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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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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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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러시아 지배 이전2.2. 제정 러시아2.3. 현대
3. 지리4. 정치5. 인구6. 종교7. 언어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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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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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Чече́н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Чечня́)
체첸스카야 례스푸블리카 (체치냐)
아바르어 Чачан Республика (Чачан)
차찬 레스푸블리카 (차찬)
오세트어 Цӕцӕны Республикӕ (Цӕцӕн)
처처느 레스푸블리커 (처천)
다르기어 Мичихичла Республика (Мичихи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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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미크어 Мычыгъыш Жумгьурият (Мычыгъы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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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어 ჩეჩნეთის რესპუბლიკა (ჩეჩნეთ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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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Chechen Republic (Chech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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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방 북캅카스 연방관구에 위치한 체첸인 주도의 자치공화국. 수도그로즈니(Грозный, Grozny)다.

2. 역사

러시아와의 제1차 체첸 전쟁제2차 체첸 전쟁도 겪었다. 아직도 국경 지대에서는 소규모 전투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치안이 위험하다.

2.1. 러시아 지배 이전

이슬람이 전래되기 이전의 체첸인들은 자신의 역사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고고학상의 유적으로 오래전부터 동북캅카스에 살았던 것이 증명되었다. 체첸인인구시인의 선조라고 여겨지는 나흐족에 대한 기록은 7세기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몽골 제국티무르 제국의 공격을 받았으나 저항하여 티무르의 인정을 받아 검을 하사받기도 했다고 한다.

16세기 말엽부터 동쪽 다게스탄으로부터 이슬람이 유입되어 점차 퍼져나갔다. 한편 같은 무렵 모스크바 대공국을 중심으로 정치적 통일을 추진하며 국가 형성을 행하던 러시아는 17세기 말까지 전시베리아를 병합하였고 18세기에는 남하를 개시해 발트해 연안, 흑해 연안, 카자흐 초원, 만주 동북부 등을 점차 병합했다. 캅카스 지배의 거점으로서 북캅카스 중앙부의 테레크 주의 강변의 블라디캅카스(현 북오세티야 공화국)을 건설해 테레크 주 동쪽에 사는 체첸-인구시인의 정복을 추진했다. 이처럼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두에 걸쳐 러시아 제국에 의해 일어난 캅카스의 지배를 둘러싼 전쟁사를 캅카스 전쟁이라고 부른다.

2.2. 제정 러시아

러시아는 1801년 이란카자르 왕조를 무너뜨리고 동조지아를 병합해 남캅카스까지 세력을 뻗었다. 이리하여 1828년까지 오스만 제국령의 아자리야(조지아 서남부 지역) 지역을 제외한 캅카스의 거의 전역이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왔지만 그 중에서 체첸인을 필두로 한 다게스탄과 체첸 지역은 러시아의 지배에 격렬히 저항했다. 이들은 이맘 샤밀의 지휘 하에 1859년까지 격렬하게 항쟁하지만 결국 굴복했다. 단 산악지대에서 몇 년간 저항이 더 이어졌으며 이후에도 러시아가 혼란스러워지면 바로 봉기를 일으켰다.

체첸인은 18세기 전반까지 이슬람 수니파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어 수피파(이슬람 신비주의)의 성직자들이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서게 되었다. 체첸이나 다게스탄 제민족들은 이러한 수피 교단의 조직력과 결속에 의지하여 러시아에 대한 저항을 계속해 왔다.

2.3. 현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내전에서 승리한 볼셰비키소비에트 러시아를 건설하였다. 1918년 소비에트 러시아는 독일 제국한테 제1차 세계 대전 항복을 하면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1918년 3월 캅카스 일대는 동맹국오스만 제국의 관할로 넘어갔으며 체첸도 오스만 제국한테 넘어갔다. 1918년 11월 제1차 세계 대전이 동맹국 전반의 패전으로 마무리되면서 체첸 일대는 권력 공백 상태를 맞이했는데 오스만 제국이 캅카스 일대의 지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공백 상태를 맞은 체첸은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에 가담했지만 1921년 러시아 내전에서 적군이 승리함에 따라 체첸은 결국 소비에트 러시아 소속으로 바뀌었다.

소련 설립 후 블라디미르 레닌의 민족자치 방침에 따라 1924년 체첸 자치주, 인구시 자치주를 설립했는데 1934년에는 병합하여 체첸-인구시 자치주로, 1936년에는 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승격하였다.

이후 정권을 쥔 이오시프 스탈린은 민족공화국에 의한 연방제를 전제로 한 레닌주의 대신 민족자치공화국을 중앙정부의 집권적 통제 하에 두는 스탈린주의를 취했기 때문에 민족자치의 실태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몇 차례 체첸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지만 이때마다 스탈린은 일단 달래서 적당히 봉기를 수습한 이후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봉기 지휘부를 제거하는 수법으로 체첸 지역을 통제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2년에는 소련에 침투한 나치 독일군의 일부가 북서캅카스에 도달하였는데 스탈린 정권은 체첸인을 포함한 반러시아적 민족이 독일군과 연합하여 저항하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며 실제로 독소전이 발발할 무렵 일부 체첸인들이 무장 게릴라 활동에 돌입하기도 했다. 독일군 침투 후 1944년 2월, 스탈린은 체첸-인구시인의 대독일 협력을 의심하여 체첸-인구시인 50만 명을 중앙아시아나 시베리아로 추방한 후 자치공화국을 해체했다.

1953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정권을 취득한 후 1956년 스탈린 비판을 개시하였다. 스탈린이 행한 체첸-인구시인 민족 추방도 비판 대상이 되어 1957년 두 민족은 체첸으로의 복귀와 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재건을 인정받았다. 1957년 1월 9일, 체첸-인구시 ASSR의 원복

소련 붕괴 후에는 러시아 연방과의 대대적인 분쟁인 체첸 전쟁이 발발하였다. 1991년에는 분리주의 성향의 조하르 두다예프(Джохар Дудаев)[12]을 중심으로 미승인국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이 수립되기도 하였다. 제2차 체첸 전쟁의 종전(2000년) 후인 2003년아흐마트 카디로프(Ахмат Кадыров)[13]가 러시아 연방에 귀속한 체첸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오늘날의 체첸 공화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종전 후에도 체첸계 분리주의 세력은 잔존하였는데 이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의 이마라트 캅카스를 표방하기도 하였으나 지도자들과 대원들 대부분이 러시아군의 토벌로 사살당하고 남은 세력이 해외로 도주하여 2015년 말에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에 가담하면서 사실상 소멸되었다.[14]

3. 지리

파일:external/www.allrussias.com/bullet-Map_of_Russia_-_Chechen_Republic_%282008-03%29_svg.png

파일:external/faculty.unlv.edu/caucasus-map.jpg

흑해카스피해로 둘러싸인 북캅카스 지방에 속하고 캅카스 산맥의 북쪽 기슭과 평야에 펼쳐져 있다. 국토의 동쪽과 북동쪽은 다게스탄 공화국과 면하고 서쪽은 인구셰티야 공화국과 북오세티야 공화국, 남쪽은 조지아와 접한다. 면적은 17,300km².[15]

4. 정치

2021년 9월 19일 체첸 공화국의 장 선거 결과
추천인[16]
체첸 지역 지부

체첸 지역 지부

체첸 공화국 지부
투표율
후보 람잔 카디로프 이사 하지무라도프 할리드 하카예프 94.61%
득표율 99.70% 0.15% 0.12%

공개된 결과 자체는 여당인 통합 러시아가 선거 때마다 95%를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인다.[17] 현재의 체첸 수반이 람잔 카디로프인데 그가 푸틴의 측근임을 감안하면 부정선거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제 득표율에 있어서 허수가 많이 끼었다는 것도 대충은 알 수 있다. 람잔의 아버지이던 아흐마트 카디로프도 친러파였다가[18] 2004년에 폭탄 테러로 암살당했다. 이러다보니 람잔과 구 이치케리야 체첸(현 카우카즈 이슬람 토후국) 측은 물과 기름 사이다.

하지만 람잔 카디로프가 저지르는 부정부패는 매우 심각하다. 카디로프의 체첸 공화국 정부도 세속적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정책이 덜 막장일 뿐이고 부패도는 심각하다. 특히 이치케리야 체첸의 이슬람 근본주의를 유지하며 2020년에는 프랑스로 망명한 반정부 활동가 체첸인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터졌다.# 물론 푸틴과 러시아 정부도 카디로프와 체첸 자치정부의 행태가 러시아 정부의 정책을 대놓고 어기는 월권임을 알지만 복잡한 체첸 문제와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체첸 공화국 안에서 자의로 움직인 러시아 장교를 해고시켰을 정도로 그가 선을 벗어나지 않는 정도로 묵인하는 편이다.[19]

다만 체첸 정부와 체첸인들이 푸틴과 러시아 연방을 지지한다는 것이 러시아인을 좋아한다는 소리는 전혀 아니다. 람잔 카디로프가 한 말 중에는 "나는 16살때 러시아인을 처음으로 죽였다(первого русского он убил в 16 лет)." 같은 소리도 있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 아흐마트 카디로프가 한 말은 "우리 체첸인은 1명마다 150명의 러시아인들을 죽여야 전쟁이 끝날 것이다!(Каждый чеченец должен убить 150 русских, и тогда война в Чечне прекратится!)"였을 정도로 체첸인들은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다.[20] 단지 독립투쟁을 주도할 구심점을 맡을 유력자들은 전부 암살당하거나 감옥에서 맞아죽은 데다[21] 러시아의 타 공화국들과는 달리 변변한 지역정당도 없고, 있다하더라도 부정선거로 진출을 막기때문에 독립을 포기하면서 체념을 했을뿐이다.

그래도 시리아에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격퇴 작전 중 전사한 알렉산더 프로코렌코의 이름을 딴 거리가 수도 그로즈니에 생긴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으니 러시아인에 대한 감정은 다소 복잡한 듯하다.

2003년 체첸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아흐마드 카디로프 대통령과 세르게이 아브라모프 총리가 잇달아 암살당하자 체첸 의회 간선제로 대통령(수반)을 선출하기 시작했다.

2016년 체첸 공화국 수반 선거에서 람잔 카디로프 현 수반이 97.94%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2020년 개헌 국민투표에서 개헌 찬성율이 97%로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2021년 체첸 공화국 수반 선거에서 람잔 카디로프 현 수반이 99.7%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카디로프는 당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방역 실패를 이유로 사임했고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사표를 반려하고 통합 러시아 후보로 지목했다.

5. 인구

1989년 행해진 체첸/인구시 공화국의 통계에서 체첸인이 95만 6879명, 인구시인이 23만 7438명, 러시아인이 26만 9천 명이었다. 이후 서부가 인구시 공화국으로 분립했기 때문에 인구시인의 인구가 대폭으로 감소했고 내전과 사회 불안으로 대부분의 러시아인이 체첸에서 퇴거했다. 2010년 기준으로 체첸 공화국에 남은 러시아인은 약 2만 4천 명이다.

6. 종교

대부분의 체첸인들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동다게스탄에서 전해진 수니파 이슬람을 믿으며[22] 대부분 테레크 카자크군의 후예인 체첸 내부의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다. 수도 그로즈니에는 현재 러시아 정교회 교회 하나가 남았다.

과거 체첸 분리주의자들 중 와하브파에 물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영향으로 한동안 이슬람 극단주의가 성행한 적이 있었으나 람잔 카디로프가 체첸의 전통 이슬람인 수피파로 회귀한다는 모토를 내세워서 이를 척결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체첸 자치정부부터가 이슬람주의가 심하며 법률을 체첸식 샤리아 율법을 적용하여 러시아와 해외에서 비판을 받는다. 특히 2015년에 샤를리 엡도에서 무함마드 풍자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게다가 성차별도 심하다. 아무리 체첸 고유의 수피파가 중동 같은 동네의 정통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보다는 온건하고 세속적이라고는 하지만 샤리아라는 이름이 어디 안 가듯이 여성들의 복장 규정 및 단속은 물론이고 복장이 불량하거나 히잡 미착용자는 온갖 불이익을 가하는것도 모자라 이를 정부에서 비호한다. IS 반군을 막겠다고 내놓은 대책이 막장인데 이혼한 부부를 강제로 재결합시키는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비난을 받았다.# [23]

사진(Фотосушка в Грозном (20 новых фото + репортаж)) 수도인 그로즈니 기준이긴 하지만 중동과는 확실히 뭔가 다름을 알 수 있다. 특히 히잡 관련해서. 중동 여성들처럼 꽁꽁 싸매기도 하지만 저렇게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 정도[24]로 때우는 모습도 눈에 띈다.

10대 학생들도 같이 교실에서 수업한다. #

러시아의 다른 지역 및 이슬람권처럼 체첸에서도 성소수자의 입지가 나쁘다. 2017년에는 카디로프의 주도하에 게이 수용소라는 곳을 설치하고 강제 구금했다는 기사가 올라와 서방권 및 러시아 성소수자들이 항의했다.# 2017년 4월에는 게이 100여 명이 체포되고 최소 3명이 살해되었다.# 2019년 초부터 체첸 공화국이 성소수자 탄압을 재개하면서 2명이 고문으로 숨지고 40여 명이 구금되었다.#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아도 게이라는 사실이 가족에게 발각되면 대부분 명예살인당한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부모가 이해해 주는 척 위로하는 사이 친척들에게 몰래 알리는데 한밤중에 힘센 남자 친척들이 몰려와 자고 있는 커밍아웃한 게이를 덮쳐서 물을 채운 욕조에 처박거나 베게로 눌러 외상 없이 죽인 뒤 병사로 위장한다.

2018년 1월 9일에 체첸에서 현지 인권운동가가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자 서방측은 석방을 촉구했다.#

체첸인 이슬람주의자들이 시리아, 아프간 등 전쟁터에 반정부 전투원으로 참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보통 고급 전력 취급을 받는다. 실제로 장비에도 신경 쓰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보통 반군보다 무장 수준이 뛰어나다.[25]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체첸인 조직의 사진

7. 언어

체첸의 공용어는 북동캅카스어족에 속하는 체첸어다. 러시아어도 사용된다.

8. 기타


[1] Росгвардия[2] ВНГ России[3] 러시아 대통령 직속 기관인 중앙 정부 산하 조직으로, 본래 향토군과 같이 지역 경비를 위한 조직이나 실제로는 국외 전쟁에 적극적으로 투입시키고 있다. 산하 부대 중 그로즈니 방어 조직인 제141특수차량화연대, 베덴스키 방어 조직인 제249독립특수차량화대대가 대표적이다.[4] Росгвардия[5] ОМОН[6] 러시아 대통령 직속 기관인 중앙 정부 산하 조직으로, 본래 지역 내 대테러부대 역할이지만 실제로는 국외 전쟁에 직접 투입되어 군 특수부대 중 하나처럼 운영되고 있다.[7] на транспорте[8] Росгвардия[9] СОБР[10] 러시아 대통령 직속 기관인 중앙 정부 산하 조직으로, 본래 지역 내 대테러부대 역할이지만 실제로는 국외 전쟁에 직접 투입되어 군 특수부대 중 하나처럼 운영되고 있다.[11] 민선 임기 외에 대통령이 지명하고 의회에서 승인한 관선 방식으로 2회 임기 수행, 대행으로 지명되어 2회 임기 수행[12] 체첸어 표기는 '두다게란 조우하르(ДудагӀеран ЖовхӀар)'.[13] 체첸어 표기는 '카디르게란 아흐마드해지(КъадиргӀеран Ахьмад-Хьаьж)'.[14] ISIL은 2019년에도 체첸 공화국에서 테러를 일으킨 바 있다.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15] 강원특별자치도서울특별시를 합친 정도다.[16] 선거 후보자 정보에 정당으로 표기되지 않고 추천자로 기재됨[17] 2016년 체첸 공화국 수반 선거에서는 약 97%의 득표율로, 2021년 체첸 공화국 수반 선거에서는 99%에 달하는 득표율로 통합 러시아 소속 람잔 카디로프가 당선되었다.[18] 원래는 반러파였으나 1999년 체첸의 다게스탄 침공을 계기로 전향했다.[19] 무엇보다 3차 체첸 전쟁을 우려하는 것이 크다. 2번에 걸친 체첸 전쟁만 해도 체첸인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러시아군도 전사자가 무려 1만명이 넘게 나왔고 체첸 반군의 테러로 민간인 피해까지 발생했을 정도로 피해가 상당했다. 푸틴과 러시아 정부도 카디로프와 체첸 자치정부의 행동이 월권행위이지만 그가 도를 넘어설 정도가 아닌 이상 함부로 처벌하면 반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체첸에는 반러 감정과 분리주의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반란이 언제든지 일어나고도 남을 수 있다.[20] 반대로 러시아인들도 체첸군이 러시아인들에게 저지른 테러로 인해 체첸에 대한 감정이 나쁘다.[21] 러시아는 의도적이다 싶을 정도로 강경파보다 온건파를 먼저 족쳤다. 당장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 발생 직후 온건파이자 테러에 반대했던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범인이었던 샤밀 바사예프보다 먼저 암살당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바사예프는 2006년에야 죽었는데 이미 기존의 온건파들이 다 죽은 뒤였다. 게다가 체첸 독립에 긍정적인 러시아인들이 있어도 공개적으로 말하는 즉시 방사능 홍차를 대접받거나 총알세례 받고 사망현장도 물청소 당하는 등 비참한 최후를 맞기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한다.[22] 2010년 기준 그로즈니 인구 95%가 이슬람교도일 정도다.[23] 러시아는 세속 국가인 데다 샤밀 바샤에프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에 시달렸던 나머지 이슬람 극단주의에 치를 떠는 정도가 미국과 유럽 못지 않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를 막으려고 미국이나 유럽보다 더 강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중동식이면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다. 중동식으로 간다면 나중에 러시아에서 독립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가 용납할 수 없다.[24]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보이도록 뒤로 묶거나 정수리 부분만 가리고 머리카락의 대부분을 드러내는 수준이다.[25] 사실 체첸의 이슬람주의자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은 러시아 입장에선 가주면 감사할 일이다. 언제든지 범죄자나 반군이 될 수 있어 골치아픈 이슬람 과격분자가 러시아를 자발적으로 떠나 주는 데다 외국에서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알아서 지 목숨도 던져 주고 외국 전쟁터에서는 국내보다 눈치볼 게 없기 때문에 시리아 정부군 지원을 해주는 특수부대의 작전과 공군의 공습으로 암살하기도 쉽기 때문이다.[26] 이쪽은 체첸보다 더 가난하다.[27] 우크라이나/경제 문서에 서술되었듯 몇몇 지역은 인구셰티야 이하 수준이며 심지어 루한스크 지역은 인구셰티야의 절반 미만 수준이다.(...).[28] 유대인 자치주(0.788)와 투바(0.787)의 인간개발지수가 체첸보다 낮긴 하다.[29] 참고로 인간개발지수가 가장 높은 모스크바는 0.940이며 상트페테르부르크는 0.918이다.[30] 부다노프 대령은 강간 혐의는 부인했고 살인만 인정했는데 체첸 여성이 민간인 저격수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우익 민족주의 세력은 이 주장을 전적으로 인용해 그를 도리어 억울하게 무고당한 전쟁영웅이라고 미화했다. 재판결과 부다노프 대령은 전범혐의가 다 인정되고 군인의 명예도 박탈됐지만 장례식은 명예 군인식으로 성대하고 치러지고 러시아 정치인들과 군인들, 우익인사들이 대거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