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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1c25><colcolor=#fff> 홍콩섬 香港島[1] | Hong Kong Island | |
위 지도에서 15~18번이 홍콩섬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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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면적이 울릉도나 백령도 크기 정도 되나 인구는 무려 125만명으로, 매우 인구 밀도가 높다.
2. 상세
간판이 난립한 이미지(구룡반도), 홍콩 디즈니랜드 등 일부 이미지를 제외하면 홍콩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 대부분이 홍콩섬 지역의 분위기다. 홍콩이라는 현대 도시의 발상지이자 홍콩의 또 다른 중심지로 행정기관 같은 정치 시설 및 여러 쇼핑몰과 상업 건물이 몰려 있다. 홍콩섬 북부부터 구룡반도 남쪽까지 이어진 지역이 홍콩의 중심지이다.
크기는 면적은 78.59 km²[3]로 란타우섬에 이어 두 번째로 크며, 홍콩 개항 이후 가장 먼저 발달한 지역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식민지로 할양된 지역이다.
1842년 천비가조약에 의해 영국으로 할양하기로 한 땅이 이곳 홍콩 섬이었는지라 자연히 청나라와 영국이 처음 교역했을 시점부터 발달했다. 빅토리아 시대 이전부터 발달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침사추이-몽콕에 이르는 구룡반도 남단이 제2차 아편전쟁 이후 베이징 조약으로 추가 할양되어 둘이 연담화되었다.
초창기에 개발된 덕분에 좀 더 오래된 빅토리아 시대의 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아예 속어로 '빅토리아 시'라고 할 정도고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에서 따온 항구인 빅토리아 항(Victoria Harbour)도 있다. 현재의 센트럴 스타페리 부두와 마카오행 제트포일이 오가는 셩완 부두를 잇는 지역을 뜻하는 빅토리아 항은 지금 항구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으나 상징적 의미는 크다.
산악지형이 대부분이라 좁은 평지에 마천루가 있으며 홍콩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다. 참고로 빈부격차가 심한 홍콩에서는 부자들이 산에서 많이 산다. 홍콩의 기후가 기본적으로 후덥지근해서 과거부터 영국인이나 부자들은 시원한 고지대를 선호했고 고지대 특유의 불편한 교통도 과거엔 가마, 지금은 자동차가 있는 부자들에겐 별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홍콩뿐 아니라 다른 옛 영국령 식민지 지역들도 마찬가지로 옛 지배자 백인들의 거주지는 고지대인 경우가 많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자리잡은 맥그로드 간즈나 말레이시아의 페낭 힐 및 카메론 하이랜드 등이 그 예이다. 싱가포르는 산이 거의 없고 낮은 언덕만 좀 있는 평지었음에도 적도에 붙어있는 곳이라 더위가 심해 영국인들은 어떻게든 구릉 쪽으로 가서 살고는 했다.
홍콩섬 내에선 거주지가 계층별, 인종별로 나눠져서 영국인 등 백인들은 해피밸리 및 미드레벨, 남쪽 사이버포트 일대에 주로 살고 중국인 서민들은 주로 노스포인트, 코즈웨이베이, 완차이에 거주하는 편이며 한국인들은 동부 홍콩 섬의 타이쿠싱이나 사이완호에 밀집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정작 사이완호가 가까운 노스포인트에선 한국인을 보기가 힘든데, 노스포인트는 옛부터 중국계 주민들의 거주지였기 때문이다. 인도인 및 파키스탄인들의 경우도 센트럴 쪽에 많이 살아 시크교 사원 및 모스크가 센트럴 쪽 내륙에 있다.
산악지형이라서 언덕이 많은 관계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나 피크트램 등 산을 오르내리는 교통수단이 관광자원화되기도 했으며 언덕에 위치한 란콰이펑[4]의 경우에는 지형 상 안전사고가 발생 시 큰일이 날 수 있다. 그래서 각종 행사나 할로윈, 크리스마스 등 각종 이벤트가 있을 시기에는 홍콩 경찰이 압사 사고를 막고자 인간 띠까지 만들어가며 인원통제를 빡세게 한다.[5]
3. 역사
홍콩 특별행정구는 홍콩섬 외에도 중국 대륙과 연결된 구룡반도, 신계가 있다.1842년 제1차 아편전쟁으로 홍콩섬이 먼저 영국령이 되었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에서 구룡반도 남단[6]과 스톤커터스 아일랜드(昂船洲, 앙선주)[7]를 새롭게 할양하였다. 마지막으로 1898년 나머지 구룡반도와 신계 지구[8]를 추가하여 지금의 홍콩 영역을 확정했다.
영국은 처음에는 남향에 위치해 양지바른 스탠리(첵추 赤柱)를 중심지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부지가 좁고 해적의 위협이 있으며, 좋지 않은 우물과 전염병, 남중국해로부터 불어오는 태풍 빔 등 여러 단점이 노출되어 홍콩섬 북안 센트럴로 중심지를 옮겼다. 센트럴에 빅토리아 시(Victoria City)를 건립하면서 총독부를 신설하였고 구룡반도, 신계 할양 전에는 홍콩이라고 하면 홍콩 섬만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전의 홍콩 섬은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지만 영국의 동방 거점으로서 발전하게 된다.
흔히 알고 있는 99년간 조차 이후 중국에 돌려줘야 했던 땅은 1898년 제2차 베이징 조약으로 할양된 홍콩확장 세번째 신구룡과 신계 지역으로, 홍콩 섬과 구룡반도[9]는 원칙대로면 영국이 영구히 할양받은 땅으로서 돌려줘야만 하는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중후반에는 이미 홍콩 시가지가 신계 북부 너머로 크게 확장되었기 때문에, 영구 할양받은 홍콩섬과 구룡반도 남부만 영국령 홍콩으로 잔류하면 당장 수도 시설 등에 차질이 생기며, 그나마 있는 저수지와 위성도시 등도 대부분 신계에 있기 때문에 홍콩이 마비될 수 있다. 즉 싱가포르가 조호르바루 없이 버텼던 것과 비슷하고, 스페인으로부터 수도와 전력을 공급받지 못하는 지브롤터처럼 소규모 발전기들을 돌리고 해수 담수화를 해가며 버텨야 할 수도 있다.
바운더리 스트리트 이북의 땅은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의 건설로 99년 조차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되었고, 중국에 반환해야 하는 신계는 초록 택시가 들어가는 진짜 외곽의 클리어워터 베이나 사이쿵 반도, 툰문, 윈롱 등의 황무지들로 제한되었지만 이 지역들도 배후지 겸 완충지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계 북부만 중국에 돌려주고 남부 신계[10]만 조차기간 연장을 해가면서 남기기에는 애초에 99년 조차도 인정하지 않던 중국 정부가 길길이 날뛸 것이기 때문에 무리였다. 중국 정부는 1949년 건국과 함께 기존 국민정부, 북양정부, 청나라가 체결했던 모든 외국과의 조약 중에서 오로지 중국의 입장에 유리한 조약만 승계하고 나머지는 폐기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상태라서 홍콩 섬에 대한 영국의 주권을 부정하고 여차하면 무력으로 회수하겠다고 위협했다.[11]
우방국 미국조차 냉전기에도 홍콩이 점령되면 같이 참전하여 영국을 도와준다는 보장을 해주지 않았다. 중국이 홍콩을 점령하지 않은 이유는 외교 및 경제 상의 이유로 홍콩 점령이 득보다 실이 컸기 때문이다.
영국은 중국이 위협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의중이 없었음을 알았기에 중국 측 요구를 거부해왔지만 1975년 중국과 미국 간 핑퐁외교를 계기로 1976년 미-중 간 관계가 정상화되고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에 들어가자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못하고 협상에 임하게 된다.
영국은 협상 처음에 홍콩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인정하는 대신에 행정권을 영국에 위임한 형태로 통치 연장의 의사를 타진했으나 중국은 완강히 거부했고 대신 중국 측이 중화민국 시절 내놓은 식민지 반환 원칙인 특별행정구 관리 원칙에 더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대만 통일원칙인 1국2체제를 결합한 일국양제 반환원칙을 먼저 들고나와 결국 영국은 중국과의 친선을 위해서 홍콩 섬을 신계 북부와 같이 돌려주게 된다.
아무튼 원래대로 홍콩 섬과 구룡반도만 영국이 차지했다면 지금도 홍콩 섬과 구룡반도는 영국령이었다. 물론 땅이 좁아서 본토 쪽 신계 및 신구룡 지역들에 크게 의지해야 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홍콩과 중국의 국경지대가 동서 분단기 베를린처럼 시내 한복판에 등장하는 꼴이니 대혼란이 펼쳐졌을 게 뻔하다.[12]
4. 구획
인구의 절대다수는 구룡반도와 항만시설이 가까운 북부에 밀집해 있으며 남부는 개발이 제한되어 한적한 해변과 시골 마을들이 있다. 안그래도 비좁은 섬에 125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그것도 대부분이 북부연안에 오밀조밀 모여있어서 체감밀도는 아주 높다.[13]만일 홍콩섬만 영국이 차지하여 현재까지 중국에 반환하지 않았다면 공항은 어떻게든 이 쪽에 만들어졌거나 구룡반도의 카이탁 국제공항을 폐쇄하지 않고 빌려서 사용권을 계속 얻어냈을 것이다. 바다 건너 라마 섬은 99년 조차지역이라 중국에 돌려줘야 하는 땅이다.
홍콩 섬 인구는 130만 명 선인데 1976년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잇는 크로스하버 해저터널과 홍콩 지하철이 만들어지기 전의 홍콩섬 인구는 190만 명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홍콩섬 인구는 도심 공동화 때문에 엄청나게 많이 줄어든 숫자이다.
섬이라는 점만 빼면 대한민국의 부산과 지형이 비슷하다. 가운데에 큰 산이 버티고 있어 거주지는 연안의 쬐금 있는 평야들이다. 홍콩 섬은 육지가 아니라 섬이고 섬 북쪽이 본시가지의 일부라는 점에서 부산 안에서도 영도구와도 비슷하다.[14]
남부는 주거지역으로 흔히 중심가는 센트럴이라고 하고 셩완(上環, Sheung Wan)과 애드미럴티(金鐘, Admiralty)까지 한 축을 형성한다. 그 왼쪽으로 완차이(灣仔 Wan Chai)와 코즈웨이베이(銅羅灣, Causeway Bay), 오른쪽으로 노스포인트(北角, North Point)와 쿼리베이(Quarry Bay) 그리고 차이완(柴灣, Chai Wan)이 있다.
북부 시가지의 중심부로 2층 노면전차가 지나기 때문에 전차를 처음 타보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이국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실상 타보면 별 거 없지만 오션 파크와 리펄스 베이[15]도 남부에 위치해 있다.
지명들의 경우 보통화 발음으로 말하면 잘 못 알아듣는다. 광동어나 영어로 말하는 게 낫다. 애초에 홍콩 섬 지역은 영어권 국가들과 같은 수준의 영어 구사 능력을 갖고 있는 지역이다.[16][17]
홍콩 섬의 경우 기독교 신자가 본토 부분인 구룡반도나 신계보다 많다. 종교시설은 오래된 교회가 굉장히 많다. 북쪽의 신계에는 만불사 등 각종 사찰이나 선원 등이 있는 것과 대조된다. 영국의 성공회가 홍콩 섬에 주로 정착했다.
이는 홍콩 섬 북쪽은 오랫동안 영국이 점유해온 초창기 중심지이기 때문에 영국화 농도가 타지보다 짙어서이다. 사실 베이징 조약으로 중국 전통이 만연한 육지 부분이 대거 홍콩으로 포섭되어 인구가 적은 섬 쪽 사람들보다 육지 쪽 옛 신안현 사람들이 더 많아진 탓이 크다.
4.1. 중서구(中西區, Central and Western District)
4.2. 동구(東區, Eastern District)
4.3. 남구(南區, Southern District)
4.4. 완차이구(灣仔區, Wan Chai District)
5. 교통
부산처럼 좁은 지역에 시가지가 길게 이어져있기 때문에 MTR 홍콩섬선과 홍콩 트램이 거의 병행하며 홍콩 섬 북부를 횡단하며 교통을 책임진다. 그 외 버스들이 각지를 운행하고 있다. 섬이지만 본토와는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있으며, 스타페리라 불리는 배도 저렴한 가격으로 활발히 운행하고 있다.2016년 12월 홍콩섬 남부까지 가는 MTR 남부섬선이 새롭게 개통했다. 그리고 2022년 5월 MTR 동철선 크로스하버 노선이 개통되어 이제는 여기서 중국 대륙 경계인 로우역을 바로 갈 수 있게 되었다.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중국이 무대가 되는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에는 거진 홍콩이 등장한다. 중국 정부가 중국본토가 박살나는 꼴을 못 봐서 대부분 중국 파트는 홍콩이 맡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크나이트에서 등장한다.
- 슬리핑 독스에서 배경으로 쓰인 홍콩은 실제 홍콩섬 지역을 구현해서 지명만 빌려옴+마이너 체인지 해서 옮겨놓은 것에 가깝다. 구룡반도 부분은 구현되지 않았다.
- 아랑전설 2에서도 애버딘(香港仔) 지역이 친 신잔 스테이지로 등장하며, 배경에 해당 지역 명물인 점보 팰리스 킹덤(珍寶皇宮)이 재현되어 있다.[18]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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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병(광동어): hoeng1 gong2 dou2 (횡공도우) | 한어병음(표준 중국어): xiāng gǎng dǎo (샹강다오)[약칭] 港島[3] 울릉도와 대략 비슷한 크기이다.[4] 서울 이태원과 비슷한 곳이다. 지형이 똑같은 가파른 언덕이며 거기에 많은 호프집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밀집했다.[5] 1993년 1월 1일 란콰이펑 압사 참사가 나서 대부분 젊은이들인 21명이 사망한 이후 홍콩 경찰이 인원통제를 실시 중이다. 크리스마스만 해도 관할 경찰서장이 브리핑까지 해가며 통제에 나서고 상인들도 자발적으로 협조한다.[6] 위의 지도 14번 지역 전부와 10번 지역 남부[7] 위의 지도 2번과 12번으로 나뉘어진 남쪽 끝 지역. 현재는 육지와 이어짐.[8] 10번 지역 북부, 11~13번과, 파란 1~9번 영역[9] 바운더리 스트리트 이남[10] 칭이, 췬완, 콰이충, 샤틴, 레이유문, 쿤통, 카이탁, 토카완, 마타우와이, 까우룽베이, 삼수이포 등 신계 남부지역들로 이 지역은 신구룡이라 부르며 사실상 구룡반도의 일부로 쳤다.[11] 1949년 당시에도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미 1949년 중국측이 중국 내 영국인 소개를 위해 파견된 영국 해군 함선에 고의적으로 선제 포격을 가해 영국 해군 장병을 사살했음에도 영국은 실질적인 군사 위협에 들어가지 못했다. 중국과 대결을 회피한 데는 중국 대륙의 새로운 주인이 된 중국 공산당과 원만하게 지내자는 외교적 계산도 있었지만 중국과 전쟁에 들어가 승전한다고 보장할 수 없었던 것도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미국은 냉전이 한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 관련 전쟁에 있어서는 심지어 우방국이 중국과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참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는데 이 입장은 6.25 전쟁을 겪고 나서야 부분적으로 달라졌다.[12] 홍콩 지하철도 MTR 쿤통선과 MTR 췬완선이 중영공동선언 이전에 개통되었기 때문에, 바운더리 스트리트 기준 경계선이라면 베를린 지하철처럼 파행 운행되었을 것이다.[13] 바다 건너 구룡반도 및 신계에는 신도시가 대규모로 있어서 홍콩섬의 숨통을 트여 준다. 대륙에 접한 구룡반도가 없었으면 홍콩 인구는 지형의 한계 때문에 100만명 대에서 멈췄을 것으로 보인다.[14] 다만 영도구가 부산의 중심가라기보다는 베드타운 기능인 것과 달리 홍콩 섬 북부는 여전히 홍콩의 센트럴인 것이 차이점이다. 부산으로 치면 만약 영도 섬 북쪽에 부산역이나 남포동 기능이 있었다면 도시 내에서 비슷한 위상이었을 것이다.[15] 홍콩섬에서 스탠리와 함께 제대로 된 몇 안 되는 해변으로 모래는 전부 하와이에서 수입해 온 인공 모래다. 지형이 비슷한 부산은 광안리, 해운대, 송도, 다대포 등에 해변이 있다.[16] 홍콩 섬 거주민들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 영국령 시절부터 대대로 거주해온 사람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반환 이전에 영국은 보통화를 공용어로 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 치하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의 경우 표준중국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은근 있다.[17] 다만 2023년 기준으로는 동양인을 보면 처음에는 광동어 구사부터 하고 보는 사람도 꽤 많다. 중국어 못 한다고 하면 원어민급의 유창한 영어를 선보이면서도 초면에는 동양인이다 싶으면 광동어를 시전하는 사람이 꽤 많은 편.(초면부터 표준중국어를 구사하는 경우는 애초에 중국 본토에서 온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서 이쪽은 영어로 해 줘도 홍콩 토박이들처럼 유창하게 하진 못한다. 물론 이 사람들도 동양인을 보면 대뜸 표준중국어부터 박는다.)[18] 해상 레스토랑. 문제가 될 수 있어서인지 작중에서는 'JUMBU'로 수정해서 표기. 대유행 이후 중국 관광객 송출이 끊기자 결국 영업을 중단하고 사라졌다. 이후 하필 선체를 이동시키는 중 침몰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