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10:51

인민

1. 개요2. 유래3. 용례
3.1. 본 의미3.2. 한국의 경우3.3. 오해3.4. 특수한 용법
4. People의 번역과 인민5. 유사한 처지의 단어

1. 개요

국가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2. 유래

원래는 한문에서 쓰인 말이며, 한반도에서도 고대부터 백성과 비슷한 뜻으로 쓰였다. 그러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외국어 단어들이 한자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서구의 'people'이라는 개념을 '人民'으로 번역하면서 학문적인 의미가 덧씌워진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근대의 한국에서 이 단어는 민주주의의 권리주체로 사회계약으로서 건설된 국가를 구성하는 자연인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국민'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차이가 있다. '인민'은 결속감을 논외로 한 자연인의 집단을 의미하는 말이다.

북한에서 '국민' 대신 자주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공산주의와 관련된 단어라는 인식이 퍼져있기도 한데, 이러한 인식은 어제오늘이 아니라 1940년대부터 있었어서 제헌 헌법에 쓰인 '인민'이라는 용어에 이의가 제기되어 '국민'으로 고쳐지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에서 동무와 함께 간첩으로 오해 받기 좋은 단어이다.

3. 용례

한자의 글자 뜻은 알다시피 사람+백성으로, 있으나 마나한 해석이다. 서양에 있는 개념을 동양식으로 번역하기 위해 채택한 것일 뿐이라 한자 뜻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용례가 중요한 단어.

인민 자체는 멀리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신라 진흥왕서울 북한산 순수비에도 나올만큼 오래 전부터 사용한 표현으로, 백성과 비슷한 뜻으로 쓰였다. 1763년에 쓰인 일동장유가에도 인민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구한말 조영수호통상조약(朝英修好通商條約, 1883)[1]홍범 14조에서도 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 홍길동전 영인본에서도 등장하며, 심지어 개신교의 개역성경에서도 등장한다.[2]

'인민'은 그 어떠한 정치적, 국적상의 구분 없이 상호 간에 위계 없는 자연인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때문에 인문학, 사회과학, 무엇보다 특히 정치학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구별하는 경우, 자연인의 뉘앙스를 강조할 때는 국민이나 시민보다는 인민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3.1. 본 의미

본래 고대에 사람 인(人)과 백성 민(民)은 별개의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본래 중국에서 인()은 성 안에 살던 사람(즉, 부르주아), 민()은 성 밖에 살던 야인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나중에 인은 최소한의 사회적인 지위(사士 계급 이상)을 가진 자[3], 민(民)은 순전히 다스림을 받는 자, 민초를 가리키게 된다. 이라는 글자부터가 눈을 강제로 멀게 하여 노예로 만든 성 밖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글자였다. 이 구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유교 윤리에서 흔히 사용하는 비유인 "군자"와 "소인"이다.[4]

논어에도 "애인(愛人)"과 사민(使民)"과 같은 식으로 인과 민을 다른 집단으로 명확히 구분해서 사용한다는 조기빈의 분석이 있다. 사실 지금에 와서 조기빈의 이런 이론은 지나치게 '마르크스주의'에 가깝다고 해서 까인다. 애초에 조기빈의 저서인 논어신탐에서 이 얘기가 나온 게 '공자는 인과 민을 차별한 고대 노예제 옹호자.'라고 까기 위한 거라, 사실 엄밀히 말하면 해당 구절에서 '애인'은 '절용(節用)'과 짝지어져 있다는 점, 전통적으로 '인'의 해석에서 '인'을 '민'과 동일한 '담세 계층'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이미 동일한 의미로 보였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위에서도 이야기 하였듯 '인민'은 보통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하는 단순한 단어다. 정확히 말하면 \'인민'이 더 포괄적인 개념이고, \'국민'은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국적을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더 특수한 개념이다. 예컨대 국가가 존재하기 전의\ 원시적 사회의 사람들의 집단은 '인민'으로 부를 수는 있으나 '국민'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한 현대에도 국가를 초월한 사람들의 집단은 '국민'으로는 일컬을 수 없지만 '인민'으로 부를 수는 있다.

3.2. 한국의 경우

대한민국에서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공산주의 세력이 주로 애용한다며 '국민'으로 바꿔 불렀고 공산권에 대한 반감이 조성되면서 인민이란 단어가 더욱 기피되게 되었다. 이에 한국에서는 people으로서의 의미가 사장되었다.

사실 유진오 고려대학교 교수는 대한민국 제헌 헌법 제정 당시 '인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윤치영 의원과 같은 반공주의 세력들의 반발로 인해 '국민'이라는 표현으로 바뀌게 됐다. 실제로 제헌헌법 초안에서는 '국민' 대신은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윤 의원이 '인민'이라는 단어가 공산주의에서 사용하는 단어라 껄끄럽다고 주장해 싸그리 '국민'으로 바뀌었다. 조봉암 의원은 세계 각국에서 쓰는 보편적인 개념을 단지 공산당사용한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것은 고루한 편견이라며 반대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제헌헌법 초안을 기초했을 때 '인민'을 고집했던 유진오 교수도 이를 아쉬워했다고...

헌법재판소에서는 '인민주권'이라는 말을 '실질적 국민주권'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국 헌법학계에서는 인민주권론과 국민주권론을 대비시키고 국민주권론의 손을 들어 주는 의견이 대부분이며, 시중 헌법 교과서도 거의 빠짐없이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다.[5] 사실 국민주권은 자유주의, 인민주권은 공산주의로 착각하는 사람도 일부 있는데, 인민주권(droit des peuples, 원어인 프랑스어)은 루소가 주장한 직접민주주의, 국민주권(nation, 주권)은 시예스가 주장한 대의제에서 주로 나오는 용어로 공산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다. 다만 전공학문에서는 얄짤없다.

people을 인민 외에 다른 단어로 번역하려면 이유를 해설하는 각주를 달아줘야 할 정도로 '인민'은 '국민'과 뜻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사회과학에서 용어의 중요성, 나아가 용어규정 자체에 담긴 정치성을 생각해 보면 자유민주주의민주주의를 대체하겠다던 사회과목 교과서 파동이 왜 논란이 되고 각 세력별로 첨예한 갈등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체제 대립 상태가 시작하면서 사회주의자가 그 이념 특성상 인민의 혁명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625까지 겹치면서 한국에서 인민의 인식은 완전히 '그 쪽 언어'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이 단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꺼내오는 미국의 헌법에 표기된 people도 쓰임새 등을 보면 한국의 번역명인 국민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 나온것인데, 이쯤 되면 국민이라는 단어에 너무 많은 것은 담지 않았나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지경. 근데 언어라는 것이 각각 환경과 인종, 문화, 역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절대적으로 딱 나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게 문제이기도 하다.[6]

게다가 아예 '인민'이란 단어가 더 학문적으로 적절한 경우에도 이념 때문에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을 강요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7]

아무튼 이러한 복잡한 사정이 얽힌 관계로 한국에서는 인민 보다는 민중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민중민주당, 민중당 등.

3.3. 오해

중국과 북한에서도 이 말을 쓰기 때문에[8] '인민'은 공산주의말로, '국민'은 민주주의말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영어에서도 'people's democracy'라는 말을 공산주의에서 선점해버린 바람에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저 단어를 검색하면, 사상으로서의 'people's democracy'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사상으로 설명된다.

번역된 시기를 보아도 일본에서 'people'을 '人民'으로 번역하던 근대는 현실 공산주의 국가가 전혀 없는 시대였다. 대한제국 역시 '인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고, 초기 대한뉴스에서도 아나운서가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골수 반공주의자였던 장제스김구도 '人民'이라는 단어는 잘만 썼고, 반공국가인 남베트남에서도 국민을 인민이라고 잘만 불렀다. 따라서 이 사람들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공산주의 색채가 없는 표현이었으며 오히려 1950년대 이후 반공사상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왜곡된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으로 보는 게 옳다.

대만에서도 '人民'이라는 용어를 잘만 사용한다. 가령 중국 대륙과의 교류에 관한 법률인 '양안인민관계조례(兩岸人民關系條例)' 등등.

3.4. 특수한 용법

현재는 역사 칼럼 등에서 대체로 공산주의 국가들의 국민들을 표현하는 단어로 자주 쓴다. 예를 들면 냉전 때 독일도 서독 국민, 동독 인민 등으로 표기하고 소련 인민, 폴란드 인민, 쿠바 인민 등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중국이나 베트남의 국민들도 인민으로 칭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극히 예외적으로 대화의 상대자가 공산국가 국민인 경우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써 줄 수 있다. 아니면 북한 관련 이야기를 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그냥 인민이라고 하는 경우, 혹은 패러디에 가까운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패러디라면 보통 북한이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풍자해서 린민으로 써주는 편.[9]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이들의 사용례를 들어보자.
학생: 그쪽 인민들은 잘 지내나요?
선생님: 하도 쫄쫄 굶어서 인민들 얼굴이 말이 아니더라.[10]

4. People의 번역과 인민

흔히 정치학적 의미에서 people은 '인민'으로 번역해야만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그렇지는 않다. 정치학적 의미에서 people에 정확히 대응하는 한국어 어휘는 없으며, 그나마도 정치학적으로 '인민'인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아서 (& 매카시즘만 아니었다면 제일 직설적인 한자어 번역이라서) 그럴 뿐, 원문의 의미에 따라서 인민, 시민, 공민, 국민, 주민, 백성, 민중 등으로 적절하게 번역해야 한다.

이를테면 미국의 대표적 영어사전인 Merriam-Webster 영어사전에서 명사 people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plural: human beings making up a group or assembly or linked by a common interest

2 plural: human beings, persons —often used in compounds instead of persons salespeople —often used attributively people skills

3 plural: the members of a family or kinship

4 plural: the mass of a community as distinguished from a special class disputes between the people and the nobles —often used by Communists to distinguish Communists from other people

5 plural peoples: a body of persons that are united by a common culture, tradition, or sense of kinship, that typically have common language, institutions, and beliefs, and that often constitute a politically organized group

6: ower animals usually of a specified kind or situation
Merriam-Webster 사전 people 항목

굵게 강조한 부분이 정치적 의미에서 사용될 때 people의 의미이다. 하지만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영단어 people은 단순한 자연인의 모임을 넘어, 공통의 문화, 전통, 언어, 종교를 전제하는 의미로도 쓰이며, 공통의 관심사에 의해 연결된 그룹에게도 쓰인다. 혹은 그냥 같은 자리에서 모여있다는 사실만으로도 people로 싸잡아 불리는 경우도 있다. 이제 사전이 아니라, 실제 정치적 용례에서 people의 의미를 살펴보자. 다음은 키케로의 <국가론>에 나온 유명한 구절이다.
Est igitur, inquit Africanus, res publica res populi, populus autem non omnis hominum coetus quoquo modo congregatus, sed coetus multitudinis iuris consensu et utilitatis communione sociatus.

이의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Africanus said: ‘A commonwealth (res publica, lit. ‘the public matter’) is the matter of the people (res populi), and the people (populus) is not just a gathering of humans, come together in whatever way, but a gathering of a plethora (multitudo), united in their agreement on law and the sharing of usefulness.

일단 위의 영어문장을 중역하자면 다음과 같은 뜻이 된다.
아프리카누스가 말했다: 공화국(res publica, "공공의 것")은 'people의 것'(res populi)입니다. 그리고 people(populus)은 인간이 아무렇게나 모인 단순한 모임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법에 대한 동의와 유익의 공유에 의해 결속된, 다수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people을 person의 단순한 복수, 즉 '외적 소속의 개념이 거의 없는 자연인' 개념인 인민으로 옮겨버린다면 매우 이상한 문장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위의 문장에서, people은 단순한 자연인의 집단이 아니라, '법에 대한 동의'를 전제하는 '결속된 모임'으로 재정의되어있기 때문이다.[11] 이미 인민과는 한참 멀어진 용례이다. 따라서 영어 people은 단순히 인민으로 일괄 번역될 단어는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인민이 될 수 있고, 혹은 국민, 대중, 시민, 공민, 백성, 평민 등등으로도 뉘앙스에 따라 번역될 수 있다. 만약 국가에 대한 소속을 강조한다면 국민으로, 주권을 강조하고 싶다면 공민[12]이나 시민으로,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결속'이 아니며 특정한 소속감이 배제된 의미라면 인민으로 번역하면 그만이다.

특히 이 번역이 정말로 골때리는 이유는, 흔히 국민 공동체와 국적으로 번역되는 영단어 nation과 nationality는 최소한 언어가 통하고 유전적으로도 근린관계가 있어 공동체라는 의식이 강한 집단, 넓게 보면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형성되어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공동체 집단의 의미를 강하게 가진 단어라는 점이다. 물론 더 깊게 파고들자면 people도 민족의 의미를 지닐때도 있지만, nation보다는 조금 더 독립적이고 혈연적인 느낌이 강하며 '부족'이나 '종족'의 의미가 크다. 좀더 부연설명하자면, 그 자체의 세력이나 영향범위, 결속력 등만으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면서도, 주로 주변 부족이나 종족들과는 확실히 독립된 정체성이나 관습을 공유하는 인간 집단을 영어로 people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삼한의 온갖 군소부족들은 영어권 학자들 기준에서 보면 people이다. 반면 이들을 강력한 군사력이나 행정력으로 정복 및 흡수하면서 비로소 통일된 국가적 정체성을 이룬 고구려, 신라, 백제 등이나, 삼국 통일 후 새로운 국가 정체성으로 묶인 현대 한민족은 nation이다.[13] 단, 이렇게 다수결의 결정에 의해 혹은 지배층에 의해 정해진 nation이라는 범주가 잘 와닿지 않거나, 일단 그 범주에 속하긴 해도 국가보다는 주변의 친지나 지역 공동체에 더 결속감을 느끼는 사람은 스스로를 people이라고 칭할 수도 있다. people이 '평민'이나 '백성', '민초' 등의 뜻을 지니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공교육이나 프로파간다 등의 영향으로 이런 nation에 익숙해진 사람은 아예 그 nation을 더 확장된 범주의 people로 인식해서, 자신을 '어디어디의 people'이라고 칭할 수도 있다.[14] 혹은 반대로 이러한 people 세력의 규모나 이질성이 상당히 크다면, 아예 별개의 nation으로 스스로를 칭하고 분리독립 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15]

이렇듯 nation이라는 단어의 이 독특한 뉘앙스 때문에, '특정한 나라의 국적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한국인들이 국민(國民)을 사용할때, 영어 화자는 people을 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수도 있고, 국가주의가 많이 쇠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정치학적 의미에서 national people이니 어쩌니 하는 말이 의외로 잘 안보이는 것은, 동어반복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nation의 이처럼 독특한 뉘앙스도 한 몫을 담당한다. 결국 이 문서에서 계속 강조되는 것이지만, 번역자가 적절하게 문맥에 따라 추론하여 번역해야 하며, 단어 하나를 일괄적으로 국민이니, 인민이니 하면서 번역하는건 지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미국헌법이나 독립선언문 그리고 주요 연방법률에서의 자주 등장하는 people을 생각해보자. 여기서는 국민으로 번역하기가 난감한 단어다. 왜냐하면 미국 혁명은 그 특성상 미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를 지향하며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는, 버지니아의 people, 펜실베니아의 people 등이 폭정에 반대하여 '연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州)들을 강력하게 결집시킨 국가로서의 미국남북 전쟁 이후의 체제이다. 따라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들어가는 people이란 미국의 people이라는 정체성보다는, 팬실베이니아 people, 미주리 people, 버지니아 people, 조지아 people의 정체성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국민'보다는 '주민'이나 '인민' 쪽의 번역이 적절할 것이다.

한편 이번에는 프랑스 인권 선언을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du peuple français(the people of France)의 대표자들인 Assemblée nationale(National assembly)가 나온다. 이 문구에서는 people이라는 집단을 묶는 것이 프랑스라고 명시되어있고, 이들의 대표들에게 national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따라서 the people of France는 프랑스 국민으로 옮겨도 무방하다.

또한, 위에서 인용한 키케로의 표현에서 people은 법에 대해 동의하는 '결속된 모임'이므로, 인민보다는 국민 혹은 공민이나 시민이 적절할 것이다.[16]

러시아어에서는 인민을 '나롯(народ)'이라는 단어로 번역한다. 이 단어는 people과 nation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5. 유사한 처지의 단어

5.1. 노동자

한반도에서 비슷한 일을 당한 단어로는 노동자가 있다. 남한에서는 노동자보다는 근로자(勤勞者)라는 표현을 강조해왔다. 다만 노동자는 또 인민과도 약간 다르다. 노동자는 북한에서 강조하기 이전부터, 일제강점기부터 계급적 뉘앙스가 강하다며 우익 진영에서 기피해왔기 때문이다.[17] 물론 북한에선 이런 기피 현상이 없었으니 '로동자(두음법칙 부정)'라는 표현을 좀 더 자주 쓰는 것은 맞다. '근로자'라는 표현은 박정희 정권 등을 거치면서 의도적으로 계속 강조되었다. 그래도 '인민'과는 달리 '노동', '노동자'는 남한에서 금기시됐다고 할 정도까진 아니다. 고용노동부에서 보듯 노동이라는 말은 남한의 정부 부처에서도 쓰일 정도니까.[18]

학문적 차원에서는 노동이라는 단어는 전혀 문제없이 통용되고 있다. 노동법도 노동이라는 표현을 쓰고, 노동경제학은 가장 자유지상주의에 가까운 세계관을 갖춘 주류경제학이라는 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경제학이다. 생산요소로서의 노동(labor) 또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근로3권이나 근로기준법처럼 법적으로 용어가 고정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오히려 근로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어색한 상황이다.

노동법상에서는 두가지 용어를 애매하게 섞어서 사용한다. 직접적으로 근로기준법상에는 노동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며 근로자라는 말만 나온다. 다만 집단적 노사관계법에서는 노동조합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식이다. 그래서 공식매체나 정부, 기업에서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기념하지만 노동단체에서는 '노동절'을 기념한다.

북한에서도 '근로'라는 말은 자주 쓴다. 근로의 정신, 근로인민, 근로자의 날 등. 심지어 조선로동당의 공식 기관 잡지의 이름이 근로자이다.[19] 북한 애국가에서도 "근로의 정신은 깃들어"라는 표현이 있다.

5.2. 동무동지

동무는 순우리말이며 동지는 서양의 Comrade 개념을 번역한 것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북한에서의 용례는 크게 다르다. 동무는 계급이나 지위가 같거나 낮은 사람에게만 쓰이며 동지는 계급이 높은 사람을 지칭한다. 즉 수령동무는 틀린 표현인 정도가 아니라 자칫 잘못 쓰면 아오지 끌려갈 수 있는 위험한 말이며 수령동지가 올바른 표현이다. 이 동지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남성 어르신에게는 '아바이'라고 부르기도 해서 더 높여 부르면 수령아바이라고도 한다.

5.3. 주석

PresidentChairman의 역어로 사용됐던 주석(主席)도 이러한 레드 컴플렉스로 인해 사용이 제한됐다.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임정 시절만 하더라도 이 단어는 좌·우 무관히 국가조직의 최고 책임자를 지칭하던 용어였는데 1949년 중국의 공산화 이후 한국에서는 본 단어가 공산권, 특히 북한,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공산국가의 최고지도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축소됐다.[20]

[1] 해당 조약의 경우 체결 과정에서 중국이 가져다 준 초안의 '상민'(商民) 대신 조선의 주장을 통해 '인민'으로 단어가 변경되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출처: 세계외교사 (김용구, 박문사, 2006) pp. 485)[2] 창세기 14:16, 사무엘하 15:23, 역대하 17:9, 에스더 1:5. 그러나 1998년 발행된 개역개정판에서는 모두 다른 단어로 대체.[3] 사실 훗날 "민"에 해당하는 뜻으로 많이 쓰이게 되는 백성(百姓, 백가지 성)이라는 표현도 이 인과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사(士)계급 정도는 되어야 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4] '대인'의 상대어가 '소인'인 건 맞지만, '사' 그러니까 '봉토를 받을 수 있는 상류 계층'이라는 의미에서 '군자'를 소인의 상대어로 보는 것이 조금 더 맞다. 애초에 군자가 토지를 가진 사람, 곧 '군'의 아들이라는 뜻이니. 덧붙여서, 대인이 소인의 상대어가 되면, 뉘앙스가 조금 달라지는데 '토지 분급대상'으로서의 기준이 적용된 것이다. 그러니까 균전제 같은 제도에서 몇살 이상이 되면 경작할 토지 얼마를 분급받는다-라는 규정 같은 것이 적용되는 구분인 셈.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다.[5]인하대 교수인 국순옥과 방송대 법학과 교수들, 민주법연 소속의 학자들 정도가 다른 견해라고 할 수 있겠다. 관심있는 사람은 국순옥의 '민주주의 헌법론' 참조. 교과서는 아니고 논문집이다.[6] 후술하겠지만, people과 '인민'이라는 단어의 관계도 1대1로 대응되는 관계가 아니라 더 복잡해진다.[7] 단, 그렇다고 '국민'이라는 단어가 전체주의적 단어라는 것은 지나치게 매도하는 것이다. '국민'의 '국(國)'과 '민(民)'을 복속관계로 파악하여 국가가 민을 복종시키는 뉘앙스가 있다고 말하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으나, "a community of people composed of one or more nationalities"라는 영어사전(Merriam-Webster)의 설명이나,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이라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 실제 학자들의 용례들을 본다고 하면 '국민'은 어디까지나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오히려 국가의 본질이 '구성하는 민(民)'에 있음을 강조하는 용어이다.[8] 국명부터가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며 '인민'이라는 표현이 비교적은 자주 사용되는 편이다.[9] 물론 사람 인(人)은 원래 한자음 자체가 '인'이기 때문에 두음법칙과 관계없다.[10] 근데 사실 금강산 관광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현대아산에서 고용한 조선족이 절대다수고, 금강산 여행의 특성상 여행객이 굶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애초에 그 정도로 개방된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면 북한 기준으로는 나름 중산층이다.[11] 키케로(정확히는 아프리카누스) 역시 non A sed B의 서술구조를 통해서, populus의 통념적 의미인 A와 자신이 재정미한 의미인 B를 대비시키고 있다.[12] 주로 공산권에서의 표현[13] 몽골을 또다른 예로 들면, 보르지긴 족, 메르키트족, 타이치우드 족 등은 people이고, 칭기즈칸이 이들을 하나로 규합한 끝에 탄생해 오늘날 몽골과 내몽골인들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정체성은 nation이다.[14] 자기 조상이 여진족이었든 중국 사람이었든, 근현대에 이주한 화교가 아닐 바에야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고 산 역사가 워낙 길어서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면 별 고민없이 스스로를 '한국인'(the Korean people)에 속한다고 칭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사람에게는 nation과 people의 구별이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15] 한때 인도의 일부였다가 독립한 방글라데시(동벵골)와 파키스탄,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스코틀랜드인 등이 바로 이러한 경우다. 이들은 스스로를 별개의 nation으로 자주 정의한다.[16] 그렇기 때문인지, 전 주바티칸 한국대사를 지닌 성염 교수는 해당 문구에서 populus(people로 번역된 라틴말 단어)를 국민으로 번역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번역하면서 <신국론>에 인용된 키케로의 해당 표현도 번역한 것인데, '국민'으로 옮긴 것이다.[17] 인민에는 구분의 개념이 없지만, 부르주아와 노동자는 서로 구분되는 개념인데 이러한 계급적 구분이 인식되는 것을 우파는 위험하게 생각해 왔다.[18] 단, 고용노동부라는 명칭도 '노동'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를 희석시키기 위해 일부러 '고용'을 붙인 게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19] 로동신문의 자매지 역할을 수행한다.[20] 다만 프랑스 임시정부의 국가원수는 주석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