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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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1] Československá republika | ||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2] Československá socialistická republika | ||
국기 | 국장 | |
Pravda vítězí Pravda víťazí 진실은 승리한다 | ||
상징 | ||
국가 | 체코슬로바키아 국가 | |
1948년 2월 ~ 1990년 4월 1일 | ||
쿠데타 이전 | 벨벳 혁명 이후 | |
체코슬로바키아 제3공화국 |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 | |
역사 | ||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 쿠데타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동유럽 혁명 | ||
지리 | ||
위치 | 중부유럽 | |
면적 | 127,900 km2 | |
수도 / 최대도시 | 프라하 | |
정치 | ||
정치체제 | 공화제, 인민민주주의(1948~1960), 사회주의 국가(1960~1990), 연방제(1969~1990) | |
국가원수 | 대통령 | |
정부수반 | 총리 | |
구성국 |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 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 |
외교 | 대한민국: 1990년 3월 22일[3] 북한: 1948년 10월 21일[4] | |
인문환경 | ||
인구 | 15,624,021명 (1989년) | |
공용어 |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 |
민족 | 체코인 슬로바키아인 헝가리인 루신인 | |
경제 | ||
통화 | 체코슬로바키아 코루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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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8년부터 1990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를 다스린 공산주의 정권이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의 국호는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제4공화국)으로, 인민민주주의 체제하에 공화국을 경영했지만, 1960년부터 1990년까지는 국호를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연방)으로 바꿔, 사회주의 체제하에 공화국을 경영했다.
2. 상세
2.1. 체코슬로바키아 제4공화국
1946년 총선에서 다수의 의석을 차지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했다.[5] 처음에는 레지스탕스를 주도한 세력이 공산당이었던데다가 독일인을 추방하는데 앞장섰었고, 공장을 국유화하는데 반발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후 복구가 시급했기 때문에 공산당에 대한 지지여론이 나쁘지는 않았다.[6] 그러나 1947년 미국의 마셜플랜 제안을 거절한 이후로는 공산당의 지지율이 떨어졌고, 이때문에 1948년에 예정된 총선에서 공산당이 패배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는데, 결국 스탈린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게 폭동의 획책을 지시했고, 공산당도 이해관계가 맞았던지라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정변을 일으키며[7] 제3공화국은 허무하게 붕괴했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인민민주주의 헌법》에 바탕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제4공화국)을 출범시키면서 국회의원 선거를 편파적으로 실행하여 단독내각을 구성했는데, 1950년대에는 대한민국 제4공화국처럼 정보기관을 수족으로 부리는 정보통치를 실행하면서 일당 우위 정당제를 바탕으로 주권의 찬탈에 필요한 정치공작(법전의 전면 개정과 상·공·광업의 국유화)을 계속 진행했다. 1960년 7월 11일에 이르러서는 《사회주의 신헌법》을 바탕으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국했다.2.2.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1968년에는 알렉산데르 둡체크(Alexander Dubček)가 집권하게 되는데, 그는 사회주의 정권의 개혁파였으며 1968년 1월에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제1서기로 취임했다. 그는 정치 개혁과 자유화를 추구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소비에트 연방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회원국들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다. 이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이다.1969년에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연방제를 채택하면서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했는데, 소비에트 연방의 압력으로 실각한 둡체크를 대체한 구스타우 후사크(Gustav Husák)가 1969년 4월부터 1987년 12월까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서기장과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의 대통령을 겸직하면서 오랫동안 집권했다. 1987년 12월부터 밀로시 야케시(Miloš Jakeš)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서기장으로 취임했으나, 1989년 11월의 벨벳 혁명으로 인해 공산정권은 붕괴되었으며, 1990년 4월 1일,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바꾸면서 멸망했다.
[1] 1948~1960[2] 1960~1990[3] 1993년 이후 체코가 승계[4] 1993년 이후 체코가 승계[5] 다만 슬로바키아 지역에서 치러진 선거에서는 보수 성향의 민주당에게 다수당을 빼앗겼다.[6] 사실 미국에서도 뉴딜정책을 폈던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었고, 전후 영국에서도 국유화 정책을 폈던 시절이었다. 즉, 당시에는 유행이었다는 것이다.[7] 소련 공산당과 소련 외무부 및 소련군과 소련 국가안전부(MGB)가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군을 병영에 가두었으며, 체코슬로바키아의 내무부장관(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원)의 명령에 따르는 내무부 공안청의 경찰관들을 치안감부터 순경까지 공산당원으로 갈아치우고, 온 나라의 곳곳에서 파업과 태업과 휴업 및 폭동과 소란과 시위를 동시에 주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