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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09:03:50

알렉산데르 둡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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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슬로바키아의 국영방송 RTVS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위대한 슬로바키아인 100명을 선정했다.
TOP 10
1위2위3위4위5위
밀란 라스티슬라우 슈테파니크 루도비트 슈투르 안톤 스르홀렉 안드레이 흘린카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6위7위8위9위10위
알렉산데르 둡체크 구스타우 후사크 요제프 가브리크 페테르 사간 유라이 야노식
11위~100위
11위12위13위14위15위
마리카 곰비토바 요제프 크로네르 얀 쿠치악 앤디 워홀 블라디미르 메치아르
16위17위18위19위20위
요제프 라즈 파볼 데미트라 오렐 스토돌라 모리크 베노프스키 마렉 함식
21위22위23위24위25위
파볼 오르사그 흐비에즈도슬라우 마리아 테레지아 밀란 라시카 요제프 데크레트 마테요비에 실베스터 크르치메리
26위27위28위29위30위
슈테판 바니치 페트라 블로바 슈테판 크비에틱 스탠 미키타 요제프 무르가스
31위32위33위34위35위
밀란 루퍼스 얀 예센스키예세뉴스 미할 도콜로만스키 스타니슬라프 슈테프카 로베르트 피초
36위37위38위39위40위
율리우스 새틴스키 유진 서넌 아델라 빈체 프란티셰크 디바르보라 요제프 톰코
41위42위43위44위45위
온드레이 네펠라 얀 카렐 마틴 벤카 야로슬라우 필립 유라이 야코비스코
46위47위48위49위50위
프리비나 로베르크 베자크 가보 젤레나이 율리우스 판티크 빈센트 흘로즈니크
51위52위53위54위55위
이베타 라디초바 블라디미르 주릴라 슈테판 노살 라스티슬라우 추디크 안드레이 키스카
56위57위58위59위60위
존 크리소스톰 코렉 안톤 베르놀라크 안드레이 단코 카타리나 콜니코바 미쿨라시 주린다
61위62위63위64위65위
마테이 흐레벤다 보리스 필란 페테르 슈타스트니 스바토플루크 1세 이반 크라이체크
66위67위68위69위70위
블라디미르 크르치메리 페테르 드보르스키 미로슬라우 라이차크 임리히 카르바시 파볼 도브신스키
71위72위73위74위75위
밀란 호자 밀란 치치 카밀 페테라이 마테이 벨 미할 코바치
76위77위78위79위80위
에밀리아 바샤료바 미쿨라시 갈란다 카롤 두초프 사모 찰루프카 카롤 폴라크
81위82위83위84위85위
페테르 본드라 요제프 골론카 데조 우르시니 아나스타샤 쿠즈미노바 미로슬라프 샤탄
86위87위88위89위90위
루돌프 슈스터 라디슬라우 메드난스키 바브로 슈로바르 안드레이 바비시 미로슬라프 트른카
91위92위93위94위95위
류드밀라 포자보린스카야 마투시 차크 트렌치안스키 로만 칼린스키 안드레이 슬라드코비치 두산 유르코비치
96위97위98위99위100위
이반 벨라 요제프 베드나디크 마티아스 코르비누스 에바 시라카 미로슬라프 발레크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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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1457e><colcolor=#fff> 체코슬로바카아 공산당 제4대 제1서기
체코슬로바카아 연방공화국 제2대 연방의회 위원장
알렉산데르 둡체크
Alexander Dubček
파일:alexander-dubcek.jpg
출생 1921년 11월 27일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우로베츠
(現 슬로바키아 우로베츠)
사망 1992년 11월 7일 (향년 70세)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 프라하
(現 체코 프라하)
묘소 슬라비치 우돌리 묘지
재임기간 제4대 제1서기
1968년 1월 5일 ~ 1969년 4월 17일
제2대 연방의회 위원장
1989년 12월 28일 ~ 1992년 6월 25일
서명 파일:알렉산데르 둡체크 서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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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1457e><colcolor=#fff> 배우자 안나 둡체코바 (1945 ~ 1990)
자녀 3남
직업 정치인
정당 슬로바키아 공산당 (1939 ~ 1948)
(1948 ~ 1970)
폭력에 반대하는 대중 (1989 ~ 1992)
슬로바키아 사회민주당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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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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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체코슬로바키아정치인이자, 제4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제1서기이다. 공산주의 정치가이긴 했으나 공산당의 개혁을 추구했으며 이로 인해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에 의해 축출되었다. 이후 1989년 동구권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말년에 다시 정치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츨라프 하벨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다.

2. 생애

1921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출생하여 3살 때 가족과 함께 소련으로 이주[1]하여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2]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직전 체코슬로바키아가 나치 독일에게 흡수되고 친독일 꼭두각시 정권이 수립되자, 이에 대항하는 공산계열 레지스탕스에 가입하는 등 반 나치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는 공산당 입당으로 이어진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무혈 쿠데타에 의해 공산화된 이후 슬로바키아 공산당 내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스탈린 사망 이후 소련에 유학,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1955년 당 중앙위원회 멤버가 된다. 1968년 전 제1서기이자 보수파인 노보트니가 경제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제1서기이 되었으며 이때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3]라는 구호 아래 다당제 도입, 언론자유화, 연방제 국가로 체제 전환 등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프라하의 봄 참고), 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군사적 개입으로 인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소련군의 침공 직후 둡체크는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에게 무력저항을 하지 말 것을 호소했으며, 이후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다른 정치적 동지들과 함께 모스크바로 강제 송환된다.

다행스럽게도 헝가리 혁명 당시 비명횡사한 너지 임레(Nagy Imre)와 달리 둡체크는 목숨을 건졌으나 정계에서 강제로 은퇴할 것을 종용받는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로 돌아온 후 브라티슬라바 근처에서 삼림 관리원으로 일하게 된다.[4] 공산정권 막바지이던 1988년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허락받아 20년 만에 처음으로 서방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듬해 벨벳 혁명이 일어나자 둡체크는 다시 정계에 모습을 나타내고 이번에는 21년 전에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프라하의 봄을 마침내 실현시키게 된다. 1989년 12월부터 1992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의 연방 의회 의장을 맡았으며 체코슬로바키아의 분리를 막으려 노력하던 중이던 1992년 11월 7일 교통사고에 따른 부상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 뒤에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끝내 분리되었다. 그나마 평화롭게 분리되었기에 잔혹한 내전 끝에 산산조각난 유고슬라비아보단 나았다.

3. 기타



[1] 부모가 모두 사회주의 지지자였기 때문에 소련에서 자신들의 이상을 펼치고 싶어하기도 했으며, 결정적으로 체코에서는 일자리가 없어서(...).[2] 정확히는 키르기스스탄이었다고 한다.[3] 이 말은 20여 년 후 고르바초프도 사용하게 된다.[4] 여담으로 그가 체코슬로바키아로 귀국한 후 호되게 앓아누운 적이 있었는데, 이를 놓고 체코슬로바키아 민중들 사이에서 "소련 공산당 놈들이 둡체크 제1서기님을 억류해 놓고서는 방사능 오염된 식재료로 만든 음식만 먹였나 보다!"라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허나 둡체크는 헝가리의 너지 임레와 다르게 공산권의 종주국이었던 소련 내에서도 상당히 명망 있는 인물이었으므로 브레즈네프 역시 그를 죽여 반발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건강 검진 결과에서도 과로로 인한 후유증인 것으로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