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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영화 협회 홈페이지
기본정보 (2017년)
출처(EFP: 유럽 영화 프로모션)
인구 1,060만 명
순수 자국생산 장편영화 11편
관객 수 1,520만 명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 1.44회
자국영화 점유율 22.2%
스크린 수 532개

1. 개요

체코영화 산업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체코의 영화 산업 중심지는 프라하이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문화유적인 체코 특성상 압도적이지는 않다.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에는 브라티슬라바와 쌍벽이었지만 나라 분할 이후의 영화 산업은 프라하가 주도하고 있다. 설국열차 제작사 중 한 곳인 스틸킹 필름스도 체코 프라하에 속해있다.

2. 영화 시장

체코영화 시장2017년 기준 2,004,245,131 코루나로, 미국 달러로 환산 시 8,900만 달러 수준이다. 스웨덴 영화 시장보다도 크다. 2017년 총 관람객 수는 15,233,432명으로 체코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는 1.5회였다. 스크린 수는 2011년 기준 668개이다.

자국 영화 비중은 2011년 28.5%였으나 2017년 22%까지 감소했다. 그래도 20% 아래로 무너지지는 않고 있다. 미국 영화가 55%로 1위고, 자국 영화 22%로 2위, 프랑스 영화, 독일 영화, 영국 영화, 이탈리아 영화유럽 대형국가 영화들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영화, 중국 영화, 일본 영화동아시아 영화는 체코에 수출 실적이 전무한 수준이다. 체코에 수출해서 영화관 박스오피스를 유의미한 수준으로 벌어본 동아시아 영화는 거의 없다. 그나마 기생충이 주말 박스오피스 10위까지 해본 바가 있다.

3. 역사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의 영화 역사는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로 분할[1]될 때 전부 체코가 승계하기로 합의했다.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체코슬로바키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승계한 것처럼 분할 전 슬로바키아 영화들도 1992년까지의 작품들은 체코가 승계하기로 합의했다.[2] 물론 나라 분할 이후로 슬로바키아 영화로 넘어간 사람도 있어서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영화 역사를 상당부분 공유한다. 따로 쓰면 내용이 똑같아진다는 얘기. 따라서 슬로바키아 영화의 역사 중에서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분할 이전의 역사는 체코 영화 문서에 통합 작성한다.

산업이 엄청나게 크다고 할 수 없지만,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자국의 영화를 알리려는 편이다. 체코 영화 협회는 자국 영화 회고전이나 복원, 증언 녹취 같은 활동을 활발히 하며 해외 블루레이 제작사에게 상당히 협조적인 편. 허풍선이 남작 항목 참조.

국내에 알려진 체코 영화로는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 『다크 블루 월드』, 『희망에 빠진 남자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수려한 영상미를 자랑한다.

영화제로는 카를로 비바리 영화제가 유명하다.

3.1. 초기

체코 초기의 영화관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인 1898년에 세워졌다. 그러나 이 영화관은 임시상영관이었다. 첫 체코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일종인 뉴스 영화(Newsreels)로, 1899년부터 1913년까지 매년 한 차례씩 20분~30분 짜리 단편 뉴스들을 영화 형식으로 촬영하고 보도하는 것이었다.

1907년프라하에 본격적으로 근대적인 영구 영화관이 들어서면서 체코 영화가 다민족국가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독립적인 영화계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3.2. 전간기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망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맞는다. 독립 이후 세계 대공황 시절까지 체코 영화는 짧은 황금기를 맞는다. 현재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인 프라하브라티슬라바가 모두 유럽의 대표적인 문화 중심지였던지라 온갖 문화 유산이 넘쳐났고, 이를 소재로 한 각종 드라마, 다큐멘터리, 코미디 영화들이 쏟아져나왔다.

세계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화 산업은 성장세는 약간 꺾였지만 이내 회복하고 잘나갔다. 프랑스 영화, 독일 영화, 이탈리아 영화, 오스트리아 영화 시장 등으로 수출이 될 정도로 꾸준하게 잘 나갔다.

3.3. 제2차 세계 대전

전간기의 짧은 황금기는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해 끝나게 된다. 대전 내내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영화는 아돌프 히틀러의 대대적인 탄압을 받았다. 레벤스라움을 건설하기 위한 독일의 민족말살 정책에 따라 체코어로 찍은 영화는 철저하게 금지되었고, 독일어로 찍은 나치 독일 선전영화만 만들었다.

3.4.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패망하였는데, 이번에는 소련철의 장막을 치고 체코슬로바키아에 진주하여 공산주의 체제를 세운다. 하지만 체코 영화의 전성기는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이었다. 애니메이션처럼 자국 초현실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1950년대-1960년대 초 아직 자유스러웠던 시대 분위기와 프라하의 봄이 맞물려 걸작들과 인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1950년대는 카렐 제만이라는 감독이 허풍선이 남작 같은 영화에서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 간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실험하면서 독특한 모험 영화를 만들어 흥행을 기록했다. 프라하의 봄 시절엔 슬로바키아 출신인 슈테판 우헤르의 Sun in a Net와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한 밀로스 포먼이 풍자적인 영화 블랙 피터로 체코 뉴웨이브의 서막을 열였으며, 지금까지도 충성심 높은 컬트 팬들을 이끄는 페미니스트 영화 데이지즈를 내놓은 베라 치탈로바, 데이지스와 함께 체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발레리와 기적의 주를 감독한 야로밀 일레스, 체코 내에서는 위상이 드높은 중세 영화 '마르케타 라자로바'를 감독한 프란티세크 블라칠,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태평한 코미디인 '가까이서 본 기차'[3]를 만든 이리 멘젤, 홀로코스트 탈주자를 소재로 한 영화 '밤의 다이아몬드'를 감독한 얀 네메츠 등이 동참했다. 애니메이션에서도 그 유명한 얀 슈반크마예르가 데뷔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비록 프라하의 봄이 끝나면서 갑작스럽게 중단되긴 했지만 [4], 체코 영화의 전성기는 동시기 폴란드나 헝가리하고도 비견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고평가를 받았으며[5] 밀로스 포먼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활동하면서 지명도를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3.5.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민주화로 독립을 맞는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본격적인 슬로바키아 쪽의 국가분할 요구(계속 말하지만 슬로바키아는 '독립'이 아니라 '분할'을 요구했다.)로 혼란에 빠졌다.

3년여의 짧은 기간 체코슬로바키아에 영화들이 상당수 출시되었다.

3.6. 체코 공화국 ~ 2000년대

어쨌거나 결국 1993년 1월 1일부로 체코슬로바키아2:1의 계약비율에 따라 인구와 경제권을 나눠가지고 국가분할이 완료되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체코 스스로의 영화 산업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시절 대표작으로는 콜리야가 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오래간만에 체코에게 안겨줬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한국에서도 개봉해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

3.7. 2010년대

2011년 30% 근처였던 체코 자국 영화 점유율은 가면 갈수록 하락하여 2017년 22%까지 하락하였다. 체코 영화 시장이 확대될 수록 미국 영화의 점유율만 더 높아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간간히 체코 자국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하기도 하지만 그뿐이고 미국 영화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4. 애니메이션 영화

5. 작품

6. 영화감독

7. 영화 배우

8. 영화관



[1] 독립이 아니라 나라 분할이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1989년 민주화 이후 슬로바키아의 분할 요구를 체코가 수용해서 기존 나라의 경제권을 체코 2 : 1 슬로바키아로 정당하게 분할하는 계약에 따라 정식으로 분할됐다.[2] 다만 언어 기준으로 관리 책임이 정해졌는지 당시 만들어진 슬로비아키어 영화는 현재 슬로바키아에서 관리하고 있다. 일례로 슬로바키아 배경에 슬로바키아어로 제작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중심가의 상점도 슬로바키아에서 복원했다. (대신 체코측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가 후원했다고 한다.)[3] 이 영화는 백두대간에서 수입해 개봉한 적이 있다.[4] 밀로스 포먼은 미국으로 망명해버렸고 (소방수의 무도회 당시 있었던 스캔들은 프랑스 누벨바그 일원들이 항의 성명을 발표하는 꽤 큰 스캔들이었다.), 베라 치탈로바는 커리어가 거의 단절될 위기였다고 한다. 이 두 감독 말고도 대다수 체코슬로바키아 뉴웨이브 감독들은 검열로 해외로 망명하거나 활동을 접거나 비정치적인 노선을 변경해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5] 체코슬로바키아 영화는 1960년대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에 단골 후보로 올라갔으며 2회 수상하기도 했다. (1966년 얀 카다, 엘마 크로스 감독의 중심가의 상점, 1968년 이리 멘젤 감독의 가까이서 본 기차)[6] 정확히 말하면 한국과 합작해서 제작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