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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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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과거3. 2010년대4. 민간 인식
4.1. 한국인의 중국 인식4.2. 중국인의 한국 인식
5. 경제
5.1. 경제규모5.2. 1인당 경제력
6. 사회, 문화7. 비디오 게임8. 미래9. 관련 문서

1. 개요

韓中關係 / 中韩关系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의 관계[1]

2. 과거

휴 워커는 그의 '한중관계사' 라는 저서에서 외교방향을 중심으로 한중관계를 4단계로 나누었다.

경술국치 이후로는 여러 독립투사 및 운동가들이 중국 대륙으로 건너가 활동하였고 상하이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중화민국은 한중 연합군 부대 창설을 통해 일제와 맞서 싸우는 등 임정과 한국 광복군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다. 이렇듯 중국대륙은 독립운동 및 항일 무장 투쟁의 거점지였다.

이와는 별도로 경성부에는 중화민국의 영사관이 설치되었다. 물론 도쿄에 있는 중국 공사관 소속.

일제강점기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군 세력과 중국 공산당은 협력관계에 있었으며 항일투쟁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도 동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좌파 계열 독립군들과 관계를 맺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국공내전이 발발 후, 1949년 10월 마오쩌둥 공산당이 정권을 잡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을 승인하게 되면서 적대관계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리고 1950년 6.25 전쟁 때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고, 한국군과 미군 등의 UN군이 북한을 물리치고 38선을 넘자 중국은 군대를 파병해, 북진통일을 막으면서[3] 이 때부터 양국의 관계는 갈수록 멀어져서 상호간의 적대관계를 맺어가게 된다.

한편 중화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자 타이완 타이베이로 천도하여 국가 자체의 소멸은 면했으며, 대한민국은 중화민국과 수교를 유지하게 된다. 정치상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이후로 사회주의 노선을 지향하여 왔으며 1953년 휴전 이후 북한, 소련과 함께 최대의 적대 국가로 규정하였다. 다만 사실상 관계가 없다시피 했던 소련과 달리 중국과는 어느 정도의 교류는 있었다. 이후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관계에 대해선 한국-대만 관계를 참고. 냉전 시기 한국은 서방의 제1세계 , 중국은 공산권 제2세계였다(단, 스스로는 제3세계라고 주장했다).

1971년 중국이 대만을 밀어내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된 것은 한국에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후에도 양국 모두 수교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 데다, 무엇보다 북한대만 문제 때문에 진척되지 않은 채 미수교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1983년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를 계기로 양국 당사자들이 처음으로 정식 국호를 사용하여 외교적 접촉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북한과 소련 관계 긴밀화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활용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모란' 구상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19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가 방중 때 후야오방 당시 공산당 총서기와의 정상회담에서 한 · 중 양국의 국교 정상화 중재했지만, 후야오방 당시 당 총서기가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소극적 자세를 보였다는 외교문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4]와 1988년 서울 올림픽에도 참가하게 되면서 양국간의 관계는 점차 호전 관계로 바뀌어 갔다. 이후 한국이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화민국과 단교함으로써 1992년에 수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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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있는 중국 대사관. 대만 대사관 건물을 사용하다 2013년경 거대하게 리모델링했다. 명동 한복판에 있으나 높은 담 때문에 가까이서는 잘 안보이고 멀리서는 독특한 외관으로 존재감을 어필하는 절묘한 건축이다. 북한과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은 후 지금까지도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비록 수교를 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렇게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태생부터 다른 체제로 출발했고,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지만, 그것도 자국의 실리를 위해서였을 뿐이고, 정치는 공산당 일당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안보적으로도 한국이 그토록 경계하는 북한의 혈맹이고, 미국과 제1세계 국가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최대 동맹국들의 가상 적국이고, 역사적으로도 6.25 전쟁 당시 북한을 지원하면서 대한민국의 통일을 무산시켰으며, 이후에도 북한의 경제 제재 문제와 같은 이슈에서 미지근한 자세로 나오기 때문에 안보 면에서 대한민국으로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다.

그 외에도 황해대한민국 영해까지도 불법 조업 문제가 벌어지고 있고,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 확보를 위한 팽창주의,패권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심리, THAAD 국내 도입 논란에서의 경제적인 갈등,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이어진 동북공정 등의 문제가 곁들여져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아무리 중국이 강대국이며 경제 발전의 중심지가 되어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냥 친하게 지낼 수는 없는 상황이다.

3. 2010년대

한중관계/2010년대 참고

4. 민간 인식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중국인 문서의 r1007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4.1. 한국인의 중국 인식

중화권 배우나 영화, 드라마를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이나, 중국 고전, 이를테면 유교 경전이나 중국 고전 소설을 좋아하는 부류가 한국 내에도 존재하기는 한다. 홍콩영화가 한창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을때는 꽤 대중적이었다. 한국배우들이 중국에서 광고나 드라마, 영화를 찍는 경우는 많아서 중국문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간혹 보는 사람이 있긴 하다.

한국의 국민감정상 중국인(주로 중화인민공화국 쪽의 사람들)에 갖는 고정관념은 낙후된 생활 수준, 처참한 시민의식, 비위생적, 인육, 목소리가 크고 시끄러움, 우스운 기행 등과 같은 부정적인 부류가 대부분이다. 이 고정관념은 일부(라지만 중국 인구에 빗대서일 뿐 수 자체는 수십만을 넘는)중국인의 생활 습관에 대한 목격담에 기반하는데, 이로 인해 생긴 편견은 강력하여 긍정적인 관념이 생기기 어렵다. 일부에 대한 경우지만 어엿한 목격담인만큼 더욱 그렇다. 그나마 중국인과 같은 의식을 공유하는 부분은 역사에 의한 반일 감정인데, 이마저도 한국을 얕보는 중국 정치인이나 중국인에 의해 금이 가다가, 북한 문제까지 더해지면 와해되기 일쑤다.

또 상기 중 대륙 중국인에 대해 갖는 비위생적이다라는 생각은 현대에 생긴 관념이 아니라 의외로 역사가 제법 길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이 쓴 책 <선화봉사고려도경>[5]에는 고려인들은 씻는 것을 좋아하여 남녀 구분 없이 같이 어울려 계곡에서 목욕을 하며 중국인들이 때가 많고 더럽다며 멸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최소 고려시대 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적어도 위생적으로는 중국인을 더럽다고 멸시했다는 뜻.

이런 편견(?)의 영향으로 얼핏 중국인들이 불결해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인 출신 가수 페이가 한국인들에게 "샤워 일주일에 한 번 하냐?"는 편견에 기반한 질문을 듣고 발끈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목욕을 잘 안 하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 같은 경우는 물이 부족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사실 목욕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이는 자연환경에 따른 것으로 온천, 목욕탕이 널려 있어서 일주일에 여러 번 목욕하는 일본, 한국인들과는 대조적인 점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불거진 한국인들의 반중감정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데 사드 보복이 한창이던 2017년 8월에 한국인들 83%가 중국을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다. 비슷한 시기인 2017년 10월 중국사회과학원 아태·글로벌전략연구원의 왕샤오링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행한 여론조사 통계에서는 중국의 군사력이 한국에게 위협이 된다는 반응이 80%에 달했고,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나라로 미국을 꼽은 비율이 41.2%인 데 반해 중국은 11.3%에 불과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때 중국을 지지하겠다는 비율은 고작 1.1%로, 통계상의 오차를 고려하면 사실상 0이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출처 기사

특히나 10대, 20대의 청소년, 청년들 사이에서 반중감정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게 보이며#. 인터넷에서 중국인들만 보면 천안문, 난징대학살 등으로 조롱, 욕설을 퍼붓는게 일상이 되었다. 또한 중국이 시진핑의 1인 독재 체제가 정비된 시점부터 알게 모르게 남중국해 문제를 비롯하여 아시아-태평양권에 대한 중화 패권의식을 더욱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이런 반중, 혐중의식은 옅어지기는 커녕 악화되어 갔으며 이제는 한국 사회의 주요 토픽이라 할 수 있는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한국인들의 국민적인 불만과 중국 정부를 의식하는데 급급해서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 역시 반중감정에 부채질을 열심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연유로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의 인터넷 사이트나 온라인에서 한국 네티즌들의 중국에 대한 반응을 보면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2018년 이후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중국 물품 관세정책으로 시작된 미국-중국 무역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무역전쟁에 의한 한국 경제의 여파는 둘째치더라도[6] 일단 중국의 경제가 악영향을 받거나 강력한 규제를 받아 중국 기업들의 국제적인 활동에 지장이 생기는 것에 대해 대체적으로 옹호하는 분위기. 그 외에도 일부 비매너 중국인 관광객들에 의한 피해나 몇몇 중국계 노동자에 의해 발생한 외국인 범죄, 외국인들과의 팀 플레이를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에서 중국인들이 워낙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기에 정치 외교적 문제랑 별개로 개인적인 경험과 인식으로 인해 중국인을 싫어하는 사람 역시 많아졌다. 중국 공산당에서 싫어할만한 파룬궁, 천안문, 홍콩 시위 관련 중국어 문구들을 복사해서 인터넷에서 널리 사용하는 것이 유행으로 번지고 있기도 하다.

4.2. 중국인의 한국 인식

본토 중국인은 한국인에 대해 일반적으로 보통. 특히 비슷한 이웃나라일본인이나 베트남인에 비교해보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일본인들은 중일전쟁-난징대학살 때문에, 베트남인들은 중월전쟁이나 중국인의 선민의식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 저변에 깔린 의식은 중화사상으로, 중국 정부 자체적으로 사기 고양을 위해 역사 왜곡까지 감수하며 지원한 결과 무분별한 문화적, 국가적 우월주의를 가진 사람이 상당하며, 이들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표출되어 접촉하기 쉬운 인터넷 등에서는 소모적인 감정싸움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중화사상은 크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다' 혹은 '속국이었다'로 요약 가능하며, 한국에 대한 호불호를 가리지 않고 넓게 퍼져있다. 금순공정에서 비롯한 역사 왜곡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한국의 요리, 한국의 전통 의복 등이 죄다 중국에서 파생됐다는 몰이해를 보이며, 더 말할것도 없이 한국 입장에선 자체로 무례한 발언이다.

특히 근현대사에서는 일제에 피해를 받은 역사적 동질감도 있다. 더군다나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지금의 중국 둥베이 3성 지역으로 흘러든 조선인들 가운데는 한국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고, 항일투쟁이라는 노선에서 중국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던 이들은 때로 중국와 합작해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오성홍기를 가리켜 "이 붉은 색에는 조선인의 피도 녹아 들어 있다."라는 카더라가 있을 정도. 씁쓸하게도 이 점은 현재 북한이 중국과의 혈맹관계를 강조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 파병을 한 이후로 수십년동안 외교적인 단절이 있었지만 이후 크게 갈등을 겪지는 않아서 더욱 그렇기도 하다. 사실 한국전쟁에 대해선 현재 한국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나 그때 그 일은 모두 김일성 때문이라는 생각이 주류여서 그렇기도 하다. 실제로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위해 마오쩌둥이나 스탈린을 징징거리며 전쟁하게 해달라고 꼬드겨댔었고. 거기에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북한 정권을 거의 혐오한다고 보아도 될 정도이다. 김정은을 개그감으로 취급할 뿐 아니라 북한 자체를 민폐 집단으로 취급하고 있는 실정. 이는 중국 지도부 역시 마찬가지로 거의 내다놓은 말종 취급한다. 다만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 때문에 북한을 이용하고 있는 것일 뿐.

혐한이거나 한국을 무시하는 경우도 존재하나, 일본에 비해 그다지 큰 수치는 아니며 일반적인 인식은 여전히 좋은 편이다. 다만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당시 적지 않은 수의 한국 네티즌들의 조롱 때문에 잠시동안 한국에 대한 인식이 크게 떨어진 사례는 있다. 당시 일부 조사에 따라서는 가장 싫어하는 국가에서 일본을 제치기도 했다.

다만 중국인들도 한국정부를 무시하는 경향이 심하다. 그래도 중국인들이 한국정부는 무시하지만, 대체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좋다. 이는 물론 한국 드라마나 한국영화, K-POP등이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인 점이 크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자기 나라를 무시하는 걸 알고 놀라워하며 근래에 들어 생긴 것으로 알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앞서 보았듯 한국인들은 고려시대 어쩌면 그 이전부터 중국인들을 더러운 놈이라며 멸시했다. 중국인들도 고려 몽둥이[7] 놈이란 뜻으로 가오리빵즈란 말을 쓴다.

한중의 정치적 사안에 따라 호불호의 변화를 보이기도 하는데, 지속적인 문제론 북한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가 있고[8] 세부적인 일례론 2016년 THAAD 배치 문제가 있다. 이 결정 후 중국의 일부 언론에서 "박근혜가 생각없이 내린 가벼운 결정이 중한관계를 악화시켰다" 등의 반한 감정을 선동하기도 했다. 이에 국수주의 성향의 중국 네티즌들은 열심히 한국 까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다만 항저우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사드 배치엔 명백히 반대하면서도 과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중국인들과의 인연, 나아가 김구 선생의 아들인 故 김신 장군이 1996년 항저우 저장성 옆에 있는 하이옌 시를 방문했을 때 ‘음수사원(飮水思源ㆍ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한다는 뜻) 한중우의’라는 글자를 남겼다”는 이야기를 언급한 점을 생각하면 여전히 중국 정부가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포기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이 중국 공산당이 아닌 중국 국민당 정부였을 시절 이야기다.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이 국민정부의 계승자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던 일. 물론 중화민국 정부나 국민당이 알면 화를 낼 일이다.

그밖에도 천안함 사건 이후 후속조치로 이루어진 한미간 서해훈련을 두고 중국 외교당국자가 "미국만 없었으면 한국은 진작에 손봤을 나라"라는 발언을 하였고 시진핑의 '한국은 수천년간 중국의 일부였다'는 전례없는 망언이라던가 천하이 중국 외교부 부국장의 '소국(한국)이 대국(중국)에게 대항해서 되겠나' 같은 선을 넘는 막말도 서슴치않는게 중국정부의 모습이긴 한데, 정부 사이의 그런 것과 상관없이 중국인들의 개인적 호불호는 다를 수 있다.

중국에서 한빠를 일컫는 합한족(合韩)이라는 말도 있다. 다만 이 표현은 어감이 좀 묘한 게 우리나라로 치면 일빠 같은 뉘앙스라.(...) 참고로 중국엔 합일족이라는 단어도 있다.

5. 경제

대한민국/경제, 대한민국/무역 참고. 수출, 수입 모두 1위가 중국이며 중국에게는 한국이 수출, 수입이 3위에 해당한다.

현재 중국은 한국의 결정적인 수출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대중 수출은 한국 GDP의 15%를 넘겼고, 한국 수출 전체의 26%에 육박하고 있다. 대미, 대일 수출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이 때문에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전체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주장은 수출이라고 하면 무조건 장땡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것은 75% 가량이 가공무역, 즉 한국인끼리 하거나 한국인이 다른 제3국인과 하는 거래로, 조금 심하게 말해서 중국 자체에 직접적으로 수출하는 비중. 즉, 중국 내수시장을 직접 겨냥한 것은 25% 정도로 그다지 큰 편이 아니다. 총 수출 비중도 부가가치 기준을 적용하여 봤을때는 19%로 감소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생산 시설 이전 등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고, 밑에 글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외국 기업의 투자에 대해 싫으면 말고식의 과거의 고압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상당히 유화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유는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언제까지고 구시대적인 방식을 고수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의 소비가 증가하면서 시장으로서의 기능도 상당 부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라고는 하니 장기적으로는 중요한 시장 중 하나가 될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고평가되어진 면이 많다는 것이다. 대체할 수 없는 비중, 그리고 우리가 직접 외화를 벌어들이는 비중과 우리 국적의 회사들이 외국에서 일 벌이면서 형식상 외국 GDP로 처리되는 비중이 똑같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최근 국민총소득이라 불리는 GNI가 GDP 못지 않게 널리 쓰이고 있다. 통계의 겉면만 봐서는 진실을 알기 힘들다. 물론 그 통계가 GDP를 구성하는 요소로 쓰이니 낮추어 보는 것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중국과의 무역이 완전히 사라지면 거기에서 계산되고 있는 GDP가 사라진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을 예측할 때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주요한 자료로 쓰이며 주식 시장도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고 부가가치가 낮은 통계상 이익이라고 해도 이익은 이익이며 사업이란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기사에 나온 말처럼 쉬울 것인지는 의문이다. 기업이나 주식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실제 경험이 있다면 알 수 있는데,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베트남에 가서도 마찬가지일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까놓고 일이 크게 터지고 그 영향과 한국 정부와 기업의 대응을 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중국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옆나라때문과 1997년 외환위기로 대한민국이 호되게 당했기때문에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도 별 난리 없이 넘겼다는 게 중론이다. 중국의 엄청난 투자 및 한국 국적의 회사 및 공장. 그리고 국내의 무역도 활성화되었기 때문. 앞에서도 이야기한 97년 외환위기 덕택인데, 이 때 거품이 싹 꺼진 데다가 성장률까지 떨어지면서 한국은 이후 자산에 거품이 낄 기회가 없었다. 여기에 고환율 사태까지 벌어져 수출은 경제 위기 상황임에도 여전했다.

즉, 한국의 경우 외부 경제 위기로 인한 타격이 아예 없었다면 미국, 유럽, 일본과 달리 미미한 것은 사실이다. 반대로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경우 한국은 그 수혜와 피해를 어느 정도 씩은 받을 구조이다. 이건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경제적으로 연관된 여러 국가들도 전부 마찬가지이다. 중국이 국제 시장에서 끼치는 영향력이 매우 비대해졌기 때문. 위의 대중국 수출 25%도 수치적으로는 매우 높은 비율인 것은 분명하다.

물론 한국과 중국 당국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중국이 한국의 경제 의존도가 높다고 자화자찬하기는커녕 오히려 한국 시장에 중국 제품을 더 팔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며, 한국도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는 중국 내수 시장 개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도 대부분 그렇지만 한국 역시 중국의 저가 공산품, 농산품을 엄청나게 수입하고 있다. 중국에서 나온 1, 2차 산업의 생산물 덕에 대한민국의 수많은 산업들이 사양길을 걸었다. 이는 한국이 산업고도화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측면도 있다. 반대로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해서 싼 노동력으로 제품을 만들거나, 중국의 엄청나게 싼 공산품 덕분에 저물가를 유지하며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사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제대로 된 노동력+저임금이 모두 가능한 나라 자체가 중국을 포함해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한국과 중국간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추진도 속도를 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민감한 분야인 농산물 문제 등으로 인해 난항이 있는 편. 공업 분야에서도 서로 경쟁관계인 산업이 많아 쉽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지나치게 가까워질 수 없는 점도 고려해야 할 점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상호 협력 비중을 줄이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한국은 대체자로 동남아 각국들을 찾았으며, 중국은 독일 등을 선호하는 듯. 결국 2014년 11월 10일 한중 FTA가 체결되었다. 추가적으로 위안화 직거리 시장까지 텄으나 한국의 중국경제의 영향력 편입성격이 강하여 한중 FTA나 이 문제나 좋은 문제가 아니다.

한편 한국 경제가 선진국에는 기술에서 밀리고 중국에게는 거의 비슷한 기술과 싼 가격에 밀려서 양 쪽으로 압박당하고 있다는 '샌드위치 위기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샌드위치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공밀레 정당화를 위해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강하고 오히려 역샌드위치론이 새로 등장할 정도이다. 일단 현재 많은 분야에서 중국과 경쟁중인 것은 사실인 만큼 계속해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 기업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며 공밀레열정페이 등 현존하는 나쁜 관습과 사회적 문제점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2016년 한국 상장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가 미국에서 중국이 되었다.자료

S&P에서 중국 성장률이 낮아질 경우 피해를 보는 국가들 예측에서 한국이 3번째로 큰 피해를 본다고 예측했다.자료 칠레, 대만 다음이었다.


블룸버그에서 한국은 GDP의 11%가 중국과 관련되어 있으며 아시아에서 4번째로 중국에 의존적인 나라로 평가했다.자료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다음이었다.

5.1. 경제규모


명목 GDP 기준이다.
연도 한국 중국 한국:중국[9]
1960 20억 597억 0.03
1965 30억 704억 0.04
1970 89억 926억 0.10
1975 216억 1,634억 0.13
1980 643억 1,911억 0.34
1985 985억 3,094억 0.32
1990 2,704억 3,608억 0.75
1995 5,311억 7,345억 0.73
2000 5,333억 1조 2,113억 0.44
2005 8,448억 2조 2,286억 0.38
2010 1조 148억 4조 4,006억 0.23
2012 1조 1,295억 6조 5,605억 0.17
2013 1조 2,218억 7조 6,072억 0.16
2014 1조 4,495억 8조 4,824억 0.17
2015 1조 3,786억 9조 0,647억 0.15
2016 1조 4,148억 10조 1,910억 0.14
2017 1조 5,404억 11조 2,377억 0.14
2018 1조 6,555억 12조 4,572억 0.13

한국과 중국은 모두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겪은 국가이다. 다만 한국의 경제가 급성장한 시기는 1970~1990년 정도이고, 중국은 2000년 이후 경제 급성장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시기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양국 모두 경제 발전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이전인 1960년, 양국의 경제규모 격차는 30배로써 당시의 한국-중국간 인구수 차이와 비슷했다.

그 이후 한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겪고, 유례없는 초 원고 환율과 호황기를 맞던 1995년의 한국 경제력은 당시 인구수 차이가 30배 가까이 났던 중국 전체 경제력의 75%에 달했다.

하지만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고 난 후 지속적인 경기침체와 저성장이 이어지는 동안, 중국의 경제가 무섭도록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규모 차이는 꾸준히 벌어지기 시작하여 2018년에는 한국의 총 경제규모는 중국 경제규모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배수로 따지면 중국의 경제규모가 한국의 경제규모보다 약 8배 정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은 2010년대에도 6~7%대의 고성장이 이어지는 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0년대 들어 2~3% 수준으로 정체되어 있다. 따라서 양국의 경제규모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참고로 중국 이외의 한국 주변국의 경제규모 차이를 비교하자면, 일본은 한국보다 약 2.8배 크고, 북한은 한국의 3% 수준에 불과하고, 대만도 한국의 33%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을 모두 합쳐도 중국과의 격차인 8배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5.2. 1인당 경제력


이 부분은 좀 더 현실적인 비교를 위해, 각국의 물가 및 실질구매력 차이를 반영한(PPP) GDP를 기준으로 한다.
연도 한국 중국 한국:중국[10]
1980 2,190$ 310$ 7.06
1985 4,131$ 621$ 6.65
1990 7,548$ 983$ 7.67
1995 12,134$ 1,870$ 6.49
2000 16,517$ 2,929$ 5.64
2005 22,734$ 5,604$ 4.06
2010 29,731$ 9,249$ 3.21
2011 31,228$ 10,290$ 3.03
2012 32,386$ 11,260$ 2.88
2013 33,755$ 12,291$ 2.75
2014 35,320$ 13,368$ 2.64
2015 36,501$ 14,371$ 2.54
2016 37,810$ 15,414$ 2.45
2017 39,548$ 16,695$ 2.37
2018 41,415$ 18,119$ 2.29

한국의 경제 호황 순성장기가 지속되고,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후폭풍이 이어지로, 천안문 사건 등의 대형 악재를 겪던 1980~1990년에는 양 국간의 1인당 실질 경제력 차이가 6~7배까지 벌어졌었다.

하지만 한국이 외환 위기를 겪고 그 여파로 경기침체와 저성장이 이어지는 동안, 중국은 전례없는 고속 성장이 진행되어 양국의 격차는 꾸준히 줄어들어갔다.

2018년에는 약 2.3배 정도로 줄어들었다. 실질 경제성장률 흐름이 중국 6~7%대, 한국 2~3%대 정도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6.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나 현재 상황으로나 일본과 함께, 가장 한국과 밀접한 사회적 관계를 이루는 나라가 중국이다. 특히 게임,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교류가 활발하며, 중국인들이 한국에게 가지는 관심도 높다.

이를테면 중국에서 만들어진 리눅스용 키보드 입력기인 fcitx는,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편견과는 달리 좋은 한글 입력기능을 보여준다. 중국산이기에 한글 입력 방식이 한국인 정서와는 조금 동떨어져있지만, repository만 하나 추가해서 패치를 해주면 한국인들도 아주 편하게 쓸 수 있다. 참고로 리눅스 환경에서 꾸준히 개발이 진행된 국산 입력기는 이제 아무것도 없다. 인기있는 국산 입력기인 nabi마저도 개발 중단 크리를 먹었다.
중국에는 주중 한국대사관(베이징 소재)과 다수의 총영사관(상하이, 칭다오, 광저우, 선양, 청두, 시안, 우한, 홍콩, 다롄(출장소))이 설치되어 있고, 상하이와 산동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들이 진출해 있으며 한국인들의 중국 관광도 한중수교 이후 활발해진 편이다. 2012년 7월에는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에 주한 중국 영사관이 설치되었다.[11] 제주특별자치도는 중국을 비롯한 한국과의 무비자 협정 미체결국들이 무비자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대한민국 영토이다.

최근 홍콩마카오 등지를 중심으로 한 K-POP한국 문화한류의 전래로 열광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한중수교 이전까지는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이 거의 드물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수교 이후에 가서야 한국인들의 방중(訪中)이 증가하게 되었으며 사회 지자체간의 상호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근래 들어서 명동이나 롯데월드 등을 중심으로 중국인 관광객 (요우커)이 매우 많아졌다.

방한하는 외국인 관광객국적 수 1위가 중국이라고 한다. 기사

외국인 관광객중에 절반이 중국인이라고한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의 관광업의 밥줄이 사실상 중국인 관광객이라고 봐야한다.[12] 롯데면세점 가면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많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중국의 본선진출로 인해 중국 응원단 및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기도 하였다. 당시 중국은 월드컵 조편성 때 한국 땅에서 본선경기를 치뤘기 때문에 본선에서 열렸던 조 예선 3경기도 모두 한국에서 치뤘다. 그리고나서 3전 전패 무득점 9실점으로 16강 탈락 본선에서 한골도 넣지 못하고 터키 브라질 코스타리카의 빵셔틀만 해주고 짐을 쌌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중국의 경제성장을 어느 정도 예상했었는지 90년대말기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중국어 학습이 성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와 중국 경제규모의 거대함이 드러나고 전반적으로 경제가 크게 약진하자 다시 중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본격적으로 패권국의 면모를 드러내고 특히 최근 북한 제제관련 및 사드와 한반도에 대해 안하무인격인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 내부에서 중국에 대한 인식은 경계와 불신감이 커졌다. 관련기사

중국 불법 조업이 극심한 와중에 참다 못한 연평도 어민이 직접 나포하는 사건이나 박경조 경사 살해사건, 이청호 경장 살해사건에 이어 또 해경 고속함정을 고의 충돌하고 도망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한국 정부에서 함포 발포까지 하겠다고하자 중국에서는 발포를 하면 보복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JTBC

해적같은 중국 불법 어선 YTN

연합뉴스

EEZ 문제도 있다고 한다. 국민일보

국내 상주하는 외국인 국적도 중국이 가장 많다(통계청 자료. 15세 이상 대상).

한겨레

조선족 중국인이 42.5%고 그 외 중국인은 12%다. 과반을 넘는 수준이다.

사드 배치 논란으로 중국 내에서 애국주의 열풍으로 반한 감정이 거세지고 있다. 연합뉴스 , KBS , SBS , YTN

한국으로 많이 오던 관광객들도 확 줄어든 것으로 보고됐다. 한겨레

중국에서 한국관광이 재개되었다. 조선비즈 그리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이하여 2018년 3월말까지 한국 재방문. 평창올림픽 입장권 소지, 공무여권 소지자 대상으로 15일 무비자 허용해준다.

코레일이나 도시철도 안내방송으로 한국어, 영어 다음으로 중국어, 일본어가 나온다. 일본 맨 끝 원리

7. 비디오 게임

한국 온라인 게임에서 현질이 퍼지자 중국 해커들이 한국 온라인 게임에서 돈을 벌고자 '작업'을 한다. 자기들끼리 퍼뜨린 한국인의 실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가입하기 때문에 실명인증도 뚫어낸다. 한국인의 아이템을 빼내려고 해킹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건 몇몇 중국 해커의 해킹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온라인 게임 회사들이 보안을 끝장으로 신경쓰지 않아서 그런거다.

그래서 몇몇 중국인이 아예 한국인한테 실제로 돈을 빼내려고 법원, 경찰서, 카드 회사, 은행 등을 사칭해서 계좌 번호를 빼내는 일(보이스피싱)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들의 억양이 심하게 특이하기 때문에 쉽게 구별 가능하다. 그러자 탈북자와 한국인을 포섭하면서 확률을 높이려 하고 있다.

국산 게임이 진출하여 큰 이득을 보고 있는 국가이기도 한데, 몇몇 게임들이 이걸 가지고 "이 게임은 우수하다. 그래서 중국에서 성공했다" 식의 주장은 믿지 말자. 이는 인구수 비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같은 10%가 즐기는 게임이라고 해도 한국인 전체 국민의 10%가 즐기는 것과 중국인 전체 국민의 10%가 즐기는 것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어쨌든 표면적으로 많이 즐기는 것은 맞아서 이를 바탕으로 "우리 게임만 킹왕짱이다!" 식으로 언플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 때문인지 실제로도 누가 중국에 진출만 하면 주가가 요동치기도 한다.

여기에 몇몇 게임 업체들과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든 중국만 가면 성공한다"는 소위 '차이나 드림'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잘 팔린 게임들을 보면 진짜 잘 팔릴 수준이라 팔린 것이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해외 진출에 노하우가 쌓인 국내 대형 서비스 업체들은 중국 진출 시 자사의 전체 게임들을 막무가내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아닌 일부 게임만 추려내서 진출시킨다.

중국에서는 한국 게임을 표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유기. 한국 입장에서는 통탄할 노릇이다. 솔직히 게임 베끼는 건 한국도 할 말 없지만 이젠 역으로 완미시공 같이 중국산 게임이 한국으로 진출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한국산 게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도 꽤 먹히긴 한다만 아직까지는 발전성이 미적지근해보인다.

한편으론 의심의 여지가 없는 E스포츠 강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워크래프트 자체가 끝물이긴 하지만 한국을 꺾고 최강의 자리를 차지한 워크래프트3를 필두로 리그 오브 레전드, 하스스톤 등 다양한 종목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올리며 선전하고 있다.

역으로 중국산 게임이 우리나라로 들어오기도 한다. 붕괴 시리즈라던가, 소녀전선, 강철의 왈츠 등의 게임이 우리나라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특히 소녀전선의 경우 마이너한 함대 콜렉션 계열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과금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플레이 할 수 있는 구조 등으로 한때 플레이스토어 랭킹 3위에 오르는 등 선전하면서, 한국 모바일 게임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8. 미래

현 시점에서 보편적인 중국인의 생활수준이나 인권 의식, 정치 선진도가 여전히 한국의 30년전 수준에 머물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대륙의 역사적인 국가들이 보여준 패권국으로서의 면모나 수많은 인구와 넓은 영토에서 나오는 기초체력은 현대 중국이 90년대 일본처럼 허무하게 무너지리라는 예측을 점점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국가로서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막강한 경제력과 나날이 성장하는 군사력을 갖춘 신흥 패권국임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단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의 전이, 그리고 구 패권과 신 패권의 헤게모니 다툼이 일어날 때 무력충돌이 벌어질 확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경고한다. 패권을 추구하는 모든 강대국은 본토의 안정을 꾀하고 세계로의 안정적인 영향력 투사를 위해 반드시 변경의 소국들을 자국 중심의 질서로 편입시키려 하며, 여기에는 중국이라는 차기 패권국의 주변에 위치한 한반도 역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 미국이 세계 질서에서 가진 위치를 중국이 넘보려 한다면 경제적인 대립이든 군사충돌이든 다툼은 필연적이며, 양대 제국에게 모두 포기하기 어려운 지정학적 위치를 점한데다 남북관계라는 화약고까지 보유한 한반도는 높은 확률로 그 단초를 제공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중국과 미국은 인류역사에서 벌어진 수많은 패권경쟁에서도 상호간의 이해관계가 가장 크게 겹친다는 것이다. 근대의 영프관계나 19세기의 독영관계, 20세기의 미소관계와 달리 중국과 미국은 상호간에 깊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얼마 전까지는 다른 관계들에 비해 정치 군사적 대립은 심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대국굴기가 본격화되고, 자국우선주의를 강조하는 스트롱맨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오늘날 미중관계는 경제, 군사, 정치 등 전 범위에 걸쳐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대규모 무역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오던 대만 카드 역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고 있다. 중국 역시 남중국해에서의 군사 활동을 본격화하는가 하면 한반도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등 주변국들에 대한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으며,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와 협력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상하여 이를 군사적으로 억제하는 전략을 펴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동북아시아의 지역 강국이며 나름 강대국에 가장 근접한 국가 중 하나이지만 미국과 중국이라는 초/준초강대국들의 대결에서 혼자 힘으로 판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의 선택은 실질적으로 미국이냐, 중국이냐 아니면면 한반도의 통일(통일한국) 후 미국중국을 통제할 최강국으로써의 위상변화냐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이는 금세기 동안 양대 패권국가의 세력 판도가 어떻게 뒤바뀌는지[13], 그리고 양국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떠한 세계 질서를 추구하는지[14]에 따라 갈리게 될 것이다.

만일 현재와 같이 중국이 주변 국가들에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한 채 무력을 앞세워 미국 및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대립을 지속한다면, 한국은 높은 확률로 미국의 편에 남게 될 것이다. 물론 중국도 바보는 아닌지라 자국의 동부 해안가에 인접한 위협적인 강국인 한국을 어떻게든 끌어들이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병용하겠지만, 가까운 패권국의 의도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미국이라는 강력한 방패를 내치는 행위는 백기투항을 의미한다는 정도는 한국인들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은 일본, 인도, 호주 등과 함께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동맹의 최전선 국가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점진적으로 중국에서 벗어나 동남아시아 등지로 투자처를 바꿀 것이다. 중국의 힘이 점증하는 이상 한국 단독으로 여기에 맞서기는 어려우므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필수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현재 북한에게 받는 수준을 상회하는 군사적 압박을 겪는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서방국가들의 지원 역시 얻게 될 것이다.

반대로 중국이 대내적으로는 안정적인 선진국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조금씩 패권을 추구하는 현대 미국과 같은 국가로 탈바꿈할 경우, 한국의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오늘날 한국이 중국의 편을 선택할 수 없는 가장 큰 두 가지 원인은, 한국전쟁과 현대 북중관계에서 드러나는 중국의 진짜 의도에 대한 불신, 그리고 중국의 후진적 체제로의 편입이 국내 문제에 미칠 악영향 때문이다.[15] 이는 바꿔 말해 미국의 패권이 지금보다 더 쇠퇴하거나 고립주의로 돌아설 경우, 중국이 국민성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배울 만한 국가로 탈바꿈하고, 중국에게서 오늘날 미국캐나다를 대하는 정도의 대우를 약속받을 수 있다면 굳이 그들을 배척할 이유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 유교 사상을 공유했던 명나라조선의 관계, 그리고 오늘날 영어 및 민족적 동질성을 공유하는 미국과 5개의 눈이 그러하듯, 패권국과의 문화적인 공통점은 상호 신뢰를 만들어 줄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고. 이 경우 한국은 북한과의 통일 등을 약속받을 확률이 높으며, 해당 시점에서 중국의 의중에 따라 일본-호주-인도 동맹을 적대하는 최전선에 설지, 아니면 유럽 연합과 같은 동북아시아 연합체를 형성하고 2~3인자 자리를 보장받게 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이외에도 미국과 중국이 힘의 균형을 이루는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북한과의 평화통일을 이루어내고 양국의 소통 창구이자 중립국으로서의 위치를 따낼 수도 있고, 과거 대영제국미국의 관계처럼 중국이 민주화되고 미국과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늘려가며 대부분의 가치를 공유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쇠퇴하면서 평화적으로 중국에 패권을 넘겨주는 시나리오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다. 혹은 중국이 소련처럼 예상치 못한 내분으로 무너져내리거나, 러시아 내지는 다른 모종의 국가가 공적이 되어 데탕트 당시처럼 미중이 다시금 손을 잡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여하간 현재로서는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굴기에 맞춰 안전을 담보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책을 끊임없이 강구하여 외교적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는 고려되지 않은 북한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라는 변수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복잡한 관계가 그려지게 된다. 수십 년 이후에나 벌어질 상황이라 하더라도 미리미리 고민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9. 관련 문서




[1] 넓은 의미에선 수천년간 이어져 온 한반도와 중화문명 사이의 관계도 해당된다. 일단 이 항목은 근-현대의 중화인민공화국 위주로 서술.[2] 다만 태조 이성계 시대만 해도 조선과 명의 관계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제 3차 요동 정벌론이 나올 정도. 본격적으로 유대관계로 바뀐 건 태종 때부터다.[3] 중국은 한국 전쟁을 한반도 내에 일어난 내전이라고 하며 국군의 38선 이북 진격은 자신들이 관여하지 않겠지만 만약 미군을 포함해 UN군들이 38선을 넘는다면 이것은 중국에 대한 도발로 간주하고 자신들도 참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였다. 근데 이 말도 웃긴 것이 이미 중국은 10월 경에 북-중 국경지대에 병력을 대기시켜놓고 국군 단독으로 넘든 국군과 UN군이 같이 넘든 참전할 생각이었다. (10월 1일 국군만이 단독으로 38선을 넘었음에도 중국은 병력을 철수시키지 않고 북한을 지원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4] 참고로 차기 아시안 게임이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즉 개최지가 바로 중국 베이징이었다.[5] 우리나라에서도 사료가 부족한 고려사를 연구에 참고되는 책이다.[6] 이 부분은 중국과 겹치는 수출품목에서 반사이익으로 오히려 이득을 볼거라는 연구결과들도 있다.[7] 한자는 몽둥이란 뜻이지만 중국어도 언어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최초의 뜻과 다르게 쓰이는 용례가 많아서 딱 몽둥이란 뜻은 아니다. 빵즈는 명나라 시대부터 쓰이던 멸칭으로 한국어로 치면 ㅈ같은 놈이란 뜻과 비슷하게 쓰인다.[8] 기본적으로 중공은 북한의 혈맹이다.[9]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하였다.[10]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하였다.[11] 이로서 중국은 한국내에 가장 많은 외교공관을 설치한 국가가 되었다.(서울, 부산, 광주, 제주)[12] 이외에 대한민국 중 경제의존도가 중국이 절반 이상으로 나타나는 것까지 확인되었다.[13] 현재로서는 미국이 앞서 있으나 중국이 머지않아 따라잡는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지만, 미국의 진정한 힘은 단순히 자국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 퍼진 군사동맹 및 기축통화로서 무역 네트워크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나온다. 때문에 미국이 대중국 전선에서 세계의 지지를 끌어모을 만한 적절한 명분을 실수로라도 내줄 경우 중국은 단 한번의 잘못된 선택만으로도 무너져내릴 위험이 있다.[14] 자유주의민주주의, 인권 등 인류 보편의 가치들을 공유하고 선도하는 미국과는 달리, 중화인민공화국은 여전히 후진적인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와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중국이 추구하는 세계질서에 편입되는 것은 한국민들의 강력한 거부반응을 불러올 것이다. 반대로 중국이 민주화되거나 하면 한국과 일본이 중국에 대해 가지는 가장 강력한 거부감 하나가 사라질 것이다.[15] 이외에 막나가는 외교는 사실 중국만의 문제점은 아니다. 미국 역시 러시아와의 약속을 어기고 NATO를 동진시켰고 9.11 테러 당시 파키스탄에 석기시대 위협을 하거나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편들며 이란 핵합의를 멋대로 뒤엎는 등 동맹이 아닌 국가들에게는 결코 합리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중국 역시 동상이몽일지언정 동맹국인 북한이 파탄국가에 이른 지금까지도 어쨌든 외교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고. 요는 본 단락에서는 미국의 동맹으로 남을 때와 중국으로 갈아탈 때의 손익을 계산하고 있으므로 친중노선을 선택할 경우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며, 노선을 바꾸더라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사항들을 두고 비교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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