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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나락)[1] Asian rice / Rice plant | |
학명 | Oryza sativa (L.) |
분류 | |
<colbgcolor=#d7ffce,#0f4a02> 계 | 식물계 Plantae |
분류군 | 관다발식물군(Tracheophytes) |
속씨식물군(Angiosperms) | |
외떡잎식물군(Monocots) | |
닭의장풀군(Commelinids) | |
목 | 벼목(Poales) |
과 | 벼과(Poaceae) |
속 | 벼속(Oryza) |
종 | 벼(O. sativa) |
[clearfix]
1. 개요
벼(rice)는 곡물의 일종인 쌀이 열리는 한해살이 식물의 하나이다.인구 부양력이 높은 곡물을 생산하는 작물이기에 밀, 옥수수와 함께 주식으로 자리잡았다. 농사를 짓는 지역은 아시아 대부분, 서아프리카 일대[2], 남유럽, 미국 및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 등에서 재배한다. 특히 논농사가 발전한 아시아 동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작물이며 주요 작물이다.
벼에 달려 있는 도정하기 전 껍질이 있는 상태의 수확물을 나락이라고 한다. 이 나락 껍질을 완전히 제거하면 비로소 쌀이 된다. 일부러 건강을 위해서 겉껍질인 왕겨만 도정하고 속껍질인 쌀겨는 도정을 하지 않고 먹기도 하는 데 이는 현미라고 한다. 품종은 크게 인디카(Long grain)와 자포니카(Short grain)로 나뉘는데 전 세계적으로는 인디카 쌀을 훨씬 많이 섭취하고 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은 주로 자포니카 계통을 섭취한다.
2. 특징
고온 다습한 환경에 강하며 야생 벼 나락은 대부분 붉은색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주로 먹는 흰쌀은 돌연변이이며 1만 년 전부터 선택 재배된 것이다.[3] 그런데 이 돌연변이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붉게 변하는데 붉게 변하기 전에 수확하기 때문에 우리는 흰 쌀만 보는 것이다.# 수확을 늦게 한 벼에서 간혹 붉은색 쌀이 섞여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덥고 습한 날씨와 물기를 좋아하는 것이 특징이고 야생성이 강하여 야생에 가만히 내버려두면 보리나 밀과 같이 까락이 나서 원래 색깔인 빨간색으로 돌아간다.[4] 물을 공급하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어디서든지 물만 있으면 기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 산을 개간하여 재배할 수도 있다. 심지어 필리핀 등지를 가면 산 전체를 논으로 만든 경우도 있을 정도. 또한 일부 품종은 홍수에 강하여 홍수가 나서 논이 물에 잠기더라도 벼가 금방 쑥쑥 자라 물 밖에 나오며, 이렇게 하여 2~3 m나 되는 벼도 있다고 한다. 대략 이렇게 생겼다.
아랍에미리트의 사막에서도 한국산 벼가 자라는데 2018년 3월 한국과 아랍에미리트의 정상회담 이후 아랍에미리트의 요청으로 벼농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 기술로 사막에서 벼농사를 하는 건 사상 최초라고 한다. [단독]UAE 사막에 한국산 벼가 자라고 있다. 결국 한국산 벼를 사막에서 한국 기술로 재배하는 초유의 실험이 성공하여 농촌진흥청이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 지방 알다이드에서 재배해 온 벼를 다음 달인 5월 5일에 처음으로 수확한다고 밝혔다. 다음 달 초에 약 16가마니(80㎏) 정도의 햅쌀을 수확할 것으로 보이며, 한국에서 같은 품종을 동일한 면적에 심었을 때 보다 1.5배 정도 생산량이 더 많았다고 한다. “설마 했는데 정말 영글었네”… UAE 사막서 한국벼 첫 수확. 하지만 사막이라는 환경 특성상 물이 너무 많이 필요해서 일단은 쌀값보다 물값이 더 들었다고 한다. ha당 쌀 생산액은 583만 원인데 들어간 물값이 2천만 원이나 들어서 한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 됐는데 앞으로 경제성이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로 남게 되었다. 대한민국, 사막에서 쌀을 만들었다, 그런데...
3. 역사
3.1. 기원
화석상 벼의 조상은 백악기 초기인 1억 1500만년전 남미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백악기 말 전 대륙으로 번성한 벼의 조상은 원시 옥수수, 대나무, 잔디, 원시 밀과 보리, 원시 벼 등으로 분화하였다. 인류의 벼 재배는 약 1만 년 전에서 6천 년 전 이루어져 본격적인 농업이 시작되었다. 자포니카(Japonica) 종은 중국 양쯔강 유역의 상산 유적과 허무두 유적 주변에서 기원전 8천 년에 재배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황하 유역은 기후가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아 조와 기장을 대신 키웠다. 기원전 5500년 무렵에는 인디카(Indica) 종이 분화하여 인도로 이후 기원전 4천 년 즈음에는 동남아시아 일대로 전파되었다. 기원전 1천 년을 전후하여 캅카스에도 상륙하였다. 아랍인들이 중세 초 이베리아 반도와 시칠리아에 중동 개량종 쌀이 전래되었고, 15세기부터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그런데 2003년, 청주시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가 1만 5천 년 전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벼 농사의 기원이 중국이 아닌 한국이란 학계 주장이 나왔다.# '빙하기였을 당시 기후에서 벼가 발아할 수 있는가?' 또는 '재배벼인가, 야생벼인가?' 하는 논쟁이 있었는데, 전자는 냉해실험을 통해 발아할 수 있음이, 후자는 그 중간 단계인 '순화벼'에 해당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소로리 볍씨는 유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현재의 벼와 유사성이 약 39.6%밖에 되지 않아 현대에 널리 재배되는 종과는 연관성이 적은 다른 종이라고 한다.링크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출량 등의 장점으로 현대까지 재배가 이어지며 개량되어 널리 퍼진 재배종 품종과의 연관성이 적다는 뜻이지, 벼농사의 기원이나 시원, 또는 첫 시도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거가 무엇인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학자들이 벼 재배의 기원을 추적하는 시기는 중원, 한반도, 일본열도가 하나의 땅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빙하기 당시 거주하던 구석기 사람들도 기후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이주를 계속하였기에 당시 해당 지역 거주민들이 현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 특정 민족의 직계조상으로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최초로 벼를 작물화한 이들을 한국인이나 중국인으로 특정 국적을 부여할 수 없으므로 벼의 기원이 특정 국가간 자존심 같은 문제로 귀결되는 경향은 지양해야 한다.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면 우리나라의 경우 고양시 가와지볍씨도 오래된 벼 관련 유물이다.
3.2. 재배사
북중국에서는 쌀이 아주 근래에 보급된 작물이다. 북중국의 전통적인 작물은 조, 수수, 기장이었으며 지금은 쌀을 뜻하는 米자도 원래는 곡식 전반을 뜻했다. 당장에 검은 수수로 빚은 술을 제사 때 쓸 수 있는 천자만의 특권이 고대에 존재했던 것이 그 흔적이다. 북중국은 지금도 밀과 조가 주된 작물로, 쌀은 송나라 시대 이후로 상업이 발달하자 북중국과 남중국과의 교역이 확대되며 북중국 사람들의 식단에도 침투하기 시작한 것이다.한편 한반도 북부, 더 나아가 요령 지역까지도 수천년 전에는 기후가 지금보다 훨씬 온화하고 강수량이 풍부하여 벼농사가 가능하였다는 학설이 점차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후 빠르게 한냉, 건조화함에 따라 고구려 시대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평안도 남부 및 황해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다수 지역은 조, 수수, 기장 등이 주된 작물이 된다.
반면 남중국과 그 영향을 받은 한반도 중남부, 일본은 쌀이 고대부터 주된 작물이었다. 신석기 시대 고양시 가와지볍씨를 비롯하여 벼농사를 위한 관개시설인 제천 의림지도 기원전후 시기에 조성이 시작되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중남부에서도 일관적으로 계속해서 쌀만을 주식으로 삼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고고학적으로도 문헌적으로도 그렇지 않다. 이앙법이 퍼지기 전에는 다른 작물처럼 밭에 직접 씨를 뿌려 재배했기 때문에 생산량도 적었고, 수리 시설도 조선 후기에야 본격적으로 보급되어서 쌀 농사가 늘어난다. 당장 세종 시기에 정해져 이후로 쭉 조선의 세법에 흔적을 남긴 공법이 '밭에서의 조 생산량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조선 후기에 수리 시설이 널리 퍼지면서 가뭄에 대한 대비가 어느 정도 된 후에는 이앙법을 이용해 더 많은 수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앙법 자체는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으나, 가뭄에 의한 피해가 너무 크고 벼를 이앙하고 물이 반드시 필요할 때 물을 대지 못하면 한 해 농사가 통째로 망해버리는지라 조선 전기까지는 국가 정책으로서 금지하였다. 그러나 수확량 면에서 이앙법과 모내기의 장점이 너무나도 명확하였기에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제방과 저수 설비 등 수리 시설을 만들어서라도 이앙법이 확산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함흥평야 이북에서 벼를 재배하는 건 엄청난 일이었지만, 후기에 들어서 만주까지 재배 한계선이 올라갔다. 이앙법은 모의 생육이 느려서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고, 다른 곳에서 밭벼 파종하듯이 미리 볍씨를 뿌렸다간 서리를 맞아 죽기 때문에 날이 풀리는 즉시 재빨리 갈아엎은 후 재빨리 심는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고, 이를 위해 꼭 필요해서 들여온 농사용 소마저도 기후 적응을 제대로 못해 고생했다고 한다.[5] 대개 이런 기후는 일조량 문제로 생육기간이 짧은데 그 말은 그 짧은 시간에 파종, 제초, 수확 등등 농사에 필요한 모든 일을 끝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기계의 힘을 빌리지 못하는 시대에는 이런 문제가 농민들에게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조선족 농부들이 최북단 벼농사 기록을 경신한 바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혼란기에 조선/한국인들이 중국으로 이주하면서, 기후가 벼농사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던 동북3성의 벼농사 개발을 주도하였다. 압록강 및 두만강 유역을 먼저 개척한 후, 1933년에는 아무르강에서까지 벼를 키우면서 지으면서 세계 최초로 북위 50도 이북에서 벼농사에 성공했다. 1934년 당시 조선족은 동북3성 인구의 3.3%에 불과했지만 벼 생산력의 90.1%에 육박했다.[6][7] 이렇게 되자 중국인들은 소수의 조선인들이 벼농사로 자신들이 농사 지을 때 쓸 물까지 빼앗아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4. 재배
전 세계 쌀 생산국 및 그 생산량을 나타낸 지도. |
밀, 옥수수와 함께 전 세계 주요 작물 중 하나다. 통계를 살펴보면, 2014년 전 세계 평균적으로 1헥타르당 평균적으로 4.5톤을 생산했으며, 이는 3.3톤인 밀보다 높다. # 쌀의 생산 면적은 20%로 다소 낮으나 세계 인구의 34%가 주식으로 이용한다.#
벼는 열대성 작물이라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예로부터 동남아시아가 주산지이다. 특히 태국,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일대와 중국 남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많은 양의 쌀이 생산된다. 특히 이들 지역 중 적도에 가까운 곳은 1년 내내 덥고 습하므로 이기작은 물론 삼기작도 가능하다. 반면, 대한민국, 중국 남부 이외 지역, 일본[8]과 같은 동북아시아는 여름은 동남아 못지 않게 덥고 습하지만 겨울이 상대적으로 추우므로 이기작은 불가능하다.
인류 문명이 산업 사회로 접어들기 전의 전근대 농경사회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의 척도는 얼마나 많은 농지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곡물을 생산하고 있는가였다. 프리츠 하버의 질소비료가 등장 하기 전까지만 해도 작물이 자랄 수 있는 지력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지력이 다 한 농지는 지력이 보충될 때 까지 기다리고 다른 농지에서 벼를 심어야 하는 등 제약이 많았기에 많은 농지는 많은 곡물을 생산 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까지 흔히 쓰이던 천석꾼, 만석꾼 등의 용어를 생각해보면 쉽다. 일본도 쌀의 생산량과 보유량으로 다이묘의 위세가 높고 낮음이 결정되었으며[9], 고쿠다카[10]와 같은 단어가 이를 반영한다. 그 때문에 국가적으로도 쌀 농사를 중요시하게 되었으며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헥타르당 생산량이 밀보다 높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쌀 농사가 가능한 지역은 밀 농사밖에 짓지 못하는 지역보다 인구 부양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곧 인구가 국력이었던 전근대까지는 국력과 직결되는 엄청난 메리트였다. 역사적으로 쌀이 주식인 동아시아~남아시아를 보면 중국 대륙, 인도 아대륙 같이 국토의 면적이 넓은 지역들에는 전세계적으로 봐도 손꼽힐 정도로 인구와 국력이 무지막지한 왕조들이 차례로 들어섰고, 비교적 면적이 작은 일본 열도, 한반도에도 인구 과밀 현상이 일어나며 해당 지역에 들어선 왕조들도 천만 단위의 인구를 찍었다.[11] 이 지역들에도 역시 강성한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문화인류학에서는 쌀농사를 짓는 문화권이 집단주의에 가깝고, 밀 농사를 짓는 문화권이 개인주의에 가깝다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사이언스타임즈 2014-05-23 '쌀의 마음, 밀의 마음' 《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라는 책도 있다. 다만 어느 사회나 일반적으로 농경사회에서는 보다 집단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산업사회로 접어들고 도시가 주된 삶의 터전이 되면서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
4.1. 벼 재배의 장점
식량작물 중에서도 거의 유일한 아열대 습지식물로[12], 일조량만 충분하다는 조건 하에 황토자갈밭 수준의 척박토양에서도 논이라는 습지만 정성껏 조성해주면 얼마든지 상업적 재배가 가능하고, 특히 간척지에서도 상업적 재배가 가능하다. 논이라는 인공습지가 알아서 각종 소동물들을 끌어들여 토양 영양분을 자체보충하기 때문에 딱히 시비를 하지 않아도 지력소모를 걱정할 필요 없이 매년 안정적으로 생산이 가능하며, 습지식물답게 우기나 하절기 폭우에도 강하다. 아니 오히려 우기나 하절기 폭우 덕분에 염류가 씻겨나가면 토양 독성 누적으로 똥땅될 걱정도 없다. 이는 연간 정기 범람이라는 기적이 일어나는 고대 나일 델타가 아니라면 밀 재배로는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었던 장점이다. 현재는 화학비료의 발달로 어지간한 곡물은 거의 년 단위의 휴지기를 필요로 하진 않지만, 화학공업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쌀과 밀의 인구 부양력 차이를 벌린 주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특히 밀과 달리 벼는 물만 충분하면 강렬한 일광도 잘 견딘다는 장점까지 있다.열대 지역에서는 강우가 지나치게 잦아서 토양 영양분도 씻겨나가기 때문에 기작 당 생산량은 적지만, 대신 연중 일광과 습도가 일정해서 이기작, 삼기작[13] 신공으로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아주 많이 늘릴 수있는 곡류이다.[14] 한국을 비롯한 쌀을 생산하는 많은 나라들이 쌀 농사를 장려한 까닭이 바로 이 단위 면적당 높은 수확량 때문이다. 이 높은 수확량 덕분에 쌀은 같은 면적에서 수확할 수 있는 칼로리가 밀 대비 1.5배에 달하고 이로 인해 같은 재배면적으로 더 높은 인구부양력을 가진다. 이로 인해 많은 역사가들은 중국(특히 장강 이남 지방)이 지난 몇천 년간 가장 높은 생산력을 보인 까닭을 쌀에서 찾기도 한다.
단백질 함량 절대량은 적지만 필수 아미노산 함량이 높고 다양하여, 가축을 기르기 힘들어서 유럽에 비해 고기 섭취량이 적었던 과거 한국과 일본에서 특히 사랑받은 작물이다. 건조 백미에는 약 4~6%의 단백질이 들어있으며, 현미의 단백질 함량도 비슷하다. 밀은 용도에 따라 다르지만 5~15% 이상, 빵을 만드는 강력분은 11%~13% 정도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으나, 이 중 80% 이상이 글루텐으로 편중되게 형성되어 있어서 단백가는 쌀 쪽이 더 높다. 쉽게 말해서 단백질의 절대량은 밀이 높지만 구성비가 불균형하다는 단점이 있고, 쌀은 밀에 비해 다양한 필수아미노산이 포함되어 있기에 고기를 적게 섭취해도 건강을 유지하기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쌀은 오곡 가운데 으뜸이었고, 특히 군대에 공급하는 군량으로 삼기 매우 적합했다.
또한 제분과 제빵 설비가 필요한 밀에 비해 냄비는 물론 대충 진흙토기만 있어도 밥 지어먹을 수 있는 쌀은 조리 난이도가 쉬웠다. 유럽 장원경제에서 제분소와 제빵소 등이 영주 소유였다는 설명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권 사람들이 집에서 밥을 먹을 때 유럽권 사람들은 밀죽을 먹었다. 군량미 문서에서도 나오지만 주식작물의 쉬운 조리 난이도덕에 근세까지도 전쟁 때 군수보급 역시 서구권에 비해 수월했다.
4.2. 벼 재배의 단점
이렇게 보면 벼를 재배하는 것이 밀 재배에 비해 장점만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기본적으로 벼는 경작기간이 길며 열대 저습성 작물인 까닭에 일조량이 많고 강우량이 풍부한 곳에서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즉 아일랜드 같은 서안 해양성 기후 지대에서는 재배하지 못한다.벼의 단점은 한 마디로 논에서 재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 자체이다. 우선 논에는 나락이 충분히 커지기 까지 항상 물을 대어놓아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물의 총량 자체가 다른 작물보다 많다. 사실상 벼 농사는 물을 얼마나 잘 댈 수 있냐로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유엔환경계획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쌀 1kg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물의 총량은 2~3톤에 이르는 반면, 밀은 1kg 생산하는 데 물 1톤 정도면 된다고 한다. 벼가 밀에 비해 물을 두 배 넘게 필요로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북부지방에서 밀, 중국의 남부지방에서 벼를 위주로 재배하는 것이다. 물론 밀의 재배조건이 어지간히 까다로움을 감안하면 물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재배할 때는 이런 엄청난 양의 물을 계속해서 공급해줘야 하기 때문에, 저수기술이 발달하기 전의 한반도의 벼농사는 사실상 도박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반도는 겨울과 봄이 건조하기 때문에 양도 얼마 안 되고 아예 안 내릴지도 모르는 봄비에 모든 걸 걸며, 한여름에 수틀려서 장맛비가 시원찮기라도 하면 대번에 망하기 때문이다.[15] 이 때문에 쌀의 압도적인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조금 가물어도 잘 버티는 조와 메밀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전인수의 어원만 봐도 알듯이 개울 하나를 가지고 서로 자기 논에 물을 대겠다고 상류 하류의 농부들끼리, 혹은 마을 단위로 패싸움이 나는 것도 늘 있었다. 심지어 현재도 농업 용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일이 가끔씩 발생한다.# 그래서 벼농사를 주로 짓는 나라는 역사적으로 치수사업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사업이었으며, 논에 안정적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있는 저수기술이 즉 고부가가치 기술이기도 했다.
아울러 잡초와 병충해에도 약해서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쌀을 뜻하는 쌀 미(米)자의 자원이 88(八十八)로 파자하여 농부가 수확할 때까지 88번 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반쯤 진심으로 통할 정도였다.[16][17] 물론 물을 적게 먹고 손을 덜 타는 품종도 있지만, 이런 품종은 수확량이 적거나 이삭이 팬 이후 수확할 때까지 보존하기가 쉽지 않다. 이래저래 인구 밀도가 높고 강우량이 풍부한 곳에서 노동집약적인 재배방법에 어울리는 작물로, 한국지리 시간에 나오는 집촌, 산촌에서 집촌이 발달하는 지역 중 논 농사를 짓는 지역이 포함되는 게 이러한 이유다. 남중국 물풀이 원류이며 북중국을 거치며 물논이 아니라 마른 밭에서도 자라는 밭벼도 있다. 물론 생산량은 급감한다.
논농사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비위생성이다. 소동물들을 끌어들여 유기질을 자체보충해 지력이 저절로 유지되며, 항상 흙속에 유기질과 물이 가득 차있으니 한반도의 건조한 토양에 익숙한 대부분의 잡초들은 발도 들이지 못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만큼 세균의 번식이 성하다는 이야기며, 특히 수인성 전염병이 발원할 가능성이 밭농사보다 높다. 또한 논은 모기가 번식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학질의 문제도 있다. 그나마 한국이나 일본은 온대기후임에도 연교차가 매우 심한 기후 덕분에 여름 한철에 집중된 높은 기온과 강우량을 이용하여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한 철 만에 벼농사를 끝내버렸기에 별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18] 연중 고온다습한 중국 남부나 동남아, 인도 등 아열대기후/열대기후 지역들은 일 년 내내 논에 물을 채워서 삼모작, 사모작을 했기에 해충이나 병원균이 한 번 터를 잡으면 몇 년 동안 계속해서 농부들을 괴롭혔다. 이로 인해 모기에 의해 전파되는 말라리아나 뇌염 등의 곤충 혹은 수인성 전염병 등 여러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중국 왕조들의 기록을 보면 남부에서 근무하는 관료들의 수명이 유의미하게 짧다는 것이 그 증거 중 하나. 그나마 벌레는 논에 벌레를 잡아먹는 물고기 등을 키워서 곡물과 단백질 둘 다 얻는 일석이조가 가능하지만 수인성 전염병은 답이 없었다.
마치 건설현장마냥 특정 시점에만 노동력을 집중적으로 많이 소모하기도 한다. 밀에 비해 생산력은 뛰어나지만 그만큼 한번에 사람을 많이 갈아넣어야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이때문에 동아시아는 벼의 높은 인구 부양력으로 인구가 크게 증가했지만 그 안에서는 노동을 경감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인구를 계속 확보하려 했던 이면도 존재한다. 사람이 줄어들면 줄어든 만큼 구성원 개개인이 해야 하는 일의 부하가 커지기 마련이다.[19]
이탈리아 북부 포강 유역 등에서도 키우는데, 상술된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여성들이 한국 논두렁마냥 바지 걷고 모내기하는 당시 사진도 있다.
정리해보면 물도 많이 먹고 많은 노동력도 요하고 위생적이지도 않지만 투자 비용이 큰 만큼 리턴도 확실했기에 인구가 적던 초기 동아시아 인류 문명이 벼농사를 통해 성장하였다.
5. 종류
- 곡식으로 재배하는 벼는 Oryza glaberrima(아프리카벼)와 O. sativa(아시아벼) 두 종이 있고, 이중 보다 널리 재배하는 O. sativa는 인디카(indica) 계통과 자포니카(japonica) 계통 2가지로 분류된다. 인디카 계통은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자포니카 계통은 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재배한다. 인디카 계통은 흔히 안남미라고 부르는데, 자포니카 계통은 낱알이 짧고 굵은 반면에 인디카 계통은 낱알이 가늘고 길다. 한국에서 90년대 초까지 재배했던 '통일벼'는 인디카 계통과 자포니카 계통을 교잡시킨 것이다. 한 때는 자바니카(javanica) 계통을 따로 분류하기도 했으나 이후 열대기후에 적응한 자포니카 계통의 한 갈래라는 점이 발견되어 현재는 주로 열대 자포니카(tropical japonica) 계열이라 칭한다.
- 한국에서 재배하는 벼의 품종은 대부분 중만생종이며, 조생종 품종은 주로 강원도 내륙 산간부에서 재배한다. 중만생종 품종은 추청벼(아끼바레), 남평벼(이리416호), 주남벼(밀양165호), 동진1호(익산444호) 등이 있으며, 중생종 품종은 동해벼(영덕5호), 화성벼(수원333호), 농림나1호(동해4호)[20] 등이, 조생종 품종은 소백벼(수원304호), 오대벼(수원303호), 운봉벼(운봉1호), 복광벼(후꾸히까리) 등이 있다.
특이한 종류로 '앵미'라는 종이 있다. 야생 벼의 일종으로 다른 벼와는 달리 알곡이 붉은색을 띤다. 수확량이 적은 데다 맛이 떨어져서 일반 벼를 재배하는 논에선 잡초 취급 당하지만, 현대에는 기능성 쌀로 재배하는 농가도 있다. 앵미는 벼가 가혹한 환경(비바람)에 노출되면 살아남기 위해 야생성을 각성하는 식으로도 생기는데, 번식력이 좋아 평범한 쌀논을 잡초로 덮어버리기도 한다. 최근 농촌인력이 감소하며 하나하나 심어주는 대신 뿌리는(직파법) 농법이 부활하며 앵미도 같이 부활하는 추세다.
- 상습침수, 범람 지역에는 침수가 되어도 잘 자라는 심수벼(Deepwater rice) 품종도 있다. 두 가지 계열이 있는데, 하나는 뜬벼로 침수가 되면 줄기가 추가적으로 쭉쭉 자라 잎만은 물 밖에 내놓는 품종이고, 하나는 그냥 키가 매우 커서 침수를 견디는 품종이다. 특히 몬순이 극심한 아삼 지역이나 미얀마의 와디 삼각주, 메콩강 유역처럼 강의 범람이 잦은 곳에서 재배된다.
- 아프리카벼는 아시아벼에 비해 내병성, 내건성, 환경저항성이 강하고 성장이 빨라 잡초에 대한 경쟁력이 높지만 수량이 적고 탈립성이 강하며 이삭이 익으면 도복하는 특징이 있어 수확량이 적다는 단점을 지닌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여 기르기 용이하면서 수량도 높은 벼를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벼와 아시아벼를 교잡시킨 NERICA(New Rice for Africa)가 있다.
6. 언어별 명칭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 |
한국어 | 벼 |
한자 | 禾(화), 稻(도) |
그리스어 | όρυζα(óryza) |
독일어 | Reis |
러시아어 | рис(ris, 리스) |
루마니아어 | orez |
마인어 | padi |
만주어 | ᡥᠠᠨᡩᡠ(handu) |
몽골어 | тутарга(tutarga)(문학), будаа(budaa)(구어) ,цагаан будаа(cagaan budaa)(구어) |
베트남어 | lúa |
산스크리트어 | तण्डुल(taṇḍula) |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 arroz |
아랍어 | أَرُزّ(ʔaruzz, 우르준, 우르즈), رُزّ(ruzz) |
에스페란토 | rizo, rizoplanto |
영어 | rice (plant) |
이탈리아어 | riso |
일본어 | [ruby(稲, ruby=いね)](ine, 이네) |
중국어 | 稻(dào), 稻子(dàozi) |
禾(wo4)(광동어) | |
дозы(dozɨ)(둥간어) | |
태국어 | ข้าว(kâao) |
튀르키예어 | pirinç |
برنج(pirinç)(오스만어) | |
페르시아어 | برنج(berenj) |
프랑스어 | riz |
핀란드어 | riisi, riisikasvi |
히브리어 | אורז/אֹרֶז(órez) |
스와힐리어 | mchele |
말라가시어 | -bary |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는 누구나 한번 쯤 들어보았을 속담이다. 여기서 '나락'은 남부 지방 방언으로 '벼'를 뜻한다. 물리적인 실체도 없는 귀신이 진짜로 볍씨를 까서 먹을 리가 없으므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볍씨'와 반대로 '씨'가 앞에 오는 것이 특이하다.[21]
'벼'의 어형은 한반도 남부 지역(충청/경상/전라/제주)에서 '나락'으로 나타나며[22], 나머지 중부 지역에서 대부분 '베', 그리고 극소수 지역에서 '벼'로 나타난다.
남부와 중부 지역이 접경하는 길쭉한 경계 지역(충남 남부 - 충북 남부 - 강원 남부)에서는 '베'와 '나락'이 함께 쓰이는데, 신기한 점은 이 지역에서 '베'와 '나락'이 다른 의미로 구분되어 쓰인다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베'는 식물 그대로의 벼, '나락'은 껍질을 벗겨내기 전 벼의 낟알 상태를 뜻한다.
대에 달린 벼 | 낟알 상태의 벼 | |
중부 | 베 | 베 |
전이지역 | 베 | 나락 |
남부 | 나락 | 나락 |
이는 두 가지 어형이 접경해 함께 사용하는 곳, 즉 전이지역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언어 현상이다. 서로 같은 의미의 두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로 분화되는 것이다. 다른 합성어를 살펴봐도 이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벼이삭 | 볏단 | 볍씨 | ||||
서부 | 동부 | 서부 | 동부 | 서부 | 동부 | |
중부 | 베이삭 | 벳단 | 벱씨/베씨 | |||
점이지역 | 베이삭 | 벳뭇 | 벳단 | 씻나락 | ||
남부 | 나락모가지[23] | 나락이삭 | 나락뭇[24] | 나락단 | 씻나락 |
'벼이삭/볏단'처럼 대에 달린 벼는 '베' 꼴, '볍씨'처럼 낟알 상태의 벼는 '나락' 꼴을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벼'의 방언형은 전이 지역에서 의미 분화를 아주 뚜렷하게 보여주는 예로 한국어의 방언학에서 흥미로운 예로 꼽힌다. 한국언어지도 '벼', 관련 기사
7. 기타
- 과거 도시와 농촌이 극렬하게 괴리되어 있던 시절에는 쌀이 어디에서 나는지도 모르는 도시 아이들을 꼬집는 말로 "쌀나무"란 말이 있었다고 한다. 요즘 와서는 어린이 사이에서도 진지하게 쌀나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높은 확률로 이상한 애, 바보 취급을 받는다. 애초에 이 쌀나무 얘기 자체가 유명해져 버렸기 때문. 다만 쌀나무 드립의 핵심은 애초부터 도시와 농촌의 괴리감이 점점 커져 가고 나아가 농축산물의 가치를 경시하게 되는 풍조를 비판하는 데에 있다.
- 낟알이 붙은 볏단을 쌓은 더미를 '낟가리'라고 한다.
- 벼에서 힌트를 얻은 벼머리가 있다.
8. 관련 문서
[1] 전라도 사투리/경상도 사투리, 혹은 추수 후 도정 전의 벼를 말하기도 한다. 아래 '방언학에서의 벼' 문단 참고.[2] 원래 서아프리카에서 재배하던 벼는 일반적으로 재배하는 Oryza sativa 종이 아니라 Oryza glaberrima라는 별개의 종이었으나 점차 Oryza sativa 종으로 바뀌고 있다.[3] 2005년 인도에서 중생대 라메타 지층에서 발견된 공룡 분석(糞石)에서 알갱이 분석을 통해 적어도 백악기 중기쯤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해당 지층이 신생대 후반에 화산암이 관입되었다는 문제점이 있다.[4] 열대 지방에서 기르면 대부분 붉은색이 조금씩 나타난다.[5] 원래 이런 기후는 벼보다는 메밀이나 감자를 재배하는 것이 훨씬 낫다.[6] Jin Binggao (金炳镐); Xiao Rui (肖锐) (2011). 《中国民族政策与朝鲜族》[7] 다만 당시에는 조선족보다는 '한인' 등으로 불렸다.[8] 오키나와, 규슈 남부 제외[9] 일본의 다이묘들을 설명할때 '몇만석'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그런 의미이다.[10] 석고. 땅의 넓이를 가리키는 옛 단위로 쌀 1석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 면적=1고쿠다카.[11] 조선은 16세기에 인구가 천만 단위에 들어섰고, 에도 막부 역시 말기에는 3000만을 돌파하는 등 당대 기준으로 보면 인구가 상당히 많은 국가들이었다.[12] 피도 식용은 가능하지만 워낙 맛이 없어서 만년 잡초 취급이다.[13] 일반적으로는 2년 5기작 이다.[14] 다만 3모작 = 300% 생산 같은 단순공식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1모작 100 생산하는 게, 3모작 하는 곳에선 40 40 40 해서 120 생산한다거나... 물론 80 80 80 해서 쌀이 쏟아지는 꿀땅도 있다. 동남아시아 등 고온다습 지역에서는 빨리 자라니 쌀알이 얇팍해 수확량이 적어지고, 비가 자주오니 토양의 영양분이 쓸려나가는 통에 다시 적어지고 한다.[15] 다만 이는 대규모 인구부양을 위해 평야에서 벼 위주로 올인해 재배할 때의 문제점일 뿐, 산 기슭에서 소규모로 벼를 재배할 때에는 적용되지 않는 단점이다. 한반도는 산에서 거의 항상 끊기지 않고 내려오는 계곡물이나 지하수가 산기슭에서 솟아나오는 용출수를 이용해 벼를 재배하기에는 매우 적합한 지역이었고 이에 인구 밀도가 높지 않던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농지가 산기슭에 존재하였다는게 서긍의 고려도경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현대 학계의 연구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16] 실제 米의 자원은 이미 설문해자에서 이삭의 낟알 모양을 본뜬 상형자로 나온다.[17] 여기서 유래되어 대한민국에서 8월 18일을 농업인의 노고에 감사하는 날로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이 쌀의 날을 제정했다.#[18] 논에 병충해가 생긴다고 해봤자 겨울 동안 논이 얼어붙으면 죄다 0으로 리셋되었기에 해를 넘어가는 치명적인 문제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19] 이 때문에 조선 등 전근대 농업사회에서는 공업과 상업을 천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농업에 투입해야 하는 노동력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잉여 노동력이 서구 문명에 비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산업혁명 등 기술발전이 동양이 상대적으로 더뎠단 의견도 있다.[20] 논이 아닌 밭에서 재배하는 밭벼[21] 씨감자, 씨암탉 같이 “씨(종자)로 쓸 벼(나락)”으로 볼 수 있다.[22] 제주에서 '나록'으로 나타난다[23] 남부에서 드문드문하게 '나락모개/나락모개미'로 나타남[24] 서북부에서 '나락다발'로 나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