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홍차 브랜드에 대한 내용은 카렐 차펙(홍차 브랜드) 문서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0 -15px 0" | ※ 2005년 체코의 국영방송 체코 텔레비전 방송공사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위대한 체코인 100명을 선정했다. | ||||||||
TOP 10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카렐 4세 |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 | 바츨라프 하벨 |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 | 얀 지슈카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얀 베리흐 | 얀 후스 | 안토닌 드보르자크 | 카렐 차펙 | 보제나 넴초바 | |||||
11위~100위 |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 에밀 자토펙 | 카렐 고트 | 이르지 스 포데브라트 | 프란티셰크 팔라츠키 | |||||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오타카르 2세 | 성 바츨라프 | 바츨라프 클라우스 | 야로슬라프 헤이로프스키 | 아네슈카 체스카 | |||||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토마시 바타 | 에드바르트 베네시 | 오토 비흐테흘레 |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 | 즈데네크 스베라크 | |||||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에미 데스틴 | 야로미르 야그르 | 마리아 테레지아 | 카렐 크릴 | 밀로스 포먼 | |||||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블라스타 부리안 | 로만 셰브렐레 | 이반 흘린카 | 카렐 하블리체크 보로프스키 | 다니엘 란다 | |||||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밀라다 호라코바 | 블라디미르 멘식 | 야로슬라프 하셰크 | 알폰스 무하 | 얀 에반겔리스타 푸르키녜 | |||||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파벨 네드베드 | 얀 얀스키 | 프란티셰크 크리지크 | 얀 젤레즈니 | 얀 팔라흐 | |||||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베라 차슬라프스카 | 레오시 야나체크 | 알로이스 이라세크 | 야로미르 노하비차 | 얀 마사리크 | |||||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보후밀 흐라발 | 얀 네루다 | 요세프 융만 | 그레고어 멘델 | 프란츠 카프카 | |||||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프란티셰크 토마셰크 | 스바티 보이테흐 | 요제프 비찬 | 요세프 카예탄 틸 | 루시에 빌라 | |||||
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카렐 히네크 마하 | 스바타 루드밀라 | 볼레슬라프 볼리프카 | 루돌프 2세 | 요세프 도브로프스키 | |||||
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요세프 라다 | 루돌프 흐루신스키 | 바츨라프 2세 | 마들렌느 올브라이트 | 아네타 랑게로바 | |||||
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오타카르 1세 | 루드비크 스보보다 | 도미니크 하셰크 | 얀 루쳄부르스키 | 밀란 바로시 | |||||
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 | 스바타 즈디슬라바 | 야로슬라프 포글라르 | 라디슬라프 스몰랴크 | 올가 하브로바 | |||||
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 헬레나 루치지코바 | 파벨 티그리드 | 엘리슈카 프르제미슬로브나 | 밀란 쿤데라 | |||||
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블라디미르 레메크 | 볼레슬라프 1세 | 마그달레나 도브로밀라 레티고바 | 미콜라시 알레시 | 에밀 홀룹 | |||||
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프란티셰크 파이틀 | 클레멘트 고트발트 | 즈데넥 마테 | 조지 보스코벡 | 마르타 쿠비소바 | |||||
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이르지나 보흐달로바 | 밀로슬라프 지메크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사모 | 밀로시 제만 | |||||
출처 | |||||||||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카렐 차페크 Karel Čapek | |
출생 | 1890년 1월 9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말레스바토노비체 | |
사망 | 1938년 12월 25일 (향년 48세) |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 |
국적 | [[체코|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프라하 카렐 대학교 |
대표작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도롱뇽과의 전쟁 |
[Clearfix]
(중략)... 비평가들은 이 작품(도롱뇽과의 전쟁)을 유토피아적 소설이라고 평가했지만, 나는 이러한 분류에 반대한다. 이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재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추측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 있는 현실의 반영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판타지가 아니다. 판타지는 누구라도 원한다면 대가없이 덤으로 줄 수 있지만,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현실〉이다. 현실에 무관심한 문학이나, 세계의 현 상황을 말과 생각이 가지는 힘만큼 열정적으로 반영하지 않는 문학은 나의 것이 아니다.
1936년, 카렐 차펙, 『도롱뇽과의 전쟁』의 서문 中
1936년, 카렐 차펙, 『도롱뇽과의 전쟁』의 서문 中
이 세계에는 진정한 약함보다 무지함이 더 많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것은 공감과 진실, 친절과 선의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릇된 일로 인간 세계를 포기할 수 없다. (……) 나약한 박애주의라고 해도 좋다. 나는 그들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사랑한다.출처
1. 개요
전세계적으로 로봇이라는 단어의 창시자로 유명하지만[1] 체코에서는 민주주의, 반파시즘 투사로 유명하다. 당시 체코(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는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했지만, 오랜 외세의 지배 때문에 체코어 특유의 언어 문화적 특성은 사라져 갔다.[2] 그것을 살리기 위해서 많은 작가들이 노력하였는데, 그 중에 카렐 차펙이 있었으며, 체코 문학을 세계적 경지에 올려 놓았다.1890년 1월 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헤미아 북동쪽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김나지움을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프라하 카렐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베를린과 파리의 대학들을 오가며 공부하며 미국의 실용주의를 수용하고, 1915년 에는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카렐의 어머니는 체코 구전문학을 수집하던 취미가 있었기 때문에 카렐 본인도 여기에 영향을 받아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1916년에는 산문집 '빛나는 심연'를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나로드니 리스티', '리도베 노비니'와 같은 언론사에 다니면서 장편 및 단편소설, 희곡, 에세이, 동화, 번역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뛰어난 작품을 발표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인 1920년 발표한 희곡 <R.U.R>(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최초로 로봇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희곡 자체는 1925년 작가 박영희에 의해 '인조노동자'로 번역, 출간되었으며[3] 연극으로서는 1970년 국립극단에 의해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초연됐다. 여기서도 로봇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할지 몰라서 내놓은 대안이 <인조인간>이었다.
그리고 앞서 말하였듯, 그는 체코 민주주의 대변자[4]로서 전체주의에 반대하였으며 작품의 주제[5]에서도 이러한 성향이 나타나 있다. 1938년 프라하 세계 펜클럽 총회에서 독일의 임박한 침략을 경고하였고, 체코 작가 성명서를 집필하였다. 만약 독일이 체코를 점령한다면 자신이 제일 먼저 게슈타포에게 체포당할 것을 알면서도[6] 영국으로 망명을 가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플루엔자 합병증으로 1938년 12월 25일에 48세로 사망하였다. 불과 3개월도 안 되어 고국인 체코슬로바키아가 나치 독일에 병합된 것을 보면 이때까지 살아있었다면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치적인 활동 때문에 노벨상 수상에 대한 논의를 9번이나 받았음에도 나치 독일의 영향으로 인하여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였다.
2. 저서
- 정발된 작품
- 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
- 조금 미친 사람들
- 압솔루트노 공장
- 크라카티트
- 하얀 역병
- 위경 이야기
- 마사리크와의 대화
- 두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
- 첫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 도롱뇽과의 전쟁
-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 호르두발
- 별똥별
- 곤충 극장
-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
- 원예가의 열두 달
- 유성
- 평범한 인생
- 내 친구 다센카
- 단지 조금 이상한 사람들
- 어느 의사의 길고 긴 이야기
- 작은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
- 정발되지 않은 작품
[1] 사실은 공동작업을 하였던 형 요제프 차펙이 창시하였다.[2] 당시 체코는 지식인, 중산층은 독일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로 인해 체코의 유명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도 모든 작품을 독일어로 집필했다.[3] 김대원, 로봇저널리즘: 데이터사이언스총서[4] 체코의 주요 일간지의 기자와 편집자로 일했으며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 체코슬로바키아 제1 공화국 초대 대통령과 함께 민주주의 운동을 했다.[5]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한 폐해와 전체주의에 대한 치열한 고발, 그리고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6] 실제로 그의 형 요제프는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7] 처녀작.[8] 일본 애니(메이터) 견본시장에서 영상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