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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21:15:36

수피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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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종파 (마드하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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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슬람에서 기원했지만 대다수 드루즈인들조차도 스스로를 별개의 종교로 분류한다.
  • * 일반적으로 시아파와는 별개의 종파로 분류되는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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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어디서도 찾지 못하였는데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그분이 거기에 계셨다.
- 수피즘의 창시자 메블라나 루미(Mevlana Rumî)
1. 개요2. 특징3. 현황4. 주요 분파5. 박해6. 관련 문서

1. 개요

الصُّوفِيَّة‎ / Sufism

이슬람신비주의 및 신비주의 계열 사상을 총칭하는 어휘. 현재는 전체 무슬림 인구 16억여 명 중 1억명 정도에 해당하는 소수로 전락하였지만 전근대에는 이슬람권 전반에서 유행하였다. 수피즘을 이슬람의 종파 중 하나로 정의하는 것은 오해와 혼동을 불러일으키기 쉬운데 수니파시아파 모두 다양한 수피 종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아프리카에서 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매우 널리 퍼져 있다. 금욕과 고행을 중시하고 청빈한 생활을 이상으로 한다. 수피라는 말의 어원은 불명확하지만 수프(양모)를 몸에 걸친 것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여겨진다. 8세기 무렵부터 나타나서 12~13세기 이후에 많은 교단이 조직되었다.

2. 특징

수피 신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정통 이슬람이 전반적으로 율법적·의례적인 종교로서 영혼의 만족이 없는 세속적 종교 형태에 머물러 있자 이에 만족하지 못한 이슬람 신학자들이 인간의 내면적 변화를 촉구하면서 신에게 가까이 가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신비주의 종교로 창립한 것이 수피즘이라고 한다. 수피즘은 초기에 인간의 탐심을 부정하고 자기를 부정하면서 금욕주의적 형태를 띠고 하나님에게 접근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였다. '수피'는 가난을 상징하는 양털옷을 입고 금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수피즘은 정통 이슬람과 쿠란의 가르침에 의해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인간이 받을 길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하면서 그들 주변의 문화적 샤머니즘이나 범신론과 혼합된 종교이며 꾸란과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해당되지 않은 '하나님의 내재' 신학을 창안하였다. 그러나 수피들은 그 정통성에 대한 의심과 정죄를 피하여 꾸란에 기록된 한 개의 구절인 "…인간의 목에 있는 혈관보다 내가 더 인간에게 가까이 있노라(Sura 50:16)"를 근거로 '초월적 하나님'은 동시에 '내재적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수피즘은 앞이 안 보이는 꽉 막힌 율법주의나 사나운 무기로 성전이나 테러를 일으키는 원리주의도 아닌 위와 같이 자기 부정과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온건한 이슬람'이라는 이미지를 세상에 보이면서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이를 장려하게 되었다.

수피즘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노래 부르는 전통이 있는가 하면 묘한 이름의 ‘술취한 수피’라는 전통도 있다. 이런 전통을 고수하는 수피들은 평상시의 의식 상태와는 다른 일종의 환각상태를 경험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실험했다.

이들은 예를 들어 단식을 하거나 밤새워 기도를 드린다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반복해서 주문처럼 부르는 지크르/디크르(Zikir/Dhikr)를 통해 이를 성취했으며 쉬지 않고 계속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거나(메블레비 계파), 반복적인 노래를 부르든지 아니면 마약이나 커피를 복용하여 환각상태를 유도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이들을 술 취한 수피(drunken sufis)라고도 불렀다.

그런 한편 ‘말똥말똥한 수피’(sober sufis)라고 불리는 수피 계파도 있어서 이 계파의 창시자격인 알주네이드(910년 사망)같은 지도자는 술 취한 수피들은 위험할 수 있으며 자기 멸각이 반드시 정상의식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수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그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룬 자는 다시 정상생활로 돌아와서 보다 절제되고 완성된 인격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3. 현황

전근대에는 이슬람권 전반에서 수피즘이 유행하였으며 특히 원래 불교 문화권이던 중앙아시아나 힌두교 문화권이던 남아시아에서는 수피즘 교리가 불교 및 힌두교와 유사한(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 해서 상당수의 현지인들이 수피들의 선교를 계기로 무슬림이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무슬림 지식인들 사이에서 서구 열강이 이슬람 세계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수피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근현대 등장한 이슬람 모더니즘, 와하브파, 살라프파가 수피들을 적대하기 시작하면서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다. 비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전근대에는 무속 신앙과 연관된 터부가 많았으나 80, 9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관련 터부가 상당수 소멸한 것과도 유사하다.

모로코는 현재도 수피즘이 유지되고 있는 나라다. 이는 모로코의 지리적 특성에도 기인하는데 북아프리카의 다른 지역과 다르게 모로코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19~20세기 아랍권의 이슬람 개혁 운동(및 반튀르크+반수피 운동)의 영향을 더 적게 받았다. 2010년 모로코 정부가 재정적으로 크게 지원하여 수피즘을 확산시키고 이슬람 근본주의와 싸우게 하여 이곳에서는 수피즘에 의해 근본주의가 물러났다.

세네갈에서는 애니미즘과 혼합된 수피즘이 정통 이슬람 세력보다 강하고 모스크의 이맘보다 수피의 마라부트가 더 큰 권한을 행사한다. 세네갈 수피 아마두 밤바가 창설한 무리디야 종단은 세네갈 인구의 1/3을 차지하고 세네갈의 가장 강력한 정치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데 세네갈의 두 번째 도시인 투바에 근거지 및 모스크와 종교학교를 세우고 농장을 잘 경영하여 부를 획득하였다. 국가는 이곳을 통제하지 못하고 무리디야 종단과 상의하고 권력을 분배한다. 덕분인지 세네갈은 나이지리아와 다르게 보코 하람 같은 쿠트비즘 성향 단체들이 준동하지 못하는 편이다. 감비아, 말리, 니제르도 수피즘의 영향이 상당한 편이다.

캅카스체첸 공화국이나 다게스탄 공화국 등도 수피즘이 대세이며 체첸에서는 18세기 말~19세기에 수피 이맘을 지도자로 추대한 신정국가가 러시아 제국과 항전했다. 러시아에 복속된 후에도 체첸은 수피즘 세력이 강하지만 체첸 전쟁 때는 1차~2차 전간기에 유입된 무자헤딘이슬람 근본주의와하브파를 전파하였지만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 같은 만행을 근본주의자들이 저질러 민심을 잃은 데다 러시아의 토벌이 겹치면서 다시 수피즘의 세력이 강화되었다.[1]

원래 수피즘의 원산은 중앙아시아로 이슬람화하기 이전의 중앙아시아는 불교나 마니교가 대세였다. 중앙아시아 주민들이 불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인도 철학과 과학이 아랍어, 페르시아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수피즘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파키스탄, 인도의 무슬림 상당수가 수피의 영향으로 개종한 불교, 힌두교도들의 후손이다.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인들은 수피즘으로 개종한 후 서진하여 아나톨리아에 정착한 이후에도 수피즘을 고수하였고 튀르크인들이 믿는 수피즘과 아랍인들의 이슬람 신앙 사이의 이질성은 아랍권에서 반튀르크 감정을 부채질했다.

알바니아도 수피즘의 일파인 벡타시 교파의 세력이 강한데 외면적으로 이슬람 계율을 지키는 것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마음만 지니면 무방하다는 것으로, 벡타시 모스크에서는 심지어 이슬람에서 금하는 술을 빚어 팔기도 한다. 종교간의 화합을 특히 강조하여 이웃 그리스도교와 우호관계를 맺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서 벡타시 무슬림들은 금요일에는 모스크를 가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나가는 경우도 많았고 오스만 튀르크가 알바니아를 정복했을 때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데 거부감이 없게 만들었던 요인으로도 꼽힌다. 대표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그리스도인으로만 구성된 근위대 예니체리 대원들도 대부분 벡타시 무슬림이었다.

서구권인 미국, 유럽에도 수피즘 신자가 있다. 이란도 과거에는 수피즘이 우세했는데 수피 성인들 상당수는 잘랄루딘 루미를 비롯한 페르시아인이었고 이란의 국민 시인 하페즈도 수피였다. 튀르키예에서도 수피즘 신자들이 상당한 편이다.

4. 주요 분파

5. 박해

그러나 온건한 이슬람을 표방하는 수피즘이라고 해서 세속주의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수니파 주류들보다는 낫지만 수피즘에서도 샤리아를 중요시하는 건 마찬가지다. 예컨대 람잔 카디로프가 다스리는 체첸 공화국은 러시아 연방법과 별개로 체첸식 샤리아 율법이 적용된다. 하지만 여전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는 '이단' 종파로 공격과 박해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슬람 세계에서 수피즘에 대한 박해는 역사가 그다지 깊지 않다. 일방적으로 박해를 당한 게 아니라 수피즘을 밀어주던 튀르크족들이 한발리파를 탄압했던 역사도 있는 등 한발리파와 수피즘은 서로 치고받던 사이다. 실제로 수니파, 시아파의 문제를 떠나 지역적으로도 분화가 심하게 벌어지던 이슬람을 최소한 교리적으로는 분열하지 않도록 아교 역할을 했던 것이 수피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초기 이슬람 세계에서 수피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울라마와 데르비시에 의해 튀르크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 수피즘으로 개종했기 때문이었다.[2] 수피즘에 대한 반감은 아랍인의 반튀르키예 감정과 상관 관계가 크다.

이슬람 세계에서 수피즘에 대한 노골적인 박해는 보통 와하비즘이 확립된 19세기 초 정도에 시작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슬람 역사에서도 극히 최근의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에 유럽인들이 이슬람권을 침탈하기 시작하면서 수피즘에 대해 깊은 문화적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이로 인하여 수피즘 자체가 친서방적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수피즘에 대한 평판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견해가 있으며 반튀르키예 감정이 없는 모로코에서는 거의 정설로 취급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근현대에는 탈레반의 준동 직전까지만 해도 각지에 수피 성원들이 성행하고 있었으나 비극적이게도 수많은 수피교도들이 탈레반 일당에게 "비무슬림" 취급을 받으며 학살을 당한 전례가 있었다. 원래 파슈툰인 외에도 수많은 산악 소수민족들이 각각 존재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피즘의 전파는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3] 그런데 70년대 이슬람 원리주의가 중동에 확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파슈툰인을 주로 집중동원한 무자헤딘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와하비즘 극단주의자들이 파슈툰인에 집중적으로 원리주의를 주입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전란에 휩싸이면서 수천만의 파슈툰인 전쟁고아, 저소득층은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 극단주의 마드라사에 들어가 먹여주고 재워주는 대신 꾸란 교육만 받고 테러리스트로 변질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낳았으며 파키스탄 군부도 자기들의 보신과 국가 안보, 자국에도 있는 파슈툰인의 관리를 위해 탈레반을 몰래 이용하는 방식으로 컨트롤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이 완전히 새로운 이슬람 극단주의의 수도처럼 변질되어 버렸다. 여기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수피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해외로 망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파키스탄도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수피즘 신자들이 영국과 미국 등 서방권으로 이주한 경우도 적지 않다.

수피즘도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하다 보니 주류 이슬람권에서 수피를 보는 관점 역시 해당 수피 종파의 성향이 어떠한가에 따라 다르다. 알가잘리처럼 주류 이슬람과 그닥 교리상 충돌이 없는 수피도 있었던 반면 스페인 무르시아의 이븐 알 아라비, 동튀르키스탄 카슈가르의 아파크 호자 같은 경우 주류 이슬람 교리랑 완전 따로 놀다시피 하는 수피 교단주나 종파 등등 차이를 따지고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일례로 중세 이슬람 한발리파 신학자 이븐 타이미야는 수피들과 친분이 있었으나 당대 대표적인 수피 신학자 이븐 알 아라비가 이단적인 교리를 내세워 이슬람을 오염시키는 사탄의 동반자라고 저격한 적이 있었다.

6. 관련 문서


[1] 살아남은 체첸 반군들은 러시아의 추적을 피해 해외로 망명하거나, 이마라트 캅카스 같은 와하브파 무장단체에 가입하거나, 돈바스 전쟁 때 반러 우크라이나 의용군에 가담하거나, IS에 가담하는 등 각자도생했다. 체첸 본토에서도 러시아 산하 친러 정권인 체첸 공화국이 반러 근본주의 세력을 탄압한다.[2] 튀르크인의 원시신앙이었던 텡그리와 수피즘 사이의 유사점이 꽤 많았는데 이를 노린 수피들의 활약으로 튀르크인에게 성공적으로 이슬람을 전파시킬 수 있었다.[3] 타지크족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대표적 수피즘계 수니파 이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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