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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9 08:26:28

타히르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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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ahirid_Dynasty_821_-_873_(AD).png
타히르 왕조(821~873)



1. 개요2. 배경3. 이란 르네상스4. 멸망

1. 개요

821~873년까지 메르브 및 니샤푸르를 거점으로 호라산과 이란 중부를 다스린 수니파 토후국으로, 페르시아 문화의 부흥을 이끈 첫 번째 이란계 왕조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2. 배경

아라비안 나이트》의 배경이기도 한 아바스 왕조 제5대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 시기의 태평성대 이후, 알 아민알 마문 두 형제 간에 일어난 장기간의 내전(제4차 피트나, 811~827)은 아바스 제국의 국력을 약화시켜 놓았다. 알 마문의 통치로 어느 정도 회복되긴 했지만 지방에 대한 통제력은 약화되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광대한 제국을 통치하는데 어려움을 느낀 하룬 알 라시드는 제국을 양분하여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 등의 서부는 알 아민에게, 이란과 호라산 등의 동부는 알 마문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이가 안좋았던 이복 형제는 하룬 알 라시드가 붕어한 809년부터 싸웠고, 813년에는 알 마문이 바그다드를 포위한 후, 알 아민이 암살되자 마문이 유일무이한 칼리파 직위에 올랐다.

내전은 서부의 아랍 세력과 동부의 페르시아 세력 간의 알력 다툼이기도 했는데 페르시아의 전통 귀족 출신인 타히르 이븐 후세인(821~822 재위)은 알 마문을 도운 공로로 이란(호라산)의 에미르로 임명되었고, 연공만 납부하는 자치권을 부여받아 타히르 왕조의 초석을 닦았다.

3. 이란 르네상스

타히르 왕조의 수도 니샤푸르는 페르시아 문화의 부흥을 이끌며 번영했다. 타히르 이븐 후세인의 장남 탈하 이븐 타히르(822~828 재위)를 거쳐 후세인의 차남 압둘라 이븐 타히르 알 후라사니(828~845 재위)의 치세에 이르면 압둘라는 국가의 발전이 근본적으로 농민들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학교로 보내 공부시키는 법을 만들었다. 러시아의 동양학자 바르톨트는 문헌 대조를 통해 압둘라의 치세 동안 가난한 소작농의 자녀들조차 공부를 하기 위해 읍에 보내졌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압둘라가 중세 왕국에서 농민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공교육을 시행한데는 좀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타히르 왕조의 영내에 카와리지파 폭도들이 들어와 노예와 소작농들을 선동하며 난동을 피우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농민들의 자녀들을 학교로 보내면서 압둘라는 타히르 왕조 영역내의 카와라지파들이 농촌 주민들을 선동하고 다니는 사태를 제어할 수 있었다. 적어도 압둘라의 보통 교육 정책이 단순히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는 아니었던 셈이다.

타히르 왕조의 창건자 타히르 이븐 후세인은 지혜의 집을 후원한 제7대 아바스 칼리파 알 마문과 친분이 두터워서였는지, 알 마문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연구와 해석을 후원했다.

4. 멸망

타히르 왕조는 862년, 타히르 2세 이븐 압둘라(845~862 재위)의 어린 아들 무함마드 이븐 타히르(862~873 재위)가 즉위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864년에 타바리스탄에서 쉬아 계열인 자이드파 세력이 봉기하여 알라비 왕조를 세웠고, 867년에는 시스탄의 아미르이자 사파르 왕조의 개창자인 야쿠브 이븐 라이스 알 사파르가 타히르 왕조의 주요 거점인 헤라트를 점령했다. 무함마드 이븐 타히르는 속국인 사만 왕조로 하여금 반격하게 했지만 그들마저 실패하자 사파르 왕조와 평화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결국 873년에 사파르 군대가 니샤푸르를 함락하면서 타히르 왕조는 멸망했다.

이후 사파르 왕조 휘하에서 포로 신세로 지내던 무함마드 이븐 타히르는 876년, 사파르 군대가 바그다드의 아바스 칼리파조 정복을 시도하다가 다이르 알 아쿨 전투에서 아바스군에게 패배하자 석방되었다. 칼리파 알 무타미드는 무함마드 이븐 타히르에게 재차 호라산 총독 직위를 하사했으나 명목상에 그쳤고, 사파르 왕조에 반란을 일으킨 세력들이 쿠트바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 879년에 야쿠브 이븐 라이스 알 사파르가 급사했고, 사파르 왕조의 군주가 된 야쿠브의 동생 아므르 이븐 라이스는 아바스 칼리파와 협상하여 호라산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이때문에 무함마드 이븐 타히르는 명목상의 권위도 상실하게 되었다.

하지만 884년에 사파르 왕조와 아바스 칼리파 사이의 관계가 재차 악화되었고, 무함마드 이븐 타히르는 호라산 (명목상)과 바그다드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885년) 다만 5년 후 바그다드 총독위는 숙부인 우바이둘라 이븐 압둘라 이븐 타히르에게 넘어갔다가 891년에 그마저도 맘루크 출신의 바드르 알 무타디디에게 빼앗기면서 타히르 가문은 더이상 역사에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망국의 군주였던 무함마드 이븐 타히르는 910년에 쓸쓸히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