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20:25:26

권위주의

1. 개요2. 정치학 용어
2.1. 유래2.2. 관련 문서
3. 심리학 용어4. 사회학 용어5. 오용6. 관련 사상7. 창작물의 권위주의적인 인물이나 단체8. 관련 문서

1. 개요

1. 사상의 일종. 권위를 내세운다.

2. 권위에 대한 의심이나 반항모독이나 죄악으로 여기는 사고방식 또는 행동양식.

2. 정치학 용어

/ Authoritarianism

정치학적ㆍ형식학적으로는 민주주의적인 의회제를 취하면서 일부의 집단이 독재적인 힘을 가지고 의회나 구성원이나 국민을 무시하고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국가를 권위주의적 국가라고 한다. 다만 전체주의 체제에 비하면 강도가 비교적 약한 편이다. 반의어는 자유지상주의이다.[1]

1964년 정치학자 후안 린즈(Juan Linz)는 권위주의(Authoritarianism) 정체를 4가지 특성을 사용하여 정의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번역의 원어인 Authoritarianism는 어떤 사상이나 원리를 가리키지 않고 다만 강력한 중앙권력과 제한적인 정치적 자유를 특징으로 하는 정치 형태를 지칭한다. 따라서 원의를 제대로 번역하면 권위주의 정치가 된다.

2.1. 유래

권위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대표적인 결과물은 비스마르크가 만든 관료제다. 지금은 관료제의 비효율성이 많이 지적받지만, 그 당시 관료제는 혁신 그 자체였다. 상명하복을 핵심으로 업무를 실제적으로 수행하는 이 체제는 의사소통의 비용을 혁신적으로 줄이고, 업무수행률을 늘렸다. 그 당시 관료제를 비판하던 권력층은 비스마르크만 사라지면 허물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가 퇴임하자 오히려 그 후임들이 관료제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다.

이런 모습을 기능적 권위주의라고 한다. 즉 권위주의에서 직급이라는 권위가 가지는 위상을 존중하고, 그 명령을 따름으로써 의사소통의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움직임을 가져왔다. 물론 이에 따른 부작용과 비판도 많지만, 예산을 타내기 위한 각 부처의 피터지는 도그파이트를 대통령이라는 권위로 제압, 샤워실의 바보로 상징되는 정부의 비효율성을 줄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 한창 발전이 필요한 시기에 권위주의가 굉장한 효율성이 보여주기도 한다. 버튼을 누르면 전기 신호가 중간에 거쳐 말단에 닿듯 일사천리로 일을 척척 처리해서 극도의 효율을 뽑아내고, 누군가가 전체를 관리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즉각적으로 내릴 수 있기 때문. 이런 부분에서 가장 극대화된 나라가 리콴유싱가포르다. 세계 최고의 공공부문 효율성, 의료 효율성, 주택 보급률, 사회보장제도 등. 비슷한 인구를 가진 나라들도 이런 높은 효율성을 보기 힘들다. 단, 싱가포르는 매우 작은 도시국가이니 기본적으로 통치 행위의 효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싱가포르하고 다르게 권위주의가 거의 없는데도 경제력과 큰 차이가 없는 국가가 없지는 않다. 예들 들면 룩셈부르크가 대표적인 예시다. 룩셈부르크는 1인당 GDP가 싱가포르보다 더 높다. 그렇기에 권위주의의 효율성이 절대적이지 않다. 룩셈부르크는 조세피난처로 유명해서 이들의 1인당 GDP 비교로 권위주의의 효율성을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싱가포르도 다른 나라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영어의 비중이 다른 언어보다 크다는 장점이 있고[2] 인도양과 태평양의 연결을 해상물류 거점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룩셈부르크도 무조건 유리한 조건이 있지 않고 불리한 부분이 많다.인구수가 약 66만에 불과한 소국이라는 태생적인 문제점이 있다. 그렇기에 경제 규모가 너무 약하고 존재감이 약하다. 정치적, 경제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면 알겠지만 인구수가 적어서 발생하는 불이익은 어마어마한 단점이다. 실제로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은 룩셈부르크보다 1인당 GDP가 아래지만 룩셈부르크보다 월등히 유명하다. 알라딘 커뮤니케이션 같은 온라인 쇼핑에서 룩셈부르크라는 단어를 검색해도 룩셈부르크 관련 서적이 매우 적다.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을 검색어로 하면 룩셈부르크보다 관련 서적이 월등히 많다. 그리고 룩셈부르크는 내륙국이라는 핸디캡도 존재한다. 내륙국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경제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면 어지간하면 아는 사실이다. 내륙국들이 전반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애초에 룩셈부르크가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것도 룩셈부르크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3] 참고로 싱가포르도 룩셈부르크만큼은 아니지만 조세 도피처로 유명하다.

1인당 gdp 순위는 10위권 또는 20위권 안에 드는 국가들은 전반적으로 권위주의가 약한 나라들이 명백히 더 많다.# 전체적으로 권위주의의 효율성은 명백하게 좋지 않다는 증거다. 그나마 권위주의 국가 중에서 가장 1인당 GDP가 가장 많은 싱가포르는 겨우 7만 2,800㏊정도의 작은 국토에 무려 약 605만이 살고 있는 도시국가이니 기본적으로 통치 행위의 효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감안하면 싱가포르처럼 효율성을 위해서 좁은 지역에 인구를 집중시켜서 관리해야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당연히 인구수를 집중하는 말이 쉽지 않다. 강제로 인구를 집중시키면 독재국가든 민주주의 국가든 부작용이 심각하다. 싱가포르는 원래부터 협소한 지역이기에 선택권이 없지만 영토가 넓은 국가들은 흉내내지 못한다.

그리고 권위주의의 맹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높은 자리에 제대로 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4] 윗선에서 모든 걸 판단하고 지시하여 아랫사람은 거기에 따르기만 해야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위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그걸 막을 방법이 없다(집단사고 참조). 해결책은 더 큰 권위로 찍어누르는 건데, 결국에는 권위의 최정점이 존재하게 되고 이 정점에 오른 자가 헛짓거리하면 완전히 뒤집어엎는 것 말고는 바꾸지 못한다.

설령 높은자리에 제대로 된 사람이 있더라도 권위주의 체제는 장기적으로는 탈이 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기에 언급된 싱가포르 역시 지나친 사회 통제라는 결점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에서도 2020년 싱가포르 총선에서 야당이 점점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 싱가포르에도 민주주의의 바람이 불고 있는 상태다.

거기에 기본적으로 권위주의 사회는 행복을 저해한다. 행복지수가 낮은 국가들이 권위주의가 강한 나라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같이 권위주의가 없으면서 경제적으로 유복하면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많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권위주의가 반드시 필요할 지에 대한 필요성이 매우 의심스럽다.

2.2. 관련 문서

3. 심리학 용어

3.1. 성격사회심리학 용어

이 분야들에서 권위주의는 193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구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초기에는 파시즘과 동일한 것으로서 취급되었다. 특히, 나치 독일이탈리아 왕국의 파시스트적인 경향 속에 외국인과 성소수자 등을 차별하는 경향이 발견되면서, 이것이 국가의 권위를 최우선시하는 "권위주의적" 인 측면 때문일 수 있겠다는 인식이 나타났다. 이 점에서 테오도르 아도르노(T.Adorno)는 미국의 여러 심리학자들과 협력하여 대전 전후인 1950년에 《The Authoritarian Personality》 라는 책을 펴냈다. 그리고 이 책은 곧바로 수많은 초창기 사회심리학자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심지어 현대의 과학적 심리학의 논문들에서도 꾸준히 인용되고 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정신분석학이 굉장히 그럴싸한 이론으로 취급되고 있었으므로,[5] 사람들이 어째서 전쟁의 광기에 휩싸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권위주의를 유년기의 양육으로 설명하려는 접근이 인기를 끌었다. 즉, 집에서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에게 양육된 자녀는 친부살해의 욕망으로 불타게 되지만, 이윽고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는 거꾸로 동일시(identification)라는 정반대의 방어기제를 채택하여, 아버지에 대한 복종을 국가에 대한 복종으로 확산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무서운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적개심은 거꾸로 외국인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향하게 되는 투사(projection)가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

아도르노는 많은 한계를 보였지만 그럼에도 현대의 사회심리학 및 정치심리학에 있어서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된다. 자신의 책에서 제안해 보인 권위주의 척도는 일명 F-척도(F-scale)라고 불리는데, 권위주의의 주요 특징들을 9가지로 정리해 묶어 놓았다.[6] 이 목록은 당대의 많은 다른 연구자들이 이론적으로 참고해서 변용하거나 개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아도르노의 대표적인 한계는 F-척도가 심리측정학적으로 믿을 만한 통계적 방법을 따르지 못했으며, 신뢰도와 타당도, 특히 내적 일관성 신뢰도와 구성 타당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F-척도는 단일차원적(unidimensional)인 개념을 상정하고 제작되었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가리키는 개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인 것처럼 보였다. 이에 다른 연구자들이 대안적 개념을 만들겠다며 독선주의(dogmatism) 같은 것들도 제시하긴 했지만, F-척도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인기를 끌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설득력 있는 통계적 문항분석과 척도개발에 난항을 겪던 나머지,[7] 심리학자들은 이후 거의 30여 년 동안 권위주의라는 주제에 대해 연구할 의욕을 잃어버리고(…) 그 대신에 당시 잘 나가던 인지(cognition)나 동기(motive) 같은 주제로 관심을 돌렸다. 그러다가 1981년밥 알테마이어(B.Altemeyer)라는 인물이 비로소 나타나서 통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척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에 따르면 권위주의는 권위에 대한 복종(authoritarian submission), 권위의 적들에 대한 공격성(authoritarian aggression), 그리고 인습주의(conventionalism)로 요약될 수 있었다. 각각을 설명하자면, 권위주의는 1) 정부나 권위 있는 집단, 지도자 등이 그 구성원들의 자유를 제약하거나 억압하고 착취하더라도 이를 통해 질서와 안전이 달성될 수 있다면 기꺼이 복종하며, 2) 이 권위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나 집단이 나타날 경우에는 제재를 가하거나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8] 3) 그 사회가 전통적으로 유지해 온 관습적 가치나 인습, 종교적 의례, 가치관, 형식들을 고스란히 따르려 하는 경향이 있다.[9] 알테마이어는 이것이 대체로 우익적인 성향을 강하게 예측한다고 보아, 우익 권위주의(RWA; right-wing authoritarianism)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 새로운 용어는, 현대에도 RWA를 키워드로 하는 논문들이 어마어마하게 나오고 있을 만큼 대박을 쳤다.

알테마이어는 30년 동안 답보 상태에 빠져 있던 권위주의 연구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 하드캐리(…)를 펼쳤지만, 학계에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문제를 초래했다. 그 역시 아도르노처럼 권위주의가 기본적으로 성격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수많은 연구자들이 달라붙어서 연구를 해 보니 성격은 아닌 것 같다는 데이터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10] 하지만 2000년대 후반이 될 때까지, 하도 알테마이어의 이론이 설득력이 있어서 이것이 잘 와닿지 않았다가, 이후에 크리스 시블리(C.G.Sibley)와 존 더킷(J.Duckitt)이 나타나서 관점을 뒤집어 놓았다. 즉, 권위주의는 성격이 아니라, 개인이 갖고 있는 사회적 태도가 표현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사회관과 세계관의 수준에서 다른 사람들과 차이를 보인다. 권위주의가 높은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서 위협으로 가득하고, 일신의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곳이라고 여긴다. 이들은 따라서 그 위험요소들을 제거해 줄 수 있는 "강력한 누군가" 를 간절히 원하며, 그런 존재의 밑에 들어가서 기꺼이 보호받으려 한다. 또한 자신도 추후에 그런 권위주의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반면 권위주의 성향이 태도에 약하게 드러나는 사람들은 사회 속의 불확실성과 다양성, 다원성, 미지성을 기꺼이 즐기며, 그것들이 자신을 위협한다고 딱히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권위주의와 유사한 다른 개념으로서 1994년에 제안되었던 사회적 지배 경향성(SDO; social dominance orientation)도 거론해 볼 수 있다.[11] SDO는 당초에는 '내집단 지배 정당화' 로 정의되었지만 이후 논쟁을 거치며 '평등주의 반대'(anti-egalitarianism)로 재정의되었으며, 기본적으로 "사람 밑에 사람 있고, 사람 위에 사람 있다, 우월한 집단이 열등한 집단을 억압하는 건 필요악이다, 세상은 정글 같은 무자비한 곳이다, 세상이란 원래 불공평한 법이고 평등은 허상일 뿐이다" 의 논리를 따른다. 이 개념은 당초 사회적 지배 이론(SDT; social dominance theory)이라는 다른 이론적 조망이 만들어지던 와중에 발견된 것인데, 편견 및 고정관념, 차별, 호모포비아, 제노포비아, 반지성주의 등등 권위주의가 기존에 예측하던 사회적 현상들을 정확하게 예측해 내면서도 권위주의와는 개념적으로 너무나 독립적(independent)이고 겹치는 부분이 없어서 연구자들을 놀라게 했다. 시블리와 더킷은 이에 대해, 두 개념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RWA는 "그들이 내게 위협스럽기 때문에" 타인들을 거부하게 된다면, SDO는 "그들이 열등하기 때문에" 타인들을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약간씩 포커스가 다른 부분도 있어서, RWA는 독재검열, 전체주의, 갑의 횡포 등을 설명하기 좋다면, SDO는 경쟁만능주의, 사회진화론, 약한 것은 죄악 같은 사상들을 설명하기 좋다는 차이가 있다.

3.2. 발달아동심리학 용어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권위주의는 일차적으로 정신분석학이론적 조망의 영향을 받던 주제였다. 그래서 테오도르 아도르노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권위주의에 대해서 "집에서 부모가 교육을 잘못 시켜서 저렇게 됐다"는 식의 설명을 내놓곤 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당연히 발달심리학 분야에서도 확고하게 퍼져 있어서, 그 당시에 발달심리학자 다이애나 바움린드(D.Baumrind)는 부모의 애정과 통제를 기준으로 2 by 2 매트릭스 모형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애정 있음애정 없음
통제 있음권위적 양육
(authoritative child-rearing)
권위주의적 양육
(authoritarian child-rearing)
통제 없음허용적 양육
(permissive child-rearing)
방임적 양육
(neglectful child-rearing)

위의 표에서 바움린드는 권위주의적(authoritarian)인 것과 권위적(authoritative)인 것을 서로 구분하였으며, 양자의 차이는 자녀를 통제하는 와중에도 자녀에게 애정을 꾸준히 드러내는가에 있다고 하였다. 바움린드가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양육 방식은 바로 권위적인 양육이라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적 양육의 경우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자녀가 반항적이게 되거나 거꾸로 의존적이고 독립심도 부족하게 되며, 허용적 양육의 경우 책임감 없이 자란 자녀가 결국 일탈적이게 되고, 자존심과 허세가 가득하게 되며, 수직적 조직 내에서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다른 연구자들은 허용적 양육의 문제점은 그것이 "과도할 때에만" 성립한다고 보면서, 이런 문제적인 양육을 별도로 분리시켜서 방종적 양육(indulgent child-rear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허용적 양육은 그 자체만으로는 (도가 지나치지 않는다면) 나쁘다고 볼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물론 방임적 양육의 폐해는 가히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권위적인 양육은 자녀가 부모로부터의 애정도 느끼고 존중 받으며, 적절한 통제를 통해 어떤 행동을 하면 되고 하면 안 되는지를 배울 수 있기에 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모들은 자녀를 복종시킬 때에도 윽박지르거나 찍어누르는 대신, 합리적인 대화와 설득을 통해서 상황의 합당함을 먼저 이해시킨다고 한다.[12]

물론 이 모형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 논리가 매우 직관적이고 단순 명쾌해서 널리 쓰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이 모형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2 by 2 매트릭스 모형이 갖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 명쾌함을 뒤집으면 정확히 이 모형의 단점이 된다. 예컨대 자녀의 심리적 발달과 향후의 성취에 있어서, 부모의 양육 방식은 의외로 중요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각 양육 유형별로 차이가 얼마나 심하게 나게 될지도 생각만큼 확실하지 않고, 특정 양육 방식을 채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최선을 다해서 일관된 방식으로 양육하는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 모형은 분명히 큰 의의를 지니며, 특히 본 문서에서 말하는 권위주의에 대해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고 늘 통제만 하려고 드는 것이 얼마나 해로울 수 있는지를 강조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권위란 요구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가는 것임을 시사했다는 것이다. 특히 권위를 만드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애정" 이라는 점을 확장시켜 생각해 보면, 모든 '' 들은 '' 이 자신에게 인간적인 애정과 존중을 드러내 보일 때 비로소 '갑' 의 권위를 인정하게 된다는 소박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4. 사회학 용어

사회학에서의 사상을 가리킬 때는 "권위적인 행위로 일방적이거나 강제적으로 종적 지배관계를 형성하려는 질서원리"를 뜻한다.

5. 오용

상당수 사람들이 잘못 쓰는 용어이기도 하다. 권위에만 의존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인 '권위주의적/권위적'(authoritarian)이라는 용어를 '권위자/권위 있다'(authoritative (person))라는 뜻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잘못됐다. '권위 있다'라는 말은 강력한 논거가 된다라는 뜻이고 권위자는 일정한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가라는 뜻이다. 잘 모르겠으면 어떤 저명한 학자를 소개할 때 "생명공학 분야의 권위자 아무개 교수", "조선 후기 당쟁사의 권위자 아무개 박사" 이런 식으로 쓰이는 걸 생각하면 된다. 반면 현대에 들어 부정적으로 쓰이는 권위주의적 또는 권위적이라는 말의 뜻은 불평등하게 암묵적으로 높으신 분들에 대한 비판 자체가 금기시되거나, 사안의 맞고 틀림보다 그 이해당사자의 지위, 힘 같은 면이 더 우선시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경향을 말하는 것이기에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와 거의 정확히 동일한 맥락에서, 위에서 소개했듯 아동발달 분야의 학문에서도 "권위주의적/권위적 부모"와 "권위 있는 부모"는 명백히 서로 다른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흔히 쓰이는 권위 있는 매체, 권위 있는 언론 등은 본인이 강요하도 않았는데 알아서 권위를 만들어 준 경우. 사람들이 "진짜 잘난 사람은 자기가 자랑하지 않아도 알아서 존경해 준다" 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자연스럽게 생기는 권위이므로 권위적·권위주의와는 구별해야 할 것이다.

6. 관련 사상

7. 창작물의 권위주의적인 인물이나 단체

8. 관련 문서


[1] 일반적으로 권위주의의 대척점의 개념에서 자유지상주의는 Libertarianism을 의미한다. 권위주의가 지배와 권위를 숭상한다면 자유지상주의는 지배와 권위를 혐오한다. 한국어로 자유주의라고 번역되는 Liberalism은 사유 재산이나 시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공권력 등 부분적인 권위는 필요악이라고 여긴다.[2] 리콴유가 영어 공용화를 추진한 것은 실리적인 이유였다.[3] 물론 룩셈부르크 주변은 경제력이 강한 국가들이라는 유리한 조건이 있지만 룩셈부르크처럼 강대국들이 근처에 많아도 조세도피처로 유명하지 못한 국가들이 많다.[4] 김정은을 생각해보라.[5] 이때 비슷한 시각에서 나치즘을 설명하려고 했던 인물들로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사례로 에리히 프롬 같은 케이스가 있다. 이 때문에 종종 에리히 프롬은 사회심리학자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정작 학계에서는 굉장히 생소한 분류다. 현대의 사회심리학에 대한 프롬의 기여는 거의 없다시피하다.[6] 이를 위해 아도르노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수많은 파시스트들과 대중선동가들, 연설가들, 정치인들의 메시지들을 전부 수집해서 내용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거쳤다. 현대에도 이와 비슷한 방식의 질적 자료분석은 학계에서 흔하지만, 아도르노의 방식보다는 훨씬 더 세련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7] 이때의 우여곡절이 사실, 심리학자들이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해하는 통계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에는 꽤 좋다. 만일 본인의 전공이 심리학이거나, 향후 진로를 성격심리학, 임상심리학, 사회심리학 등으로 잡고 있다면 F-척도에 관련된 리뷰를 반드시 짚어보자. 척도의 차원성(dimensionality)에 관련된 심도 있는 논의가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8] 단, 연구자들은 이것이 직접적인 공격성을 예측한다기보다는, 엄중한 처벌이나 제재가 실제로 내려졌을 때 이를 더 옹호하고 지지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하지만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은 그러한 "불법행위" 가 정부나 공권력에 의해서 저질러졌을 때에는 조금도 처벌 의사를 내비치지 않는다고 한다.[9] 인습주의의 경우 미국 사회에서는 종교적 보수주의 내지는 근본주의 개신교 가치와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적 가치를 기독교적인 것에서 찾으려 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성서무오설과 같은 주제들에 대해 동조하는 정도를 인습주의 측정결과와 비교해 보면 통계적으로 .70 ~ .80 정도의 어마어마한 상관이 나타난다고 한다.[10] 예컨대 종단적 연구에 따르면, 권위주의는 대체로 청소년기에서 성인진입기 무렵에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대학교와 같은 고등교육은 권위주의를 감소시켰고, 특히 인문학을 전공할 때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자녀를 갖고 부모가 될 때에는 다시금 권위주의가 증가하여, 당초의 3분의 2 정도는 회복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시절이 하 수상하여 사회경제적으로 어지럽고 정치나 안보가 위기에 빠졌다고 느낄 때에도 개인은 권위주의를 증가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패턴은 권위주의를 성격이라는 안정적인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불안정한 것이었다. 덤으로 말하자면, 기존의 권위주의 척도들이 죄다 성격 관련 척도치고는 너무 정치적 가치관이나 태도에 관련된 문항들로만 가득했다는 점도 한 몫 했다.[11] 이것 역시 RWA와 세트메뉴처럼 학술논문들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심리학 전공자로서 사회적 문제나 갈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싶다면 RWA와 SDO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통달해야 할 정도다.[12] 학술적인 근거는 없지만, 대중적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라면, 2010년대 초반에 큰 인기를 끌었던 육아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 에 등장했던 성동일 씨의 양육을 예로 들 수 있을 듯하다. 같은 시기에 출연했던 이종혁 씨의 경우 굉장히 전형적인 허용적 양육 사례에 해당한다.[13] 아무로가 아닌 후루야 레이로서 부하들에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14] 씨보라 문서를 참고하면 얼마나 권위주의적인 회사인지 알 수 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