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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10:32:48

영화제

1. 정의2. 영화상과의 차이3. 영화제의 역사4. 영화제의 분류
4.1. 국제 vs 비국제4.2. 경쟁 vs 비경쟁4.3. 독립, 단편4.4. 장르, 주제
5. 한국과 영화제
5.1. 한국내 영화제와 그 역사5.2. 국제 영화제와 한국 영화들
6. 국내외 영화제 목록
6.1. 국외 국제 영화제6.2. 국내 영화제
6.2.1. 폐지 및 중단

1. 정의

영화제()는 많은 영화 작품을 모아, 일정 기간 내에 연속적으로 상영하는 행사를 말한다.

전세계에서 열리는 많은 영화제는, 영화계의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숨겨진 명작을 찾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동시에 영화 마켓을 통해 영화 판권 판매/투자가 이뤄지기도 한다.

2. 영화상과의 차이

한국에서는 영화 시상식(film awards)과 영화제(film festival)가 같은 의미로 쓰일 때가 많은데,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일정 기간(보통 1~2주)에 걸쳐 다양한 영화를 주구장창 틀어주고 관객이 즐기도록 하는 행사다. 영화인, 관객, 기자 등 참여 인원도 굉장히 많고, 영화 관람 이외에 유명 감독 대담 등 각종 부대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 영화 산업 관계자들끼리 정보 교환, 투자, 판권 매매 등을 할 수 있는 필름 마켓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즉 박람회, 전시회 등의 영화 버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제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미리 선보여 홍보 효과도 노리고 해외 배급사와 수출 계약도 체결하는 산업적 행사인 경우가 많다.

시상식은 연예인들끼리 하루 모여서 상 받고 끝나는 행사다. 시상식에서 영화를 틀어주는 경우는 없으며, 판권 매매를 할 부스 같은 것도 당연히 없다. 애초에 대부분의 시상식은 이미 지난 한 해 동안 개봉한 영화들을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열리지,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들을 후보에 올리지 않는다.

다만 칸 영화제처럼 행사 말미에 해당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를 대상으로 시상식도 하는 영화제가 상당히 많다. 아마 영화제와 영화 시상식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그래서일 듯. 참고로, 한국의 대종상은 분명 영화제가 아니라 영화 시상식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대종상 영화제"라는 명칭을 자처하고 있다.

이 문서에서는 영화상이 아니라 영화제에 대한 설명을 다루고 있다.

3. 영화제의 역사

최초의 국제 영화제는 193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국제 미술전 비엔날레의 일부로 진행된 상영회라고 알려져 있다. 이것이 인기를 얻었고 이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로 변모하게 되었다.

2차 대전을 기점으로 다양한 영화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 영화제, 베니스 국제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각각 1946년, 1932년, 1951년에 개최되었다. 참고로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에 개최되었다. 사실, 아시아 본격적인 국제영화제로는 아시아-태평양 영화제(Asia-Pacific Film Festival, 약칭 APFF)가 있긴 하다. 1954년부터 열렸던 역사로 아시아오세아니아(조지아같은 나라 영화도 출품) 국제영화제로서 7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있었으나, 지금은 잊혀져서 2000년대 와서는 위상도 떨어져 여러번 열리지 않았고 2019년,2020년도 열리지 않고 있다. 이후에 이란 테헤란 국제영화제라든지 인도 뭄바이 국제영화제라든지, 여러 영화제가 아시아에서 열렸으나 지금은 사라졌고 일본이 1985년부터 도쿄국제영화제를 열고 2019년까지 꾸준히 열고 있긴 하지만 국제적 인지도는 그다지. 이는 동양과 서양의 영화제 문화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종종 세계 영화 관련 논문에서 많이 쓰이는 비교이다.

그리고 1985년 유명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자신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속 인물의 이름에서 따와 만든 선댄스 영화제가 개최된다.[1] 흔히 3대 영화제[2](베니스, 칸, 베를린) 영화제로 본다. 선댄스 영화제는 영화팬들이라면 몰라도 대중적 인지도는 한참 떨어지는데 그 이유가 3대 영화제에 비해 뒤늦게 시작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독립영화만을 전문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그리고 이 세계 3대라는 표현은 서양권에서 나온 것으로서, 서양 언론 역시 소위 Big Three라고 하여 세계 3대 영화제를 특별하게 취급한다. 그만큼 3대 영화제는 국제적 인지도가 높으나, 나머지는 그다지.... 선댄스 영화제조차도 한참 인지도가 밀리다보니 토론토 영화제를 4대 영화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하지만, 여기조차도 3대 영화제보다 인지도가 떨어지고 4대 영화제로 만장일치 공식 인정되는 곳은 없다.

4. 영화제의 분류

4.1. 국제 vs 비국제

국제 영화제는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다양하게 상영하는 영화제이다.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칸 영화제, 베니스 국제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가 모두 국제 영화제이다.

반면 특정 국가[3]의 영화만 상영하는 비국제 영화제도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영화제(Canadian Film Festival)는 캐나다 영화만 상영된다.

영화제의 이름의 영어 약자에 알파벳 'I'가 들어갈 경우 국제 영화제일 가능성이 높다.[4] BIFF라던가 JIFF라던가.

4.2. 경쟁 vs 비경쟁

영화제는 시상 여부에 따라 경쟁 영화제와 비경쟁 영화제로 나뉜다. 경쟁 영화제는 영화제 말미에 시상식을 열어 몇몇 작품에 상을 주고, 비경쟁 영화제는 상영만 하고 끝낸다.

하지만 경쟁 영화제라고해서 모든 영화가 수상을 염두에 두고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경쟁 영화제에서도 일부 영화는 경쟁 부문, 나머지는 비경쟁 부문으로 분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비경쟁 부문으로 선정된 영화는 수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경쟁 영화제에서 수상작은 보통 심사위원단이 결정한다. 대표적인 경쟁 영화제인 칸 영화제, 베니스 국제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모두 심사위원이 있다. 하지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같은 경우 심사위원이 있긴 하지만 비교적 덜 중요한 상만 결정하는 역할이고, 대부분의 중요한 상은 영화제에 참석한 관객들의 투표로 수여한다.

비경쟁 영화제로는 뉴욕 영화제, 텔루라이드 영화제 등이 유명하다.

4.3. 독립, 단편

독립영화만 상영하는 영화제도 있다. 미국의 선댄스 영화제가 대표적인 예. 유명 배우가 출연하고 거대 자본이 들어간 상업영화들 속에서 독립영화들도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단편 영화만 취급하는 단편영화제도 있다.[5] 단편영화로 성공하면 장편영화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만큼 많은 단편 감독들이 출품에 열을 올린다. 하나의 영화제에 적게는 수십, 수백에서 천단위의 단편 영화들이 출품되곤 한다. 뛰어난 감각의 신인 감독들을 발굴해내는 취지를 가지고 있으나 상업적으로 언론에 크게 노출되는 상업영화제와는 다르게 작품의 퀄리티와는 관계 없이 인맥을 활용하여 공정치 않은 선정으로 닫힌 사회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병폐 또한 심하다.

게다가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독단적인 취향이 작품선정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의 취향에 따라 여성서사, 소수자문제, 가족서사 등 늘 뻔하고 전형적인 소재의 영화들만이 영화제에 공개되고 있다. 이들은 그들 만의 프로그래밍, 셀렉션으로 한국영화의 어떤 경향, 트렌드를 주도하고 만들려고 한다. 이런식으로 영화제에 공개되는 영화들의 상당수는 늘 고레에다 히로카즈, 에드워드 양 스타일의 영화들이다. 또한 상업영화와 다른 연출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어설픈 연기, 성근 서사, 조악한 촬영, 편집 등 아마추어리즘으로 범벅된 영화들이 영화제들의 주요경쟁작들이 되고 있다. 영화의 만듦새와 완성도보다 소위 스피릿이 우선인 셈이다. 이런 영화들을 자조적으로 영화제용 영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화제 셀렉션이 곧 권력이 되어버린 영화제의 헤게모니로 인해 독립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감독들도 영화제의 경쟁작으로 초청받기 위해 영화제에서 선호하는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연출한다. 이것은 창작자에게 일종의 자가검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자본, 검열 등 영화의 창작을 해치는 모든 요소로부터의 독립이 독립영화의 모토인데 되려 영화제로부터는 독립하지 못하는 한계를 만들어버리는 모순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1회 대상작인 분노의 저격자(Blood Simple)에서 저수지의 개들, 위플래시 까지 독립영화제의 대표선수인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되어 화제가 된 영화들을 살펴본다면 한국의 독립영화들을 소개하는 영화제들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을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혹시 한국의 독립영화제들에 선정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너무 자책하지 말고 차라리 편향성에 치우지지 않은 외국의 영화제들에 출품을 해보자. 그러면 반드시 당신의 영화를 초청해주는 영화제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영화가 한국의 영화제에 초청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이 만든 영화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저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취향에 안맞을 뿐이다. 그러니 영화제 측에 보낸 셀렉션에 선정되지 못했다는 결과통보 메일을 받고 낙담하지 말자. 당신이 돈과 피와 땀을 들여 필사적으로 만든 독립영화는 소중하니까.

4.4. 장르, 주제

위에 언급된 영화제들은 모두 장르나 주제에 상관 없이 영화들을 상영하지만, 특정한 장르나 주제의 영화만 상영하는 영화제도 존재한다.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영화제가 많아지다보니 차별화를 하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하는 영화제들도 있다.

장르 영화제로는 호러 영화제, 코미디 영화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심지어는 에로 영화제도 있다. 주제에 따라 영화를 초청하는 영화제로는 환경 영화제, 청소년 영화제, 평화 영화제, 여성 영화제, 디아스포라 영화제 등이 있다.

이러한 영화제들은 꼭 영화 홍보 및 판권 판매 같은 상업적인 이유로 열리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특정 주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거나 특정 장르 영화들을 취향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즐기자는 의미에서 열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 최신 영화, 개봉 예정 영화를 중점적으로 트는 다른 영화제들과 달리 수년 전에 개봉한 영화까지 상관 없이 상영한다.

5. 한국과 영화제

5.1. 한국내 영화제와 그 역사

국내 최초의 영화제는 1938년 11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조선일보사 주최로 부민관에서 개최한 영화 전시회였다. 무성영화 33편과 발성영화 12편을 상영하고 투표로 무성영화 베스트 10과 발성영화 베스트 10을 선정하였으며 마지막 날에는 시드니 킹즐리의 '막다른 골목(Dead End)'을 실연하여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최고 득표는 무성영화 '아리랑', 발성영화 '심청'이 차지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국제 영화제라면 단연 1996년 최초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BIFF)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매년 10월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등에서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는 김동호 위원장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 최대의 영화제로 발돋움하였다. 그 덕에 부산국제영화제에는 국내 영화 감독과 배우들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과 배우들도 많이 참석하고 있다.

그리고 부산에 이어 다음으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제라면 바로 전주국제영화제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00년에 시작한 전주국제영화제(JIFF)는 디지털, 대안, 독립을 중점적인 과제로 제시하는 영화제로서, 영화 촬영에 있어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잡은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 자본의 간섭으로부터 탈피한 독립 영화, 현재 주류 영화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대안적 영화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는 비록 부산국제영화제와 비교하면 규모는 좀 작을지 몰라도 호러/애니메이션 등의 장르 영화를 중심으로 짠 라인업 덕분에 영화 매니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영화제로 알려져있다. 요 몇 년간 어른의 사정으로 인한 병크로 국내외 영화계에서 전면 보이콧을 당하는 등 [6]의 아픈 흑역사가 있었으며 서서히 본래의 위상을 되찾았기를 기대했지만 다시 폭락했다. 부산국제영화제보다는 1년 늦게 시작, 2016년 20회를 맞이한다.

메이저-마이너급 영화제로는 EBS 국제다큐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와 맞짱뜨려 몸집을 섣불리 불렸다가 폭삭망한 충무로 국제 영화제[7],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 서울독립영화제(SIFF), 서울 국제 청소년 영화제(SIYFF),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MZ Docs), 미쟝센 단편영화제(MSFF) 등이 있다.

영화제에서 해외영화를 상영할 때 자막을 별도의 프로젝터를 사용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자막이 가로쓰기가 아닌 세로쓰기로 되어있고, 세로쓰기에 익숙하지 않으면 자막을 보기 불편할 수 있다. 이는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고, 한 두번 상영하기 위해 영화 프린트에 자막을 입혀 넣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화가 디지털로 상영되게 되면서부터는 자막을 입히는것이 가능하게 되긴 했지만 자막 작업을 위해서는 본상영본이 일찍 들어와야 하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막 작업을 프리뷰 파일 기준으로 해놓으면 본상영본과 편집이 다른 경우가 잦아 빠른 수정이 용이한 별도자막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국제영화제의 경우엔 가로자막 자리에 영어자막이 먼저 자리잡고 있어서 한글자막은 세로로 넣는다. 영어자막이 없다면 가로자막으로 넣을 수는 있지만 가로자막용 프로젝터가 객석 가운데에 자리잡으면 프로젝터와 자막용 컴퓨터 불빛이 관람을 방해한다는 항의가 많아 한글자막은 세로자막을 유지하고 있다. [8] 이는 시네마테크에서도 적용돼서 시네마테크와 영화제 매니아들은 세로 자막에 익숙하다.

그러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나 디아스포라영화제 등에서는 디지털 상영본의 상영작에 자막을 가로로 삽입한 채로 상영을 하기도 한다. 영어자막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영어자막의 상단에 병기해놓는다.

5.2. 국제 영화제와 한국 영화들

한국 영화가 해외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수상한 기록은 지금은 듣보잡 영화제가 되어버렸지만 5,6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관심과 인지도가 크던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에서 시집가는 날이 1956년 특별희극상을 수상한 것이 최초이다. 이 당시는 영화계의 굉장한 사건이었고 덕분에 시집가는 날은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1961년 영화 마부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 특별 은곰상[9]을 수상,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최초로 경쟁 부문으로 수상한 기록을 남겼다.

1981년에는 이두용 감독의 피막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국 영화 중 해외 영화제에서 굵직한 성과를 나타난 예를 중심으로 보자면 1987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임권택감독의 씨받이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1989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한국 영화로 유럽 쪽 영화제 대상인 금표범상을 수상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나왔으며 백일성 감독의 『한줌의 시간 속에서』가 1993년 이탈리아 살레르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게 이후 서구영화제 2번째 대상 수상작이다. 그밖에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1990)이 프랑스 낭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사실 이 영화가 대상 수상작으로 거의 선정될뻔했으나.....당시 상영판을 엉터리로 가지고 가는 사고가 벌어져서 일본영화가 대상을 받은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2002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 같은 해 이창동 감독이 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특별감독상과 신인 배우상, 2003년엔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그리고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 빈집으로 2004년 베를린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각 상을 탔다. 2012년에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2019년에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많은 국내외 영화와 감독, 그리고 배우들이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한국 영화는 세계 영화사에 있어 일본이나 홍콩, 중국 영화와 같이 또 하나의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6. 국내외 영화제 목록

※ 상술했듯이 해외의 아카데미 시상식, 세자르상이나 국내의 청룡영화상,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등은 영화제(film festival)가 아닌 '영화 시상식(film award)'으로 분류된다.

6.1. 국외 국제 영화제

6.2. 국내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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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 폐지 및 중단


[1] 영화 내일을 위해 쏴라의 원제인 부치캐시디와 선댄스 키드에서 선댄스 키드의 이름을 따와 만든 영화제가 바로 선댄스 영화제.[2] 90년대 후반에 문화관광부(현 문화 체육관광부)가 4대 영화제라면서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를 넣겠다고 하다가 욕 처먹고 없던 일로 했던 적이 있다. 꼴랑 외국어영화상 1개 부문을 해외영화에 주는 게 무슨 국제영화제? 라는 비난. 딴지일보에서도 이런 비난을 넣으면서 대만 금마장 영화제에 외국어영화상 넣으니 외국영화제라고 하더냐? 라고 깠다.[3] 주로 영화제가 열리는 나라[4] 여기서 I는 International의 약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5] 대다수의 영화제들은 장편 영화만 상영하거나, 장편 영화를 중점적으로 다루되 단편 영화만을 위한 특별 부문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6] 불합리하게 영화제에서 쫓겨난 기존 집행부가 그 대안으로 같은 기간에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라는 맞수를 두는 불행한 사태가 있었다. 정치 권력이 영화제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어떤 결과를 맺는가에 관한 교훈을 보여준 사태.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가 2016년에 부산시장 서병수의 간섭으로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공교롭게도 부산국제영화제나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 관여하다가 영화제를 말아먹으려한다는 비난을 받은 시장들이 새누리당 소속이었다.[7] 2007도에 시작된 충무로영화제는 서울특별시와 중구가 물량공세로 야심차게 출범했으나 정말 제대로 망했다. 충무로영화제에 대한 영화계 사람들의 반응은 '그거 왜 하냐' 였다. 충무로국제영화제는 원로 영화인들이 중심이 되었는데, 주로 출범 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를 좌파 영화제로 부르며 영화계 좌파 척결을 주장한 인물들이었다. 어느 평론가는 충무로국제영화제를 어버이연합에 빗대어 어버이 영화제라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지자체가 깊숙히 관여하는 관제 영화제라는 비판과 허술한 프로그램 속에 호응이 저조했고, 결국 해가 갈 수록 파행 운행이 누적되고 예산이 삭감되어 결국 2010년 4회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8] 때문에 마스킹할때 오른쪽 부분을 일부러 열어두는 경우가 많다[9] Silver Bear Extraordinary Jury Prize. 은곰상 중에서 가장 낮은 상이었나 경쟁 부문 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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