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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10-14 20:18:15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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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韓國人
중국어 韓國人 / 韩国人
일본어 韓国人
영어 Korean[1]
프랑스어 Coréen (남) Coréenne (여)
독일어 Koreaner (남) Koreanerin (여)
네덜란드어 Koreaans
러시아어 Кореец (남) Кореянка (여)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Coreano (남), Coreana (여)
베트남어 Người Hàn Quốc
태국어 คนเกาหลี
마인어 Orang Korea
터키어 Koreli
아제르바이잔어 Koreyalı
우즈벡어 Koreys
아랍어 كوري (kuri)

1. 개요2. 상세3. 읽기 전 주의할 점4. 정신 문화
4.1. 공동체 문화
4.1.1. 단일민족 논란
4.1.1.1. 해체론4.1.1.2. 실재론
4.1.2. 재외동포의 의미4.1.3. 기타
4.2. 인생관
4.2.1. 한국인과 종교
4.2.1.1. 긍정적인 견해4.2.1.2. 부정적인 견해
4.2.2. 기초학문을 싫어하는 경향
4.2.2.1. 주장4.2.2.2. 반론
4.3. 평화주의 민족론
5. 생활상
5.1. 식생활5.2. 신체5.3. 놀이 문화5.4. 성문화5.5. 외모지상주의5.6. 패션에 대한 집착5.7. 빠른 경제 발전의 그림자5.8. 욱하고 폭발하는 불 같은 성격
6. 이야깃거리
6.1. 최강의 게임민족6.2. 외국 미디어의 한국인 묘사6.3. 세계최강의 예비역전력
7. 관련 문서
7.1. 외국7.2. 특징7.3. 기타
8. 둘러보기

1. 개요

한국 사람. 좁게는 대한민국의 국민, 넓게는 한반도 거주민에 그 혈통에서 비롯된 이주민 및 한국에 귀화외국계 한국인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서 한국어를 주로 사용하는 민족을 가리킨다. 여기에 귀화한 외국인과 그들의 후손들도 국적법에 의하여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에 포함된다. 한민족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2. 상세

귀화인들과 정반대로 국적은 외국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한국인의 후손 혹은 혼혈인 사람들도 한국인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으나 이들에게는 '해외동포', '한인 X세', '한국계' 라는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된다. 일단 국적법상으로 한국은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들은 법적으로 한국인이 아니다.

1997년 12월 13일 국적법 개정[2] 이전에는 부계혈통주의[3]로 어머니가 한국인이어도 아버지가 외국인이면 한국에서 오래 사는데도 외국 국적으로 수용되었다. 그래서 국적법 개정 이전에는 외국어 한 마디도 못하는 외국 국적 한국인이 많았다.

북한의 주민들을 해외에 나가서는 같은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는 경우도 있으나 분단 상황이 장기화 되어감에 따라 이 경우에도 국내에서는 '북한 사람' 또는 '북한인'으로 구분을 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해외에서의 인지도는 일본인중국인에 비해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해외에서 외국인이 국적을 물어볼 경우 흔하게 겪게 되는 상황으로, 보통 동양인을 보면 중국인이냐고 물어보고 아니라고 하면 일본인이냐고 물어보고 역시 아니라고 한 후에야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을 헷갈려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편.

물론 시간이 꽤 흐른 현재는 어디 붙어있는지 잘 안다만 구분은 잘 못하는 경우가 꽤 있는 편. 중국의 경우 마르코 폴로원나라를 방문, 쿠빌라이 칸을 알현한 시절부터 교류가 시작되었고, 중국과 서양이 충돌한 아편전쟁 등의 사건도 많았기 때문이며 일본아시아에서 유일하게 G7에 가입되어있는 나라이고 소위 와패니즈라 불리는 일본 문화가 상당히 알려진 편이라 인지도가 상당한 편이다. 역사에서도 근현대사에서 중국과 일본은 존재감이 매우 높았다. 2차대전에서도 아시아의 메이저 참전국이 이 두 국가였으니. 그래서인지 해외에서는 동양인 하면 연상하는 일본, 중국의 사람들과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다만 8~90년대도 아닌 지금에와서는 동양권에 전혀 관심이 없는 서양 사람이 아닌 이상 웬만해선 대한민국북한, 그리고 삼성전자LG전자, 하다못해 강남스타일(...) 정도는 아는 사람이 대부분. 어찌되었든 중국인이랑 일본인의 숫자를 합쳐 세계에서 14억은 넘으니(일본 1.27억+중국 13.7억) 5천만뿐(?)[4]인 한국인이 좀 더 존재감이 낮아 보이는 건 어쩔수 없는 것이긴 하다. 사실 외국에서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알도보니 한국인이었다는 경우가 많다. 다만 남미나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남한과 북한을 잘 구분 못하는 것은 다반사이며, 한국을 홍콩이나 마카오같은 중국의 자치구로 생각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사실 외국 사람 잘 구분 못하는 것은 한국인들도 비슷하다. 이란이 이슬람 국가라는 이유로 아랍어를 쓴다고 생각한다던가[5], 칠레가 남미 국가라는 이유로 멕시코 옷을 입고 기타를 치고 타코를 먹는다고 오해하는 것처럼.[6] 유럽인만 해도 영국인과 프랑스인, 스웨덴인과 러시아인을 구별하기 힘들다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CNN에서 소개한 한국인이 잘하는 10가지.

3. 읽기 전 주의할 점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몇몇 특성을 제외하고,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기에, 성급한 일반화는 위험하다. 때문에 다소 비판적인 내용도 적극적으로 수용함을 요구한다.

4. 정신 문화

4.1. 공동체 문화

대한민국의 국토는 반도라는 특성과 그 지정학적 위치의 영향으로[7] 대륙이나 해양세력의 침입을 정말 자주 겪었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국가 혹은 민족 단위의 단합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또 조선 시대 이후로 지도층인 사대부가 유교 문화를 국가 통치의 기치로 내세우면서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이후로도 일본식 군대 문화, 근대 민족주의(nationalism)의 확산 등이 더해진 결과 한국인들 사이에는 공동체 정신문화가 강하게 퍼져 있다. 이 같은 공동체 문화는 단결을 통해 단체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적합하므로 비교적 짧은 시간인 70여 년 사이에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낸 한국 사회에서 상당히 강조됐다. 그러나 이는 사회생활에서 본인의 실력보다는 혈연, 지연 등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연고주의나 조금만 엇나가면 제노포비아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자민족중심주의, 외국과의 비교로 인한 지나친 열등감 혹은 비뚤어진 애국심과 같은 국수주의의 단편 등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지나친 공동체주의적인 성향은 농경사회의 특징과도 일맥상통한다. 근대에 나타났던 다산풍조[8], 남아선호사상[9], 제사문화, 혈연과 지연이 중시되는 풍조 모두 농경사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내내 한반도의 농가인구비율은 꾸준히 80%내외를 유지하였으나 해방 이후 이촌향도 현상이 심화되자 1960년 56.9%, 1970년 44.7%, 1980년 28.4%로 대폭 감소하였는데, 이는 지금까지의 한국을 이끌어온 기성세대는 유소년기를 농촌사회에서 보내고 청년기 이후에 도시로 나간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된다. 어린시절 확립된 그러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상이 당연히 직장문화, 인간관계 등에도 나타났고 그것이 전체적인 사회분위기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세대가 교체되고, 핵가족화가 가속화되고 자유주의, 개인주의와 같은 현대적인[10] 가치관이 정착되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10년도 들어 10대와 20대, 30대에 속하는 젊은 세대들에게서는 이전의 기성세대에 비해서 전체주의공동체주의 문화가 조금 희석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문제라던가 힘든 일이 닥치면 개인이 혼자 해결하거나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진 게 예전에 비해서는 약간 보이는 편. 덕분에 공동체주의 문화에 익숙한 어르신들은 간혹 나타나는 이런 현상에 한탄을 하기도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시대적인 배경에서 상대적인 측면에 그칠 뿐인거고, 사실상 전체주의 사고방식은 뿌리가 깊어 바뀌질 않는다. 오랜 세월에 걸친 누적된 전국적인 사고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절대 쉬운 부분이 아니다. 고목이 완전히 잘리고 새싹이 나야 새로운 나무가 되듯 개인주의화가 시작되려면 반드시 개개인의 인식부터가 확 변해야 가능하다.

현 시점에서도 아이돌이나 연예인들, 정치인들에 대한 한국 대중들의 시각 등을 보면 개인주의화가 되고있거나 되었다고 보기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애당초 개개인이 서로의 의견을 듣고 논리적인 대화란 것 자체를 하기보단 서로 각자 집단에 둘러싸여 싸우는 데 급급한 마당에 과연 개인이란 존재끼리 대화가 될 것 같은가? 직장이나 학교 등지에서 보아도 정도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이지 여전히 끼리끼리 친하고 뒷담화를 하는 등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예전과는 별 차이가 없다. 애시당초 개인주의화가 되고있다 라면 대표적인 개인주의 국가들, 특히 미국이나 서유럽권과 같이 당장의 유행보다는 실용성을 더 따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색채는 어딜봐도 찾기 힘든것이 현실. 혼밥, 혼술 등의 혼~ 신조어만 남발한다고 개인주의화가 되는것은 아니다. 착각은 금물. 혼자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개인주의가 아니라 남에게는 피해를 주지않는 선에서 나의 개인적 이권을 챙기는 것이 그것이다. 이기주의와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특유의 공동체적 문화는 때때로 국가적 사건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결집력을 보여주어, 외국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월드컵 응원 문화[11], 금모으기 운동, 촛불 집회 등[12]으로 표출되는, 단기간 단합된 동안의 단결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농경사회인 계나 두레, 품앗이로 대표되는 공동체의식이 기원으로 보인다.

또한 오지랖도 굉장하다. 이 때문인지 남들이 따라하는 것에는 아주 귀신같이 따라하는 경향이 강하다.[13] 한마디로 유행에 굉장히 민감하며 개개인의 개성보다는 획일화된 패션을 중시해 한번 유행을 타면 엄청난 유행을 타는 민족으로도 유명하다. 일례로 어느 한 외국인이 한국에 왔을 당시 학생들이 잔 스포트 가방을 각 학교마다 배급받는 줄 알았다고(...) 이는 더플코트(1990년대) 노스페이스(2000년대) 패딩도 마찬가지. 물론 외국인들도 유행을 타지만 이들은 각각의 개성을 살리는데 반면 한국인들은 오히려 개성을 죽이고 오로지 유행에 맞추기 때문. 이는 한국인의 특성상 집단의 유행을 안 따르면 촌스럽고, 남들과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다는 강박 관념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특징은 다른 국가에 비해 매우 감정적인 편인데, 감정에 휘둘려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향이 많다. 이는 공동체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동북아시아 특성상 동질감과 이질감을 논리적인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람 수의 많고 적음이나 소속감의 문제보다 본질적으로 옳으냐 그릇되냐의 이성적인 판단에 초점을 맞춰가야 하는데 유달리 약한 편.

집단간 대립구도에서 감정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원인으로는 단일중심적 사고체계 배타적 내집단주의[14]를 일반적인 문화를 주요 원인으로 제시할 수 있다.

한국의 공교육에서는 사고체계의 다중심성과 상대성, 간주관적 틀의 다양한 존재 가능성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1 더하기 1은 2와 같은 정해져있는 답을 이야기하는 것만을 원하지 개인의 다양한 성격이나 사고방식, 나아가서는 자율성조차도 집단의 존재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바라볼 뿐 아무런 이득이 없다. 결국 원인이란 극단적이고 정도가 없는 집단성에 그 원인이 있는 셈이다. 마치 공장에서 어느 물건을 대량생산할 때 조금이라도 모양이나 기타 여러 조건이 좀 다르게 나오면 그걸 불량품으로 간주하고 폐기시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집단성에 대한 한가지 예시로 심폐소생술을 가정할 때, 누군가가 심정지로 쓰러지면 그사람을 보고 '어머 어떡해'같은 말들은 뭉쳐서 잘들 한다. 하지만 심폐소생술을 하는 방법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이들도 많다.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장점은 살려야 하지만 정작 집단성만 강해 아무 이득이 없다는 것은 자각해야 할것이다. 공동체주의와 집단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몰려서 걱정만 해주는 이들보다는 실질적으로 공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주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모두에게 이득이다.

4.1.1. 단일민족 논란

한국인이 단일민족인지를 논하려면 단일민족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4.1.1.1. 해체론
한국인은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여러 외부 민족들과 섞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단일민족 해체론의 가장 큰 근거로는 혈통적으로 한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다라는 점이 제시된다. 역사적으로 본 한국은 상당히 외부세력에 혼합된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중국, 여진, 거란, 몽골, 일본, 베트남 등 다양한 출처의 인적 집단들이 오늘의 '대한민국' 을 만들어 나가는 데 기여했다.

근현대 이후 활발한 교류로 한국에 들어오게 된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것은 혈통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의미에서도 그러하며 기존의 '내재적 발전에 의한 일직선적인 성장 과정' 으로 평가받던 것들이 타자와의 교류에 의한 것은 아닌가 하는 탐구도 활발하다.

더군다나 문화적, 역사적 동질성이 현실에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당장 민족주의적 시각에서는 역사적으로 고려, 조선이라는 왕조 속에서 동질성을 유지했다고 말하지만, 각 지역, 신분 등 여러 이해관계에 따라 당대인이 자신의 시대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판이하게 달랐다. 예를 들어 동학농민운동 때 집강소는 전라도, 경상도 등 지역마다 운영방식, 주도 신분, 방향 등이 첨예하게 달랐다.

반론으로 동학농민운동이라는 한 사건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니 동질성이 강하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동학농민운동이라는 말 자체도 이 사건을 평가하는 후대인의 관점이 들어간 용어이며, 당대인이 썼던 용어가 아니다. 또한 동질성에 대한 비판은 이념형과 개념화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게 실제로 그랬는지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문화적으로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도 의문이다. 개개인마다 향유하는 문화는 서로 다르며,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고 할지라도 평가, 판단 등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서 한국인은 맵게 먹는다고 하자. 과연 한국인이 그렇게 먹는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맵게 먹지 않는 사람은 한국인이라고 부를 수 없을까? 이건 개인의 성향마다 다른 문제인데, 이를 향유하는 문화적인 '경향성'이 있다고 해서 동질성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애초에 동질성으로 민족을 설정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가령 A라는 사람은 매운 것을 좋아하며 한국 역사를 잘 알고 한국 노래를 좋아하며 한국에 거주하지만 유럽에서 태어나 한국 시민권이 없고, B라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매운 것을 먹지 못하며 한국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고 한국 노래를 듣지도 않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 않지만 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을 때 과연 누가 한국인인가? 단일민족의 동질성을 설명하는 혈통적, 역사적, 문화적 동질성이 있는 공동체라는 기준은 지금에 와서 아무 쓸모가 없다. 그 기준대로라면 A도 B도 한국인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민족주의자가 동질성을 단순히 '비슷한 정치, 사회, 문화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라고 정의해도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것 자체가 단일민족을 부정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단일성을 주장하는 성격이 강한데,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건 결국 다원성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게다가 이런 식의 설명이라면 세계의 어떤 국가도 단일민족이 아닌 국가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다민족 국가와 구분할 기준 자체가 모호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구분을 해도 결국 단일민족은 실재한다고 볼 수 없다.
4.1.1.2. 실재론
파일:external/www.frontiersin.org/fgene-03-00306-g003.jpg
여기서 단일민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유전적 동질성을 획득했다는 의미이지 한국인의 기원이 하나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인은 동아시아 내에서 남방과 북방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이뤄져 형성된, 다양성을 지닌 민족이다.# 즉,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적어도 한국 내에서 한국인의 유전적 동질성이 해외와 유의미한 차이가 생길 정도로 서로가 비슷해졌다는 걸 뜻한다. 대표적으로 전세계 민족중 유일한게 한국인만 538A의 발현율이 대략 100%에 달한다.[15] 즉 현재는 다민족 국가일지라도, 어떠한 지형적 특성에 의해 외부와 단절되면서, 내부에서 강한 통일성을 띄게 되면 점점 단일민족국가로 변모해간다는 뜻이다. 괜히 중국이 위구르족등 소수민족들을 한족과 강제혼인시키면서까지 억지로 섞으려고 하는게 아니다. 실제로 과거에 정말로 현생 인류의 아종이었었던 네안데르탈인데니소바인 등은 호모 사피엔스의 압도적인 물량에 흡수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단일종으로 통합됐다.

더불어 애초에 민족이란 단순히 혈통만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민족이란 어원자체가 19세기에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단어이며 민족(Ethnic group)이라는 것은 인종, 문화, 언어, 역사적으로 동일한 정체성을 나타내는 인간 집단이란 시각으로 볼 때, 순수혈통은 당연히 아니지만, 단일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며 단일민족을 국수주의나 선민사상에 이용하면 안 되는 것이지 단일문화인 걸 부정해버릴 필요까진 없다는 것이다.

이들 단일민족 실재론자들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플로 타입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은 지역별의 유전적 차이가 적은편이라 주장한다.[16] 또한 한민족의 주변 민족, 한민족의 조상이 되는 국가들을 연구하면서 한민족의 혈통이 고대부터 지금까지 큰 차이는 없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고려 이후의 혈통 유입을 생각하더라도 그 혈통이 한국인의 현재 혈통에 큰 흔적을 나타내지 않고 있으며[17] 그들이 한국에서 정체성을 근래까지 유지하지도 못했다고 본다.[18]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백정 등이 동화가 덜된 집단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신분적인 의미도 강하기 때문에 논란이 있는 상황이며 조선 시대에 이르면 천민층은 다른 지역에서 유입되어온 외국인들이 주류였다는 기록은 있다.

한편 북방개척과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일본인과 여진족이 유입되었다고는 하나 단일민족 실재론자들은 만주족한족에 흡수된 것처럼 이들도 한국인의 압도적인 유전자 풀에 동화하여 개성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즉 항왜는 최대 5000~1만 명 정도고 김충선의 우록 김 씨 이외에는 정체성을 잇지 못했고 우록 김 씨조차 1700년경에 이르면 일본의 문화를 기초단계부터 잊어버렸으니 이들은 한국으로 귀화해 지금 우리 민족의 한 갈래가 됐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혈통성을 따지냐 문화성을 따지냐의 문제라서 해석에 따라 다르게 볼 여지는 충분하다. 이와 별개로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인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일본인여성들도 많았다. 부용회와 같은 재한일본인여성 모임회가 아직까지 존재하며 가장 많았을때가 4-5000명 정도의 규모였다고한다. 대부분이 광복즘에 결혼하신 분들이라 연령대가 90대라 생존하신분들은 적은편이다. 다만 이것은 혈통성을 따지냐 문화성을 따지냐의 문제라서 해석에 따라 다르게 볼 여지는 충분하다.

한편 여진족은 청의 건국과정에서 동화되지 않았던 집단인 번호가 청에 합류함으로써 소멸하였다고 주장한다. 중국인들도 요동에서 도피한 경우가 있었으나 요동의 거주민은 상당수가 16세기 초까지 에스닉적으로 조선인과 동일하다는 기록이 남아있었으며 그나마도 병자호란 이후 사실상 유입이 멈추었다고 본다.

그 결과 이들은 병자호란 이후 개화기까지 조선에는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다른 민족집단이 함경도 지방의 몇 여진족 마을[19]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결국 상대성으로 비교하자면 주변 지역과 비교해 고립된 소수민족 수준의 단일혈통을 혈통을 유지한 민족이 한국인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혈통적인 측면은 민족담론에서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언어, 문화적 동질성과 민족의식인데 단일민족 실재론자들은 이 면에서도 한국은 역사적으로 매우 이른 시기에 높은 동질성을 보였다고 본다. 그러나 민족의식의 경우에는 고려시대부터 3.1 운동까지 생성시기에 관한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20]

단일민족 실재론자들이 꼽는 또 하나의 근거는 언어와 문화다. 언어는 민족의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언어적 동질성이 낮아도 프랑스처럼 Nation이 형성이 가능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떠한가? 여기서도 한국은 제주도를 제외하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에간 신라사신이 중국어통역이 없었는데 때마침 와있던 백제사신이 통역을 빌려줬다는 기록과 고대어 연구 등 고대삼국시대부터 동일한 언어계열이었음을 알수있다. 그리고 제주도마저도 사투리의 특성을 보면 한국어 고어의 특성이 오랜기간 유지되어 알아듣기 힘든 것이지 기본적으로 한국어에서 파생된 방언 혹은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왕의 언문교지나 각 지역의 언문 편지를 보면 말이 통하지 않을 수준의 사투리라고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중국은 동일한 중국말인데도 필담이 아니면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투리가 심해서 다른 언어로 나누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문화적으로는 물론 지역성은 나타났으나 그것이 대표적 단일민족국가인 독일이나 일본의 지역차와 비교해도 적은 정도였으며 민족의식의 측면에서도 유교적 가치 체재의 영향이든 오랜 기간 이어진 왕조에 익숙해져서든 조선인이라는 공통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민족의 기본적인 정의인 집단 동질성 및 집단 정체성 측면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동질화를 이루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것이 유럽의 근대적 민족주의 및 민족의식과 등치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는 하다.

다만 이에 대해 독일이나 일본 또한 단일민족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 있다. 유럽의 경우에는 덴마크알바니아, 포르투갈이 단일민족성이 훨씬 높다. 당장 독일의 옆나라인 폴란드부터 거대 제국이었던 독일러시아에 침략당한 역사를 가지고있음에도 폴란드인이 94-5%나 될정도로 단일민족성이 높다.

유대인들은 사는 지역에 따라서 외부와의 혼혈이 많이 진행되었음에도, 유대교라는 정체성으로 묶였다. 심지어 이들은 서로 인종마저 다른 경우가 있지만[21] 유대인이라는 문화, 언어, 역사, 종교의 동질성으로 묶였다.

참고로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민족을 언급하며, 민족문화의 창달을 의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적혀져 있다.[22]

4.1.2. 재외동포의 의미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 이래 외국으로 이주한(혹은 이주당한) 동포가 제법 많다. 재중동포조선족, 재일동포, 고려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근대와 현대에 집중적으로 형성된 재미동포, 현대에 집중적으로 형성된 남아메리카 이주 동포 등이 있다. 한때는 이와 관련하여 '아이 수출국' 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해외 입양 문제도 자주 불거졌었다.

한국인은 폐쇄적인 성향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재외동포 또한 외국으로 이주하거나 귀화하더라도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여기거나 본국의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현지 사회에 녹아들어가지 않고 한국인들만 모이는 이들이 있어 반감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한국인만의 특징으로 볼 수는 없다. 중국인은 차이나타운이 있고 일본인도 리틀 도쿄가 있다. 누구나 낯선 환경으로 가면 가까운 사람끼리 뭉치는 법이다.

다만 이 부분은 개인차가 심한 부분인게, 일부 교포들의 경우에는 현지인들과 동화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하며 굉장히 폐쇄적인 성향을 띠는 한국인들을 경계하기도 한다.[23] 한국의 세대 갈등과 마찬가지로 이쪽도 새로 온 이민자들하고 오래 전에 정착한 이민자들 사이의 가치관 갈등이 엄연히 존재한다. 단지 이들이 해외에 있고, 대부분 한국처럼 인간관계에 파묻혀 지낼 필요는 없어 서로 무시하고 사는 경우가 많아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교포 2세와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1.5세의 경우에는 부모가 특별히 한국 문화를 가르치지 않는 이상 완벽한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2세는 이중국적, 1.5세는 원래부터 한국인이기 때문에[24] 법적으로 국적이탈 또는 국적포기를 하기 전까지는 한국인이며, 따라서 병역의 의무 또한 수행해야 한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만 18세가 되면 거의 다 한국 국적을 버린다. 애초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딨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2년동안 군대에서 구르라고 하면 누가 가겠는가?

4.1.3. 기타

게놈 추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NGS 기술 비용이 매우 싸졌으며 생물정보학이 발달해 판별이 조금 더 쉬워지고 있어 전에는 추측만 하던 것들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게 될 정도로 과학기술의 발달하였고 고고학적으로도 약 8,000여년간의 제대로 된 유전자 자료를 얻을 수 있게 된 결과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북방계적 유전자보다는 남방계적 유전자의 영향력이 크다는 주장이 있다.기사

다만 연구결과가 매번 다르게 나오기때문에 확신하기는 힘들다. 그게 아니라 그냥 표본에 따라 다르게 나온다고 보면된다 다만 대체적으로 동북부 지역의 중국인이나 만주족 등 통구스족, 서남부 일대 일본인과 유전적으로 동질성이 크다고 나와있는편이며, 베트남인이나 폴리네시아인, 대만 원주민 등에게 나와있는 소위 남방계 유전자의 비중도 나름대로 있는 편이고, 아이누족이나 일본인들에게 존재하는 Db2 유전자가 적기는 하지만 존재하며, 전체적으로 매우 소수라 별로 영향이 없기는 하지만 과거에 아랍인이나 페르시아인, 위구르인 상인들이 정착했던 영향으로 극소수의 코카소이드 유전자가 나오기도 한다.

유전자 검사에 의하면 한민족과 가장 가까운 민족은 만주족, 일본인, 북방계 한족의 순이다.# 의외로 몽골인이랑 유전적 관계는 멀다는 연구 결과. 단, 유전자 검사의 경우 주류인 미토콘드리아 DNA와 비주류인 SNP의 구분도 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신뢰하지 않는 편이 좋다.

4.2. 인생관

4.2.1. 한국인과 종교

4.2.1.1. 긍정적인 견해
근대 한국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것은 유학이다. 가장 강력한 영향이라는 말은 한국인의 종교관을 형성하는 것이 이것 하나라는 말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학계는 종교보다는 유학으로서 학문의 한 분야로 접근한다. 공자는 자신이 종교 지도자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조선 당대에 유학을 종교라고 생각한 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학자라고는 누구나 생각했다. Religion의 일본의 번역어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아주 근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이 항목에 쓰는 것이 부적절할 수도 있으나, 한국인에게 너무나 강력히 영향을 미쳐서 종교 문서에 쓰여있다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도록 하자. 혹시나 한국인의 학문관 분야가 자세해지면 이 글은 옮겨가야 할 수도 있다.

유학은 한국인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유학은 존재를 독아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유학은 한 존재에게는 반드시 그 존재를 앞선 존재가 있으며, 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현대에는 강박적이라고 경솔하게 취급되는 조상 중시에서 쉽게 드러난다. 예컨대 유학에서는 웃어른이 작고한 후에, 혼백이 흩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라고 알려진 일정 기간 동안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의례가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시묘살이 등등이 있으며, 유학에서 예는 후대로 갈수록 정교해진 측면이 크다. 대표적으로는 예송논쟁사단칠정논변이 있다. 그 복잡함은 단지 종교적인 숭배가 아니라, 어떤 지적인 사랑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유학의 영향으로 한국인은 개체가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독아적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심성을 간직한 사람은 인간의 무한경쟁이 결국에 만들어낸 균형이 인류사라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파시즘과 비슷한 오류가 있다. 자기의 이익만을 관철하는 것은 이기주의이지만 자신의 이익은 중시하되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유학의 영향은 추가 바람

유학에 대한 옹호에 반대 의견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싫든 좋든 지금의 한국인의 많은 부분이 바로 이 유학이 만든 사상관 위에 세워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유학이라는 지평을 전복하고자 하는 시도였더라도 그러하다.
4.2.1.2. 부정적인 견해
현세의 부와 안녕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유교한반도를 500년 동안 다스린 나라의 이념으로 있었다. 조상님 모시기 또한 현세의 복을 빌기 위함이었으나 나중엔 주객이 전도되어 조상님을 모시다가 큰일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몸살이 났는데도 기어이 3년상을 치르다 죽어서(…) 줄초상을 치른다거나 명당을 차지하려고 한밤에 몰래 다른 사람의 묘를 파다 걸려서 뭇매 맞거나 무리한 성묘 또는 벌초를 강행하다 아예 조상님 옆에서 영원히 잠드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조상을 모신다는 자체가 주객전도라는 사실이다.

조상을 모시는 것은 서양과는 다른 중국 문명권의 영혼관관의 영향으로 생겼는데, 그들이 조상을 모시는 것은 복을 빌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은 조상들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5대조까지는 집에서 모시는데 이에 따라 집에 돌아오면 산 부모님이 아니라 5대조의 위패에 먼저 문안을 올리러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세대가 교체될 때마다 5대조 위패의 순서가 바뀌는데 이는 그 기간 동안 모셨으면 죽은 사람의 넋이 충분히 만족하고 땅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조상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기복신앙과 결합하면서 조상신 숭배로 나타났으니 이는 가족을 신으로 생각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족전통 연구가들은 우리의 종교는 여전히 전통 기복신앙이라고 한다. 죽은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건 중국 고대 문서에도 기록되어 있고, 불교를 들여 왔더니 하라는 해탈은 안하고 천지신명 대신 부처에게 빌고, 삼국지를 알려주니 관운장한테 빌고, 기독교를 들여오니 예수한테 빌고, 6.25 이후에 맥아더 장군 신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한국인의 현대 종교 생활을 보면 대개 현세구복적 성격으로 믿는 경우가 많다. 구원을 중시하는 천주교추기경이 세 명[25]이나 나기도 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雖臥馬糞 此生可願 수와마분 차생가원)" 또는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 라는 한국 속담은 현세를 중시하는 태도를 잘 나타낸다.[26] 하지만 이런 속담들이 있음에도 한국이 자살률 최상위권 국가라는 점은 꽤나 아이러니하다.[27]

그러나 이런 모순된 자살률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한국인의 현세구복을 비는 태도는 종교 사상의 변질을 낳아 극도의 종교인을 출현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신자 수
전체 국민 비율 %
조사 연도 종교없음 불교 개신교 가톨릭 기타
1985 57.4 19.9 16 4.6 2.1
1995 49.3 23.2 19.7 6.6 1.2
2005 46.9 22.8 18.3 10.9 1
2015 56.1 15.5 19.7 7.9 0.8
출처: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1985, 1995, 2005, 2015)

2015년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인구의 56.1%는 종교가 없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볼 때 물질주의세속주의가 가장 강한 국가 중 하나이며 비종교인의 비율도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28] 종교인 중 가장 많은 19.7%가 개신교를 믿고 15.5%가 불교, 7.9%가 천주교를 믿으며 그 외 소수 종교는 약 0.8%. 개신교는 세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불교는 최근 20여 년 동안 계속 쇠퇴하고 있고, 천주교는 성장세가 약화되었다. 무종교인의 비율이 다시 종교인의 비율을 앞지른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다만 무종교 통계를 낼 때마다 깊게 살펴봐야할 게 있는데 종교를 가졌다고해서 종교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나 유럽의 경우에는 종교가 사회적 전통의 일부거나 한국의 유교처럼 집안내력으로 어릴 때부터 세례를 받으며 자연스레 가지는 문화적인 의미로써 종교를 가지는 것이지 실제 종교활동을 하냐 안하냐로 물어보면 국민의 대부분은 종교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독일의 경우 가톨릭+개신교 신자 비율이 55%가 넘는데 반해 실제 주기적으로 종교활동을 하는 인구는 350만명가량 뿐이고, 한국의 경우 신자 중의 80%가량이 매주 종교활동을 하는데 반해 스페인, 프랑스, 덴마크, 영국에서는 신자 중의 5%만이 매주 참여하며, 노르웨이의 경우에는 종교의 신자들이 평균적으로 한 해에 단 1회만 예배를 드린다는 기사를 보면 확실히 문화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향이 크다는 것을 볼수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설날 추석에 제사나 성묘정도만 하는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한국에서 무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진정한 의미의 비종교인에 가까운지는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종교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서구에서도 적극적인 종교활동을 하는 사람이 종교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 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처럼 종교 유무에 대한 이해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부모로부터 특정 종교의 영향을 받고 해당 종교에 의한 의식을 연 1회, 또는 그것보다 작아도 자신의 생활에서 특정하게 믿는 신이 명확하거나 또는 생활철학에 영향을 주는 종교가 있을 때 그 종교의 신도라고 답을 하지만, 한국인들은 적극적인 종교 활동을 가져야만 신도라고 대답하는 경향이 높다. 보통 서구 유럽이나 서아시아에서 한국인에게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볼 때 무교라고 대답하면 대부분 놀라고 한국인 50%가 종교가 없다고 대답하면, 그런 생활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충격을 받는다. 이는 과거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고 종교 자체가 철학인 시절부터 극단적인 종교 탄압등의 단절 없이 역사가 지속되었던 서구 유럽의 기독교 문화나 서아시아, 아프리카의 이슬람문화와 동남아시아의 불교 문화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인데, 이들의 관점에서 재구성한다면 사실 종교가 없다고 말한 한국인 50%의 대부분이 유교가 종교라고 말해야 옳다. 한국에서 종교가 없다고 말한 사람들 대부분은 명절이나, 조상의 기일에 정식으로든 약식으로든 제사를 지내며, 어려운 일이 있을때 막연히 조상이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자식들에게는 친구들과 우의있게 지내며, 웃어른을 공경하고 신의를 중요시 하라는 지극히 유교적인 가르침을 주며 유교적인 생활철학을 공유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앞서도 언급되었듯이 유교가 종교라기 보다는 학문에 가까워 종교라고 언급하기 어려운 면이 있고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대를 겪으며 비효율적이고 체면중시의 유교문화에 반감으로 인해 유교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것이 유교적인 철학인지를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유교의 이런 특정들로 인해 타 아시아 국가에 비해 한국에 기독교등 외래종교의 전파가 용이했던 측면도 있다. 한국인 대부분이 유교적 제사와 생활철학을 가지고 살게 된데는 당연히 조선왕조 500년의 영향이 크며,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불교인를 극단적으로 탄압한데도 영향이 있다. 실제 정치 철학으로 유교를 받아 들인 중국 등의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조선 만큼 불교를 탄압한 예는 거의 없으며. 조선은 정도전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이른바 유교원리주의 국가에 가까울 정도로 유학의 이상을 가장 현실화한 국가였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탄압이 유독 강했다.[29] 만일 한반도 역사에 조선왕조 500년이 없었다면, 태국이나 미얀마와 같이 현재 한국인의 90% 이상이 불교신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통계마다 개신교와 불교의 순위와 비율이 바뀌는 등 오차가 존재한다. 2012년 경기도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교 없음이 50.3%, 개신교는 24%, 불교는 15.6%, 천주교는 9.4%, 기타 0.7%로 위 조사와는 차이가 있다.[30] 자료 출처, 통계청.

한국에서 기독교[31]불교 등 메이저 종교들은 기복신앙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종교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어서인지 이상한 종교와 그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다툼이 있지만 다른 나라처럼 피를 보는 대립은 없어 대체로 종교 문제에서는 얌전한 편이다.
그런데 사실 종교 대립이 적은 까닭은 위에 언급한 국가가 명시해 놓은 "종교의 자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한국이 법이 강한 경찰국가이며, 국민이 형사처벌(징역이나 벌금) 등을 무서워하는 것이 더 큰 몫을 한다. 외국의 경우 동남아,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 세계에서 종교 대립이 심한 곳을 보면 그 중에는 국가에서 아무리 자국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언급하고 명시하더라도 그딴 거 없다는 식으로 자국 국민들끼리 종교로 편을 갈라 죽이고 종교로 반군과 정부군이 갈라져 싸우거나 등의 유혈사태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치안이 한국보다 나쁘며 총기 등의 무기를 소지하는 것이 한국보다 쉽다는 면이 커서 그런 것이다.오늘날 중동이나 동남아, 아프리카 등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 여러 종교끼리 서로 대립하는 나라들을 보면, 일부에선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물론 있지만 대개 무기 소지가 쉽고 한국보다 국가 공권력과 치안이 약해서 피바다가 되는 경우가 더 크다.즉, 국가에서 아무리 종교의 자유를 외쳐도 치안이 열악하고 개인의 무기 소지가 자유롭고 일일히 제재하기 힘드며 법적 처벌이 약한 나라라면 종교 분쟁은 일어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반면 한국에서 종교분쟁이 발생하지 않는 원인을 한국인에게 전통적으로 큰 영향을 준 유교와 불교의 영향으로 분석하는 주장도 있다. 사실 이게 더 정설이다 종교분쟁을 발생시키는 종교의 특징은 '신'이 있는 종교이며 그 중에서도 '유일신' 사상이 종교분쟁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데, 유교와 불교는 조상이나 석가모니를 신으로 모시는 기복신앙화 된 측면이 있지만 원래는 신을 두고 있지 않았으며 종교라가 보다는 삶의 철학에 대한 가르침이 주는 학문적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지 않았고[32], 문화적으로 해당 종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들에게 종교로 인한 분쟁은 생소했을 것이란 점이다.[33] 실제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이교도'라는 개념은 불교와 유교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며, 구약성서에서 여호수아등이 이교도를 무차별하게 죽이는 내용이 아무렇지도 않게 실리는데 반해, 불교에서는 동물의 살생 까지 금하는 등[34] 기본 종교적 철학에 차이가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이로 인해 한국인들은 타 종교를 배척하는 모습을 좋기 않게 보는 성향이 있으며, 특히 일부 개신교인이 행하는 종교테러[35]에 대하여 민감할 정도로 반감을 가지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고 분석 할수 있다.[36]

일례로 한국에서는 국민들이 서로 종교 가지고 싸워서 크게 간다 해봐야 어지간해선 모임이나 길거리에서 붙어서 말싸움으로 끝나는 정도고, 좀 심하면 종교 가지고 몇 차례 폭행 시비[37]이 좀 오가는 정도지만,[38] 이것을 중동이나 아프리카 동남아, 인도 등의 제3세계 국가들에게서 일어나는 종교분쟁(사실상 거의 지역구 전쟁급)으로 일어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여기에 인터넷이 발달한 것도 한 몫 한다. 한국의 경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인터넷 상의 폭력(악플, 온라인상 명예훼손 등)이 발달하여 사회의 폭력 방법이 과거나 다른 나라처럼 과격하게 오프라인에서 때리고 부수는 것을 온라인상의 폭력이 어느 정도 대체하면서 과격하게 욕을하고 마치 자기가 상대보다 더 우월하다는 착각을 하면서 현실에선 찍소리도 못해서 쌓인 스트레스를 마구푸는 면이 크다.[39] 한국에서의 종교 분쟁이나 정치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현피를 뜨는 경우보다 대체로 편하고 쉽게 상대방에 대한 공격, 싸움,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일종의 배출구가 되는 "인터넷" 상에서 오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걸로도 모자라서 현실에서도 서로 싸우고 심하면 누구 잡는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3세계 외국에 비하면 빈도수가 적다.

예컨대 여담으로 정치의 경우도 보면 같은 사안이라도 4.19 혁명처럼 인터넷이 없던 과거 6~70년대라면 국가가 국민을 핍박하면 들고일어나 몽둥이 휘두르고 화염병 던지는 식으로 저항했지만 21세기인 지금은 오프라인상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과거와 달리 촛불시위나 평화집회행진 등 수준으로 많이 완화되었으며 나머지 저항욕구와 비판여론과 분노표출 등의 사회에서 쌓인 불만을 (반대댓글, 반대 서명 운동 등의 방식으로) 인터넷을 활용하여 저항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까닭 또한 과거와 달리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 인터넷이라는 또 다른 분노와 저항의 표출 통로가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표현하던 방식이 인터넷으로 일부 이전, 분산된 것이며 또 과거와 달리 요즘엔 길거리마다 있는 CCTV 블랙박스 등과 같은 형사처벌용 증거 수집도 더 쉬워져 과거에는 잘하면 들키지 않을 수도 있는 폭력이나 도둑 등의 형사처벌이 더 쉽게 적발되는지라 이를 두려워해서도 있다.

만일 가정해서 한국도 제3세계 국가들처럼 총기와 로켓포 등의 개인 무기 휴대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거나 자율화되고 경찰과 공권력의 형사처벌이 지금보다 많이 약해져서 사람들이 처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외국만큼은 아니어도 한국에서도 종교나 정치 등의 민감한 이슈로 유혈사태(서로 총질)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어디까지나 환경이 그럴 환경이 아니라서 안 일어나는 것에 감사해야 할 뿐이다.

그리고 개신교와 달리 한국의 불교천주교는 함께 행사를 치르거나 종교계 거물끼리 함께 사회운동을 하는 등 나름 꽤 사이가 좋은 편이다.[40] 다음과 같은 식으로 석가탄신일을 천주교가, 성탄절을 불교가 축하해주는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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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자비'가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특별히 우리의 가정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터전이 되기를 기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2014년 석가탄신일 축하메시지>

이렇게 종교적으로 분리된 이유를 박정희 정권으로 꼽기도 하는데 이 당시만 해도 집집마다 신주단지가 있고, 마을마다 서낭당이 있는 전통적인 기복신앙이 대표 종교였다고 한다. 이것을 미신을 없애고 근대화를 한다는 명목하에 전 국민적으로 배척을 하였고 전두환정권 시절에 전통문화에서 기복신앙이 축제나 놀이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다시 살리려 했지만 이미 많이 사라진 상태. 그래도 일제강점기를 버티고, 6.25피난길에도 신주단지를 챙겨가며, 박정희 정권을 넘어 현재는 서낭당 대신 교회에 모여 빌고 노래하고 춤추고 음식을 나눠먹는걸 보면, 여전히 전통기복신앙이 대표 종교라 분석되기도 한다.

4.2.2. 기초학문을 싫어하는 경향

4.2.2.1. 주장
순수학문과 기초학문은 아니지만 예체능의 경우 교육비도 많이 들고 고생도 많이 하며 정부 지원도 변변찮은데 성공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문제는 이를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공부 좀 하던 자식이 예체능 쪽으로 가겠다고 말하면 대번에 부모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너 그걸로 벌어먹고 살 수는 있겠니?"다. 물론 앞에서 말한 나쁜 조건들이 다 현실이 된다면 굳이 진로 문제가 아니더라도 부모님 심정에 막고 싶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봤을 때 이들은 상황이 힘들어서 지원자가 적고, 지원자가 적으니 후원해 주는 단체도 없고, 후원해 주는 단체도 없어 상황이 더 힘들어지고, 상황이 더 힘들어지니 지원자가 적어진다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 진짜 했다가 못 벌어먹고 사는 상황이 된 경우가 많다.

과장을 좀 보태서 거의 모든 학문에서 철저히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학문에만 집중적으로 몰린다. 특히 인문학이나 자연과학 같은 기초학문은 한국에서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 한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기초학문이 영 좋지 못한 대접을 받는 실상이며 한국인의 대다수가 인문학적 훈련이 매우 결여돼서, 논리적 사고와 높은 수준의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에 있어서 개개인이 가진 인문학적 소양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말과 글을 통해 타인의 생각과 시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올바른 투표, 성숙한 토론 등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 근간이기 때문이다.

밥 못 벌어먹고 사는 과목을 지칭하는 '문사철' 혹은 '국철사' 라는 속칭[41]까지 돌고 있을 정도다. 기초학문을 이상하고,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능력 있는 인재들을 제대로 육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 나가서라도 한국인이 높은 성과를 낸 건 한국인에게 좋은 일이지만 바꿔 말하자면, 이는 한국의 인재들이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좋은 현상이 절대 아니라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사실 문사철은 전근대에만 해도 학문의 정수이고 사실상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겨우 백여 년 만에 가장 인기없는 분야로 바뀌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물론 당대의 지나친 문사철 우대로 인한 관리들의 현실감각 부족, 기술직 천시 등이 결코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의 경제적 수준이 선진국 궤도에 오른 이상 미래의 경쟁력을 생각해서라도 기초과학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지금 그러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아예 찬밥 신세니 그게 문제다. 기초과학에 대한 무관심은 일단 국가와 국민들 모두가 책임이 있다. 공학은 4년 정도만 공부해도 엔지니어로서 첫 발걸음을 할 수 있겠지만 기초과학에 해당하는 물리/생물/수학/화학 등은 일단 기본적으로 10년 이상의 공부를 해야 하고, 민간 기업들의 투자가 공학에 비해 미약한 것과 더불어 대학생들은 이쪽에 적극적이지 않다. 당장 거의 대부분 대학에 붙는 '취업순위 1위 대학'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자. 일단 응용과학 관련 공학기술 면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점이 장점이지만, 기초과학이 부재한 응용과학의 발전은 결국 '후발주자'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기초학문 중에서도 기초과학 분야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있어 천시해서는 결코 안되는 필수학문이다. 웬만큼 나라의 틀이 잡혔다면 반드시 대폭 지원해주고 우대해줘야 하는것이 이런 기초과학 분야인데, 대한민국은 벌써 선진국 반열에 접어든 세계 11위 경제대국인데도 기초학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결국 개선되지 못했다. 단순히 다른 국가의 성과를 보고 그것에 급급하여 언발의 오줌누기식으로 뿌려대는 정권 립서비스용 멘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우대받는다는 인식이 들 수 있을 정도의 의미있는 과학계 지원이 시급하다.

솔직히 이것은 과학뿐만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모든면에서 공부를 안한다. 아니 하기 싫어한다. 고시를 보는 경우만 몇년 더한다. 그래서 지금 공부한것만으로 돈벌 수 있는 과목을 선호하는 것. 순수과학이든 예체능이든 인문학이든 계속 공부를 해야하는 것들이다. 결국 자기가 공부하기 싫으니까 자기 자식이 하고 싶은 공부는 못하게 하고 하기 싫어하는 공부를 시키는 꼴. 이걸 보는 위키러는 꼭 기억하자. 우리나라는 지금 밥 굶고 사는 70년대가 아니다.
4.2.2.2. 반론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한국의 근대화 시기를 고려한다면 기초과학보다는 실용적인 공학/과학기술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있다. 냉전 시기, 서방권 국가인 유럽, 북미,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이 선진화된 민간/국민 생활을 누리며 기초과학에도 이런저런 투자를 하고, 공산권 국가인 소련, 중국은 국가 개발 주도로 기초과학을 전폭적으로 밀었던 그 시기에 한국은 일단 먹고 살아야 했다. 게다가 공산권의 기초과학 발전은 자본주의 서방 진영과 사실상의 수장인 미국과의 군사, 체제 경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기초학문에 투자할 여력은 고사하고, 당장 입에다 넣을 쌀도 없는 판국이라 뭐라도 만들어 팔고 식량을 구해야만 했다. 그 결과 경공업/중공업 치중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원래 나라가 주저앉았다가 다시 성장할때 극우, 황금만능주의 같은 근시안적 사고관이 자리잡는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흔한 일이다. 전체주의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에서 맹위를 떨쳤고, 선진국이라는 일본도 패전 이후 다시 경제를 건설하던 20세기 중, 후반에는 '이코노믹 애니멀'이라 불리며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한중일 모두 이렇게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 다 비슷한데 왜 한국이 기초학문에서 부족하냐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중국의 체급은 우리와 비교 불가고, 일본은 패전국이라지만 과거 열강의 일원이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투자하거나 지원하기에 별로 메리트가 있는 국가도 아니었고, 근대화를 성공할 역량이 있어 보이는 국가도 아니었다. 한국의 근대화가 좌우 막론하고 도박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그것이다. 중공업, 전자산업, IT산업 등이 한국에서 발전할거라고 본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때문에 한국 자체가 기초학문을 천대하는 나라라기보다는 근현대사에서 겪은 여러 경험이나 요인들로 인해 현재의 기초학문 천대로 이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기초학문에 대한 관심이나 수준이 부실하다는 비판은 타당하지만, 한국인들이 기초학문을 배척한다고 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한국인은 한국인의 장점이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1953년 7월 27일부터 을 거쳐가며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의 대규모 경제 지원이 있었다지만 그 어떤 기술력 없이 맨손으로 시작해야만 했다. 고작 약 50여년만에 근대화, 현대화를 달성한 국가이며 세계 꼴찌 수준의 경제 규모에서 2019년 기준 GDP 12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경제 대국이 되었다. 과거의 평화로웠던 조선과 비교해보더라도 땅은 반토막났는데 GDP 순위는 훨씬 더 높네? 이러한 발전상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근대적 과학 방법론의 역사가 수백년에 달하는 기초과학 강국들 즉 강대국, 선진국들과의 단순한 비교는 분명 무리가 있다.

또한 대한민국이 응용과학에 비해 기초과학이 떨어지는 건 맞지만, 의외로 대한민국의 기초과학 기술력은 세계에서 8~15위(물리학, 수학, 생물학, 화학 등. 대충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 순위와 비슷하다.) 정도는 된다.

다만 보유한 국가 기술력 자체는 높은 편이지만[42][43] 학문적인 관점에서의 성과는 미미한 편이다. 사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을 하면 경제력을 바탕으로 근본이 되는 학문 성과를 얻은 경우가 많다. 기초과학 강국들과 비교를 하면 우주항공, 수학, 물리 같은 분야에서 기초과학 강국들은 자국 기초과학기술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들이 그 나라 사람인 경우가 많지만 한국의 경우는 스스로 개척하기 보다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면 돈을 주고 도입하는 방식을 주로 쓰기 때문에 선구자로 외국인들이 서적에 주로 나온다. 그리고 한국에 뛰어난 권위자도, 기초과학에 아주 깊게 매진하는 사람도 매우 부족하다 보니 최첨단을 달리는 기초과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해외유학을 통하는 수 밖에 없다. 과학기술 관련해선 노벨상, 울프상, 아벨상, 필즈상, 튜링상 보유자가 없다. 한국보다 과학기술력이 낮은 국가들 중에도 이런 상의 수상자가 많이 존재하여, 명예보다도 금전을 중시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기는 하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자식에게 시키는 것이 조기교육,과외 등으로 이루어졌고 창의적인 생각보다는 단순히 암기를 빠르게 해서 답을 바로바로 찾아야 한다는 교육방침이 이런 사회를 만들게 된 것. 자신 세대에 배웠던 교육과정을 자식에게 전달해주니 창의적인 교육이 불가능 해지고 비슷한 행보를 걷게된다.
한국엄마&미국엄마 비교 [44]

4.3. 평화주의 민족론

함경도 관찰사 윤승훈(尹承勳)이 치계하였다.

“호적(胡賊)을 분탕한 과정을 군관 이희길(李希吉) 등이 싸움터에서 돌아왔기에 신이 상세하게 물어보고 또 들은 것을 참고하니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중략)

장주 부락(張主部落)에서 마을외 부락(亇乙外部落)까지 무려 1천여 집을 한꺼번에 태워버리니 연기는 하늘에 치솟고 사기는 배가되었습니다. 적들은 감히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남녀 노소가 모두 흩어져 산 위로 올라가 바라보고 울부짖을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움 속에 묻은 곡물까지 다 파내어 불태웠으며 이미 밭에 심은 곡식은 모조리 짓밟아버렸고 마을외 부락의 성채(城寨)도 다 불태웠습니다.

이 호적(胡賊)은 강성(强盛)하여 장주 부락으로부터 마을외 부락까지 40여 리에 좌우로 높은 산과 절벽이 있고 그 안은 아주 넓습니다. 토지는 비옥하고 그 가운데로 큰 냇물이 흐르며 모든 부락들은 그 물을 끼고 살고 있습니다. 집들이 즐비하고 살림의 넉넉함은 물 아래 있는 다른 호적들과 비교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다 쓸어버리고 빈터를 만들고 나니 보기에 장쾌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600년 5월8일 기사中



편견 및 고정관념/역사에서도 상술되어 있는 통념 중 하나.

한국사, 특히 조선 건국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역사를 주로 들먹이며 '수천 년 동안 침공만 당해온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면서 이를 또 역으로 해석하여 "한국인은 침략따윈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엔 어폐가 너무 많다. 그나마 철벽방어를 이룩했으면 모를까, 본토의 일부라도 점령당한 사례를 들먹이면 그저 자신들이 호구라고 자랑하는 것에 불과하다. 역사적 전례로 볼 때 당하기만 하는 국가가 살아남은 경우는 사실상 없었다.[45]

실제 한국 역사를 살펴보면 적어도 고대사에는 다른 나라를 침공했던 사례가 다수 발견된다. 고구려도 초기 엄연한 약탈로 경제를 유지하고 침공으로 영토를 넓힌 국가인데 광개토대왕어떻게 해서 만주 일대로 영토를 확장했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당시 삼국은 서로 다른 나라였고 이들이 한세기도 쉬지않고 치고박고 싸웠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나당전쟁도 물론 당나라가 빌미를 제공했지만 신라가 선제공격해서 일어났고, 관군은 아니지만 신라 해적 신라구쓰시마 섬과 강성할 때는 일본 본토 후쿠오카, 구마모토 지역까지 유린했다.

중세로 넘어가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빈번했던 오랑캐 토벌, 동북9성, 4군 6진 개척도 여진족과 같은 다른 족속들에게는 명백한 침략이다. [46] 토벌 당시 그냥 불만 지른 게 아니라 학살은 물론 농경지에다 소금까지 뿌렸다. 심지어 조선은 왜란 직후의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조차 여진족 마을 불태우고 토벌하였다.[47][48] 쓰시마 섬의 경우도 고려 창왕 때 부터 조선 세종대왕 때까지 3차례의 침공을 당하기도 했다.[49] 그리고 조선말~대한제국 시기에는 골골대는 청나라를 상대로 간도영유권을 주장하는등의 행보도 보였다.

한반도가 지정학상으로 주변 나라의 이민족으로부터의 침입을 당하기에도 적당한 데다가 실제 역사적으로도 그랬던 건 맞긴 하다. 다만 비교적 원나라와 청나라, 일본에게 굴복당한 역사가 강조되는건 그쪽 기록이 더 상세하기 때문인데, 지속적인 노출효과 때문에 더 큰일처럼 부각되었을 뿐이기도 하다. 참고로 고려/조선때도 중국쪽으로 침략할 생각이 있었긴 했으나 그 동네가 워낙에 세력이 큰 탓에 실현시키진 못하고 사대주의로 바뀌어 조용히 지냈을 뿐이다.[50] 거기다 동아시아 특유의 민족주의 등으로 인해, 만일 조선이 근대화를 일찍이 성공시키고 강력한 국가를 갖추었다면, 중국이나 일본으로 쳐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전혀 장담을 못 한다. 당시는 제국주의가 만연했기에 동서양 막론하고 어떤 국가든 자기가 힘을 갖췄다고 생각하고, 또라이같은 극단주의자가 정권을 장악하고 나면 주변국을 공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51]

한국인의 특성은 다소 정치적 호전(好戰)적인 성향 혹은 군사주의라는 견해가 있다. 근현대에 수난의 역사가 길었던 현대 한국인들에겐 "그게 무슨 개소리냐"며 잘 받아들여지지 않으나 제3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존재 (북한도 넓은 범주에선 한국인이다.), 경직된 정치계, 후술할 남한 사회에 있는 극단적 공동체사회주의의 부작용들,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는 징병제[52]와 민주주의국가 치고는 없는것이나 다름없는 문민통제[53], 과거 교련의 영향을 받은 교육방식[54], 그리고 예능프로로서의 진짜 사나이(일밤)[55]의 존재 때문에 자주 언급된다. 물론 상당수는 일본제국의 군국주의에서 배워온 것들이지만 모든게 전부 다 일제만의 탓이고 한국인은 아무런 잘못도 과거 한국사는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과장하지 않는 서술을 하더라도 "평화적이다"라는 단어는 사실상 꺼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오해하면 안 되는게 국제깡패라는 비아냥을 듣는 미국도 비슷한 언급이 있으며, 평화주의가 무조건 진리라는 것도 아니다.

5. 생활상

조선 시대의 주요 사상인 유교성리학의 영향이 남아 높으신 분, 특히 연장자에 대해 공경하는 예절에 관련된 도덕적 요구도가 매우 높은 편이나 세대가 흐르면서 차츰 흐릿해지고 있다. 당연히 별 상관 없이 단순한 문화의 차이인 부분도 많다.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예절에 대해서는 식사에 대한 예절은 식사예절, 회식, 존댓말에 대한 예절은 한국어의 존비어 문화, 압존법, 기타 예절은 예절 문서를 참조할 것.

언어적으로 직설적인 표현과 능동형 어휘 사용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는 수동태가 드물지 않게 사용되는 외국어(영어, 일본어[56])와 차별화되는 점으로 한국어에서는 어설프게 사용된 피동형이나 수동태는 잘못된 문장으로 생각한다. 조금 극단적인 경우 한국어식 수동태는 모두 번역체라며 아예 배제대상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욕으로 유명하다. 외국인이 안녕하세요빨리빨리 다음으로 배우는 말이 욕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으며, 특히 어감이 강렬한 씨발은 이미 전세계에 뜻이 알려진 욕이라고 한다(...)

또한 과거부터 풍자 또한 발달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인터넷의 발달 이후 곳곳에 등장하는 각종 유머들에서 말도 안 되는 코드로 잘 나타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사우스파크식의 욕설 개그나 비난 위주의 유머[57], 두 명이 투덕거리면서 웃기는 일본식 만담은 주류가 아니다.[58] 이렇게 뒤틀어서 풍자하는 형식의 문화가 퍼져있기에, 대통령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주요 술안주거리가 되며, 유명인들의 신상 문제 또한 자주 불거진다.

외모지상주의황금만능주의, 그리고 이에 부수하는 한탕주의 등 거친 연줄문화를 포함한, 냉혹한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경제 성장이 너무 급속도로 이어져 병폐가 심하다는 지적을 자주 들는 경우도 있고, 교육도 뒤틀려 있다는 비판을 국내외 가리지 않고 많이 받는다.

또 한국인들는 친하지 않은 사람은 3음절 이름 특성으로 성과 이름을 합쳐서 부르는데[59] 친하더라도 격식을 갖춰 3인칭으로 전달해야 하는 경우에는 합쳐서도 자주 부른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철수 선배 - 전달시에 김철수 선배 / 평소에는 이 사장님 - 전달시에 이영희 사장님.) 적당히 친해지면 높임법적으로 자신보다 낮거나 동일한 단계의 사람은 'ㅇㅇ아/야' 식으로 '야' 나 '아' 를 붙여서 부르고 높은 사람은 나이에 따른 칭호(/오빠/누나/언니 등)나 직책 및 사회 관계에 따른 칭호(선배/사장님) 등을 주로 사용하여 부르는데 전자는 이름, 후자는 성을 주로 앞에 붙여 사용한다.

별명은 성과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부른다든가 한두 글자의 발음을 강하게 바꿔 부른다든가 하는 식으로 귀여운 느낌을 많이 주기 때문에 주로 여자들이 더 많이 사용한다. 성인 이후의 남자들는 이러한 별명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욕은 잘 붙인다

그것 외에도 반말존댓말의 개념이 있어 높으신 분에게는 존댓말을 써야 하고 경직된 단체[60]에선 다나까체를 쓰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지역에 따라 한국인들도 그 도민성(道民性)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61] 물론 다르다고는 해도 (남북 문제를 제외하면) '한국인' 이라는 공통분모에 비하면 옅은 편이며 교통과 정보 매체의 발달로 더욱 희석되어 가는 추세다. 자칫 비하가 될 수 있으니 이러한 지역드립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의 저서 문화를 넘어서(Beyond Culture)에 나온 고맥락 문화저맥락 문화 중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권은 고맥락 문화에 속한다. 고맥락 문화는 말의 함축적인 의미를 중요시 하는 반면, 저맥락 문화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중시한다. 그래서 전형적인 고맥락 문화인 한국에서 눈치는 나쁜 일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 생명과도 같거나 생명 그 자체로 여겨진다. 누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 뜻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글자 그대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사회생활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스스로 적절히 필터링 내지는 변형해서 이해해야 하지만 저맥락 문화에서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또한 타인이 안다는 전제를 깔고 얘기하는 것이 고맥락이고, 타인이 알든 모르든 반드시 명시해야 하는 것은 저맥락이다.

바로 이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는 언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어일본어와 같이 고맥락 문화권의 언어는 문장에서 발화 주체들이 으레 알기 마련인 점은 거침없이 생략한다. 한국어의 특징 중 하나인 주어 생략이 대표적이며, 느낌을 나타내는 말 역시 발하는 자와 취하는 자의 구별이 없다. 반면에 영어와 같은 저맥락 문화권의 언어는 문장에서 밝혀야 할 것은 최대한 밝힌다. 한국어와 달리 영어에서 주어의 명시가 훨씬 분명하며, 느낌을 나타내는 말 역시 발하는 자(-ing)와 취하는 자(-ed)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한국어나 일본어에서는 글자 그대로 의미를 파악하면 매우 의미가 모호해지는 때가 많지만 영어를 비롯한 서구권 언어에서는 글자 그대로만 보아도 의미가 비교적 분명하게 파악되는 편이다.[62][63]

한편, 한국인들도 인정할 정도로 한국의 남 눈치보기 문화와 오지랖 문화가 지나치게 심한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한국을 경험한 외국인들한테도 잘 알려져 있는듯 하다.

5.1. 식생활

밥을 먹을 때는 향신료향신료를 섞어 만든 김치를 먹고, 고기를 먹을 때는 향신료에 싸서 먹는 민족
한국인은 주변 민족에 비해 예로부터 많이 먹었다고 한다. 이름하야 대식국(大食國)[64].

오죽하면 '한국인이 식사를 조금만 덜 했어도 보릿고개 이야기는 없었다', '옛날 전쟁이 날 때 하도 많이 먹어서 식량보급이 부족했다'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조선시대 성인 남성의 한 끼 섭취량은 420cc, 여성은 300cc, 아이는 약 180cc 정도였다. 420cc는 현대 한국 남성의 하루 쌀 섭취량과 맞먹으며 평민들은 보통 2끼를, 왕족이나 양반들은 삼시 세끼 챙겨먹고 야참에 자릿조반까지 5끼를 먹었다. 그런데 여기서 5끼라는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끼니 개념과는 좀 다르다. 예를 들어 영국티타임 같은 것을 끼니에 포함시켰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록사진에 나오는 식사량을 보면 현대의 한국인과 외국인이 다 같이 놀란다. 자세한 것은 한민족의 식사량 문서도 참고하자.

파일:attachment/한국인/chosunsang.jpg

인터넷에 조선시대 선비의 식사량이라고 돌아다니는 이 사진은 사실 선비의 사진이 아니다. 갓의 크기 등을 봤을 때 중인 정도로 보인다.[65]

예전 조선시대 남자들은 을 무려 5공기+참외 5개 등의 기타 반찬을 한 끼에 먹었다고 한다. 물론 먹은 만큼 열심히 일해야 했기 때문에 뚱뚱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착취의 전문가들

다만, 상대적으로 아침이나 저녁보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 건 맞는다. 예전의 점심은 식사라기보다는 간식에 가까웠다고 한다. 애초에 점심(點心)의 어원이 불교 용어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 왕도 보통 점심에는 국수 등 간단하게 때우고 밖에 나가는 등 에너지 소모가 클 때만 제대로 된 점심을 먹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짜게 먹어도 어차피 고된 농사 때문에 땀으로 염분이 죄다 배출되어서 괜찮았다고 한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엔 얄짤없이 고혈압 크리(...).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다른 이야기도 있다. 과거의 밥은 잡곡의 비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많이 부풀어 올랐다는 것과 또한 과거 한국인은 점심은 정도로 때웠기 때문에 식사량의 총합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또한 잡곡밥을 먹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쌀밥과는 달리 먹어도 배가 금방 꺼지는 속성이 있다. 조선시대 실록의 기록을 보면 "흉년 때조차 백성들은 쌀밥만 찾아 먹고 잡곡 귀한 줄 모른다"고 벼슬아치들이 평민들을 비판하는 부분이 있다. 당시 기준에도 은 고급, 보리 등의 잡곡은 저급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던 모양이다. 애초에 명칭부터 잡곡이다.

흔히 일반 백성은 쌀밥을 못 먹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선시대 후기에 와서 농사가 활성화된 남쪽 지방의 일반 백성들은 경제력만 뒷받침 된다면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농촌에서 춘궁기부터 추수 전까지는 보리밥이나 잡곡밥을 많이 먹었겠지만 쌀밥이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던 것이다.[66] 각종 기록이나 외국인의 목격담을 참고해보면 의외로 일반 백성들이 많이 먹고 잘 먹는다는 내용이 많다.

물론 흉년의 경우는 예외다. 솔잎, 소나무 껍질, 도토리 등의 지금 생각하면 후덜덜한 각종 구황식품을 먹고 견뎌야 했던 이면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아두자. 그나마 18세기 이후 감자고구마와 같은 훌륭한 구황식품이 전래되면서 사정이 나아졌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대식은 이미 조선시대에 유구국(오키나와)까지 알려질 정도였고 한말에 한반도를 다녀간 여러 서양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한민족의 식사량 참조.

사실 옛 과거의 역사에서 가난과 굶주림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기도 하는데 이는 일제 치하를 거치며 겪었을 때의 고생에서 생긴 잘못된 인식이다. 일제강점기는 한민족의 실생활의 측면에서 봐도 단절의 시대였고 요즘 와서는 한민족이 대대로 못 먹고 굶주렸다는 잘못된 인식을 깨기 위한 자료가 많이 나오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좀 의아한 것은, 조상들이 식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67] 이에 대해 체계적인 기록을 별로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는 문화는 1910년대 출생의 할아버지들까지 나타나는 문화다.[68][69] 노인들한테 물어보면 '사발(공기가 아니다!)에 고봉밥으로 드셨다' 는 증언을 들을 수 있다.

또 한국인은 매운맛과 MSG 같은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70] 이는 대표적 한국 음식 중의 하나가 김치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외국인들이 한국 요리라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비빔밥, 떡볶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인들은 매운 음식을 비교적 잘 먹는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요리에서 매운 맛이 발달한 이유로 먹을 것이 부족한 과거에 식욕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있다. 사실 먹는 것 자체가 풍부한 나라는 음식도 단순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연 전근대의 한국이 식량이 부족했는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고, 실제로 당시 조선인들의 식사량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또한 한국에 고추가 전해진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점[71], 정통 한식의 경우 맵지 않은 게 주류라는 점, '맵고 짠 한국 요리'의 대부분은 근대 이후에 형성된 점을 볼 때는, 그냥 현대 한국인들이 매운맛을 좋아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MSG 역시 아지노모도 출시 이후 대부분의 한국 요리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한국인 대부분이 MSG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맛 없는 음식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로는 MSG가 들어가지 않은 요리를 먹는 것이 미식가라는 풍조까지 생겨서, 식당에서 MSG를 넣지 말라고 요구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자주 사용된 MSG 덕분에 근대 이후로 개발된 한국 요리 대부분의 오리지널 레시피는 MSG이다.

한편 과거에는 고기가 귀한 음식 재료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그랬지만 한국은 전통적으로 농업 중심의 식량 생산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기호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었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예를 들면 을 재배하여 100명이 먹고 살 수 있는 땅에 목초지를 만들어 고기를 먹는다면 9명이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때 국가에서 농업을 적극 장려하여 백성들의 생활에 안정을 꾀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고기를 먹는 것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안 좋은 편이었다. 예를 들면 복날에 개를 잡아먹는 것, 고기를 먹을 때 거의 버리는 재료가 없다는 것을 보면, 고기 먹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은 의 거의 모든 부분을 버리지 않고 쓴다. 부위를 나누는 것도 자그마치 120가지로 외국에서 들으면 기절할 지경으로 나눈다. 사실 도살해서 이렇게 안 쓰이는 가축이 더 드물지만 한국인은 소를 도축하면 가죽, , , 골수, (!) 등 쓸 수 있는 건 거의 다 쓴다.

거기에 소를 어찌나 많이 먹었는지, 조선시대에는 백성들이 농사 지을 를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운다고 정부에서 많이 고민하였고, 결국 소를 잡아먹는 것을 금지한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실록을 찾아보면 '소를 잡아먹었기 때문에 처벌했다'라는 구절들이 있다. 심지어 당시 일종의 마을 자치규범인 향약에서는 '소를 잡는 것을 금한다'라는 규범이 당당하게 명문화돼서 실려 있을 정도였고, 소를 밀도살하는 것이 큰 중죄인 만큼 소를 잡을 때는 공식적으로 도살장에서 잡아야만 했다. 소를 잡아먹는 것이 금지되기는 했지만, 명절 때이거나 병든 소를 잡아먹는 것은 허용했다. 그래서 주인의 식탐과 안전 때문에 멀쩡한 소가 병든 소로 둔갑하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보수적인 영남양반가에선 쇠고기 먹는 것을 자존심으로 여겨서 돼지고기, 닭고기를 올리면 체통 없다고 며느리를 꾸중하는 일이 1990년대(!!)까지도 있었다.

쇠고기는 자주 먹었지만 조선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돼지고기는 기피되었다. 이슬람교 신자들이 돼지고기의 변질을 우려해 돼지고기를 꺼리던 게 어느새 교리와 문화적 관습으로 자리잡았듯이, 조선시대까지 돼지고기는 변질의 우려로 질이 낮은 고기 취급을 받았다.[72] 돼지고기의 수요가 급증한건 18세기와 19세기 무렵으로 비교적 근대에 들어서이며, 지금은 삼겹살이라는 한국 특유의 육식 문화 탄생으로 돈육의 섭취량이 조선과 비교하면 아주 많아졌다. 소는 귀했기 때문에, 간혹 고기를 먹어야 할 일이 있다면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개고기를 먹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여름날 영양보충을 해야 할 복날이 오면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개고기를 쓰곤 했는데,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보신탕이다.

어찌되었든 어느 한 집에서 소나 돼지 등의 가축을 도축하면 마을 집집마다 고기를 돌리는 것은 하나의 관례였다. 이러한 관례는 최근의 시골에서도 종종 보이곤 한다. 그만큼 고기가 귀한 식재료인지라 어느 집에서 고기를 생산(?)했다면, 그 집에서는 들뜬 기분이 충만한 마을 사람들에게 좋든 싫든 고기를 나눠줘야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외국인 선교사의 눈에는 한국인들이 고기를 미친 듯이 먹는 걸로 보였던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밀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하여 고기를 곁들여 먹어야 하지만 쌀은 기본적인 영양소가 고루 갖추어 있어 약간의 영양소만 보충하면 될 뿐이라고 한다. 무슨 말인고 하면 쌀을 먹으면 굳이 고기를 안 먹어도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정황들을 볼 때 양반의 사정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일반 백성이라면 늘 고기 반찬이 밥상 위에 올랐을 리는 없을 것 같다.

또한 과거 고려시대 때는 불교의 영향으로 채식을 즐기기도 하였다.
고려는 정치가 심히 어질어 부처를 좋아하고 살생을 경계하기 때문에 국왕이나 상신(相臣)이 아니면 양과 돼지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 또한 도살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다만 사신이 이르면 미리 양과 돼지를 길렀다가 시기에 이르러 사용하는데 이를 잡을 때는 네 발을 묶어 타는 불 속에 던져 그 숨이 끊어지고 털이 없어지면 물로 씻는다. 만약 다시 살아나면 몽둥이로 쳐서 죽인 뒤에 배를 갈라 내장을 베어내고 똥과 더러운 것을 씻어낸다. 비록 국이나 구이를 만들더라도 고약한 냄새가 없어지지 아니하니 그 서투름이 이와 같다. -선화봉사고려도경-

즉, 도살기술 자체가 쇠퇴하여서 중국 사신이 왔는데도 접대가 이러하다. 하지만 이후에 몽골의 영향으로 고기 먹는 문화가 다시 살아나기도 했고, 고려가 멸망한 건 600년도 더 된 이야기니 이것만으로는 한국의 고기 문화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몽골의 영향으로 도입된 대표적인 육식 문화가 쌍화(만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몽골과 다르게 가축들에게 풀을 먹일 목초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고기의 공급 문제로 쌍화를 만들 때 고기에 채소를 많이 섞어 만들었다.

참고로 현대 중국에서 한국인은 "고기가 비싸서 고기를 못 먹는 가난한 사람"으로 오해받고 있다. 흔히 중국인들이 넷상에서 한국인을 비하할 때 하는 말이 "빵쯔는 고기도 비싸서 못 사먹는다." 인데, 한국인의 고기 소비율을 보면 어불성설. 오해의 유래는 한국 드라마라는 설이 있다. 중국에서 방송되는 한국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한우 같은 고급 고기를 선물받고 좋아하는 장면을, 고작 싸구려 고기에 기뻐하는 걸로 오해해서 그렇다고.[73]

한국의 식단 차림의 전형이라 할 만한 반상 차림은 뚜껑이 있는 그릇에 담겨 나오는 반찬 가짓수에 따라 3첩, 5첩, 7첩 등으로 부르는데, 첩수가 올라갈수록 점차 차림이 풍부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딱 3가지 어디에나 빠지지 않으면서 아예 첩수에도 계산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밥, 국, 김치이다. 밥하고 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의 기본 반찬은 고기가 아닌 절인 채소였다는 이야기다. 김치에 대한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조선시대 식단을 재현한 좋은 예.

현재 한국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아직도 숟가락을 비중 있게 사용하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만 숟가락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음식에 물기가 많고 또 언제나 밥상에 오르는 국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일본의 국은 한국과 달리 건더기가 적어서 '국물'에 가깝고, 그나마도 개인별로 작은 그릇에 담아 들고 마신다. 이에 반해 한국인이 즐겨 먹는 찌개류나 물에 만 밥은 물기가 많아 숟가락이 필요한 음식이다. 한중일 양식(洋食) 경연 대회하면 수프 종목에서 한국이 싹쓸이할 기세다.

고려 후기에는 몽골 요리가 전해져 고기를 물에 넣고 삶아 그 우러난 국물과 고기를 함께 먹는 지금의 설렁탕, 곰탕이 생겨났는데, 여기서 파생된 국밥은 애초에 밥을 국에 말아놓은 것이다. 이러한 식생활 풍습은 전 세계에서 드문 것이라고 한다.[74]

결론적으로 한국인은 젓가락, 숟가락을 모두 사용하여 식사를 하는 특이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교할 때 자주 인용하는 예시이다. 이러한 음식의 스타일에 대한 표현으로 맛있는 식재료를 얻으면 중국인은 튀기고 한국인은 국을 끓이고 일본인은 회를 친다고 한다. 그리고 금속제 식기를 사용한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지금이야 도자기 그릇을 더 많이 쓰지만 1980년대까지도 숟가락, 젓가락 뿐만 아니라 그릇 전반이 다 놋쇠스테인레스였다.[75] 동북아시아 3국의 젓가락 중에 한국의 쇠젓가락은 가장 무겁고 사용하는 것이 어려운 편에 속한다.

한국의 문화는 잎 녹차 위주로 발달했다. 중국의 경우 차 문화의 본산답게 백차부터 흑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발달되었고, 일본의 경우 한국과 같이 녹차 위주이지만 말차처럼 보다 가공을 하는 쪽으로 발달된 편.

불교와 차 문화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데, 대승불교인도에서 중국을 통해 한국, 그리고 일본에 이르는 과정에서 기호식품이면서도 불교의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 차가 함께 소개된 것. 이슬람권에 이슬람이 퍼지면서 와인 문화가 멸절되고 대신 차, 커피가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은 것과 유사하다.

고려시대까지는 차 문화가 융성했으며, 우려낸 차를 상업적으로 파는 시설인 다방[76]도 존재했다. 조선시대로 넘어간 이후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불교적 음료'인 차 또한 탄압받아 쇠퇴하였다. 검약을 강조하는 유교 이념하에서 차를 사치품으로 본 것도 있고, 사농공상의 기준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을 먹일 수 있는 작물()을 생산하는 농업을 중시한 조선에서 상업적 작물[77]을 민간이 자율적으로 키우는 것은 권장되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개국 이후 조선 초부터 고려를 병들게 한 귀족적[78], 미신적[79] 행태를 일소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상징처럼 된 차 문화 또한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것. 그러나 조선조 왕실에서 소모할 차 정도는 억불정책 하에서도 남겨둔 사찰에서 생산했으며[80], 선비들과 사찰을 위주로 조선조 내내 명맥을 이어왔다. 대중화가 되기 힘들었을 뿐. 애초에 정약용의 호(다산)를 생각해보자.

일제강점기한국전쟁을 거친 후, 현대에 이르러서도 문화가 대중적이지는 않은 편. 오히려 커피가 압도적이다. 이는 자국 차 재배농가를 보호하기 위한 관세에서 비롯된 부분도 많은데, 홍차류의 경우 관세가 40%이고 한국에서 차 관련 주 생산품목으로 꼽히는 녹차의 경우 관세가 무려 600%(!)다. 애초에 자국 생산량이 압도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영업을 위한 상품(찻잎)을 대량으로 들여올 경우 관세폭탄을 맞아버리니, 다방[81]의 경쟁성이 거의 사라지는 것.

반대로 커피 원두의 경우 관세가 8%(...)이다. 애초에 세계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커피가 더 싼데다[82] 관세장벽으로 인해 대중화의 길은 요원하다. 그러나 차 매니아 층(이른바 프리미엄 시장)을 대상으로 한 시장에서는 한국 녹차도 비중이 있는 편. 중일과는 다르게 4계절이 뚜렷하다는 기후적 이유로 중엽종 차를 재배하는데다[83] 늦가을~겨울~초봄으로 이어지는 한대 시즌으로 인해 차 나무에 기생하는 벌레들이 다 죽으므로 우전같은 여름 이전에 수확하는 차들은 농약을 쓰지 않는다. 뜻하지 않은 오가닉(...)인 것.

이렇게 세계 주류에 비해 품종이 달라 풍미에서 강점을 가지고 유기농인 녹차가 소량 생산되는지라, 맛을 위해서는 돈 따위 크게 생각하지 않는 프리미엄 시장을 위주로 녹차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5.2. 신체

2000년대 이전까지는 북방계가 대부분이라는 식으로 가르쳤으나, 최근 연구결과로 보면 기원이나 유전적 유사성은 오히려 동남아시아계에 가깝다고 한다. #.[84]영양 상태가 좋아서 동아시아 사람들 중에선 상대적으로 가 큰 편이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에 신체조사를 해보면 한국인이 가슴둘레는 더 적었지만 키가 5~7cm 더 컸다고 나온다.(출처는 역사신문 6권, 사계절출판사)

임진왜란 당시 초기 전투 중 하나였던 동래성 전투가 발발한 동래읍성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골들을 측정해 본 결과 당시 조선인 남성들의 평균 신장은 163.6cm였고 여성들의 평균 신장은 153.4cm였다고 한다. 그런데 에도 막부 시절 일본인들의 평균 신장을 살펴보면 남성들은 155cm 정도였고 여성들은 144cm 정도였다고 한다. 즉, 조선인 남성들이 일본인 남성보다 8cm 정도 더 컸고 조선인 여성들이 일본인 여성보다 9cm 더 컸다는 걸 알 수 있다.참고

서울대학교의 연구[85]에 의하면 한국인은 일본인과 중국인에 가까운 민족으로 중국인, 일본인과의 Fst값이 각각 0.01155, 0.11127로써 가까운 수치를 보였고 전 대륙을 대상으로 구성된 24개 SNP를 이용하였을 경우에는 한국인은 중국인과 가까운 Fst값을 보여 주었으나 O그룹의 세부 하플로그룹들을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는 중국인보다 일본인과 가까운 Fst값-0.01757(중국인0.07269)을 보여 주었다

일본국립유전자협회[86]나 울산과학기술원[87] 역시 비슷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Y 염색체 (부계유전) 하플로그룹은 O-M176과 O-M122[88]가 가장 많으며 (각각 30%, 40%), C2-M217[89]가 약 11%, N-M231이 4%[90] D-M174 그룹은 2%[91] 정도.

mt-dna (모계유전) 하플로 그룹은 D4가 32%로 가장 많고 B 그룹이 12%로 그 다음으로 많다. A 그룹은[92] 7%이며 그 외에는 G, N9, Y, F같이 다양한 그룹이 나타나나 그 수는 적다.

사실 사료를 따져보면 한중일 3국의 동아시아의 평균 신장은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보면 개인차 수준으로 볼 수 있을 정도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이 고기를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문화나 가혹한 착취 등의 영향으로 중국에 비해서도 키가 작았던 시절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등 조건에서는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사실 물론 유전적 영향[93][94]이 있지만 시대상이나 경제력, 생활상 등에 따라 지속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신장이라 유럽의 경우에는 꽤나 달라지기도 했다, 신체가 전반적으로 크다고 느껴지는 유럽인들 중에서도 남동유럽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그리고 네덜란드, 스웨덴 등의 평균 신장은 이탈리아영국, 독일, 스페인 등 타 유럽 국가와 비교했을 때 적어도 5~10cm 이상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95] 흑인 역시 20대 평균키가 190cm을 상회하는 장신 민족부터 150~160cm 초반대의 단신 민족이 있는 등 그 차이가 크다. 보통 남성 평균키가 190이 넘는 민족들은 수단이나 케냐와 같은 동아프리카에 사는 민족들이고[96] 키가 150cm대의 민족들은 사실 인종불문하고 존재하는 피그미족의 일부라고 보면된다. 참고로 북방계 비중이 더 높은 중국 북부는 남한인들과 몸집이 비슷하며, 중국의 평균키가 작은 이유는 중국 남부인의 신장[97] 때문이다. 중국 인구수와 영토 크기를 고려했을 때 사실상 평균치는 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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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한반도 내에서도 지역마다 신장 편차가 있는데 일제강점기만 해도 위의 중국의 사례와 비슷하게 남한보다 북한 지역이 더 큰 편이었으나[98] 남한의 경제발전으로 인해 반대로 남한의 평균 신장이 북한을 앞지르며 현재는 넘사벽의 차이가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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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노무자와 일본인 조종사. 왼쪽이 한국인 노무자고 오른쪽이 일본인 엘리트층인 조종사다. 잘 보면 노무자는 말랐지만 하얗고 키가 훨씬 크고 조종사는 잘 먹고 잘 자란 엘리트인데도 키가 작음을 알 수 있다.[99]

잉겔로레 에버펠트 箸 《유혹의 역사》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체취가 적은 사람들 중 하나에 든다고 한다.(314쪽 참조) 그런데 일본인들은 재일한국인들이 마늘 냄새가 난다는 인식을 가졌다고 느낀다.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늘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먹는[100] 것 때문인지 마늘 냄새가 난다는 말 자체는 일본 뿐 아니라 다른 해외에서도 나오는 모양인데 박찬호만 해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에 마늘 냄새를 지우기 위해 일부러 한국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고 매일 서양 음식을 엄청나게 먹었다고 1박 2일에서 회고한 적이 있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체취"는 먹는 음식이나 땀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겨드랑이의 아포크린선에서 분비되는 지방이 박테리아에 인해 분해되면서 나는 액취(腋臭), 즉, 암내 이다. 영어에서 이 둘 다 "body odor"라고 표기됨에 따라 빚어지는 혼돈이다.[101]

사실 마늘냄새라는 건 진짜 냄새가 나서 그런 말을 한다기 보다는 인종차별적인 뉘앙스가 매우 다분하다. 오히려 한국인들은 타 민족의 엄청난 액취암내를 잘 맡을 기회가 없고 해외에 나갔을 때의 위축되고 부족한 자신감 때문에 '진짜로 내몸에서 냄새가 나나??'라고 당황해서 박박 씻거나 서양식만 먹는 경우가 있다.[102] 하지만 만약 이런 말을 들었을 때에는 당황하거나 위축될 필요 없이 "너야말로 지금 암내난다 한국인은 데오도란트 안쓰는거 몰라?[103]" 한마디만 대답하면 상대가 진짜냐며 허둥지둥해서 데오도란트를 찾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어로 말하면 안된다. 특히 kpop 등의 영향으로 매운 한국음식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진 최근은 마늘냄새 드립도 듣기 힘들어 졌다.

꽤나 신뢰성이 있는 조사 결과에 의해서도 체취가 날 수도 있는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들이 없다고 한다.[104]

성인과 아동 및 청소년의 과체중과 비만율이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높다고 나타났다. 출처

의외로 한민족이나 한민족과 가까운 민족들도 동남아인들과 관련성이 있을 수도 있다. Haplogroup_C-M130은 indigenous Australians, Polynesians, Vietnamese, Kazakhs, Mongolians, Manchurians, Koreans 민족들에게 분포하는데 동남아 민족들에게도 있다.

사이언스 지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한국인은 다른 인종보다 메르스에 취약하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의 한국인은 유당 분해능력이 서양인보다 뒤떨어진다.

5.3. 놀이 문화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모여서 노는 걸 아주 좋아한다. 허나 노는 것에 대해 좋지 않게 보는 이면적인 시선도 있다. 그 일례로 "그럴 시간에 일을 해라." "놀지 말고 그럴 시간 있으면 공부나 해." "밥먹고 할짓이 없어서" 등이다.

물론 이것 때문에 술자리 문화가 다소 기형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부분이 생겼으며 이 때문에 여기에 끼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괴로워하거나 아싸로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가끔은 대학 술자리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소식도 들린다. 개인차가 당연히 있는 것이니 강요하면 안된다.

다른 사람에 관심을 자주 보이고, 대인 관계를 엄청나게 중시하는 동양적인 가치관과 함께 그것이 만들어진 환경의 특성을 많이 받다보니, 대개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여럿이 몰려다니는 것에 강하다. 유독 한국에서 사람들이 혼자 밥 먹기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105], 혼자 술을 마실 경우 알코올 중독 초기증상을 의심하기도 하며, 대개 혼자 다니는 사람에 반감을 갖는다. 내향적인 사람을 보면 이상하다며 성격을 고치는 걸 권유하거나, 본인이 손발 걷고 나서서 외향적으로 만들어주려 하기도 한다.

요즘 젊은 세대가 다소 개인주의적으로 변해간다고는 하지만 기성세대와 다를 것 없이 대부분의 젊은 세대들도 혼자가 되는 것에 약한지라 모여서 밥 먹고, 모여서 놀고, 친구들하고 만나서 술 마시는 것에 더 강하다. 거기다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인데, 이러한 것은 내향적인 것과 외향적인 것과는 별개로 존재한다.[106]

청년들은 클럽에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고, 장년들은 관광버스나 관광지에서 노년들은 도시내 공원에서 흔들어 제끼고, 심지어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도 춤과 노래판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한국인의 춤, 노래에 대한 열정은 세대와 지역을 초월한다. 오죽하면,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청소년의 희망 직업에 항상 상위권에 오르고 실제로도 아이돌 및 연예계 지망생도 너무 많아서 레드오션이 될 정도다. 게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 수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노래와 춤에서 실력 경쟁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옛날 한국인들의 조상들도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많은데 제창이나 사물놀이의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그 때문인지 "한국인은 정한의 민족이 아니라 흥이 많은 민족이다."라고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쌓인 게 많으니까 풀려는 게 아닌가?"라는 반론도 있다. 다만, 뭐든지 참고 사는 것이 고대 한국인들의 문화가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흥이 많은 민족'이라는 말이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참고 살면 화병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정월에 지내는 제천행사는 국중대회로 날마다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그 이름을 영고라 하였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
고구려 백성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여, 나라 안의 촌락마다 밤이 되면 남녀가 떼지어 모여서 서로 노래하며 유희를 즐긴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
마한은 해마다 5월이면 씨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떼를 지어 모여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술 마시고 노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춤은 수십 명이 모두 일어나서 뒤를 따라가며 땅을 밟고 구부렸다 치켜들었다 하면서 손과 발로 서로 장단을 맞춘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마한조
변한의 풍습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마시기를 좋아한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한조
호남 무안현(務安縣)의 남녀 18인이 섬에 들어가 고기잡이를 하다가 갑자기 광풍(狂風)을 만나 유구국(琉球國)까지 표류하였다. 그 나라 사람들은 삭발하거나 장발 차림이었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그들이 북 하나를 가지고 앞에 와서 손으로 가리키며 고무(鼓舞)하는 모양을 지었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그 뜻을 알아채고 노래를 부르며 북춤을 추자, 그때에서야 그 사람들이 고려인(高麗人)이라고 부르면서 집을 지어 거처하게 하는가 하면 쌀을 주어 밥을 지어먹게 하는 등 자주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왜국(倭國) 살마주(薩摩州)로 이송되었다가 다시 대마도(對馬島)로 보내져 어려움 끝에 간신히 귀환하였다. - 현종실록 5권, 현종 3년 7월 28일
마을마다 북과 나팔, 피리, 몇 개의 솥뚜껑이 있어서 흔히 여름철의 고달픈 노동 시간 중에 한참 동안 일손을 멈추고 힘껏 합주하여 피로를 푼다. - 프랑스 신부 달레(C.C. Dallet)의 <조선교회사 서설> 중
아시아 민족 중에서 조선인보다 더 음악에 대하여 열렬한 애호심을 가진 민족은 없을 것이다. 군부의 어느 대신이 손풍금의 연주에 감동하여 평소의 엄숙한 태도를 던져버리고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 에른스트 야코프 오페르트

중국인인 조선족들도 같은 핏줄 아니랄까봐 중국에서도 노래를 잘하는 소수민족으로 꼽힌다고 한다. 중국의 최건 같은 경우는 러시아빅토르 최만큼이나 유명하다.

'너무 과하게 놀아서 문제가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솔직히 따져보면 너무 과하게 일을 해서 생기는 문제가 더 많다. 이로 인해 놀이 문화가 '놀 때 놀자' 는 식의 형태로서 기형적으로 발달한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문서에서 평균 노동시간 자료와 교육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밖에서 돈 벌어오시는 부모님들이 괜히 애주가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학생이 괜히 게임 중독에 빠지고 비행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적절히 일하고 건전하게 노는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는 비판도 받는다.

분명히 잘 노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놀이의 종류가 점점 한정적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현재 한국의 놀이문화는 음주[107], 클럽에서 춤추기, 당구장, PC방(주로 미성년자), 고스톱(주로 중년 이상), 영화관, 놀이공원 정도밖에 없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2명 이상 가야 하는데, 혼자서 놀이공원에 가거나 극장 등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가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108] 다른 놀이거리는 찾기도 힘들고 비용도 만만찮게 드는데다, 심하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감수해야 된다. 한 마디로 안습.[109] 미국의 경우 폭설이 와도 그것을 즐기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도심 폭설에도 썰매를 타고, 스키를 타고 눈싸움을 하는 등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만약에 한국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면 희한하다고 평가받거나 거의 좋게 보이지 않았을 것인데, 실제로 2009~10년 폭설 때 길거리에 스키를 신고 나온 사람의 영상이 화제가 되자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었다. 물론 이는 도심지에서 스키를 타는 행동이 위험하기 때문에 비판받은 것도 있고, [110] 강원도 산골에서 눈 왔을 때 스키 타고 논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긴 하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비판보다는 비난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미국 같은 나라라고 해서 그런 행동을 다른 사람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감정을 비난할 수 없다는 인식이 훨씬 더 자유로운 편이라 그러한 행동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은 덜한 편이다. 그에 비해 이쪽은 남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위와 같은 사례에서처럼 피해자가 다수일 가능성이 큰 만큼 '그 상황을 즐기려 하는' 소수에 반감을 가진 나머지 그 소수를 차별하고, 비난함으로서 자신이 다수임을 말하는 행동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이러한 사고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교통/통신의 발달 등의 이유로 다수/소수가 분명해지고 그에 따른 획일화된 가치가 보편적으로 퍼진 만큼, 개인(소수)의 가치관이 장식화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놀이문화의 개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5.4. 성문화

한국인의 성생활은 굉장히 이중적이다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양지의 성문화는 극적으로 터부시되고 음지의 성문화는 그에 반발해 경도되어 나가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유교적, 기독교적 보수주의와 서구적 개방주의가 현재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는 나라다. 성문화에 대해 숨기고 부끄러워하고 가리는데 급급하는 사람들도 수두룩 하지만 반대로 유흥업소에서 방종한 유흥을 즐기고 포르노에 대해서도 드라마에서 흔히 농담의 소재가 될 만큼 자유로운 나라이다. 전체적으로 세대차이가 많이 나며 그 세대차이의 문화충격을 극복 못하고 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을 보듯이 규제와 검열로 탄압을 가하기도 한다. 젊은층은 이러한 문화규제와 성문화 억압에 대해 반감이 크며 성적 억압성적 자유주의가 충돌하고 있다.

5.5. 외모지상주의

사실 외모지상주의는 만국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얼굴이 보통 잘생기지 못하고 못생기다보니 성형수술로 구체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한국이 심한 편이다. 명예백인을 빙의해 멋대로 다른인종을 비하하는 사례도있으며 외국에서 'Korean Look-ism'라는 말이 있는데, 구글에 검색하면 여러 가지 결과가 많이 뜬다. 외국에서도 한국인들이 유독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당장 성형수술 비율이 세계 1위인것도 그렇고 이런 내수시장 덕분에 성형외과들이 급속도로 발달해서 일부러 성형수술을 받으러 오는 외국인들도 최근 증가하고 있는 것이 좋은 현상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인터넷에서 한국이나 한국인 관련으로 이런 내용의 글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일단 다른나라에서는 성형외과가 전문의 직종 중 가장 인기있는 전문과목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하는데 반해 한국은 피부과와 더불어 가장 인기가 많은 과목이다.
자세한 내용은 외모지상주의 문서 참조.

또한 원어민 교사 역시 백인을 심하게 선호하여 영어영문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흑인보다 대학교 중퇴인 백인을 원어민교사로 더욱 선호한다.

5.6. 패션에 대한 집착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은 남녀 가리지 않고 패션에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관심을 갖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유튜브 등지에서 한국 남자들은 패션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다른 나라의 남자들에 비해 상당히 꾸미는 편이라는 외국 여자들의 반응을 많이 볼 수 있다. 통계상으로도 세계 남성 화장품 시장 1위를 한국이 차지하고 그 비중이 전체 시장의 1/4정도이니 말 다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서 세계로 수출하는 화장품이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남녀 모두 개성을 추구하는 패션이 아니라 유행을 타는 패션에만 관심이 있다. 헤어스타일부터 외모까지 유행이 시작되면 거기 따르는데 치장에 집착하면서도 남들과 똑같이 치장하여 몰개성화를 추구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물론 다른 국가도 패션의 유행이 있지만 개개인이 바리에이션을 주고 개성을 꾀하는 반면 한국인은 철저하게 유행의 기준에 맞춘다.

미국 같은 마초 국가가 아니라고 해도 외국 남자들은 패션이나 외모를 꾸미는 것에 대해 상당히 인색한 편이라서 단순히 스킨이나 로션을 바르는 것만으로도 기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나라들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마저 패션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국가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다만 한국인들이 패션에 관심이 많고 많이 꾸민다 하더라도 국제적인 패션 트렌드를 이끈다거나 선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로 외국에서 몇 년 전에 유행했거나 현재 유행하는 스타일이 한국에 그대로 수입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성향도 삼국시대까지 올라가는데 화랑이 "화장한 청년"을 의미한다는건 모두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또한 고려시대에도 한국의 화장품과 화장법이 중국에서 유행한 것도 지금 상황이랑 비슷하다. 조선시대의 경우에는 그래도 유교 덕인지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 하는 편. 하지만 그것도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왜곡되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이 논리를 역으로, 아름다운 정신이 신체에 깃들면 아름다운 신체가 되고 아름다운 향이 난다고 생각했다. 고로 얼굴이 예쁘면 이미 마음도 예쁘다는 말... 그리고 향기는 어쩌지 못하니 사향주머니가 유행한다. 결국 우리 조상님들도 우리와 똑같았다는 말.

5.7. 빠른 경제 발전의 그림자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속도로 빠른 경제 성장을 겪은 국가이다 보니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이를 압축할 수 있는 말은 '문화 지체'이다. 어느 나라든 정신 문화의 발전은 물질 문화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앞서 썼듯이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발전을 보인 바가 있기에 그만큼 갭이 큰 것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으로 인한 시민들의 의식적인 부조화가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으로 한국의 선진국 여부 논란이다. 선진국 또는 개발도상국 문서 참조.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스스로가 별 것 아니라는 소극적인 의식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 때문에 세계적인 수준의 무언가를 이뤘을 때 지나친 반응을 보이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런 최근의 개별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빠른 발전에 따른 부작용은 많다.

아직도 전근대 농업 국가의 문화사고방식을 따르는 세대가 두 눈 뜨고 살아 있으며, 이들의 자식 세대인 산업화 · 민주화 세대, 그리고 이들의 자식 세대인 정보화 세대, 이제는 이들의 자식들이 세상에 나와 성장하는 자동화 시대이다. 즉, 동시대에 전혀 다른 문화를 따르는 3~4대가 공존하는 양상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세대갈등이 적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 사회의 규범, 질서 등의 새로운 가치관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대 간의 소통이 부족해지며,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완만한 발전을 이룬 사회였으면 '지혜로운 노인'과 같은 교과서적 클리셰가 적용되었겠으나 한국은 이와 거리가 멀어지고 오히려 틀딱충이니 뭐니 하며 혐오하게 되고 만 것이다. 애당초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산업 사회에서 정보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을 몇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겪은 서구권도 문화 지체 현상으로 엄청나게 고생했는데 겨우 반세기 만에 그 모든 과정을 겪은 한국에서 극심한 문화 지체 현상이 발생하지 않기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초월적으로 유연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5.8. 욱하고 폭발하는 불 같은 성격


대한민국의 폭행,살인 같은 강력범죄 40-50% 정도가 우발적인 동기에서 벌어진다.(...) 특히 살인,살인미수 건은 그 정도가 심해서 매년 통계를 낼 때마다 우발적인 살인동기가 절반을 넘어간다. 살인은 피의자가 형량의 경감을 노리고 우발적 살인동기를 주장해서 이런 통계가 나올 수도 있으나 1999년부터 집계되는 폭행범죄는 명백하게 우발적 동기가 주요원인임이 통계치로 잡히고 있다.

6. 이야깃거리

6.1. 최강의 게임민족

"아니, 우리 같은 일개 인간들이 한국인을 상대로 타이틀 방어를 할 수 있나?"
- 재키 마오
고요한 새벽의 나라[111]는 전쟁 기술을 통달하고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크래프트 플레이어들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전쟁터에 생각없이 발을 들이지 마십시오.
-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Korea 서버의 설명.

한국인 게이머를 구별하는 방법으로는 닉네임에 붙은 KOR, ROFK, ROK, KR 등등이 있다. 한국인만 유독 국적 표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전세계 서버가 통합돼있는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플래닛사이드 2, 배틀필드, 이브 온라인 등에서는 이런 국적 구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닉네임을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스팀 관련 게임들은 KOR의 여부에 따라 뉴비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초보자들이 국적 표시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물론 "KOR=초보"라는 등식이 무조건 성립하는 것은 아니고 비율상의 차이일 뿐이다.

갖가지 경쟁이든 아니든 일단 '남과 같이 하는' 온라인 게임 등에선 전투종족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대한민국 특유의 경쟁심리[112]로 남보다 더 높게 성장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즐기라고 만든 게 게임이지만 어느새 몹 잡아서 렙업하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해 버려, 초딩들 사이에서도 자신이 고렙이면 다른 이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이 게임을 재미로 하는 건 잊어먹은 지 오래고 오직 레벨을 위해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돈을 벌려고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경우도 있다.[113]

e-sports계에서는 최고의 수준을 가진 국가로 꼽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스타크래프트 2 등 리그에 지역 시드를 배정받는 게임에서는 보통 북미, 유럽, 중국 등 인구별로 지역을 나누는데, 여기에 대한민국이 독립적으로 추가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대한민국의 e-sports계에서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심지어 대한민국이 위상을 떨치는 게임종목에서는 선수의 역수출이 일어나, 외국리그에서까지 대한민국 선수가 다수 활동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덕분에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경우는 외국인 출전 규정이 해를 거듭할때마다 수차례 빡빡하게 개정되었는데, 이 개정의 주 타겟이 대한민국 선수들이다. 왜냐면 규정을 개정하지 않으면 한국인 용병의 수준이 아닌, 한국인 만으로만 구성된 팀으로 외국리그가 도배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팀 대항전의 의미는 없지만 외국계 팀들 중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팀이 존재한다. 오버워치 리그의 경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서 연고지가 분명 외국임에도 불구하고 선수가 전부 한국인[114]인 팀도 있고 그 외의 팀도 다수의 한국인 선수 및 감독, 코치, 스태프 등을 포함하고 있어 리그 자체가 한국인에게 점령되다시피 한 상태이다. 라이엇게임즈가 규정을 계속해서 개정하는 근거가 이러한 점에 있다.

다음은 유명 사례들이다.
2018년에 개최된 The 7th KAC 노스텔지어 부문에서는 결승 진출자 8명중 5명이 한국인이었으며, 결승은 아예 한국인들끼리의 내전이 되었다. 연이어 2019년에 개최된 The 8th KAC 사볼 부문에서는 결승전에 올라온 유저 2명[138] 둘다 한국인이었으며, MINI는 결승전에서 공개된 20레벨곡 EmbryO를 초견에 9,961,845 S랭크를 내어 해설자들과 관객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외국에선 한국인 게이머가 이러한 이미지라고 한다.[139]챔피언에까지 올랐던 주인공이 한국인과의 대결 중 친구를 잃고 난[140] 충격으로 게임을 그만두지만 팬의 "그들(한국인)이 돌아왔다"는 말에 팀을 재건하고 다시금 도전한다는 내용. 오직 한국인 타도를 목표로 광적(?)인 연습에 들어가면서[141] 심즈로까지 경쟁하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장면이[142] 개그포인트이고 한국인들 타도를 외치면서 하다보니 일부 팀원은 직장도 잃고 결국엔 PC방에서까지 쫓겨난다는 결말이 우습다.
어떤 외국인은 셧다운제 한다니까 스타크래프트 할 수 있다고 좋아라 한다. 첫번째 댓글.

FPS 최강국 독일에서도 난이도: 한국인은 사람이 할 수 없는 단계다.[143]

이쯤 되면 알겠지만 한국인이 상대적으로 부진하다고 여겨지는 종목들은 대체적으로 게임의 인기가 부족하거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종목들 뿐이다.[144] 한국인이 많이 하는 게임을 못하는 경우는 아예 없다. 이에 가끔 해외 게이머들은 한국에게 주목 받지 못한 게임들은 지배할 가치도 없는 게임들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렇다면 인기가 부족한 종목은 아예 못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단적으로 도타 2의 경우 한국에서 하는 사람을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마이너 게임이고 프로팀도 하나 뿐이지만, 기복이 좀 있어도 세계대회 8강권은 무난하게 찍는 지역 강팀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인기가 부족한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경우도 있어 상대팀들도 경계를 풀지는 않는 편이다.

영문 페이스북 같은 경우 게임과 상관도 없는 beach→bitch 오류에 대한 반응에서도 게임 얘기가 나오는 분위기.#
이 새키들은 하루에 20시간씩 게임만 쳐하면서 계속 재밌길 바라는 병신들이다.
- 김치국 게이머 만화

하지만 이렇게 외국에게 한국의 게임 실력을 널리 알린 빛도 있지만 동시에 생기는 어두운 면도 있는데, 게임을 즐기려고 하기보다는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을 하며 자기가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려 한다는 면이 더 큰 것. 이런 성향의 유저들을 게임, 특히 온라인 게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MMORPG 같은 경쟁 게임이 아닌 육성 게임에서도 이런 면이 드러나는데, 최상급 아이템 등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육성하는 게임에선 '아이템을 얻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과정', 즉 'RPG' 를 즐기는 게 아니라 룩딸 '풀템을 둘둘 찬 자신의 캐릭터 과시', 즉 'MMO' 를 즐기려고 하며, 티어제가 도입된 AOS나 RTS에서는 본인의 노력이 아닌 대리와 핵과 같은 합법적이지 못한 방법을 통해 티어를 올리고서는 마치 자신의 실력이 천상계인 마냥 과시를 한다. 쉽게 말해 과정이 아닌 결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크다는 점이다.[145] 한국에서 대리, 매크로, 핵 등등이 심하게 기승을 부리는 이유기도 하다. 핵과 대리, 메크로는 해외 서버에서도 동등하게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에서 심하다고 느껴지는 걸도 이런 이유들 때문. 또한 효율적인 게임 진행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아예 정석 테크 트리/정석 아이템 세팅을 짜고서는 만들어 놓은 법칙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파티에 끼워주지도 않고, 비난까지 하는 일도 많다.

예를 들면 트롤링은 원래 고의로 아군을 괴롭히는 행위라는 뜻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경향으로 인해서 의미가 변질되어 남들과 다른 템트리, 주류 챔피언이 아닌 챔피언을 꺼내기만 해도,[146] 심지어는 고의도 아닌 그냥 실력이 뒤떨어지는 것까지 트롤이라고 말하는 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오버워치에서 드러나고 있다. 해외 유저들은 오프라인 대회임에도 조합과 전략에만 맞는다면 비주류 영웅을 픽해면서까지 다양하고 변칙적인 전략을 사용하는 반면, 한국 유저들은 메타에 맞추어 픽이 한정되어있어서 상대가 조금만 변칙적인 수단으로 대응해오거나, 카운터 픽을 들고 온다면 쉽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 트롤이라는 명목으로 다양한 픽을 하는 것을 막아버리니 밸런스 패치를 할 때를 빼고는 픽이 늘 고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한국 유저들도 이런 단점들은 인지하는지, 상대가 카운터로 대응해오면 자신들도 상대 조합의 허점을 파악하고 맞카운터(…)를 하거나, 비주류 캐릭터들을 가끔씩 조커 카드로 사용하는 등 조금씩 변칙적으로 가는 모습을 보이기는 한다.

그리고 게임 플레이에 있어서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낸다거나 하는 경우는 적은 편이다. 금지 캐릭터나 금지 플레이란 개념을 만들어버린 일부 대전격투게임이나 이상할 정도로 한 게임만 후벼판 스타크래프트의 경우에는 한국인 플레이어가 별의별 희한한 플레이들을 개발해내곤 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반향을 이끌어 낸 것은 적은 편. 덕분에 해외 문물(?)을 수입하는 경우가 많다.[147] 그리고 그것을 개량하여 외국인 게이머를 처바른다. 롤의 경우도 시즌 2까지만 해도 선진 문물 수입이 잦았지만, 시즌 3를 거치면서 한국이 독보적인 1인자가 되고 롤챔스가 세계 최고 권위 리그가 되면서부터는 그런 경향이 덜 나타난다. 오히려 외국 프로팀에서 무조건 챙겨보고 이걸 수입해가는 사례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

이런 대한게임국 이미지는 단순히 비디오 게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바둑의 경우, 응씨배 이전에는 서봉수 九단과 조훈현 九단이 국내기전을 주름잡았지만 세계 무대에서는 아예 초청도 받지 못하던 상태였다. 그런데 응씨배에서 처음 출전한 듣보잡 선수였던 조훈현 九단이 우승을 찍은 이후부터 한국인이 참가하지 않는 국제기전은 사실상 마이너리그가 되어버렸다. 그 후 이창호이세돌 등등의 괴물 기사들을 필두로 한동안 한국 바둑은 세계 최강의 자리를 누렸다. 바둑 인구의 유입이 줄어든 이후로도 차츰 약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최강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이젠 인간을 초월했다 또한 해외에서 이 '대한게임국'[148]이라는 이미지는 의외로 오래되었는지 한국전쟁을 다룬 1957년작 미국 영화 <배틀힘>[149]에서도 아직 전투기를 받지 못해 놀고 있는 동안 한국 공군 파일럿이 카드놀이로 미군 교육관을 1시간 내내 처발라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이미지 덕분인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첫번째 열쇠를 얻기위한 레이스에 5년동안 깨지 못했다고 하자 한국인이였음 못해도 2주만에 올클리어 했을거란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해외 대회에서 입상하여 상금을 받을 경우 당연히 달러로 주어진다.[150] 그래서 선수들이 달러를 받아 원화로 환전하기 때문에 외화벌이에 기여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6.2. 외국 미디어의 한국인 묘사


서양에선 일단 동양인이라고 하면 일단 접한 역사가 깊고, 한국의 5천만 인구가 적어 보일 정도의 억 단위 인구를 가진 데다 강대국 국민에 속하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을 먼저 생각해서인지 나오는 경우가 적은 편이다. 또한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나라인 만큼 나오더라도 중국인 같은 타 동양권 인물들과 구분이 어려운 몰개성한 캐릭터로 나오는 경향이 있었다. 한국이란 나라가 냉전 기간 동안 계속 성장하여 세계에 선진 강국으로 데뷔한 역사가 2000 ~ 2010년대인 걸 생각하면 그동안 한국은 존재감이 상당히 큰 중국과 일본 양국 사이에 끼어 있었다는 점이 아무래도 낮은 인지도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이 기간 동안은, 2차 세계대전의 유명했던 참전국 중 거의 유일했던 아시아 국가인 중국과 일본이 존재감이 높았던데다, 이어지는 한국 전쟁, 냉전 기간 중 공산권이라는 위치로 인해 유명했던 중국, 20세기 동안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대국을 이루었던 일본은 이래저래 유명할 수밖에 없었다. 2000~2010년대 들어서는 서양인이 지금까지 알던 동양 국가인 중국이나 일본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면모가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1972~82년까지 11시즌이나 방영된 <M.A.S.H>라는 미국 드라마는 당시 미국 내에서 최고 인기를 누렸었는데 그 배경이 한국전쟁 당시 미군 야전병원이다. 이 드라마는 당시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이상한 고정관념이나 상상, 무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151] 본토에 야자수가 나오고 한국 여자들은 기모노를 입고 남자들은 베트남식 밀짚모자를 썼다. 가난한 형제가 한 명의 부인을 공유하는 괴상한 풍습까지 나왔으니 말 다했다. 그야말로 일본인과 중국인의 잡탕이었던 것. 사실 이 작품은 원래 월남전을 다루려고 했는데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상황에서 다루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한국으로 바꿨다는 속사정이 있다. 참고로 야자수 중 종려나무는 한국 본토의 남부 지방(부산광역시, 거제시, 여수시, 목포시)에서 자생하며 종류는 일본야자인 왜종려와 중국 야자인 당종려가 있으므로 틀린 것은 아니다. 물론 중부 지방을 그렇게 묘사했다면 당연히 틀린 묘사다.

그래도 굳이 개성을 부여하자면 한국인 캐릭터는 특정 분야에 미칠 듯한 고수, 아니면 실력파라서 막강하지만 결국 주인공한테 발리는 역할로 많이 나온다. 혹은 발차기를 엄청 잘하거나, 게임을 잘하거나[152] 살짝 나사 빠진 놈이 많다. 뛰어날진 몰라도 '완벽' 하고는 거리가 먼 캐릭터가 태반이다. 남성 캐릭터는 공부 잘하는 까칠한 캐릭터로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여성 캐릭터는 공부 잘하는 보이시한 캐릭터로 나오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다른 나라의 매체에서 한국 여성의 경우에는 부치 계열의 동성애자도 묘하게 많이 나온다. 어려보이는 동북아시아 사람의 특성상 도 적지 않다. 이는 서양인들에 비해 한국인이, 특히 여성들이 (대부분 동북아시아 여성들이 이런 경향이 있긴 하지만) 동성 친구와 신체적으로 접촉하는 일이 많다는 것도 한몫한다. 의자에 앉으면 그 위에 또 앉거나 뒤에서 껴안거나 심심하면 앞에 앉은 친구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다거나 좀 친해지면 거의 언제나 손 잡고 다닌다거나 허벅다리 베개도 한다. 외국, 특히 서구권에서는 동성과 이러한 레벨의 스킨십을 하는 것은 동성애자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한 외국인이 한국의 대학가에서 여학생들이 2~3명씩 손을 잡고 길을 다니는 것을 보고 "이렇게 레즈비언이 많다니!"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굳이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인이나 일본인 여성들도 손 잡고 몰려다니거나 사이좋게 화장실에 단체로 다니[153]기에 서양인들에겐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한동안 한국 혹은 한국인 하면 한국전쟁 참전, 북한 등에서 나오는 스토리가 대부분이었고 캐릭터로는 돈벌레, 일벌레, 소수의 공부만 하는 너드로 묘사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2010년대 들어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삼성그룹, 현대그룹, LG그룹 등의 대기업부터 시작해서 K-POP, 온라인 게임 등 한국 문화의 진출로 인한 이미지 향상. PPL, 세계 영화 산업에서 한국 영화 시장의 독보적인 성장, 2010년대 들어 급증하기 시작한 국내 외국인 관광객들, 그리고 미국 본토 내에 진출한 한국인들[154] 등이 그 변화를 이끌기 시작했다.

덕분에 미국인들이 직접 실제 '한국인'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모호하고 추상적이었던 한국인이라는 특성이 점차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 내 한국계 배우 풀 자체도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한 점도 있다. 일본인과 중국인 일색이던 미드에서 점점 한국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Lost, Drop Dead Diva, Mentalist, Grey's Anatomy, 워킹 데드 등 주조연급으로 한국계 배우가 한국계임을 밝히면서 나온다. 그 외 CSI, law&order 등 각종 수사물이나 The Office 같은 시트콤에서도 한국 관련 에피소드나 나오거나 지나가는 대화에서라도 꼭 등장하는 편이다.[155]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기존의 이미지가 희미했던 것이 한류 등 한국 시장이 확장되면서 다른 동양 국가에 비해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조될 기회가 많은 면도 있다. 물론 심슨 가족에서는 그런 거 없다. 심슨 가족/한국 참고 앞으로 해외 매체에서 한국인 캐릭터의 다양화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 내용은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 이야기고, 미디어나 매체에서 북한인들은 다들 악당, 테러리스트 등으로 나오는 등 북한의 자업자득으로 생긴 이미지 때문에 인식이 별로 좋지 못하다.[156]

파일:north-korea.jpg

이 이미지는 2017년 뉴욕 타임즈에서 1,746명을 대상으로 아시아 전도에서 북한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찍어보라고 조사한 결과인데, 총 36%만이 한반도 위쪽을 맞게 찍었고, 나머지는 남한과 중국, 일본, 심지어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찍었다. 북한이 외신에서 다뤄지는 빈도수를 생각해보면 남한에 비해서 오히려 인지도가 높다고 볼 수 있는데도 답변 수준이 이 정도이다(…).[157]

실제로 서독, 동독의 사례와는 달리 북한과 남한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례도 종종 있어 가끔 남쪽에 사는 한국인(?)을 괴롭게 하기도 한다. 북한 문제에 민감한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국민은 South Korea와 North Korea라는 구별을 매체를 통해 종종 받아봤기 때문에 한국이 두 개의 집단 내지는 국가로 나뉘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지만, 여러 국가의 시골이나 제3세계로만 내려가도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158] 게다가 이들은 외국에 대한 관심도 자체가 적고, 한국발 콘텐츠보다 미국발, 일본발 콘텐츠를 먼저 접하는 경우가 많아 한국이란 나라가 존재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시골 사람들이나 중장년층들 역시 알고 있는 나라가 그다지 없는 편으로, 어디서나 이건 비슷한 현상이다.

또한 제3세계권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한국의 존재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은 편. 일례로 슈퍼주니어의 예성이 북유럽권에서 김정일 아들로 오해받는다거나, 프랑스에서는 북한이 자본주의이고 남한이 주체주의라는 식으로 오인받았다거나 하는 사례가 목격되는 중. 다만 동남아시아처럼 한류가 유행하는 나라에서는 한국이 유명한 편이기는 하다.

물론 지금은 유럽권에도 한국이 비교적 유명해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국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이미 유럽에서는 동양인의 이미지는 중국인이다. 이는 이들의 언어에서도 나타나는데, 스페인어 등에서 동양인을 싸잡아 낮춰 이르는 말이 'chino(중국인)'다.

(참조: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history&wr_id=251230)

그렇지만 이는 외국 문서에서도 서술되어 있듯, 한국인이라고 이런 유형의 사고방식에서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도 외국인서양인, 미국인(혹은 적어도 영미권 사람)과 같은 뜻으로 쓰는 일이 많고, 실제로도 금발 혹은 코카서스 인종을 만나면 으레 짐작으로 그 사람은 영어를 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특정 문화권을 대표하는 국가가 어떻게 그 이미지를 알렸느냐(=스테레오타입)의 문제인데, 이로 미루어보면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외국인의 스테레오타입은 미국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럽권에서는 하필 중국인이 아시아인의 스테레오타입 이미지를 꿰차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에서는 일본인이 동양인의 스테레오타입이다. 그래도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한국의 이미지가 꽤 괜찮은 편이다. 국가별 한류 문서를 통해서도 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고, 당장 위 링크 글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이나 저쪽이나 기성세대의 인식 때문에 세대갈등이 생기는 건 똑같다.

이와 반대로 오히려 한류 붐을 타고 한국의 이미지가 대단히 높고 이에 따라 한국어 학습 열풍도 나름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동남아시아권이다. 태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서 한류 인기가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

6.3. 세계최강의 예비역전력

7. 관련 문서

7.1. 외국

7.2. 특징

7.3. 기타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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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사로 쓰이면 '한국인' 또는 '한국어', 형용사로 쓰이면 '한국의'.[2] 시행은 1998년 6월 14일.[3] 국적법이 개정된 2013년 현재는 부모양계혈통주의.[4] 2017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인구는 5,127만명으로, 지리적으로 맞닿아 있는 주변국들인 중국, 일본의 인구가 워낙 많아서 상대적으로 밀리는 감이 있지만 전세계로 범위를 확장해보면 대한민국의 인구 순위는 27위로, 결코 적은 수는 아니다.[5] 페르시아어를 쓴다. 터키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돌궐사와 흉노사 등의 연구가 활성화되어 터키인의 조상인 튀르크인은 원주지가 몽골과 시베리아였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상식화되고(근데 사실 현대 터키인은 엄밀히말하면 그리스계 및 여러 유럽계와 지역 아랍계민족들과 수백년동안 혼혈되었다.) 여행도 많이 가게되어 한국인에게 중국 수준으로 친숙한 나라가 되어 아랍어를 쓴다는 오해는 젊은 세대는 안한다. 반면 아직도 이란은 친숙하기는켜녕 핵개발 및 주변국 위협 등으로 무섭게 생각한다. 참고로 페르시아어는 인도유럽어족이고, 페르시아인들은 유럽사람들과 같은 조상을 가진 아리안계와 원래 여기서 살던 원주민들(엘람 문명으로 유명하다), 아랍인 등의 혼혈이다.[6] 멕시코는 북아메리카며 칠레하고 한참 멀리떨어진 나라다.[7] 현대에는 북한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사실상 섬나라화 되었다. 물론 진짜로 국민적 특성이라던가 폐쇄성 면에서 섬나라화가 되었다는 게 아니라 단순히 지정학적 위치와 현대의 상황에서만 비유한 것.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이것도 영향력 면에서 진짜 섬나라라고는 할 수도 없다.[8] 다만 다산 풍조자체는 개인주의나 자유주의같은것과는 별 상관없이 1970년대와 80년대 산아제한 정책의 영향으로 완전히 사멸하였다.[9] 농경사회에서 남성인구의 증가는 곧 노동력의 증가, 생산력의 증가로 이어진다. 그리고 시대적인 배경상, 고대 또는 고전시대에는 남성이 병역의 의무도 수행했기 때문에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남성의 비율이 감소하는 것이 필연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구감소로 이어진다.[10] 이전에는 "서양적인"으로 서술되어 있었으나, 이러한 가치관들은 서양에서도 비교적 최근(100~200년 이내)에야 보편화한 것들이다. 서양 전근대 전통사회의 가치관들은 동양 전통사회의 전근대적 가치관과 유사한 점이 많다. 한국에서는 근대적 문화가 서양을 통해 수입되어왔기 때문에 전근대적인 것을 동양적, 근대적인 것을 서양적인 것으로 등치 시키는 관점이 많이 남아있다.[11] 시작은 비록 모 대기업의 마케팅이었으나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12] 다만 시위를 하는 문화의 경우에는 사실 유럽권 국가들도 만만치 않고, 중남미, 아메리카, 홍콩, 대만,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 남아시아같은 나라에서도 한국만한 시위를 시시때때로 찾아볼수는 있고, 한국보다 더하게 시위를 하는 경우는 흔하기 때문에, 한국인만의 종특이라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수십만 단위가 대규모로 시위를 벌인다는 점에서 있어서는 중국이나 일본같은 나라와 비교되는것은 사실이다.[13] 어느 한사람이 하는것을 보고 따라하는게 아니라, 어느 집단이 하는것을 보고 따라하는 경향.[14] 여기서 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이 드러나는데, 이기주의가 자신만 알고 남은 배려가 없다 라고만 알지, 개인주의와의 결정적인 차이가 어떤 점인가에 대한 성찰이 매우 떨어진다. 이기주의는 나, 또는 내가 속한 집단이나 소그룹 등등'만' 생각해서 생기는 집단 이기주의로도 강하게 나타난다. 반면 개인주의의 경우 문제점은 인간미의 부재라는 문제가 생긴다.[15] 아주 옛날 A민족, B민족, C민족이 있었다고 치자, 이때 이들이 서로 섞여서 지역에 따라 A민족, B민족, C민족 외에 AB 혼혈민족, BC혼혈민족, AC혼혈민족, ABC혼혈민족이 생기고, 이들이 서로 또 섞이지 않는 상태로 오랜시간이 지나면 유전적 차이를 보이는 민족이 3개에서 7개 정도로 늘어나게 된다. 즉, 우리나라가 북방계와 남방계가 섞였다고 해도 그들이 그 상태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유전적으로 동질성을 지니는 한민족이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역에 따라 섞인 비율이 달라도 다른 민족으로 분화될 수 있다. 즉, A40% B30% C30% 섞인 민족과, A10% B10% C80% 섞인 민족이 있으면 이 둘도 서로 다른 민족으로 분류된다.[16]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어폐가 있는 것이, 입양이나 사생아, 조선 후기의 대규모 족보 매입 등의 변수가 있으므로, 유전자를 통해 성씨를 알아낼 수 있는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지는 않다. (대체로 족보 매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희귀 성씨일 경우에는 확률이 높다.) 그리고 Y염색체를 통해 성씨를 추정하는 방법은 다른 나라에서도 역시 상당한 확률로 가능하다. 애초에 한국의 성씨 대부분이 나중에 가짜족보 매입으로 만들어진거라 성씨=혈통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17] 물론 현재의 한국인은 과거 한반도와 남만주를 기점으로 생활하던 여러 부족들이 합쳐진것이다.[18] 다만 함경도의 재가승집단의 경우 근래까지 명맥을 유지했었다.[19] 예로 재가승.[20] 물론 이것은 근대 민족주의의 정의와 연관이 된 것이기 때문에 서양사와의 흐름이 달랐다가 근대화로 서양 중심의 세계화가 된 동아시아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는 테제이다.[21] 유럽에 살면서 백인과의 혼혈이 진행된 유대인들도 있는 반면, 아프라카에 살면서 흑인과의 혼혈이 진행된 유대인들도 있다. 우간다에는 아예 흑인계 유대인들이 존재한다.[22]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23] 모르는 사람들이 은근 많은데 해외에서 거주하는 한국인들 중 일부는 오히려 한국 본토에 있는 사람들보다 악랄한 경우가 많다. 워킹 홀리데이 할 때 웬만해서는 한국인 밑에서 일하지 말라는 이유도 그것이다. 영주권 준다면서 취업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헐값에 부려먹다가 이민성에 신고해서 불체자로 낙인찍고 쫓아내는 경우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 한인타운도 보이지 않는 권력 투쟁과 비리가 많으며 요새는 유학생들도 이들의 악명을 알기 때문에 거쳐가지 않는 편이다.[24]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한국 국적을 소유하고 있으면 자식도 국적을 물려받는다. 둘 다 해외 시민권자인 경우에는 애초에 한국인이 아니므로 논외.[25] 그 중 한 분인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당시 최연소 추기경.[26] 단, 두 번째 속담은 "아무리 존귀했던 몸이라도 한 번 죽으면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라는 뜻도 있다. 세상 인심이 실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뜻도 있다는 것이다.[27] 하지만 이것은 기관들 혹은 정부 차원의 과한 제도로 인한 시선들 때문이지 '한국인' 의 관념에서 바라보아선 안되며 실제로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OECD 평균의 3배에 육박하는 독보적인 노인층의 자살률 때문이며 다른 연령층의 자살률을 보면 OECD 평균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다만 노인층의 자살률에서 독거노인의 비중이 높다는 점 또한 조상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비하면 매우 아이러니하다.[28] 종교의 자유가 적었던 공산권 국가들이나 중국, 일본, 유럽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제일 높다.[29] 고려가 승려가 제1귀족 신분이 되는 국가였으며 이에따른 불교의 정치 개입으로 인한 폐단도 많았기 떄문에 그에 대한 반발로 조선에서 불교를 탄압했던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30] 사실 통계가 들쭉날쭉한 이유는 개신교와 불교의 신자 집계 기준이 엉터리이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단일 조직이 아니기에 정확한 신자수 집계가 어려운 편이고, 불교 역시 조계종을 비롯한 여러 종파로 분열된 데다가 정확한 신자 숫자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불교에서는 자칭 2천만이 불자라고는 하지만 이걸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추산이 어렵다. 사실 짜임새 있게 신자 숫자를 집계하고 냉담자를 별도 분류하는 종교는 천주교밖에 없다. 또 한국 국내에서도 지역별로 종교 세의 차이가 존재한다. 영남의 경우 불교 신자 비율이 특히 높으며 반대로 위의 조사가 이루어진 경기도는 기독교가 우세한 편이다. 참고[31] 개신교천주교. 정교회성공회는 한국에서 신자가 많지 않다.[32] 물론 조선시대에 불교를 억압하거나 천주교를 박해하긴 하지만 이는 종교적 탄압보다는 정치적인 탄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33] 대부분의 종교분쟁이 유일신을 가진 기독교와 이슬람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문제는 그 유일신이 같은신인데 불교나 유교로 인한 종교 분쟁이 발생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34] 물론 기독교 성경과 십계등에도 살인을 금하라는 내용이 있다.[35] 단군 동상의 목을 벤다거나, 타 종교사원 앞에서 해당 종교를 비난하는 전단지를 나눠주거나 포교활동을 하는 행위[36] 카톨릭의 경우 종교전쟁이후 예수교를 중심으로 해외 전교활동을 강화하면서 현지문화와 융합하는 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비유럽권 카톨릭은 같은 기독교임에도 타 종교에 대한 배타심이 비교적 강하지 않다.[37] 멱살을 잡거나 상대방 전치 몇 주 나올 정도가 아닌 서로 손으로 툭툭 치는 정도[38] 사실 이 정도만 가지고도 이후에 양쪽 장본인 둘 다 빼도 박도 못하게 경찰서 정모 및 폭행 합의금 등이 예약되어 있고 인생 피곤해지기 때문에 아주 이성을 잃지 않는 이상 이렇게까지도 안 간다.[39] 다른 국가도 인터넷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유독 한국이 심한 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곳.[40] 잘 알려진 예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스님들이 참석해서 극락왕생을 빌어주었고 법정 스님이 입적했을 때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그를 위해 기도했다. 이런 행위들은 이런 양반들처럼 깽판 부리기를 위한 행위가 아니었고 진정으로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쌍방 모두 불쾌한 기색이 없이 서로 감사를 표시했다.[41] 문학과, 사학과, 철학과 또는 국문과, 철학과, 사학과를 뜻한다. 공통점은 모두 인문학이라는 점.[42] 자동차 엔진을 자체 개발, 무기를 국산화하거나 등, 무엇보다도, 여러 산업이나 공업, 소프트파워 등을 자급자족 할수 있는 나라는 정말 적다. 자꾸 한국의 기술이나 산업을 미국이나 일본, 중국, 서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는 사람이 많지만, 자체적으로 산업/공업을 굴려 자체적으로 보급하는 나라는 거의 이 국가들이 전부나 마찬가지다.[43] 실제로 한국은 세계 상위권에 속하는 국력을 보유한 나라이며 웬만해선 외교싸움에서 쉽게 밀리지도 않는다. 다만 주변국이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는 국력을 가진 괴물들이라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이는 현상이 문제일 뿐이다.[44] 한국어가 난이도가 훨씬 높아 변인통제가 되지 않은 실험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여기서는 마인드적인 차이에 대해 초점을 둠[45] 이미 10세기 무렵에 인구수 1억을 찍었던 중국 송나라도 약한 국방력 때문에 요, 금, 서하 등에 침공만 당하다 무너졌다. 즉, 인구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영토도 광대한 나라라도 침공만 당하다가는 끝내 멸망하고 만다. 현대까지 문화적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국을 방어하기 위한 국방력이 보장되어야 하며, 전근대 시대에는 자국 방어를 위해서 주변의 약소국을 상대로 예방전쟁을하는 경우도 많았다.[46] 단, 여진족은 고려시대 때부터 고려의 북방 지역에서 약탈을 지속적으로 일삼았기에, 동북 9성, 4국 6진 개척은 어찌보면 정당방위로 볼 수 있다.[47] 이는 강력한 유목 제국의 등장을 막기 위한 예방전쟁의 성격을 띈 침공이었는데, 10세기부터 송나라를 삥뜯어먹으며 군신 관계를 요구해왔던 요, 금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호령하던 몽골 제국에게 거의 백 년 간을 시달렸던 경험이 조선에게 강렬한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싹을 자르기 위해 학살이나 거주지 파괴, 부족 간 이간질 등을 통해 북방 민족의 힘을 지속적으로 빼놓은 것이다. 심지어 여진족토벌을 위해서 명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으며, 명 역시도 조선에지원병을 보내서까지 여진족을 조져댔다. 결국 임진왜란으로 명과 조선이 만주에 신경을 쓰지 못한 사이에 여진은 힘을 키웠고 결국 청을 건국한다. 임진왜란이 없었다면 여진족은 명과 조선의 합동 견제로 청나라를 세울 꿈조차 꾸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세웠다 하더라도 요나라처럼 장성 이북만 가져갔을 공산이 크다.[48] 청이 세워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명이 무너진 것이 컸다. 청은 명이 내란으로 무너지던 그 순간까지도 산해관을 넘지 못한 채 지역강국의 지위에 머물러야 했으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도 명의 존재가 신경쓰여 속도전으로 전투를 치뤄야 했다. 결국 청은 명이 이자성에 의해 무너지고, 이를 계기로 오삼계가 산해관의 문을열고 가이드를 자처한 후에서야 패권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49] 고려 시대 말기부터 왜구들의 지속적인 약탈이 원인인 것도 있다,[50] 환빠들이나 일부 비뚤어진 민족주의 학자들이 이 때문에 고려와 조선을 폄하하며 고구려를 과도하게 빨아대는 경향이있으나, 고구려 역시도 중원을 도모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당시 중국은 전투병력만 113만, 총 병력 약 300만의 병력을 파병할 수있었고, 돌궐과 고구려라는 두 나라를 상대로 양면전선을 펼치고도 국력을 유지했던 지금의 미국 정도의 위상을 가진 나라다. 고수전쟁과 고당전쟁으로 보아 중국 역시 고구려를 중화패권을 위협할수 있는 호적수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고구려 역시 국력의 한계로 중국의 국운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었다.[51] 굳이 파시즘이 정권을 잡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열강으로써의 지위가 안정화되면, 동서양을 불문하고 항상 주변국을 침략했다. 당시 유럽은 '백인의 의무' 로 불리는 백인우월주의에, 일본은 동아시아 최초의 열강이라는 자부심에 찌들어있던 시기였으며, 당시 시대는 '열강으로 불리려면 식민지 한 두 나라 정도는 가지고 있어줘야 하는' 시대였다.이때문에 식민지의 불필요성을 일찍 내다본 비스마르크의 반대에도불구하고 빌헬름 2세가 끊임없이 아프리카와 중동을 침략하며 3B정책을 계획했던 것이며, 이러한 세계적인 분위기는 1930년대 무렵부터 열강들이 본토의 경제력과 인재들이 식민지로 유출되어 본토의 국력이 하락하는 등 식민지의 불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하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해 영국, 프랑스 등의 전통 열강들이 무너지고 세계 패권이 미국과 소련으로 양분되면서 자연스럽게 제국주의가 사라지게 되었다.[52] 일부는 '그렇게 안하면 다 도망갈거잖아'라는 이유로 덮어버리나 그런 사람들은 그런 현실이 되어버린 군대가 문제라는 생각은 안한다(...)[53] 헌법상에도 문민통제를 기본으로 정의하고 있으나 현실은 시궁창[54] 최근엔 많이 희미해졌지만 국민학교 시절에는 아이들에게도 간단한 제식(...)을 가르쳤었다. 그리고 이것의 영향이 아예 남아있는 부분이 조회, 학교 수련회해병대 캠프이다.[55] 해당 항목에도 간접적 언급이 있지만, 조금만 정치적으로 틀어지면 프로파간다가 될 수도 있는 이런 스타일의 프로그램은 방송역사상 전무후무할 경우다. 오죽하면 조작 사나이라는 이명이 만들어질까. 거기다 대한민국의 약 99%의 남성들이 군복무를 수행하는 현실에서 이런 되도않는 프로파간다로 현 군대의 문제점을 숨기고 미화하려고 하는 시점에서 현 국방부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반증이기도 하다.[56] 참고로 러시아어 같은 경우는 수동태 사용이 한술 더 뜬다. 거기에 굴절어 특유의 이 합쳐져서 나온 게 러시아식 유머다.[57] 물론 한국에도 김구라같은 코미디언이 이런 개그를 치곤 한다. 그러나 불쾌감이 든다는 이유로 자주 제재당하여 오래가지는 못했다. 요즘은 도리어 이런 개그를 치면 재미없다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워낙 일상화되어서 그런가?[58] 만담이 오직 일본에만 있는 문화라고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 중국이나 한국에도 재치 문답을 주고받는 재담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한국의 재담만을 다룬 관련 서적만 수십 권이 넘는다. 이러한 한국 고유의 재담의 형태는 전통적인 풍자 문화와 어우러져서 현대에 들어 개그 콘서트무한도전 같은 코미디, 예능 프로그램에서 계승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만담 문서 참조.[59] 다만 여자끼리는 다소 무뚝뚝하고 거친 느낌을 줄 수 있어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60] 군대가 대표적이라 흔히 군대사회라고 한다. 다만 군대에만 해당되진 않는다.[61] 1966년 10월 6일자 경향신문 대담록 중에서는 (요약하여 적으면) 충청도는 순박, 황해도는 온순, 평안도는 진취, 경상도는 솔직, 서울-경기도는 포용, 함경도는 의지, 전라도는 풍류, 강원도는 융화 정도로 포용하였다. 또한 군대개그 문서의 관련 내용도 참고하기 바란다.[62] 인도유럽어족의 언어 역시 성분의 생략이 많이 일어나기는 해도, 엄연히 격이나 인칭에 따른 접사가 붙기 때문에 간단한 형태라도 핵심 정보는 드러난다. 하지만 한국어와 같은 언어는 격이나 인칭에 따른 문법 양상이 뚜렷하지 않고, 그마저도 생략되는 때가 잦아 문맥에 의존해야 하는 때가 상대적으로 많다.[63] 이러한 특징 때문에 상대적으로 서구권에서는 글을 있는 그대로 접근하기에 용이했고, 결과적으로 논리학과 같은 학문이 상대적으로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발달할 수 있었다. 당장 논리학에서 다루는 내용에 나타나는 명시성과 엄격성이 서양 언어와 동양 언어 중 어느 언어의 특징에 가까운지 생각해 봐도 분명히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특히 독일어와 같이 명시적인 게 많은 언어를 두고 '논리적'이라고 하는 때도 많다. 영어만 하더라도 한국어보다 통사적으로 더 논리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64] 다만 이 명칭은 고려시대에 존재했던 중동의 아랍 국가 이름인 압바스 왕조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단, 본문의 대식국은 조선을 가리킨다.[65] 다만 저 사진이 언제 찍혔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흥선대원군 치하 때는 사치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챙이 좁은 갓을 쓰도록 했기 때문이다.[66] 사실 자체가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매우 크고 아름다운 곡물임을 생각하자. 오늘날 쌀을 주식으로 하는 국가는 아시아 일부 지역과 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 정도이지만 이 지역에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다. 흉작을 대비해 구황작물을 기르고 쌀만으로 백성들을 먹여살리기 힘들어 보리를 기른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수확량이 많고 백성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것은 쌀이었다. 구황작물은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지 생산량 자체는 쌀보다 못하며 보리 또한 어디까지나 쌀을 보조하는 곡물이다. 쌀과 보리의 관계는 마치 야구에서 선발투수와 구원투수의 개념과 비슷한데 선발투수(쌀)가 현실적으로 9이닝(1년)을 모두 책임지는 것은 힘들기에 구원투수(보리)를 두는 것이며 경우에 따라 선발투수(쌀)가 개발살이 나면 구원투수(보리)의 역할이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투수(보리)의 땜빵 효과가 아무리 탁월하다고 한들 선발투수(쌀)가 하는 역할을 구원투수(보리)에게 모조리 몰아넣으면 망한다.[67] 밥 먹었느냐는 말이 인사말이 될 정도[68] 이후 출생 세대에서 사례가 있을 경우 추가바람[69] 있다. 본 문서 기여자의 1940년도 출생자인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했다고 전해진다.[70] 다만 이건 흔히 일본이나 서유럽, 미국 등과 비교해서 그렇다는거지 충분히 한국보다 훨씬 더 강하고 매운맛을 즐기는 나라들은 중남미동남아, 동아프리카, 서아프리카 등지에서 상당한 편이다.[71] 매운맛을 내는 데는 고추만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요리의 경우 매운맛을 낼 때 고추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리고 김치의 경우에도 붉은 김치가 통용된 건 몇십 년도 안된 일이다.[72] 반면 중국은 예로부터 돼지고기를 주로 먹어왔는데 그래서 고대 한국, 북방 유목민족, 심지어 현대에서도 중국=돼지, 돼지 키워먹는 놈들이라고 까던 경향이 있다. 90년대 만화까지만 해도 일본인은 뻐드렁니, 중국인은 돼지코로 묘사하던 한국의 만화 그림이나 '호자'라는 몽골의 중국인 비하 단어가 돼지먹는 놈들 이란 뜻인 것 등[73] 중국에서 소고기가 돼지고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데다가, 소고기로 만든 대표적인 요리인 우육면은 서민요리로 취급된다.[74] 러시아 요리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75] 물론 지금도 어르신들은 놋그릇을 쓰는 경우가 꽤 보인다.[76] 현대의 카페와 기능적인 면에서 같다[77] 차는 칼로리를 제공하는 역할은 없다시피하며, 그 특성상 재배한 상품을 '거래'를 통해 곡류로 전환해야 한다. 즉 농업에 투자해야 할 귀중한 노동력을 상업작물 재배-상업에 의한 교환으로 이어지는 상행위에 낭비하게 된다.[78] 고급진 단어 같지만 사실 백성착취와 동의어다. 조선조 내내 조선의 공식세율은 근세 이전까지 세계 최고의 부국이었던 중국보다 2~3%정도 높은 수준에서 머물렀다. 백골징포나 황구첨정같은 삼정의 문란은 조선말기 부패한 권력구조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 조선조 전체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일본의 경우 4공 6민이나 5공 5민처럼 국가 기본세율에서 절반 가까이 떼가고, 삼정의 문란처럼 부패로 인한 하급 관리의 토색질로 백성의 몫이 더 줄어든 것을 보면 귀족적 문화라고 딱히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는 편. 실제로 조일간 농민봉기의 빈도수를 보면 일본이 압도적이다.[79] 고려조 내내 불교는 국교의 위치에 올라 패악이 심했다. 은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도 절 소속 토지를 이용해 지주 노릇을 하며 백성을 착취했다.[80] 세상이 뒤집힌 관계로 이 때는 사찰 소속 스님들이 차를 재배하고 가공하느라 죽어났다[81] 단어가 올드한 느낌이지만 말 그대로 찻집이다[82] 수확의 용이성 같은 생산이득에다, 대규모 플렌테이션으로 경작하는 규모의 경제 효과가 붙어 차보다 원가가 더 싼 편[83] 중일은 생산량이 많은 대엽종을 재배한다. 인도, 아프리카 등 대표적인 차 산지들도 마찬가지. 중일도 4계가 있지 않나? 라고 하겠지만, 중국의 경우 열대인 남부에서만 재배하고, 일본 역시 열대나 열대에 가까운 남부에서 대부분 재배한다. 일본 다원으로 검색해보자.[84] 북방계와 남방계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본의 남방계는 죠몬인(혹은 아이누족)을 지칭하는 말이고 북방계는 한반도나 중국에서 넘어온 도래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의 남방계는 동남아시아나 남중국, 북방계는 북중국이나 몽골을 지칭하는 말로 변형되었다.[85] https://synapse.koreamed.org/Synapse/Data/PDFData/0018KJLM/kjlm-36-34.pdf[8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00661[87] http://news.mt.co.kr/mtview.php?no=2017020113310347667[88] O-M176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주로 나타나는 그룹이며, O-M122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그룹이다. O-M122의 주류 하위 그룹은 아직 연구 결과가 없다. 하지만 O-M176에서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주류 하위 그룹이 구별되는데 한국은 L-682가 주류고 일본은 47z가 주류다.[89] C 그룹은 몽골, 북중국, 러시아,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주로 발견된다. 한국의 C는 몽골의 주류 그룹인 C2b가 아니라 C2e로 몽골과 연관되있을 가능성은 낮다.[90] 시베리아, 핀란드 주류.[91] 티베트, 일본인, 안다만 제도 등 고아시아인들이 속한 그룹. 국내에서는 주로 전라도경상도에서 (각각 3.3%, 2.4%, #) 나타나며 수도권은 0.9%, 강원도는 아예 0%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92]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주로 나타나는 그룹.[93] 그리 부유하지 않거나 키가 크는데 불리한 조건을 가진 민족들 중에서도 유독 키가 큰 민족들이 있긴 있다.[94] 실제로도 환경이 변하면 그에 대한 국지적인 진화나 적응이 나타나 신장이 변할 수도 있다. 어떠한 이론들에서는 유전자 역시 약간의 변화가 가능하긴 하며 구체적으로 술이나 마늘 등과 관련하여 유전자에 그러한 변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95] 더구나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은 연방국가의 경우 지역 편차가 심하다. 독일을 예를 들자면 과거 동독에 속했던 중부 튀링겐(Thüringen)주의 경우 18~39세 기준 남자 평균키가 175.5cm이지만 네덜란드, 덴마크와 가까운 북부의 함부르크(hamburg) 같은 경우 무려 185.7cm에 달한다. #[96] 예로 닐로트계 민족.[97] 남성 평균 165~168cm.[98] 이는 환경적 문제로 간주한다. 햇빛이 적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키가 크다고 한다. 실제로 평균 기온이 낮고 일조량이 적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나 발칸 반도의 산악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키가 굉장히 크다. 북한 지역 중에서도 사람들의 키가 평균적으로 가장 큰 지역인 함경도와 평안도도 이와 비슷하게 햇빛을 쉽게 쬐기 힘든 매우 굴곡진 산악이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그쪽 사람들의 평균 신장이 커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99] 참고로 위 사진은 두 포로가 자신이 한국인 노무자라고 주장하는 사진인데 조종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걸 진짜 노무자가 조종사가 거짓말하고 있음을 알려준 상황이다.[100] 한국인은 1년에 마늘을 8kg 가량 소비하는데 이는 2위 중국의 4.4kg의 두배에 약간 못미치며 세계평균 0.8kg에 비하면 10배나 많이 먹는 것이다.[101] 뱀발로 이 액취증을 유발하는 유전자는 귀지의 점도도 좌우하는데, 액취증이 있으면 우리가 흔히 아는 건조하고 부스러지는 연한 노란색 귀지 대신 끈끈하고 물렁물렁한 갈색 귀지가 나온다. 한번 보면 영어로 귀지가 왜 earwax인지 새삼 와닿는다. 참고영상[102] 바로 위에 소개된 박찬호, 안정환의 사례만 해도 진짜인줄 알고 서양음식만 마구 먹었다고 하지만 동료들은 그래도 마늘냄새를 놀렸다고 한다. 애초에 진짜로 냄새났기 보단 인종차별적인 놀림이었기에 서양음식을 많이 먹는지는 상관없었던 것[103] 애초에 데오도란트, 향수는 몸의 액취를 가리기 위해 생겨났다. 액취가 거의 없는 동아시아 한국인은 쓰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104] 물론 이론이 현실에 완벽하게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체취가 나는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105] 조선까지는 혼자 밥먹는게 전통이었다. 같이 먹게 된건 물자가 수탈로 부족해진 일제시대이후다. 다만 요즘은 대학이든 직장이든 점심식사 정도는 혼자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져 예전보단 나아졌다. (아닌 것 같아도 군 제대 후 복학하면 절반은 이렇다.)[106] 독립적 외향형이라면 오히려 독립심을 무기로 혼자 먹는 경우가 많을 것이며, 내향적이더라도 소속감을 중시한다면, 혼자 먹기가 힘들 것이다.[107] 그것도 불과 10년전만해도 그냥 소맥이었다.[108] 다만 극장 혼자 가는 걸 이상하게 여겨 꺼리는 건 북미나 유럽 등지에서도 우리보다 덜할 뿐이지 있기는 하다. 특히나 놀이공원을 혼자 간다는 건...당장 구글에 'disneyland alone' 이라 쳐보자. 혼자 가면 이상하냐는 질문이 태반.[109] 그렇기에 분명히 스트레스를 푸는 놀이로써 시간을 썼을 뿐인데 "그 시간에 일을 했으면 돈이 얼마냐?"는 반응도 나온다.[110] 한국은 땅이 좁고 한 곳에 밀집해있어 위험 요소가 많지만 미국은 땅이 크고 주마다 인구분포도 각각이라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미국에서 총쏘는 영상이 나올수 있는 이유다. 만약 한국이 총기소유가 가능했더라도 들판에서 총쏘는 영상을 찍었다면...[111] 조선(朝鮮)의 이칭 번역어. 다만 이는 오역이며, 사실은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로 불리던 일본제국에 맞춰 서양인들이 만든 별칭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112] 다른 문화 콘텐츠와 달리 직접 플레이하면서 타인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게임이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은 이유지만, 정도가 지나쳐서 비매너 문제로 번지는 경우가 많으며, 해외에서 우리나라 게임 문화의 문제점을 거론할 때 반드시 나올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물론 해외에서도 게임 내 비매너 문제가 있지만 한국은 이 문제가 아주 독보적이다.[113] 따지자면 프로게이머도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하는 일이지만, 경기 분석이나 연습 등 스포츠 경기처럼 선수 모두가 진지하게 임하고 팬들도 그것을 원하는 엄연한 프로이다. 여기서 말하는 돈을 벌려고 게임을 하는 사람은 오토 돌려 사냥하고 아이템 주워서 파는 쪽을 보는 게 좋다.[114] 런던 스핏파이어, 뉴욕 엑셀시어, 밴쿠버 타이탄즈. 토론토 디파이언트는 외국인 선수들이 많이 영입된 상태이나, 창단 당시 로스터가 전부 한국인들 뿐이었다.[115]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2가 처음 공개되었던 유튜브 영상의 댓글들을 보면 “한국인들이 저렇게 환호하는 것을 보면 소름끼친다”라는 내용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116] 덧붙여 2016년도부터는 한국인 선수와 외국인 선수를 8:8로 맞춰(실제로는 10:6) 이전과 달리 외국인 선수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에 더더욱 의미가 있다. 뭐 그래도 최초로 비한국인 선수가 4강에 오르기도 했다.[117] 영상의 동양인 게이머의 아이디가 Veggiesmuggler인데, 이는 과일장수의 패러디다. "한국인이 졌을 때 이게 만우절 이벤트인 걸 알았어", "어떻게 한국인 한 명이 미국인 두 명한테 질 수 있지?!!!", "이 영상은 가짜야. 미국인 둘이 한국인 한 명을 이겼잖아" 같은 서양인들의 댓글이 압권.[118] 다만 태랑의 1위는 랭크가 없던 말 그대로 초창기라 의미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몇 주 접었다가 다시 했는데도 기준 28위다.[119] 시즌 7~8위에 해당. 세계대회 전승 우승했는데![120] 즉 롤드컵에 진출한 LPL 3팀 가운데 선수들과 코치 및 감독 전원 중국인으로 이루어진 통짜배기 중국팀은 없었다.[121] 해당 주화를 얻을 수 있는 시간여행 던전은 1달 중 1주만 열리고, 매 달 첫 클리어 시 500 주화, 그리고 던전 클리어 시 자체적으로 50개 정도의 주화를 준다. 그리고 탈것 획득에는 주화 5000개가 필요하다. 따라서 매달 5번 이내로 던전을 클리어한다고 했을 때 대략 8달 정도가 걸리는 것이고, 던전을 도는 횟수 자체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많은 유저들은 그보다는 덜한 기간을 잡고 있었다. 반면 이 유저는 던전 매칭이 가장 빨리 잡히고 추가 주화도 얻는 탱커로 12시간 넘게 던전만 돌아서 주화를 5000개 모은 것이다.[122] 여담이지만, 이로 인해 디아를 조금이라도 빨리 즐기고 싶던 사람들이 아시아로 몰리며 아시아 서버가 연달아 폭파되었다. 이를 계기로 군단의 심장부터는 전 세계 동시 오픈이 정착되었다.[123] 다른 게임에 비유하자면 HP 낮고 맷집 있는 서포터가 도발을 해서 랭커 2명이 전직 공격을 했는데, 살아남고 자힐하고 옆에 있던 아군이 쳐바르는 상황이다.[124] 현재는 게임동아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125] IEF 2008, ESL S4 Asia Championship Finals 2010, WEM 2010.[126] 2013 WCG 8강 진출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국제대회 8강권 이내, 2014년 APAC 3시즌 연속 우승, 바르샤바 WGF 2년 연속 출장, 2014년 WCA 우승 등. 아시아-태평양 리전에서는 압도적 1위로 군림했으며, 세계대회에서도 1/2위 단골이었던 NAVI 및 헬레이저를 상대로도 대개 한 경기 차이 매치포인트로 끌고 가거나 때로는 이기는 모습을 보였다.[127] 물론 국내에서 저 게임들이 인기를 얻는 동안 전세계적으로는 당연히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인식은 상당히 안습이었는데, 당장 1.6을 온라인화하여 운영한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이 부진을 겪다가 좀비모드로 환생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128] Seagull은 국내 오버워치 정규 리그인 오버워치 APEX 시즌 1 에서 해외 초청팀 NRG Esports 팀원의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다.[129] 시즌 1 랭크에도 보이는 Hammerking 유저 역시 유명한 핵쟁이였다. 시즌 1, 시즌 2에 이르기까지 랭크 목록에 내내 한국인 핵쟁이들이 껴있는 셈.[130] 다만 시즌 2 순위표의 BOSS는 한국 랭커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핵쟁이이다. 단순한 핵쟁이가 아니라 핵을 직접 팔기도 하는 거물급으로 한국 랭커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심지어 어떤 영상에서는 직접 월핵을 사용하여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물론 상대팀 역시 핵쟁이 조합이었기에 다른 팀원들이 용인한 것.[131]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핵을 안 쓰고도 승률이 80%, KDA가 6대 1인 데다, 인증으로 플레이했을 때는 노 데스 27킬. 심지어 본인이 언급하기를 긴장해서 본 실력이 잘 안 나왔다고... ㅎㄷㄷ.[132] 1점에서 패할 경우 최대 점수인 5000점이 되는 오버플로 버그. 참고로 이 점수대에서는 상대팀도 패배하려고 일부러 아무것고 안하고 있는데, 무승부가 되어도 점수가 오르기 때문에 로드호그로 적을 끌어오고 메이로 얼리고 아나로 재워서 억지로 화물을 밀고 거점을 점령한다고 한다.[133] 상대는 세계 3위팀 Rogue.[134] 위의 순위표 중 4명(zunba, Miro, 류제홍, EscA)이 속해 있다.[135] 진 쪽이 한국과의 대결이라는 벌칙(?)이 걸려있었다. 결국 러시아가 졌고 한국팀 상대로 16강에서 탈락했다.[136] 휴스턴 아웃로즈는 감독과 코치 한명이 한국인이다.[137] 2019년 기준으로 서포터진 1명이 예외에 있긴 하다[138] SUIRI, MINI[139] 즉 킹왕짱 + 넘사벽 + 패왕 + 최종보스.[140] 한국인과 대결 중이었던 친구가 격한 감정으로 인해 심장마비(!)가 발생해 죽고만다(...).[141] 팀원들 가운데 한명이 게임 중 "죽어, 이 한국인 씹새야!!!"라고 외치는 장면이 빵터지는 포인트.[142] 여자친구에게 인성질을 내고 팀내에 내분이 발생한 건 덤...[143] 처음부터 보면 한국인 난이도로 되었다가 푸쉬(직역하면 여성 성기를 뜻하지만, 비속어로 계집애, 혹은 쫄보를 뜻하기도 한다.)로 바꾼다. 저격총 잡았을 때 5초 후 죽은 이유는 숨을 오래 참아서 질식사로(...?) 바꾸는 건 다시 시작할 때.[144] 실제로 2016 오버워치 월드컵 우승 이후로 레딧 등지에서 비슷한 논지의 말이 나왔다. '한국인들이 FPS에서 부진한 건 못해서가 아니라 안해서'라고. 또다른 예로는 2015년 공개된 공허의 유산 들어 한국인들의 기량이나 랭킹이 많이 하락한 것도 스타크래프트 2의 인기가 시들해서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폐지된 것도 한 몫 하기도 하고. 그래도 글파 우승은 한국인이다.[145] 실제로 게임 종류를 막론하고 자력이 아닌 핵, 인맥, 돈지랄 등으로 상위권에 올라가고선 자기가 초고수라며 자뻑하는 사례가 은근히 많다.[146] 이게 얼마나 심하냐면 취향보다 효율을 중시하는 경향이 너무 심해서 픽률만 봐도 해당 캐릭터의 OP 여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외국인들도 승리를 위한 주류픽을 연구할 때는 한국 서버 픽률을 많이 참고하는 수준.[147] 자날 저그의 최종병기인 무감타외국 선수가 고안한 전략이다.[148] 백괴사전은 아예 이 명칭을 대한민국에 관한 문서명으로 하고 있다.[149] 한국 공군의 아버지 딘 헤스 소령과 그가 제주도에 만든 고아원에 대한 논픽션 영화.[150] 일본이나 중국에서 치룬 대회는 엔화나 위안화로 주기도 한다.[151] 그래도 제작진을이 한국의 미군부대를 방문하는 등 고증에 대해서 노력하긴 헸다.[152] 취소선이 그어져있지만 사실이다. 오버워치송하나가 좋은 예[153] 단체로 화장실에 몰려다니는 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다.[154] 당장 유학생 수만 봐도 답이 나온다.[155] 왜인지 모르지만 how i met your mother에서는 '잘 모르는 사이라도 우산을 빌려 달라고 하면 잘 빌려주는 착한 한국인'의 긍정적 고정관념이 나오기도 했다.[156] 미국 미디어물에선 공작원, 특수부대, 간첩 등의 캐릭터로, 일본 미디어물에선 테러리스트나 범죄자의 캐릭터로 자주 등장한다.[157] 다만 미국인들은 의외로 무식한 사람이 많다(미국 살면서 캐나다나 멕시코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는 건 감안해야 한다. 사실 일본인 중에도 한국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 있다. 서울 사람들 중에도 부산과 목포가 붙어있는 줄 아는 사람 많다. 그런데 사실 자기 동네나 주무대 외에는 같은 행정구역 내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을 물어보면 어딘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영등포홍대 근처에 사는 사람이 서울 동부나 북부의 지명(동 이름)을 아느냐 물어보면 모른다거나 다른 위치를 답하는 경우. 물론 지리덕후는 예외.[158] 그래서 해외에 여행가거나 체류하면서 외국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할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north or south?”라고 자주 듣게된다. 혹은 간혹 “good Korea or bad Korea?”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