파가 득세했다. 거기에다가 악의 축 발언을 한 조지 W 부시는 정작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킨 뒤에 죽만 거하게 쑤면서 이란 내 보수강경파들의 입지만 늘려먹기까지 했다. 즉, 이렇게 사회적인 퇴행을 뼈아프게 경험한 입장에서 또한 공화당 정치인들이 이란에 대해 한다는 일이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겠답시고 개혁파를 지원하는 대신 보수강경파를 키워주는 일만 시켜버리는 꼴이고, 트럼프도 마찬가지의 입장이기 때문에 욕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게다가 남베트남계 이민자들은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다시 본국을 재방문할 만큼 정치적 분위기도 완화되고, 망명자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이민자로 온 신세대 동포들을 보기까지 20년이란 시간이 걸렸던 반면, 이란계의 이란 내에서의 연줄과 교류는 심지어 그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중립 성향 유럽 국가들을 통해 활발하게 유지됐다.[6] 애초에 조국을 다스리는 새로운 체제와의 '단절'도 그만큼 철저하지 않았던 와중에 2000년대 들어서는 비슷하게 미국 내 망명객 커뮤니티가 큰 원인 제공을 하여 아예 이라크란 나라 자체가 작살나는 걸 지켜본 이란계 미국인들은, 신권정권 자체는 반대해도 훨씬 더 온건하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나올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 세력및 종교의 교차로에서 고도의 문명을 유지한 배경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 비록 시아파가 국내외에서 대다수라고 해도 이란 땅을 거친 세력, 종교, 그리고 고요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은 이란인에게 전반적으로 뿌리깊게 박혀있으며 높은 교육수준을 현재까지 유지하지 때문에 신정패권세력을 향해서라도 감정적인 대응을 주장하지 않게 된다.
딱히 미국 내에서 편이라고 볼수있는 정당은 없다. 미국 공화당은 이스라엘 편을 강하게 들어 이스라엘의 주적인 이란에게 강경일관이며, 미국 민주당도 그정도는 아니지만 이란과의 우호도 개선 의향이 의원마다 크게 갈리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향은 여론조사에서도 대략 50%가 민주당, 1/8이 공화당, 그외는 무당층으로 나타난다.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주단위에서 진출한 이란계 여성들은 모두 민주당 간판을 달고 당선되었다.
2020년에는 대선과 같이 치러진 하원의원 선거에서 첫 이란계가 원내에 입성하였다. 바로 스테파니 바이스(Stephanie Bice)[7]로 2018년에 민주당에게 뺐겼던 오클라호마 5구[8]를 접전 끝에 따냈다. 다만 바이스 본인은 가톨릭이며, 이란계인 것은 부각하지 않았다. 하프(혼혈)이고 백인과 결혼한 만큼 이란계 정체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4. 이란계 미국인을 다룬 작품
5. 유명한 이란계 미국인
- 나샤 지벨리: 프로그래머 겸 게임 개발자. 초창기 스퀘어소프트의 게임 프로그래밍을 담당했으며 특히 파이널 판타지 III의 제작 비화로 유명하다.
- 나심 페드라드
- 나비드 네가반: 배우, 알라딘 실사영화에서 술탄 역을, 12솔져스에서 도스툼 역을 맡았다.
- 누리엘 루비니 : 경제학자
- 다라 호스로샤히: 우버 CEO
- 다르빗슈 유의 아버지 파르사드 다르비시세파트(Farsad Darvishsefat)가 이란계 미국인이었다.
- 안드레 애거시: 테니스 선수.
- 아이언 쉬크: 전직 아마추어&프로레슬러
- 야라 샤히디: 부계가 이란계, 모계는 흑인/아메리카 원주민
- 압신 고트비: 전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크리스티안 아만포: CNN 기자
- 레자 아슬란: 언론인
- 마흘라가 자베리: 모델
- 베흐자드 라자비: 전기전자연구원 겸 교수. 전자공학과에서 전자회로라는 과목을 배우게 되는데, 이 사람이 저술한 '마이크로전자회로'라는 전공책을 주로 교재로 사용한다.
- JonTron: 유튜버. 본명은 조나단 아얀 자파리(Jonathan Aryan Jafari).
- 세라 샤히: 본명 '아후 자한수즈 샤히'. 댈러스 카우보이스 치어리더 출신의 배우.
- 쇼레 아그다슐루: 배우
- 피에르 오미다이어: 이베이의 창립자이자 회장이다.
- 시나 타마돈: 애플의 부사장.
- 오미드 코데스타나: 구글의 해외영업 부사장.
- 오미드 압타히: 미국의 배우 겸 성우.
- 스티븐 베이타슈르: MLS 축구선수.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월드컵에 나간적도 있다.[10]
- 알렉스 아프라샤비: 게임 개발자. 블리자드의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선임 개발자 중 한 명이다.
- 앨런 다비리: 게임 개발자. 블리자드의 게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게임 디렉터이다.
- 샤흐럼/셰인 다비리: 앨런 다비리의 아버지이며 블리자드의 간부 직원이다.
- 샘 아스가리 : 미국의 모델. 피프스 하모니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도 있으며, 브리트니 스피어스와의 연애로도 유명하다.
- 티나 가라비 : 미국의 영화 및 다큐멘터리 감독. 현재 역사 왜곡 논란이 있는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의 감독을 맡았다. 다만 해당 다큐멘터리의 책임 프로듀서 제이다 핀켓 스미스보다는 덜 알려진 편이다.
6. 관련 문서
[1] 한국계 미국인의 한 분파인 탈북자 출신 미국인들 역시 주류(한국계 미국인들 주류부터가 반공국가인 대한민국 출신이다)에 비해서도 매우 반공 성향을 드러낸다. 다만 이란계들은 "급진적인 체제 붕괴나 외세 개입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차이가 있다.[2] 아제르바이잔계 미국인 중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영내에서 건너온 사람은 많지 않고, 이란 태생의 아제르바이잔계 이란인이 건너온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3]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region,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4] 물론 대부분은 "팔라비 구 왕가의 이란 귀국은 현재로서는 위험하다"며 결사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도 이란 정부에서도 팔라비 왕가가 망명을 접고 이란으로 귀국한다면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궐석재판에서 국외로 망명한 팔라비 왕족들에게 선고한 사형판결에 의거해 사형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5] 물론 근본적인 수준으로 개혁이 이루어진 것까지는 아니다.[6] 유명한 시사만화 페르세폴리스에서도 묘사하듯이, 혁명 이후 이란 내 사회 분위기는 엄청나게 억압적이고 독재적으로 변했어도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던 저자를 비롯해서 사람들이 해외로 들어갔다 나오는 자체는 딱히 막지 않았다. 저자의 부모도 정국이 극심하게 혼란한 시기임에도 기분전환 겸 유럽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구해온 록 포스터, 앨범 등을 딸에게 공수해준 장면도 나온다.[7] 이름으로는 짐작이 안 가지만, 결혼 전 성은 아사디(Asady)로, 부계가 이란 출신이다.[8] 오클라호마 시티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지역구[9] 제니퍼 코넬리는 연기를 할 때 이란계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과거의 자신을 투영했다고 밝힌 바 있다.[10] 아버지가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미국으로 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